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시승기 제 11회] 푸조208 GT LINE, 1년간의 롱텀을 마무리하며
2019-03-15  |   79,88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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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텀시승기 제 11회 푸조208 GT LINE

1년간의 롱텀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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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이제 208에서 비닐을 막 벗겨낸 신차의 설렘은 사라지고 일상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됐다. 2018년 3월호부터 써 내려 온 롱텀 리포트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결코 흔한 선택이 아니었던 내 생애 첫 신차, 푸조 208과 함께 한 1년을 되짚어 본다.


“고객님의 자동차 보험 만기가 도래하였으니 보험료를 조회하신 후 만료 전 갱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연말 집으로 날아든 우편물 한 통이 새삼스러웠다. 기십만 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벌써 생애 첫 신차인 푸조 208을 구입한지 1년이 지났다는 데에 깜짝 놀랐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진짜였나 보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208을 구입한 이유는 명료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연비 좋은 차가 필요한 게 가장 컸다. 하지만 남들 다 타는, 지하주차장에서 내 차 찾아가기도 힘든 흔한 차는 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여러 번 시승해봤던 푸조 특유의 주행질감이 마음에 들었고, 강렬한 내·외관 디자인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이었다. 결국 현실적으로 조금 더 합리적인 차와 내 마음이 끌리는 차 중 고심한 끝에 후자를 선택했고, 그게 바로 20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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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누적 주행거리는 2만9,800km로, 가뿐히 3만km가 넘으리라던 예상보단 적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208의 맛

그렇다면 208은 나의 까다로운 기대치를 충족시켰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Yes’다. 하루 왕복 70km에 달하는 출퇴근길에서 사시사철 평균 20km/L 이상의 연비를 유지해줬다. 생전 연비운전 따위는 모르고 내 멋대로 운전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착한 연비는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1년간 사용한 총 유류비는 180만원 가량으로, 기존에 타던 BMW 540i로 같은 거리를 달렸다면 최소한 4배 이상의 기름 값을 썼을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연비 좋은 차를 타면서 라이프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지만 지난해에는 매달 쉬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부산을 왕복해도 기름 값이 6만원밖에 들지 않으니 국내에서 장거리 여행을 다녀도 부담이 없다. 1.6L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00마력에 불과하지만 고속도로든 산길이든 큰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고, 도리어 낮은 출력 덕에 빠른 도착보다는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는 드라이브의 맛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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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되자마자 윈터 타이어를 끼웠는데, 올 겨울엔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연비보다 더 만족도가 높았던 건 운전 재미다. 연비 좋은 차와 운전 재미라니, 이율배반적인 것 같지만 208은 분명 그런 차였다. 전장 4m도 되지 않는 작은 차체, 직결감이 뛰어나고 기어비가 촘촘한 수동 기반의 MCP 변속기, 묵직한 저속 토크로 낮은 출력을 보완하는 디젤 엔진의 절묘한 조합 덕에 지난 1년 간 따분한 통근 길에 운전의 즐거움을 잊지 않게 해줬다.

예쁘장한 외모는 또 어떤가! 평범한 회색이었지만 강렬한 디자인과 곳곳에 들어간 GT라인의 포인트 덕에 어딜 가나 예쁘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푸조의 상징적인 i-콕핏이 처음 적용된 차인 만큼 미래적이면서도 사용하기 편한 인테리어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질리지 않는다. 더구나 11월에 펌웨어 업데이트를 받은 뒤로 애플 카플레이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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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경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애플 카플레이가 활성화됐다!


단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비싼 돈 주고 산 내 차라 예쁜 구석만 보게 되지만, 1년 간 차를 운용하면서 단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일 게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차 또한 없으니 말이다.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잡소리다. 208보다 더 오래되고 주행거리도 많은 지인의 국산차를 타 봐도 208보다는 잡소리가 적었다. 물론 저렴한 B-세그먼트 소형차에, 트렁크와 실내 수납공간에 온갖 잡동사니를 바리바리 싣고 다니면서 잡소리를 논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하지만 다른 회사 차에 비하자면 크고 작은 잡소리가 곳곳에서 끊이질 않는 마감품질은 아쉽긴 하다.

감가상각도 무시할 수 없다. 푸조, 그것도 비인기차종인 208의 시세는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수준이다. 지금 당장 208을 내다 팔아도 남은 할부금을 변제하기조차 쉽지 않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한불모터스의 인증중고차 사업부에서는 주행거리가 짧고 상태 좋은 전시차나 시승차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고 있다. 제조사가 시세를 무너뜨리면 제값 주고 산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게 된다. 되팔 때 제값을 받지 못하는 차를 신차로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는 없다.

브랜드에서 이렇다 할 오너십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같은 돈을 주고 다른 회사 차를 산 사람들은 종종 고객 행사나 이벤트에 초대받기도 하는데, 푸조에서는 지난 1년간 오너들의 충성심을 자극할 만한 행사를 연 적이 없다. 신차발표회 초대라든지, 새로 지은 박물관 견학 기회를 준다든지, 하다못해 푸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도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브랜드 로열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구매 이후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오너들에게 푸조의 지향점과 가치를 소개하고, 브랜드 가족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누구에게나 푸조를 추천하지 않는다

1년 동안 남들이 사지 않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질문도 제각각이라 가격, 연비, 승차감, 실용성 등등 주변 사람들은 낯선 차에 대한 수많은 궁금증을 나를 통해 해결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역시 “푸조 차는 어때?”라는 질문이었다.

솔직히 푸조를 타면 ‘다른 것’들이 너무 많다.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주행감각이나 설계 사상, 퍼포먼스와 실용성 등 여러 부분에서 독일이나 미국차 감성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이 쉬 납득할 수 없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태평양처럼 넓은 수납공간과 단단한 서스펜션, 광활한 실내공간과 통풍시트에 익숙한 소비자라면 푸조를 타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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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다른 브랜드가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푸조만의 매력 포인트 역시 확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나 명쾌하고 즐거운 주행 질감과 쫀득한 하체, 센스가 돋보이는 디테일과 사용하기 편리한 탑승자 중심 설계, 회색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개성까지. 이 매력에 공감할 수 있다면 푸조보다 좋은 차는 없다. 규모는 작지만 친절하고 꼼꼼한 서비스 센터와 저렴한 부품 값은 덤이다.

그래서 푸조가 어떻냐는 질문에 나는 “무조건 사라고 추천할 수는 없어. 하지만 푸조에 꽂혔다면 고민하지 말고 당장 계약서 쓰러 가.”라고 답한다.

지난 1년간 208의 가치를 몸소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이 차의 매력에 빠져 앞으로도 오랫동안 차를 바꾸지 않고 탈 계획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차를 사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차를 바꿀 때쯤 팔고 있는 가장 멋진 푸조가 아니겠냐고 답할 것이다. 푸조는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 다시 타고 싶어지는 차를 만드는 회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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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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