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이 돋보이는 프로젝트카 혼다 시빅(FD2) 타입 R
2020-05-07  |   12,140 읽음

‘선택과 집중’이 돋보이는 프로젝트카

혼다 시빅(FD2) 타입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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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하지만 혼다 시빅 FD2 타입 R을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이 튜닝 프로젝트엔 ‘튜닝의 끝은 순정이 아닌 완성’이라는 오너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오버테이크 모터스의 윤재웅 대표와 그의 시빅 FD2 타입 R 프로젝트카를 만나봤다.


자연흡기 VTEC의 결정판, FD2 타입 R

시빅 타입 R(이하 FD2)은 8세대 시빅을 바탕으로 만든 세 번째 타입 R이자 유니크한 세단이다. 혼다가 까다로운 환경규제에 밀려 더는못 만든다고 하다가 과급기 없이 L당 112.5마력을 내는 VTEC(K20A) 엔진을 얹은 기념비적 모델이다. 당시 인테그라 타입 R(이하 DC5) 쿠페보다 무겁고 서킷 랩타임이 처지는 시빅을 어떻게 차별화시킬지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혼다는 서킷 주행에 특화된 하드타입 서스펜션과 로어링 및 차체 보강, 보디 변경과 흡음재 삭제를 통한 경량화, 세미 레이스 타이어와 더 화끈한 VTEC 엔진 등 지극히 타입 R다운 해법으로 FD2를 완성했다. DC5의 엔진은 압축비를 9.8에서 11.1로 높이고 공격적인 프로파일의 캠과 개선된 흡기 매니폴드로 5마력을 올렸다. 기존 EPS에서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으로 교체하고 후드를 바꾸었다. 변속기 기어비를 촘촘하게 하면서 최종 감속기어(4.764에서 5.1로)는 가속 위주로 세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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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 FD2 타입 R의 리어 스포일러. 위대한 유산을 남긴 타입 R이 그렇듯 매우 크다


FD2의 등장으로 스즈카와 츠쿠바 서킷 최고속 랩타임 기록을 인테그라 DC5로부터 다시금 탈환했다. 이후 300대 한정인 시빅 무겐 RR(ABAFD2) 등 파생모델을 추가하며 고회전, 고출력 자연흡기 VTEC 엔진(레드H)을 얹은 타입 R의 황금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내에는 현재 FD2가 8대 가량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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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부착되는 카본 보닛은 인 몰드 방식으로 제작했다


프로젝트에 깃든 오너의 철학

오늘의 주인공인 일본 내수형 시빅 타입 R(FD2, 07년식)은 윤대표가 직수입 신차를 구입했다. 13년 넘게 와인딩 로드와 서킷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서 운용했다. 현재 순정상태가 아니라 튜닝이 되어있다. 윤대표가 직접 컨셉트부터 완성까지 꼬박 일 년 이상 공들인 작품이다. 보디 보강용 스팟 용접과 롤 케이지 제작, 레이싱 하드웨어, 실내 디테일 등을 모두 손수 작업했으며 최근에 완성했다. 누적 주행거리 14만km. 이 차를 오래 타면서 잘 알기에 태생이 서킷 친화적인 FD2를 선택과 집중으로 다듬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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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보기 드문 짜임새와 디테일의 혼다 시빅 FD2 타입 R 프로젝트카


윤대표는 국내 명문 프로 레이싱 팀 크루 출신에다가 현재 혼다 전문 개러지의 주인장이다. 누구보다 혼다를 신뢰하며 타입 R과 VTEC 유닛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춰 자타 공인 ‘혼다 마이스터’로 불린다. 그는 튜닝의 끝은 순정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사람은 혼다 VTEC 유닛의 내구성을 비판하지만 정상적 운행환경에서 주기에 맞춰 정비 점검을 하면 45만km는 거뜬하다. 이들의 선입견을 깨고자 낮에는 고객 차를 정비하고 밤에 이 프로젝트를 틈틈이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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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퀴는 브렘보 2피스톤 캘리퍼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제동과 주차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건 무척 까다로운 작업


원 메이커 샵을 연 이유를 묻자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라는 담백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는 지금도 레이싱 팀에서 비상임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모터스포츠에 적용시키고 있다. 반면 개러지에서는 오직 정비와 튜닝에만 전념한다. 올바른 정비와 과잉 정비만 지양하면 광고는 저절로 된다고 말한다. 가령 차의 어떤 부위에 누유를 발견했을 때 무조건 부품을 바꾸라고 하기보단 정비에도 기준이 있으니 증상과 원인을 파악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오너의 판단을 돕는 게 샵의 역할이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효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고객과 작업자 간의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홀로 일하는 걸고집한다. 이 점 또한 신뢰 구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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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한 사이드미러와 와이드 펜더는 강한 중독성의 미묘한 디테일이다


타입 R을 보다 타입 R 답게

겉모습은 평범한 순정 시빅 타입 R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하나 평범한 디테일이 없다. 루프는 일본에서 공수한 드라이 카본 패널, 보닛도 CFRP로 직접 제작했다. 도색 포함해도 3kg 정도의 초경량이다. 견고한 고정을 위해 버튼식 래치를 달았다. 다소 밋밋해 보이는 순정에 포인트를 준 프론트 립과 와이드 펜더, 사이드미러는 저마다 다른 애프터마켓 제품 조합이다. 하지만 일체감을 잘 살려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다. 앞뒤 브렘보 6/2 피스톤 캘리퍼와 355/330mm 투피스 로터를 여유롭게 수납하는 알로이 휠은 보디 컬러에 맞춰 도색했다. 혼다 FF 고성능 모델 특성상 뒤보다 앞 트레드가 더 넓은 그립 세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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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링은 거들 뿐’ 진짜 FD2 타입 R은 국내에는 희소한 편이다


이 차에서 컨셉트 선택과 집중이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건 실내다. 세단에서 클럽 레이서의 콕핏으로 탈바꿈시켰다. 배터리와 하프 롤케이지를 FIA 규정에 맞춰 설치하고 타입 R과 찰떡궁합인 초경량 레카로 일체형 버킷시트를 달았다. 스티어링 휠은 탈착용 퀵 릴리즈와 결합해 탈착이 가능하게 했다. 기능을 잃은 순정 스위치 대신 무선 제어시스템을 더해 배선 노출을 최소화했다. 기존 아날로그 클러스터를 디지털 대시로거로 바꿔 레이스에 기본인 데이터 로깅은 물론 VTEC 유닛의 핵심인 유온과 유압, 수온, 타코미터 그래프 및 변속 단수까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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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H’ 엠블럼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혼다의 열정을 상징한다


NSX-R 이후 최고라는 변속기임에도 불구하고 FD2 타입 R에 종종 이슈가 되는 조작 효율을 높이고자 레이싱 페달 키트, 레이스 시프터와 WR(월드 랠리) 방식의 플라이 오프 유압 파킹 브레이크 레버도 달았다. 모니터형 클러스터의 시인성과 브레이크 레버 조작 등 모든 세팅을 레이스카에 가깝게 만들었다. 타입 R에서 운전의 재미와 효율을 극대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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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같지만 차체 색상으로 도색한 엔케이 RCT5 알로이 휠은 브렘보 6 피스톤 캘리퍼를 여유롭게 품는다


윤대표는 레이스카처럼 모든 부품은 탈부착이 용이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이 차의 내외장 부품이 거의 없다시피 해 직접 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기성품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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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 #타입알 #3세대 #세단 #해치백-일본 내수형 타입 R(FD2, 아래)와 타입 R 유로(FN2, 위) 


순정 센터 콘솔에서 컵홀더를 활용하게끔 카본제 스테이를 제작했다. 여기에 컵홀더에 쏙 들어가는 텀블러형 블루투스 스피커가 자리 잡았다. 배선을 걷어낸 실내에 배터리 방식의 무드 등도 달았다. 직접 달려 서킷을 오가는 동안에는 음악 감상, 모바일 내비 등 로드카 수준의 편의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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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클럽 레이스카임에도 뛰어난 공도 포용력을 보여주는 시빅 FD2 타입 R


프로젝트 뒷얘기 및 로드 임프레션

튜닝의 시작은 원래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제거는 간단하지만 이상적인 무게 배분을 고려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주행성능에 초점을 맞춘 차답게 완성 후 코너 웨이트 측정으로 수치를 확인했다. 순정 대비 무게는 93kg 감량하고 네바퀴 하중 배분과 크로스 웨이트도 이상적인 균형을 달성했다. 인발 파이프로 롤 케이지 소재의 접점과 규격을 FIA 규정에 맞춘 집념은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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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제 몬테카를로 스티어링 휠에 달린 컨트롤러로 필요한 기능을 배선 없이 깔끔하게 옮겨왔다


제작에 특별히 공들인 부분은 브레이크 업그레이드와 레이싱 시프터. 특히 뒤쪽 브렘보 복동식 2피스톤 캘리퍼 하나로 제동과 파킹 브레이크 기능을 통합하기 위해 적정 배분율과 압력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앞, 뒤 차축의 유압 기구를 전면 재배치하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작업을 했다. 여기에 앞뒤 제동 배분을 원격 조절하는 바이어스 어저스터를 더해 레이싱 환경에 최적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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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카의 콕핏. 서킷 지향형 시빅 타입 R을 더욱 타입 R답게 만들었다


시빅 타입 R의 순정 엔진 출력은 225마력. 마력 당 하중은 5.86kg 수준이다. 프로젝트카는 다이노젯 기준 약 247마력을 뽐낸다. 내부 구성품을 순정으로 진행한 엔진 오버홀과 밸런싱 작업 후 4만km가량 운행했고 직접 제작한 엔드 머플러를 제외한 대구경 스로틀 보디, 냉각호스 강화 키트와 경량 풀리 키트, 배기 매니폴드, 스포츠 촉매, 티타늄 중통 등의 애프터마켓 제품을 세팅한 상태에서 리매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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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당 112.5마력(순정)을 찍은 마지막 자연흡기 K20A VTEC 엔진. 순정 에어클리너 박스는 틸튼 페달 키트 마스터실린더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시동부터 아이들링, 저회전 주행 때는 순정만큼 조용해 엔진 부조도 거의 없다. 4~6단 기어를 더 촘촘하게 만든 크로스레이쇼 세팅으로 오르막 고단 가속도 거의 200마력 후반 대 차의 호쾌함을 보여준다. 운전 조작반응은 즉답적인 편. 클러치가 순정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직결감이 좋다. VTEC 존 진입 훨씬 전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추진력과 회전수를 올릴수록 아드레날린을 짜내는 강한 중독성은 왜 타입 R 유닛이 마니아들을 사로잡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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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량 레카로 시트와 하프 롤케이지, 안쪽에 비치는 드라이 카본 루프패널


서스펜션은 순정은 물론 레이스카에도 공급하는 GAB제 상위 라인업 타입 SS 일체형 댐퍼를 넣었다. 과속 방지턱과 거친 노면이 두루 섞인 외곽 시승코스에서 FD2의 악명 높은 승차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지만 단단하게 조인 차체와 기민한 하체 세팅 조합 덕에 기대 이상으로 고분고분했다. 특히 타입 R 순정보다 부드러우면서도 트레이드마크인 롤 억제력과 놀라운 회두성, 그립에 최적화된 특성을 잘살린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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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트렁크. 롤케이지는 소재와 접점과 규격을 FIA 기준에 맞춰 제작했다


오랜만에 공도와 서킷을 아우르는 높은 균형과 완성도의 튜닝카와그 제작자를 만나 차쟁이들끼리 진솔한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하루였다. 아울러 서킷 지향형 고성능 모델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목적에 충실하게 다듬어 낸 차를 보면서 마니아도 혀를 내두르게한 윤대표의 열정에 새삼 탄복했다. 그의 혼이 담긴 FD2 타입 R에는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이런 올바른 튜닝카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자동차 문화 역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90db5a4fa33499762f81664f440fef00_1584493434_0444.jpg글 심세종 칼럼니스트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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