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4]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2018-05-11  |   79,842 읽음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밀라노의 기술에 담긴 나폴리의 정열​

※본 내용은 자동차생활 2000년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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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는 지난 6월초 토리노 모터쇼에서 새 모델 147을 발표하여 조촐하게 창사 90주년을 기렸다. 돌이켜보면 1910년 6월 24일 알파(ALFA) 엠블럼을 단 첫차가 세상에 나온 뒤 90년이 흘렀다. 자동차사 100년에 10년이 모자라는 긴 세월이다.

프랑스인 알렉상드르 다라크가 이태리 나폴리에 세운 자동차 회사 SIAD를 이어받은 프랑스와 이태리의 혼혈아 알파. 그러나 라틴계의 순수한 정열이 핏속에 흐르고 있다. 불타는 정열을 아련한 추억에 담은 알파로메오의 꽃은 스파이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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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기술에 남방의 정열 담아  
알파로메오는 정열과 추억을 한데 버무려 빚어냈다. 알파 스파이더 드라이버는 뜨거운 정열을 갈구한다. 스파이더는 적도의 무자비한 태양이 아니라 감미로운 지중해의 열기를 담고 있다. 어느 독일 시인은 말했다. 스파이더는 정열의 나폴리인 니콜라 로메오(1918년 2월 자동차 메이커 알파를 흡수하여 알파로메오를 만든 주인공)와 밀라노의 자동차 메이커 알파가 힘을 합쳐 만든 서정적인 작품이라고.

알파로메오를 상징하는 엠블럼도 독특하다. 알파와 로메오가 합쳐진 것처럼 알파로메오 방패도 중세부터 내려오는 두 개의 문장을 하나로 합쳤다. 세로로 나누어진 왼쪽은 밀라노 공국의 문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귀족가문 비스콘티의 문장이 자리잡고 있다. 밀라노 문장은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선명하고, 비스콘티 문장에는 소년을 삼키고 있는 용이 몸을 비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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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터스포츠계의 거인들 타지오 누보랄리, 엔초 페라리, 니노 파리나와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알파로메오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대의 영웅들은 오늘날의 프로 드라이버처럼 경기에서 거액을 노리지도 않았다.

 

정열의 나라 브라질 출신 판지오가 알파로메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저씨 때문이었다. 그를 아주 귀여워하던 아저씨는 그를 차에 태우고 돌아다녔다. 바로 2+2 스파이더였다. 어른 시트 2개에 어린이가 편안히 타고 다닐 수 있는 시트 2개를 곁들여 인기가 높았다. 스파이더와 함께 뛰놀던 장난꾸러기 후안 마누엘은 뒷날 알파로메오의 프로 드라이버로 변신했다. 그리고 세계 모터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는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2차대전 이후 알파로메오 오픈카는 모두 2600 스파이더의 뒤를 이어받았다. 2600은 투어링 밀라노로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하고 당당한 보디를 뽐냈다. 1960년대 중반 2600 스파이더는 제2차 대전 이전의 우상이었던 프레치아 도르와 빌라 데스테를 화려하게 되살렸다. 직렬 6기통과 8기통 엔진을 얹어 무서운 힘을 자랑했다.

직렬 6기통 2.6ℓ는 145마력을 뿜어냈다. 62년에서 65년 사이에 2600 스파이더 투어링 2천255대가 나와 거리와 서키트를 누볐다. 최고 시속 200km는 주위를 놀라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거리를 달릴 때나 큰 명예가 걸린 서키트에서나 2600 스파이더는 언제나 선두 그룹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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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 밝힌 빨간 스파이더 
흑백 시대의 어느 영화에서 알파 스파이더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영화계의 거장, 알파로메오 매니아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만든 작품이었다. 도로, 서키트와 은막을 통해 알파 스파이더는 60년대의 선두주자로 힘차게 달렸다. 스파이더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니라 휴일이면 정열을 불사르는 스피드의 화신이었다.

세계 자동차계의 정상을 달리며 명성을 떨친 지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알파 스파이더를 다시 만났다. 알파의 핸들을 잡으면, 문득 그때의 기대가 지금도 헛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개의 금속 스포크가 달린 고전적인 나르디-홀츠 핸들을 보라.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욱 빛난다. 핸들만 보고 있어도 틀어잡고 달려나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태리 고속도로 아우토스트라다를 달리는 그란 투리스모로서의 스파이더 투어링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그 뛰어난 제작기술을 자랑했다. 문득 스파이더의 배기음이 투명한 얼음 조각처럼 내 목덜미와 등골을 오싹하게 타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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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의 기수 바더 마인호프가 이끄는 반체제 학생운동이 서유럽을 휩쓸던 1968년. 그러나 알파로메오만은 암울한 시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열의 진홍색 스파이더를 세상에 내놓았다. 4기통 8밸브 엔진은 당대 최고의 듀엣 사이먼과 가펑클의 기타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연주했다. 아울러 영화에 등장한 스파이더는 당대의 명배우 더스틴 호프먼과 인기를 겨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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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량 높이면서도 순수 혈통 지켜  
66년에서 91년까지 알파로메오 스파이더는 오쏘 데 세피아, 패스트백과 새로운 계보의 기함을 잇따라 내놓았다. 단종의 위험을 뛰어넘으며 파워를 앞세운 대형 쿠페에 맞서 검투사처럼 싸웠다. 스파이더는 1300 주니어에서 1600 두에토와 1750 벨로체로 배기량을 높이면서도 순수 혈통을 굳게 지켰다. 한편 드라이버들은 상쾌한 배기음과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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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는 우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했다. 디자인 거장 바티스타 피닌파리나가 빚은 클래식 스파이더는 지금도 점화키를 돌리자 시원스런 배기음을 내며 되살아났다. 한 손으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루프도 당대의 명물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잽싸게 빨간 광주리형 루프를 올리고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대시보드의 계기는 듬성듬성 떨어져 있지만 알아보기 쉬웠다. 두에밀라 패스트백 스파이더는 카사타-아이스베허제 회전계와 타코미터를 달아 차의 품위를 높였다. 센터 콘솔의 기어 레버도 가볍고 정확했다. 이태리의 뜨거운 정열을 담아내는 빨간 스파이더는 공력적으로도 뛰어났다. 시대를 앞지른 공력적 프론트로 공기를 가르고, 저항을 낮추는 테일 디자인으로 공기터널을 빠져나갔다.

줄리에타 스파이더, 투어링 스파이더와 패스백은 날씬한 허리선이 아름답고도 경제적이었다. 콕피트에 들어간 드라이버는 앉는 위치가 낮아 안정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시야에 장애를 받지 않는 설계가 돋보였다. 더할 수 없이 아늑하고 몸에 착 들어맞는 시트 위치를 세 모델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왼쪽 팔굽을 도어 위에 얹고 오른 팔로 조수석의 연인을 감싸안는 기분은 정말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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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예술의 향기 아우른 명기 
1930년 알파로메오는 운명을 건 대모험을 통해 모터스포츠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이태리에서 벌어진 제4회 밀레 밀리아는 거리 1천600km가 넘는 비포장도로에서 벌이는 역사적 랠리였다. 선두주자의 기록은 16시간 19분, 평균 시속 100km를 넘어섰다. 세계 모터 스포츠계의 영웅 타지오 누보랄리가 알파로메오 6C 1750 수퍼스포츠 자가토 스파이더를 몰고 올린 빛나는 기록이었다. 이로써 그는 모터 스포츠 사상 최고의 드라이버로 손꼽히는 영광의 길을 달렸다.

그 뒤 신사 드라이버들의 스파이더 경주가 등장했다. 누보랄리는 파트너인 미캐닉 지오반니 바티스타 귀도티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팔을 도어 위에 얹은 채 핸들을 잡았다. 한껏 멋을 부리던 누보랄리는 브레시아의 첫 급커브에서 핸들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세계정상의 테크닉 덕택에 두 사람은 목숨을 건졌다.

그들이 몰고 달린 알파 6C 자가토는 서키트용 경주차였다. 휠이 큼직한 4스포크 핸들은 손잡이를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당대의 하이테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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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자동차나 시트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누보랄리는 30년대에 이미 시트 조절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운전석 바닥판에 어떤 장치를 달아 시트를 조절하는 방안이었다.

그때 알파로메오 기술진이 조절형 시트를 개발했다면, 스파이더는 가장 안락한 조절형 좌석을 단 최초의 오픈카가 되었을 것이다. 알파로메오는 빛나는 대변혁을 살짝 비켜 오늘에 이르렀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알파 스파이더는 알파로메오 90년 역사의 절정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이다. 기술에 정열을 담은 스파이더는 스피드 매니아만이 아니라 시인과 사상가에게도 어울리는 탈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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