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시승기 10회] 제주에서 즐기는 프렌치 로드트립, 푸조 208
2019-01-08  |   35,96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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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텀시승기 제 10회 푸조208 GT LINE

제주에서 즐기는 프렌치 로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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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아침이 썩 을씨년스러워진 지난 11월, 오랜만에 제주에 다녀왔다. 미세먼지에 시달리다가 제주에 사는 지인이 보내준 푸른 하늘 사진에 홀린 까닭이다. 다음 주에 제주도로 떠나리라 마음먹자마자 항공권과 푸조 제주 렌터카를 예약했다. 이 글이 책에 실릴 때면 이미 한겨울이겠지만, 아직 따뜻했던 제주에서의 로드트립을 되짚으며 추운 몸과 마음을 달래보고자 한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유독 제주와는 인연이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초등학생 시절 한 번, 그리고 대학생 때 한 번 다녀온 게 전부다. 아무래도 국내 여행은 내 차를 타고 다닐 때가 많은데, 제주에 내 차를 끌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매번 “다음에 가지 뭐” 하고 미루기 일쑤였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제주 앓이를 한 데에는 날씨 탓이 컸다. 지독한 가을 미세먼지에 (비록 나도 디젤차를 타면서 미세먼지에 일조하고 있지만) 눈물 콧물 쏙 빼며 시달리다 보니 포근한 날씨와 파란 하늘 생각이 났다. 때마침 제주에 사는 지인이 사진을 보내왔는데, 먼지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게 아닌가? 당장 남은 연차를 세어보고 3박 4일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나 홀로 제주 여행이 시작됐다.


제주에서도 푸조를 타 보자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제주 여행의 대세는 렌터카다. 혼자 여행 가면 그저 저렴한 경차를 빌릴 법도 한데, 기왕 혼자 기분 내러 가는 것, 좀 더 특이한 차를 타고 싶었다. 때마침 제주에서 영업 중인 푸조 렌터카가 떠올랐다. 비록 내 차를 끌고 가진 못하지만, 제주도에서도 안 타본 차를 빌려서 타볼까?

푸조 제주 렌터카에서는 푸조, 시트로엥, DS 거의 모든 모델을 빌릴 수 있다. 전 차량이 출고 후 1년 이내, 전 모델 디젤이라 차량 컨디션도 양호하고 연비가 좋아 로드트립에 적합하다. 혼자 다니니 큰 차는 필요 없고, 소형차 중에 무얼 빌릴지 살펴봤다. 내 차와 같은 푸조 208, 소형 SUV 2008과 시트로엥 C4 칵투스, 그리고 DS 소형차 DS3가 있었다. 그중에 마음을 사로잡은 건 DS3 카브리오다. 날씨 좋은 제주에 왔으니 뚜껑 열리는 차를 타고 싶었다. 제대로 된 컨버터블은 아니고 캔버스탑 해치백이지만, 컨버터블 절반 값에 그럭저럭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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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이미 DS3 신형이 나온지라, 인테리어는 다소 구식


푸조 오너로서 얻는 이점은 또 하나 있다. 바로 보유고객 할인이다. 보유고객에게는 차량 대여료의 20%가 할인된다. 단, 보험료가 아닌 대여요금에 대해서만 할인되기 때문에 큰 폭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용해 볼 만하다. 또 동호회 카페 등지에서 렌터카 사용권과 호텔 숙박권이 결합한 쿠폰도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푸조 렌터카를 써 볼 생각이라면 참고하자.

어쨌든 이번 여정의 파트너는 DS3 카브리오로 정했다. 208과는 형제지간이라 조작법 같은 건 익숙하다. 보험료를 포함한 총 대여비용은 메이저 렌터카 회사의 중형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라 기분 내기에 무리한 금액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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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빌린 DS3 카브리오는 208 형제 모델이다. 차체는 물론 동력계까지 같다


목적지보다 여정이 즐거운 로드트립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낯선 곳을 노닐며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다. 그저 차를 타고 제주의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나흘 내내 쨍한 햇살에 한낮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어도 되는 날씨도 좋았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제일 먼저 하는 건 DS3 카브리오의 캔버스탑을 열어젖히는 것. 덥건 춥건 여정 내내 차에 타면 무조건 지붕부터 열었다. 매일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일한 삶에 대한 반동심리일까?

또 하나 준비물은 음악이다. 제주에 가기 하루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탓에 머릿속에는 온통 퀸의 노래와 올드 팝송들이 맴돌았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를 그 노래들로 가득 채웠다. 머리숱을 살랑살랑 흔드는 가을바람과 아름다운 제주의 해안도로, 그리고 추억의 명곡들까지. 흥이 절로 나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DS3 카브리오는 장단이 뚜렷했다. 맘에 드는 건 역시 캔버스탑. 루프를 통째로 열어젖혀 온갖 시선을 모으는 컨버터블처럼 과하지 않으면서도 선루프만 여는 것보단 훨씬 개방감이 좋다. 이를테면 소심한 컨버터블이라고 할까? 레일을 따라 여닫히는 캔버스탑 구조 덕에 고속 주행 중에도 곧장 루프를 여닫을 수 있는 점도 좋다. DS 브랜드 특유의 전위적인 디자인도 어딜 가나 빛을 발했다. 렌터카로 받은 차가 LED 헤드램프가 달린 풀-옵션이었다면 더 예뻤을 텐데.

하지만 이 차를 렌터카가 아닌 데일리카로 타기엔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뒷유리까지 차곡차곡 접히는 구조 탓에 트렁크 공간은 캐리어와 보스턴 백 하나를 겨우 실을 정도로 좁고, 탑을 열어젖히면 룸미러를 전부 가려서 후방 시야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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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이도 좁은 트렁크. 28인치 캐리어가 아슬아슬하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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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탑을 열면 차곡차곡 접혀 룸미러를 전부 가린다


가운데 팔걸이가 없어 오래 운전하면 불편하고 앉는 자세 역시 몸에 익은 208보단 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변속기 기어비가 아쉬웠다. 208보다 훨씬 운전 자세가 낮고 단단한 서스펜션을 갖춰 역동적인 주행감각을 기대했지만, 늘어지는 기어비 탓에 가속이 형편없었다. 도로 흐름에 맞추려면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연비도 나빴다. 하체 세팅에 맞춰 기어비를 짧게 조율했으면 훨씬 재밌게 탈 수 있었을 텐데 영 아쉽다.


제주에 간다면 컨버터블을 타 보자

차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제주는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무 생각도 안 하며 달려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애월에서 출발해 한림, 협재를 지나 신창, 고산, 영락에 이르는 아기자기한 해안도로를 놀멍쉬멍 달렸다. 햇살이 좋은 곳에 잠시 차를 대면 나만의 전용 일광욕장이 됐다.

밤에는 또 어떤가, 인공조명 없는 어둠 속에 차를 세워놓고, 지붕을 연 뒤 시트를 젖히면 서울에서 보기 힘든 별들이 쏟아졌다. 추운 가을밤에도 히터를 켜고 차 안에 있노라면 벌벌 떨지 않고 별을 볼 수 있었다. 아아, 이 맛에 컨버터블을 타나 보다. 완전히 열리지 않아도 이렇게 좋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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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점을 씻어주는 뛰어난 개방감! 이것 때문에 이 차를 빌렸다


DS3 카브리오로 맛만 봤지만 한참이나 컨버터블 앓이를 했다. 다음에 제주에 다시 올 때는 좀 더 제대로 된 컨버터블을 타 봐야겠다. 제주를 여행할 일이 있다면 조금 웃돈을 주더라도 컨버터블을 타 보자.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서울에서 뚜껑을 열어봐야 얼굴만 새까매지지만, 한가로운 제주의 도로에서 햇살을 느끼기엔 이만한 게 없구나 싶다. 기왕지사 현실을 벗어나 여행한다면 로망을 제대로 이뤄보자. 물론 통장이 좀 쓰리겠지만 그건 다음 달의 내게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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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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