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레인지로버의 만추 (晩秋) , 오토바이오그래피
2020-01-23  |   25,543 읽음

4세대 레인지로버의 만추 (晩秋) , 오토바이오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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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예사롭지 않은 이 차의 풀 네임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SV 오토바이오그래피 다이내믹 V8 5.0 수퍼차지드(이하 SVA). 재규어-랜드로버의 특별 주문 부서인 SVO에서 좀 과하다 싶을 만큼 고급스럽게 꾸민 레인지로버에 SVR 엔진을 더했다. 영국차의 우아함을 전방위로 표현한 럭셔리 오너드리븐카다. 온-오프로드 성능의 균형에 프레스티지성까지 그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꼭 한번 눈여겨볼만하다.


오토바이오그래피의 뿌리 SVO

오토바이오그래피는 사전적으로 자서전(自敍傳)을 의미한다. 레인지로버중 궁극의 럭셔리를 담은 오토바이오그래피의 역사는 1993년 런던 모터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롤스로이스-벤틀리가 커스텀 오더 전략으로 하이엔드 럭셔리 시장에 군림했었다. 실용성을 추구했던 랜드로버지만 고객들은 롤스로이스처럼 커스텀 오더가 가능한 레인지로버를 원했다. 지금처럼 모든 메이커에 럭셔리 SUV가 즐비했던 시절이 아니다. 그래서 랜드로버는 기존 브로셔의 옵션 외에 내-외장 컬러와 소재 하나하나 고객의 취향을 담을 수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쇼카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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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의 듀얼 모니터 ‘인컨트롤 터치프로 듀오는 모바일 커넥티비티를 위해 준비된 시스템이다 

다행히도 반응은 좋았다. 여기에 탄력 받아 V8 4.2L 엔진의 레인지로버를 SVO 부서로 옮겨와 고객이 원하는 데로 스페셜 휠, 보디 키트, 맞춤 페인트를 입혔다. 아울러 코널리 가죽과 고급 패브릭을 장인의 손끝으로 마감했다. 이와 같은 특별한 모델을 딱 26대만 제작했다. 일종의 커스텀 오더 프로그램인 오토바이오그래피는 세대를 거듭하며 어느덧 최고급 레인지로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연유로 초기형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가 컬렉터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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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아닐린 가죽과 하이글로시 블랙, 금속직조 패턴의 카본파이버 및 알루미늄 트림 피니셔 등 다양한 소재가 아낌없이 쓰였다  


이렇듯 오토바이오그래피와 랜드로버의 특별 주문 부서인 SVO(Special Vehicle Operations)는 처음부터 뗄 라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비공식적으로 존재했던 SVO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건 2015년. SVO 테크니컬 센터는 영국 코벤트리 근교에 위치해있다. SVO는 오토바이오그래피 외에도 다양한 랜드로버 모델을 제작한다. 재규어-랜드로버 합병 후 2년이 지나 SVO에서 퍼포먼스와 럭셔리, 오프로딩을 아우르는 모델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게다가 고성능 럭셔리와 클래식카 복원 및 VIP 경호와 같은 특별 주문까지 전담한다. SVO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건 SVR 배지를 단 재규어-랜드로버부터다. 고급 지향의 SVA(SV Autobiography)는 퍼포먼스 지향형인 SVR(SV Racing)과 함께 현재 SVO의 주력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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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에어 벤트와 에어컨 조절 스위치 패널에 이만큼 공들여 디테일을 강조한 차는 흔치 않다  


럭셔리 SUV의 선구자

요즘은 죄다 고성능 프리미엄 SUV 개발과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 럭셔리 SUV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레인지로버다. 그래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레인지로버는 세대를 거듭하며 다듬은 아이코닉한 비율과 측면 실루엣, 클램셸 보닛과 스플릿 테일 게이트, 곧게 뻗은 웨이스트라인 등 기능적이고도 우아한 디자인으로 오리지널리티를 뽐낸다. 테일 게이트에 붙은 ‘SV autobiography’ 엠블럼이 말해주듯 이 차엔 다른 레인지로버보다 훨씬 간결하고 대담한 디자인에 VIP를 만족시킬 다양한 소재와 섬세한 디테일로 안팎을 차별화했다. 화이트 보디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블랙 루프, 사이드미러 캡, 사이드 벤트(실제 벤트의 기능을 하지는 않음), 21인치 5 스플릿 스포크 스타일 5005 알로이 휠에 두루 적용한 다크 그레이 메탈릭 컬러 스킴이 길이 5m, 폭 2m 거구임에도 샤프해 보인다. 여기에 다이아몬드 널링을 형상화한 후드, 테일 게이트 레터링, 헥사곤 패턴의 크롬 그릴, DRL의 고휘도 픽셀 레이저 LED 헤드램프, 듀얼 머플러 팁 등이 자칫 과한 디테일로 보이지만 고고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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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능 스티어링 휠의 컨트롤 버튼과 메탈 패들 시프터의 손맛이 좋다  


묵직한 도어를 열면 B필러의 SV 배지가 이 차의 특별함을 상기시킨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손에 닿는 부분이 퀼팅 세미 아닐린 가죽과 하이글로시 블랙, 카본제와 알루미늄 이외에도 10여 종 이상의 소재가 두루 쓰였다. 이차의 인테리어를 보고 있노라면 익스테리어는 심심한 수준이다. 콕핏과 캐빈을 아우르는 실내 전반에 영국 특유의 악센트의 고급스러움이 넘쳐난다.

널링 패턴의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 시동 버튼과 앞뒤 온도조절 스위치, 전동식 센터 암레스트 및 글러브박스 오프너 스위치 등의 전용 디테일이 메탈의 차가운 터치를 귀금속 세공품을 어루만지는 즐거움이다. 다기능 스티어링 휠의 조작계는 대부분 사실 한 번 쓸까 말까 하겠지만 오프로드에서는 유용하다. 게다가 현존하는 4스포크 스티어링 휠 중 레인지로버가 단연 최고의 디자인이다. 아울러 알루미늄제 패들 시프터는 변속할 때마다 명쾌한 타격감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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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인치 고해상 디스플레이 계기판이 다양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열 가죽시트는 24 방향 조절과 포지션 메모리 기능이 지원된다. 냉온 기능은 물론 운행 중 피로를 풀어줄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2열의 상석에서는 조수석을 최대한 밀고 조수석 등에 달린 풋 레스트에 발을 올려놓으면 1등석 부럽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다. 2열을 풀 플랫 하면 트렁크 용량 최대 1,728L까지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지능형 시트 적재 모드(Intelligent Seat Cargo Mode) 및 컨비니언스 폴드가 상당히 유용한 기능을 제공한다.

그밖에 주행 정보와 내비게이션 경로를 표시하는 12.3인치의 LCD 클러스터, 19개의 듀얼 서브우퍼와 스피커로 구성된 1,700W의 메리디안 오디오가 귀를 황홀하게 만든다. 게다가 1열 헤드레스트에 달린 10인치 디스플레이는 VIP에게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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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탠 & 에보니 조합의 인테리어 스킴이 콕핏에 화려함을 더한다 


여기에 보다 특별한 고급스러움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탈리아 명품 가구 브랜드 ‘폴트로나 프라우’의 퀼팅 가죽, 또는 다이아몬드 패턴을 상감(象嵌) 세공한 그랜드 블랙 트림도 옵션으로 마련했다. 높은 안목의 소유자라면 누구도 생각지 못한 조합으로 안팎에 나만의 컬러와 소재, 마감을 지정하거나 개인의 필요에 따른 추가 옵션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레인지로버 SV 오토바이오그래피의 커스텀 오더 프로그램은 한계가 없다. 다만 걸림돌은 가격일 뿐. 안목과 재력을 겸비한 고객이라면 레인지로버가 제공하는 비스포크의 매력에 빠지면 웬만해선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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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개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측면에서 SVA는 단순히 미래 지향을 넘어 이제 업계를 선도할 정도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모했다. 레인지로버가 자랑하는 인컨트롤(InControl) 초기에는 혁신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잔고장이 많아 실망감을 주었다. 하지만 꾸준한 개선을 통해 직관성은 높이고 오작동을 줄였다. 여기에 인텔 쿼드코어 프로세서에 힘입어 터치 반응도 빨라져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가 생활의 일부가 된 요즘 자연스럽게 모바일 폰 미러링을 구사하는 확장성도 갖췄다.

레인지로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팝업식 로터리 기어 셀렉터는 실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기계식에 비해 급발진이나 오작동의 위험 감소에도 도움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간혹 팝업이 되지 않는 오작동으로 기어 조작을 할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정교하지 못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팝업식 기어 셀렉터 문제로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 차는 꾸준한 개선을 거쳐서 그런지 시승하는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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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필러의 SVO 배지는 문을 열 때마다 이 차가 특별한 차임을 상기시킨다  


SVR과 차별화한 섀시와 파워트레인

3세대(L322)까지 오토바이오그래피의 엔진은 V8 5.0L 수퍼차저뿐이었는데 4세대(L405)들어 8기통, 6기통(SDV6 하이브리드) 디젤 등 세 가지 엔진을 선택할 수 있다. 효율과 견인능력 그리고 정숙성과 민첩한 기동 등 각각의 니즈를 커버하는 포석이다. 시승차는 그중 숙성을 거듭한 SVR의 V8 5.0L 수퍼차저 565마력이 장착됐다. 이미 검증이 완료된 ZF제 8단 자동변속기와의 조합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마력 당 하중은 4.64kg 수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에는 5.4초, 최고속도는 225km/h에 제한된다. 기존보다 성능은 좋아지면서도 실제 연비는 1.5~2km/L 정도 올라간 것을 체감할 수있었다. 연료탱크 용량은 104L로 항속거리 역시 150km 이상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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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휠베이스지만 뒷좌석 시트에서 충분히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보어와 스트로크의 길이가 같은 스퀘어 엔진 특유의 빠른 반응과 경쾌한 회전이 특징이다. 다소 구식이지만 그만큼 개량을 거듭해 높은 신뢰성으로 마니아들을 매료시킨다. 그런데 같은 엔진인 SVA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두 차에 쓰인 세팅과 방향이 약간은 다르다. SVR이 하드코어 스포츠 주행에 비중을 뒀다면 SVA는 같은 속도로 달려도 좀 더 부드러운 질감이다.

출력 전달 과정과 섀시 세팅 전반에 운전자와 탑승자의 우아함과 쾌적함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 차의 최고시속을 225km로 묶어놓은 것만 봐도 SVA의 성향을 알 수 있다. 2.7t에 육박하는 무게지만 넘치는 파워를 정교하게 다뤄 부드럽게 리드한다. 캐빈에서는 귀청을 때리는 날선 사운드는 이중 접합유리에 의해 절제된다. 그렇다고 정숙한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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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을 풀 플랫하면 최대 1,700L에 달하는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스티어링 감각은 가볍고 매끈하다. 동급 출력 스포츠 성향의 SUV에 비해앞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긴 편이라 약간 신경이 쓰였는데 의외로 선회는 쉽다. 여기에 에어 서스펜션 세팅은 모든 메이커 통틀어 거의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랙션 확보를 잘하고 롤 제어가 뛰어나 거구의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SVA는 온로드 주행에 초점을 맞춘 에어 서스펜션 세팅으로 주행 조건에 따라 엔진과 변속기, 디퍼렌셜과 섀시 제어를 유기적으로 관장하는 터레인 리스폰스 2, 적극적으로 롤에 대응해 승차감과 안정감을 확보하는 다이내믹 리스폰스등 첨단 주행 안정화 시스템을 힘입었다. 결과적으로 자세 제어 능력과 저속 유연성 및 고속 안정감 모두 눈에 띄게 좋아졌다. 높은 전고임에도 롤과 피치가 기존보다 나아졌다. 덕분에 좁은 와인딩 로드에서도 속도를 높여도 한없이 편안했다. 이 차의 옥에 티는 타이어다. 순정 굿이어 이글 F1 에이시메트릭 SUV-4X4 타이어는 빗길 접지력 확보 및 제동성능은 훌륭하지만 마른 노면에서는 이 차의 성능을 받쳐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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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4세대도 이제 계절로 치면 가을과 겨울 사이에 접어들었다. 숙성에 숙성을 거듭한 플랫폼과 꾸준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업데이트로 완성도를 높였다. SVA는 쇼퍼드리븐을 염두에 두었지만 오너드리븐카로도 손색없다.

탁 트인 시야로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는 우월한 뷰를 느끼고 싶거나 스트레스 없이 호쾌한 드라이빙이 가능하면서도 편안함과 쾌적함을 수준 높게 집약 시킨 차가 필요하다면 더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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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7c2563b187318d89a9681d46811ebe_1579757333_3694.jpg 글. 심세종 칼럼니스트.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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