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70년 역사를 돌아보다 PORSCHE 935
2018-11-07  |   18,335 읽음

포르쉐 70년 역사를 돌아보다

PORSCHE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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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레이싱 포르쉐 중 하나인 935가 서킷 머신으로 부활했다. 70주년을 기념해 77대만 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그뮌트에서는 알루미늄 보디의 작고 귀여운 스포츠카가 굴러 나왔다. 포르쉐 역사의 시작점, 356 탄생의 순간이었다. 포르쉐의 창업자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당시 전범 혐의로 프랑스에 수감되어 있었다. 대신 유능한 아들 페리 포르쉐, 다임러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료 칼 라베가 회사를 이끌었다. 베를린-로마 속도기록차 타입64의 설계를 바탕으로 폭스바겐의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뒤에 얹은 소형 로드스터는 개발 코드네임 356을 이름으로 얻었다. 창업자 페르디난트는 356 탄생 직후 세상을 떠나지만 포르쉐의 역사는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911, 944, 959 등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스포츠카 메이커 중 하나로 성장했다. 빛나는 70년 역사를 기념하는 뜻 깊은 해. 포르쉐는 한없이 높아진 팬들의 기대감에 935라는 멋진 선물로 보상받았다.  


전설적인 이름 935를 되살리다

935는 포르쉐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이름이자 1970년대 후반 서킷을 호령했던 전설적인 존재다. 다만 이번에는 레이싱카 아니라 서킷 전용 모델로 성격은 크게 바뀌었다. 70년대 초 미국 캔암 레이스에 도전하며 미국산 대배기량 V8 엔진에 대항하기 위해 터보차저 개발에 매달렸던 포르쉐는 그 노하우를 살려 911 터보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 차를 레이싱 버전으로 개량한 모델이 바로 935였다. 그룹4와 그룹5 규정을 바탕으로 개발한 934와 935는 다양한 레이스에서 활약함은 물론 르망 24시간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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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경주차 모비딕이 서킷 머신으로 부활했다


포르쉐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구나 세카 서킷에서 열린 ‘렌스포트 리유니온’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935를 공개했다. 모터스포츠와 GT카 담당 부사장인 슈테판 발리자는 “이 놀라운 차는 포르쉐 모터스포츠가 전 세계 팬에게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만큼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신형 935는 911 GT2 RS를 기반으로 한다. 도로를 달리지 않아도 되므로 도로인증을 위한 각종 장비를 제거하는 한편 첨단 레이싱 기술과 고가의 소재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게다가 특정 경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므로 규정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창립 70주년이라는 이름 아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물이다. 

일단 외형은 935라는 이름을 이어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모티프가 된 935/78의 특징적을 살리면서도 최신 공력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헤드램프를 없애 매끈하게 다듬은 노즈에는 대형 스포일러를 달고, 뒷부분을 길게 연장했다. 이렇게 뒷부분을 늘린 보디는 고속 주행에서 공기 저항을 중시한 형태. 르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실루엣이다. 차폭을 2.03m로 넓히는 오버펜더나 디스크 형태의 빨간색 휠 역시 935/78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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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GT2 RS를 바탕으로 935/78의 디자인을 되살렸다


보닛 양옆의 에어 아웃랫은 최신 911 GT3 R에서 가져왔다. 프론트 휠하우스 속의 공기를 위로 뽑아내 앞쪽 다운포스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독특한 사이드 미러 디자인은 르망 GT 클래스 우승차인 911 RSR, 티타늄 테일파이프는 50년 전 경주차인 908을 연상시킨다. 폭 1.9m의 리어윙은 공력 밸런스를 고려해 디자인했는데, 익단판 뒤쪽에는 최신 르망 머신 919 하이브리드처럼 세로로 길게 LED 램프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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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리어윙 끝단에는 르망 경주차용 LED 브레이크 램프를 달았다  


구동계와 하체는 911 GT2 RS가 기반 

롤케이지로 둘러싼 실내는 어깨까지 감싸는 레카로 버킷 시트, 6점식 하네스를 갖추어 레이싱카에 가까운 모습이다. 대시보드 중앙에는 코스워스제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박아 넣었으면서도 좌우로 아날로그 미터를 배치했다. 이밖에 퀵 릴리즈가 달린 카본제 D컷 스티어링과 경량 리튬이온 배터리와 에어잭, 전용 소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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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릴리즈 스티어링과 디지털 디스플레이, 롤케이지로 경주차처럼 꾸민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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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 머신답게 에어 리프트를 갖추고 있다 


구동계와 메커니즘은 최신 911(991.2)의 GT2 RS를 바탕으로 삼았다. 지난해 굿우드에서 공개된 911 GT2 RS는 700마력의 출력으로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양산 911 시리즈 최고속인 6분 47초 3의 랩타임을 기록한 바 있다. 수평대형 6기통 3.8L 트윈터보 700마력 엔진은 7단 PDK와 조합해 뒷바퀴를 굴리고, 앞 6피스톤, 뒤 4피스톤의 알루미늄 모노블록 캘리퍼와 대구경 스틸 디스크(앞 380/뒤 355mm)로 안정적인 제동력을 확보한다. 센터록 방식 18인치 휠에는 미쉐린제 앞 29/65-R18, 뒤 31/71-R18 사이즈의 레이싱 슬릭 타이어(파일럿 스포츠)를 조합했다. 카본 보디 등으로 무게를 90kg 덜어내는 한편 PSM(Porsche Stability Management)은 내장된 트랙션 컨트롤과 ABS를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끌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은 70만1948유로(9억1,000만원). 77대 한정 생산되며 내년 여름부터 인도가 시작된다. 935의 워크스 컬러였던 마르티니 스트라이프는 옵션으로 선택이 가능하다. 


911 궁극의 서킷 진화형, 935 

935 탄생의 기반이 되었던 FIA의 그룹5 규정은 60~70년대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거쳤다. 포르쉐 917이나 페라리 312처럼 순수 레이싱카였던 적도 있지만 1976년부터는 양산차 베이스의 'Special Production Car'로 바뀌어 지금의 GT카 같은 성격으로 바뀌었다. 당시 그룹4와 그룹5는 양산차를 크게 뜯어고쳐 거의 레이싱카 수준으로 변모시켰던 탓에 ‘실루엣 포뮬러’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모양만 시판차이지 내용물은 순수 경주차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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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을 베이스로 했던 935는 포르쉐의 걸작 경주차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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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터보의 레이싱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카레라 RSR 터보. 935의 뿌리가 되었다 


당시 그룹5는 최저 생산대수 400대를 만족시키면 되었기 때문에 고성능 스포츠카 투입이 가능했다. FIA로서는 많은 메이커의 참여를 의도한 개정이었지만 실제로는 포르쉐 935라는 괴물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에 실제 WSC의 싸움은 그리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935는 기술적으로 카레라 RSR 터보 2.1에 바탕을 두고 개발되었다. 원래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던 카레라 RSR은 2.1L 터보 엔진을 통해 터보 엔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935는 매우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졌는데, 초기형인 935/76에는 양산차와 같은 개구리눈 헤드램프가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기저항을 줄이려 매끈한 플랫노즈 형태를 취하고 램프는 범퍼 양쪽에 달았다. 엔진은 수평대향 6기통 2.9L 터보 590마력. 1976년 무젤로에서 데뷔전 승리를 거둔 이후 워크스팀은 물론 다양한 프라이비트팀에 공급되어 맹위를 떨쳤다. 일부 프로토타입 레이싱카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는데, 1979년 르망에는 종합 우승(크레머 K3)까지 손에 넣는다. 

신형 935의 모티프가 된 모비딕은 935/78의 애칭으로 1978년 시즌을 위한 모델. 워크스형 935의 마지막 모델로 고속주행을 의식해 뒤로 길게 연장한 보디가 특징이다. 엔진은 수랭식 헤드와 4밸브로 개량하고 배기량은 3.2L로 늘려 르망에서 750마력, 단거리 경주에서는 845마력이 가능했다. 당시는 르망 사르트 서킷은 뮐산 직선로에 시케인이 없어 살짝 늘어난 무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 시계방향인 사르트 서킷을 의식해 운전석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모비딕의 78년 르망에서 예선 3위, 결승 8위를 기록했다. 이후 독일 DRM 시리즈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르망에 맞추어 개발된 탓에 일반 서킷에서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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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935는 935의 최종 버전인 935/78 모비딕을 모티프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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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르망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크레머 K3. 사실상 935였다


935는 레이싱카로 공식적으로는 도로형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문제작 형식으로 제작된 기록은 남아있다. 2014년 5월 벨기에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열린 영국 본햄 주최 옥션에서 TAG 그룹 대표인 만수르 오제가 포르쉐에 주문했던 935 도로형이 출품되었다. 당시 TAG가 포르쉐와 함께 F1 엔진을 개발(TAG-포르쉐)하는 등 사업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가능한 모델이었다. 911(930) 보디에 934의 3.3L 터보 340마력 엔진을 380마력으로 디튠해 얹는 한편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보디 패널은 935에서 가져왔다. 주문 항목이 550가지나 되어 청구서 역시도 17페이지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정확한 찻값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전례가 없던 이 특별한 935는 지금의 포르쉐 오더 메이드 서비스인 포르쉐 익스클루시브의 시발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옥션에서 23만 유로(2억9,800만원)에 낙찰되었다. 


글 이수진 편집장

사진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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