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시승기 9회] 역사적인 하우스 파티
2018-12-17  |   43,739 읽음

롱텀 시승기 8회 다시보기


역사적인 하우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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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언맨 3’에서 토니 스타크는 악당과의 결전을 위해 자신의 아이언맨 수트를 원격으로 총출동시키는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이라는 필살기를 선보인다. 비록 내게는 인공지능 비서도, 최첨단 수트도 없지만 여러 대의 애마는 있다. 자동차생활 편집부와 동료들의 힘을 빌려, 역사적인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을 발동시켰다.


한국에서는 한 집에 차 여러 대가 있는 게 흔치 않다. 최근에야 용도에 따라 세컨드카를 들이거나 가족 구성원이 각자 자가용을 한 대씩 운행하는 집들이 늘어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집과 더불어 하나뿐인 가족의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특히 필자처럼 세 식구가 차 다섯 대를 보유 하는 경우는 정말 보기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도 “어쩌다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차와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일관성이라곤 요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조합이니!

“그렇게 차가 많으면 힘들지 않아?”라는  질문도 종종 듣는다. 맞다. 힘들다. 1만km 또는 1년 중 선도래 시기에 엔진오일을 교체하는데, 1년에 적어도 오일 교환만 대여섯 번을 받아야 하고, 오래된 차들은 2년마다 정기검사도 돌아온다. 자동차보험도 다섯 번 갱신해야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주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차대수가 제한적인 까닭에 3대만 댈 수 있다. 나머지 2대는 멀리 떨어진 다른 주차장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5대의 차가 한 자리에 모이는 광경을 여지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가족인데, 한 자리에 모이지도 못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래서 해가 넘어가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 가족사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둘 뿐인지라 자동차생활 편집부와 친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차들을 가지러 열심히 떠돈 끝에, ‘드래곤볼’을 모으듯 다섯 대를 가까스로 한 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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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선물을 준 자동차생활 편집부와 포토그래퍼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가족의 역사가 담긴 쏘나타와 제네시스 쿠페

이번에 모인 차는 1998 현대 EF쏘나타, 2008 현대 제네시스 쿠페, 1998 BMW 540i, 2001 푸조 206, 2018 푸조 208이다. 해치백 둘, 세단 둘, 쿠페 하나다. 이 중 쏘나타와 제네시스 쿠페, 208은 집 주차장에, 나머지 2대는 다른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그러니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결코 녹록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고 정이 많이 든 건 EF쏘나타다. 98년식이지만 우리 집에 온 건 2001년쯤으로 기억한다. 반짝이는 화이트 펄 컬러에, 당시에는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찾기 힘든 수동변속기가 달려 있다. 거기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최적화된 세팅으로 제법 운전이 재미있는 패밀리 세단이다.

쏘나타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건 가족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버텨낸 전우(戰友)이자, 내게는 생애 첫 차라는 기억 때문이다. IMF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 쏘나타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돼줬다. 유년기에는 뒷좌석에, 학생 때는 동승석에, 그리고 성인이 돼서는 차를 물려받아 운전석에 타면서 많은 정을 붙였다. 첫 차로서 운전과 차량관리의 즐거움을 알려줬다. 내게는 삶의 영역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었기에 여전히 고마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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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정이 많이 든 쏘나타. 한때 폐차도 고려했지만 차마 보낼 엄두가 안 난다


그런 쏘나타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제네시스 쿠페를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왕년에 카 레이서였던 아버지가 “인생은 짧다”는 광고 문구에 홀려 큰 맘 먹고 바꾼 차였다. 아버지가 제네시스 쿠페를 사겠다며 내무부장관(?)인 어머니에게 한참 차의 필요성을 피력할 때, 저 차를 사면 쏘나타는 자연스럽게 내 차가 되리라는 생각에 나도 아버지 편이 돼서 어머니를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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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접어든 아버지는 여전히 300마력짜리 스포츠 쿠페를 즐겁게 타고 다닌다


이 둘은 발 빠르고 운전이 재미있는 스프린터들이다. 쏘나타는 최고출력이 140마력에 불과하지만 서스펜션과 차체보강, 엔진 헤드포팅과 밸런싱 등 튜닝을 거쳐 다듬었다. 에다가 변속기 기어비를 조정하고 종감속기어도 교체해 여느 스포츠 카 못지않은 짧은 기어비를 갖췄다. 비록 몸집이 있지만 날 것 느낌의 거동은 제법 즐겁다. 제네시스 쿠페 역시 3.8L 자연흡기 엔진이 얹혀 당대 국산차 최강의 성능을 냈던 만큼, 여전히 우렁찬 배기음을 내며 번개처럼 달린다. 이 둘은 각각 우리 집에서 17년간 가족과 함께 걸어온 소중한 식구들이다.


황금빛 고속도로의 제왕, BMW 540i

나의 ‘콜렉션’ 중에서도 가장 자부심을 갖는 차를 꼽자면 단연 540i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영입하게 된 540i는 2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황금빛의 자태를 뽐낸다. 게다가 다운사이징 시대를 역행하는 자연흡기 V8 엔진이 얹혀 있어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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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얼굴마담이자 희소가치 높은 콜렉션, E39 540i


이 540i는 미국에서 넘어왔다. 아버지의 지인이 미국에서부터 타던 차를 한국에 이삿짐으로 들여왔는데, 다시 외국으로 이주하면서 차를 아껴줄 새 주인을 구하셨고,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이 차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보다 멋스러운 외모다. 국내에서는 정식 판매되지 않아 극히 드문 샴페인 골드 톤의 캐시미어 베이지 컬러, 그리고 베이지 인테리어가 적용돼 있다. 지극히 미국적인 컬러 조합이다. 튀지 않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컬러 덕에 어디서나 빛이 난다. BMW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E39답게 현대적인 BMW의 디자인 아이덴티티―호프마이스터 킥, 엔젤 아이, 후방 LED 포지셔닝 램프 등―를 정립한, 간결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모습은 세월이 무색하게 세련됐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게다가 285마력을 내는 V8 4.4L 엔진은 더욱 특별하다.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은 이미 멸종위기종이다. BMW의 장기는 직렬 6기통이라지만, 그럼에도 당대 5시리즈 최상위 모델이었던 540i는 분명 6기통과는 다른 묵직한 감각을 뽐낸다. 고속 크루징에서 긴 차체와 넉넉한 토크로 엄청난 안정감과 쾌적함을 선사하는데, 끔찍한 연비만 아니라면 장거리 주행은 항상 이 차로 하고 싶을 정도다. 내게는 고속도로 운전의 즐거움을 알려준 차이기도 하다.

쏘나타를 통해 자동차를 직접 손보고 가꾸는 재미를 처음 배웠다면, 540i는 더 나아가 복원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몇 가지 소소한 튜닝이 돼있지만 순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년 전 아우토반에서 담금질한 비즈니스 세단을 그 시절 그 느낌 그대로 되살리는 건 운전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또 이 차를 통해 한국에서 올드카를 타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필자에게는 카 라이프의 큰 전환점이 됐다.


일상을 함께하는 푸조의 가치와 헤리티지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일상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차는 푸조 208이다. 어느덧 차를 구입한지 11개월이 지났고, 누적 주행거리는 2만4,000km를 돌파했다. 여전히 1리터당 20km 이상의 뛰어난 연비와 경쾌한 주행감각으로 데일리 카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또 롱텀 3회에서 다뤘던 206 역시 차를 보관해주고 있는 친구의 데일리 카로 부지런히 운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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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은 자주 타지 않지만 친구의 관리로 팔팔하게 돌아다닌다


일견 용도나 컨셉트가 겹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차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208은 필자의 연비 좋은 데일리 카로, 제네시스 쿠페는 아버지의 데일리 카로 쓰인다. 쏘나타는 넉넉한 공간의 장점을 살려 아버지의 짐차로 쓰이고, 가끔 수동이 그리울 때나 서킷 주행을 할 때 함께한다. 540i는 소장을 위해 끊임없이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인데,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올드카 모임에 참석해 드라이브를 떠날 때 가끔씩 주행한다. 굳이 애매한 녀석을 꼽자면 206이지만, 귀여운 외모와 더불어 ‘국내 1호차’의 가치를 지닌 만큼, 조금씩 손보며 재미있게 탈 생각이다.

특히 206과 208은 한 핏줄을 계승하는 형제라는 데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번 촬영에서 처음으로 두 대의 차가 함께 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일상 속에서 변함없이 작고 실용적인 차를 추구하는 208과 206의 헤리티지가 새삼 뜻 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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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자주 타는 건 역시 208이다. 작은 차체지만 경제성과 실용성 모두 발군!


3인 가족이 5대의 차를 운용하는 걸 이해하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고정비용이 나가는 게 자동차인데, 아깝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나름의 가치를 지닌 근사한 애마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자동차 마니아로선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특별한 가족 모임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각각의 차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샘솟았다.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카 라이프를 쭉 이어나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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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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