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THE K9 3.3T, 더할 나위 없다
2018-05-29  |   65,133 읽음

KIA THE K9 3.3T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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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기아가 감히 넘어설 수 없는 현대라는 벽을 두고 완벽하진 않되, 절묘한 타협점을 만들었다.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프리미엄 메이커가 오버랩되는 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신형 K9이 공개되기 전, 공장에서 찍힌 저화질 사진 속 더 K9을 봤을 땐 솔직히 실패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기아의 호랑이코 패밀리룩과 거리가 멀어보였고,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비율은 대륙에서 건너온 수입차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더 K9은 그러나, 실물이 사진보다 멋진 차였다. 직접 마주하니 역시 사람 눈이 제일 좋은 카메라라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기함에서 느껴지는 기품 있는 아우라

이번에 시승한 신형 K9은 3.3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고 엉덩이엔 MASTERS(마스터즈) 레터링을 박아넣은 네바퀴굴림 풀옵션 모델이었다. 도장 색은 오묘한 색감의 푸른빛이 도는 레이크 스톤 컬러. 색깔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우라 만큼은 제네시스 G80이나 EQ900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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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기함 세단과 비슷한 구성의 레이아웃. 베이지 투톤 인테리어가 적용됐다  


기함이라는 데서 오는 예의 중후한 감성은 더욱 진하다. 게다가 굴곡진 패턴의 주간주행등은 기존 헤드램프를 잊게 할 만큼 강렬하다. 쿼드릭 패턴 그릴(Quadric Pattern Grill)이라 이름 붙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테두리가 좀 더 확장됐다는 느낌을 받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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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턴이 사용된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옆모습은 기존 K9과 크게 다르지 않다. 휠베이스가 60mm 더 길어지며 보다 실내공간이 늘어난 점 정도만 체크하면 된다. 뒷모습에서는 예전 벤틀리 컨티넨탈 GT가 보인다. 그나마 자연스럽게 굴곡을 타고 올라가는 순차점등 방향지시등이 개성적이어서 다행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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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테일램프는 벤틀리를 연상케 하지만 불이 켜지면 나름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그래픽이 보인다  


운전대와 센터패시아 조작부 등은 전반적으로 EQ900과 다르지 않다. 팝업식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사용한 점이 다를 뿐이다. 센터패시아 정가운데에는 출시 전부터 이슈가 되었던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의 아날로그 시계가 달려 기함 세단임을 조용히 드러낸다. 모리스 라크로와는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급 시계 라인을 보유한 스위스 워치 메이커. 최상위 라인업인 ‘MASTERPIECE’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다. K9과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도어 트림부터 시트 각 부위 디테일에서는 벤츠 냄새가 진동한다.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의 금속 소재의 스피커 덮개는 벤츠에서 쓰는 부메스터 오디오와 비슷한 생김새다. 고급차라면 찾게되는 앰비언트 라이트 역시 들어갔다. 취향에 따라 64가지 색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대신 벤츠, BMW 등과 달리 대시보드에는 라이트를 생략했다. 야간 운전 시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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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못지않은 럭셔리한 도어 트림이다  


이로써 탑승자를 챙긴다는 명목 하에 원가 절감은 물론, 독일 프리미엄 메이커를 베꼈다는 비난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효과도 거뒀다. 알칸타라와 비슷한 촉감의 인조가죽을 필러와 천장에 아낌없이 두른 건 꽤 인상적이다.

뒷좌석에는 마사지 기능이 없다. 이는 5.0L 엔진이 들어가는 최상위 모델 퀀텀도 마찬가지. 대신 앞좌석을 길게 앞으로 빼고 시트 포지션을 최대한 안락하게 만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뒷좌석 듀얼 모니터(옵션 선택 가능)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DMB, 라디오 정도다. 더 K9이 어디까지나 오너드리븐 성향이라는 생각은 운전대를 잡고 나면 확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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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에서 REST 모드를 취했을 때 모습. 2% 모자란 안락함을 선사한다



기함, 아니 고속함인가?

엔진 라인업은 V6 3.8L 자연흡기와 3.3L 터보, V8 5.0L 자연흡기 구성이다. 시승차의 3.3L 터보는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는 52.0kg.m다. 초반 발진감은 주행 모드에 따라 달라지는데, 스포츠 모드로 둬도 여전히 부드럽다. 일상 주행 속도에서는 다소 부드러운 서스펜션 감각이다. 낭창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수긍할 만큼의 안락함과 주행 안정감을 아우른다. 그런데 코너를 만나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거운 차체를 이끌면서도 경쾌하고 스포티하게 돌아 나간다. 하체가 탄탄하게 조여지고 불안감은 없어 지난달 탔던 7시리즈가 떠오른다. 이토록 스포티한 주행감을 K9에서 느낄 줄이야. 시승차에 끼워진 콘티넨탈 여름용 타이어를 보고 들었던 다소간의 의구심이 사라진다. 이중접합 유리 덕분에 수준급의 방음 실력도 갖췄다. 시동을 걸면 얼핏 하이브리드인가 싶을 정도로 엔진음 차폐가 잘되어 있고 진동도 아주 민감한 편이 아니라면 느끼기 힘들다. 현대 수소전기차 넥쏘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 차로 변경 시 옆 차로를 비추는 후측방 모니터(BVM) 기능도 눈에 띈다. 짧은 시승기간 동안에는 미처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빠르고 안전한 차선 변경을 돕는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진화 이룬 주행 보조 기능

신형 K9의 백미는 기아차 반자율주행 기술인 드라이브 와이즈(Drive Wise)에 있다. 이달 반자율주행차 특집 기사에서 알 수 있듯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다. 시승 중 차로 유지 보조, 스마트크루즈컨트롤 기능을 활성화했다. 직선이나 완만하게 꺾이는 구간에서는 좀처럼 차선을 물지 않는다. 그러면서 머뭇거리지 않고 우직하게 속도를 낸다. 과속 카메라 앞에선 힘껏 속도를 줄이며 운전자의 과태료 부담을 줄인다. 옆 차로에서 차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어도 여유롭고 손을 오랫동안 떼고 있어도 웬만해선 운전대를 잡으라는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차선을 이탈한 경우는 올림픽대로에서 마포대교 진입을 위해 급커브 구간에 들어섰을 때 뿐.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구간 탈출 즈음 차로를 탈출하려 하기에 휠을 강제로 잡아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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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지시등을 켰을 때 계기판에는 후측방이 모니터링된다  


이렇듯 더 K9은 한솥밥 먹는 EQ900의 심기는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상품성을 갖추고 G80과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 위한 모델로 다시 태어났다. 독일 프리미엄 메이커의 중형 세단과 겹치는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좀 더 빠른 준대형 세단으로의 진입을 유혹한다. 점차 세분화되어가는 니즈 속에서 대형 세단은 부담스럽고 중형은 뭔가 아쉬운 이들의 가려움을 제대로 캐치했다. 딱 그 정도의 위치에서 더 K9은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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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겸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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