캐딜락 SRX 독일과 일본 SUV 위협하는 ‘메이드 인 USA’
2004-02-12  |   60,170 읽음
캐딜락 SRX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월 디트로이트 코보홀에서 열린 2003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였다. 양산형 SRX가 처음 공개된 자리였지만 이미 2001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컨셉트카 바이존을 통해 디자인이 공개되고 에지 디자인을 쓴 캐딜락 CTS가 먼저 데뷔했던 터라 그리 낯선 느낌은 들지 않았다. CTS를 위아래로 조금 늘려놓은 듯한 SRX는 덩치 큰 북미 SUV 틈바구니에서 적당한 크기와 균형 잡힌 몸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 1월 다시 2004년 북미국제오토쇼를 취재한 후, GM의 배려로 캐딜락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신세대 캐딜락 3인방을 연속해서 시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GM이 아시아 기자단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캐딜락은 2004년형 CTS와 SRX 그리고 XLR 등 3개 모델 18대.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차들이지만 기자들의 수가 많아 모든 모델을 여유 있게 시승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CTS는 V6 3.2X 엔진을 얹은 국내 수입모델과는 달리 신형 V6 3.6X VVT 엔진을 얹고 있어 성능이 궁금했고 SRX는 올해 3월 국내에 수입될 예정이라 구미가 당겼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리고 싶은 충동을 주는 캐딜락 브랜드의 이미지 리딩카 XLR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SRX와 XLR 두 대를 선택했고, 이 달에 먼저 SRX의 시승기를, 3월호에 XLR 시승기를 싣기로 한다.

유럽과 일본 럭셔리 SUV가 경쟁 대상
균형 잡힌 몸매와 정숙한 엔진 돋보여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던 디트로이트와는 달리 시승행사가 열린 LA 근교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우리네 늦가을처럼 화창했다. 시승에 앞서 진행된 프리젠테이션에서 마크 라네브(Mark Laneve) 캐딜락 브랜드 사장은 “캐딜락은 2001년 이후 10개의 새로운 모델(올해 선보일 STS 포함)을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면서 “캐딜락의 전체 라인업 가운데 풀사이즈 세단 드빌과 풀사이즈 SUV 에스컬레이드는 미국 시장, CTS와 SRX, XLR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 캐딜락”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신세대 캐딜락 3개 모델은 과거 캐딜락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벗어 던지고 세계 시장에 섰다. 특히 SRX는 BMW X5, 렉서스 RX330, 어큐라 MDX, 볼보 XC90, 벤츠 M클래스, 폭스바겐 투아렉, 인피니티 FX35/FX45 등 유럽과 일본의 쟁쟁한 경쟁자들이 자리잡고 있는 럭셔리 중형 SUV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아메리칸 럭셔리카로 손꼽히는 캐딜락이 과연 얼마만큼 미국 빛깔을 버리고 세계 기준에 다가선 것일까? 유럽과 일본 SUV와 같은 관점에서 대하더라도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까?’ 시승 전 머릿속에는 온갖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한나절 동안 캘리포니아 해변 옆 프리웨이와 인근 산악지대 와인딩로드를 SRX와 함께 하다보니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시승행사장에는 V6과 V8 두 가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기자의 손에는 V8 모델의 열쇠가 주어졌다. GM이 개발한 신형 노스스타 엔진(V8 4.6X DOHC VVT)의 첫 인상은 무척 정숙하다는 것. 엔진룸을 열어놓고 아이들링 소리를 들어봐도 이전 노스스타 엔진보다 한결 조용하다. 문득 엔진룸 안쪽을 가로지르는 스트럿 바가 예사롭지 않은 SRX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SRX는 분명 중형(미드사이즈) SUV이지만 길이×너비×높이가 4천950×1천844×1천722mm로 꽤 큰 편이다. 단지 풀사이즈 SUV가 아니기 때문에 ‘미드’를 붙인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 그러나 체구에 비해 높이는 비슷한 급의 SUV보다 확실히 낮다. SRX가 SUV와 스포츠 왜건을 조화시킨 크로스오버카 바이존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앞 뒤 범퍼를 비롯해 보디 곳곳에 ‘각’이 살아있는 SRX는 캐딜락의 새 디자인을 유감없이 뽐낸다. 아래위로 길쭉한 테일램프는 과거 캐딜락의 전통적인 테일램프를 연상시킨다.
신세대 미국 SUV답게 도어도 가벼운 편. 뒤 해치 역시 가볍게 열리지만 닫을 때는 패널의 크기가 커 어쩔 수 없이 손목에 힘을 많이 줘야 한다. 실내 역시 CTS에서 먼저 선보였던 캐딜락의 새 디자인 경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시보드의 생김새는 CTS와 거의 비슷하지만 플라스틱의 질감은 더욱 고급스러워진 느낌. 앞좌석 레그룸은 차 크기에 비해 약간 좁은 듯한데, 이는 CTS에서도 느꼈던 점이다. 시트는 넉넉하면서도 어깨부분을 잘 받쳐준다.
2열 시트의 거주성은 나무랄 데 없지만 3열 시트는 어른이 앉기 힘든 보조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바닥에 납작하게 깔려있는 3열 시트를 펼치고 접는 것은 전동식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해결된다. B필러를 가로지르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붕 대부분의 면적을 유리로 덮은 ‘울트라뷰 선루프’는 역시 뒷좌석에 앉았을 때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 선루프는 아웃 슬라이딩 방식으로 지붕 면적의 50%가 열리는 것이 특징. 뒷좌석에는 승객을 위한 DVD 플레이어와 7인치 LCD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DVD를 즐기기 위해 써야 하는 헤드셋이 ‘메이드 인 차이나’다. ‘이제 캐딜락조차 중국 제품을 쓰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도 잠깐, 중국은 이미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최근 중국은 캐딜락의 가장 큰 수출시장으로 떠올랐고 GM 경영진은 캐딜락의 첫 해외생산 기지를 중국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큰 스트레스 없이 고회전 무난히 소화
유럽 SUV 못지 않은 핸들링 성능 자랑


V8 4.6X DOHC VVT 320마력 신형 노스스타 엔진은 무게 2톤의 SRX를 말 그대로 경쾌하게 이끈다. 풀 드로틀을 하면 타코미터가 순식간에 레드존인 6천500rpm까지 치솟고 어느 영역에서나 꾸준한 힘을 토해낸다. 5천rpm 이상에서는 엔진음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하지만 고회전에서의 엔진 반응이 워낙 매끈하다보니 자꾸 높은 rpm을 쓰게 된다. 그러나 미국 SUV의 한 특징―대배기량 OHV 엔진에서 나오는 풍부한 저회전 토크―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노스스타 엔진의 최대토크(43.5kg·m)는 4천rpm이 넘어서야 나오고 가변 밸브 타이밍(VVT) 기구도 저회전에서는 그리 인상적인 성능을 내지 못한다.

자동 5단 기어를 얹은 SRX로 시속 60마일(약 97km) 정속주행을 하면 타코미터는 2천rpm을 가리킨다. 이때는 렉서스에 버금갈 정도로 조용하지만 회전수를 2천100rpm으로 높여 시속 70마일(약 113km)에 이르면 A필러 부근에서 약한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속 100마일(약 161km)까지 속도를 올리더라도 바람소리는 그다지 커지지 않고 이내 엔진음에 파묻혀 버린다. 3단으로 레드존(6천500rpm)까지 가속했을 때의 속도가 꼭 시속 100마일(약 161km). 고속에서 울트라뷰 선루프로 덮인 지붕의 반을 열어도 실내에 들이치는 바람은 그리 크지 않다. 선루프를 열면 앞쪽에서 10cm쯤 솟아오르는 윈드 디플렉터가 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SRX는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AWD) 두 가지 버전이 있고 시승차는 앞뒤 무게배분이 52: 48인 AWD 모델이다. 반나절 시승 코스에는 제법 구불구불한 와인딩로드가 포함되어 있어 SRX의 핸들링 성능을 알아보기에 더없이 좋았다.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과 캐딜락이 자랑하는 주행안정시스템(스태빌리트랙), 낮은 무게중심과 앞 235/60 R18, 뒤 255/55 R18 사이즈의 타이어 덕분에 계속 이어지는 와인딩로드에서 4천∼5천rpm을 넘나들며 채찍질해도 SRX는 웬만해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SRX의 5단 AT 시프트 레버는 수동 모드에서 위아래로 +, -로 조절하는 방식. 변속감과 연결감이 좋은 편이고 엔진 브레이크를 걸 때의 반응속도도 빠르다. 급제동할 때 브레이크 유압의 압력을 높여주는 제동력 보조장치는 덩치 큰 SUV에서 평범한 세단보다 더 인상적인 효과를 낸다. 단단한 하체에 비해 스티어링 휠은 조금 가벼운 편. 심하게 몰아 부치면 분명 약한 언더스티어 경향을 보이지만 이 정도면 캐딜락이 경쟁상대로 꼽는 벤츠 M클래스나 렉서스 RX330에 충분히 대적할 만하다.
반나절 동안 SRX V8 모델과 데이트를 즐긴 후 약 2시간 동안 V6 모델을 시승했다. 신형 V6 엔진은 저회전에서 같은 배기량의 엔진이 내는 평균치 토크 이상의 힘을 냈다. V6 3.6X DOHC VVT 260마력 엔진은 분명 V8보다 출력이 떨어지고 회전수를 높였을 때 더 빨리 거칠어졌다. 엔진과 섀시의 조화는 확실히 V8 모델이 한 수 위다.
시승 결과 SRX는 유럽 및 일본 SUV와 경쟁할 만한 충분한 자질이 엿보였다. 특히 GM이 자랑하는 시그마 아키텍처 플랫폼 위에 신형 노스스타 엔진을 더한 SRX는 장거리 주행에서 편안함이 돋보이는 미국 SUV의 장점에 유럽차다운 탄탄한 주행성능까지 갖추었다.
SRX는 오는 3월 GM코리아를 통해 국내에 V8 모델부터 선보이고, 내년쯤 V6 모델도 들어온다. 울트라뷰 선루프와 AWD, DVD 등 대부분의 옵션을 기본장비로 갖추고 값은 8천만 원대 후반이 될 예정.
캘리포니아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벌써부터 한국에서 펼쳐질 럭셔리 SUV 삼국지(미국, 유럽, 일본)를 상상해본다. 신세대 캐딜락은 이제 ‘메이드 인 USA’이기 때문에 유럽 혹은 일본차와 맞비교하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Z

캐딜락 SRX V8 AWD
Dimension
길이X너비X높이(mm) 4950×1844×1722
휠베이스(mm) 2957
트레드(mm)(앞/뒤) 1572/1580
무게(kg) 2015
승차정원(명) 7
Drive train
엔진형식 V8 DOHC VVT
최고출력(마력/rpm) 320/6400
최대토크(kg·m/rpm) 43.5/4400
구동계 네바퀴굴림
배기량(cc) 4572
보어×스트로크(mm) 93.0×84.0
압축비 10.5
연료공급/과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크기(L) 75.7
Chassis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앞, 뒤) 235/60 R18, 255/55 R18
Transmission
기어비 ①/②/③
④/⑤/?
3.420/2.215/1.600
0.750/-/3.020
최종감속비 3.230
변속기 자동5단
Performance
최고시속(km) 225
0→시속 100km 가속(초) 7.0
연비(km/L) -
Pr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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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와 스포츠 왜건을 조화시킨 컨셉트카 바이존의 DNA를 이어받은 캐딜락 SRX. 키가 크지 않고 무게중심이 낮아 운동성능이 뛰어나다뒷좌석 승객을 위해 마련된 DVD와 7인치 LCD 모니터. 모니터는 쓰지 않을 때 센터콘솔 아래쪽에 수납할 수 있다5단 AT 시프트 레버는 수동 모드에서 위(+) 아래(-)로 조절하는 방식이다3열 시트를 옵션으로 갖추고 있지만 어른이 앉기에는 힘든 보조석쯤으로 봐야 한다CTS를 통해 선보인 캐딜락의 새 디자인 경향은 SRX의 실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생김새는 CTS와 비슷하지만 플라스틱의 질감은 더 고급스럽다
유리창과 범퍼를 V자 모양으로 디자인하는 등 개성이 넘치는 SRX의 뒷모습울트라뷰 선루프.지붕 면적의 50%가 열린다V8 4.6L DOHC WT 320마력 신형 노스스타 엔진은 구형보다 한결 정숙성이 좋아졌다아시아 기자단을 위해 마련된 SRX와 XLR, CTS 등 3개 모델 18대의 캐딜락SRX는 장거리 주행에서 편안함이 돋보이는 미국 SUV의 장점에 유럽차다운 탄탄한 주행성능을 더한 신세대 캐딜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