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모드의 반대, 레인지로버 벨라
2019-05-31  |   96,625 읽음

레스토모드의 반대

레인지로버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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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2017년 미드 사이즈 SUV로 데뷔했다. 당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호평이 잇따랐다. 컨셉트카가 도로에 뛰쳐나온 것 같은 존재감은 뭇사람들에게 레인지로버의 미래 로드맵을 각인시켰다.


레인지로버 최고의 디자인

벨라의 디자인은 전통과 미래가 공존한다. 벨라는 2017년 등장해 랜드로버 라인업 가운데서 역사가 가장 짧다. 랜드로버는 몇 년 전부터 라인업을 세분화해 프리미엄 시장에 초점을 맞춘 레인지로버 계열을 만들었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성공을 거두자 벨라 프로젝트도 더욱 힘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 이보크와 벨라, 레인지로버 스포츠, 레인지로버가 레인지로버 엠블럼을 달고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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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중 가장 예쁜 벨라. 무채색인데도 존재감을 뿜어낸다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태어난 벨라는 랜드로버의 DNA를 유지하면서도 공력적으로 그 어떤 랜드로버보다 뛰어난 보디라인을 지녔다. EV라 해도 어울릴만한 디자인에 이제는 희소한 수퍼차저를 장착한 레인지로버 벨라 P380 R-다이내믹은 마치 레스토모드(restomod)의 반대 개념 같다. 옛날 차체에 최신 기술을 담아내는 것이 레스토모드라면 이 차는 최신 기술을 옛 랜드로버의 특징으로 마무리했으니 말이다.

최근 레인지로버 디자인은 여성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앙증맞은 미니나 비틀처럼 여성들이 직접 운전하고 싶어하는 차다. 게다가 보기에도 예쁘고 멋진 벨라를 여성이 몰면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비싼 가격 탓에 쉽게 접근하기는 힘들지만 잘생긴 외모와 훌륭한 서스펜션을 경험하면 꼭 갖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다. 시승차는 무채색 도색에 검은 무광 휠이었는데도 주변 시선을 끌어 모았다. 역시 좋은 디자인은 컬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수입차를 탄다고 힐끔거리던 시절은 지났지만 사람의 눈은 역시 비슷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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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에서 만나는 모든 노면을 최고의 에어 서스펜션이 잘 걸러준다 


실내 역시 예쁘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베이지 계열 가죽이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부드러운 질감의 가죽은 역시 이탈리아와 영국이 최고가 아닐까.

디스커버리보다도 나아 보일 정도다. 벨라를 사게 되면 꼭 베이지 컬러의 가죽 옵션을 넣어야 할 것 같다. 시트는 통풍 기능이 들어가 엉덩이와 등받이 쪽에 구멍들이 송송 뚫려있지만 디자인 포인트를 넣어 고급스럽다. 나름 영국 차라고 유니언잭을 표현했는데, 미니 테일램프처럼 노골적으로 티내지는 않아 거슬리지는 않다. 군데군데 흰색 스티치를 넣어 베이지 컬러와 조화를 살렸다.

뒷좌석 역시 고급스럽다. 알려진 것과 달리 레그룸이 좁지 않아 패밀리카로도 적합하다. 2열 시트 포지션은 높은 편이 아니라 SUV 특유의 껑충한 느낌은 없다.

고속으로 달릴 때 탑승객들이 불안하지 않는 것도 시트 포지션이 어느 정도 차지한다고 본다. 2열 역시 노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충격을 댐퍼와 차체가 잘받아주어 장시간 차에 있어도 피로하지 않아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


강력한 V6 수퍼차저 엔진

벨라에는 다양한 가솔린과 디젤 엔진이 있다. 시승차는 가솔린 모델 중 최상급 모델인 P380 R-다이내믹. V6 3.0L 엔진은 수퍼차저가 달려 자연흡기와 같은 반응성에 터보 레그 없이 쾌적하다. 아이들링 시에 약간의 진동은 있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에코 모드에서도 날 선 강력한 배기음이 일품이다.

기본형 벨라와 디자인은 같지만 사운드는 확실히 다르며, 꽤 거친 음색이 매력이다. 회전수를 상승시키면 스포츠카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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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트림이라는 걸 확인할수 있는 유일한 레터링


SUV 외모를 제외하면 이 차의 성향은 고급스러운 스포츠카에 가깝다. 6500rpm에서 최고출력 380마력을 발휘하며, 패들 시프터로 엔진 회전수를 레드존 부근까지 끌어올리는 재미가 상당하다. 일반 도로에서 ZF 변속기의 반응속도는 SUV 특성을 고려했을 때 준수하다. 최대토크는 4500rpm에서 뿜어져 나와 수동 조작 시 고회전으로 계속 운전하게 된다. 스포츠 모드로 오토 주행 때는 최대토크 부근을 유지해 고토크 디젤차 느낌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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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도어 캐치 채용으로 미래의 이미지를 담았다


4기통 엔진이 기존 V6를 대체하게 되면서 V6 가솔린 엔진은 고가의 모델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가격 면에서 부담스럽지만 회전 질감은 직렬 4기통과 확연히 달라 빠져들게 된다. 더욱이 이 차는 수퍼차저가 달려있어서 점잖게 운전하기가 힘들다. 퍼포먼스와 재미, 가격의 밸런스를 잡아 SVA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SVR의 한 단계 아래 차를 만든 셈이다.

사양만 보더라도 이 차를 선택하는 고객은 반골 기질이 다분하다. 과격하지는 않지만 기존 차에서 보기 힘든, 정직한 선으로 이루어진 외모와 랜드로버 상위 등급에만 존재하는 수퍼차저를 품었기 때문이다. 기존 엔트리 모델은 다소 아쉬운 서스펜션과 심심했던 성능으로 패셔니카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모는 예쁘지만 어중간한 사이즈와 성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는 다르다. 에어 댐퍼가 노면 충격을 잘 걸러주어 승객 모두를 편하게 해준다. 기본 세팅은 언더스티어 성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차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코너에서 높은 속도로 스티어링을 무리하게 잡아 돌려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없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adaptive dynamics) 시스템이 운전자의 조향, 스로틀 개폐, 브레이크 페달 등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분석한 후 구동계와 전자식 댐퍼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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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보드 레이아웃은 모든 메이커 인테리어 통틀어 최고의 디자인 


2019년형에 탑재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은 거의 모든 속도에서 작동하지만 차선유지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아 손을 떼기는 어렵다. 직선 구간에서는 앞차를 잘 따라가 편하지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는 브레이크 개입이 매끄럽지 않아 울컥거린다. 업데이트를 통해 매끄러운 제어가 요구된다. 제동성능은 기본기가 뛰어나 큰 덩치를 잘 멈춰 세운다. 게다가 시속 160km 미만에서는 사고가 예상될 경우 자동으로 차를 세운다. 상당히 강력한 사고 예방 기능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기능인만큼 운전자의 전방주시와 적절한 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루기 쉬운 고성능 SUV

이 차는 겉으로는 담백해 보인다. 테일게이트에 붙어있는 ‘P380’ 레터링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고출력 380마력에 달하는 차라는 게 티가 나지 않아 고귀한 신분을 감추는 것 같아 더욱 매력 있다. 차체와 휠, 그릴까지 모두 무채색으로 오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밤에는 또렷한 매트릭스 LED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폭발적인 가속을 할 때면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아마존의 검은 재규어 같다. 최고시속 250km는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해 리미터가 작동하기 때문. 이속도까지 올라서는데 한 치도 망설임이 없다. 웬만한 고성능차를 발 아래에 두는 성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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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석 레그룸은 딱 미드 SUV 사이즈. 패밀리카로도 적합하다 


수퍼차저 과급되는 V6 엔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토크를 제공한다. 그위력은 중고속 가속구간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고속도로에서 어지간한 차들은 고양이가 쥐를 갖고 노는 격이다. 이 정도면 ‘공도 사냥꾼’이라는 수식을 달아야할 것 같다. 보통 고성능 SUV가 달리는 모습은 멧돼지를 연상시키지만 이 차는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재규어처럼 멋지고 편안하면서도 매서운 질주가 가능하다.

승차감 덕분에 운전자가 느끼는 것보다 빠르면서도 체감 속도는 낮다. 운전은 쉬운 편이지만 그렇다고 재미를 잃지는 않았다. 여기에 수퍼차저 특유의 배기 사운드와 자연흡기와 같은 리니어한 회전 질감이 액셀러레이터를 더 깊게 누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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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보다 더 나은 가죽이 들어갔다 


만듦새는 훌륭하나

레인지로버의 대시보드 레이아웃은 모든 메이커 인테리어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물리 버튼을 대거 빼고 센터페시아에 듀얼 터치스크린을 장착해 정갈하다. 두 개의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상단 내비게이션과 하단 미디어 및 공조기 제어다. 디자인만큼은 훌륭하나 문제는 터치 반응이 굼뜨다는 점이다. 시승차만의 문제였으면 좋겠다. 간헐적으로 인식률도 떨어진다. 하단 차량 화면에서 다이얼을 조작하면 드라이브 모드가 바뀌는데, 운전 중에 습관적으로 온도 설정 다이얼을 조작할 때 운행 모드가 바뀌어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실내 온도를 누르고 다이얼을 조작해야 한다. 3일간 타면서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 불편했다. 공조기 제어만큼은 전용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미니멀리즘 컨셉과 디자인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불편하다는 게 문제다. 스티어링 양쪽에 달린 버튼도 인식률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작 정확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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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상위 트림에만 탑재되는 수퍼차저 엔진


고성능 차로 주유소를 가는 게 귀찮다면

고사양 가솔린 엔진에서 연비를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약 800km를 다양한 방식으로 달려보았는데도 연비가 7km/L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좋은 연비다. 고속도로에서는 1차로 추월 차로에서 시속 160~180km 로 달리다가 바로 2차로로 복귀하는 걸 반복하는 가혹한 조건에서 L당 7km 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속도를 유지하니 곧바로 9km/L 대로 올라간다. 운전 상황에 따라 연비 낙차가 크지 않다는 점은 이 차의 장점이다. 공인 연비는 높지만 실제 달려보면 여기에 크게 못 미치는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벨라가 더더욱 믿음직스러워졌다.

세상에는 잘 달리고, 잘 서는 차들은 많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갈리겠지만 고급스럽고 빠르면서 납득할만한 연비에 최대 5명까지 탈 수 있는, 누구나 인정하는 예쁜 디자인의 SUV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바로 벨라 P380 R-다이내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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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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