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경성 (有志竟成) 의 좋은 예, 유경사 단장과 이레인 레이싱
2020-06-10  |   5,474 읽음

유지경성 (有志竟成) 의 좋은 예

유경사 단장과 이레인 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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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뜻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유지경성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레인 레이싱의 유경사 단장이다. 30년 전부터 <자동차생활>을 보며 모터스포츠의 꿈을 키워나가 자동차 정비사로 시작한 후 더 큰 무대인 모터스포츠에 투신해 지금은 이레인 레이싱팀을 이끌고 있다. 레이서 겸 방송인 유경욱의 친형이자, 필드에서 자타공인 쇠를 제일잘 다루는 인재로 불리는 유단장을 캠프에서 만났다.


누구나 뇌리에 각인된 특정 시대 레이스카와 팀이 있다, 예전에는 지금의 절반(2.125km)에 불과했던 용인 스피드웨이 코스가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의 주 무대였다. 특히나 2000년대 중후반에는 이레인 레이싱의 포르쉐 997 컵카가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당시 파워와 스피드, 정교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존재감은 팬과 갤러리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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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기능적인 콕핏. 당연히 깔끔하고 예뻐야 한다는 그의 평소 철학이 잘 반영됐다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이레인 레이싱(E-Rain Racing, 이하 이레인)은 모터스포츠마케팅 전문 회사 이레인모터스포트의 몸체이자 사업부다. 레이스카의 제작 및 관리, 드라이버 육성과 홍보, 모터스포츠 프로모션 및 스폰서십 그리고 모터스포츠용 부품 개발 수출입 등을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자동차 메이커 및 수입사의 프로모션 드라이빙 스쿨, 포뮬러 및 수퍼카 드라이빙 스쿨 개최등 레이싱 밖으로 비즈니스를 확장시켰다. 작년엔 용인 AMG 스피드웨이의 행사 운영 외에 현대 벨로스터 N 2.3T-GDI 미드십 프로토타입 개발 용역, 영화 <뺑반> 촬영협조 등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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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1/2 클래스의 소음기준치는 95dB. 기준과 배기 효율을 맞추기 위해 엔드 머플러 팁에 셀 타입의 촉매를 넣었다


든든한 맏형 같은 존재, 유경사 단장

그와 일했던 동료들 역시 이제는 다른 팀의 단장이거나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시합 중 돌발 상황에 묘안이 떠오르지 않거나 필요한 데이터가 있을 때지금도 유단장에게 자문을 구한다. 트랙과 레이스카를 모두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본 기술자에 의존했지만 20여 년 전부터 유단장이 직접 보디 튜닝과 롤케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매운 드문 데다 파격이었다. 단순히 자르고 용접을 하는 게 아닌, 쇠를 잘라 모양을 내고 강성을 높이는 용접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특히나 매끈한 그의 샌딩은 유단장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알곤 용접에 무리한 샌딩은 오히려 강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작업자의 역량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작업한 벨로스터 N 미드십의 마운트, 서브프레임 역시 강성은 올리면서 깔끔한 마감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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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쿠페 GT1 레이스카의 뒷바퀴. 레이스 슬릭타이어와 순정 앞바퀴용 4피스톤 캘리퍼와 확장형 디스크 로터가 휠을 꽉 채운 느낌


경주차에 담은 한국인의 자부심

Endless Rain에서 따온 이레인의 이름과 로고는 초창기부터 써왔다. 2002년 국제경기에 진출한 선구자로서 레이스카에 한국인의 자부심 태극기를 표현해 출전한 것이 디자인의 시초다.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성을 상징하는 흰색, 태극문양의 음양의 조화를 뜻하는 파란색과 빨간색, 건곤감리를 상징하는 4개의 괘도 넣었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화려하게 데칼을 입히지만 당시에는 페인트로 직접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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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퀸셜 레버와 레이스에 필요한 스위치를 센터패시아에 통합했다


모터스포츠와 스폰서십은 불가분의 관계

모터스포츠는 철저히 팀 스포츠라고 말하는 유단장.

크루, 미캐닉, 감독, 팀뿐 아니라 스폰서십이 동심합력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스폰서 홍보 마케팅이 레이싱팀의 주요 수익이지만 제도적 제약이 많아 현재는 스폰서십 유입이 거의 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모터스포츠는 비인기로 전락해 이쪽 종사자는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할 만큼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라고.

이레인의 경우 오랜 스폰서십 파트너였던 모튤, 준비엘, 네오테크, 푸마와 근래까지 함께 했다. 스폰서십이 거의 끊긴 것 같아서 다른 스폰서십 제안을 응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냐고 물어보니 유단장은 “어려울 때도움받다가 경쟁업체로 갈아타는 건 의리를 저버리는 거와 같다.”라고 말한다. 종종 파격조건 제안을 받으면 그도 사람인지라 강한 유혹에 흔들리지만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내 자리를 뜬다고. 한때의 스폰서 관계 일지라도 유단장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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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텍 레이스 로깅 솔루션은 드라이버에게 필수적인 데이터와 주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필수 장비다


실업팀 vs 프로팀, 갈라치기는 의미 없다

모터스포츠에선 실업팀이라 불리는 ‘세미 프로팀(이하 실업팀)’과 ‘프로팀’으로 나눈다. 실업팀은 원래 축구를 비롯한 구기종목이나 육상, 사격 선수처럼 직장 소속으로 근무와 동시에 운동을 하는 스포츠 팀을 뜻한다.

한마디로 실업팀은 프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모터스포츠의 경우 투입 자본에 따라 성적과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레인은 현재 실업팀이다. 반면 프로팀은 거대 자본으로 한 시즌을 꾸려간다. 한데 스폰서십이 파기되면 과연 그들에게 자생력이 있을까라는 의심이 든다. 투자유치를 못하면 꼼짝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런 경우가 은근히 많다. 실업팀과 프로팀 갈라치기는 의미 없다. 그런 점에서 유단장은 이레인이야말로 자생력 높은 진짜 프로팀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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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인 이레인의 워크숍에서 포즈를 취한 제네시스 쿠페 GT1 레이스카


모터스포츠 후배들에겐 꿈이 필요하다

유단장은 어릴 적부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그는 쟁이(기술자)들이 고집이 센 데다 기술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일만 실컷 부리는 것을 싫어했다. 제자만큼은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지만, 요즘은 속성으로 두루 배우는 쪽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아 우려된다고 밝혔다. 기본기를 익히고 진득하게 새로운 걸배우고 한 우물만 파야 하는데, 아쉽게도 젊은 후배들을 바르게 이끌 롤 모델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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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사 단장은 모터스포츠의 질과 규모를 키워나갈 비전을 갖고 있다


협회와 전문매체, 학교에 바란다

그는 레이스판에 새로운 선수들이 계속 들어와야 선순환이 돼 체질 개선이 이뤄지고, 적극적으로 신형 경주차로 우승하게 만들어야 흥행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레이스에 신차가 나오면 한국은 핸디캡을 주지만 외국은 다르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3년만 일하면 경력자로 인정 해주는데, 모터스포츠 쪽은 그런 게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체육단체다. 다른 스포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팀 관계자를 전문가로, 그들의 커리어를 적절히 인정받게 하는 것이 과제다. 유단장은 <자동차생활>과 같은 전문매체가 가려운 곳을 긁어줄 현실성 있는 얘기를 했으면 하며, 작게나마 팬과 팀 관계자들의 소통 창구가 될 작은 공간을 할애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일을 배우고픈 본인, 가족, 진학담당자들과 직접 상담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독자들 중에 입문에 조언이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연락하라는 말도 남겼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창구가 없었다. 만약 학교 관계자가 이 기사를 본다면 모터스포츠 전공을 없애는 걸 재고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모터스포츠는 현대 N의 경우처럼 해외개발의 비용 부담을 줄여 좋은 양산차를 발전시키는데 직접적인 형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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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팀 스포츠인 모터스포츠에서 이레인의 레이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내 동생, 드라이버 유경욱

유단장은 동생인 유경욱 선수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했다. 경주차 드라이버의 생명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아우디와 유선수의 계약은 올해 끝났다. 대외적으로 새 파트너를 찾으면 좋겠지만 아직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유선수는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다. 유선수가 했던 일을 이제는 일부 내려놓은 게 아닌가 싶지만, 이왕 하는 거은퇴한 선수들에게도 좋은 본보기를 보여 그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며, 유단장은 응원을 보냈다.

유단장은 결혼 후 아이를 일찍 낳았다. 스무 살 때 낳은 첫째가 지금 스물아홉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아이들로 인해 느낀 책임감 때문에라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금의 유경사가 된 건아이들과 믿고 묵묵히 지켜봐 준 사랑스러운 아내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더라도 직원들이 이레인을 이어가게 만들 계획이다. 다음 프로젝트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용인의 폐쇄적 특성 탓에 다들 신경 안쓰지만 그에겐 국내 최초로 대내외적인 규모를 갖춘 레이싱팀을 꾸릴 비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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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제네시스 쿠페 GT1 레이스카와 포즈를 취한 유단장


이레인의 레이스 커리어

이레인의 우승은 통산 57회. 초창기 해외에서 쌓은 성과가 눈에 띈다. 2002년 포뮬러 1800 시리즈 챔피언, 아시아 포뮬러 챌린지(AFC)의 F3와 포뮬러 르노에 참가해 대한민국 최초 우승 및 챔프 팀 선정, 2004년 포뮬러 BMW 아시아 시리즈 루키 챔피언, 2005년 시리즈 챔피언을 탄생시켰다. 2006년엔 포뮬러 BMW, 포뮬러 V6 아시아 by 르노에 참가해 드라이버와 팀 챔피언십을 모두 차지했다.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와 이레인의 절정기였던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엔 3년 연속 GT 마스터즈(GTM)의 시리즈와 팀 종합우승, 2년 연속 포뮬러 BMW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을 동시에 달성할 정도로 파죽지세였다. 그러나 그 후 2016년까지 스피드웨이 확장 및 보수공사 때문에 공백이 생겨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에는 빙하기였다.

다행히 해단 없이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 이레인은 2016년부터 다시 CJ 대한통운 수퍼레이스의 GT2 클래스 종합우승(2017)과 라운드 우승 및 포디엄 피니시를 꾸준히 기록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TCR 코리아 1,2 라운드 1,2위, 5라운드 1위로 TCR 카로 영역을 넓혔다. 대한민국 모터스포츠 팀이 20년 동안 한 이름으로 이어져 오는건 현재 이레인이 유일하다(시발점이 다소 앞선 인디고 팀이 있지만, 10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었음).

이레인 레이싱: 031)322-0065 / kyungsa@erainracing.com


90db5a4fa33499762f81664f440fef00_1584493434_0444.jpg글 심세종 칼럼니스트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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