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마스터 + 매트리스 11장 시승기
2018-12-05  |   41,357 읽음

RENAULT MASTER

+매트리스 11장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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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적재 용량 8m³.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와서 퀸사이즈 매트리스를 무작정 때려 넣었다.


‘뭘 실어보지?’ 명색이 상용차인데 그냥 타볼 순 없었다. 마스터는 짐을 싣는 ‘짐차’니까. 집에 누워 한참을 고민하는데, 갑자기 침대 스프링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아 망할 침대……. 어? 매트리스를 실어보면 어떨까? 크기도 크고 무게도 적당해 딱 좋네!’ 매트리스 회사에 사방팔방 전화를 걸었고, 끝내 매트리스 전문 브랜드 ‘코르크베어’로부터 촬영협조를 약속받았다.


쾌적한 상용차

촬영 당일. 이른 아침 마스터 시승차를 받았다. 이야, 무진장 크다. 1t 트럭과 경쟁한다기에 무시하고 있었건만, 체감 크기는 2.5t 트럭 현대 마이티급은 되는 듯하다. 가장 큰 마스터 L도 아닌 작은 S인데도 말이다.

첫인상은 생소하다. 유럽 영화에서나 봤던 차가 우리나라 배경에 서 있으니 마치 외국인 보듯 낯설다. 그래서일까. 도장 따위 없는 검은색 범퍼와 옆 몰딩, 그리고 스틸 휠 위 덮개마저 무심한 듯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어설프게 승용차 흉내 내지 않는 모습이 도리어 매력적이랄까.

문짝 안 발판을 밟고 승차. 높직한 시야와 함께 넓은 실내가 펼쳐진다. 1.3t 화물차라지만 캐빈 만큼은 역시 포터가 아닌 마이티급이다. 실제 3명이 나란히 앉아도 어깨 비빌 일 없을 정도다. 더욱이 대시보드는 차라리 서랍장이라 불러야 할 만큼 수납공간이 가득하고, 머리공간까지 자리를 마련해 공간 활용성도 좋다. 다만 소재는 상용차답게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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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휠캡과 콘티넨탈 타이어가 기본. 범퍼엔 상용차답게 발판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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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서랍장이다. 앞에만 무려 15개 수납공간이 있다고


클러치를 밟아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고, 원형 테이블처럼 누워있는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과거 택배기사로 근무할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세미보닛이니 뭐니 해도 역시 상용차는 상용차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매트리스 공장으로 향했다.

출발은 1단 기어가 저속으로 조율돼 정말 손쉽다. 그런데 2단 기어비가 고속으로 훅 바뀐다. 국산 트럭 몰듯이 1단 출발 후 번개처럼 2단 기어를 바꿔 넣으면 힘이 달려 부들부들 떤다. 포터에 익숙한 기자는 처음엔 불편했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2단부터는 승용차처럼 쓸 수 있어 편하다. 출발할 때만 1단 기어를 조금 길게 물리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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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하나에 내비게이션과 오디오가 모두 들었다. 다만 내비게이션 화면은 빛 반사가 심해 쨍한 낮엔 시인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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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변속기에 오토 스탑/스타트는 난생처음이다. 멈춰서 중립에 놓으면 시동이 꺼지고, 클러치를 밟는 순간 시동이 켜진다. 그 과정이 매우 빨라 재출발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2t 덩치에 145마력이라니, 제원만 봐도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실주행 성능은 예상외로 만족스럽다. 트윈터보의 도움으로 1,500rpm부터 36.7kg·m 최대토크를 끌어내 낮은 rpm으로 여유로이 도심을 활보할 수 있다. 시속 100km까지 가속도 매끄럽지만 그 이후부터는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느라 속도계 바늘이 눈에 띄게 더뎌진다. 그래도 꾸준히 밟으면 속도계 바늘이 160까지는 어렵사리 도달한다.

고속 안정감은 국산 상용차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 그래도 승차감은 한결 낫다. 앞쪽에 달라붙어 있긴 해도 운전자가 휠베이스 안쪽에 있어 국산 1t처럼 앞바퀴에 매달려 달리는 기분은 전혀 없다. 게다가 모노코크 차체에 독립식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이 잔진동까지 효과적으로 걸러낸다. 비록 요철을 넘을 땐 뒤쪽 데드 액슬에 맞물린 리프 스프링이 텅텅거리며 튀지만 운전석 뒤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 그리 불쾌하진 않다.

노면 소음과 바람 소리까지 잘 억제돼 주행감은 전체적으로 쾌적하다. 다만,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단점이 있다. 적재함과 실내가 철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리돼 뒤쪽에서 끊임없이 철판소리가 들려오며, 우레탄 운전대와 변속레버는 마감이 거칠어 손바닥이 따가울 지경이다. 전직 택배기사인 기자는 손에 굳은살이 꽤 있는 편인데도 말이다. 장갑을 끼거나 운전대 커버 정도는 씌워야 할 듯하다.

 

매트리스를 싣다

그렇게 이른 아침 도로를 달려 경기도 끝자락 매트리스 공장에 도착했다. 드디어 매트리스를 실어볼 차례다. 양쪽으로 열리는 뒷문짝을 확 열어젖히자, 구경하던 공장 관계자가 “우와 넓다”라며 감탄을 터뜨린다. 적재함 길이 2,505mm, 너비 1,705mm, 높이 1,750mm. 크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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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505mm, 너비 1,705mm, 높이 1,750mm 널찍한 적재함


코르크베어가 준비한 적재물은 커버를 씌우지 않은 길이 2,000mm, 너비 1,500mm, 높이 170mm 크기의 라텍스 소재 퀸사이즈 매트리스다. 27kg 무게라 성인 혼자 들기에 충분하지만, 부피가 커 2인 1조로 짐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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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3cm 모델이 편안한 자세로 짐을 내리고 있다


둘이서 흐물거리는 매트리스를 밀어 넣는데, 바닥이 낮은 게 이리 고마울 수가 없다. 적재함 바닥 높이 겨우 555mm로 무릎보다 조금 더 위까지만 들고 쓱 밀어 넣으면 끝이다. 새삼 40kg 쌀 포대기를 이보다 200mm가량 더 높은 포터 적재함(상면고 750mm)에 낑낑대며 올려 싣던 과거 기사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너비 1,500mm 매트리스는 평평한 바닥에 안전하게 들어갔다. 튀어나온 휠하우스에 살짝 걸리긴 하지만, 조금은 변형되는 매트리스라 큰 문제는 없다. 대략 6개 정도를 쌓은 후엔 한 명이 적재함에 올라타야 했다. 차체 바닥 높이를 포함해 벌써 1500mm를 훌쩍 넘어버렸으니. 적재함 위에선 키 177cm 기자가 고개만 살짝 숙이면 허리 편 채 설 수 있었다. 짐 실을 땐 자연스레 허리가 접혀 이 정도 높이면 쓰는 데 큰 무리는 없겠다. 만약 이게 부족하다면 적재함 높이가 1,940mm인 마스터 L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후 5개를 더 올려 총 11개 매트리스를 싣자 천장까지 가득 찼다. 사실 옆으로도 공간이 남아 한 개가 더 들어갈 것 같긴 하지만, 굳이 찌그려가며 넣는 건 의미 없을 것 같아 그만뒀다. 천장도 살짝 공간이 남은 상황. 그러나 11개도 아래쪽 매트리스가 무게에 눌렸기에 실을 수 있었다. 만약 눌리지 않는 소재였다면 10개가 한계였을 테다. 아무튼 매트리스 10개가 실린 것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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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사이즈 매트리스 11개가 넉넉히 들어갔다


11개 매트리스, 총 297kg을 싣고 주행에 나섰다. 일단 가속은 거의 거기서 거기다. 분명 느려졌을 테지만, 우리네 포터가 짐 잔뜩 실어도 무심하게 나아가듯 마스터 역시 300kg 정도는 콧방귀도 안 뀌고 나아간다. 대신 승차감은 사뭇 다르다. 요철을 넘으면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들던 마스터가 한결 차분하게 도로를 붙든다. 빈 차 상태가 트럭 같았다면, 짐을 실은 후엔 빈 승합차 타는 기분이랄까. 약 300kg으로 눌러주니 탄탄한 리프 스프링과 댐퍼가 이제야 균형 있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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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 공간은 2.5t급 화물차 부럽지 않다. 스티어링 칼럼이 운전자 다리 사이로 지나가지 않아 한결 편하다.


시승을 마치고 매트리스를 내리는 데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사실 배송 이렇게 안 해요. 스프링 없는 라텍스 매트리스이기 때문에 진공으로 포장하면 혼자서도 배송할 수 있어요.” 이에 ‘그럼 그렇게 한번 실어봅시다!’라고 선뜻 답해버렸다. 포장된 상자 크기는 가로, 세로 300mm, 높이 1020mm. 네모난 적재함에 테트리스하듯 차곡차곡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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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 30cm, 높이 102cm 상자가 63개 들어갔다.  


6개를 1열로 세워 4줄 정도 쌓은 후 위에 또 눕혀서 2층을 더 쌓을 수 있다. 그렇게 무려 63개의 매트리스가 한 차에 실렸다. 무게는 1,701kg. 상자 무게 빼고도 이미 과적이라 주행은 하지 않았다.

공차 상태로, 또 짐을 싣고, 그리고 촬영까지 소화한 누적 주행거리는 총 277.8km. 연비는 트립 컴퓨터상 8.5L/100km로 표시됐다. 즉 L당 11.7km를 달린 셈이다. 이 거대한 상용차 연비가 대단하다. 아마 신경 써서 달린다면 더 좋은 연비를 기록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공인 연비는 L당 10.8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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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튀어나온 엔진룸이 든든하다


마스터는 1980년부터 유럽 상용차 시장을 주름잡아온 내공을 여실히 보여줬다. 11개 매트리스를 품을 정도로 실용적이면서도 승차감까지 쾌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을 빼놓을 수 없다. 세미 보닛 구조 차체와 차선이탈방지장치 등 안전장비는 캡 오버 방식 국산 상용차에 비할 바 없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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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사이드미러로 부족했는지 밑에 볼록한 거울로 사각지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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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에 달린 보조브레이크등이 제동 상황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값은 2,900만원. 수입 상용차로서 파격적이지만, 1,000만원 이상 저렴한 1t 탑차에서 실 구매자 시선을 뺏어오긴 어려울 수 있는 값이다. 그러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그 1,000만원에 운전자의 목숨이, 또는 무릎이 달려있다. 쉽지 않겠지만 마스터가 후진적인 국내 상용차 시장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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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취재협조 코르크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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