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헌신적인 올라운더 SUV VOLVO XC90 T6
2020-01-03  |   21,655 읽음

가장 헌신적인 올라운더 SUV VOLVO XC90 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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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지리 자동차에 매각된 후 볼보는 제대로 된 날개를 달았다. 과거 고리타분한 디자인에서 에지 있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단숨에 중형 SUV 시장의 주역이 되었다. 직렬 4기통 2.0L 트윈 차저 엔진(터보차저+수퍼차저)은 저회전과 고회전 영역에서 모두 선택적으로 과급압을 올려 넓은 토크밴드를 자랑한다.


양산차 최고의 내구성

스웨덴은 매우 척박하고 추운 곳이다. 가혹한 환경에서는 튼튼하고 믿음직한 자동차가 필수다. 겨울날 외딴곳에서 한밤중 차가 퍼진다면 여러모로 큰일이다. 휴대폰 신호도 안 잡히고 몇 시간 내로 구조가 안 될 경우 동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한의 지형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이 배터리 방전으로 동사했다는 토픽 뉴스를 접할 때면 끔찍하고 비참한 상황이 떠오른다. 이런 연유로 스웨덴 메이커들은 단순함과 실용성, 안전성에 주력해 온 것은 아닐까.


이들은 복잡한 구조나 공예품의 관점으로 차를 만들지 않는다. 1960년대 볼보의 2도어 쿠페 P1800은 지금도 여전히 멀쩡하게 돌아다닌다. 이 차의 개량형인 P1800S는 최장 주행거리 기네스 기록(약 525만 km)을 갖고 있다. 2008년 중국 저장지리에 매각된 볼보는 다시금 P1800을 모티프한 컨셉트카를 2013년에 공개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지금의 볼보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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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산하에서 태어난 XC90 1세대만 하더라도 사실 지금처럼 잘생긴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릴과 테일램프의 유사성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의식이 다소 부족했다. 그럼에도 국내의 성골 볼보 마니아들은 해외 가격보다 비싼 XC90을 샀다. 외모가 특출나지 않아도 안전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다만 나중에 나온 기아 스포티지 2세대(2004년 출시)가 이 차를 쏙 빼닮아 다소 손해를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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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우드그레인과 가죽, 바워스&윌킨스 메탈 트위터가 백미다 


점잖은 페이스리프트

시승차는 2세대 XC90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최근 현대차의 파격적인 페이스리프트와 달리 부분변경인데도 뭐가 바뀌었는지 도무지 티가 나지 않는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랫동안 XC90을 탄 오너라면 개선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형은 마세라티와 유사한 입체적인 크롬 그릴을 부각시킨 익스테리어가 특징이다. 실내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파워트레인도 동일하다.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볼보의 로드맵은 전기차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XC90 T6는 순수 내연기관 중 가장 강력하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T8도 물론 훌륭하지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 성능 저하와 보증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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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그릴과 DRL LED 헤드램프는 디자인을 완성하는 포인트 


게다가 전기 모터와 배터리 때문에 무게가 늘어나 높아진 출력을 일정 부분 상쇄한다. 적어도 성능만 보면 두 차의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T6가 유지보수 측면에서는 더 낫다. 아울러 볼보 디젤의 고질병인 에어 호스 고장 이슈는 아직도 개선이 안 되는 걸 보면 가솔린인 T6를 선택하는 쪽이 여러모로 속이 편하다.


옥의 티, 시티 세이프티

XC90 외관은 정말 흠잡을 데 없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디자인은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멋지다. 요란하지 않은 헤드램프 하우징과 T자를 형상화한 DRL이 눈을 사로잡는다. 테일램프는 후미를 따라오는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뛰어난 시인성을 갖고 있다. 캐릭터 라인은 군더더기 없이 프론트 펜더에서 꽁무니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시원하면서도 질릴만한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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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모노코크 섀시와 프론트 더블 위시본은 찰떡궁합이다 


이 차는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다소 투박했지만 이제는 미니멀하고 세련미가 넘친다. 묵직한 도어를 여니 넉넉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시트 포지션은 SUV 치곤 낮으면서 홀드성이 좋다. 가죽은 1억 원에 육박하는 차답게 뛰어나지만 냄새는 호불호가 있는 듯하다. 대시보드 레이아웃은 S60과 S90에 비해 그다지 예쁘지는 않다.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 사용 시 유용하다. 터치가 굼뜨지 않고 직관적이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장년층은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듯하다. 반 자율 주행은 스티어링휠 조작계에서 편하게 다룰 수 있다. 2열은 여유로운 헤드룸과 레그룸을 자랑하며 시트 역시 운전석처럼 편안하다. 7인승 구성으로 다인 가족이 이용하기에도 쓸 만하지만 3열 승하차 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트렁크로 활용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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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르는 차에게 뛰어난 시인성을 제공하는 테일램프


시동을 거니 가솔린 직분사 엔진치고 정숙하다. 전통적인 원형 스티어링 휠은 늘 친숙하다. 패들 시프터가 안 달렸지만 굳이 필요가 없다. 시트 포지션을 바닥까지 내리니 거의 세단을 운전하는 기분이다. 액셀 페달을 누르자 저속에서부터 막강한 토크가 나온다. 저회전에서 수퍼차저가 작동하며 휘이익~ 하는 소리를 낸다. 다소 호불호가 있지만 질주본능을 깨우는 소리다. 더욱이 SUV에서는 듣기 쉽지 않은, 이질적인 소리다. 얌전한 외모에 폭발적인 심장을 품은 이 차는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칭호가 딱들어맞는다. 작은 배기량으로 큰 힘을 뽑아내기 위해 터보차저가 고회전, 수퍼차저가 저회전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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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카에 걸맞은 여유로운 2열 공간 


근래 시승했던 S90의 스포츠 성향 브레이크 페달과 달리 노멀한 편이라 제동을 걸 때 조작이 편했다. 그래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바로 차를 멈춰 세운다. 볼보가 자랑하는 시티 세이프티 기능은 반응 민감도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볼보의 모든 차종을 탔지만 시티 세이프티 기능은 좀 더 개선이 필요하다. 접촉사고가 예상될 경우 차를 멈추는 기능인데, 차선 변경을 할 때위험한 상황이 아님에도 간혹 생뚱맞게 급제동을 해 놀란 적이 많았다. 그래서 시승할 때마다 민감도를 ‘늦게’로 놓게 된다. 물론 만약의 사태를 위한 강력한 안전시스템인 건 분명하지만 예상치 못한 빈번한 제동은 스트레스가 된다. 게다가 뒤따르는 차에 추돌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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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이 탈 수 있지만, 트렁크 공간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낫다 


4기통 2.0L의 마이스터

겨우 4기통 2.0L 엔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연비지만 실제 경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기량 수치는 의미가 없다. 터보차저와 수퍼차저가 결합된 엔진은 대배기량에 필적하는 파워를 뽐내기 때문이다. 반면 연료는 많이 들어간다. 다양한 방식으로 700km를 달리는 동안 8km/L대 연비를 유지했다.


다이내믹 모드로 고정하고 마음껏 달리면 6km/L대 까지 내려간다. 노면이 많이 상한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다가 런 오프 로드 프로텍션(Run-off Road Protection)이 작동했다. 이 기능은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로 접어들때 안전벨트를 당겨 운전자를 시트에 밀착시킨다. 사고 시 운전자에게 가해질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노면의 그립을 놓치면 어김없이 벨트를 조이는 모습에서 볼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섀시에서는 단단하면서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고장력 보론 강철을 운전석 주변과 필러에 사용했다. 단순히 단단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소재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강성과 복원력, 경량화까지 도모했다. 모노코크지만 과감히 험지로 이동했다. 도심형 SUV지만 오프로드 모드에 놓으면 가벼운 비포장도로 정도는 무난하게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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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L를 주력으로 삼는 프리미엄 메이커가 즐비해 딱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는 파워트레인. 게다가 볼보는 개량을 거듭해 신뢰도가 높다


비가 많이 온 직후라 깊숙이 패인 길을 시속 30km 달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바퀴 하나가 붕 뜨는 노면에서도 유연하고 강하게 버티는 섀시는 흡사 프레임 보디라 해도 믿을 정도다. 축구 선수로 치면 벨기에 출신의 다재다능한 케빈 데 브라이너 같다. XC90은 그야말로 헌신적인 올라운더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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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시티 세이프티 기능과 고급유를 넣는 것만 빼면 단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 외에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감을 주었다. 엔진은 요즘 2.0L를 주력으로 삼는 프리미엄 메이커가 즐비해 딱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개량을 거듭한 볼보의 파워트레인은 신뢰도가 높다. 타보지도 않고 소배기량 고급차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도 막상 이 차를 타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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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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