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로 ‘고인 물’, JEEP GRAND CHEROKEE LIMITED-X 3.6
2019-07-05  |   60,541 읽음

좋은 의미로 ‘고인 물’

JEEP GRAND CHEROKEE LIMITED-X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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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내 시판된 지프 그랜드 체로키가 한정판을 내놓았다. 성능의 변화 없이 외장의 소소한 변화와 차별화된 색상이 포인트다. ‘고인 물’ 취급받아도할 말 없을 10년차 모델이지만, 안팎으로 살펴보아도 나이 든 모습을 찾을수 없다. 휘발유 엔진이 만드는 부드러운 온로드 주행성능과 더불어 몸을 사리지 않는 오프로드 성능은 천상 지프 모델이다. 


라이프사이클 마지막의 한정판 사양

데뷔 10년차에 접어든 그랜드 체로키가 한정판을 내놓았다. 리미티드 3.6 모델을 베이스로 한 한정판 리미티드-X 모델이다. 리미티드 모델과의 가장 큰 차이는, ‘보닛’.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는 고성능 모델인 그랜드 체로키 SRT의 구멍 뚫린 보닛, 듀얼 히트 익스트랙터(dual heat extractors)를 그대로 올려놓았다. V8 6.2L 수퍼차저 엔진의 열기를 빼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품이었겠지만, V6 엔진을 넣은 이 차에서는 그냥 멋내기용 정도다. 보닛을 빼면 저광택의 진회색 크리스털(granite crystal)로 부품 여기저기에 엑센트를 주었다. 적어도 외형에서 나이를 느끼게 되는 부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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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을 보인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실내는 특이할 것 없는 블랙 톤. 리퀴드 티타늄이라 부르는 패턴으로 조금씩 엑센트를 넣었다. 모든 FCA 제품과 마찬가지로 U커넥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탑재되어 있다. 8.4인치 스크린의 해상도는 흠잡을 데가 없고, 멀티터치에도 곧잘 반응한다.

한글화는 깔끔하다. 과거 서스펜션을 ‘현탁액’이라 표시하던(번역기로 돌리고 검증을안 하면 이런 경우가 생긴다) 어이없는 실수들은 더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표준이된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도 깔끔하게 지원한다. 유일하게 흠을 잡는다면 크고 멋없는 한글 폰트. U커넥트 시스템의 세련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유료 폰트를 사용하는 것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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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이니만큼 7슬롯 그릴이 들어간다 


여유로운 온로드, 강력한 오프로드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킨다. 페달의 초기 반응이 예민한 것을 빼면, 미국제 SUV에서 느끼던 허술한 움직임이 없다. 지프의 감성을 강조하느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사실 그랜드 체로키는 곳곳에 독일의 손길이 더해진 차다. 이 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 개발된 마지막 차 중 하나로, 직전 세대의 메르세데스 벤츠 GLE(W166)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펜타스타 엔진은 크라이슬러 전용으로 메르세데스 벤츠가 온전히 개발을 맡았던 물건이며, 변속기 또한 ZF 8단을 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 차의 움직임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이 차는 어디까지나 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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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20인치 휠에 매칭된 타이어는 265/50 사이즈의 피렐리 스콜피온. 온로드와 오프로드에서 모두 좋은 접지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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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스위치류는 벤츠의 영향이 느껴진다 


V6 3.6L 엔진은 최고 출력 286마력, 최대 토크 35.4kg·m를 낸다. 최신 기술이 탑재된 엔진은 아니지만, 동배기량의 V6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움직임이 살아있다. 전매특허인 쿼드라-트랙 Ⅱ(Quadra-Trac Ⅱ) 네바퀴 굴림에 주행 환경에 따라 5가지(Auto/Sand/Mud/Snow/Rock)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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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6 3.6L 펜타스타 엔진. 그랜드체로키에서 딱 좋은 엔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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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F의 8단 변속기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크루즈 컨트롤을 켰다가 깜짝 놀란다. 앞차와 간격이 좁아지는데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 에어 서스펜션이나 좌우토크 배분 기능이 빠진 것은 알았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까지 빠진 줄을 몰랐던 탓이다. 최근엔 국산 준중형차에도 달리는 기능이라 은연중에 있을 것이라 예상해 버렸다. 자동 긴급제동 기능이 남아있기는 한데, 주차할 때마다 일부러 찾아서 끄지 않으면 안 된다. 좁은 주차공간에 이 덩치를 밀어 넣을 때마다 멋대로 개입해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특히 뭔가 부서지는 것 같이 들리는 경고음은 꼭 고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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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스포츠모드가 있긴 하지만 체감 폭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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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치 디스플레이가 내장된 계기판은 2014년 업데이트에서 반영된 것이다 


일상 주행 시 체감하는 실 연비는 14L/100km로, 환산하면 7.1km/L 정도다. 2.4t의 덩치를 이끄는 V6 3.6L 휘발유 엔진에서 예상하게 되는 딱 그 정도의 연비다. 좋다고 생각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신 보상은 있다. 그랜드 체로키 디젤로는 느끼기 힘든 부드러운 주행감 말이다. 3L가 넘는 V6 휘발유 엔진과 2.4t의 무게가 조합된 SUV의 달리기는 당연히 여유롭다. 286마력에 최대 토크 35.4kg·m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아니나, 육중한 몸을 끌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4,000rpm까지는 가속감도 좋고 이다음부터는 토크감이 엷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대형 SUV 다운 주행 특성이지만, 최신 모델들과 비교해도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한다. 이 차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역시 오프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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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도 10년의 나이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탁월한 오프로드 성능

그랜드 체로키는 역시 오프로드에서 유감없이 성능을 드러냈다. 가격 문제로 전자 제어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을 빼, 좌우 토크 배분이 되지 않으며 에어 서스펜션도 없다. 그래도 능동형 AWD인 쿼드라 트랙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지형설정 시스템인 셀렉-터레인 역시 있다. 여러 개의 센서를 통해 타이어 미끄러짐이 발생하면 최단 시간에 감지해 대응한다. 또한 정차 시부터 가속 페달을 빠르게 인식해 타이어 미끄러짐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접지력을 최대화하는 기능도 더해졌다. 타이어 미끄러짐이 감지되면 토크 배분을 재빠르게 바꾼다. 시승 도중, 자주포 훈련 덕분에 엉망이 된야지에 뛰어들었다. 거침없이 뛰어넘고 가로질러 달리니 어느 한 바퀴도 접지를 유지하기 힘든 노면에서도 차는 정확하게 입력한 만큼 능수능란하게 방향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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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내장의 한정판


진창에 빠져 속도가 더디어질 때쯤 셀렉-터레인 모드를 mud(진흙)로 바꾸고 조금씩 가속페달을 밟았다. 헛바퀴만 돌리던 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슬슬 앞으로 다시 전진을 시작한다. 보통 SUV로는 꿈도 꾸지 못할 험로를 주파하는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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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은 등받이 조절이 2단계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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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를 접지 않아도 1,000L가 넘는 광활한 트렁크 


끝물이기에는 여전히 근사한 차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랜드체로키는 내년 풀 모델 체인지를 앞둔 차다. 이건 생애 주기의 끝에 약간의 화장을 더하고 가격을 낮춘 물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별반 매력이 없을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만나본 차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10년의 나이를 느끼게 만드는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친 인포테인먼트의 사용성도 높다. 전장이 5m에 달하는 대형 SUV의 탁월한 공간감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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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로를 가뿐히 주파하는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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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8 수퍼차저 엔진의 SRT용 보닛을 그대로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앞바퀴 굴림 세단 베이스의 대형 SUV로는 이 차의 막강한 오프로드 성능을 흉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2020년 신형 5세대 모델의 데뷔가 목전에 이른 상황에서도 미국 내 인기는 여전하다. 차만 놓고 보면, 그랜드체로키는 여전히 근사했다.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대형 SUV 중 최고 수준이다. 최근 대형 SUV라는 것들의 정체는 대부분이 단가를 이유로 앞바퀴 굴림 세단을 늘려서 만든 물건들이다. 어지간한 비포장길은 달리겠지만, 그런 차로 그랜드 체로키의 막강한 오프로드 성능을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0년 신형 5세대 모델의 데뷔가 목전에 이른 상황이지만, 미국 내 판매량은 여전히 한 해 20만대를 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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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지형변화에 대비하는 셀렉-터레인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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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의 플래그십인 만큼 오프로드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무엇이든 넘고 건널 기세로 달린다


하나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있던 사람이나 물건을 장난스레 혹은 자조적으로 칭하는 의미로 ‘고인 물’이라고 표현한다. 요즘은 그냥 오랫동안 한 것을 넘어 대가의 영역에 도달한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발매 후 10년이나 지난 차도 ‘고인 물’이라 부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차가 ‘썩은 물’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랜드체로키는 ‘고인 물’이다. 분명 좋은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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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변성용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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