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스 클래식에서 점점 멀어지는 포르쉐 911 카레라S
2020-05-21  |   17,665 읽음

PORSCHE 911 Carrera S 

타임리스 클래식에서 점점 멀어지는 포르쉐 911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2299.jpg

1963년 데뷔한 포르쉐 911이 8세대를 맞았다. 카레라 버전은 자연흡기 유닛만 들어갔는데 991.2부터 카레라에도 터보차저 도입으로 성능과 연비 효율을 끌어올렸다. 게다가 엔진 위치를 앞으로 당겨 미드십 레이아웃에 가깝다. 개선된 파워 트레인을 탑재한 신형 992는 기존보다 나아졌을까? 


포르쉐와 애플의 공통점은 신형을 공개할 때는 무작정 혁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전 신기술보다는 검증받은 걸 채택하는 식이다. 다소 열세에 있는 스펙 수치는 가성비 논란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실질적인 성능 테스트에서는 늘 경쟁자를 압도한다. 이것이 바로 두 메이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게다가 911과 아이폰의 타임리스 디자인은 오래 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2977.jpg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부모님 덕분에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일찍 외제차를 접했다. 등굣길에 교문 앞 S클래스에서 내리는 모습은 또래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지금도 만나면 늘 안줏거리가 된다. 가끔은 공랭식 911과 SL을 탈 때도 있었다. 그중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차는 911 카레라였다. 콤팩트한 구성이지만 강력한 성능이라는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만약 매물이 나온다면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차의 실내, 가죽의 냄새까지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야 국산차도 워낙 좋아졌지만 1990년대는 그야말로 하늘 위의 존재라 타는 맛이 절로 나던 시절이었다. 국산차는 대관령이나 추풍령 등 긴 고갯길이나 경부고속도로에서 빌빌대기 일쑤지만 독일차는 중간에 멈추고 출발하더라도 쉽게 속도가 올랐다. 게다가 외제차 중에서도 성능으로 으뜸인 911은 과장을 보태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3787.jpg

디지털 클러스터가 달려 내비게이션을 쉽게 볼 수 있다. 원형 스티어링 휠을 여전히 고수해 파지감이 D컷보다 우수하다 


공랭식 911에 대한 기억 

기자는 G-시리즈, 930, 964, 993(세대별 911 코드네임) 등 거의 모든 공랭식 911을 경험했다. 때는 90년대, 나이가 어린 탓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동승하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수직으로 솟아 오른 헤드램프에서 A필러까지 수평으로 이어진 프론트 펜더는 수퍼맨이 양팔을 쭉 뻗은 형상이었다. 윈드실드는 곧추서 있고 루프에서 리어 범퍼로 이어지는 패스트백 라인은 ‘타임리스 디자인’ 911을 상징했다. 노즈와 트렁크는 푹 꺼져있어서 엔진이 어디에 달려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백미다. 트렁크 자리에는 RR 구동계를 배치했다. 964 이전까지는 앞이 가볍고 네 바퀴 굴림이 아닌 탓에 핸들 조작이 느슨했다. G-시리즈와 930은 파워스티어링(964부터 탑재)도 안 달렸다. 그래도 주차할 때를 빼고는 조작의 어려움이 없었다. 달릴 때 조향감은 오히려 경주차 느낌을 진하게 풍겼다. 코너에서 액셀 페달을 깊숙이 밟고 카운트 스티어를 하면 꽁무니를 쉽게 날렸는데, 포르쉐 파일(Porschephile)이라면 이 강렬한 맛에 중독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론트 그립이 불안해 앞에 벽돌을 싣기도 했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5444.jpg

LED 매트릭스를 더한 헤드램프는 똑똑하면서 엄청난 광량을 제공한다 


996부터 본격적인 현대화 

57년의 911 역사상 두 번의 격변이 있었다. 996과 991에서 말이다. 1997년 달걀 프라이 눈매로 놀림을 당하던 996은 엔진을 공랭식에서 수랭식 DOHC로 바꾸고 다양한 전자 장비를 더했다. 덕분에 무게는 늘고 차체 사이즈는 커졌지만 환경·소음 규제를 충족시키고 연비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간 911을 상징했던 원형 헤드램프와 공랭식 심장이 사라진 탓에 수많은 포르쉐 파일에게 외면을 받았지만 비교적 고출력 엔진을 편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여 판매 성적은 좋았다. 여기에 박스터와 카이엔으로 라인업을 강화해 부침을 겪던 포르쉐를 기사회생시켰다. 


997.2에 이르러 직분사 엔진과 DCT 변속기가 도입되고, 2012년 991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교체를 했는데, 핵심은 바로 RR 구동계를 기존보다 76mm 전방에 배치해 좀 더 미드십에 가깝게 바꾼 레이아웃이다. 게다가 후기형에서는 카레라와 카레라 S 등 기존의 자연흡기 엔진을 새로운 터보 유닛으로 교체했다. 배기량을 3.0L로 줄이면서도 강력한 토크를 넓은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연비와 배출가스도 동시에 개선했다. 


992의 첫 느낌 

개인적으로 에지가 사라진 996부터 근래의 911 디자인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992 역시 뚱뚱한 인상이 썩 내키지 않는다. 911 시그니처 디자인의 명맥을 유지한 건 대단하지만 복잡한 구동계와 각종 전자 장비들이 대거 도입되고, 차체 사이즈가 비대해져 예전의 콤팩트한 매력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게다가 오목해진 노즈는 프론트 엔진처럼 보인다. 991은 비교적 적당히 넓고 잘록했지만 신형은 라이트 그래픽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6309.jpg

타이칸에서 가져온 기어레버는 시프트 기능을 빼서 심심한 구성이지만 조작계가 한결 깔끔해졌다 


시동을 거니 엔진이 깨어나면서 엇박자의 털털털 배기 사운드를 토해낸다. 가변 배기 버튼을 누르면 사운드는 증폭되지만 예전 공랭식 포르쉐를 억지로 재연하는 소리다. 원형의 스티어링 휠을 여전히 고수해 파지감이 D컷보다 우수하다. 게다가 코어에 달린 드라이브 모드 로터리 셀렉터의 위치도 직관적이다. 가운데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을 누르면 20초 동안 부스트 모드다. 20초간 엔진 반응과 변속기 타이밍 등을 쥐어짜 내 추월 가속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계기판은 전통적인 5련 미터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중앙에 아날로그 타코미터를 두고 양옆에 2개의 디지털 클러스터를 배치했다. 가장자리 클러스터는 림에 가려 안 보이지만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기존 알칸타라 기어노브가 아닌 타이칸에서 가져온 작은 기어레버는 장난감 같은 구성이지만 널링 메탈이 고급성을 살렸다. 한데 패들시프터와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다. 대신 시프트 게이트 부근의 복잡한 조작계가 한결 깔끔해졌다. 센터페시아는 토글스위치로 PDCC, DSC OFF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 카레라 S는 1억6,000만원 대인데 시승차는 옵션이 들어가 2억이 훌쩍 넘는다. 덕분에 크로노 패키지가 달리고 대시보드, 시트, 도어에도 좋은 가죽이 들어갔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7578.jpg

방전이 되면 전동식 트렁크는 열 수 없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커버 안에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하남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차를 입고시켰다. 1시간을 DRL만 켜놓은 상태로 촬영을 하는데 느닷없이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이 차는 다양한 전자제어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 납축전지가 아닌 리튬이온 배터리를 채택했다. 이 배터리는 프렁크(앞쪽 트렁크)에 위치해 있는데, 전동식이라 열리지가 않았다. 


아직 생소한 완전 신차이다 보니 보험 서비스가 아니라 결국 대치 센터에 있는 포르쉐 미캐닉이 도착하기까지 2시간 가량을 허비해야 했다. 강원도 야외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미캐닉은 배터리 특성상 시동 걸지 않은 상태로 전원을 오래 켜놓으면 안 된다는 조언을 했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시동을 걸었지만 다시 방전될까 봐 실내에서 배출가스를 마시며 작업을 이어가야 했다. 자동차의 전자 장비가 고도화될수록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그 주체가 911이라는 사실이 더욱 서글펐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877.jpg

빈틈없는 제동 성능은 운전자를 안심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고정하고 론치 컨트롤을 켰다. 파란불 신호에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니 차가 로켓처럼 튀어나간다. 이 차는 최고출력 450마력이지만 체감상 500마력 후반은 되는 느낌이다. 타코미터 바늘이 금세 7,000rpm을 때리고 순식간에 시프트업. 

공도에서는 패들 시프터의 조작이 굳이 필요 없다. 작다고 불평했던 기어노브에 대한 아쉬움도 어느새 싹 사라졌다. 와인딩 로드에 올라 PDCC(PORSCHE DYNAMIC CHASIS CONTROL)를 켰다. 스태빌라이저를 인위적으로 비틀어 롤링을 줄이는 장비다. 그런데 본래 섀시와 댐퍼가 워낙 뛰어나 공도에서는 그 진가를 온전히 체감할 수 없었다.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을 누르니 제한된 시간의 부스트가 마치 레이싱 게임을 연상시켰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7_9924.jpg 


점점 디바이스화 되어가는 911 

신나게 몰다 보니 갑작스레 ‘감소된 엔진 출력, 주행 허용됨, 워크샵 방문’이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차가 스스로 멈춰 세운다. 고속도로였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간신히 차를 움직여 다시 출발하는데 엔진은 리미터가 걸린 듯 엑셀 페달을 꾹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시동을 껐다 키니 출력 봉인은 해제되었지만 혹시라도 차가 퍼질까 봐 제대로 밟지 못했다. 거의 모든 공랭식/수랭식 포르쉐를 타봤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더 당혹스러웠다. 단지 시승차만의 문제였으면 좋겠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복잡해지는 파워 트레인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가 아플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8_0608.jpg 


기자는 누가 뭐래도 포르쉐파일이다. 992는 신형답게 성능만큼은 일취월장했다. 다만 더 이상 ‘타임리스 클래식’은 아닌듯하다. 911의 진화는 필연적으로 차체의 대형화와 고도의 전자 장비화를 불러들였다. 비단 포르쉐나 911만의 일이 아니라 거의 모든 메이커, 모든 모델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통해 얻은 이득은 분명하다. 역대 어떤 911보다도 강력하고 안락하며, 똑똑한 데다 연비까지 뛰어나다. 다만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모델이다 보니 거부감을 지울 수가 없다. 클래식 911의 종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 말이다. 


9eec68c996d8b8c5675fc71a570650be_1590039288_1181.jpg 


글 맹범수 기자 사진 최진호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