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XJ와 함께한 유럽 1,000km , 반세기 시간 여행 - 상
2018-10-26  |   41,126 읽음

역대 XJ와 함께한 유럽 1,000km 

반세기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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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대 XJ가 1,000km 여정을 떠났다. 영국 재규어 공장에서 50년 전 XJ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파리모터쇼를 향해.


 윤지수 기자 

사진 재규어


“네? 이걸 타고 파리까지 간다고요?” 모든 XJ를 탄다는 소리만 듣고 동네 몇 바퀴 돌아볼 줄 알았건만, 어안이 벙벙했다. 50년 묵은 자동차가 1,000km를 여정을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내 허리는 괜찮을까?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차올랐지만, 형형색색 XJ를 보자 걱정은 이내 설렘으로 뒤덮인다. 이토록 아름다운 클래식카를 맘껏 탈 수 있다니, 허리가 뭐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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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 브롬위치 재규어 공장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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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리어오버행이 아름다운 시리즈 3.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실루엣이 시각적 무게를 덜어낸다


지천명 세월을 되뇌다

지난 1968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XJ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역대 모든 XJ가 한 자리에 모였다. 재규어가 태어나는 영국 캐슬 브롬위치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달려 50년 전 그날을 기리기 위해서.

영국 날씨가 이렇게 좋을 때가 있었나? 하늘도 XJ 50주년을 축하하듯 화창하다. 쨍쨍한 햇빛이 주름진 XJ 보닛에 부딪혀 어지럽게 흩어진다. 모두 공장에서 방금 나온 듯 흠집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한 상태. 이 날을 위해 재규어가 모아온 역대 XJ를 다시금 갈고 닦았다. 늘어선 XJ를 보고 있자니 멋지다는 생각 뒤에 시샘이 뒤따른다. 우리네 브랜드의 50주년은 어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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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보드 전체를 뒤덮은 나무무늬 장식과 가죽으로 감싼 운전대가 화려한 시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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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J 시리즈 3에 얽힌 이야기

뭐가 바뀌었는지 눈 크게 뜨고 살펴야 하지만, 이탈리아 카로체리아(디자인 능력을 갖춘 자동차 공방) 피닌파리나가 디자인에 참여한 최초의 XJ다. 피닌파리나의 영향인 걸까? 시리즈 3은 1979~1992년까지 무려 17만7,243대가 생산돼 1세대 세 개 시리즈 중 가장 인기리에 판매됐다.


1979~1992

몸이 달아오른 기자단의 분위기를 알았는지, 짧은 코스 설명 후 곧바로 1,000km 여정이 시작됐다. 우리의 첫 파트너는 1987년식 붉은색 XJ 시리즈 3(XJ6 4.2 소버린). 시리즈 1~3으로 이어지는 1세대 마지막 모델이다. 처음 마주한 클래식 XJ는 역시 실루엣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뒤쪽을 끌어내려 길쭉하게 뽑아낸 리어 오버행엔 유럽 고급 세단의 로망이 가득하다. 

‘철거덕’ 단단히 조인 문짝을 당겨 오른쪽에 탔다. 여기는 ‘우핸들’의 나라 영국이니 말이다. 얇은 운전대와 짧은 시트는 영락없는 오래된 차의 모습. 나무 무늬로 뒤덮은 대시보드와 가죽으로 감싼 운전대는 당시 이 차의 위상을 대변한다. 높낮이 조절 따윈 없는 시트를 조정한 후 페달을 밟았다.

30년 세월이 무색하게 XJ는 도로 위를 흐르듯 미끄러졌다. 직렬 6기통 엔진은 그 명성처럼 기분 좋게 박동하고, 낭창한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둥글게 걸러낸다. 207마력 4.2L 엔진 또한 기계식 스로틀 반응이 즉각적이다. ‘클래식카는 불편하고 느리며 시끄럽다’는 기자의 편견이 첫 차부터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한적한 유럽 도로에서 나무 범벅 대시보드를 아래 둔 채 얇은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80년대를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당시 이 정도였다면 분명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나 격한 주행에서까지 구름처럼 떠다녀 환상은 짧게 끝났다. 유럽 도로에 즐비한 회전교차로를 돌아갈 때마다 마치 스태빌라이저 떼어낸 듯 휘청거렸고(물론 스태빌라이저는 있지만), 밀리는 브레이크는 1.8t 덩치를 실감시킨다. 30년 세월을 다시 보상받았다.


XJ 시리즈 2 쿠페에 얽힌 이야기

1975년부터 78년까지. 겨우 3년만 판매되고 사라진 XJ 쿠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자동차 경주에 열심히 참여한다. 1976~1977 유러피언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참가했고, 1977년엔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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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랜드로버 클래식 워크스는 어떤 곳?

재규어 시리즈 3을 끌고 도착한 첫 장소는 재규어-랜드로버 클래식 워크스였다. 클래식 재규어-랜드로버 복원 센터로, 그 규모는 1만4,000㎡에 달한다. 클래식카만을 위한 54개 워크베이가 마련됐으며, 500여 대의 클래식카를 보유하고 있다. 


1973~1979

첫 번째 경유지인 재규어 클래식 워크스에 도착해 다시 11년의 시간을 되돌렸다. 이번엔 1978년식 시리즈 2 쿠페(XJ V12 5.3C)로, XJ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쿠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크롬 범퍼와 비닐 루프다. 고무 범퍼를 쓴 시리즈 3과 달리 크롬 범퍼가 달려 한결 자연스럽다. 역시 클래식카는 번쩍이는 크롬이 진리다. 검은 비닐로 덮인 천장 역시 클래식 분위기를 띄우지만, 사실은 B 필러가 없어 천장이 휘는 바람에 생기는 페인트 균열을 가리는 역할이었다는 씁쓸한 후문.

실내 역시 화려하다. 당시 이 차의 위상은 지금의 S클래스 쿠페 이상이었을 테니 무리도 아니다. 다만 11년 세월을 거스르는 동안 센터패시아 무늬목 장식과 가죽을 덧씌운 운전대는 사라진 모양이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려놓자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40년 전 자연흡기 V12 엔진 앞에서 가슴 안 뛸 자동차 마니아가 어디 있을까. 과감히 페달을 밟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튀어나간다. 무려 12개 피스톤이 제각각 폭발하는 회전 질감은 두말할 것 없이 풍요롭고, 288마력 출력도 거뜬하다. 40년 전 재규어에서 요즘 차에도 없는 매력을 느끼다니. 특히 전자 장비 없는 기계식 구조가 12기통 질감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한다. 다만 3단에 불과한 자동 변속기(보그워너)는 엔진 힘을 제대로 끌어내기엔 버거웠다.

대형 차체와 12기통 엔진, XJ 쿠페는 영락없는 GT(장거리 여행용 자동차)임에도 마냥 편안하진 않다. 팽팽한 서스펜션이 노면 충격을 적잖게 유입한다. 쿠페답게 승차감보다는 달리기에 더 집중한 모양새로, 역시나 코너에서 쏠림을 든든히 억제한다. 역동적인 움직임에 12기통 엔진을 채찍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타이어를 짓이기기엔 너무 귀한 차라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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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가죽과 금속 패널로 마감한 실내가 쿠페답게 역동적이다


XJ 시리즈 1에 얽힌 이야기

‘세계 최초 12기통 4도어 세단.’ 이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리즈 1은 최고속도 시속 225km를 기록해 당시 가장 빠른 세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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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2 쿠페는 역동적인 몸놀림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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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1 실내. 운전대 안에 달린 작은 은색 반원 링은 경음기 버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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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1은 거대한 그릴이 달려 가장 권위적이다


1968~1973

1,000km 여정의 4분의 1 지점인 옥스퍼드를 지날 즈음 시간은 5년 전 더 깊숙한 과거로 빠져든다. 드디어 XJ의 시작, 1973년식 시리즈 1이다. 그중에서 이름도 화려한 으뜸 사양, 다임러 더블 식스 반덴 플러스 리무진이다. 재규어 최고 사양(다임러), 12기통(더블 식스), 롱 휠베이스(리무진)라는 뜻. 참고로 다임러는 독일 다임러와 전혀 관계없으며, 그 유래는 1960년 재규어가 인수한 영국 최초(1896) 자동차 메이커 다임러에서 가져왔다.

모양이 ‘거기서 거기’인 시리즈 1은 바닥으로 내려앉은 크롬 범퍼와 웅장한 그릴로 구별할 수 있다. 시리즈 2부터는 미국 안전 규제 때문에 범퍼가 위로 올라가, 시리즈 1만의 특징으로 남았다고. 

거대한 나무 무늬 장식이 펼쳐진 실내는 여전하다. 그런데 대시보드 가운데 떡 하니 놓인 온갖 토글스위치가 눈길을 끈다. 시리즈 2보다도 더 많은 기능이 달린 걸까? 자세히 보니 와이퍼, 워셔 분사, 헤드램프, 유리창 조절 버튼…. 당연한 전기 장치들을 한가운데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당시엔 이 정도도 꽤나 고급 장비였던 모양이다. 변속 레버 뒤 금장 V12 엠블럼에서 세계 최초 12기통 세단의 자부심도 엿보인다. 

45년 전 12기통 대형 세단에 앉았다. 폭신하게 파묻히는 시트, 시야 아래를 가득 매운 긴 보닛, 존재를 감추는 12기통 엔진, 구름 같은 서스펜션까지. 한적한 영국 가로수길을 유유자적 흐르며 반세기 전 정점에 올랐던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당시 롤스로이스 실버쉐도우보다 조용하고 빨랐다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XJ 50년 역사의 시작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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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쉬타입 휠로 한껏 멋을 낸 X350 다임러 수퍼 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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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350은 거대한 나무무늬 대시보드를 마지막으로 쓴 재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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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포츠머스 선착장에서 프랑스행 배에 올랐다


X350에 얽힌 이야기

X350은 리벳접합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해, 가장 가벼운 모델(V6 3.0) 무게가 1,539kg에 불과했다. 현세대 그랜저 최저 무게가 1,550kg(2.4 자동)인 걸 보면 이 차가 얼마나 가벼운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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