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가 진짜 마지막 롤스로이스야, ROLLS-ROYCE NEW SILVER SPUR
2020-02-24  |   38,650 읽음

이 차가 진짜 마지막 롤스로이스야

ROLLS-ROYCE NEW SILVER S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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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실버스퍼 최종형을 만났다. 80년대에 데뷔해 2000년 단종되기까지 3번의 변화를 맞았던 중 마지막 버전이다. 실버스퍼의 4세대 격이라 원래는 모델명 뒤에 마크 IV(4)가 달리는데, 동북아 쪽에서 숫자 4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뉴 실버스퍼’가 공식 이름이 되었다. 굿우드가 아닌, 크루(Crewe) 공장에서 생산된 최후의 롤스로이스 중 하나다. 


기자의 드림카를 만나다

평소 영타이머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기자는 지나가다가 각진 차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막상 좋아하는 차를 꼽자면 사실 몇 대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 W116 SEL 북미 버전, BMW E32 7시리즈를 좋아한다. 요즘 기준에서 결코 큰 사이즈가 아니지만 당시 최고급 차로서 디자인은 위엄이 넘치기 때문이다. 정작 제일 좋아하는 차는 따로 있지만 워낙 진입장벽이 높아서 언급을 잘 안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지인의 지인을 통해 롤스로이스 실버스퍼를 시승해볼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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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를 개방하자 수놓은 크롬을 통해 천상에서 신전으로 내려온 플라잉 레이디. 코치라인과도 잘 어우러진다


실버스퍼라는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일생일대의 기회인지라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 자세한 연식과 정보를 얘기해주지 않아 초기형 아니면 중기형이라고 생각했다. 메일로 몇 장의 사진을 받았는데 프론트 그릴, 전-후면 범퍼의 형상으로 보니 최종형이다. 더구나 당시 롤스로이스의 정식 수입사였던 인치케이프를 통해서 들어온 차였다. 족보가 확실한 실버스퍼라는 말이다. 실버스퍼는 1980년에 데뷔해 2000년에 단종했다. 3번의 변화를 맞이했는데 초기형(1세대), 중기형(2세대), 후기형(3세대), 최종형(4세대)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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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형은 A필러에 달린 크롬 백미러, 작아진 플라잉 레이디, 높이가 5.08cm 줄어든 프론트 그릴, 통합형 범퍼 등이 들어갔다. 틴팅이 되지 않아 화사한 코널리 가죽을 밖에서도 볼 수있다


앞서 정말 좋아하는 차가 사실 실버스퍼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은 기자의 4자리 비밀번호는 모두 6748이다. 실버스퍼의 V8 엔진 배기량(6,748cc)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실버스퍼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최종형을 으뜸으로 꼽는다. 여기에 로얄 블루 외장, 베이지색 실내, 에버플렉스 루프(외관의 지붕과 필러를 가죽으로 덮은) 미적용, 논-터보 구성을 선호한다. 최종형에서 자연흡기는 96년식이 유일하다. 물론 파워트레인과 디자인이 동일한 뉴 실버스피릿(New Silver Spirit)과 실버던(Silver Dawn)도 있는데, 실버스피릿은 숏보디, 실버던은 실버스퍼3(후기형)의 스페셜 버전이다. 실버던은 롱휠베이스 구성으로 실버스퍼와 거의 비슷하지만 기함은 파이널 버전의 뉴 실버스퍼였다. 97년부터는 과급기를 얹었는데, 사실 V8 6.75L OHV 유닛은 과급 없이도 힘이 넉넉한 엔진이다. 당시 어떻게든 신형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에만 가능했던 디자인과 소재

익명의 오너가 제공한 실버스퍼가 마곡나루역에 도착했다. 전통의 쭉 뻗은 코치 라인과 늘씬한 실루엣은 최신 차의 풍만하고 기교 가득한 모습과는 비교불가다. 프론트 그릴은 90° 각도로 우뚝 서있다. 신형 롤스로이스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수직으로 세우기보다는 둥글게 해 포스가 예전만 못한게 사실이다. 게다가 프론트 그릴에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를 최소화해 고급스러움도 다소 떨어진다. 아울러 벤틀리 그릴 역시 플라스틱 소재가 들어간다. 안전만큼은 과할수록 좋다는 데 동의는 하지만 보행자 사고를 염두에 두니 소재와 디자인 제약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고 보면 희귀한 롤스로이스와 사고 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정차 구역에서 잠시 주차를 하고 이 차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평범했던 주변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좋은 디자인은 주변 분위기까지 바꾼다는데, 이 차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롤스로이스는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변화가 큰 메이커는 아니다. 실버스퍼만 보더라도 초기형에 3단이었던 자동변속기가 중기형 끝물에 4단 변속기로 바뀐 점과 세대별 출력 상승 외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대신 최종형에서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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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시보드 레이아웃. 게다가 미니멀해 버튼이 많지 않다. 호두나무 베니어는 데칼코마니 형상으로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이상한 게(?) 보이기도 한다. 크롬 메탈의 블로 벤트는 손끝으로 치면 청아한 소리가 난다


프론트 그릴 상단에 자리 잡은 플라잉 레이디는 기존보다 크기가 20% 감소했다. 여담으로 보행자 안전을 고려해서 현행 롤스로이스 역시 이 마스코트가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실버스퍼의 라디에이터 그릴 높이도 5.08cm가 낮아져 한결 모던한 인상이다. 플라잉 레이디는 손으로 힘주어 누르면 쏙 들어간다. 지금처럼 자동 팝업식이 아니다. 어느 국내 유튜버가 ‘마개조’ 수준의 2세대 실버스퍼(리무진 버전이라고 말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소개하면서 엠블럼이 자동으로 솟아오르고 다시 들어간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틀린 정보다. 그 차는 개조한 것이다. 순정 실버스퍼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당시 플라잉 레이디는 고정식이었지만 그릴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은 보행자 사고 시 데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범퍼는 5마일 범퍼 형상이었는데 이 차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범퍼를 갖췄다. 게다가 안개등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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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트림 만으로도 이 차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치품인지를알 수 있다. 코널리 가죽, 호두나무 베니어, 크롬 재떨이와 시가잭, 윌튼제 울이 몽땅 들어갔다. 게다가 끝단 역시 코널리 가죽으로 파이핑 마감을 더했다


제발! 롤스로이스의 상징은 V12가 아니라고

보닛은 앞쪽에 힌지를 두고 반대 방향으로 열린다. 멋지다는 것 외에는 딱히 장점이 없어 요즘에는 잘 안 쓰인다. 현행 롤스로이스 역시 일반적인 방식으로 개폐가 된다. 당시에는 오너가 기본적인 경정비를 할 때도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품위를 지켜주기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분명 롤스로이스는 쇼퍼드리븐의 대명사인데 오너가 왜 정비를 하느냐 반문하겠지만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롤스로이스라 해서 운전대를 잡지 못할 이유도 없다. OHV 엔진의 박동과 음색은 직접 운전할 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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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 왼쪽에 위치한 시동을 포함한 전조등 조작계


거대한 대배기량의 심장이 들어갔지만 엔진룸이 드넓어 발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V8 6.75L OHV 엔진은 오랫동안 롤스로이스를 상징했던 심장이다. 4.10인치(104.2mm)의 보어 사이즈를 뜻해 L410으로도 불리며 현행 벤틀리 물싼까지 이어진다. 반면 지금의 롤스로이스는 BMW 7시리즈에서 파생된 N74 계열이 들어간다.


적잖은 사람들이 롤스로이스의 상징을 V12 엔진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롤스로이스 소유권을 두고 폭스바겐과 BMW가 인수 경쟁을 벌이기 직전을 시작으로 아주 잠깐 BMW가 V12 유닛을 롤스로이스에 공급했다. 당시 BMW E38 750의 유닛이 탑재된 실버세라프(Silver Seraph)는 실버스피릿의 후속 모델로 데뷔를 했지만 북미에서 저조한 판매를 보였다. 당시 고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데는 BMW 엔진이 한몫했다. 환경규제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V12 5.4L 유닛은 실버세라프와의 궁합이 썩 좋지 못했다. 5,000rpm에서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특성 때문에 기존에 힘들이지 않고 차를 움직였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40년간 V8 OHV에 익숙했던 고객들이 매료될만한 차는 아니었다. 실버세라프의 북미 판매가 기대치에 못 미치자 실버스퍼의 생산량을 늘려 판매 부진 극복을 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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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역시 호화로움의 절정. 프레임과 맞닿는 부분은 보통 고무 재질을 쓴다. 한데 이 차는 코널리 가죽으로 파이핑 마감했다. 최신의 팬텀과 물싼도 이 정도로 소재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


우리 정서로는 구형 모델을 신차로 산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지만 이쪽 세계는 매우 보수적이라 족보와 스토리를 철저하게 따진다. 이들에게 혼종 상품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BMW로 매각된 롤스로이스는 비교적 잘 팔린다. 이유로는 첫 번째, 오너 자격 심사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오너 적격 심사가 굉장히 엄격했는데 이제는 사이비 교주든 범죄자든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차가 되었다. 두 번째로는 신흥 부자의 등장이다. 이들은 엠블럼에 집착하는 부류일 확률이 높다. 게다가 자동 팝업식 플라잉 레이디, 휠캡에 무게 추를 달아 바퀴가 굴러가도 더블R 로고를 똑바로 유지시키고, 도어에는 우산까지 넣는 등 기막히게 마케팅을 잘한 탓에 어느새 이런 요소들이 롤스로이스의 시그니처로 굳어졌다. 과거 롤스로이스마저 전부 그랬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으니 결과는 대성공이다. 게다가 12기통 엔진의 배기량을 늘려 전통의 6.75L로 똑같이 맞췄다. 하지만 DOHC 엔진 특성상 회전 질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실제 타보면 오히려 벤틀리 물싼 쪽이 오리지널 롤스로이스에 가깝다. 당연하겠지만 물싼의 엔진 베이스가 바로 이 차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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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대칭 무늬의 피크닉 테이블. 시트 등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 프레임 역시 호두나무다. 게다가 시트를 얇게 만드는 요즘차와 달리 정직한 두께가 들어가 착좌감이 뛰어나다


진또베기 롤스로이스의 3가지 요건

롤스로이스의 역사와 매각 이야기까지 다루려면 지면이 부족하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론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듯 롤스로이스의 핵심 포인트는 3가지다. 크루 공장, V8 6.75L OHV, 코널리 가죽 말이다. 지금은 벤틀리가 안주인이된 크루 공장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의 공을 톡톡히 세운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 유명한 ‘멀린 엔진’이 생산되었다. 영국 공군 전투기로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최후의 방어선을 담당했던 스핏파이어의 심장이다. 무려 2만5,000기 가량이 여기서 제작되었다. 연합군의 승리로 종전 후 항공 쪽은 예전의 더비로, 자동차는 크루로 둥지를 옮겼다. 초기에는 맨체스터, 더비, 북미 메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서 차량을 생산했다. 롤스로이스는 여러 공장을 거쳤지만 그중에서도 크루 공장을 첫손에 꼽는 이유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요소인 V8 6.75L OHV 엔진은 1959년에 등장한 L시리즈 엔진으로, 처음에는 6.25L였다가 1970년부터 지금의 6.75L로 키웠다. 이 엔진 역시 롤스로이스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구동계다.


고급 가죽의 대명사인 코널리(Conolly)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애스턴마틴, 재규어 등에 두루 쓰였다. 당시 스칸디나비아 쪽에 펜스와 모기가 없는 곳에서 방목시킨 소의 가죽만 고집했다. 이렇게 해야 가죽에 상처가 없기 때문이다. 코널리는 엄격한 품질 기준으로도 유명하다. 품질, 출처, 나이까지 세세하게 따지고 그 외에도 12개의 검사를 거친다. 기공 없는 스킨에다가 두꺼우면서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인 코널리 가죽은 롤스로이스의 오랜 파트너였다. 비록 경영 악화로 2002년에 파산했지만 다행히도 최근 생산을 재개했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서술한 3가지 요건 모두 유서가 깊은 역사성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차가 바로 실버스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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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는 V8 6.75L OHV 유닛. 시승차는 1996년식으로 자연흡기 엔진이다. 이 심장은 현행 벤틀리 물싼에도 탑재된다


원가절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초호화판

도어 손잡이를 당기는데 상당한 무게감과 견고함이 느껴진다. 여태까지 타본 차중 가장 묵직한 도어다. 도어 실은 수퍼카만큼이나 두껍다. 뿐만 아니라 1열 시트의 두께도 엄청나다. 시트를 얇게 만들어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꼼수 따위는 찾을 수 없다. 시트, 천장, 모든 필러, 선바이저, 스티어링 칼럼, 손이 닿지 않은 곳까지 구석구석 코널리 가죽으로 마감했다. 바닥과 트렁크는 전부 최고급 윌튼제 울 카펫으로 치장했다.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은 페라리 F355와 유사하다. 대시보드는 가장 햇빛을 많이 받는 부분인데도 관리를 잘한 덕에 가죽 마감에 변색이나 변형이 전혀 없다. 센터페시아와 센터 콘솔의 호두나무 베니어는 클리어가 깨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데칼코마니 형상으로 좌우 대칭이다. 크루 공장의 장인들이 호두나무 베니어 무늬를 선별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

시동을 거니 V8 대배기량의 향연이다. 너무나도 정숙한 요즘 세단과는 달리 박력이 느껴진다. 오르간 타입의 액셀 페달을 밟자 차가 미끄러지듯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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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크루 공장 장인들의 조각 솜씨는 정교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차에 들어간 GM제 하이드라매틱 4단 변속기는 미션 슬립이나 변속 충격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심지어는 변속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동시대 미국제 자동변속기는 슬립이 기본이었는데 실버스퍼는 신기하게도 그런 증상이 없다. 하이엔드 럭셔리 쪽은 예민한 고객들 때문인지 확실히 트랜스미션 세팅을 달리하는 것 같다. 속도를 올리니 오히려 저속 때 보다 구동계 소음이 줄어든다. 2열 시트는 독립식 리클라이닝이 지원이 되어 편하게 자세를 잡을 수 있다. 신호 앞에서 대기하는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더구나 시승차는 틴팅이 되어있지 않아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좋다는 차를 많이 타보았지만 이만큼 시선을 끌어모으는 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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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답게 C필러가 굉장히 두껍지만 늘씬한 실루엣이다. 원래는 값비싼 화이트 월이 있는 AVON 타이어가 끼어있지만 여름용이라 다른 걸 장착했다. 유심히 보면 타이어 캡 역시 메탈 재질. 어느 유튜버가 우스꽝스러운 '마개조' 된 2세대 실버스퍼 C필러에 달린 엄청 큰 원형 더블R 배지에 감탄하지만 순정은 절대 그런 배지가 안 달린다


다시 출발하는데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프론트 노즈의 윤곽이 가히 예술이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크롬 가니시와 우뚝 서있는 플라잉 레이디는 운전자로 하여금 저절로 우월함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둥근 노즈 중앙을 가로지르는 크롬 가니시가 없는 8세대 팬텀을 탔을 때도 이런 극적인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타면 탈수록 BMW 유닛이라는 느낌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실버스퍼 쪽이 진짜 롤스로이스의 아우라를 진하게 풍긴다. 노즈 안에 역사적인 심장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V8 롤스로이스의 낙동강 오리알 신세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미네랄 오일이 부족하다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이 차는 셀프 레벨링 유압식 리어 서스펜션이 달려 오일 체크가 중요하다. 게다가 브레이크 오일과도 공유한다. 그래서 서비스 센터에 입고하려고 오너와 통화를 했는데, 이 차는 문정동에 있는 벤틀리 서비스 센터로 입고시켜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한때 한 지붕 아래에 있었던 건 알지만 이 차가 왜 롤스로이스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아보니 BMW가 크루 공장을 인수하지 못해 차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차대번호가 조회될 리도 없고 관련 부품도 없을 게 뻔하다. 대신 벤틀리 센터에서 차대번호 조회는 물론 부품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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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서 보는 맛이 일품인 노즈. 노즈의 윤곽,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크롬 가니시, 우뚝 서 있는 플라잉 레이디의 조화는 가장 높은 위치의 신분을 체감해준다


재밌는 일화로는 벤틀리 센터 직원 중 이 차를 처음 본 사람은 보통 “여긴 벤틀리입니다. 성산(롤스로이스 센터)으로 가세요”라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이라 그런지 직원에게 굳이 설명 안 하고 “네” 답변만 하고 조용히 데스크에 가서 A/S 등록하고 라운지에 앉아 있으면 아까 그 직원이 민망해한다는 것이다. 예전 롤스로이스 오너 대부분이 겪는 고충이다.

대수가 많지는 않지만 정식 수입된 차에 한해서는 벤틀리와 공조해서라도 서비스를 지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 헤리티지를 강조한다고 예전 롤스로이스를 홍보에 적극 활용하면서도 정작 A/S에는 왜 이리 인색한지. 하루빨리 타협점을 찾지 않으면 그저 롤스로이스 껍데기만 씌운 BMW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헤리티지에는 그에 어울리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반납할 시간이 가까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차를 세웠다. 생각해보니 시승차는 내가 딱 원하는 구성의 트림이었다.

갑자기 이 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생겼다. 실제로 사고 싶어서 물어보니 절대 안 판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내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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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실버스퍼와 함께 하면서 영국 크루 공장의 철학과 곧은 장인 정신을 체험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이만큼의 감동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더구나 롤스로이스 영광의 중심에 있었던 크루의 시대 끝에서 나온 실버스퍼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가치를 더해갈 것이다. 누가 뭐래도 진정한 ‘최후의 롤스로이스’는 코니시 5와 뉴 실버스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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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ced2c9493521ad4e8124b005c7faef_1582528196_9743.jpg글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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