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5008 GT 2.0, 비밀번호 437
2018-07-02  |   81,161 읽음

PEUGEOT 5008 GT 2.0

비밀번호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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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뤼르 1.6은 빠지는 거 하나 없는 잘난 구성을 자랑했지만 시원한 가속감을 느낄 수 없어 답답했다. 이 꽉 막힌 체증을 뚫는 데엔 단 세 자리 숫자면 충분하다.


매번 새로운 아이콕핏

5008 GT의 실내 레이아웃은 당연히 1.6 알뤼르와 같은 구성이다. 외관에서 느끼지 못한 감흥을 실컷 보상받고도 남는 고마운 실내다. 운전자를 위하는 푸조 아이콕핏(i-Cockpit)이 정점을 찍었단 사실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머리로는 당연하다고 알고 있음에도 운전석에 앉으면 왜 그리 실실 거리게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형 푸조 SUV의 실내는 고만고만한 생김새의 센터패시아와 센터콘솔부를 우려먹는 다른 메이커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일침을 날린다. 기능적 측면도 뛰어나다. 주행 중 급히 비상등을 켜야 할 때도 토글스위치 방식은 길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손쉽게 버튼을 찾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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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아이콕핏이 정점에 다다른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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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글스위치와 그립감 좋은 기어 레버


계기판은 풀 스크린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심플함을 살린 재래식 다이얼도 좋지만 파격적인 레이아웃에 발맞춘다는 점에서 보면 이 역시 수긍할 만하다. 풀 스크린 방식을 쓰는 만큼 취향에 맞게 세팅이 가능하다. 개인, 최소, 주행, 다이얼 등 메뉴에 따라 화면을 달리한다. 시트는 알뤼르 1.6과는 확실히 다른 실내 감성에 일조한다. 가죽과 알칸타라, 그리고 누빔과 비슷한 바느질에서 스포티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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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알칸타라 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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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가지의 계기반 레이아웃이 가능하다


GT가 놓친 또 하나의 감성

다른 메이커와 비교하면 나름 고성능이라고 붙여놓은 GT 배지가 조금은 낯뜨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본 모델과 차이는 상당하다. 배기량이 437cc 늘어남에 따라 출력이 60마력이나 높아졌다. 알뤼르 1.6과 비교하면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발현되는 엔진회전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갭을 알아채긴 쉽지 않다. 1.6L에선 이미 한껏 힘을 쥐어짰을 타이밍에 GT는 한창 남아도는 출력과 토크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웠음에도 좀 더 많은 아드레날린이 필요했던 차에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눌러봤다.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1.6L에선 일반 모드와 스포츠 모드 간 변화가 확연했지만 GT는 그렇지 않다. 물론, 회전수는 높게 가져가지만 굳이 부스트 버튼이 필요할까 싶다. 오히려 변화량으로 치면 알뤼르 1.6쪽이 더 극적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모드 간 변화가 한창 들떴던 마음을 시무룩하게 만든다.


푸조가 일으킨 인지 부조화

GT 2.0은 알뤼르 1.6에 비해 모든 치수에서 차이 나는 신발을 신는다. 타이어의 너비가 235mm로 10mm 넓고 편평비 역시 기존 55에서 50으로 바뀌었다. 휠 역시 19인치로 기존보다 1인치 커졌다. 이 모두가 GT에 걸맞은 스포티한 주행을 위함이다. 그럼에도 이뤄낸 친환경적인 변화는 두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스포티함과 친환경?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GT 2.0의 도심 연비는 알뤼르 1.6보다 조금 손해를 보는 수준에 그치고 고속 연비는 리터당 1km 가까이 상회하며 복합 연비는 12.9km/L를 기록한다(알뤼르는 12.7km/L). 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푸조는 고성능 차를 오히려 엔트리 모델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신기(神技)를 부렸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기껏 점수를 쌓아 올리고도 허무하게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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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보다 스포티해진 휠과 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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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SUV는 역시 2.0L가 옳은 답이다


어딘가 서툰 진화

푸조라고 변화의 바람이 안 불 리 없건만, 지금 소유 중인 2세대 308에 익숙한 나머지 반자율주행 기능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차선이탈방지시스템 버튼이 보인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도 활성화해본다. 앞차를 긴밀히 따라가며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에선 ‘푸조 = 핸들링’ 공식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반자율주행에서 가장 신뢰도 높아야 할 차선 유지 기능이 금방 무너졌다. 차선을 밟는 건 물론, 종종 침범해서 차선을 변경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체 내비게이션과 멀티미디어 간 음성 간섭을 고려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요즘 나오는 차들은 운전 중 라디오를 듣고 있다 해도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가 나올 때는 잠시 뮤트(Mute) 기능을 활성화하곤 한다. 자칫 라디오 방송에 심취해 있다가는 제때 차로를 바꾸지 못하거나 과속 단속에 걸릴 수 있겠다.


놀라지 마세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 5008도 꽤 큼직한 티가 몇 가지 있다. 급기야는 운전 중에 식겁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창 양양고속도로를 달리는 와중에 계기판에 ‘차량을 닫으십시오’란 문구가 뜬다. 뭐라고? 어디가 열렸다고? 아까 트렁크 문을 잘못 닫았나? 운전 중 생길 수 있는 돌발 요인은 원천 차단하는 성격이라 보조석에 올려둔 가방에도 안전띠를 채우는 내가 실수를? 혼돈의 카오스가 된 상태로 급히 갓길에 차를 댔다. 점검 결과는 이상 無. 무슨 뜻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앞차와 간격이 좁은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문구와 함께 앞차를 추돌하는 듯한 그림이 함께 떴다. 그렇다. 앞차와 거리가 가깝다는 뜻의 ‘CLOSE'를 ’닫으라‘고 해석한 게 분명했다. 세상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승차를 받고 나서 시동을 걸려는데 뜬 메시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시동을 건다’. 이번 메시지는 번역을 잘 했지만 존댓말이라는 한국의 문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2박 3일 시승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매일같이 보아야 할 오너들의 컨디션이 걱정되는 게 괜한 오지랖은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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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겸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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