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스] 미니 모크 순수한 ‘펀카’의 즐거움
2019-11-28  |   3,100 읽음

*2003년 11월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미니 모크 순수한 ‘펀카’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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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모크를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장난감 같은 외모 덕에 폭스바겐 비틀, 시트로엥 2CV, 오스틴 미니와 통하는 느낌이 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다. 이름에서 힌트를 얻은 독자도 있으리라. 미니에게서 가져온 동그란 눈매가 썩 잘 어울린다.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바뀌고 올록볼록한 얼굴이 납작해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앙증맞게 생긴 깜박이와 길쭉하고 네모난 테일램프, GB로고가 새겨져 있는 12인치 휠에서 한 핏줄임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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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원래 미니 모크는 전장을 누빌 운명으로 태어난 차다. 당시 헬리콥터는 차를 들어올려 옮길 수 없었고 군에서는 기동성을 위해 작고 가벼운 전략적 군용차가 필요했다. 미국에서는 벤 그레고리가 만든 ‘마이티 마우스’가 전략용 군용차로 선정되었고 AMC가 4천 대의 마이티 마우스를 만들어 해병대에서 썼다. 영국의 군용차 입찰에서 BMC는 1959년 미니를 새롭게 꾸민 모크를 선보였지만 네바퀴굴림이 아니어서 탈락된다. 이를 개선해 BMC는 62년 트윈 엔진을 얹은 네바퀴굴림 버전의 모크를 소개했지만 낮은 지상고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영국군은 랜드로버 ‘스탠다드 88’에 바탕을 둔 군용차를 선택했고 이후 모크는 값싸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펀카’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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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수송을 위해 가벼운 군용차로 만들어

파워트레인과 프레임, 미니에게서 가져와

미니를 설계한 알렉 이시고니스가 만든 모크는 단순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문짝과 지붕이 없고 욕조 같은 보디에 성인 남자 네 명이 편하게 탈 수 있다. 스틸 모노코크 보디를 미니의 서브 프레임에 얹고 미니의 엔진과 기어박스를 그대로 썼다.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주요 부품은 미니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영국에서 잘 알려진 4기통 848cc A시리즈 엔진을 가로로 얹었다. 엔진 아래에 트랜스미션과 파이널 드라이브(최종 구동장치)를 붙이고 바깥으로 빼낸 클러치를 통해 힘을 보내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 결과 파워트레인을 위한 공간은 610mm뿐으로, 작은 차에서 넓은 실내공간을 뽑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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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는 1964년 영국 버밍험에 있는 BMC의 롱브리지 공장에서 처음 생산되어 1968년 10월까지 만들어졌다. 상업적인 용도의 차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을 더 내는 등 영국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BMC는 1966년 시드니에 있는 엔필드 공장으로 시설을 옮겨 1981년까지 모크를 생산했다. 호주에서 만들어진 모크는 현지 사정에 맞게 레저용 차로 바뀌었다. 1983년부터 포르투갈에서 호주판 모크가 생산되었고 1986년부터 89년까지는 영국의 로버가 다시 꾸민 모크가 나왔다. 90년에 모크의 권리는 이태리의 모터사이클 메이커 가지바에 넘어갔고, 91년부터 93년까지 이태리에서 생산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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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가지바가 만든 미니 모크다. 영국과 호주, 포르투갈을 거쳐 이태리로 건너간 모크는 1064년∼1992년 거의 5만 대가 세상으로 굴러 나왔다. 모크는 백야드빌더가 만든 키트카와 달리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지만 단순한 구조와 디자인 때문에 많은 레플리카가 만들어졌다.


엔진룸을 감싼 보네트의 굴곡과 펜더의 꺾어짐에서 오리지널 군용차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미니의 아기자기한 맛에 비하면 훨씬 남성다운 곡선을 지니고 있다. 범퍼를 대신해 앞뒤로 두른 스틸 가드가 다부진 인상을 만든다. 가드를 따라가 보니 서브 프레임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페어 타이어를 뒤에 짊어지고 있는 고풍스러운 모습에서는 영국 클래식카의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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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은 미닫이 방식이다. 원래 모크에는 문짝과 지붕이 없다. 시승차는 1993년에 한정생산된 하드톱이 달린 스페셜 버전. FRP 재질의 샛노란 하드톱은 볼트를 풀고 떼어내는 방식으로 혼자서는 하기 어렵다. 하드톱을 벗겨내는 데 둘이서 2분이 걸렸다.


실내는 겉보기와 다르게 넉넉한 편이다. 작은 차에서 뽑아낸 꽤 넓은 공간에 이내 감탄한다. 앞유리가 멀리 있고 넓은 삼각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회색 인조가죽으로 덮인 시트는 촉감이 좋고 몸에 꼭 맞는다. 벤치타입 뒷좌석을 간편하게 접어 올려 짐칸을 늘릴 수 있다. 시트벨트는 차체를 잡아주는 롤바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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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는 모두 한가운데 몰려있다. 센터 클러스터가 유행인 오늘날의 레이아웃이 멋쩍어진다. 네모난 계기판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속도계 옆으로 수온계와 유압계가 달려있다. 비상깜박이와 전조등을 켜는 푸시버튼은 구식이지만 누르는 느낌이 정확하다. 계기판의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작은 선반은 쓸모가 많다. 가지바 로고가 새겨져있는 고무몰딩이 덧대어져 있어 수첩이나 휴지를 놓아둬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히터는 애프터마켓에서 구해 달았다고 한다. 가을의 끝에 이른 지금, 에어컨이 없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겠다.


엔진 다루기 쉽고 배기음 스포티해

커다란 보디 씌운 카트를 타는 느낌

시승차에 얹힌 4기통 998cc 엔진은 최고출력 39마력을 내는 카뷰레터 방식이다. 사실 기자는 BMC의 A시리즈 엔진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 ‘최대토크 6.8kg·m를 내는 차라면 성능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동키를 돌려 엔진을 깨우자 이 같은 선입견이 단박에 깨져버렸다. 1X의 작은 심장이 뱉어내는 숨소리가 빳빳하고 거칠다. 대배기량 카뷰레터 엔진의 ‘푸드덕’거리는 소리와는 너무도 딴판이다. 출발을 재촉하는 듯한 소리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발끝에 힘을 주니 당차게 뛰쳐나간다. 카뷰레터 엔진의 거칠고 걸걸한 감각이 한치의 걸러짐 없이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클러치 페달은 무겁고 기어변속은 다소 뻑뻑하지만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정직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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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의 스티어링 휠은 앉은 자세와 어울리게 눕혀져 있다. 림의 폭이 얇아 한 손에 쏙 들어오고 기어레버의 위치도 적당하다. 림을 잡았던 손을 잠시 내려 기어레버를 툭 치고 다시 핸들을 잡을 때의 감각이 일품이다.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의 거리도 절묘하다. 적극적인 운전을 부추기는 위치. 다소 웅크린 자세로 손발이 가는 대로 몰아붙이는 맛이 짜릿하다. 짧은 기어레버를 부지런히 옮겨가며 다부지게 몰다보면 모크의 진가가 나온다. 밟는 대로 힘차게 내뻗는 엔진은 다루기가 쉽고 4단 수동기어와 잘 어울린다. 엔진회전수를 몸으로 느껴가며 각 단을 오가는 재미가 근사하다. 2, 3단을 아우르는 구간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은 기대 이상. 땅바닥과 바로 붙어있는 느낌과 열린 차체가 주는 시원함이 겹쳐지면 마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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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있고 블라인드 코너가 많은 와인딩 로드에서 이루어졌다. 의도적으로 차를 비틀어도 노면에 달라붙는 맛은 변함이 없다.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고 통통 튀는 고무공 같다. 요철을 만나면 충격을 흡수하지 않고 바로 뱉어낸다. 커다란 껍데기를 씌운 카트를 타는 맛이랄까? 승용차의 푹신함에 길들여져 있다면 적응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리겠다. 작고 낮은 차체에다 단단함마저 갖췄으니 본격적인 코너링을 욕심내도 될 듯하다. 하지만 아까부터 줄기차게 따라오던 뒤차에는 눈이 휘둥그레진 어린아이가 타고 있다. 흐뭇한 마음으로 그냥 즐기자. 모크는 그렇게 타야한다. 제원상 최고시속 130km에 대한 미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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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을 마치고 어린이대공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잔뜩 찌푸린 표정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어린 손자의 재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차를 세우니 멈칫하며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배어난다. 모크의 힘이다. 모처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차, 달리는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차를 만났다. 밟고 떼고 돌리는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크에서 진정한 ‘재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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