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업에서 국민기업이 되기까지, Musée de l'Aventure Peugeot
2019-11-18  |   10,039 읽음

생활기업에서 국민기업이 되기까지

Musée de l'Aventure Peug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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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평가 절하된 자동차 메이커를 꼽자면 빠지지 않는 푸조. 이들의 역사는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철공소에서 시작해 국민기업으로 성장한 푸조는 커피그라인더, 후추통, 포탄, 가정용 재봉틀, 자전거를 거쳐 자동차를 만든 기간을 다 합하면 200년이 넘는다. 현존하는 자동차 회사 중에 가장 오래되었으며, 소형차 부분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 그들이 걸어온 길을 둘러보기 위해 알자스 지방 소쇼에 들렀다.


Musée de l'Aventure Peugeot(이하 푸조 박물관)이 자리 잡은 소쇼(Sochaux)는 독일과 스위스에 인접한 알자스 지방의 소도시이다. 일찍이 푸조가 터를 잡은 소쇼는 푸조의 생산 공장이 있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푸조의 대표 공장 중 하나인 소쇼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박물관은 다른 자동차 박물관에 비해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입구에는 광기의 시대라 불린 그룹 B를 풍미했던 205 T16과 영화 택시에 등장했던 406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모험(Aventure)을 내세웠다. 생활기업에서 시작해 다양한 도전을 거치면서 발전해 온 그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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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는 갤러리 분위기다 


총 11개 구역으로 나눠진 푸조 박물관은 푸조의 시작부터 황금기, 현재, 미래를 향해가는 도전정신을 주요 키워드로 전시하고 있다.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델과 혁신적이었던 컨셉트카, 기술력을 경쟁하는 모터스포츠 분야의 선두주자로 푸조는 할 말이 무척 많은 메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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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업으로 입지를 다진 푸조는 다리미도 만들었다 


박물관은 지난 1982년 피에르 푸조가 l'Aventure Peugeot 팀을 설립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푸조 패밀리의 컬렉션을 정리하고 푸조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이 팀은 1984년 소쇼 공장내 대규모 작업장을 갤러리로 개조하고 수집품들을 전시해 1988년 일반에 공개했다. 현재는 PSA 그룹이 소유한 450여 대의 자동차(모두 푸조)와 약 300여 대의 오토바이가 순환전시 형태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일부는 한불자동차가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에 임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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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그라인더도 유명하다. 자료에 따르면 푸조의 커피그라인더는 내구성 높은 칼날을 가지고 있었으며, 커피 분쇄 방식이 다른 제품과 다르다고 한다


무엇이든 만드는 프랑스 생활기업

박물관을 둘러보면 푸조가 자동차를 만들기 전부터 프랑스 국민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음을알 수 있다. 소쇼 지방 철공소에서 시작한 푸조는 당시 꼭 필요한 생활용품을 거의 다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자동차를 제외하고 후추통과 커피 그라인더가 유명하지만, 각종 공구와 재봉틀, 라디오, 농기구를 만들었고 전쟁기간에는 포탄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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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은 총 11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일찍이 쇠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는 유럽 내에서 독보적이었던 푸조는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푸조 박물관이 다른 자동차 박물관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한데, 작은 수공구부터 다양한 크기의 커피 그라인더는 차치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벌목용 톱이나 크고 작은 농기구까지 만들었음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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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발표한 타입 69 베베는 단기통 엔진을 탑재했으며, 400대가 제작되었다


푸조는 자동차 회사 이전에 철강회사로 기틀을 잡았다. 철공소에서 시작해 철강회사, 생활용품과 농기구를 만들다 자전거를 만들었고, 자동차는 푸조의 역사에서 가장 늦은 1886년에서야 등장했다. 한국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푸조 최초의 자동차인 타입1이 증기기관을 탑재했으며, 푸조는 이때부터 자체적인 엔진 설계, 제조와 각종 부품 제작을 모두 내부에서 진행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 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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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용 목재 프로펠러를 만들기도 했다


증기기관부터 시작한 자동차 회사는 현존하는 브랜드 가운데 푸조가 거의 유일하다.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라인업도 굉장히 다양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는 프랑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였다. 푸조의 첫 모델인 타입1은 현재 2 시리즈로 대표되는 수퍼미니 세그먼트의 시초였으며 1890년대에 이미 패널 밴과 미니버스 같은 상용차도 대중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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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작품인 퀘이사. 600마력의 미드십 4WD 컨셉트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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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는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다양한 세그먼트 모델을 발표하면서 수퍼미니부터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등 전 세그먼트를 장악했다. 또한 스파이더와 카브리올레 같은 고급차 시장에서도 활약을 보였다. 1907년 아르망 푸조의 사망 후 1910년에 푸조는 모회사인 푸조 형제 회사와 합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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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컨셉트카들은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설계가 눈에 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며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생산량을 1만대까지 끌어 올렸다. 전쟁은 푸조의 구조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중 탱크를 비롯한 군수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자본 확대와 대량 생산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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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는 자전거와 바이크도 생산했다. 스쿠터는 현재도 생산 중 


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 닥친 경제 공황은 또 다른 성공 발판이 되었다. 이때 발표된 모델이 201인데, 세그먼트+0+세대의 네이밍이 시작된 시점이다. 201은 경제공황 시기에 큰 인기를 누렸다. 푸조에게 2차 세계대전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1940년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는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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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205 T16은 푸조의 도전과 모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차이다


군비 확장으로 인해 전쟁 물자가 항상 부족했던 나치는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푸조와 르노의 공장을 군수물자 공장으로 전환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르노가 나치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장 피에르 푸조 3세는 공장을 폭파하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자금을 대며 저항활동을 시작한다. 급기야 히틀러는 장 피에르 푸조 3세의 체포령을 내렸고 결국 체포된 푸조 3세는 총살형을 선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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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자동차는 부호들을 위한 사치품이었다 


이 과정에서 푸조의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나치의 기술책임자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이다. 포르쉐 박사는 푸조의 기술력과 프랑스 국민감정을 고려해 히틀러를 설득했으며 결국 푸조 3세는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 덕에 푸조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빠르게 202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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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등장한 타입 402B 코치 데카포터블. 총 277대를 생산했으며 6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작지만 강하고 재미있는 차 만드는 회사

푸조하면 모터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큰 성공을 거둔 205는 모터스포츠에도 큰 두각을 나타냈는데, 1985년과 1986년 WRC(당시 그룹B)에서 챔피언을 차지한다. 푸조에게 큰도전이었던 랠리 프로젝트는 장 토드 현 FIA 회장이 이끌었으며 그는 푸조를 랠리의 황태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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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동선은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한편 크라이슬러 유럽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탈보 모터스포츠를 흡수해 푸조 스포트(고성능 개발부서)의 기틀을 다졌으며, 그룹B 폐지 이후에는 다카르랠리로 자리를 옮겨 1987년부터 1990년까지(205 T16, 405 T16) 4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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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보트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컨셉트가 유행이었다. 1997년 작품인 806 런어바웃


1999년에는 WRC에 복귀해 2000년과 2002년에 드라이버즈와 매뉴팩처러 챔피언에 올랐고(마커스 그론홀름), 2001년에는 매뉴팩처러 챔피언십만 획득했다. 205를 필두로 206, 207, 208에 이르는 수퍼미니는 푸조가 가장 강세로, 푸조를 위한 세그먼트라고 불릴 정도다. 특히 랠리 기반의 스포츠 모델은 전세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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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콕핏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607 펠린 컨셉트의 운전석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F1에서도 활동했다. 안타깝게도 우승 기록은 없지만 미카 하키넨, 루벤스 바리첼로, 에디 어바인, 랄프 슈마허, 지안 카를로 피지켈라, 야노 트룰리, 장알레시, 닉 하이트펠트 같은 선수들이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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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자전거와 바이크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르망 24시간에서는 1992년과 93년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9년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우디 TDI 엔진과 푸조 HDi 엔진의 진검승부로 기록된 2009년 르망의 치열한 격전은 특히나 유명하다. 푸조 908HDi가 절대강자 아우디를 완벽히 누르며 원투피니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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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WRC 프로젝트의 아이콘. 206 WRC와 306 맥시 


모터스포츠 뿐 아니라 푸조는 자동차 디자인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 펠린 룩으로 대표되는 디자인 큐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푸조 박물관의 컨셉트카는 이런 푸조 디자인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보여 준다. 일부는 양산차로 우리 곁에 있고 일부는 컨셉트 단계로 끝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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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미니의 대표주자인 205는 해치백을 기본으로 다양한 버전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604

1975년 등장한 604는 당대 최고 수준의 럭셔리 세단을 목표로 개발되었다. V6 엔진을 올린 604는 가솔린과 디젤 터보, 고성능 모델인 GTi까지 총 6개 버전으로 등장했다. 604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0년대 현대자동차가 조립 생산하던 포드 그라나다의 대항마로 기아산업(기아자동차)이 선택한 모델이 바로 60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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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난항을 겪다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은 1979년에서야 가까스로 판매에 들어갔다. 여기에 2차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애초 계획했던 물량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604는 국내에 처음 도입된 프랑스 고급차였는데,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해 1980년대에는 김종필, 노태우 등 정치가들이 애용하는 차로 유명세를 이어갔다. 국내 출시 가격 2,367만원으로 당시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중에 최고가였다. 푸조 박물관에는 604의 스포츠 사양인 GTi를 비롯해 최고급 버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글,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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