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으로부터 Born To Be Wild
2018-05-10  |   15,085 읽음

군용으로부터

Born To Be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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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날이 적당히 풀리면 그만큼 활동도 과감해지기 마련. 움츠려 있기보다는 따스한 공기와 부딪히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자연스레 패션이나 액세서리 역시 좀 더 아웃도어 성향을 띠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멋도 챙겨야 나중에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법. 멋과 실용성을 한껏 살린 시계와 자동차, 그 시작점에는 ‘군용’이 있다.


카무플라주, 더플백, 위장막, 판초 우의······ 군필자들이 들으면 자칫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는 군대 관련 물품들이다. 그런데 이들 군용 물품이 실은 실용성의 대표주자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군대가 어떤 곳인가. 언제 터질지 모를 전시 상황을 대비,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훈련하는 곳이다. 부딪히고 넘어지며 젖는 일은 다반사. 이런 환경을 상정하고 만든 제품이라면 적어도 쉽게 망가지진 않을 거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수통이 아직 군대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SUV의 원조, SINCE 1941

지프(Jeep)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SUV 또는 오프로더의 원조 격인 브랜드. 어릴 때만 해도 험로를 달리면서 키가 껑충한 차는 죄다 ‘찦차’라 부르곤 했다. 3M이 만든 사무용 테이프를 스카치테이프라 부르듯, 사륜구동 차량의 보통명사로 군림했다. 요즘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빼고는 SUV라는 이름이 대중에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 점을 감안하면 지난 십수 년의 세월 동안 SUV가 얼마나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올랐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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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에 만들어진 윌리스 MB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에는 마땅히 기동부대에서 쓸 만한 군용차가 없었다. 이에 당시 미군의 선택을 받은 지프의 전신, 윌리스-오버랜드(Willys Overland)가 모델 MA를 만들어 내놓는다. 이후 생산된 총 36만여 대의 MA는 전장을 누비며 군용차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전쟁이 끝나자 윌리스-오버랜드는 군용을 바탕으로 민간용 모델인 CJ를 개발했다. 윌리스-오버랜드는 1953년에 카이저에 인수되었고, 1963년에는 사명을 카이저-지프로 바꾸게 된다.


일찍이 하늘을 난 시계

지난 2014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우주를 배경으로 시간의 상대성을 다룬다. 그만큼 어떤 영화보다도 ‘시간’이 중요한 개념으로 나온다. 여기에 시계가 빠지면 섭섭한 일. 영화에선 줄곧 한 브랜드의 시계가 클로즈업된다. 전직 파일럿이지만 식량 부족 사태 때문에 농부로 전향한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의 손목에 감긴 시계엔 해밀턴(HAMILTON)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이 모델은 해밀턴의 항공 시계 라인업인 카키 파일럿 데이-데이트(Khaki Pilot Day Date)로 제작진이 극의 흐름에 어울리는 시계를 찾다가 최종 간택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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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카키 파일럿 데이 데이트

해밀턴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워싱턴~뉴욕 구간을 오가는 미국 최초 항공 우편 조종사를 위한 시계로 채택되며 성장을 거듭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이스턴,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등 미국 유수의 항공사들이 공식 시계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는 원활한 미군 시계 공급을 위해 해밀턴 스스로 일반 소비자용 시계 생산을 중단했을 정도라 하니 군용 시계에 대한 사명감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을 위한 해상용 크로노미터를 개발해 육-해-공 전반을 아우르는 전천후 군용 시계로 인정받게 된다.


험로 최적화 SUV, 체로키

체로키는 지프의 중형 SUV이지만 1974년 데뷔 때만 하더라도 왜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지상고가 높긴 해도 진입각과 탈출각을 덜 고려한, 전형적인 왜건으로 못 실을 게 없어 보일 정도로 길쭉한 짐칸을 가졌다. 대신 1년 뒤에는 늦게라도 오프로드 실력을 겸비하기 위해 흙받이와 차축의 사이즈를 키운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직 미완이었던 체로키는 10년 뒤 등장한 2세대부터 비로소 SUV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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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새 옷을 갈아입은 3세대에 이르러서는 초기 윌리스 MB처럼 둥그런 헤드램프, 일곱 개의 슬롯 그릴을 디자인에 적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프 패밀리 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점점 4WD 시스템을 발전시킨 지프는 2013년 5세대 체로키에 눈길, 모랫길, 진흙길, 바윗길 같은 지형의 종류에 따라 구동계를 최적화하는 셀렉-터레인(Select-Terrain) 기능을 넣었다. 알아서 챙겨주는 덕분에 운전 실력이 좋지 않아도 무난하게 오프로드를 돌파할 수 있게 됐다.

지프는 얼마 전 5세대 모델에서 부분변경을 가한 신형 체로키를 선보였다. 헤드램프 변화가 눈에 띈다. 서로 나뉘어 있던 주간 주행등과 전조등이 한 데 붙어, 좀 더 묵직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전륜 기반의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춘 신형 체로키에는 다양한 노면환경에 적응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뒷바퀴 동력을 끊어 연비를 높인다. 가격은 4,490만 원부터.


20세기 초 군납 시계를 재현하다

해밀턴은 최근 1940년대 출시된 초기 군용 시계를 복각해 내놨다. 지난 3월 말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적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 출품된 카키 필드 메카니컬이 그 주인공. 이름과 어울리게 필드(전장)를 뛰어다니는 병사의 손목에 감겨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생김새다. 38mm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실용적 케이스 크기에 질감 또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대신, 샌드블라스트 가공으로 매트한 느낌을 살렸다. 혹여 적군에 위치가 노출될까 총신을 까맣게 칠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다이얼 역시 검정색으로 진중한 분위기다. 여기에 방금 X반도에서 잘라 낸 듯한 나토 밴드는 마치 ‘나 군용 시계예요’라며 정체성을 한껏 강조하는 모양새다. 

태엽식 시계에는 손목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오토매틱 방식과 일일이 감아줘야 하는 핸드 와인딩 방식이 있는데 카키 필드에는 후자다. 원조 군용 시계의 복각판다운 선택이다. 잘 긁히지 않는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케이스를 덮어 거친 야외 활동에도 제격이다. 카키 필드의 국내 출시 가격은 59만 원대. 마침 올해는 해밀턴이 항공 시계를 만든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해밀턴의 역사적인 순간을 역사적인 모델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만족, 그 이상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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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시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카키 필드 메카니컬


글 김민겸 기자 사진 FCA코리아, 스와치그룹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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