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아하고 과격한, FR 컨버터블 포르토피노
2019-06-10  |   7,907 읽음

가장 우아하고 과격한

FR 컨버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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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서 페라리 타고 인제 서킷까지, 포르토피노와의 초고속 데이트.


자동차 기자로서 가장 흥분될 때는 언제일까? 분명 페라리를 타고 있을 때일 것이다. 페라리 콕핏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현실과 꿈의 경계가 아슬아슬해지는 느낌이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만 흠모했던 뮤즈를 직접 대면한 기분이다. 짧지 않은 하루를 함께 보내고 나니, 보내줘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만큼 페라리가 주는 감동은 대단했다. 뼛속까지 레이스 혈통인 창업주 엔초의 스토리와 모터스포츠에서의 확고한 입지를 지닌 스쿠데리아 페라리에 관심 갖기 시작한다면 누구든지 로쏘(rosso:붉은색) 마니아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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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컨버터블의 마스터피스

21세기 페라리 중 가장 저평가된 모델이 캘리포니아 T라고 생각한다. 형제보다 유순한 외모지만 타보면 의외의 강력한 성능에 놀란다. 아울러 멋진 실내 레이아웃과 시트의 편안함으로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았다. 포르토피노 엔진의 초기 버전인 F154BB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엔진은 2008년 출시된 자연흡기 버전 캘리포니아보다 여러모로 나았었다. 과급기를 달았음에도 배기는 세상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사운드를 제공했다. 터보가 달렸다고 해서 자연흡기 대비 배기음의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했지만 막상 주행을 해보면 정말 터보 엔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잘 다듬은 과급기는 저회전대에서도 강한 토크 펀치를 선사한다. 더욱이 페라리 특유의 고 rpm에서 패들 시프터의 변속 질감은 운전자 손끝에 그대로 전달되는 맛이 일품이다. 자극이 극에 달하지 않다는 저평가가 있었을 뿐 페라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다른 차원의 GT 컨버터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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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에어 덕트는 폼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공력 시스템이다 


기존 캘리포니아 T 자체도 완성도가 워낙 높았지만 포르토피노는 페라리에서 작정하고 만든 모델이다. GT 컨버터블임에도 불필요한 가짜 덕트 따위는 없는 순수한 공력 설계와 강한 심장은 너무나도 자극적이다. 이미 검증받은 심장을 잘 다듬어 출력 및 연비까지 높였다.

하드톱 컨버터블 특성상 트렁크 공간은 거의 포기해야 하지만 트렁크와 뒷좌석까지 캘리포니아 T보다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하드톱 컨버터블 중 가장 넓은 트렁크 공간을 자랑한다. 극단적인 롱 노즈와 숏데크 스타일이 아님에도 페라리 특유의 프로포션을 잘 살려 우아함은 유지하면서도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페라리 본연의 화끈한 이미지를 극대화한 헤드램프는 살아있는 맹수의 눈매를 보여준다. 공도의 운전자들이 백미러만 보고도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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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톱이지만 완벽히 트렁크에 감춘다


포르토피노의 전면 그릴에 박혀 있는 카발리노(뛰는 말 엠블럼), 앞 팬더 덕트, 뒤 팬더의 풍만함은 흡사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를 연상케 한다. 만약 포르토피노가 개발되지 않았으면 페라리의 충성심 있는 VIP 고객이 250 GT를 오마주한 컨버터블이 필요하다며 원-오프 모델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하드톱을 닫았을 때는 영락없는 쿠페다. 현존하는 모든 컨버터블 중 지붕을 닫았을 때 가장 이질감 없는 완벽한 하드톱 모델이 아닐까.


600마력의 우아한 컨버터블을 탄다는 건

600마력 컨버터블을 만드는 메이커는 흔치 않다. 몇 개 브랜드가 연상이 되지만 가격대와 메이커의 위상을 따졌을 때 페라리와 견주기는 힘들다. 포르토피노의 시동을 거니 아주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골목을 1단으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영동대로를 타고 액셀러레이터를 푹 밟자 rpm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두터운 토크와 진동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른 발을 다시 힘껏 밟으니 타코미터가 7000rpm을 가리켜 바로 2단으로 변속을 했다. 적막한 빌딩 숲 사이를 달리는 사이 묵직한 사운드가 캐빈을 감싼다. 자기 PR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단지 엔진 회전수를 높이는 것만으로 아주 쉽게 존재감을 알리는 걸 보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런 허탈감은 금세 잊혔다. 올림픽대로에 오르자 예상외로 차들이 별로 없어서 속도를 높였다. 과급기 엔진임에도 7000rpm 이상까지 회전이 가능해서 자연흡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회전수를 높이면 귓가를 파고드는 진동과 묵직한 고음 사운드로 자연스레 엑셀러레이터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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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서클 테일램프조차 포스를 풍긴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V12만이 진정한 페라리이고 V6와 V8을 보급형 페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대 스페셜 모델 중 V8 엔진이 들어간 모델이 적지 않다. 정작 페라리에서 V12형이 아닌 모델에 보급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적은 없다. 그저 라인업을 더 늘렸을 뿐이다. 포르토피노는 코드네임 F154BE(이하 F154) V8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F154 엔진은 2013년에 등장했는데, 범용성, 내구성, 확장성이 좋아 캘리포니아 T, 488 GTB, GTC4 루쏘 T, 488 피스타, F8 트리뷰토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2016년~18년 3년에 걸쳐 올해의 엔진 상(engine of the year award) 대상을 연속 수상했다. 특히 지난해 올해의 엔진 상 20주년을 기념하여 신설된 ‘Best of Best’상에서 지난 20년을 통틀어 최고 엔진으로 뽑혔을 정도다. 아마 2019년 올해의 엔진 상 역시 곧 국내에 출시될 F8 트리뷰토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성능 세단과 맞먹는 안락함

운전석 레그룸은 의외로 공간에 여유가 있다. 알맞은 위치에 자리 잡은 풋레스트가 운전의 피로를 줄여준다. 아울러 훌륭한 댐퍼는 불규칙한 노면을 잘 받아준다. 458 이탈리아 이전의 페라리를 탔을 때는 정말 딱딱한 승차감이었지만 이제는 세단형 스포츠카와 맞먹을 정도로 안락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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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림에 달려있는 호른 버튼은 스티어링 중앙으로 옮겨져 더 편하다 


게트락제 7단 DCT는 어떤 상황에서도 직결감이 최상이다. 오토에서도 충분히 재밌고 편안하지만 페라리의 패들 시프터를 만지고 있자니 오토 해제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수동 모델이 아님에도 그에 준하는 패들 시프터의 손맛은 운전자를 미치게 만든다. 더군다나 F1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패들 시프터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날씨가 좋지 못해 벚꽃이 만개했음에도 오픈 에어링은 만끽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드톱을 씌우고 달리니 이 차가 컨버터블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전동식 하드톱이지만 내장재 몰딩 부분 등이 타이트해 잡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물론 신차 한정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한참을 달려 인제 서킷에 도착했다. 페라리를 타고 왔으니 당연히 페라리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TV로만 접했던 페라리 패독 라운지와 비슷했다. 이것마저도 감동이다. 안에는 캡슐 커피 머신과 트랙에서의 체력 고갈을 막아줄 초코바와 바나나가 있었다. 특히 에스프레소는 8샷을 마셨을 정도로 신선하고 맛있었다. 순간 페라리 오너들과 함께 이런 멋진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페라리를 타며 추억과 삶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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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 파이프가 유유자적 타는 차가 아니란 걸암시한다


트랙에서의 포르토피노

레이스 모드가 없는 포르토피노라서 자극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큰오산이다. 캘리포니아 T보다 한 차원 높은 성능이라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트랙에서의 파워풀한 주행은 운전자로 하여금 주눅을 들게 할 수 있지만 포르토피노는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한 주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멋진 페라리로 트랙에서 극적인 운전을 했다고 해서 꼭 운전을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은 똑똑한 전자 장비가 적극 개입하여 운전자가 의도하는 데로 잘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포르토피노는 초보자도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쾌적하다. 과거 페라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운전 감각이면서도 페라리 DNA는 온전히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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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변속 직결감, 날카로운 조향감, 아름다운 보디는 역시나 페라리라는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다만 비가 쏟아지는 탓에 ESC를 꺼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악천후에서 후륜구동 600마력 차를 다룬다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으니 말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이미 충분히 자극적인 포르토피노는 트랙에서 그 어떤 차보다 빠르면서도 우아했다. 봄 날씨에 오픈 에어링이라도 한다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개선된 윈드 디플렉터가 오픈 에어링의 단점인 소음과 바람을 줄여 오너의 품위까지도 지켜준다. 여기에 멋진 배기 사운드가 더해지면 매력은 절정에 달한다. 전동식 하드톱을 트렁크에 접어 넣고 거침없이 질주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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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맹범수 기자 

사진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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