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토요타 크라운을 한 자리에, 키류 마에하라 갤러리
2018-12-20  |   27,796 읽음

역대 토요타 크라운을 한 자리에

키류 마에하라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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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업으로 삼은 이후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개중에는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지역도 여럿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키류도 그런 곳이다. 시골 동네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대규모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가득하다. 비록 작지만 시간 흐름에 따라 자동차와 사람에게 쌓여가는 추억을 직접 듣고 볼 수 있어 매우 특별했다. 


인터넷에서 처음 이곳을 알았을 때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다. 일단 키류라는 군마현 동네를 처음 들었고 인터넷에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다. 단지 “1950년대와 1960년대 토요타 크라운과 랜드크루저를 전시한 곳”이라는 안내만 있을 뿐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간략한 소개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다. 홈페이지에 있는 주소로 메일도 보내보고 한국에서 국제전화도 해 봤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와중에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소개를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키류에 가면 한 번쯤 들러볼만한 곳. 그러나 언제 개장하는지 운에 맡겨야 하고 갤러리 쪽 연락조차 쉽지 않다”고 적혀있었다. 일단 무작정 방문 계획은 잡자, 다행스럽게도 길이 열렸다. 엔스코리아를 통해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취재 날짜를 조율하고 방문 약속까지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전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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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드크루저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토요타 픽업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크라운을 모아놓은 유일한 박물관

군마현 시부카와를 거쳐 키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오래된 마을이 나타났고 편의점이나 카페 하나 없는 구석진 지역까지 들어갔다. 과연 이런 곳에 자동차 박물관이 있을지 생각이 드는 그야말로 일본의 오래된 시골 동네였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니 동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나타났다. 마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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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마에하라 갤러리. 예전 방직공장이었다 


굳게 닫힌 입구에 Maehara 20th라는 조그마한 간판을 보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근처를 둘러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오래된 시골 동네였다. 

고풍스러운 마에하라 갤러리는 왠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붕의 모양이 톱날과 닮았다 해서 톱지붕 건물이라 불리는 건물은 8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는 키류시 지역 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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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판에 등장할 정도로 유서 깊은 건물. 현재는 키류시의 지역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예전에는 방직공장(키류는 방직이 유명하다)이었던 이 건물을 마에하라 부부가 내부를 갤러리로 꾸몄다고. 약속 시각이 거의 다 됐을 무렵, 메르세데스 벤츠 A클래스가 도착하고 마에하라 부부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점에 대해 이해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크라운이 가득하다. 크라운은 토요타가 처음 독자 개발한 모델로 1955년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럭셔리 세단으로 그 입지가 지금까지도 탄탄하다. 2018년 변화를 거친 현행 모델은 크라운 15세대 모델로 그 역사만 60년이 넘는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전후 세대에게 크라운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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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남자의 상징으로 불리던 크라운은 세단을 비롯해 쿠페, 왜건 등 다양한 버전이 있었다


 그렇다고 럭셔리 세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크라운은 세단을 기반으로 쿠페, 왜건, 심지어 택시(컴포트)까지 나왔다. 지금은 예전 정도는 아니지만 크라운은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세단이다. 마에하라 갤러리가 소장한 1955년~1975년 사이 크라운 역시 당대 토요타 기술력을 집대성한 모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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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크라운의 공조장치는 레버로 움직인다


갤러리가 보유한 크라운은 총 13대. 양쪽으로 문을 여닫는 초대 크라운을 비롯해 미국 수출형, 하드톱 쿠페, 왜건 등 다양한 모델을 소장하고 있다. 모든 차에는 갤러리 주인장 마에하라 부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류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마에라하 부부는 이 건물을 처음 넘겨받아 직접 인테리어를 하고 구석구석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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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크루저 역시 일본 자동차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나이 탓에 살짝 거동이 불편한 가츠나가 마에하라(남편) 대표는 차에 얽힌 추억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초대 크라운은 의미 깊은 차입니다. 특히 양쪽으로 열리는 문은 당시 일본에선 생소했고 굉장히 실내가 고급스러웠죠. 남자의 선망을 담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크라운은 처음 등장한 후 꾸준히 그런 이미지를 유지했습니다.” 마에하라 대표는 크라운의 문을 열어 주며 운전석과 뒷좌석에 앉아도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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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크라운은 도어가 매우 독특하게 열린다.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이 차는 크라운 2세대입니다. 여기에 있는 차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차입니다. 이 차를 가지고 일본의 많은 지역을 다녔기 때문이지요.” ‘우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2세대 크라운(토요펫 크라운: 토요펫은 토요타 딜러망 중 하나로 딜러에 따라 취급 모델이 조금씩 달랐다. 1978년 이후로는 브랜드명으로 쓰이지 않는다)은 당시 미국 유행에 따라 외관에 목재 장식을 둘렀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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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황에 따라 크라운 디자인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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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라는 별명의 크라운 왜건은 마에하라 부부가 가장 아끼는 차다 

 

크라운 컬렉션 중 유일한 쿠페인 토요펫 하드톱 쿠페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다. 젊은 시절 여행을 좋아했던 마에하라 부부는 이 차를 배에 싣고 부산을 거쳐 서울까지 장거리 여행을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마에하라 대표는 “젊은 시절 여행했던 나라에서 손님이 온다고 하니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때는 나도 젊고 부인도 젊었던 시절입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추억담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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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톱 쿠페는 마에하라 부부가 한국에 직접 몰고 왔던 차다


크라운이 있는 공간 옆에는 마에하라 부인을 위한 갤러리가 있다. 오래된 느낌이 가득한 분위기 있는 소품과 그림이 걸려 있는 공간은 넓지는 않지만 마에하라 부인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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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없는 공간은 마에하라 부인의 취향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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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얽힌 다양한 소품이 가득하다. 대부분 마에하라 부부가 여행하면서 수집한 것들이거나 참가했던 이벤트의 기념품


크라운을 둘러보는 것보다 마에하라 부부의 추억담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래된 크라운과 거기에 얽힌 사연이 마무리될 즈음, 마에하라 대표는 다른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오래된 차고 느낌으로 꾸며진 공간에는 세대별 랜드크루저와 4WD 모델이 가득했는데, 자주 공개하는 곳은 아니라고 한다. 크라운과 함께 토요타를 대표하는 차종 중 하나인 랜드크루저는 1960년에 등장한 J40에 기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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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크루저 역시 일본 자동차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c76ff3bc707fd46cc694bdfd82f68cd0_1545285503_484.jpg소방차로 만들어진 랜드크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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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J56V는 1979년형이다. 1970년부터 생산된 J40의 후기형으로 FJ 크루저 초대 모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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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랜드크루저


랜드크루저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모델은 1967년 등장한 J50이며 현재는 5세대가 판매 중이다. 랜드크루저는 SUV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파생 모델로 진화했는데 북미형 렉서스 LX가 대표적이다. 크라운만큼 랜드크루저도 토요타와 일본 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모델로, 비교적 대중적이며 생산량도 많다.  

마에하라 갤러리에 있는 모든 차는 정식 번호판이 있고 언제든 주행이 가능한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오래된 차일수록 손이 많이 가지만 크라운과 랜드크루저는 대중적인 차들이라 관리가 아주 어렵진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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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가와 번호판을 부착한 2세대 크라운(MS41). 한국의 강남 번호판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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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공간에 보관 중인 랜드크루저와 4WD 트럭은 언제든 주행할 수 있는 컨디션이다 


마에하라 갤러리

마에하라 갤러리는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공간은 아니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규모나 내용을 봤을 때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화려함이나 친절한 설명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토요타 크라운을 수집해 전시한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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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는 마에하라 부인이 직접 작품을 고르고 꾸몄다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작별 인사를 건넬 때 마에하라 부부는 개인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처음에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던 부분을 신경 쓰는 듯했다. “멀리서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든 키류에 오거나 근처를 지나가면 잊지 말고 들러 주세요.” 주차장을 빠져나가 우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부부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동차와 추억을 공유하는 행복한 노부부의 모습이 변함없이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현지 코디네이터 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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