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스] 베크 스파이더 50년 세월 뚫고 나타난 매혹적인 차
2019-10-25  |   5,145 읽음

*2003년 9월 15일에 발행 된 기사 입니다. 


베크 스파이더 50년 세월 뚫고 나타난 매혹적인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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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우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오후, 그는 할리우드를 떠나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영화 ‘에덴의 동쪽‘이란 단 한편의 영화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자이언트’, ‘이유 없는 반항’ 등의 잇따른 성공작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 틴에이저들에게까지도 우상이 되어 있었다. 당시 연기와 자동차경주 두 가지에 푹 빠져 있던 제임스 딘은 운명의 그 날에도 다음날 있을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약 250마일(400km)의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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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을 따라 멀리서 해가 지고 있을 무렵, 딘은 한적한 46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로 그때 턴업시드란 대학생이 탄 차가 41번과 46번 도로의 교차로 앞에 서 있었다. 턴업시드는 멀리서 희미하게 달려오는 조그만 차를 보았지만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좌회전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멀리 있던 차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와 순식간에 턴업시드의 차에 내리꽂히고 만다. 조그만 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졌고 그 차에 타고 있던 딘은 부서진 스티어링 칼럼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이렇게 한 시대의 우상은 그가 가장 아끼던 차 안에서 영화같이 생을 마감했다. 이때 제임스 딘의 나이는 스물 넷,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했던 차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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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만 생산된 50년대 포르쉐 스포츠카

키트카 업체 베크의 레플리카로 부활해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포르쉐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모델이다. 1953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모습이 공개되었고 54년 밀레밀리아 경주에서 경주차로 공식 데뷔했다. 르망과 세브링, 밀레밀리아 등 여러 자동차경주를 휩쓸었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당시 포르쉐 경주차의 대명사였다. 56년 개선된 550A 스파이더가 나왔고 57년 단종될 때까지 모두 90대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개인의 손에 들어간 차는 78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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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스파이더는 몇 가지 타입으로 생산되었지만 제임스 딘이 탔던 1500RS가 가장 유명하다. 초창기 포르쉐는 많은 메커니즘을 폭스바겐에서 빌려왔는데, 550 스파이더 1500RS 역시 폭스바겐 비틀이 썼던 방식대로 엔진을 뒤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RR타입이었다. 4기통 1.5X 110마력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200km,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 8초의 성능을 냈다. 당시 경주차를 만들던 방식대로 2중 튜브로 된 스페이스 프레임을 써 무게가 600kg 정도로 가벼웠고 앞 48%, 뒤 52%의 뛰어난 무게배분을 자랑했다. 서스펜션 역시 폭스바겐 차처럼 앞 트레일링 암, 뒤 스윙 액슬 방식을 썼다.

베크 스파이더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미국 베크가 재현한 레플리카다. 베크는 지난 82년 문을 연 키트카 전문 생산업체. 주로 포르쉐 레플리카를 내놓고 있으며 완성도가 뛰어나 미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지난 85년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랜드>가 제임스 딘 사망 30주년을 맞아 기념 기획을 했을 때도 시승차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가 아니라 베크 스파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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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크 스파이더는 키트카 업체들이 즐겨 쓰는 방식(폭스바겐 비틀의 섀시와 엔진, 트랜스미션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보디를 씌우는 방식) 대신 진짜 튜브로 스페이스 프레임을 만들어 완성도를 높인 차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와의 차이점이라면 원형보다 두꺼운 튜브(3×0.125인치)를 쓴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트레드는 52인치(약 1320mm)로 원형과 같으나 휠베이스가 3인치(약 7.6cm), 길이가 2인치(약 5cm) 늘어나 실내가 조금 넉넉해졌다. 서스펜션은 앞 트레일링 암, 뒤 스윙 액슬로 원형과 똑같다. 엔진은 브라질에서 들여온 다양한 배기량(1.6∼2.4X)의 폭스바겐 엔진 중 고객이 주문하는 것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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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형인 베크 스파이더 1.6은 최고시속 179km,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 11초의 성능을 낸다. 최고 모델인 2.4는 최고시속 140마일(약 225km), 0→시속 60마일 가속 5.5초의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보디가 100% 수작업으로 만든 합금이지만 베크 스파이더는 합금과 파이버글라스를 함께 써서 무게를 낮췄다.

국내에도 베크 스파이더 한 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북 전주를 찾았다. 오너는 클래식 카메라 전문사이트(www.buycamera.co.kr)를 운영하는 곽풍영 씨. 베크 스파이더 외에도 민간인에게 불하된 군용지프(K-111) 한 대를 더 갖고 있는 그는 특이한 차는 꼭 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정열적인 카매니아였다.



멋진 50년대 경주차 스타일 자랑해

귓전에서 울리는 거친 숨결이 매력

전주에 있는 베크 스파이더는 오리지널 뺨칠 정도로 구분하기 힘들었고 새차처럼 깨끗했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50년 전에 생산되었던 차가 최근 정교하게 만들어진 레플리카보다 깨끗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복제품으로 진품의 가치를 논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미술품이나 도자기같은 골동품이 아니라 복제의 대상이 자동차라면 이 모방품은 단순한 복제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말을 하고 싶다. 레플리카는 ‘모셔두어야’ 하는 오리지널과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몰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보통 사람’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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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넘실대는 베크 스파이더의 보디는 앞뒤가 묘한 대칭을 이룬다. 전통적인 포르쉐 스타일에 따라 얼굴은 헤드램프 부분이 볼록 솟아있는 모양이다. 뒷모습 역시 빵빵한 두 엉덩이(뒤 팬더)가 좌우로 볼록 솟아있다. 범퍼가 없는 매끈한 보디, 조그마한 테일램프, 앞 윈도 테두리에 두른 크롬과 크롬 휠 캡 등에서 50∼60년대 클래식 로드스터의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데뷔 당시에도 550 스파이더는 확실히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음이 분명하다.


파이버글라스로 된 가벼운 앞 보네트를 들어내면 연료주입구와 워셔액 통 그리고 짐을 실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나오고, 한 귀퉁이에는 57번째 생산된 차라는 것을 알려주는 ‘057’이란 생산번호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역시 파이버글라스로 만든 가벼운 엔진룸(뒤쪽)을 열면 스페이스 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페이스 프레임이란 둥근 파이프를 용접해 골격을 만든 프레임으로, 550 스파이더가 나왔던 50∼60년대 경주차들이 주로 썼던 형태다. 프레임 위에는 폭스바겐제 1.6X 수평대향 엔진이 자리하고 있고 액슬 뒤에 자리한 기어박스도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쇼크 업소버가 없는 듯 보이는 스윙 액슬 서스펜션은 요즘 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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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걸자 폭스바겐 특유의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 거친 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같은 엔진을 얹었던 올드 비틀이 ‘소음’을 냈던 것과 달리, 50년대 스타일의 경주차에서 울려 퍼지는 공랭식 엔진의 하모니는 말 그대로 멋진 ‘사운드’다. 타고 내리기가 불편하지만 실내공간은 넉넉한 편. 시트가 바닥에 거의 붙어있기 때문에 시트에 앉으면 아스팔트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달리기 위해 기어를 넣을 차례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기어 감각이 애매해 1단 기어를 찾기가 힘들다. 예전에 68년형 카르만 기아를 시승할 때에도 같은 문제로 고생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제임스 딘이 49년 전에 타고 달렸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호기롭게 차에 올라서는, 기어조차 넣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니…….


한참 식은땀을 흘린 다음 드디어 출발을 했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액셀 페달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귀 뒷전에서 방방거리는 공랭식 엔진음은 머플러 소리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인 음색이다. 1.6X 엔진이라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600kg밖에 안 되는 가벼운 차체에 얹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치 카트를 탈 때처럼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모른 채 달렸던 딘의 통쾌한 감정을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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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2년 전 미국에서 열린 MPG 트랙 데이에 참가해 베크 550 스파이더를 실컷 몰아본 이가 있다. 그는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Ⅶ이나 혼다 S2000 등 여러 대의 스포티한 차들로 트랙을 달려보았다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차로 베크 스파이더를 꼽았다. 드리프트를 맘껏 할 수 있고 거친 주행감각에서 묘한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탔던 베크 스파이더는 160마력으로 튜닝된 2.4 모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자가 시승한 1.6 스파이더도 경쾌한 주행성능과 그에 못지 않은 감성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그 친구처럼 트랙에서 맘껏 달려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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