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코란도, 티볼리와는 다르다
2019-04-01  |   78,175 읽음

SSANGYONG KORANDO

티볼리와는 다르다. 티볼리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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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의 희망, 신형 코란도가 발매되었다. 차대 기준 4세대에 해당하는 차는 과거와의 접점을 찾는 대신 티볼리로 선보인 새로운 패밀리 룩에 머무르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막상 달려본 차의 달리기는 티볼리와는 많이 다르다. 


XAV였다면 좋았겠지만

 ‘코란도’는 역사가 짧은 국산 모델에서 거의 찾기 힘든 해리티지(heritage: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유산)를 가진 브랜드다. 1969년 신진지프로 시작한 이래 단일모델로 26년을 버틴 1세대, SUV 붐에 맞춰 당대의 디자인 아이콘으로 성공을 거둔 2세대는 둘 다 한국 자동차시장에 한 획을 그은 차였다. 덕분에 코란도라는 차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뇌리 속에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그래서 매끈한 도심형 SUV가 되어버린 3세대는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차였다. 어려울 때 회사를 지탱시켰던 차였지만 이전의 코란도와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 때문이었다. 쌍용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2015년 2세대의 이미지를 부활시킨 컨셉트카 XAV는 자신의 유산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에 대한 방향성과 메시지가 또렷하게 담긴 차였다. 이렇게 멋진 레트로 디자인에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일상의 편안함을 담아낸다면, 나 또한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생각을 하던 것이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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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한 SUV 이미지는 후면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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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쌍용차 중 조종성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코란도의 이름을 이어받은 4세대 모델이 데뷔했다. 쌍용은 모험을 택하지 않았다. 굵은 캐릭터 라인을 집어넣어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신형 코란도는 명백하게 티볼리의 디자인 언어를 물려받은 차다. 최대한 성공의 확률을 높여야 하는 입장에서 이미 시장의 인정을 받은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동의한다. 도심형 SUV로서 세련된 모습은 흠 잡을데 없다. 그래도 XAV에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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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인치휠은 최고사양인 판타스틱에서만 선택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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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의 이름도 이제 4세대 째다


커진 티볼리 같은 차일까?

신형 코란도는 현재의 자동차 트렌드를 담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신경을 쓴 차다. 쌍용차로서 최초의 시도가 많이 보인다. 풀 LCD 계기판이나 센터콘솔의 대형 모니터에도 불구하고 그 배치 방식에는 최신 모델의 유니크함이 없다. 급진적인 방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세인 플로팅 모니터 정도는 적용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기능적으로 모자란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계기판은 세련된 디자인과 선명한 해상도 덕분에 보기에 즐겁고, 인포테인먼트는 카플레이는 물론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제대로 지원한다. 특정 브랜드를 앞세우지 않았지만, 오디오는 시판 쌍용차 중 가장 농밀한 사운드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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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모델이지만 대시보드의 구성 방식은 올드하다. 플로팅 모니터만 넣었어도……


아이신제 6단 자동 변속기는 일상 영역에서는 아주 훌륭하지만, 패들시프트를 쓰는 적극적인 운전에서는 반응이 느리다. 2010년 즈음의 현대 & 기아차를 타는 것 같다. 슬슬 8단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준중형에 탑재하기에는 애매한 2.2L 엔진을 대신하는 1.6L 엔진의 첫 인상은 아이들링 소음이 낮다는 점. 동급에 동 배기량 엔진을 얹은 투싼이나 스포티지와 비교해도 처지는 느낌이 없다. 동급 최강의 성능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1.6L 디젤 엔진일 뿐이다. 딱 생각한 만큼 가속되며,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성능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1.5톤이 조금 넘는 차를 움직이는데 모자람이 없는 정도다. 급차선 변경 같이 출력이 필요해지는 상황에서는 가속에 관성이 붙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필요하다. 과거 2.2L 엔진의 애매한 출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출력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결과다. 배기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도입한 요소수(SCR) 시스템이 엔진의 완성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만약 디젤 스캔들이 터지지 않아 LNT(희박질소포집) 방식에 머물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출력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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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과 열선 기능에 럼버 서포트도 기본


출력이 모자라게 느껴지는 이유는 높아진 섀시의 완성도 탓도 있다. 티볼리의 경험은 떨쳐내도 무방하다. 비교하기가 좀 미안할 지경으로 잘 움직인다. 코란도C 대비 115kg 가벼워진 차는 강력한 시장 경쟁자인 투싼과 스포티지와 엇비슷한 수준의 무게가 되었다. 스티어링 휠은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며 도로의 변화에 적응하는 서스펜션의 반응 또한 무척이나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달리는 내내 큰 롤 없이 진득하게 노면에 잘도 붙어 달린다. 특히 고속에서의 범프 처리 솜씨는 정말로 훌륭했다. 쌍용차를 타면서 고속 범프처리를 칭찬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섀시 완성도가 엔진 성능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티볼리의 둔탁한 핸들링은 적어도 역량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고출력 엔진이 탑재되면 전체적인 운동성능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 답력은 이상하다. 제동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끝까지 가서야 제동력이 확 늘어난다.

노브를 돌려 설정하는 주행 모드는 노멀, 스포츠, 윈터 세 가지로, 스포츠에 두면 스티어링휠이 살짝 무거워지면서 액셀 페달의 반응도 약간 빨라진다. 단, 초기 가속이 앞으로 몰리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잘 쓰게 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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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공간은 동급의 통상적인 SUV들 수준. 무릎과 머리 공간은 빠듯함과 여유로움의 딱 중간지점이다


딥컨트롤의 실력 

쌍용차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 능동형 안전 사양은 딥컨트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떤 이유로 2.5세대 자율주행기능이라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이름값은 한다. 중앙유지보조 기능은 차선 양쪽을 핀볼처럼 튕기며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 중앙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며, 가감속과 정지 후 재출발도 능숙하다. 차선을 읽지 못했을 때는 재빨리 포기해 버리므로 이 시스템에 완전히 의존하면 안된다. 전방 긴급 제동은 개입이 좀 빠른 편이다. 차선변경 시 조금이라도 공간이 충분치 않다 싶으면 알아서 급제동을 하려 든다. 

쌍용의 장기인 4륜 구동의 능력은 체험해 보지 못했다. 아이들 스톱&고(ISG)가 2WD에만 들어간다는 이유로 앞바퀴 굴림 시승차만 준비된 탓이다. ISG가 해제되며 시동이 걸릴 때 브레이크 해제가 잽싸게 이루어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가속 페달을 밟으면 마치 오래 방치된 차를 바로 움직인 직후처럼 '텅'하는 소리 와 함께 출발한다. 시승차만의 문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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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트레이를 이용해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이미 세계의 대중차 시장은 흡수 합병을 통해 몸을 불린 초대형 회사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 된지 오래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버티는 쌍용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경쟁사들이 한 해 수백만 대의 차를 찍어낼 동안 쌍용이 지난해 생산한 차는 14만대 남짓.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차도 아닌 일반 대중차를 기술 제휴 없이 엔진까지 직접 개발하고 만든다. 그런게 가능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한계까지 자신을 갈아 넣는 것이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을 통해 조금씩 몸집을 불린다. 이건 쌍용에게 있어서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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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사양에 달리는 LCD 클러스터. 10.25인치의 커다란 화면에 각종 주행정보를 세련된 그래픽으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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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트림의 질감은 저렴하다


새로운 코란도는 전반적인 완성도와 상품성에 있어서 경쟁 차종을 압도할 수 있는 차는 아니다. 하지만 수백만 대를 찍는 경쟁사와도 충분히 싸워볼 만한 상품성을 채워 넣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사람들은 대게 다윗을 응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쌍용의 경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4세대 코란도가 나오기까지

1994년의 일이다. 영국의 로버를 막 합병한 BMW가 맨 처음 착수한 일은 신형 앞바퀴 굴림 플랫폼의 개발이었다. 당시 로버가 가진 거라고는 클래식카 반열에 들어간 미니나 껍데기만 바꾼 혼다차가 전부였던 상황. BMW도 앞바퀴 굴림 플랫폼이 없던 시절이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후륜구동이던 5시리즈 플랫폼을 전륜구동으로 바꾸는 대 공사 끝에 준대형급의 로버75가 탄생한다. 75의 성공적인 런칭이 끝나면 더 작은 세그먼트를 위한 플랫폼 확장계획도 세우지만, 75는 폭삭 망한다. BMW는 단돈 10파운드에 로버를 벤처 컨소시움에 넘긴 뒤 손을 털었다. 새로운 주인은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방만하게 탕진한 뒤 뒤 회사를 산산조각 낸다. 로버가 남긴 유산을 손에 쥐려 경쟁한 것은 두 회사, 중국 난징차와 상하이차였다. 이들의 경합은 결국 상하이차가 난징차를 합병해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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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V 인버터의 스위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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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의 6단 변속기는 무난하지만 동급차들이 8단 이상 다단화를 진행 중인 점은 고려할 때가 되었다


기술과 공장이 있었으니 이걸 흡수해 내 것을 만들겠다는 것이 상하이차의 생각이었겠지만, 어디 세상이 생각대로 되던가. BMW가 손을 떼면서 공백이 생긴 개발작업을 외주처리한 곳은 영국의 레이싱 컨스트럭터 TWR(톰워킨쇼 레이싱). 프로토타입 레이스카나 한정판 수퍼카를 만드는 데는 도가 텄지만 양산차 개발은 생초짜였던 그들은, 개발의 전 공정을 3D 데이터로만 진행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겠다는 전대미문의 개발방식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TWR의 도산이였다. 2002년 TWR이 절단나면서 개발 데이터 대부분이 망실되었고 이것은 로버의 신차 개발 계획이 망했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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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L 디젤 엔진은 딱 스펙상의 출력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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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보조기능을 위해 각종 센서도 추가되었다


만들다가 만 앞바퀴 굴림 플랫폼을 넘겨받았지만, 완성시킬 능력이 없던 상하이차는 갓 인수한 쌍용차를 통해 완성시키려 했다. 쌍용의 개발인력 상당수가 플랫폼 완성에 투입되었는데, 이것이 쌍용에게 꼭 나쁜 일은 아니었다. 프레임 바디 SUV 아니면 족히 30년은 된 후륜 승용차 플랫폼으로 연명하던 쌍용에게 가로배치 앞바퀴 굴림 플랫폼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였다. 그러던 차에 상하이의 개발요구는 하늘에서 드리워진 동앗줄이었다. 상하이차와 사이에서 오만 잡음이 흘러나오던 와중에도 개발작업을 진행해 2008년 C200이라는 이름으로 파리 모터쇼에 선보인다. 그게 코란도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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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이 처음 시도하는 디지털 클러스터는 각종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표시한다. LCD 화면의 장점을 남김없이 활용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게 만들어낸 차는 회사의 풍파를 거치며 예정보다 몇 년이나 뒤에 나올 수 있었다. 제 타이밍을 놓친 차는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 플랫폼은 티볼리를 탄생시켜 대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며, 오늘의 4세대 코란도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로버는 이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쌍용은 끝까지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6월이면 휘발유 터보 엔진의 코란도가 나온다. 모습을 싹 바꾼 롱휠베이스 모델과 전기차가 뒤를 이을 것이다. 

코란도의 재탄생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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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성용 객원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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