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못’의 바이크 입문기 (2), 100cc, 690km 장거리 투어 도전기
2018-10-23  |   40,47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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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못’의 바이크 입문기(2)

100cc, 690km 장거리 투어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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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만 달리다가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뼈저리게 느꼈다. 이 바이크는 근거리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전기 스쿠터를 사지 않은 이유다. 사실 출퇴근용으로는 내연기관보다 전기모터가 더 매력적이었지만, 기왕 바이크 타는 김에 장거리 투어도 한번 떠나보고 싶었다. 한적한 도로를 오픈카보다 더 자유롭게 만끽하는 기분이 어떨지, 또 연료비를 얼마나 아낄지 궁금해서다. 그렇게 바이크 왕초보가 100cc 스쿠터를 타고 총 690km 여정을 떠났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기자의 바이크는 공랭식 카뷰레터 엔진이 달린 KR모터스 델리로드 100(이하 델리로드). 장거리 주행에 따른 냉각이 가장 걱정됐다. 집 앞 정비소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쉬엄쉬엄 가세요”라고 조언했다. 이에 “공랭식이라 좀 무리일까요?”라고 물어봤더니, 되돌아온 답이 의외다. “60년대도 아니고 바이크는 문제없어요. 사람이 먼저 지칠 겁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바이크 괜찮다는 소리에 안심해, 뒷말을 흘려들은 게 실수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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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과 윤활을 모두 책임지는 엔진오일은 출발 전 필수 점검 사항이다.


바이크 걱정을 덜고 본격적인 투어 준비에 나섰다. 목표로 잡은 도착지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350km가량 떨어진 광주광역시. 자동차 전용도로를 뺀 복잡한 국도를 누비기 위해 스마트폰 거치대와 블루투스 이어폰을 마련했고, 벌레로부터 몸을 보호해줄 윈드스크린도 달았다. 장마철을 고려해 전자기기 방수 용품까지 주문하면 최소한의 여행 준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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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투어를 위해 핸드폰 거치대와 윈드 스크린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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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로드 100은 두 개의 USB 충전 소켓이 마련돼, 스마트폰 배터리 걱정 없이 내비게이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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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인치 캐리어가 선반 크기와 꼭 맞다.


오전 11시 30분경 가볍게 바이크 점검 후 출발. 역시나 서울은 막혔으나 경기도로 나오니 교통량이 크게 줄어든다. 처음으로 달려보는 한적한 도로에 괜히 설레는 기분이 커진다. ‘도동 도동’ 박동하는 단기통 카뷰레터 엔진 소리도 흥을 돋웠다.

도로도 예상보다 쉽다. 주로 편도 2차로에 중앙분리대까지 있는, 고속도로 닮은 고속화 국도가 이어져 시속 80km로 편안히 항속할 수 있다. 델리로드는 시속 90km까지는 달릴 수 있으니, 1차로는 힘들지만 2차로는 눈치 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비록 상상했던 꼬불꼬불 국도의 운치는 그만큼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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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고속도로처럼 생긴 국도가 이어진다. 100cc 출력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략 50km를 달려보니 자만감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이거 사람들 걱정에 비해 별거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엉덩이가 조금 찌릿한 것만 빼면 아직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


고행의 시작

10km쯤 더 달렸을까? 조금 아팠던 엉덩이가 더는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급격히 아파진다. 거친 단기통 엔진 진동과 뒤 서스펜션이 걸러내지 못한 노면 진동이 끊임없이 엉덩이를 공격한다. 결국 출발 후 60km가량 달린 후 휴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 10분 정도 쉬고 나면 (느낌상) 눌린 메모리폼 배게 올라오듯 엉덩이가 회복된다.  

그러나 이후로는 한 번에 30km를 채 가지 못했다. 조금 달리다 보면 엉덩이 통증이 여지없이 재발했다. 다른 문제는 다 참을 수 있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준이 아니다. 조금 달리다 쉬고, 또 조금 달리다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오후 5시 30분이었던 내비게이션 도착 예상시각은 쭉쭉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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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엉덩이가 아팠다.


갈수록 교통량이 적어지면서 출력 갈증도 커졌다. 80km/h로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이 속도에서 가속은 매우 더디다. 2차로에 저속 주행 차를 만나면 1차로가 뒤로 멀리까지 비어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추월할 수 있었다. 또 쌩쌩 기자를 지나쳐가는 ‘두둥 두둥’ 할리데이비슨과 125cc 이상 스쿠터들 때문에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른손 스로틀을 끝까지 감아봐야 100cc 델리로드는 터질 것 같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누적 주행거리 160km를 지나며 충청남도 공주시를 달릴 즈음 연료게이지가 두 칸으로 떨어졌다. 가득 채웠을 때 총 6칸이니 간단히 계산해보면 한번 주유로 대략 250km는 달릴 수 있다는 얘기. 그러나 혼자 나선 길에 바이크가 서버리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을 것 같아 3km를 더 달린 후 기름을 채워 넣었다. 가득 넣어 출발한 뒤 소모한 기름은 4.881L. 중간 정산 연비는 32.7km/L다.

엉덩이 휴식 주기는 점점 빨라졌다. 쉬는 주기가 20km 아래로 떨어질 때 즈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점심을 먹으며 엉덩이를 제대로 회복하기로 했다. 이때가 오후 3시 30분, 위치는 충남 논산으로 광주까지 딱 절반 거리를 4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자동차였으면 휴게소에 들르고도 이미 광주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차 놔두고 이게 무슨 고생인가. 피곤해서 그런지 밥도 무진장 맛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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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에서 휴게소는 정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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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변에는 주유소가 듬성듬성 있다.


세워둔 바이크를 보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절반이나 왔으니 계속 내려갈 수밖에. 긴 휴식 뒤에 엉덩이 통증은 줄었으나, 역시나 잠깐뿐이다. 한번 50km가량을 달리고 나면 이후부터는 20~30km를 한 번에 달리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설 때마다 일어서서 엉덩이를 회복해야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벌레는 많지 않았다. 꽤나 더웠던 9월 초라 많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한참을 달리는 데 거대한 벌레가 돌팔매처럼 날아와 헬멧 실드에 ‘댕~’ 소리를 내며 부딪혀 흠칫 놀라기도 했다. 만약 실드를 안 쓰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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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중 비를 맞기도 했다. 급히 세워서 스마트폰에 비닐을 씌운 모습

 

고행 속 즐거움

전라도에 다다르자 주변에 한층 녹음이 우거졌다. 출발 전 상상했던, 한가로이 국도를 달리는 그림이 펼쳐진 것이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가로수 길을 홀로 달리고 있으니 이제야 투어다운 맛이 난다. 다만 바이크는 오픈카보다 자전거에 가깝기 때문에 자동차의 여유는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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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계속해서 쉬어야 했기에 다양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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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한 도로. 한 폭의 그림 같은 도로를 달렸다.


길은 주로 편도 2차로 고속화 국도였지만, 간간이 편도 1차로 고갯길도 섞여 있었다. 두 바퀴 감각을 느끼며 완만한 코너를 돌아나가는 주행은 도심에선 경험할 수 없는 감각. 굳이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어릴 적 “바이크 투어 가기 전엔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렌다”던 은사님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물론 그분은 리터급 바이크에 전용 슈트까지 차려입었던 진짜 라이더였지만. 

장거리 주행이 길어지면서 바이크 엔진 소리가 달라졌다. 시내에서 카랑카랑한 소리가 섞여 있던 소리가 한층 깔끔하다. 아마 장시간 운행에 따라 연소실 온도가 올라 온갖 찌꺼기가 다 타버린 모양(물론 추측이다). 운전자는 피로에 절었지만 델리로드는 쌩쌩했다. 아니,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드디어 광주광역시에 도착했다.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오후 7시로 무려 7시간 30분간 346.4km를 달렸다. 엉덩이 통증 때문에 예상 도착 시각(오후 5시 30분)보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더 달린 셈이다. 시속 80km를 유지하면서 달렸지만 평균 속도도 겨우 46.1km/h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연비는? 연료게이지가 두 칸 남은 상태에서 기름을 넣자 5.451L가 들어갔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소모한 기름은 10.332L, 측정 연비는 33.5km/L다. 주유 단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총 유류비는 약 16,500원으로 버스비보다 저렴했다. 그러나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마냥 기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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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시간 30분을 달려 광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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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까지 누적 주행거리. 주유비는 약 16,500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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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90.3km 누적 주행거리를 쌓은 후 여정이 끝났다


15시간 30분을 달리다

다음 날 아침 뻐근한 몸을 이끌고 또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내려왔으면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엔 서울행이다. 전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출발하니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쾌적하다. 비교도 안 되게 적은 교통량도 마찬가지. 하룻밤 자고 났더니 엉덩이도 완전히 회복됐다. 물론 좋은 컨디션은 출발 후 잠깐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광주를 빠져나오자 별안간 스마트폰 GPS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메인보드를 통째로 교체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새 스마트폰이 웬일일까? 아침이라 덥지도 않았고 실제로 만져 봐도 열은 없었다. 기자가 주목한 문제는 진동. 단기통 엔진이 사정없이 흔들어대니, 스마트폰 GPS가 정신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기자의 손도 얼얼할 정도였으니 이해는 한다. 다행히 따로 준비해 간 태블릿 PC가 있어 길 잃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길은 전날보다 한결 수월했다. 엉덩이가 아픈 걸 잘 알기에 미리미리 휴식을 취했고, 시간도 대략 예상돼 불안함도 적다. 그럼에도 밥맛을 잃을 만큼 피곤한 건 매한가지다.

한참을 달린 후 차들이 급격히 많아진다.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시다. 주변 차의 배기가스와 엔진 열 덕분에 도로 위 체감 온도도 부쩍 오른다. 이런 정체를 뚫고 결국 처음 출발지였던 서울에 도착. 느긋하게 달려왔더니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왕복 총 누적 주행거리는 690.3km. 기름 소모량은 처음 날과 둘째 날 총 네 번 주유한 걸 합쳐 20.976L다. 계산해보면 L당 32.9km를 달렸다. 총 주유비는(네 개 주유소 평균 휘발유 단가 1596.5원) 33,474원. 저렴하긴 한데 고생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 게다가 일반 승용차 1/10도 안 되는 덩치를 생각하면 효율이 높다곤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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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경기도 평택에서


주말 동안 총 15시간 30분을 도로 위에서 보냈다. 시간이 말해주지 않는가, 100cc 스쿠터는 장거리 운송 수단으로 빵점이라는 걸. 단기통 진동 때문에 피로는 말할 것 없고, 고속에서 엔진 회전수가 높다 보니 효율도 기대 이하다. 원래 근거리 운송수단이었으니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여정 자체를 즐긴다면 100cc 스쿠터는 제법 흥미로운 동반자다. 자주 쉬어야 하는 덕분에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많은 풍경을 눈에 담았고, 탁 트인 시야로 즐겁게 달렸다.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지만 또 바이크 캠핑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다. 다만 장거리 투어 후 배기량 큰 바이크에 눈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글 윤지수 기자

사진 윤지수,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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