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스] 1977년형 롤스로이스 실버 레이스Ⅱ, 자동차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
2019-09-25  |   10,692 읽음

* 2003년 8월에 나온 기사입니다.


1977년형 롤스로이스 실버 레이스Ⅱ 

자동차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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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0회나 되는 <자동차생활>에 쓴 나의 시승기 가운데 롤스로이스를 시승해 본 것은 이번까지 합쳐서 네 번이다. 첫 번째는 1987년 11월 6일, 프랑스 파리의 TFI TV 방송국의 ‘Jeux Sans Frontieres’(국경 없는 게임)이란 90분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곳에 갔을 때다. 같이 출연한 우리나라 출신 가수 키메라 씨가 갖고 있던 1972년형 실버 섀도를 파리시내에서 시승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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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한국의 수입업자 도움으로 1989년형 실버 스퍼를 타본 것이고, 세 번째로 탄 차는 지난 2001년 삼성교통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롤스로이스가 생산한 차 중에서 가장 비싼 1955년형 리무진형이었다. 네 번째인 오늘은 태백에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자동차경기장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는 한국모터사이클연맹(KMF)의 신준용 회장이 일본에서 들여온 1977년형 실버 레이스(Silver Wraith)Ⅱ를 타 보게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 중의 최고 차’라고 불리는 롤스로이스를 이렇게도 다양하게 시승하는 기회를 가진 나는 실로 행운아라고 아니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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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와 롤스의 만남으로 회사 설립

1938년 팬텀Ⅲ 개량한 레이스 내놓아


이 기사를 읽는 독자를 위해서 역시 롤스로이스사의 약력과 특징을 우선 소개해보겠다. 프레데릭 헨리 로이스는 1863년 영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터보로에 있는 기관차 공장의 견습생으로 인생을 출발했다. 1884년, 21세의 이 청년은 자본금 70파운드(약 200달러)를 갖고 로이스사를 일으켰다. 그의 작은 회사는 발전기와 전기기중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외제보다도 튼튼하여 인기가 있어서 사업은 확장되어 1899년에는 자본금이 3만 파운드(약 8만 달러)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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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로이스는 프랑스제의 데코빌이란 중고차를 구입하여 더 이상 개량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이것저것 손보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동차의 구조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얻어 스스로 차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여 드디어 최초의 로이스차가 1904년 4월 1일에 나왔다. 2기통 1.8X 엔진을 얹은 차는 딴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지만 자동차판매에 익숙지 못했던 로이스는 이때 훌륭한 파트너를 얻게 된다. 그의 이름은 찰스 스트워트 롤스. 롤스는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자동차의 매력에 사로잡혀 스피드 기록 등에 도전하면서 런던에서 값비싼 수입차만을 판매하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로이스의 차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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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는 곧 로이스가 제작하는 모든 차종에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조건으로 로이스에 합류하여 1906년 3월에 롤스로이스주식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때의 자본금이 6만 파운드(약 17만 달러)였다. 롤스로이스차는 2기통뿐만 아니라 3, 4기통 엔진도 만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자동차에 얹는 엔진은 거의 모두 2기통짜리였는데 롤스로이스는 이 개념을 깨는 새로운 차원의 호화로운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것은 곧 대인기를 얻었고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열린 자동차경주까지 휩쓰는 바람에 그 성가는 날로 높아져갔다. 1904∼1907년까지 생산 총대수는 100대를 넘지 못했는데, 최초의 진정한 롤스로이스는 6기통 6.75X 40/50마력의 실버 고스트(Silver Ghost, 은빛 유령)란 이름이 붙은 차로 1906년 런던모터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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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벌써 그 유명한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본딴 라디에이터 그릴을 썼고 그 뒤 롤스로이스의 색다른 그릴은 세계 최고의 차라는 상징적 역할을 오늘날까지 톡톡히 해왔다.


실버 고스트는 조용한 엔진, 뛰어난 달리기, 높은 품질을 지녀 롤스로이스사는 ‘세계 최고의 차’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했다. 한편 1910년 롤스는 그가 타고 있던 라이트 복엽비행기가 불과 7m 상공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세상을 뜬다. 그러나 롤스로이스는 생산을 계속했고 1925년까지 6천 대의 실버 고스트가 만들어졌다. 성능이 좋고 차체가 견고하여 1차대전 때는 이 차가 장갑차로까지 이용되어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이 차로 큰 활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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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항공기 엔진제작에도 손대, 별도회사지만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은 지금도 이름이 높다. 전설적인 실버 고스트가 1920년대 이후 팬텀 Ⅰ, Ⅱ, Ⅲ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1933년, 로이스마저 세상을 하직한다. 1938년에는 팬텀Ⅲ을 개량한 레이스(Wraith)가 나왔다.


2차대전 뒤인 1949년에 실버 돈(Silver Dawn), 50년엔 팬텀Ⅳ가 나왔고 92년까지 팬텀Ⅵ로 변신한다. 1955년부터 실버 클라우드 시리즈가 65년까지 Ⅰ∼Ⅲ이 생산되었고, 66년서부터 실버 섀도(Silver Shadow)가 선보였다. 이밖에 실버 스피릿, 실버 스퍼, 카마르구 등도 생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도 롤스로이스 생산량은 많아야 1년에 1천몇백 대 수준이어서 겨우 1985년에 이르러 10만 번째 차가 나왔을 정도다. 한 대 한 대 모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차의 완성도는 완벽에 가까운 차원에 도달한다.


롤스로이스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국가원수, 귀족들이 타는 최고의 프레스티지를 가진 호화차로 군림하고 있지만 경영이 어려워져 곡절 끝에 BMW 산하에 들어갔다.


실버 레이스Ⅱ, 77년 제네바 모터쇼 데뷔

‘구름에 달 가듯이’ 안락한 승차감이 일품

약속한 날짜에 나타난 1977년형 실버 레이스Ⅱ는 남들을 압도하는 스타일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검은 차체는 요사이 만들어진 고급차의 페인트칠과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6번이나 칠하고 굽고 또 칠하고 했으니까 페인트 칠 자체가 두툼한 층을 구성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스타일의 변경을 자주하지 않고 오랜 세월 같은 스타일링을 고집해서 70년대의 롤스로이스는 여러 모델의 모습들이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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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가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타본 72년형 실버 섀도와도 이 레이스Ⅱ는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내장도 마찬가지다. 외형은 같지만 72년형 실버 섀도는 수동식인데 반해 오늘 타보는 77년형 레이스Ⅱ는 자동변속기가 컬럼식으로 운전대의 축에 달려 있다. 미국식과는 정반대인 것이 영국식(일본도 마찬가지) 교통법규와 운전석 배치 등인데 이 변속시스템만은 일본, 유럽식과도 달리 미국식을 따른 것이 약간 기이하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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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는 77년에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했다. V8 6.75X 엔진을 얹었고 단일차체 구조다. 실버 레이스는 1938년에 최초의 모델이 나와 6기통 4.3X 엔진을 달았던 것이 1955년에 이르러 4.9X로 배기량이 늘었다. 2001년에 내가 타본 삼성교통박물관 소장의 1955년형 투어링 리무진도 실버 레이스를 대형화한 것이었다.


실버 레이스Ⅱ는 겉모습도 날씬한 몸매로 변신했고 얹은 엔진도 6.75X로 커졌다. 가속판을 살짝 건드렸는데도 차는 경차 이상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튀어나가려고 한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제동장치가 엔진에 비해서 너무나 둔하다. 한번 밟으면 제동이 걸리지 않고 오히려 더 미끄러져 나가는 기분이어서 처음 이 차를 타는 사람은 약간 불안할 것 같다. 더 강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만 제동의 반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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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창을 통해 보이는 길게 뻗은 엔진뚜껑 끝에는 앞서 말한 ‘파르테논 신전’ 모습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고 그 위엔 또 하나 너무나도 유명한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엠블럼이 놓여져 있다. 이것은 1911년에 젊은 몬태구가 제안한 것을 칠스 사이크스가 날개를 달고 나는 듯한 여신 모습으로 디자인한 황홀의 영혼(Spirit of Ecstasy) 상이다. 


이것 하나만 갖고도 롤스로이스의 존재가치를 알리는데 충분하다. 어디를 가나 이 엠블럼은 바람을 가르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자동차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다. 차 안팎의 크고 작은 그 어느 부품을 보아도, 그것을 전담하여 만든 장인(匠人)들의 정성어린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크롬도금을 한 제아무리 작은 부품이라도 100년 이상 버틸 수 있는 광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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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은 역시 최고급 가죽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바느질하여 만들었기에 25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특히 좌석의 쿠션감각은 오리지널 그대로 살아 있어서 앉은 촉감이 마치 구름 위에 떠받쳐져 있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달릴 때 절묘한 서스펜션의 도움으로 어떠한 상태의 도로조건에서도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이’ 내 엉덩이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는다. 이 승차감은 영국 귀족들을 모시는 것을 기본으로 한 덕분인지 최고로 안락하다는 미국의 캐딜락과 링컨의 좌석마저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눈앞에 일자로 길게 로즈우드 패널이 달려 있는 곳에 가장 왼쪽부터 라이트를 켜는 손잡이와 시동을 걸기 위해 키를 꽂는 곳이 원형모양으로 모여있고, 다음에는 10개의 자동차 각 부위의 상태를 알리는 표식이 5개씩 두 줄로 네모나게 배치되어 있다. 이어서 그 오른쪽에는 속도계, 그 다음에는 같은 크기의 큰 원반 속에 전류, 오일, 냉각수 온도 및 연료상태를 알리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또 오른쪽에는 통풍구멍이 있고 이어서 외부온도를 알리는 계기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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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치는 딴 차에서는 볼 수가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리고 시계와 통풍구멍이 나열된 다음, 작은 물품을 수납하는 콤파트먼트로 끝난다. 패널에 달린 모든 계기는 원형으로 되어 있고, 이 시스템은 고집스럽게 70∼90년대의 모든 차종에 똑같은 구조와 크기로 통일되어 있다. 최신 모델의 롤스로이스도 같은 패널모양이기에 시대에 약간은 뒤떨어진 인상을 주지만 영국인의 전통을 자랑하는 그 고집을 누가 꺾는단 말인가.


8기통 6.75X 엔진 90년대까지 사용

하이빔과 경음기, 발로 밟아서 조작

8기통 6.75X 212마력 엔진도 1968년에 팬텀Ⅵ에 얹은 뒤 90년대까지 모든 모델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엔진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제원도 공표된 것이 없다. 자동차 출고 때 엔진은 ‘충분(sufficient)하다’는 딱지 한 장만 붙이고 고객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세부적인 제원 정보도 없이 다만 6.75X 배기량의 엔진이 달린 차로 제공되는 롤스로이스이지만 그 신용도와 애프터서비스는 세계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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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사막에서 롤스로이스가 고장났다. 그 상황을 알렸더니 헬리콥터로 기술자가 곧 날아와 수리를 한 다음 “모래가 들어가서 그랬는데 엔진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곧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다. 롤스로이스는 애프터서비스에도 완전무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5년 넘은 이 77년형 실버 레이스Ⅱ는 정말 경쾌하게 잘도 달린다. 배기량이 6.75X나 되기 때문인지 차를 끄는 힘이 마치 어른이 어린애를 다루는 식으로 가뿐하게 느껴진다. 달리면서 속도를 올린다. 그런데 시속 100km에 속도계의 바늘이 옮겨지자마자 “삐삐삐……”하고 경고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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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롤스로이스가 시속 100km밖에 내지 못한다니 될 말인가” 하고 계속 더 밟아도 경고음은 꺼지지 않고 시끄럽게 자꾸만 소리를 낸다. 신경이 거슬려서 그만 속도를 낮추어 버렸으나 이 차의 능력이라면 시속 200km 가까이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들에 자유도가 없어서 좌우로 조금만 틀어도 곧 반응하기 때문에 고속운전에서는 위험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하이빔으로 헤드라이트를 조정하는 장치와 “빵빵” 하는 경적소리를 내는 장치 모두가 브레이크 페달 왼쪽 바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나도 옛날에 발로 밟아서 하이빔을 조정하는 미국차를 몰아 본 적이 있었는데 경적소리마저 발로 밟아서 낸다는 것은 롤스로이스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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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의 고급감을 더해주는 장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운전석과 뒷좌석을 가르는 칸막이 유리창을 운전석에서나 뒤에서 버튼 하나로 오르락내리락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연인끼리 밀담을 나누고 싶을 때 이 칸막이를 올리면 앞좌석과 뒷좌석은 완전히 차단된다. 롤스로이스는 여기까지 신경을 써서 차를 만들어준다.


직진성, 접지감각, 방음 그리고 코너링 모두가 25년 된 차 같지 않고 끄떡없다. 독일의 벤츠와 BMW 등이 차를 만드는 기본철학과는 다른 영국인의 고집―성능 좋은 차보다도 품위 있는 완성된 차를 만들자는 태도에 나는 머리를 숙이면서 이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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