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변태적인 GOAT SUV, 마세라티 르반떼 트로페오
2019-06-07  |   97,309 읽음

세상에서 가장 변태적인

GOAT SUV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1581_6447.jpg

현존하는 후륜 기반 플랫폼 중 최강의 수퍼 SUV를 만났다. 600마력에 육박하는 SUV를 공도에서 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실용적인 5도어에 페라리의 심장이 필요하다면 마세라티 르반떼 트로페오만이 대안이다. 트로페오만 허락된 코르사 모드는 럭셔리 변태의 끝을 보여줄 것이다.


기자가 마세라티 르반떼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배기음. 두 번째는 짧은 프런트 오버행이다.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의 프리미엄 SUV에 정이 안 가는 이유는 폭스바겐 그룹의 MLB 플랫폼이 한 몫 한다. 뭇사람들은 후륜 쪽 분배가 높으면 그게 후륜 플랫폼이라고 주장을 하겠지만 세로 배치 엔진을 탑재했어도 전륜 축 앞에 위치한 엔진 때문에 고급 SUV라 해도 전형적인 후륜의 ‘자세’가 안 나온다. 그런 점에서 마세라티 르반떼는 확실히 전통적인 고급차 실루엣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정말 큰 장점이다. 엔진을 앞차축 뒤에 배치한 프론트 미드십 레이아웃과 짧은 프런트 오버행이 주는 심미적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고급차일수록 그 비중은 높다고 생각한다. 곧 출시될 3세대 벤틀리 플라잉스퍼도 포르쉐 파나메라의 후륜구동 기반 플랫폼을 채용한다는 소문이다. 아우디의 플래그십 A8이 상당히 잘 만들었음에도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의 아성을 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전통적 후륜 프로포션의 부재’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성능 이미지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오버 엔지니어링이라는 수식이 붙는 독일 메이커 고성능 디비전의 레터링이나 배지는 엔트리 모델에도 붙일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진짜 AMG, M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순정 배지를 달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 감성 옵션은 당장의 매상은 좋아질지 몰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이미지 소비로 식상함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과거의 독일 고성능 디비전 모델은 정말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반전과 특별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과격한 모습으로 차이를 만드는데만 고심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점점 고성능 디비전을 어필하는 게 쉽지 않게 될 것이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1614_9658.jpg

르반떼 레터링 밑줄처럼 그어진 ‘창’과 C 필러에 위치한 TROFEO 엠블럼이 보이면 추월차로를 내주는 게 상책이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1615_0151.jpg


마세라티 르반떼 중 가장 비싼 하드코어 퍼포먼스카 트로페오(trofeo)를 만났다. 트로페오는 영어로 ‘트로피(trophy)’를 뜻한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퍼포먼스 모델임에도 외모는 요란스럽지 않다. 그래서 더 좋다. 반전이 있으니까. 첫인상은 우아하다, 아름답다는 말만 연거푸 나온다. 이탈리아 메이커만 다룰 수 있는 유려한 선의 시작점과 끝점을 유심히 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세상 그어떤 SUV도 르반떼처럼 아름답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날씨, 건축물, 지중해와 위대한 조상들의 찬란한 예술적 감각의 수혜 받은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심미안(審美眼)의 풍요로움에 있어서 다이아 수저인 셈이다. 이탈리아가 정치를 비롯해 몇 가지 단점은 있지만 ‘미(美)’를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퍼포먼스 모델답지 않게 외관에서 티를 내지 않는 고고함도 이탈리아 자동차의 특징이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160_4338.jpg
하이 퍼포먼스 모델이지만 요란한 티를 내지 않아 좋다 


피에노 피오레(pieno fiore) 가죽이 온 실내를 덮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가죽 냄새가 풀풀 난다. 싸구려 염료를 써서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가죽과는 차원이 다른 향이다. 두께가 상당하지만 질감은 부드럽다. 정말 좋은 가죽을 썼다는 증거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레이스, 던의 가죽보다도 질감, 향, 텐션에서 피에노 피오레가 압도한다. 과거 롤스로이스 크루 공장에 공급되던 코널리(conolly) 가죽과 비슷한 느낌이다. 가죽을 좋아하는 기자로서는 실내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182_0286.jpg
싸구려 염료를 써서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가죽과는 차원이 다른 향이다. 과거 롤스로이스 크루 공장에 공급되던 코널리(conolly) 가죽과 비슷하다 


이 차는 밀도 있는 알루미늄 패들 시프터, 천장과 필러를 감싼 알칸타라, 하드코어를 상징하는 드라이 카본 등을 실내 곳곳에 사용했다. 2억 3천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 수긍이 간다. 트로페오보다 더 비싸고 성능 좋은 SUV는 있지만 좋은 소재와 페라리의 심장, 후륜 기반의 플랫폼만으로도 이 차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게다가 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성까지 제공한다. “같은 후륜 기반의 롤스로이스 컬리넌은?”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추구하는 성향이 다르다.

트로페오는 그냥 수퍼카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205_6086.jpg

이 각도에서 보면 후륜 기반 차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205_7428.jpg
곳곳에 드라이 카본이 들어가 모터스포츠 감성까지 더했다 


오직 트로페오만 있는 코르사 모드

과급기 사용으로 배기음이 심심할 것 같다는 진부한 얘기는 이제 그만해야겠다. 적어도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논외로 해야 한다. 콕핏에 앉아 있으면 자연흡기, 과급기 똑같이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더욱이 트로페오라면 오디오 브라켓을 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다. 이 사운드에 빠져서 3일 동안 900km를 달렸다. 영등포를 빠져나와 인천공항까지 노멀 모드로 약 50km 탔다. 웬만한 400마력 대 SUV 스포츠 모드보다도 트로페오의 노멀 모드가 파워, 속도, 조향감에서 모두 낫다. 영종도에서 용무를 마치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3가지 주행 모드는 노멀-스포츠-코르사. 스포츠 버튼을 누르고 다시 길게 누르면 코르사(corsa) 모드로 변경된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305_7506.jpg
기어 노브를 D에서 왼쪽으로 밀면 수동모드다 


경주, 레이스를 뜻하는 코르사로 고정하니 에어 댐퍼가 차체를 낮춘다. 코르사는 오직 트로페오만 존재하는 주행 모드다. 주행 환경에 따라 에어로1, 에어로2 댐퍼의 감쇄 레벨 정보를 클러스터에서 실시간 확인할수 있다. 배기 사운드는 노멀에서도 충분히 세련되고 강한 톤이지만 코르사는 스포츠보다 더 예민하고 앙칼지다. 노멀이 힘 좋고 스포티한 SUV라면, 코르사는 수퍼카급 응답성에 당장 트랙에 나가 모든 차를 다 집어삼킬만한 야수성을 품고 있다. 현존하는 SUV의 왕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327_2144.jpg
궁극의 코르사 모드. 부유한데다 운전 실력까지 좋다면 트로페오를 살 수밖에 없다


시속 110km를 달리는 도중에 콘솔 기어 노브를 왼쪽으로 밀어 넣어 매뉴얼 모드로 고정했다. ‘철컹’하는 것이 기계식 느낌이다. 6단에 물려있던 단수를 2단까지 내리고 풀 스로틀을 했다. 관성을 거스르는 맹렬한 가속이 시공간을 잠시 비틀어 놓는 듯하다. 눈앞에 보이던 장면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재빨리 3단으로 업 시프트.

회전 상승이 너무 빨라 저단 고단할 것 없이 7000rpm까지 한달음에 도달한다. 2500rpm부터 74.85kg·m의 최대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고회전을 쥐어짤 필요는 없지만 워낙 환상적인 배기 사운드 탓에 괜히 레드존 부근까지 올리게 된다. 자연흡기와 같은 반응이면서 풍부한 토크감까지 선사한다. 2.3톤의 차체를 시속 0→100km까지 3.9초 만에 밀어부치고, 최고속도는 304km에 이른다. 2세대 후기형 포르쉐 카이엔 터보 S를 압도하는 가속성능이다.


코너를 지배하는 수퍼 SUV

시승차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가 아니지만 제동성능은 강력하다. 가혹한 주행에서도 페이드는 없었다. 굳이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가지 않아도 엔진 브레이크만으로 빠르게 속도를 줄여줘 쾌적한 타력 주행이 가능하다. 롱 휠베이스는 코너에 불리한 핸디캡이지만 적어도 이 차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공도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코너에서 어떠한 차보다도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로 탈출할 수 있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355_3537.jpg
버킷 시트는 아니지만 가혹한 주행에서도 몸을 잘 잡아준다 


페라리와 협업한 Q4 AWD 시스템은 리어 그립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전륜을 구동하여 어느 상황에서도 그립을 유지시켜 운전자에게 신뢰를 준다. 페라리의 SSC 같은 장치는 없지만 코르사는 후륜을 의도적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 LSD가 개입하면서 파워풀한 속도로 코너를 공략할때 잘 버텨주는 횡 그립은 “SUV가 뭐 이래!” 이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전고가 높은 차로서는 변태적인 몸놀림이라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긴휠베이스는 연속 코너에서 불리할 것 같지만 어지간한 와인딩에서도 BMW M3 CS 정도는 압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저가 심해 시속 80km 이상이 힘든 코너조차 그 이상의 속도로 깨끗하게 돌아간다. 한적한 공도에서 만난 M3, M4가 기자의 트로페오를 앞지르려 시도하다 실패했다. SUV가 와인딩에서 불리하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다. 똑똑한 섀시와 저중심 설계, 강력한 파워트레인으로 수퍼카 부럽지않은 성능을 손에 넣었다. 게다가 이 차에는 488 피스타, F8 트리뷰토와 같은 계열의 심장이 얹혀 있다. 올해의 엔진 대상을 3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이미 완성된 엔진이다. 타이어 사이즈로도 이 차가 터무니없는 차라는 걸 알 수 있다. SUV에서 흔히볼 수 없는 편평비다. 거대한 22인치 후륜 타이어는 812 수퍼패스트 보다도 사이드월이 납작해 노면을 많이 타지 않을까 걱정했다. 보통은 편평비가 낮을수록 노면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하지만 이 차는 에어 댐퍼 덕분에 거친 노면에서도 진동과 충격을 잘 걸러준다. 스마트한 댐퍼는 시종일관 여진을 잘잡아주면서도 롤 제어 역시 뛰어나 단점을 찾기 힘들었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385_0734.jpg
이 차에서 내릴 때가 가장 아쉽다. 계속 머물고 싶다 


오직 수동모드로만 타고 싶다

ZF제 8단 자동변속기는 트로페오와 궁합이 잘 맞는다. 가혹한 주행에서도 최적의 단수를 찾아 재빠르게 작동한다. 노멀 모드일 때 꽤 준수한 수준의 연비가 나온다. 하지만 스티어링 칼럼에 달려 있는 고정식 알루미늄 패들 시프터가 자꾸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코르사 모드를 한번 경험하고 나면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노멀, 스포츠 모드에는 손이 가지 않게 된다. 엑셀러레이터와 패들 시프터에 익숙해지면 운전자가 가장 듣고 싶은 음색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코르사 수동의 매력이다. 연료 식성이 좋아지는 정도는 감수하게 만든다. 몇몇 메이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액티브 사운드와는 깊이와 질감에서 차원이 다르다. 태생부터 꾸밈없이 본질에 집중하여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사운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자 마약과 다름없다. 그래서 일단 중독되고 나면 어느새 코르사 모드로 바꾸고 패들 시프터를 조작하게 된다. 자동변속기 기반임에도 시프터 반응속도는 즉각적이어서 수동에 뒤지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트랙에서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408_4162.jpg
기계식 키보드의 손맛보다 더 위에 있는 알루미늄 패들 시프터의 조작감은 황홀 그자체다. 코르사 수동 모드를 경험하면 오토에 손이 가지 않는다


최고의 존재감

양산차면서 이만큼 시선 끄는 차도 드물다. 섹시한 외관과 배기음이 사람의 감각을 건드려서일까? 지금까지 타본 시승차 중 손가락에 꼽을 만큼 트로페오는 강렬한 존재였다.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 다 쳐다본다. 셀프 주유소에서조차 “이차 얼마예요?” 물어보는 게 예사다. 물론 가격을 들으면 흠칫 놀라는 반응도 한결같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424_7301.jpg

트로페오는 기본 르반테와는 가격, 성능, 사운드, 소재 등 모든 면에서 큰차이가 있다. 수퍼 SUV 타이틀에 어울리는 차는 트로페오가 유일무이하다. 고성능 SUV의 홍수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존재감이다. 개인적으로는 후륜 기반 플랫폼을 고집한다는 점도 참 좋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마세라티가 전륜 기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디자인 완성도에 끼치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차는 마라넬로 페라리 공장에서 제조되는 엔진을 넣고도 2억 3천만원에 불과하다. 넓은 거주성에 골프백을 잔뜩 실을 수있는 트렁크는 덤.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전천후 수퍼카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89a88273b3f764c093bf0bf9f3c34594_1559872434_5429.jpg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