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답다, 팰리세이드
2018-12-31  |   60,107 읽음

현대차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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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구석에만 집중했다. 놀랍도록 실용적이다.


팰리세이드 시작 가격은 3,475만원. 가장 비싼 시승차도 4,904만원으로 5천만원이 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비는 동급 SUV 맨 앞에 설만큼 가득하다. 국내 대형 SUV 고객이 바라는 것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집중한 결과. 참 현대차답다.


넓디넓다

일단 크다. 길이 4,980mm로 역대 국산 SUV 중 가장 긴 건 물론, 가슴 높이까지 끌어올린 보닛과 길쭉이 내뺀 뒷 오버행이 어우러져 풍채가 좋다. 고래 등 같은 차를 꿈꿔온 우리네 취향을 꿰뚫는 모양. 여기에 과감한 디테일이 큰 덩치를 심심찮게 꾸민다. 네모난 패턴이 굵직굵직 솟은 그릴은 미제 트럭이 떠오르고, 모서리마다 붙은 세로형 램프는 차가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더한다. 참고로 앞 램프 사이 주간주행등을 잇는 조그마한 점은 ‘주간주행등이 6cm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는 국내법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넣었다고. 수출형엔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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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패턴이 돋보이는 그릴과 헤드램프. 3개의 프로젝션 렌즈가 들어간 램프는 위 두 개가 하향등, 아래 한 개가 상향등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안팎이 속 시원하다. 밖을 보면 남을 내려다보는 시야와 큼직한 사이드미러가 시원스럽고, 안은 수평으로 길게 뻗은 스타일이 널찍하다. 특히 시승차는 밝은 웜그레이 내장재와 차분한 색감의 나무장식(비치우드)으로 꾸며져 분위기가 더욱 화사했다. 조금만 손대도 금세 더러워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말이다.

운전대 가운데 거대한 현대 엠블럼을 빼면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차분하다. 버튼과 화면 등 넥쏘가 그랬던 것처럼 네모반듯하게 정리했다. 버튼을 누르는 느낌과 소재 질감도 무난한 편. 다만 나무무늬 장식은 보기엔 좋지만 만져보면 살짝 가짜 티가 난다.

백미는 뒤다. 운전석에서 뒤를 바라보면 멀찍이 떨어진 공간이 펼쳐진다. 얼마나 넓은지 뒷좌석 승객과 대화하기 위해 스피커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후석 대화모드 기능을 넣었을 정도. 2열은 플래그십 세단 부럽지 않게 머리와 다리 공간 모두 넉넉하고 3열은 여유롭진 않지만 키 177cm 기자가 앉았을 때 어디하나 닿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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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욕심이 과한 거울 위 방향지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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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에 붙은 은색 장식에 은은한 붉은 빛이 들어온다. 콘셉트카 분위기를 내는 포인트다


이렇게 3열을 다 펴면 트렁크 공간은 거의 없는 게 보통. 그러나 팰리세이드는 덩칫값을 한다. 시트를 모두 펴고도 웬만한 승용차보다 큰 509L 공간이 남고, 3열을 접으면 1,297L, 2열까지 접으면 무려 2,447L 짐칸이 펼쳐진다. 트렁크 문짝부터 앞 시트까지 거리가 2,184mm에 달하기 때문에 뒤에 이불 펴고 자도 될 만큼 넓디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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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인치 모니터가 큰 덩치만큼이나 널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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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통풍 시트라니! 현대 플래그십 SUV답다


1열에서  

내심 3.8L 가솔린이길 바랐건만, 시승차는 2.2L 디젤이 준비됐다. 이 덩치에 빈약한 4기통이라니 출발 전부터 실망에 잠겨있는데, 정숙한 공회전이 기대를 되살린다. 가솔린이라 해도 믿을 만큼 떨림 하나 전하지 않고, 방음도 확실하다. 소음방지 카펫과 앞 차음 유리(윈드쉴드, 1열 옆 유리창) 등 소음을 꼭꼭 틀어막았다더니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 나중에 한참 달리고 난 뒤엔 공회전 진동이 처음보단 거칠어졌다.

움직임 역시 느긋하다. 2,020kg 덩치가 낭창한 서스펜션을 진득이 누르며 노면 위를 흐르듯 달린다. 마치 큼직한 보트에 앉은 기분이랄까. 더욱이 앞뒤 바퀴 거리가 2,900mm에 달해 높은 과속방지턱을 만나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걱정스러웠던 힘은 1,750rpm부터 45.0kg·m 최대토크를 일찍이 끌어내 큰 덩치를 제법 가뿐히 내몬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일상적인 주행에선 토크 높은 디젤답게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충분한 힘이 나오지만, 페달을 더 밟으면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 특히 고속으로 달릴 때 또는 추월 가속할 때 202마력 최고출력 한계가 명확하다. 약 시속 130km 이상 고속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동승자가 급가속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 물론 함께 즐기는 패밀리카로서 큰 흠은 아니다. 소중한 가족 태우고 페달을 짓이길 일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가족 몰래 과속하는 데는 문제없을 듯하다. 길쭉한 휠베이스와 무게감이 어우러진 고속 안정감은 싼타페를 한참이나 웃돈다. 특히 잘 틀어막은 방음에 더해, 스피커로 반대 위상 음파를 내 엔진 소음을 죽이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능이 들어가 고속 소음도 적은 편. 무뎌진 속도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과속하다 몇 번이나 속도를 줄였다.

첨단 주행보조 장치는 현대 SUV 정점인 만큼 모든 게 들었다. 내비게이션 정보까지 반영해 고속도로에서 반자율주행이 가능한 고속도로 주행 보조 기능, 차로 중앙으로 달리는 차로 유지 보조 기능 등 다른 현대차가 그렇듯 흠잡을 데 없이 정확히 작동한다. 

새로이 험로 주행 모드를 더한 것도 포인트. 랜드로버가 약 15여 년 전 선보인 터레인 리스폰스와 비슷한 장치로 눈길, 모랫길, 진흙 길 세 가지 주행 모드에 따라 엔진 반응, 변속 시점, ESC(전자식 주행 안정화 컨트롤) 반응, 사륜구동 동력 배분을 제어한다. 예를 들어 큰 힘이 필요한 모랫길에서 사륜구동이 뒤쪽으로 동력을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저속 기어를 더 오래 물고 있는 식이다. 다만 일반적인 스프링과 댐퍼가 달린 탓에 랜드로버처럼 바닥 높이를 들어 올리거나 댐퍼 감쇠력을 조정하지는 않으며, 지형을 알아서 파악하는 자동 기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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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리세이드 엔진룸. 초라하게 적혀있는 16V가 24V로 바뀌길 바라본다


2·3열에서

넓은 공간을 내세운 패밀리카이기에 2열과 3열도 주행 중 앉아봤다. 먼저 2열. 시승차는 7인승 모델이라 2열에 두 명이 앉는 독립 시트가 달렸다. 앉는 자세나 공간, 시트 쿠션은 1열이 전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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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으로 꾸민 구성과 차분한 색감이 어우러진 실내  


승차감도 휠베이스 안쪽에 자리해 무난하고 네모난 옆유리와 큼직한 천장 통유리 덕분에 개방감도 좋다. 통풍과 열선, 2열 독립 제어 공조장치 등 풍부한 편의장치 역시 강점. 다만 팔걸이가 너무 작아 거만한 사장님 자세로 앉을 수 없고, 각도 조절이 안 되어 등받이를 눕히면 같이 치솟아 오르는 건 흠이다. 개인적으로 팔걸이 하나 때문에 3인승 시트를 고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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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시트는 넓고 편안하다. 초라한 안쪽 팔걸이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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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은 어쩔 수 없는 3열이다. 공간은 부족하지 않으나 자세가 불편하다


3열은 키 177cm 기자가 어디 하나 닿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앉아 장거리 여행을 하라면······ 글쎄, 차라리 버스를 타겠다. 일단 높은 바닥 때문에 무릎 구부리고 앉아야 해서 금세 다리가 저리다. 더욱이 뒷바퀴 바로 위라서 조금의 충격에도 위아래 움직임이 크다. 전동으로 등받이가 조절되고 전용 컵홀더와 USB 포트를 마련한 건 놀랍지만, 역시 3열은 성인 남성이 오래 타기엔 무리다.


고급 SUV 아닌 대형 SUV

현대차가 마련한 시승코스는 경기도 용인에서 여주를 오가는 구간으로 편도 총 69.6km를 달렸다. 국도 약 20% 고속 80%를 달린 후 트립 컴퓨터 연비는 L당 9.9km. 성인 남성 네 명과 촬영 장비를 싣고 달렸으나, 고속 주행 위주로 달린 걸 생각하면 효율은 기대 이하다. 출발 후 국도를 잠깐 달릴 땐 그리 빨리 달리지 않았음에도 평균 연비가 5.5km/L로 표시돼 덩칫값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참고로 공인 복합 연비는 11.5km/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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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식 변속 버튼과 험로 주행모드가 마련됐다. 이 차로 험로 주행모드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


현대 팰리세이드는 기계적으로 ‘우와’ 할만한 구석은 없다. 그저 현대가 기존 기술을 잘 조합하고 국내 시장 취향을 충실히 따라 만든 실용적인 SUV다. 사실 느긋이 즐길 대형 SUV에 고성능 엔진이,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알루미늄 섀시가, 전자제어 댐퍼가, 또는 뒷바퀴 조향 기능 같은 게 값어치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이보다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 풍부한 편의장치, 고급스러운 실내가 국내 시장에서 더 중요한 건 두말할 필요 없는 소리다. 팰리세이드는 이에 집중했고, 합리적인 값으로 등장했다. 현대의 계산은 적중했을까? 이미 2주 만에 2만대가 사전 계약되는 등 초기반응은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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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지수 기자 

사진 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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