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위치로 올라간 디스커버리
2019-04-08  |   26,572 읽음

레인지로버 위치로 올라간 디스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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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SUV 시장 파이가 점점 커지는 상항에서도 레인지로버는 마냥 즐겁지 않다. 롤스로이스, 벤틀리의 공세로‘사막의 롤스로이스’ 타이틀이 위태하다. 돌파구로 모델 라인업을 새롭게 짰다. 레인지로버가 한층 고급화되면서 디스커버리가 예전 레인지로버 위치까지 올라갔다. 


‘사막의 롤스로이스’ 타이틀의 박탈

BMW 그룹에서 롤스로이스 모터스 상표권을 획득한 후 재창조 된 롤스로이스는 몇 년 전부터 SUV가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사막에서 탈 수 있는 진짜 롤스로이스 SUV 컬리넌이 얼마 전 출시됐다. 롤스로이스가 아니면서 롤스로이스 타이틀로 가장 수혜를 본 브랜드는 어디일까. 바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던 랜드로버다. 21세기 이전에도 최고의 명품은 롤스로이스였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제 진짜가 나타났으니 피곤한 일이다. 여담으로 랜드로버가 BMW 그룹 산하에 있었을 때는 서자 취급받으면서 단물만 쏙 빨리고 팽 당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더욱 달갑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브랜드 위상을 따졌을 때 비교할 바 못되지만 다행스럽게도 요즘 랜드로버의 가격정책과 행보를 보면 고급화가 먹히고 있다. 이제 랜드로버도 남부럽지 않은 고급 브랜드다. SUV 시장의 끝없는 확장으로 롤스로이스, 벤틀리,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까지 SUV를 준비하고 있어 랜드로버는 예의 주시 중이다. 랜드로버는 토요타의 렉서스 같은 세컨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레인지로버를 하이엔드 등급으로 올리고 기존 레인지로버 위치는 디스커버리가 담당하는 모양세다.


레인지로버의 뼈대를 이식

현행 5세대 디스커버리는 4세대의 프레임 보디를 버리고 모노코크 보디를 채택했다. 레인지로버의 알루미늄 플랫폼을 도입해 이전 보다 섀시 무게를 460kg이나 감량했다. 모듈러 플랫폼이 대세로 랜드로버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다른 시각으로는 상급 라인 플랫폼을 사용함으로서 향후 디스커버리의 신분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합리적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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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의 시그니처 계단형 루프와, 비대칭형의 테일게이트 부분이 세련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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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보다 가격이 올랐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적정한 수준이다. 그러나 타 메이커는 오히려 신형의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어 디스커버리는 여전히 비싼 축에 든다. 비싸지게 된 이유는 이전보다 좋은 소재들이 대거 사용되었기 때문. 완전 신형 플랫폼을 사용할 차세대 레인지로버 역시 지금보다 가격이 많이 오를 것으로 추측한다. 초호화 브랜드의 SUV 시장 입성을 앞두고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를 더욱 고급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랜드로버 고급 라인이 가격 상승에도 잘 팔리는 것을 보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번에 시승한 올 뉴 디스커버리는 2017년 출시된 디스커버리 5에서 풀 디지털 계기판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나아졌다. 가장 배 아파할 사람들은 지난해 구입한 오너들이다. 2018년형도 똑같은 플랫폼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이 들 수 있으나 2019년형 올 뉴 디스커버리는 엔진 부속품의 내구성 측면에서도 일취월장했다. 흡사 레인지로버의 느낌도 난다. 꼼꼼하게 마무리된 디테일을 보면 이 모델이 결코 레인지로버의 마이너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 디스커버리에서는 느낄 수 없던 고급스러움이 곳곳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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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보디와 최고의 에어댐퍼를 갖추어 여전히 오프로드 강자다 


굿바이 포드, 이젠 재규어-랜드로버 자체 엔진

포드 시절 사용하던 파워트레인은 올 뉴 디스커버리부터 최초로 자체개발한 엔진이 들어간다. 2015년 처음 소개된 인제니움 엔진은 재규어와 랜드로버 라인업의 심장을 빠른 속도로 대체해 나갔다. 최신 모듈식 설계 덕분에 과급기 설계와 세팅에 따라 다양한 출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시승한 디스커버리는 아직 예전 포드 시절의 유산. 대신 많은 부분이 바뀐 신형이다. 과급기를 싱글 터보에서 트윈 터보로 바꾸고 트윈 인터쿨러와 8 노즐 인젝터로 성능과 효율을 개선했다. 덕분에 최고출력, 최대토크가 이전보다 48마력, 10.2kg·m 올랐다. 시속 0→100km 가속 7.5초는 이전보다 0.6초가 줄어든 수치. 거구의 차체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을 보여준다. 아울러 터보 차저에 값비싼 세라믹 볼 베어링을 사용해 내구성을 개선했다. 아이들링 상태에서의 소음은 가솔린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반면에 ISG 시스템은 조금 미숙해 보인다. 국산차의 ISG의 빠른 반응과 1억 원의 값을 감안했을 때 아쉬운 부분이다. 우선 반응이 굼뜨고 오토 홀드가 해제될 때 충격이 있어 매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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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패널 아래까지 감싸는 도어는 승하차 시 오염으로부터 지켜준다. 다만 협소한 주차장에서는 도어 하단 고무 몰딩이 발에 쓸려 훼손이 우려 된다


인도 타타 자동차 산하로 들어가서 전자 장치가 많이 개선을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IT의 강국 인도니까. 반 자율 주행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장치도 달렸다. 하지만 반 자율 주행 수준은 아니다. 보조 장치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움직임이 이질적이고 차선을 매끄럽게 유지시켜주지 못한다. 그냥 사고 예방을 위한 보조 장치로 보면 된다. 운전대에서 손을 놓으면 차선 중앙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좌우로 왔다갔다 움직이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차가 보았을 때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으니 꼭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한다. 


잘 조련 된 북극곰

각 사이드 에지를 둥글린 덕분인지 전폭(백미러 제외) 2미터에 달하지만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이 차가 얼마나 넓은지를 체감하게 된다. 팔이 긴 사람이 운전석에서 손을 뻗어도 동승자의 왼편 가슴에 위치할 정도다. 일단 크기를 실감하고 나니 업데이트된 엔진이라도 민첩함이 떨어지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이 된다. 그런데 막상 엑셀러레이터를 깊숙이 밟으니 곧바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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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1열 공간. 스티어링에 달려 있는 물리버튼을 조작할 때 인식률이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풀사이즈 SUV 특성상 움직임이 그리 민감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차는 달릴 때 여지없이 폭주한다. 자비 없는 전장, 전폭, 전고의 수치임에도 견고하고 가벼운 알루미늄 섀시와 더불어 똑똑한 에어 서스펜션이 어우러져 미식축구 선수 같은 몸놀림을 보여준다. 경이로울 지경이다. 에어 서스펜션이 없는 포르쉐 카이엔 기본형과는 다른 맛이다. 오랫동안 다듬어 온 알루미늄 플랫폼이 랜드로버 최고의 장기인 에어 서스펜션과 어울려 큰 덩치라는 물리적 한계를 손쉽게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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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열의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넉넉하다. 3열은 계단형 루프와 선루프가 더해져 헤드룸이 답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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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지정 도시 공주의 금강을 끼고 있는 국도에서 이 차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 소도시를 가면 노면 상태가 안 좋은 도로를 마주할 때가 있다. 지상고가 낮은 수퍼카라면 프런트 범퍼, 디퓨저, 로커패널 등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 각 도로관리청과 보상 문제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생긴다. 하지만 지상고가 높다면 이런 가혹한 노면 상태에서도 안심이 된다. 게다가 에어 서스펜션이 노면의 충격을 잘 다스려 몸으로 전해지는 부담도 덜하니 일석이조다.  

전륜 더블 위시본, 후륜 멀티링크와 에어 서스펜션의 조합은 시속 120km에서도 환상적인 승차감을 선사한다. KTX 기차 안에서 선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광명역 부근 터널을 시속 290km 이상 달릴 때 진동하나 안 느껴지는 것처럼 불필요한 바운스가 없다. 감히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 승차감과도 견줄 수 있다.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은 장거리 운행에서 피로를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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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 최초의 재규어-랜드로버 자체 엔진. 진동이 이전보다 줄었다


금강을 벗어나 칠갑산의 굽이진 도로에 들어서니 차선이 좁아진다.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차선 가장자리에 가드레일이 바짝 붙어 있어 마주 오는 차라도 있으면 육중한 차체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칠갑산의 유명한 나선형 도로에 올랐다. 이 도로는 상공에서 보면 원형에 가까운 형상에다가 옆은 벼랑이라 매우 아슬아슬하다. 액셀러레이터를 1/3 정도만 밟는다. 가파른 언덕임에도 엄청난 토크의 펀치력으로 북극곰처럼 한달음에 박차고 오른다. 일단 페달을 밟아 킥 다운한 후 엔진 브레이크만으로 차를 제어한다. 막강한 토크를 쏟아내면서도 터보랙을 느낄 수 없었다. 연속적인 코너링에서 서스펜션은 네 바퀴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스티어링은 의도한 만큼 잘 움직여 준다. 똑똑한 전자식 스티어링이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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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디안 트위터는 특히 고음의 노래를 들을 때 황홀하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니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밟을수록 난폭함이 증가한다. 하지만 무절제하지 않고 아주 정교한 난폭함이다. 공력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 덕분에 시속 200km 이상에서도 거침없이 달린다. 제원상의 안전 최고 속도는 209km 표기되어 있지만 기자는 평지에서 시속 215km까지 속도를 내보았다. 긴 휠베이스로 직진 안정성도 좋다. 디스커버리의 서스펜션은 포장도로와 험로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선사한다. 기계적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개발자들의 고뇌가 느껴졌다. 그러나 ISG의 굼뜬 반응과 간혹 똑똑하지 못한 주행보조 시스템 등 열악한 소프트웨어가 점수를 깎아먹는다. 이 부분만 개선된다면 완성도가 많이 높아질 텐데......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거구의 덩치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내는 차는 결코 흔치 않다. 우리에게 축복이며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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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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