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티구안, 고급 차 아닌 좋은 차
2018-06-28  |   104,550 읽음

VOLKSWAGEN TIGUAN

고급 차 아닌 좋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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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하며 감탄할 포인트는 없다. ‘에잉’하며 실망할 거리도 없다. 그게 이 차의 매력이다.


예전 폭스바겐 슬로건 ‘다스 아우토’가 떠올랐다. 영어로 ‘더 카’ 즉 자동차라는 의미처럼 티구안은 기본이 탄탄했다. 화끈한 파워는 없지만 안정되게 잘 달리고, 눈 돌아갈 장식 하나 없는 실내는 빈틈없이 치밀하다. 기본기 좋은 대중차 또는 기름기 걷어낸 고급차 같달까. 그래서 이 차는 고급차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잘 달리고 잘 서는 좋은 차다.


차갑다. 그래서 차답다

폭스바겐 디자이너들은 말 한마디 없이 일하는 게 아닐까? 티구안 스타일에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교과서처럼 정갈한 비율과 수평적인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 여기에 철판 성형 기술 과시하듯 날카로이 찍어낸 캐릭터라인과 화려한 LED 그래픽이 더해져 더더욱 기계적인 분위기다. 그 기계다움이 설렘은 없어도, 든든한 신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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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과 램프가 하나처럼 연결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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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래픽이 돋보이는 테일램프. 브레이크를 밟을 때와 주행 할 때 모양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실내에도 무표정이 서렸다. 최근 아우디·폭스바겐이 즐겨 쓰는 일자로 이어진 송풍구조차 없는 실내는 그저 뻔하다. 가죽이나 나무 같은 화려한 장식도 없다. 그런데도 값싸 보이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 비결은 치밀한 마무리와 품질이다. 머리카락 하나 찔러 넣기 힘들 만큼 부품들이 딱 맞게 자리 잡았고, 버튼 조작감도 묵직해 어디 하나 헐렁한 곳이 없다. 흠이 없으니 화려한 장식 없는 실내가 제법 값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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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게 없는 실내는 만듦새가 좋다


커진 차체의 혜택은 뒷자리부터 누릴 수 있다. 이전보다 전체 길이가 55mm, 특히 휠베이스가 76mm 늘어나 2열 공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키 177cm 표준 체격인 기자가 운전석을 조정한 후 뒤에 앉았을 때, 무릎 공간 한 뼘이 남을 정도. 특히 늘어난 공간을 실용적으로 꾸민 게 반갑다. 1열 시트 뒤에 컵홀더가 달린 큼직한 테이블을 달아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뒷 시트는 4:2:4로 나뉘어 접힐 뿐만 아니라 등받이 각도 조절과 앞뒤 18cm 슬라이딩까지 가능해 공간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 이걸 다 접었을 때 트렁크 공간은 1,665L. 평소 용량은 615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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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치나 되는 휠 크기가 비교적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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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을 위한 꽤 큰 테이블과 제대로 된 컵홀더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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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시트가 4:2:4로 접혀, 트렁크 활용성이 좋다


든든한 150마력

150마력. 과거 현대 테라칸이 커먼레일 직분사 기술을 더한 2.9L 디젤 엔진으로 150마력 출력을 뽑아낼 때 ‘힘이 넘친다’고 표현했었는데, 어느덧 초라한 숫자가 돼 버렸다. 2.0L 배기량 디젤 엔진으로 250마력도 거뜬한 오늘날 150마력이라니, 평범한 숫자에 차를 타기 전부터 김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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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마력 2.0L 디젤 엔진. 일상적인 주행에선 부족함이 없지만, 해외에 판매 중인 190마력, 240마력 버전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티구안 동력 성능은 평범했다. 그래도 기대보다는 경쾌하다. 일상적인 주행에선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1,750rpm부터 34.7kg·m 최대토크가 나오는 까닭에 부족함이 없고,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시속 100km 정도는 속 시원하게, 그리고 시속 180km까지는 수월하게 속도를 높인다.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밑천을 드러내지만, 그전까지는 최고출력 180~200마력을 내는 동급 SUV와 체감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 제원상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도 9.3초로, SUV 덩치와 출력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편. 아무래도 클러치로 동력을 직접 전하는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이전보다 무게를 50kg 줄인 차체가 주효했던 모양이다.

시속 180km를 넘는 고속에서 출력 갈증을 키운 건 섀시의 성능이다. 부지런히 돌고 있는 엔진과 달리 승차감은 평온했기 때문. 팽팽하게 조율된 서스펜션이 큰 너울을 빠르게 지나도 출렁이지 않게 잡아내고, 좌우 쏠림도 든든히 억제하니 운전자의 자신감이 줄질 않는다. 그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하도록 묵묵히 버텨주는 25,000Nm/deg의 고강성 차체도 마찬가지. 단지 오른발만 조급하게 페달을 짓이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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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옆모습. 헤드램프 위치가 옛날 스포티지처럼 낮은 이유는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렇게 뽑아낸 공기 저항 계수(Cd)는 0.31에 불과하다


그렇게 달려 강원도 한 고갯길에 도착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돼 차의 기본기를 파악하기 좋은 코스. 코너를 향해 달리며 힘을 모두 뽑아내도 확실히 150마력 출력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이어 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대를 꺾자, 앞쪽이 묵직하게 방향을 튼다. 역시 하체가 아무리 좋아도 SUV는 SUV다. 1,675kg 무게가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큰 키 탓에 날카로운 감각은 없다. 그래도 서스펜션이 롤링은 확실히 잡아내 좌우로 빠르게 하중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허둥대는 시간이 짧고, 연속되는 급제동에도 브레이크 반응이 일정하다. 코너 공략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믿음직스럽다. 

이러면서도 일상 주행의 승차감까지 만족시키는 게 신형 티구안의 매력이다. 유럽 돌길에서 다져진 하체는 도로 위 잔진동 정도는 가볍게 거르고, 큰 충격은 불쾌하지 않게 둥글려 전달한다. 웬만한 방지턱은 빠르게 넘어도 승객이 깜짝 놀라지 않을 정도. 탄탄한 댐퍼가 충격으로 인한 2차 충격까지 확실히 거르니, 승차감은 부드럽진 않더라도 말끔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정차 시 시동을 끄는 스타트 & 스톱 기능이 매우 적극적이어서 공회전 진동을 느낄 새는 많지 않으나, 공회전할 때 진동이 요즘 4기통 치고는 다소 도드라지는 편이며,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애매한 저속에서 이따금 변속 충격을 전했다. 


적극적인 첨단

티구안은 반자율주행이 가능한 첨단 주행 보조장치가 모든 모델에 기본으로 들어간다. 0~시속 160km까지 앞차와의 간격을 조정하며 달리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중앙으로 달리게 해주는 차선이탈방지장치를 켜면 잠깐이나마 운전대를 놓은 채 달릴 수 있다. 실제 도로 위에서도 크게 도는 회전구간 정도는 잘 쫓아가기 때문에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다만 브레이크는 다소 거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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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율주행이 가능한 첨단 운전자 보조 기술이 모든 모델에 기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티구안의 스타트 & 스톱 기능은 정차 후 앞차가 출발하면 알아서 시동을 켠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기존에 있는 센서를 활용해 미리미리 시동을 켜니 어색함이 크게 준다.

총 452km를 달리는 동안 연비는 리터당 13.1km를 기록했다. 고속 주행할 땐 리터당 18km를 넘기기도 했지만 고갯길을 빠르게 달리고 오랜 기간 세워놓은 채 촬영하면서 연비가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다른 가솔린 차였다면 리터당 10km도 힘들 만큼 가혹했던 환경에서 나름 선방한 수치. 공인연비 역시 리터당 14.5km로 준수한 편이다.

티구안은 평범하다. 눈길을 잡아 끌만큼 화려하지 않고, 화끈하게 달려나갈 성능도 없는 평범한 차다. 그런데 뛰어나게 평범하다. 화려함은 없지만 만듦새가 빈틈없고, 화끈하지 않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 비범한 평범이 타는 이를 매료시키는 티구안의 매력. (폭스바겐 사태 이후) 오랜 자숙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출시 첫 달 만에 수입차 판매 3위로 올라선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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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지수 기자 사진 |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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