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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만년설의 옥룡설산과 차마고도 2020-01-08
신비로운 만년설의 옥룡설산과 차마고도운남설 리장 주변은 볼거리가 넘쳐난다. 해발 5천m가 넘는 옥룡설산은 케이블카가 있어 특별한 장비 없이 해발 4,680m까지 오를 수 있다. 고산병이 걱정이지만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많다.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차마고도 역시 말을 타고 간단히 경험해볼 수 있다. 고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호수 라스하이에서는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될 만큼 풍광이 뛰어나다.  운남성 리장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연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리장은 해발 3천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싸여있으며, 그 중에서도 해발 5,596m의 옥룡설산(玉龙雪山: 위롱쉐산)은 군계일학처럼 빛난다. 리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옥룡설산은 정상이 항상 구름에 가려져 있어 더욱 신비롭게 여겨진다. 감히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이로운 모습이다. 대대로 리장에서 살아온 나시족 들은 옥룡설산을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영산으로 믿는다. 그들의 최대명절인 음력 2월 8일에는 모두 옥룡설산 밑에 모여 삼도신(三多神)에게 예를 올린다. 그런 옥룡설산을 오늘 오르기로 했다. 만년 설에 덮인 해발 5,596m의 옥룡설산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옥룡설산에 오르다리장 고성의 한 여행사를 통해 옥룡설산에 오르는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막상 예약을 하고나니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금껏 가장 높이 올랐던 곳이 해발 3,580m의 칭하이(青海) 일월산(日月山)이다. 당나라의 문성공주가 토번의 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지났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외에는 아직 해발 4천m 이상을 오른 적이 없기 때문에 혹시나 고산병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저런 잡념에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새벽 4시 반이다.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일찌감치 세수를 하고 찬 공기를 가르며 새벽 5시 반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기다리는데 가이드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다른 여행객이 물어보면 600위엔을 지불했다고 말해 달란다. 난 여행사에서 예약할 때 380위엔을 지불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바가지를 씌웠다는 말이다. 외국인을 놔두고 중국인한테 덤터기를 씌웠다니 재미있는 상황이다.    옥룡설산 정상은 항상 구름이 드리워져 신비롭다 도착한 차에 올라타니 7명이 먼저 타고 있다. 가이드는 직접 운전까지 하는 중년의 나시족 여자였다. 이동하면서 주의해야할 사항을 알려준다. 그리고 등산 용품 매장에 차를 세웠다. 옥룡설산은 해발 4천m가 넘으니 산소가 희박하고 기온이 낮다. 그래서 매장에서는 휴대용 산소통과 방한복을 팔고 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이우에서부터 오리털 파카를 가지고 왔다. 준비가 너무 철저해도 탈이다. 옥룡설산은 일찍 올라갔다가 일찍 내려오도록 아침 7시에 문을 연다.수하구전에는 옥룡설산의 맑은 물이 흐른다 케이블카로 오르는 옥룡설산옥룡설산에 오르기 전에 삼도신에게 제를 지낸다. 삼도신은 옥룡설산의 화신이다. 하얀 모자와 하얀 갑옷을 입고 백마에 올라탄 삼도신은 나시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흰 눈에 덮인 해발 5,596m의 옥룡설산은 5,396m의 합파설산(哈巴雪山: 하바쉐산)과 마주한다. 수억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거대한 산이 갈라지면서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으로 분리되었고 그 사이로 거대한 협곡이 생겼다. 바로 호랑이가 뛰어 건넜다는 호도협(虎跳峡)이다.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은 맑다못해 푸르다옥룡설산에 대한 전설은 나시족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옥룡과 합파의 쌍둥이 형제가 진사장(金沙江: 금사강)에서 금을 채취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북쪽에서 사나운 마왕이 찾아와 금 채취를 막았다. 옥룡과 합파 형제가 마왕과 맞서 열심히 싸우다 합파 동생은 목이 잘렸고 옥룡은 마왕과 3일 밤낮으로 치열하게 싸워 결국 승리했다. 죽은 합파는 머리가 없는 합파설산으로 변했다. 옥룡은 악마의 재 침입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13개의 보검을 들고 지키다가 13개의 설봉인 옥룡설산으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예전에는 옥룡설산을 말과 도보로 올랐지만 요즘에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오래 전에 올랐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정한 트레킹은 말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옥룡설산 트레킹은 해발 3천m 지점에서 말을 타고 약 3시간, 그리고 걸어서 5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난코스다. 그렇지만 끝없이 펼쳐진 능선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에델바이스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너무 힘든 여정이라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서정적인 기분은 느낄 수가 없다. 옥룡설산에 케이블카가 생긴 이후에는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을 옮겨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출발지점으로 이동을 한다. 주위는 모두 해발 3천m가 넘는 고지대다. 케이블카 출발지점의 해발고도는 3,356m, 정원은 8명이다. 우리를 태운 케이블카가 거침없이 산을 오른다.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옥룡설산의 정상은 오늘도 구름에 싸여있다. 산이 워낙 높으니 중간에서 구름을 만나면 하늘을 날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도착지점은 높이가 4,308m다. 이 높이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니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든다. 옥룡설산에서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4,680m다. 그 이상은 너무 위험해 전문 산악인이 특별한 장비를 갖춰야만 오를 수 있다. 옥룡설산에 오르기 전에 우선 예를 올린다  예상에 비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아케이블카를 내린 후에는 걸어야 한다. 그런데 걸음을 빨리 옮기지 못하겠다. 평소 템포로 오르면 숨이 무척 가빠 빨리 갈 수가 없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걷는 것이 요령이다. 춥기도 하지만 바람도 무척 심하다. 일행을 이끄는 젊은이가 힘을 내라고 격려하고 처진 사람을 살펴 보조를 맞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소성 난징에서 근무하는 군 장교였다. 부인과 함께 휴가를 내 리장과 샹그릴라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산에 오르면서 힘이 들면 잠시 쉬면서 심호흡을 했다. 일단 고산증 증세가 나타난 후에는 산소를 흡입해도 늦다. 증상이 나오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수인데, 수시로 산소를 마시는 것이 좋다. 일부 관광객이 숨 쉬기가 어렵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서인지 산소통을 매고 있는 사람이 많다. 고산에서 찍는 웨딩사진은 용감한 이들의 특권이다  나는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선지 그리 어렵지 않게 4,680m 지점에 올랐다. 매일 아침 이우에 있는 남산을 올라 웬만한 산은 별 어려움이 없다. 옥룡설산은 난코스라 기대를 했는데 너무 쉽게 올랐다. 그래도 어쨌든 내 인생에서 최고로 높은 곳에 올랐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주변 모든 사람이 나처럼 감격에 겨워한다. 차라리 말을 타는 트레킹 코스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트레킹 코스는 케이블카 코스와 반대편이다. 트레킹 코스는 해발 5,306m까지 오를 수 있다. 그래도 어젯밤 잠을 설친 것을 생각하면 4,680m도 감지덕지다. 목적지에 왔으니 기념사진을 남겨야 한다. 사람이 많아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사진을 찍고 나니 빨리 내려가야 한단다. 고산에서 오래 머무르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있다. 찬바람 불고 산소도 희박한데 이렇게 험한 산에서 사진을 찍다니 대단하다. 용감한 이들만이 남길 수 있는 특별한 기록이다.  특별한 장소에서 남기는 특별한 웨딩 사진내려오는 길은 싱거웠다. 가파른 산도 케이블카를 타니 순식간이다. 일부 여행객은 내려와서도 고산증 증세를 호소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두통이다. 심하면 구토와 호흡마비가 따른다. 때론 혼수상태에 빠져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옥룡설산에서 내려오면 란웨구(蓝月谷)라는 계곡을 만난다. 웅장한 산이 만들어 내는 계곡은 길고도 깊다.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이 흘러 한 폭의 그림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신선이 있다면 이곳에서 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비경이다.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은 푸르른 빛을 띠고 있다. 아름다운 장소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작은 폭포수 앞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커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워낙 웨딩촬영을 많이 하는 곳이라 메이크업 장소까지 마련해 놓았다. ​옥룡설산은 해발 5,596m지만 4,680m까지만 오를 수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대부분이지만 나시족 전통 복장을 한 커플도 간혹 있다. 나시족은 춘절을 코앞에 두고 결혼식을 올린다. 미리 사진을 찍는 것은 결혼 증명서를 얻기 위해서다. 나시족은 리장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자신들 만의 언어를 구사하며, 동바라는 문자로 소통해 왔다. 또한 동바교를 통해 전통 문화를 고수해 왔다. 그렇지만 근래에는 외부와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제는 동바 문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젊은이들은 전통식보다 서양식 결혼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보니 중국에서 웨딩 촬영이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업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어디를 가든 괜찮다 싶은 곳에는 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 신혼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에서 내려와 단체로 안내된 곳은 닭고기 샤부샤부를 하는 나시족 전통 음식점이다. 하지만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으려니 보통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리장은 어디를 가나 풍부하고 맑은 물이 흐른다. 속하고진(束河古镇: 수허구전)도 맑은 물 때문에 빛나는 곳이다. 리장 외곽에 자리한 속하고진은 리장 고성보다 작은 옛 마을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마을 중심을 흐르고 운치 있는 옛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 안에는 기념품 매장과 함께 멋진 카페들이 있다. 커피 한잔하며 시간 보내기에 적격이다. 속하고진에는 차마고도(茶马古道)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외국인이 많다. 그만큼 차마고도는 외국인에게도 흥미로운 곳이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이 오갔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 신혼 부부들로 항시 붐빈다 기록에 의하면 티벳과의 교역은 대략 서한(西汉)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중국의 차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티벳인은 고산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공간이 부족하고 기후 때문에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영향으로 항상 생존에 필요한 비타민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중국차를 통해 해결법을 찾았다. 운남성은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차를 재배하기 좋은 온화한 기후다. 이런 천혜의 여건을 활용해 차를 가공하고 보관하는데 탁월한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란웨구  중국인은 운남성과 사천성의 차를 티벳으로 운반하고 말을 사서 돌아왔다. 지금이야 차마고도가 낭만적으로 여겨져도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이었다. 평균 해발 4천m 이상, 때론 5천m가 넘는 고봉을 넘어야 했다. 또한 장강(长江)의 지류인 금사강(金沙江)과 노강(怒江), 란창강(澜沧江)의 빠른 물살을 건너야 했으니 초인적인 체력이 요구되었다. 내가 차마고도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미국 뉴욕에서 온 관광객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이드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메모를 했다. 덕분에 차마고도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귀 동냥할 수 있었다. 당시의 교역 품을 살펴보니 차뿐만 아니라 소금, 약재, 버섯, 보석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차와 말만 거래된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이 운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차마고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전시된 사진을 보니 칼로 무장한 나시족 무사도 보인다. 귀한 상품들을 운반하던 길목에는 이를 탈취하려는 무리도 있었다. 높고 험한 낭떠러지 길도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산적들이다. 어렵게 운반하던 물품을 빼앗기면 고생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과 물건을 보호할 호위가 필요했다. 산시성(山西省) 핑야오 고성(平遥古城)에서 보았던 비아쥐(镖局 : 보디가드)와 비슷한 역할이다. 또한 이들은 거친 강을 건너기 위해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튜브를 만들었다. 때론 줄을 이용해서 사람과 물건을 강 건너편으로 옮기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차마고도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과 도전이 필요한 험난한 여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 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실크로드와는 또 다른 모험의 세계였다.물살이 빠른 강을 건너기 위해 동물의 가죽 튜브를 사용했다  차마도고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리장 주변은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모두 가고 싶지만 시간 제약이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여행사 상품을 보니 하루짜리 차마고도 체험이 있어 예약을 했다. 리장에서 멀지 않은 라스하이(拉市海) 인근에 있는 옛 차마고도 길이다. 차마고도는 이제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실제 운송로로 이용되지는 않는다. 고속도로와 철도가 뚫려 모든 물건은 트럭과 열차를 통해 티벳으로 운반되기 때문이다. 대신 이 길은 관광객의 차지가 되었다. 해발 3천m가 넘는 차마고도에는 이제 고속도로가 뚫려있다  우리가 안내된 곳은 수많은 말이 있는 마방이었다. 이곳에서 단체로 말을 타고 산을 오른다. 마방의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지저분하고 영양가가 없어 보이는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마부들은 모두 소수민족인 나시족과 백족, 장족이다. 이들 세 민족은 오래전에는 같은 민족이었다가 지역 별로 나뉘어 살면서 지금처럼 갈라졌다. 리장의 속하고진에도 옥룡설산의 만년설 녹은 물이 흐른다  장난감 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여느 도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나중에는 멋진 포즈까지 취해준다. 사진을 찍고 나서 내가 지갑을 뒤져 한국 돈 천 원짜리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주위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부러워하는 눈치다. 아이들은 물론 그들의 부모까지 나서서 '이게 한국 돈'이라며 너무 좋아한다. 나는 중국 여행을 할 때 한국 돈 천 원짜리를 여러 장 준비한다. 2년 전 칭하이에서 택시를 탔을 때 난생 처음 한국인을 만났다며 반가워하는 택시 기사가 있었다. 그는 요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대신 한국 돈을 줄 수 없느냐고 졸랐다. 한국 돈 천원을 받고 좋아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객을 기다리는 말들. 서양 말과 달리 키가 크지 않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국 돈을 꼭 챙겨 가지고 다닌다. 어쨌든 2천원 때문에 졸지에 내가 마방에서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매너 좋은 한국인이 왔다며 모두들 반겨 주었다. 그리고는 맘껏 사진을 찍으라며 이 곳 저 곳을 안내해 주었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아이들을 위해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고마움을 그런 식으로 표시했다.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이다. 2천원으로 이런 대접을 받으니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방의 마부들은 나시족과 장족, 백족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관광코스가 된 차마고도그리고 보니 시골의 후한 인심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1994년 홍콩 북경 랠리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본 경기에 앞서 미리 코스를 답사하는 시간이 있다. 동승석에 탄 네비게이터가 지도를 보고 안내를 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제공한 지도에 오류가 있어 우리 일행은 엉뚱한 산길로 들어섰다. 언덕을 여러 개 오르다 보니 차가 도저히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 나왔다. 허름한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더운 날씨인데다 길을 찾느라 이리 저리 헤매서 무척이나 목이 말랐다. 마침 마을 입구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사실 가게라 하기에도 초라한, 나무로 짠 작은 진열대 하나만 덜렁 있는 가게였다. 콜라가 너무나 마시고 싶었지만 수중에 중국 돈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줄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주인장이 우리에게 콜라를 냉큼 안겨 주었다. 돈이 없다고 손짓 발짓을 했는데 그저 웃더니 그냥 가지고 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 때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르다. 분명 산골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아주 귀한 콜라였을 것이다. 미지근한 콜라였지만 갈증을 한방에 풀어주었다. 우린 기어코 안 받겠다는 주인장에게 홍콩 돈을 지불하고 왔다. 아마 첩첩 산중 두메산골이라 환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 때 가계 주인을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천진난만한 마방의 아이들 옛 추억에 젖어 있는데 어느덧 차례가 왔다. 여섯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말을 타고 출발했다. 말을 타는 것도 익숙지 않은데 코스가 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진에서 보았던 차마고도는 절벽 위에 난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도착할 때까지 그런 길은 없었다. 마부의 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간격이 너무 떨어지거나 좁혀지지 않게 잘 조절해 나간다. 말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는지 지시를 잘 따른다. 이곳 말은 내몽골에서 보았던 것처럼 체구가 크지 않다. 서양 말에 비해 빠르지는 않아도 힘과 지구력이 좋다. 그래서 장거리를 이동하거나 짐을 옮기는데 유용하다. 그래서일까 나를 태우고도 해발 3천m가 훨씬 넘는 산을 거침없이 오른다. 차마고도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때론 강을 건너기 위해 줄을 타야 했다  기대보다 너무 평탄했던 체험 코스 중간에 나시족이 사는 마을을 몇 개 지났다. 나시족은 본래 모계사회로 남자들은 저녁에 잠시 왔다가 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들이 혼자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지으며 독립적으로 사는 게 일상이다. 이곳에서는 옥수수와 감자를 주로 재배한다. 그래선지 어딜 가나 키가 큰 옥수수가 있었다. 또한 사과와 복숭아 같은 과일도 보인다. 기후가 좋아 어떤 작물이라도 잘 자랄 것 같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있는 나시족 마을  산 중턱에 오르니 작은 마방이 있다. 이곳에서 말에게 줄 먹이를 팔고 있다. 어떤 먹이일까 보니 강낭콩이다. 콩을 말에게 내어주니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정신없이 먹는다. 그릇까지 핥아 먹을 기세다. 아마도 먹이로 콩을 팔기 위해 평소에 먹이를 잘 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여행객들은 10위엔이 아깝다며 먹이를 사지 않는다. 먹이를 먹지 못하는 말들이 무척이나 측은해 보인다. 오늘 먹지 못하면 언제 먹게 될지 모를 일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정상으로 내닫는다. 기대했던 가파르고 험한 길이 아니라서 그래선지 조금은 싱겁게 느껴졌다. 아마도 사고나 부상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순탄한 코스로 구성하지 않았나 싶다. 박물관 사진에서 봤던 코스는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라스하이는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산에서 내려오니 차를 마시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중국의 차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듣고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차를 사라고 권유를 한다. 그래도 다른 여행지처럼 억지로 강요를 하는 수준은 아니다. 운남성은 차를 키우기 가장 적합한 기후와 지형을 지녔다. 특히 푸얼시에서는 운남성을 대표하는 보위차(普洱茶; 푸얼차)가 생산된다. 요즘 스타벅스가 운남성의 커피 산지를 대량 구매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앞으로 중국 스타벅스에서는 운남성 커피가 팔리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실제 리장 고성의 많은 가게에서 운남성 커피를 팔고 있다.  바닥에 깔린 거울에 비치는 하늘과 호수의 풍경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라스하이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차마고도를 내려오니 인근에 커다란 호수로 안내한다. 라스하이(拉市海)라는 산에 둘러싸인 그림처럼 펼쳐진 거대한 습지 공원이 나타난다. 해발 2,437m 고원에 형성된 호수다. 그런데 바다와 같은 어마 어마한 크기의 호수다. 거대한 습지와 호수로 이루어진 라스하이는 정말 아름다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공원 입구에 습지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물과 조화를 이룬 습지는 야생동물에게 최적의 환경이라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와 곤충, 새들이 살고 있다. 또한 겨울을 나기 위해 약 15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오는 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라스하이의 풍경.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라스하이는 너무 커서 걸어서 돌아보기가 어렵다. 습지공원을 나오면 자연적으로 호수의 산책로와 연결이 된다. 호수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가는 곳마다 절로 감탄사를 쏟아낸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림 같은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더 멋진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방문객들을 위해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듯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맑은 호수는 파란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하얀 뭉게구름이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구 셔터를 눌러대도 그냥 작품이 된다. 파란 하늘은 높고, 그 위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은 눈이 부시다. 숨을 쉴 때마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어 공해에 찌들었던 가슴을 청소해주는 듯하다. 공원 안내판에는 친절하게도 한글이 적혀있다. 가끔 엉뚱한 번역도 있지만 성의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하다.     차마고도에서 만난 나시족 부부 한쪽에서 야릇한 의상을 입고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무리들이 있다.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푸른 호수와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은 사진 배경으로 최고가 아닐까. 게다가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은 사진을 빛내는 화려한 엑스트라다. 한술 더 떠서 바닥에 커다란 거울을 깔아 놓았다. 하늘과 호수가 거울에 비추니 가히 환상적인 광경이자 기발한 아이디어다. 상황이 이러니 모두들 사진을 찍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돈을 긁어모으는 사업이다. 분위기에 맞는 특별한 의상도 준비가 되어 있어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인간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합해져 만들어낸 장관이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구름 위의 아름다운 성, 리장 고성 2019-12-05
구름 위의 아름다운 성, 리장 고성운남성은 무지개색으로 표현될 만큼 다채롭고 신비롭기로 유명하다. 고원에 자리 잡은 운남성 리장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으며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어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자랑한다. 기온 변화도 크지 않아 최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리장 고성에서는 매일같이 축제가 열리며, 객잔에서는 호텔과는 다른 특별함을 맛볼 수 있다. 호도협은 운남성의 차를 티벳으로 실어 나르던 차마고도의 일부분으로, 가파른 협곡 사이로 거친 물살이 흘러 장관을 이룬다.운남성(云南省)을 중국에서는 치차이 윈난(七彩云南: 무지개색 운남)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각양각색의 신비스런 모습을 지닌 팔색조라는 뜻이다. 인터넷에는 운남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글과 사진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의 한 출판사로부터 리장(丽江)의 나시족(纳西族)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원래 이번 달에는 헤이롱장(黑龙江省: 흑룡강성)을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이 때문에 급히 리장으로 행선지를 바꿔야 했다.헤이롱장의 성도인 하얼빈(哈尔滨)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도시인 수이펀허(绥芬河)까지 간 후 그곳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해볼 작정이었다. 지금까지 흑룡강, 신장(新疆), 시장(西藏: 티벳)만 빼고 중국의 전 지역을 다녀보았다. 이번에 비록 흑룡강을 가지는 못하지만 내년까지는 나머지 3개 지역을 다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지대에 자리잡은 천혜의 자연 경관저장성 항저우(杭州)에서 운남성 리장(丽江)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리장은 해발 2,400m 고원에 형성된 도시다. 도착했을 때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공항에 표시된 해발고도를 보니 갑자기 숨 이 가빠진다. 리장은 3,000m가 넘는 산에 둘러싸인 도시다. 첫 인상은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공장이 없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공해와 미세먼지에 시달리던 이우와 비교하니 천국처럼 느껴진다. 리장 고성 안으로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린다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운남성은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한다. 특히 운남성에는 34개의 소수민족이 있어 중국 다른 지역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독특함이 있다. 가는 곳마다 다른 문화와 풍습이 있어서 운남성만의 특별한 매력을 발한다. 그 중에서도 리장은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존재다.눈이 부시도록 파란 리장의 하늘은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이런 곳이라면 아무렇게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될 것 같다. 폐부가 확 뚫리는 깨끗한 공기는 마음까지 후련하게 해준 다. 이뿐만 아니라 5,596m의 옥룡설산(玉龙雪山)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적신다. 그래서 리장은 풍요로움이 넘쳐난다. 이곳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아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흘러드는 흑룡담 고성도 특별하다. 800년이 넘은 고성은 중국의 다른 성과 달리 성곽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변방이라 전란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고성이 온전하게 남은 곳은 산시성(山西 省)의 핑야오(平遥)와 리장 뿐이다. 리장 고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리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96년 운남성 대지진 이후다. 방송 매체에서 지진 소식을 전하면서 자연스레 리장의 아름다운 속살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일본인이 가장 먼저 찾아왔고, 그 후 중국의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중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했다.리장 고성은 파란 하늘만큼이나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호텔과는 다른 객잔만의 특별한 매력리장 고성의 또 다른 매력은 객잔(客栈)이다. 중국 전통의 가옥에 현대식 호텔을 가미한 객잔은 아름다움과 편리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고성 안에 호텔이 없기 때문에 관광객은 모두 객잔에 머문다. 객잔마다 손님을 끌기 위해 갖가지 장식을 해 놓았다.일반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멋진 객잔은 차마고도 트래킹 코스에 있는 중도 객잔이라고 한다. 이곳 화장실에 앉아 환하게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며 일을 보노라면 최고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객잔 주인은 지역 정보를 꿰차고 있어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자연스레 외지 여행객과 만날 수 있다. 필자도 이번 여행 에서 강소성 난징에서 온 군인 부부와 함께 옥룡설산을 함께 오르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고성의 모든 길은 돌로 깔아 놓았다 리장 고성의 시작은 스방제(四方街: 사방가)에서 출발한다. 이곳으로 부터 고성의 모든 길이 연결된다. 스방제에서는 매일 축제가 열린 다. 나시족 할머니들이 오전과 오후 이곳에 모여 전통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춘다. 광장에서 큰 원을 그리며 춤을 추노라면 관광객도 자연스레 어울려 흥겨운 마당이 된다. 축제는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어둠이 내리면 모닥불이 밝혀지고 나시족의 전통 춤은 절정에 이른다. 스방제 바로 옆에는 차마 고도(茶马古道)를 통해 티벳으로 옮겨지던 차의 집산지, 마이초창(卖草场)이 있다. 리장은 운남성의 차를 티벳으로 실어 나르던 중간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스방제에서 매일 나시족 전통 춤을 선보이는 나시족 여인들 볼거리, 먹거리 넘치는 리장 고성리장 고성을 한 눈에 내려다보려면 사자산(狮子山)에 올라야 한다. 산시성의 핑야오 고성은 전체가 평지라서 어디서 봐도 성 안의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이에 반해 리장 고성은 사자산 밑에 오밀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다. 산이 그리 높지 않지만 해발고도가 높아선지 언덕을 오르면 숨이 가쁘다. 사자산 정상에 있는 만월 대(万月台)에 오르니 고성뿐만 아니라 리장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스방제에서 매일 나시족 할머니들의 춤 공연을 볼 수 있다멀리 보이는 나시족의 성산 옥룡설산의 정상은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사자산 부근에는 멋진 카페들이 있다. 목이 좋은 곳이라 전경도 좋지만 커피 가격이 비싸 다. 커피 한잔에 우리 돈으로 만원이 넘고 카푸치노는 2만원이나 된다. 자리 값이 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전망 좋은 곳에서 커피를 시켰다. 값에 비해 맛은 실망스럽다. 카페마다 호객을 위해 배치해 놓은 라이브 가수는 노래 실력이 엉망이 다. 그래도 밤이 되면 고성의 불빛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니 운치가 있다. 사자산 아래로 내려오면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이는 술집이 줄지어 서있다. 여기가 고성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굉음을 울리는 디스코텍도 있다. 한나절 고성의 이곳 저곳을 누볐던 젊은이들은 밤에도 어김없이 청춘을 불사른다.매일 축제가 벌어진다 고성에는 볼거리, 먹거리도 많다. 대도시에서 느껴볼 수 없는 가장 중국적인 모습 이다. 그래선지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 맛집은 항상 대기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에서 맛본 대추 카스테라는 별미였다. 한국에서 팔아도 대박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남성이 차의 고장임을 입증하듯 차를 파는 매장이 많다. 리장 아래로 푸얼차를 생산하는 푸얼시(普洱市)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운남 성에도 카페가 꽤 많다는 점이다. 중국인은 예로부터 차를 마시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런데 개방 이후 커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이 사이 에서는 차대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늦게까지 관광객들로 붐빈다 중국의 스타벅스 매장 수가 약 4천개로 미국 다음으로 많다는 점이 이를 잘 증명한다. 이 때문에 운남성에서는 차밭을 갈아엎고 커피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스타벅스가 커피 생산을 위해 운남성의 차재배지를 대량 구매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선지 고성 안에도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리장의 젊은이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폰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감상하곤 한다.고성의 밤은 뜨겁다. 술집과 디스코텍은 고풍스런 고성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호랑이가 건넜다는 호도협나시족이 가장 좋아하는 전통 음식은 닭고기 샤브샤브다. 여행지 어딜 가나 이걸 내놓지만 사실 맛은 별로다. 이것도 혼자 먹기는 어렵다. 항상 혼자 여행을 하니 먹는 게 문제가 된다. 중국은 혼자 먹기 적합한 음식이 별로 없다. 아침을 빼놓고는 매끼 볶음밥 아니면 국수다.그런데 리장의 볶음밥은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어가니 빅맥 세트가 45.5위엔(7,517원)이나 한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27.5위엔(4,543원)이다. 엄청난 바가지요금이다. 바로 옆 KFC의 치킨 버거도 다른 지역에 비해 엄청 비싸다. 고성 안에서는 모든 것이 비싸다고 객잔 주인이 귀띔을 해준다. 자신들은 고성 안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고 한다.사자산 정상에 있는 만고대. 이곳에서 리장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고성 안에는 작은 여행사가 무수히 많아 옥룡설산(玉龙雪山), 샹그릴라(香格里拉), 호도 협(虎跳峡) 등 리장의 유명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호도협 코스를 예약했다. 호랑이가 건넜다는 전설이 있는 협곡이다. 수억 년 전 옥룡설산과 합바설산(哈巴雪山)이 지각변동으로 갈라지면서 대협곡이 만들어졌다. 이 사이로 흐르는 진사강(金沙江)은 칭하이(青海)에서 발원한 장강(长江) 줄기다. 진사강이 운남성에서 사천성(四川省) 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장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인근에 노강(怒江)과 란창강(澜沧江)이 함께 흐른다. 노강은 운남성에서 미얀마를 거쳐 인도양으로 빠져 나가고, 란찬강은 운남성 에서 미얀마와 태국을 거쳐 베트남에서 메콩강으로 명칭이 바뀐다. 장강은 길이가 6,300여 km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으로 중국 내륙을 굽이굽이 흘러 황해로 빠져 나간다.차의 고장 운남성에서도 커피를 생산한다. 운남성의 커피를 할인판매하고 있다협곡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난 길차마고도의 한 줄기인 호도협으로 가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 운남성과 사천성의 차를 티벳으로 나르고 그곳에서 말을 끌고 오던 길이 다. 해발 5천m가 넘는 험난한 길이었지만 요즘엔 관광객의 차지가 되었다. 본래 호도협은 1 박 2일의 트래킹 코스다. 해발 2천m가 넘고 길이 16km에 이르는 협곡을 따라 이어진 산길을 때론 말을 타고 때론 걸어서 중도 객잔까지 간 후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호도협까지 가는 것이 기본 코스였다. 그러나 요즘엔 대형 버스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버스를 이용 하면 리장에서 호도협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여행사에서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중간에 배를 타고 진사강을 건너는 코스를 슬그머니 추가해 놓았다.해발 5,596m의 옥룡설산은 리장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호도협을 가는 여행 코스가 입장료와 점심을 포함해 180위엔인데 배를 타는 데에만 160위 엔을 별도로 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황당한 경우다. 그런데 배를 타지 않으면 2시간 반 동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더구나 산속에 혼자 덜렁 버려 놓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타지 않겠다고 버틸 수가 없어 어쩔 수없이 160위 엔을 내고 배에 올랐다. 진사강은 장강의 상류지역이라 물줄기가 엄청나게 세다. 대신 강폭은 엄청나게 넓고 주변 경치는 한폭의 그림과 같다.호도협으로 향하는 도로는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들어 협곡사이를 아슬 아슬하게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공포가 몰려온다. 옆은 수 백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다. 굴러 떨어지면 급류에 휩쓸려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안전벨트를 매어봐야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떨어져서 죽으나 물살에 휩쓸려 죽으나 매한가지다. 그래도 호도협은 장관이었다. 굉음을 내며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같은 기세로 협곡사이를 흐르는 거친 물살을 보고 있노라면 몸이 절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호랑이가 이 협곡을 건너뛰었다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너비가 100m 가 훨씬 넘고 물이 많을 경우에는 그 이상이니 아무리 날랜 호랑이라도 불가능할 일이다.과장이 심한 중국인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다.호도협이 흐르는 대협곡은 수억년전 지각 변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날씨까지 좋아 일 년 내내 관광객 몰려주차장에서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길고 가파르다. 웬만한 사람은 걸어서 오르내리는 것이 수월치 않다. 그래서 중국식 가마 부대가 입구에서 대기 중이다. 왕복 200위엔(3만 3,000원), 편도는 150위엔(2만5,000원)이다. 중국식 가마는 1994년 홍콩 북경 랠리에 참가했을 때 호주인 웨인 벨과 함께 광동성 총화라는 곳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벨은 당시 현대 엘란 트라를 타고 이 대회에 참가했었다. 가마는 6명이 한 팀인데, 4명이 가마를 메고 산을 오르다가 힘이 들면 2명이 교대를 한다. 사람을 태운 가마를 메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처음엔 재미있어도 용을 쓰는 가마꾼들에게 금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내려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250위엔이었으니 왕창 바가지를 쓴 것이 확실하다. 당시 중국 근로자들의 한 달 월급이 150위엔 내외였다.호랑이가 뛰어 넘었다는 전설을 지닌 호도협리장 고성의 아침은 학생들의 등교로 시작된다. 중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부모들이 바쁘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대신해서 간다. 리장은 나시족의 터전이다. 하지만 고성 안에는 정작 나시족이 거의 살고 있지 않다. 고성 안 주택은 나시족 소유이지만 대부분 외지인에게 임대를 주고 리장 시내에 살기 때문이다.매일 아침마다 조그만 중국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중국식 꽈배기인 유툐(油条)와 두유를 파는 식당이다. 주인 부부는 랴오닝성(辽宁省) 따렌(大连)에서 왔다고 한다. 내가 묵었던 객잔 주인은 헤이롱장 출신이다. 모두 이곳의 기후가 좋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리장은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도 영하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온화한 기후다. 또한 일 년 내내 많은 여행객이 찾아와 경기를 타지 않는다. 이렇게 고성에서 장사를 하는 이는 대부분 외지인이다. 고성 안의 주택은 모두 물건을 파는 상점이나 식당으로 개조되었다. 아침에는 객잔의 침구류를 운반하는 소형차들이 골목을 누빈다. 본래 고성 안에는 일반 차량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객잔에 물품을 나르는 소형차만 큼은 아침에 한해 통행이 가능하다. 이곳의 소방차도 소형이다. 고성은 골목이 좁아 큰 소방차는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장은 관광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신 연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니 쓰레기 처리가 큰 문제다. 이런 연유로 리장에서도 얼마 전부터 쓰레기 분리수거가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쓰레기 수거 차량 이 거리를 누빈다. 본격적인 고성의 아침이 시작되는 것은 보통 10시부터다. 가게 대부분이이 때 문을 연다. 저녁 늦게까지 야경을 즐긴 여행객은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고성으로 하나둘 모여든다.이제는 보기 힘든 나시족 고유의 동바문자나시족에는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상형문자처럼 생긴 동바문자(东巴文字: 동파문 자)는 2,000자가 조금 넘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1,400자 내외다. 전에는 리장의 초등학 교에서 동바글자를 가르쳤지만 요즘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학생들의 구성이 나시족은 물론 백족, 장족 등으로 무척 다양하다. 동바문자 체험실에서 동바문자를 소개하고 있다 리장이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다른 지역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여러 민족이 교류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동바문자보다는 중국어에 의존하는 처지가 되었다. 더구나 컴퓨터와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나시족 학생만 있는 일부 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3시간 정도 동바글자를 배운 다고 한다. 리장에서 모두 동바문자를 쓸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리장 고성에서 동바문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성 안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사천성 출신인 선생님은 참 인자하게 생겼다. 학생 구성이 워낙 다양해 동바문자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리장 외곽으로 나가면 나시족만 사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아마도 동바문자를 가르칠 거라고 했다.고성 안에는 나시족 문화원과 동바 문화원이 있다. 그런데 동바글자와 나시족 문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니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나시 문화원에 가면 ‘그건 동바 문화 원에서 알아보는 게 좋겠는데요’라고 얼버무리고, 반대로 동바문화원에서는 ‘이건 저희 소관사항이 아닙니다, 아마도 리장 박물관을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식이었다.호도협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중국의 가마부대고성 안에 동바문자 책을 파는 매장이 있다. 그곳 판매원이 나시족이었다. 그래서 혹시하는 마음에 물건을 사면서 판매원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그렇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열심히 대답해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동바문자도 책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웠다고 한다. 나시족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전통 문화보다는 서구 영화와 한국 노래에 더 관심이 많았다.리장 박물관에서는 나시족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나시족 문화 찾아 삼만리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동바(东巴: 동파)를 만나 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동바는 동바교를 관장하는 인물로 전통 춤과 노래, 역사 등 모든 것을 꿰차고 있다. 버스를 2번 갈아타고 리장 외곽에 있는 북악묘(北岳庙)를 찾았다. 기대 보다 그리 크지 않은 사찰 안에는 나시족이 신으로 모시는 삼도신(三 多神)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나시족의 동바는 모든 나시족 행사를 주관한다 삼도신은 나시족들이 신성시하는 옥룡설산의 화신이다. 리장 박물관에서 보았던 삼도신은 백마를 타고 하얀 모자와 하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나시족의 가장 큰 명절인 음력 2월 8일에 삼도제(三多节)를 지낸다. 그런데 삼도신 양쪽에 부인이한 명씩 앉아 있다. 한명은 백족이고 한명은 장족이다. 리장은 나시족의 터전이다. 나시족은 동바라는 상형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원래 나시족은 따리(大理: 대리)의 백족, 샹그릴라(香格里拉)의 장족과 한 핏줄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지역 별로 나뉘어 살다보니 다른 민족으로 분파가 되었다고.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다. 사찰 한쪽 허름한 건물 앞에 노인네가 앉아 있다. 생김 새로 보아 70살은 훌쩍 넘어 보이고 행색도 초라해서 이곳 관리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나시족의 사당에서는 매년 2월 8일에 삼도제를 지낸다 한문으로 써 보라고 했지만 자신은 중국 글은 잘 모른단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가 하나도 없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니 55살이란다.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데 충격적이다. 내가 사진을 보여주면서 동바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바로 동바라고 한다.나시족들이 수호신으로 믿는 삼도신. 2명의 부인을 두었다어이가 없었다. 내가 사진으로 보았던 동바는 화려한 옷에 왕관을 쓰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는데 앞에 앉은 볼품없는 노인네가 바로 동바라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차림새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동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노인네가 삼도제가 거행되는 날에는 화려한 동바의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많은 군중을 향해 이런 저런 주문을 외며 자신의 카리스마를 마음껏 내뿜을 것임에 틀림없다.글, 사진 양인환
작다고 무시 마라, ‘글로 시리즈 2 미니’ 2019-11-21
작다고 무시 마라‘글로 시리즈 2 미니’  눈에 보이는 크기는 분명히 작아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능은 더욱 높아졌다. 고객 선호도를 최대로 끌어올린  글로 시리즈 2 미니가 출시된다. 제품 이름에서도 충분히 느끼듯이 첫인상 또한 깜찍하고 상큼하다. 활동적인 현대인의 트렌드에 맞춰 워치 포켓에 쏙 넣을 크기의 글로 시리즈 2 미니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콤팩트한 크기와 충전 시간초소형 사이즈를 자랑하는 글로 시리즈 2 미니. 기존의 글로 시리즈 2와 비교하면 그 크기가 20%나 줄었다. 이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세심히 분석하고 꼼꼼하게 반영해 나온 결과다. 글로 미니는 충전 시간과 연속 사용 측면에서 경쟁 제품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 특히, 충전 시간을 33% 단축해 사용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며, 버튼을 짧게 누르면 충전 잔량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15회까지 안정적인 연속 사용이 가능하도록 리튬이온 배터리 성능을 최적화해 한 시간 충전으로 온종일 충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고유한 풍미와 편안한 그립감사이즈는 확 줄였지만 기존의 글로 시리즈 2의 특장점은 그대로 담았다. 스틱을 360° 감싸 내부까지 균일하게 가열하는 서라운드 가열 기술은 궐련형 전자담배 중 글로가 유일하며, 일반 연소 방식의 담배와 비교해 냄새는 최소화하고 담배의 풍미는 최대한 끌어낸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그립감 또한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 코리아가 자신 있게 내놓는 글로 고유의 특장점이다. 청소는 제품의 위아래를 모두 개방한 다음 클리닝 브러쉬로 손쉽게 할 수 있다.밤하늘 담은 세련된 디자인글로 미니를 바라보면 깨끗하고 청명한 밤하늘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글로 시리즈 2의 시그니처룩인 은은한 광택이 도는 상단의 파랑, 매트한 하단의 듀얼톤을 모던한 파랑이 하나의 글로를 완성하면서 트렌디하고 신뢰감 있는 디자인으로 표현했다.글로 전용 스틱인 네오는 지난해 7월 출시됐다. 네오는 오랜 노하우로 완성된 프리미엄 블렌딩을 통해 기존의 제품보다 더욱더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그해 11월에 출시한 네오 트로피컬 쿨+와 네오 루비 쿨+를 포함해 총 8가지 맛을 제공한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글로 미니와 함께 최적의 조합이 될 것이다.글로 미니는 3월부터 글로 플래그십 스토어, 글로 공식 웹사이트(www.discoverglo.co.kr), 전국 편의점이나 소매점에서 만날 수 있다. 글로 미니의 권장 소비자 가격은 10만원, 쿠폰 적용가는 7만원이다.글 김영명 기자  사진 최진호 
신선들이 노닐던 하늘 위 무릉도원, 장가계 2019-11-20
신선들이 노닐던 하늘 위 무릉도원 장가계즉흥적으로 떠난 장가계 여행은 1,200km의 거리를 자동차를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바타 촬영지로 유명한 장가계는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움으로 가득했고, 절벽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문산길, 귀곡잔도에서는 중국인들의 도전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황룡동굴은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에 깜짝 놀랐다. 대자연의 엄청난 서사시를 보면서 자연스레 힐링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던 구름이 걷히면서 마술처럼 눈앞에 수십 개의 봉우리가 나타났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와~”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의 세계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자연의 조화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런 기묘한 풍광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물주의 솜씨가 분명 하다. 장가계(张家界)의 첫 인상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 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즉흥적으로 시작된 장가계 여행장가계 방문은 아주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광저우 출장을 마치고 이우에 돌아오자마자 가방공장을 하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바이어가 와 있으니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소식이었다. 이우의 지인들과는 자주 모여 식사를 하는 편이다. 흥겨운 식사 시간이 무르 익어갈 무렵 선배가 내일 장가계를 가는데 같이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미 선배 일행은 비행기 표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난출장 때문에 일주일이상 사무실을 비웠고 또 밀린 일도 있고 해서 그 리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장가계는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마음이 동한 것은 사실이다. 선뜻 결정을 못하니 선배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우리가 일정을 하루 늦출 테니 기왕이면 모두 자동차로 가는 게 어떨 까?"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제안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아,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하며 반색을 하는 게 아닌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자동으로 끌려 들어가는 꼴이 됐다. 자신들의 비행기 표까지 취소하며 같이 가자고 하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장가계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결정이 났다. 이우에서 장가계까지 무려 1,200km가 넘는 거리다. 그런데도 걱정보다 재미있는 여행이 될 거라는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중국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자동차로 가기로 결정한 날에 영국 바이어인 마이클 램버트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토요일 저녁에 상하이를 거쳐 이우로 오겠다는 소식이 었다. 우리 일행은 이미 예매했던 장가계 행 비행기 표를 모두 취소를 했으니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모두들 오도 가도 못할 처지다. 그래서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난 장가계를 가니 네 일정을 변경해라, 아니 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잠시 후 답이 왔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없다고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니까. 직원하고 공장에 다닐 테니 걱정 말고 잘 다녀와라”하고. 영국 신사다운 매너다.1,200km를 자동차로 이동하다금요일 오후 평소보다 일을 일찍 끝내고 이우를 출발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이 조금 넘었다. 장가계는 후난성(湖南省: 호남성) 창사(长沙: 장사)에서도 300km 가량 떨어져 있다. 후난성을 가기 위해 서는 저장성(浙江省: 절강성)과 장시성(江西省: 강서성)을 지나야 한다. 고속도로에 오르니 왕복 4차선인데도 제한속도가 시속 120km다.장가계 역. 창사에서 장가계까지 기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전에는 시속 100km였는데 오히려 높였으니 중국은 안전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인상이다. 대신 졸음운전을 하기 쉬운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고속버스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서 장거리를 달리는 고속버스와 화물차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대형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차는 한번 사고가 나면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안개가 끼면 고속도로 진입을 아예 막는다는 사실이다. 중국 운전자들은 안갯속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도 중국 진출 초창기에 안갯속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아픈 추억이 있다. 새벽에 들린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운행을 멈추고 서 있는 많은 고속버스를 볼 수 있었다.1천km가 훨씬 넘는 긴 구간이지만 세 명이 교대로 운전을 하니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한명은 운전을 하고 다른 한명은 옆에서 말을 걸어주고 나머지 한명은 잠을 자면서 구간을 분배했다. 가장 참기 어려운 시간이 새벽 2~3시 경이었다. 몰려오는 잠을 참기 어려울 때에는 휴게 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를 반복했다. 중국의 고속도로 통행료는 꽤나 비싸며 성을 지날 때마다 계산을 해야 한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갈 때와 올 때의 금액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우에서 항저우를 갈때에는 70위엔인데 항저우에서 이우로 돌아올 때에는 75위엔이다. 같은 톨게이트를 이용하는데 이런 요금인 것이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렇지만 중국 운전자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새벽 5시경 동이 트기 시작한다. 정말 오랜만에 밤새도록 운전을 했다.18개의 소수 민족이 사는 오지아침 7시 30분경 드디어 장가계에 도착을 했다. 이우를 출발한 지 꼭 15시간 만이다. 출발할 때 기세등등하던 우리 일행의 몰골은 패잔병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가이드를 만나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아침 식사를 했다. 한국인이 많이 묵는다는 호텔이었지만 음식 맛은 형편 없었다. 그런데 장가계는 어딜 가나 음식 맛이 없었다. 장가계는 연간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어딜가나 인산인해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산세가 워낙 험하고 외진 곳이라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 다. 이런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이곳의 토가족(土家族)은 예전에는 산적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소수민족 중에서도 거칠 기로 소문이 나 있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국민당을 물리치고 중화 인민공화국을 세웠지만 장가계를 접수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더필요했다. 워낙 외진 곳인데다 총으로 무장한 토가족이 정규군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이곳 장가계에는 토가족을 포함해 총 18개의 소수 민족이 산다.장가계는 토가족의 터전이다. 토가족은 체구가 작은 편이다 중국 소수민족은 대부분 변방의 오지에 사는데 후난성 장가계에 이렇게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경제발전을 통해 먹고 살만하지만 20여 년 전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인구 153만의 장가계에는 대학이 있다 장가계는 1년에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중국 최고의 관광지이 다. 장가계는 천문산과 무릉원 그리고 황룡동굴과 유리다리가 있는 대협곡으로 구분된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연간 50만 명 이상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가 바로 장가계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제일 먼저 텐먼산(天门山: 천문산)에 오르기로 했다.오르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장가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 정상에 오른 후 내려올 때는 에스컬레이터와 버스를 이용하는 A 코스와 이를 반대로 이용하는 B 코스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A 코스를 이용하지만 우리는 B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첫 관문부터 모험이 가득한 천문산 코스다. 가파른 산위를 오르는 버스는 마치 산악 랠리 코스를 달리는 듯하다. 버스 운전기사가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험악한 산을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아래로 보이는 길은 천길 낭떨어지다. 만약 조금만 길을 이탈하면 뼈를 추리기도 어려울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이드의 말을 빌면 장가계 길을 내기 위해 사형수 4천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를 하다 죽은 이가 3천명이 넘는다니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공사였 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지만 공사를 무사히 끝내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기회였으니 죽을 각오로 공사에 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떨어져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장가계의 지형은 인간에게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여기에 길을 낸다는 것은 중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걸어 다니는 천문산 길의 대부분이 절벽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천문산을 오르는 도로. 조금만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도로다모험가들의 핫플레이스, 천문동산 중턱에 오르니 산봉우리 가운데가 뚫린 천문동(天门洞)이 나타난 다. 이곳의 지형은 수억 년 전에 바닷물 속에 가라 앉아 있다가 지각 변동으로 외부로 유출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과 풍화작용 으로 기기묘묘한 모양의 산악지형을 만들어 냈는데 천문동은 그 중에 서도 가장 웅장하다. 양쪽 봉우리를 두고 가운데가 뚫려 있는 형태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렵다. 천문동은 높이가 131.6m, 폭이 60m, 깊이가 50m에 이른다. 몇 년 전 러시아인 파일럿이 비행기를 몰고 이곳을 통과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요즘에는 윙슈트를 입고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니 천문동은 이래 저래 모험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천자산을 오르는 케이블 카. 그림처럼 솟은 봉우리 사이로 케이블카가 지나 다닌다장가계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맑은 날씨이지만 고도가 높아선지 계속 구름이 산을 타고 올라온다. 마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것 같다. 그러다가 구름이 걷히면 어느 틈에 우리가 절벽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구름 위를 떠다니는 신선이리라. 이곳의 잔도는 강심장을 시험하 기에 알맞은 곳이다. 절벽을 끼고 길을 낸 중국인들의 건축술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도는 하늘 위에 낸 길이다. 무너져 내리면 속절없이 수 백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형태를 알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귀곡잔도인데, 오죽하면 귀신도 놀라서 도망갔다고 하지 않는가? 잔도 위에 서면 공포가 밀려오지만 한편으로는 자동적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절벽에다 잔도를 건설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 술 더 떠서 유리 잔도를 만든 상상력은 감탄사만으로는 부족하다. 까마득한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유리 잔도를 걷노라면 절로 다리가 후들거린 다. 세상사는 것이 너무 따분한 사람이라면 천문산의 유리 잔도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극도의 공포심 때문에 건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때론 소리를 지르며 엉금엉금 기어서 가기도 한다. 일부는 울음을 터트리거나 다른 일부는 아예 유리 잔도를 피해 안쪽의 흙이 있는 부분만 밟고 가는 이도 있다.천문동은 높이 131.6m, 폭 60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다 장가계의 진면목 볼 수 있는 무릉원중국 전역에 있는 유명 관광지 입장료는 대부분 비싼 편이다. 장가 계도 가는 곳마다 내야 하는 입장료와 모든 시설의 이용료를 감안 하면 우리 돈으로 20만 원 이상이 든다. 중국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서민들은 큰맘을 먹지 않으면 선뜻 방문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첫째 날은 천문산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토가족 연인들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를 극화한 공연을 봤다. 가이드가 꼭 봐야 한다고 했지만 그리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천문산에 사는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동경하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여우 사냥꾼 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준 토가족 청년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다. 천년이 된 여우는 사람으로도 둔갑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만년을 기다린 끝에 토가족 청년과 여우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야외에 설치된 공연장은 웅장하기도 하지만 6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출연진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 다. 인해전술 수준이다. 관객도 많았는데 특히 한국 관광객은 거의다 모인 것으로 보였다. 역시 이것을 관람하려면 260위엔(4만4천 원)이나 지출해야 한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강조를 하지만 모든 것이 상업화된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 라는 점이다. 입장료가 비싸다고 해도 연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다. 비단 장사 왕서방의 명성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산을 뚫어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었다 장가계는 연중 200일이 넘게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낀다. 그래서 장가계를 여러 번 여행하고도 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날씨의 특성 때문에 봄과 여름, 겨울 3계절만이 존재한다. 장가계의 진면목은 무릉원(武陵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릉원은 원가계(袁家界), 양가계(杨家界), 삼림공원(森林公园)으로 구성된다. 무릉원은 가는 곳마다 기암절 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의 산들을 보고 자동적으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그렇지만 워낙 이런 풍경이 많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무덤덤해진다. 과장 좋아하는 중국인 들은 장가계의 멋진 봉우리가 12만개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실제 로는 약 5만개의 봉우리가 있다. 우리의 금강산이 1만2천봉이라고 하는데 장가계는 여기에 열배나 되는 12만개라고 자랑을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크고 깊은 산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계곡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물안개와 구름이 드리워진 신비스런 계곡은 오래전 신선들의 터전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든 다. 도연명이 말한 무릉도원이 세상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계곡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수억 년간 대를 이어 빽빽 하게 산을 채워온 거목들은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장가계는 1982년 중국 최초의 국가 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2년에는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었다.소수민족인 토가족의 삶은 처절했다. 오래전에는 산적활동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바타 촬영지로 세계적으로도 인기잘 알다시피 장가계는 아바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바로 원가계가 영화 속 나비 행성의 신비스런 모습들이 잘 표현된 곳이다. 아바타로 인해 장가계의 웅장하고 비밀스런 속살이 벗겨졌다. 그래서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장가계의 비경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진 부분보다 더 많은 비경이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안쪽에 숨겨져 있다. 원가계의 결정판은 하늘 위의 다리라는 천하제일교(天下第一桥)다. 천문산의 천문동과 비슷하게 가운데가 뚫어진 암석위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하늘에 떠있는 형태다. 그 다리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바로 하늘에 나있는 다리다.대협곡의 절벽에 건설된 엘리베이터 장가계는 가는 곳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인간의 존재는 하잘 것 없다는 생각만 든다. 그렇지만 원가계 최고의 장소는 천하제일교에서 미혼대(迷魂台)에 이르는 절벽 군이다. 그야말로 사진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된다. 사진에 서는 누군가 연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기기묘묘한 형태였다. 그 그림들이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니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굽이 굽이 산을 따라 만들어진 잔도를 걷다보면 무감각해 진다장가계를 둘러보면서 중국인의 생각은 서양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칙 으로 하지만 중국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개발을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천문산에 오르는 도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도저히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길이다. 또한 7km가 넘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암벽을 뚫어 60m짜리 에스컬레이터를 12개나 설치한 데서 중국인의 무모함이 보인다. 원가계의 절벽에다 높이 335m에 이르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으니 가히 중국인들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장가계는 한마디로 천혜의 풍광과 중국인의 모험심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만약 중국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특히 절벽을 돌아가면서 만든 잔도는 과연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절벽 위에 길을 내겠다는 구상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를 실현한 집념도 대단 하다.하늘 위의 전망대. 이곳에 서면 세상이 발아래 있는 듯 하다. 바닥은 유리다 KFC를 반기게 되는 현지 음식 수준장가계에서 먹은 토가족의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아침 7시에 허접한 식사를 하고 나왔기 때문에 12시가 되기도 전에 배가 고팠다. 그래서 기회가 나는 대로 휴게소에 들러 이것저것 먹어봤다. 그러나 모든 음식이 기대 이하였다. 중국 음식에 익숙한 나도 먹기가 불편했으니 한국에서 온 김사장 부부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늦은 점심을 양가계에 있는 KFC에서 먹기로 하자 모두들 너무 기뻐하는 눈치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악 지역에 맥도날드와 KFC가 장사를 하고 있다. 양가계에서 먹은 KFC 닭고기 버거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동안 출장 중에 가끔 들리던 KFC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장가계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양가계에는 많은 원숭이가 살고 있다 양가계에서 많은 원숭이들과 마주쳤다. 관광객들의 음식이나 가방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대단히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뿌리치면 대들기도 한다. 순식간에 접근해서 사람들의 물건을 채가기 때문에 핸드폰은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그 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어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낭패다. 지난번 하이난도에 들렸다가 날치기 당한후 맨붕에 빠진 적이 있어 그런 걱정이 앞서는 것 당연하다.유리다리를 찾는 사람들은 별별 방법을 동원해서 연출 사진을 찍는다 황룡동굴(黄龙洞)은 기대이상이었다. 처음에 굴을 간다고 했을 때 막연히 우리나라 제주도의 만장굴 정도를 상상했다. 그래서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멀리까지 와서 굴이나 봐야 하나 하는 실망감도 들었다. 그렇지만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굴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별로 흥미가 끌리는 곳이 아니었 다. 그런데 막상 입장하고 보니 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그동안 내가 돌아봤던 어떤 동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황룡동굴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카스트 지형으로 길이가 약 10km에 이르고 수직고도가 160m나 되는 4층 구조다. 굴 안에서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수많은 종유석은 크기도 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종유석은 1cm 자라는 데 백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는데 가장 큰 정해신침(定海神针)이라는 종유석은 19.2m나 되니 이런 굴이 형성되기까지에는 억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나라가 크니 모든 것이 큰 모양이다. 굴 안으로 난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무척 심하다. 크기도 크기지만 구조가 복잡해서 출구를 찾는 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만약 안내원이 없다면 굴 안에서 미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원가계 유리다리에서 공포 체험장가계의 마지막 코스는 유리다리다. 안전을 위해 하루에 8천 명으로 입장인원을 제한한다. 입장을 하기 전에 철저하게 소지품 검사를 하는데, 사진기를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 바닥에 설치된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유리다리는 대협곡 사이에 건설된 430m 길이의 현수교다. 바닥에 99개의 투명한 유리를 설치해서 밑을 내려다 볼수 있도록 해놓았다. 높이는 300m에 달하기 때문에 밑을 내려 다보면 아찔해진다. 특히 약간의 신축성이 있는 유리는 걸을 때출렁이는 느낌이 있어 공포심이 극에 달한다. 한때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자들을 모아 놓고 도끼로 유리를 내려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다리 위에는 각종 포즈로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놓여진 유리다리라고 한다.황룡동굴에는 기기묘묘한 형상을 한 종유석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다 유리다리를 건너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협곡으로 내려온다. 이곳에도 원가계와 마찬가지로 절벽에다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놓았다. 가는 곳마다 감탄하게 되는 장가계다. 험한 산세 때문에 웅장한 협곡이 자연적으로 생겨났고, 긴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폭포와 동굴을 자연스레 만난다. 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다. 계곡의 끝에는 물을 막아 놓은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이곳을 배를 타고 건너면 장가계의 긴 여정이 끝을 맺는다.대협곡 사이에 놓여진 유리다리는 안전을 위해 입장객을 제한한다 3일 간의 여정을 끝내고 이우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 에서 온 김사장 부부는 장가계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 장가계에서 이우까지는 나와 가방 공장을 하는 선배가 운전해야 하는데 이분이 백내장 증세가 있어 야간 운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배는 밤이 깊어지기 전까지만 운전을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1,200km가 넘는 구간의 야간 운전을 맡아야 하는 처지다. 올 때에는 신비로운 장가계를 봐야겠다는 들뜬 마음이었지만 갈 때에는 지루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1992년 록스타를 타고 호주를 한 바퀴 돌때에는 하루에 2천km를 운전한 적도 있지만 그 때는 30 대의 혈기 넘치는 청춘이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저녁은 장가계에서 산 빵과 커피로 해결하고 밤새도록 운전을 했다. 연일 장가계의 비경을 누볐으니 피곤하지 않을 리없다. 새벽 2시가 넘으니 졸음이 정신없이 몰려온다. 여행은 안전이 제일이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도 다치거나 사고가 나면 안 가는 것만 못하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깐 눈을 붙였다. 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을 반복하며 밤새 차를 몰아 이우에 도착하니 오전 9시 반이다. 장가계를 출발한 지 꼭 17시간 만이다.장가계의 명물로 불리는 대협곡 사이 유리다리이제와 돌이켜 생각하니 실로 엄청난 경험이다. 왕복 2,500km나 되는 먼 길을 자동차로 다녀오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현실로 옮겼다는 생각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더불어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가계의 비경은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오늘 저녁은 영국에서 온 마이클 램버트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 그리고 장가계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아야겠다.글, 사진 양인환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下 2019-08-20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上 보기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란저우 수차박물관에서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물레방아를 볼 수 있다란저우 시내를 관통하는 강물은 물 반 진흙 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진한 황토색이다. 많은 중국인이 황하를 보고 난 후에 진정한 중국인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일부 사람들은 물병을 가져와 황하의 물을 담는다. 우리가 백두산 천지에 올라 그곳의 물을 담을 때 느끼는 격한 감동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뜻을 의미하듯 황하강 변에는 황하 모친상이 만들어져 있다. 란저우에서 흘러내려 간 물은 시안 인근에 있는 후커우 폭포에서 또 한 번 중국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산같이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후커우 폭포는 중국인들의 혼을 상징한다고 여기고 있다.        황하강에 처음 건설된 중산교란저우 시내를 흐르는 강 위에 여러 개의 다리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중산교에는 오늘도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중산교가 많은 조명을 받는 것은 중국 역사상 황하강에 처음 건설된 다리이기 때문이다. 1910년 독일인들에 의해 중산교가 만들어졌다. 그리 길거나 넓지 않지만 황하강을 건너는 최초의 다리란 점이 의미가 있다. 장강에 놓인 최초의 다리는 1965년 우한에 건설된 우한 대교다. 이것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기술자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지금이야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를 건설할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지녔지만 1970년 이전에는 다리 하나 제대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뒤쳐졌었다. 중산교는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중산교는 란저우의 명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많은 이들이 중산교에 서서 황하가 도도히 흐르는 모습에 감격하고 때론 소원을 빌기도 한다. 황하는 중국인들에게 단순히 강이 아니라 중국의 혼과 역사는 물론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라 강변에 황하 모친상이 만들어져 있다.티벳불교의 고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백탑, 징기스칸을 알현하고 돌아오다 란저우에서 숨을 거두었다  중산교 인근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대부분이 회족이다. 커다란 화단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는 회족 가족을 만났다. 참 선하게 생긴 얼굴들이다. 중동의 IS를 생각하면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험상궂을 것이란 선입견을 품게 되는데 중국 회족은 순한 생김새를 지녔다. 신장의 위구르족과도 현저하게 다르다. 딸은 광저우의 무역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딸이 모처럼 휴가를 내고 간쑤성 장위에 사는 부모를 모시고 란저우 구경을 왔다고 한다.    란산을 오르는 길고 긴 케이블카중산교를 지나면 란저우에서 가장 유명한 백탑사란 절이 나온다. 정상에는 원나라 시대 칭기즈칸을 숭배하던 티베트 고승이 몽골을 방문하고 내려온 후 이곳에서 사망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백탑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란저우 시내의 풍경은 장관이다. 백탑사에서 시내를 관통하고 나면 남쪽에 웅장한 란산이 가로막고 있다. 서울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도심을 강이 가로지르는 형태다. 란산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의 발음이 시원치 않다. 소수민족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중국 남서부나 북서부 모두 소수민족의 터전이다. 중국의 55개 소수 민족이 대부분 중국의 서부 지역에 몰려있다. 택시 기사가 나한테 "발음으로 보아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을 걸어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정말이냐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인을 처음 본다며 감격해 한다. 중국 서부에 오니 한국인을 처음 본다는 중국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난번 칭하이를 방문했을 때에도 같은 경험을 했다. "혹시 한국 돈이 있으면 볼 수 있느냐?"고 물어 천 원짜리를 내보였더니 중국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냐고 묻는다. 약 6위엔 정도라고 하니 택시비를 이걸로 받겠다고 한다. 내가 이건 선물로 주고 택시비를 별도로 내겠다고 하니 한사코 사양한다. 워낙 강하게 뿌리쳐서 택시비를 우리 돈 천원으로 해결했다. 한국 사람은 물론 한국 돈도 보기 힘들다 보니 기념으로 두고두고 보관할 심산인 모양이다. 장가계를 가면 중국 상인들이 "이천원 이천원"하며 한국말로 흥정을 하고 한국 돈까지 받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서부는 완전히 딴 세계인 셈이다.   무궁화가 활짝핀 백탑사에서 바라본 란저우 시내란산은 해발 2,129m나 되는 높은 산으로 시내를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웅장한 형상이다. 깎아지를 듯 경사가 심한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그런데 워낙 길어서 정상까지 30분이나 걸린다. 산을 하나 넘고 나면 다른 봉오리가 나타난다. 이렇게 험한 산에 깎아 길을 내놓았는데,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모습이 묘기 대행진을 연상시킨다. 만약 길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뼈를 추스르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절벽 위에 지어진 멋진 사찰이 보인다. 중국인은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선지 많은 절이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톡 건드리면 속절없이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사찰들을 들려보기로 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형이상학적인 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이 높아서 그런지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사찰 구경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험한 란산을 타고 오르는 도로는 위험천만해 보인다예나 지금이나 실크로드의 중심지 란저우에는 엄청나게 큰 내륙 무역항이 건설되어 있다. 중국에서 말하는 신실크로드의 출발점이다. 실크로드의 중간점인 돈황도 란저우를 통해야 한다. 당나라 시절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은 시안에서 출발해 란저우에서 재정비를 한 후 돈황을 거쳐 서역으로 갔다. 란저우는 이런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크로드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국 정부는 란저우를 신실크로드의 중심점으로 기획하고 이곳에 대규모 물류 창고를 지어 놓았다. 이곳에서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동으로 중국제품을 내보내게 되면 엄청난 물류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란저우가 새로운 신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란저우가 급격히 커지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고층 건물들도 속속 건설되고 있다. 내가 막연히 생각해 오던 초라한 모습의 란저우는 찾을 수 없었다. 여유롭게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 란저우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란저우에서 우연찮게 “태민이네”라는 한국식당을 발견했다. 이곳에도 한국식당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의외로 손님들이 많다. 라면이라도 하나 먹으려고 들렸는데 크지 않은 식당이지만 깨끗하고 음식은 정갈하다. 옆에 앉은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니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와 K팝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아이돌 가수를 이야기하는데 내가 모르니 나보고 한국인이 맞느냐고 묻는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에서 한국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젊은이들은 아직도 한국 문화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란저우를 갈 때는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이우로 돌아올 때는 고속철을 탔다. 신장 우루무치도 란저우에서 고속철을 이용할 수 있다. 란저우에서 우루무치까지 1,920km는 자동차로 24시간이 소요되지만 고속철은 12시간 반이 걸린다. 란저우에서 우루무치까지 건설된 고속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로다. 다음에 우루무치를 방문하게 된다면 란저우에서 고속철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고속철로 달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글 사진 양인환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上 2019-08-20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실크로드 길목에 자리한 간쑤성 란저우는 동서양이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기에 이슬람 사원, 불교 사찰, 도교 사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국 정부가 기획 중인 신실크로드에서도 란저우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그 덕분에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고층 건물이 속속 지어지고 있다. 하늘 위에서 본 간쑤성(甘肃省)의 지형은 아주 특별해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온 중국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간쑤성은 중국 서북부 교통의 요지로, 북쪽으로 내몽골(内蒙古), 서쪽으로 신장(新疆), 남쪽으로는 칭하이성(青海省)으로 연결된다. 동쪽에는 회족(回族)자치구가 있다. 란저우(兰州) 인근의 북부지역은 대부분 사막이며 남쪽은 높은 산과 평야가 공존한다. 이런 지리적 조건 때문에 간쑤성의 토양은 신장이나 내몽골의 사막과 칭하이의 산악지형을 합쳐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아단 지질공원과 같은 특별한 지형의 공원이 많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세계의 학자들이 지구의 생성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방문을 한다. 내가 란저우를 방문했을 때도 베이징의 지질대학 학생들이 단체로 대형 버스 여러 대에 나누어 타고 이동 중이었다.   란저우 주변의 토양은 사막에 가깝다 란저우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 때문에 많은 곳이 패어 있었다. 모래가 많은 지형이라 비가 내리면 토사가 쉽게 흘러내린다. 시안에서 연안으로 가는 길과 비슷해 보였다. 그렇지만 주위의 풀들이 마치 쑥쑥 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띠고 있다. 도로 주변에 과일이나 채소를 기르는 농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은 사막, 반대편은 초록이 무성한 색다른 풍경이다. 사막과 같은 이곳에서 푸르름이 넘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내몽골에서도 한번 경험을 했는데, 삭막한 모래땅 위로 비가 한번 내리니 거짓말처럼 여기저기서 초록 풀들이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마치 사막 위에서 기적이 펼쳐지는 듯했다.           하늘에서 본 깐수성의 모습.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할 수 없이 시작된 란저우 투어란저우는 간쑤성의 성도다. 인구는 380만 명으로 상하이나 광저우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중국 서북부에서는 꽤 큰 도시에 속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새로 짓고 있는 고층 빌딩과 대형 아파트다. 중국 어딜 가나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이나 아파트를 볼 수 있는데 란저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인구는 아니지만 이것도 10여 년 전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난 숫자다. 중국 정부의 서부 대개발 계획으로 많은 한족이 란저우로 이주해 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구의 급작스러운 증가는 자연히 건설 붐으로 이어져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중국의 어느 도시나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란저우는 회족들의 터전이다. 란저우 시내에 많은 이슬람사원이 있다     아직도 전동 오토바이가 많기는 하지만 급격한 자동차의 증가로 도심은 교통체증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지하철을 건설 중이다, 1호선이 개통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란저우역 근처에서 내린 후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택시 잡기가 수월치 않다. 길에서 비를 맞고 있으려니 일반 자가용이 다가온다. 내가 수첩에 적어 놓은 호텔 주소를 보더니 “50위안을 내라”고 한다. 비는 오고 택시 잡기는 어렵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라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한참 동안 시내를 누비던 차가 호텔 앞에 멈추어 섰다. 30여 분 이상을 달렸으니 50위안(8,400원)이라는 돈이 그리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란저우 역을 가려는데 택시 기사가 “정말 택시를 타겠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호텔 앞쪽의 길에서 우회전을 한 후 1분도 안 되어서 란저우역에 도착을 했다. 걸어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라 택시를 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전날 운전사가 50위안을 받기 위해 나를 태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셈이다. 란저우 역, 란저우는 중국 북서부 교통의 요지이다  란저우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사부터 찾았다. 이곳에서 신장으로 고속철이 연결된다. 또한 칭하이를 거쳐 티벳의 라사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우루무치를 갈 수 있는 5박 6일의 여행상품도 있었다. 가격도 650위엔(11만원)이니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6일 동안의 숙식비는 물론 교통비와 입장료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외국인은 불가하단다. 중국인이 잘 수 있는 호텔에는 외국인 숙박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올수록 이런 경향이 짙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장이나 티베트는 중국에서 민족적 분규가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다. 신장 위구르족은 한때 무장투쟁을 통해 중국 정부에 대항을 했고 티베트는 승려들의 분신으로 자신들의 독립 의지를 분출해왔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언제 또다시 불씨를 키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티벳과 신장 지역을 출입하려면 상당히 많은 보안검사를 받는다. 어쨋든 이런 여행 상품을 이용할 수 없으니 조금은 답답하다. 난 중국인이 이용하는 호텔에 익숙하기 때문에 여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니 야속하기만 하다. 여러 여행사를 다녀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헛물만 켜고 란저우시내 나들이에 나섰다.란저우시내를 관통하는 황하강, 중국에서 장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동서양이 만나 형성된 특별한 문화란저우는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 특별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특히 실크로드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이슬람 문화가 전달되는 기착지 역할을 했다. 이런 연유로 많은 이슬람인이 거주한다. 특히 회족의 모습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회족이 만드는 란저우 라멘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다. 투르크만스탄이 고향인 회족들은 당나라 시대 이전부터 물물을 교환하면서 자연스레 중국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일부는 광동성과 푸젠성까지 진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간쑤성과 인접한 회족 자치구에 터전을 잡았다. 중국이 근대화되면서 회족들도 도심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그중 란저우가 중심에 서게 되었다. 많은 회족이 중국 전역에 퍼져 란저우라멘(兰州拉面)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란저우 라멘이라는 간판만 달면 장사가 되는 셈이니 회족들에게는 란저우가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다. 란저우 라멘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우에도 여러 개의 란저우 라멘 가게가 있다. 나도 가끔 일부러 먹으러 가기도 하는데 모두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란저우 라멘은 일반 중국의 국수와 달리 쇠고기 육수를 사용한다.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중국에서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서북부는 모래가 많은 땅이라 쌀 대신 밀 농사를 짓는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빵이나 국수가 발달했다. 그리고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란저우 라멘을 파는 식당은 대게 돼지고기가 없다. 중국에 살면서도 일반 중국인과 다른 문화와 식생활을 지니고 있다. 란저우에는 많은 회족들이 살고 있다. 남자는 흰모자를 여자는 히잡을 쓰고 생활한다 란저우에 왔으니 란저우 라멘을 건너뛸 수 없다. 란산 인근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 들렸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명한 란저우 라멘집이다. 종업원들이 회족임을 나타내듯 남자는 흰 모자를, 여자는 히잡을 두르고 있다. 식당 안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손님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눈에 봐도 장사가 잘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주방에서는 흰 모자를 쓴 주방장이 엄청난 양의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 란저우 라멘은 모두 손으로 만든다. 이들은 라멘의 굵기를 엄지손가락 굵기부터 실처럼 가늘게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라멘 가격은 7위안(1,180원)이니 그리 비싸지도 않다. 국수는 덜 익은 듯한 맛이 나지만 국물 맛은 끝내준다. 내가 그동안 먹어보았던 일반 중국 국수와는 다른 담백한 맛이다.강물을 물통에 담으며 감격해 하는 중국인, 평생 간직할 멋진 추억이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주식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먹는 음식에 돼지고기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을 먹어 치운다. 미국과 무역전쟁 때문에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해서 중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돼지 사료로 쓰는 대두의 90%를 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북서부로 오면 돼지고기를 구경하기 어렵다. 또한 쌀농사를 짓지 않으니 밥이 귀한 지역이 많다.     중산교의 야경, 중산교는 저녁에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란저우에서는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고 종교도 다양하다. 길거리에서 이슬람사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절과 도교사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부 지역에는 교회도 있으니 그야말로 종교의 천국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종교는 정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다. 3개월 전에 이우의 한국인 목사가 추방을 당했다. 추방 이유는 종교 비자 없이 교회에서 설교했다는 명목이었다. 만약 중국 교회에서 외국인이 설교를 하려면 해당 국가의 중국 영사관에서 종교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 영사관에서는 절대 종교에 관한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결국 외국인 목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란저우는 불교와 이슬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사찰 앞에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란저우다중국의 종교인 유교와 도교는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특정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기독교나 이슬람과 달리 도교나 유교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이나 미 특정의 신령에게 예를 표한다. 또한 예를 표하는 목적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 달라는 의미다. 유교는 공자, 도교는 노자의 사상을 토대로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종교란 모두 재물과 연계되어있다. 중국이 급격한 경제발전을 통해 서구주의를 받아들이다 보니 유교나 도교 사상이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화혁명 당시 공자는 타도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원과 공자상이 부서졌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상대할 만한 경제 대국이 되면서 공자나 노자의 사상을 재평가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란중산교는 안전 문제때문에 자동차가 다니지 못한다. 중산교는 걸어서 건널 수 있다다 중국인에게 너무나 특별한 강, 황하란저우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황하강(黄河江)이다. 황하강은 중국에서 장강 다음으로 긴 강으로 길이만도 5,464km나 된다. 황하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에게 단순한 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 역사와 함께 한 황하에는 중국인의 역사와 삶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제일 긴 장강(长江)은 무려 6,300km다. 중국은 장강을 기준으로 남과 북을 가른다. 장강 위쪽에 살면 북방 사람이고 남쪽에서 살면 남방 사람이 된다. 남방은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그 기준이 바로 장강이다. 장강으로 인해 성격 또한 구분된다. 북방 사람들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올 정도로 다혈질이지만 남방에서는 싸울 일도 말로 끝내는 냉철함을 지녔다. 란저우의 대표적인 사찰 백탑사의 대웅전, 란저우 시내가 바라다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장강이 중국 제일의 강이지만 황하강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그 이상이다. 황하에는 장강에 없는 혼이 서려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황하를 접하는 처음 중국인은 경건하고 숙연해진다. 황하는 말 그대로 흙탕물이다. 도도히 흐르는 황하는 칭하이에서 발원하여 여러 개의 성을 거쳐 황해로 빠져나간다. 황하강의 상류인 란저우에는 항상 수량이 풍부하다. 이를 이용해 란저우 사람은 예로부터 물자를 옮기고 수차를 돌렸다. 우리의 물레방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다. 황하강 변에 만들어 놓은 수차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다. 신 실크로드의 중심 란저우(兰州) 下 보러가기 글 사진 양인환 
북방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관문 톈진.. 2019-07-19
북방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관문 톈진 天津이태리 풍경구는 마르코 폴로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다북방 최대의 항구 도시 톈진은 오래전부터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였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최초의 고속철이 개통된 것 역시 톈진-베이징 구간이었다. 마치 유럽 마을을 보는 것 같은 이태리 풍경구는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톈진 조약이라는 치욕적인 역사를 담고 있다. 이 밖에도 19세기 말 힘없이 휘둘려야 했던 조선의 슬픈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톈진(天津: 천진)은 베이징(北京: 북경)으로 가는 길목이자 북방 최대의 항구 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해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는 인천과 같은 도시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항상 베이징의 명성에 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해안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톈진이 현재와 같이 중요한 위치로 올라선 것은 베이징의 동부 해안 방어선 군사기지 역할을 하면서부터이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화가 된 도시이기도 하다. 톈진은 중국에서 제일 먼저 고속철이 건설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일주일 앞두고 8월 1일 톈진-베이징 간 고속철이 개통되었다. 전장 113.54km에 불과한 거리였다. 톈진은 인구가 1,220만 명이고 면적은 11,916㎢로 서울의 약 20배나 되며 베이징, 상하 이, 충칭과 함께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하나다. 톈진이 근래에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15년 8월 대형 폭발 사고 때문이다. 44명이 숨지고 520여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사고였다. 대부분 화학물질을 취급하던 창고였기 때문에 화재의 여파가 엄청났는데, 당시 폭발 규모가 TNT 환산 24톤 이상이라 사고 반경 10km 이내의 건물들이 모두 날아갔다. 대형 지진 등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의 사고였다.1900년대 초의 텐진의 모습.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매년 자전거 전시회가 텐진에서 열린다자전거의 도시 톈진중국의 근대화 시절에 모든 새로운 문물은 톈진을 거쳐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자전거도 그중 하나다. 중국은 자전거의 나라다. 한 때 끝없이 이어지는 긴 자전거의 행렬이 중국을 상징하다시피 했었다. 예전에 비해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전거 생산국이자 보유국이다. 그 대부분이 톈진에서 만들어진다. 톈진은 자전거의 도시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자전거의 50% 이상이 메이드인 톈진이다. 2018년 중국에서 생산된 자전거의 숫자는 4,038만대인데 이 중 2,192만대가 톈진에서 생산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자전거도 톈진에서 들어온다. 삼천리를 비롯한 한국 자전거 업체들이 톈진의 공장과 협약을 맺고 제조, 수입해서 판매한다. 한때 필자도 톈진의 한 공장에서 자전거를 만들어서 한국에 판매했었다. 3년간 팔았지만 계속되는 불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손을 들었다.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만 매번 품질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중국의 공장은 우리와 달리 월급제가 아닌 도급제로 운영된다. 즉, 물건을 만들어 내는 만큼 계산을 해서 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니 직공들은 공장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개별 사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급이 월 6,000위안이라는 것은 이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에 해당되는 일을 정기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장 사장은 직공이 이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주문을 받아 오면 그만이다.중국은 자전거 시대에서 전기 자전거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매년 톈진 전시장에서 자전거 및 전기 바이크 전시회가 열린다. 올해 주최 측의 초대를 받아 관람하러 다녀왔다. 외국인 모델까지 동원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규모였다. 전시회를 통해서 이젠 자전거 시대가 가고 전기 자전거가 시대가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중국은 모든 운송 수단을 전기화하고 있다. 버스에서 택시, 오토바이, 자전거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이미 전기 방식으로 상용화했다. 톈진 시내를 주행하는 이륜차 대부분이 전기 오토바이와 자전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충전소인데, 어느 곳에서나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에서 힘을 쓰고 있다.중국에서 활성화된 공유 자전거 시스템. 적절한 곳에 적당한 수량을 배치하는 것이 관건이다중국 고속철 역사의 시작점중국 고속철의 역사도 톈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중국의 고속철은 세계 최고다. 2018년까지 중국 내에 깔린 고속철의 길이는 2만 7,684km에 이른다. 중국에 처음으로 고속철이 건설된 것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8년 개통된 톈진-베이징 구간이었다. 승용차로 2 시간 이상이 걸리던 거리를 30분 만에 주파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배차 간격이 10분에 지나지 않아 대단히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머지않아 중국 전역이 고속철로 연결된다. 계획된 구간을 더하면 3만8천km에 이를 계획이다. 고속철이 잘 발달한 일본이 3,031km인 것에 비하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가늠할 수 있다. 고속철이 중요한 교통수단인 스페인이 2,852km, 프랑스가 2,814km이고 독일이 1,620km에 불과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 고속철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텐진 교통의 중심인 텐진역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도 많지만 북서풍을 타고 들어오는 중국 미세먼지의 영향이 더욱 크다. 베이징과 톈진의 환경 문제는 중국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때론 낮에도 100여m 앞의 물건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스모그에 시달린다. 톈진 시민 일부는 망사를 쓰고 다닌다. 어떤 이들은 봄에 날리는 꽃가루 때문이라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폴리에스터 망사로 미세먼지를 막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경제적일 수 없겠지만 설득력이 없다. 미세먼지는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튼 얼굴에 망사를 쓰고 다니는 모습은 민망해 보인다.텐진의 스모그는 베이징과 더불어 최악이다치욕의 역사 담긴 이태리 마을톈진을 다니다 보니 생뚱맞게 이태리 마을(意大利风景区)이 있다. 규모가 꽤 큰 것으로 보아 많은 이탈리아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청나라와 아편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홍콩을 영구 지배하고 600만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는다. 1842년 청나라가 영국과 맺은 굴욕적인 난징조약의 결과다. 이 조약에는 광저우, 상하이, 샤먼, 푸저우, 닝보 등 5개 항을 개항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5개 항이 개항된 이후에도 영국의 수출 물량은 늘어나지 않았다. 영국 정부에서는 개항된 항구에 자신들이 원했던 쑤저우(苏州)와 항저우(杭州)가 포함되지 않은 데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1856년 제2의 아편 전쟁의 도화선이 된 애로호 사건이 발생했다.이 작은 배는 중국인 소유였지만 선적은 홍콩이었고 선장은 영국인이었다. 청나라 정부에서 해적 혐의로 이 배의 선원들을 모두 체포하자 영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하며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는 청나라의 체제가 거의 무너진 무렵이라 전국에서 자생적으로 마적들이 생겨나고 바다에서는 해적이 출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청나라가 이를 거절하자 영국은 군대를 동원해 다시 중국 전역을 공격 했다. 톈진도 그중 하나였다. 국제무대에서 서로 연합전선을 펴던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을 맺고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영국과 프랑스군의 공격에 청나라 군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후 텐진에는 9개국의 조차지역이 설치되었다 필자의 사무실이 있던 광저우의 산웬리(三元里)에도 당시 영국군이 진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톈진의 포대가 연합군에 저항했지만 강력한 신무기로 무장한 그들의 공세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이에 청나라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톈진 조약을 맺게 된다.‘북경에 대사관을 연다. 영국과 프랑스에 배상을 한다. 아편무역을 합법화 한다’ 등 굴욕을 강요하는 불평등 조약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랑캐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나라는 그동안 영국을 오랑캐로 지칭해 왔다. 그러나 후에 마음이 바뀐 청나라는 톈진 조약을 무효화하는 무모한 행동 벌이다 다시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치욕을 당한다. 베이징 코앞까지 연합군이 들이닥 치자 결국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톈진 항을 개항하고 톈진 조약의 2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톈진 조약 이후 톈진 면적의 8배에 달하는, 9개국을 위한 조차 지역이 만들어졌다.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텐진 이태리 풍경구 이태리 풍경구는 중국이 겪은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1902년 펠레타인이라는 해병대 중위를 책임자로 임명하여 이 지역을 설계했다. 민족로와 자유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장방형으로 퍼져 나가며 당시 최고의 건설기술로 완전한 도로망과 공용시설을 만들 었다. 청나라의 척박한 도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고급스러웠다. 중앙에는 마르코 폴로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으로 원나라 시대에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또 관직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이태리 풍경구를 돌다 보면 유럽 도시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럽식 주택과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역사가 오래된 호텔도 보인다. 당시 주택은 이탈리아식 가든 빌라 형태로 지어졌다. 200여 채가 넘는 주택은 100년이 넘었으면서도 여전히 고급스러운 분위 기를 풍긴다. 많은 주택이 식당과 카페로 영업 중이고 일부는 여전히 주민이 살고 있다. 길 양쪽으로 멋진 식당과 카페, 기념품 판매점이 영업 중이다. 간판을 보니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중국에서도 이탈리아 음식은 고급으로 인정받는다. 이태리 풍경구에는 2개의 스타벅스가 있는데,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상황에서도 성업 중이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 아이폰과 미국 자동차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얼마 전 우리가 겪었던 사드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다. 무역 전쟁의 여파가 길어지면 KFC나 맥도날드, 스타벅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이태리 풍경구의 스타벅스. 미국과의 무역분쟁 중이지만 성업 중이다큰 북으로 위험을 알리던 구로우톈진은 구로우(鼓楼: 고루)를 중심으로 뻗어져 나가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고루는 고대 모든 큰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고루는 고대로부터 큰 북을 놓아둔 건물로 외적이 침입했을 때 신속하게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중요한 예식에도 사용되었다. 고루 위에 올라서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분증만 있으면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외국인의 경우 여권을 보여주면 된다. 여권을 호텔에 두고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중국 운전 면허증을 내보였더니 위아래로 쳐다본다. 중국에는 한족과 더불어 5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신분증은 물론 운전 면허증에는 민족이 표시되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가 표시된다.청나라 시대의 텐진 고루의 모습. 고루는 위험이 발생하면 큰 북으로 이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고루 안에 들어서니 1404년에 건설되었다는 표시가 있다. 톈진의 역사와 함께 한 건물이다. 1층에는 톈진의 고대와 근대사에 관한 자료 실이 있다. 역사에서 배웠던 인물들이 눈에 띈다. 격변기에 등장한 이홍장(李鸿章), 원세개(袁世凯: 위안스카이) 등등의 인물들이 소개 되어 있다. 2층에는 주디(朱棣: 영락제)의 초상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디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넷째 아들이다. 주원장은 몽골이 지배하던 원나라를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인 명을 건설했다. 주원장이 죽고 장자인 의문 태자가 병사하자 그의 아들인 주윤원(朱允玟)이 대를 이었다. 그의 삼촌인 주디는 베이징을 일대로 하는 연(燕)나라의 왕으로서 북방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주윤원은 주디의 군사력이 워낙 막강해서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그래서 자객을 보내기도 하고 독을 이용해서 죽이려 했다.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긴 주디는 군사를 이끌고 난징으로 진격해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경우는 조금 틀리지만 조선 시대 조카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를 세조가 떠오른다. 이때 전 황제를 따르던 신하들은 물론 그들의 친척까지 철저하게 살육한다. 본래 삼족을 멸하는 것이 중국 역사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주디는 반대파의 외족의 십족까지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워낙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난징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불편했다. 또한 북방에서 몽골족의 침입이 그치지 않았기에 명의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원나라가 쓰던 황궁 자리에 새로운 궁을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자금성이다. 이후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의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루의 한쪽에는 영국군이 톈진을 공격하는 사진과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청나라 군인은 용감하게 싸우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과 프랑스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마치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 외국군이 강화도를 공격하던 우리의 개화기 시절을 보는 것 같다.텐진은 고루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져 나가는 구조다먹거리 가득한 남시식품가톈진에는 특별한 먹을거리가 많다. 톈진 고유의 음식에는 고부리(狗不理), 마화(麻花) 등이 유명하다. 상하이에 샤오룽바오(小笼包)가 있다면 톈진에는 고부리가 있다. 중국의 유명한 음식에는 항상 스토리가 있다. 중국음식점에 가면 자주 먹는 마파두부도 그렇고 비곗살만 있는 동파육에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부리는 만두의 한 종류인데 상하이의 샤오룽바오와 함께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화는 꽈배기와 같은 모양의 과자인데 톈진의 꽈배기가 전국적으로 제일 유명하다. 톈진의 먹거리를 모아 놓은 곳이 남시식품가(南市食 品街)다. 이곳에는 톈진 고유의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새롭게 개발된 퓨전식 음식도 선보이고 있다. 톈진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라면 꼭들려야할 명소다. 중국의 식생활 문화도 많이 바뀌어 남시식품가에는 맥도날드도 성업 중이다. 신세대는 전통 음식보다 서구식 패스트 푸드에 더 익숙하다.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텐진 고문화거리 고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고문화거리가 있다. 이곳은 100여 년 전 톈진의 소금장수들이 살던 곳이다. 당시 소금상은 중국에서도 알부 자에 속했다. 고문화 거리는 우리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로 길 양쪽에 세워진 2층 건물이 중국다움을 한껏 뽐낸다. 이들 가게에서는 골동 품과 전통 의류, 붓 등 중국의 역사를 담은 물건들이 팔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곳에 널린 골동품이 과연 진짜일까 하는 의심부터 든다. 귀한 골동품을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늘어놓은 데다 중국엔 워낙 가짜가 많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사진도 고문화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마오저뚱의 사진은 중국의 문화상품을 파는 곳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다.텐진 고문화 거리에는 많은 골동품과 고서를 볼수 있다 19세기 말 조선의 아픈 역사의 흔적톈진 시내를 그리 넓지 않은 하천인 하이허(海河)가 관통한다. 하이허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여럿 있고 그 밑으로는 유람선이 유유히 지나 간다. 강 양쪽으로는 수려하고 높은 건물들이 톈진의 위용을 과시한다. 톈진의 야경은 하이허의 유람선에서 보는 것이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풍으로 지어진 진완광창(津湾广场)은 웅장하면서도 수려해서 중국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진완광창 인근에 1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리순더(利顺德)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들이 묵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와 중화제국을 세워 황제에 등극했던 원세계,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등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호텔 앞에 유람선이 드나드는 선착장이 있다. 흥선 대원권이 청나라 원세계 일행에게 끌려 왔던 곳이다. 이곳에 와서 직접 아픈 우리 역사의 현장을 보니 마음이 쓰려온다.텐진을 들리면 꼭 먹어야 한다는 구부리 19세기 말 조선은 대단히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으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무너지고 개화파와 수구파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고종이 친정을 선언한 후 뒷전으로 밀려나 절치부심하던 대원군에게 이를 회복할 기회가 왔으니 바로 임오군란 이다. 구식군대에 대한 부당한 대우 때문에 일어난 사태의 불똥은 민비와 일본에 대한 배척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호시탐탐 복귀를 꾀하던 대원군은 겉으로는 달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충동질했다. 이에 힘을 얻은 군민들은 일본 교관과 군인들을 살해하고 민비를 제거하려 창덕궁에 진입하기도 했다. 민비는 궁녀 복장으로 궁을 탈출해서 위기를 벗어난다. 사태의 위중함을 알아차린 고종이 수습을 위해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전권을 잡은 대원군은 재빠르게 반란을 진정시키고 군제를 개편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에 위협을 느낀 민씨 일파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사태는 이상한 국면으로 전개된다.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해 대원군을 납치한후 중국으로 압송했다. 일본은 조선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해 주모자를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하라는 제물포 조약을 맺게 했다. 중국 톈진 으로 끌려온 대원군은 이홍장의 심문을 받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홍장과 대면한 대원군은 절대 비굴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영구 귀국 불가였다.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청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하고 또 한 나라 왕의 아버지를 납치해서 재판을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대원군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내린 곳이 바로 이곳이라니 가슴이 저려온다. 힘없는 나라가 겪는 처절한 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후 대원군의 아들 고종은 청을 배척하고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고종과 민비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원군을 풀어 주었다. 중국에 구금당한지 3년 만의 일이었다. 또한 이 선착장은 광복 후 우리나라 임시정부 요원들이 인천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요원들은 배를 타기 전 알몸으로 검사를 받고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었다고 한다.다양한 가계들이 늘어서 있는 남시식품가 텐진 시내를 관통하는 하이허에는 항상 유람선이 떠 다닌다저운언라이 기념관을 보려는 끝없는 행렬톈진 시민들의 휴식처인 수상 공원은 엄청나게 크다. 수상공원에서 나오면 바로 저우언라이 (周恩来) 기념관이 있다.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이 얼마나 많은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저우언라이는 장쑤성 회이안 출신이다. 이곳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는 게 의아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톈진 난카이(南开) 대학 출신임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중국인들에게 영원한 총리로 인식되는 저우언라 이는 마오쩌둥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대 총리로 1949년부터 1976년까지 2인자 역을 도맡았다.하이허를 중심으로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다 저우언라이는 톈진 난카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청강을 하기도 했다. 1919년 반제국주의 운동인 5.4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살이를 했다. 192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파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 공산주의에 심취하면서 공산당에 가입한다. 그리고 마오쩌둥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에 나서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간다. 초기 공산당 조직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장제스의 국민당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지하조직을 통해 지역적인 봉기를 일으키며 국민당의 근간을 흔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북벌을 완료한 장제스는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1933년 50만 대군과 최신 무기를 동원해 공산당 근거지인 장시성 루이진을 공격했다. 위기를 직감한 공산당은 11개 성과 24개의 강, 천개가 넘는 산을 넘으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탈출을 감행하는데, 이른바 ‘대장정’이다. 처음 출발을 할 때 8만이던 인원이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을 때는 8천에 불과했다.저우언라이는 중국인들에게 영원한 총리로 인식되고 있다 이 시기에 저우언라이는 공산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2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는 마오쩌둥을 공산당 지도자로 추대하여 대장 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두 번째는 시안사건이 발생했을 때 장쉐량과 협상을 통해 국공합작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공산당은 궤멸할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시안사건이란 동북군 지휘관인 장쉐량이 국민당 지도자인 장제스를 납치한 사건을 말한다. 장제스는 연안에 남아있는 공산당에 대공세를 펼칠 국민당을 격려하기 위해 시안에 도착했다. 8천에 불과한 공산당은 풍전 등화와 같은 신세였다. 그러나 역사는 마오쩌둥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일본군에게 아버지를 잃었던 장쉐량은 일본에 대해 불타는 적개심 으로 장제스를 납치하고 우선적으로 공산당과 힘을 합쳐 일본군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제스는 장쉐량의 압력에 굴복하여 어쩔수 없이 협력하기로 한다. 그때 공산당 대표로 나선 것이 저우언라이다.기념관 입구에 있는 저우언라이와 부인 등잉차오의 동상 저우언라이는 국민당과 합작을 통해 1945년 일본군의 항복을 얻어낸다. 그 후 마오쩌둥과 함께 장제스를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 국을 수립한다. 마오쩌둥은 지금도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저우언라이는 그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듯하다. 마오쩌둥이 엄하고 강한 이미지인 반면 저우언라이는 인자하고 포용심이 많은 귀공자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다. 저우언라이 기념관은 1998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했다. 1층 홀 전면에는 저우언라이와 그의 부인 덩잉차오(邓颖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을 찾는 많은 중국인이 꽃을 들고 와 헌화를 한다. 사진으로 본 젊은 저우언라이는 참으로 미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톈진역에서 자원봉사 하는 공산당원톈진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이 있다. 교통의 중심인 톈진역에 내리니 역사가 너무 커서 어디가 어디인지 출구를 찾기가 어렵다. 중국 지하철 역사 대부분은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해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역 안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야 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 자원봉사자가 안내를 한다. 대부분 공산당원이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9천만 명에 이른다.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학업 성적이 상위 10% 내에 들어야 하고 위법 사실이 없어야 한다. 또한 자원봉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텐진 전역 기념관에는 매번 많은 군인들이 참배를 하러 온다 톈진 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은 ‘우리는 레이펑(雷锋)입니다’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있다. 레이펑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말단 병으로 남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을 아끼지 않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그를 기리는 레이펑의 날(3월 5일)이 있을 정도다. 중국 정부는 사회 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을 하면 인민들의 불만을 희석하기 위해 영웅을 만들어 낸다. 2011년 저장성 원저우에서 고속열차 추돌로 200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고속철의 시스템에 문제로, 고위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발생했다는 설이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를 감추고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기관사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열차가 추돌하는 순간 까지도 브레이크를 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항상 이런 식이다. 공산당은 절대 실수를 인정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설사 자신 들의 결정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들의 탓이 아니고 다른 원인 때문이라고 우기기 일쑤다.북방에서는 주량 자랑하지 말라톈진에 머물면서 지인과 친하게 지내는 공산당원들과 저녁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9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 공산당원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주량도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반주도 하게 되었는데 주량이 보통이 아니다. 52도가 넘는 고량주를 맥주 컵 절반 정도 따르고 이걸로 건배를 한다. 한두 잔이 아니고 음식을 먹는 내내 건배를 외치며 잔을 비웠다.텐진의 지하철은 1,220만명의 텐진시민들의 발이 되는 교통 수단이다 중국에는 ‘베이징에 가서 벼슬 자랑하지 말고, 광동에 가서 돈 자랑 하지 말고, 북방에 가서 주량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베이징 에는 고관대작이 많고 광동은 부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북방에는 워낙 술고래가 많아 술깨나 마신다는 한국인도 버거워한다. 이들과 대작하다가 정신을 잃고 잠에서 깨어나니 호텔 방이었다는 체험담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산당원의 주량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공산당원이 되려면 학업 성적도 중요하지만 주량도 탄탄해야 하나 보다. 나는 조그만 잔에다 서너 잔을 마시고 금세 두 손을 들고 말았다.확실한 주차단속, 족쇄를 채우고 가면 꼼짝 못한다.톈진에 있는 박물관 중에는 전역 기념관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기록한 일종의 전쟁 기념관으로 장제스의 국민당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기쁨을 인민들에게 과시하는 장소다. 각종 전투에서 승리한 기록과 관련 인물의 정보를 모아놓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건너와 중국 공산당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분의 이름이었다. 조선 강원도 출신 심능일(沈能一)이라는 명패 앞에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나라가 없다 보니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글, 사진 양인환
플레이그라운드로 변모하는 자동차 전용 공간, Cafe .. 2019-06-18
플레이그라운드로 변모하는 자동차 전용 공간Cafe with Car자동차와 커피, 이 둘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성별과 관계없이 어느 하나만 마니아면 그나머지도 충분히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 그리고 한 번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자동차를 오랫동안 잘 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관리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동차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밥을 잘 줘서 허기지지 않아야 하고, 때때로 잘 씻겨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에 자동차에서 꼭 필요한 주유소와 세차장 그리고 자동차를 운용하는 운전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뭉치는 특별한 변화가 시작했다.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아침에 출근하면 직장 동료와 인사를 하고, 주말을 지내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 되면 지난 주말은 어떻게 잘 보냈는지 안부도 물으면서 한 주간의 첫날을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틀 때면 항상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곤 한다. 이렇게 커피는 그 자체의 맛을 음미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연결고리도 된다.자동차 문화와 카페가 접목하다자동차 전용 공간에 카페가 들어왔는지, 카페 전용 공간에 자동차가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매장을 열고 그곳에 덤으로 카페를 접목할 수도 있고, 또 커피 전문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카페에 전시한 것일 수도 있다. 자동차의 판매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1인 가구 시대가 점차 확산되면서 1인당 한 대의 차를 구매하고 있고, 부모와 자식의 한 가정 안에서도 중대형 차를 메인으로 하고, 세컨드 카로 소형차나 경차를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동수단이라는 1차원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서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도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구매할 때가격이나 연비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또한 중요한 선택 조건이 된다. 이렇게 자동차를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면서 관련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동차와 커피를 접목해 자동차를 테마로 하는 카페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탈 것’을 넘어 ‘즐기는 것’으로자동차는 이제 단순히 이동수단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차종을 가진 오너들이 서로 모여서 차에 대한 이야기나 정보를 나누고, 자동차를 넘어 개개인의 취미를 공유하고 함께 즐기며 추억을 만든다.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타이어 혹은 각종 부속품 등 자료나 정보를 공유하고, 더 나은 자동차 오너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 자체를 또 다른 행복으로 여긴다. 자동차 관리에 있어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세차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가 멋있어 보이려면 우선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카페와 협업하는 세차장도 생기고,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다. 또한 굳이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내가 타는 자동차에 대해더 자세히 잘 알고,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공부가 필요하다. 자기 차를 스스로 정비하려는 수요에 따라 전용 공간도 생겨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해외 차를 소량 직수입하는 회사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자동차를 즐기는 다양한 형태라고할 수 있다. 지나치게 단조로웠던 국내 자동차 문화가 다채로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슬그머니 더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자동차를 몰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보자. 여유가 생기는 주말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자동차 카페에 들러 평소에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멋진 혹은 희귀한 자동차도 구경해보는 건 어떨까?로드801Road 801인천시 연수구 아암대로 8013,305㎡ 세차장, 카페 모두 24시간 운영인천 아암대로 801에 자리한 로드 801은 주유와 셀프세차, 커피를 24시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느꼈을 만한 그런 대중적인 호기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복합매장이다. ‘왜 이렇게 주유소는 전부 삭막할까? 기름 냄새가 심하고, 주유할 때나 세차할 때 자동차 밖에서 편히 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김종순 대표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로드801에서는 고급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대로 된 카페를 마련하고, 세차를 맡기면서 쉬거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보통 공간에서의 가족과의 특별한 시간카페에서는 커피와 논커피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또 카페에 블루베리 나무도 10그루를 키우고 있어 오는 7월쯤 블루베리가 열리면 방문하는 고객들이 직접 따서 먹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옥상 테라스에는 손님들이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고객 전용 공간도 마련했다. 펫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강아지를 목욕시키는 펫 워시 공간도 준비했으며, 자동차 동호회를 위한 모임 공간도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로드801에는 벤츠, BMW 등 다양한 자동차 동호회 모임이 줄을 잇는다. 주유소와 셀프 세차, 카페는 24시간 운영되지만, 손 세차와 디테일 세차, 자동 세차는 8시부터 19시까지만 연다. 주유소는 22 시부터 06시까지는 무인화로 바꿔서 운영 중이다. 군데군데 요즘 햄버거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주유를 하면서 카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로, 주유를 하면서 동시에 음료 카페에 음료 주문이 가능하다. 고객의 편의 성을 살린 시스템이다. 다만 지금은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라 올해 말까지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고 한다. 또한 주유와 세차와 카페의 통합 포인트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는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마이개러지My Garage경기 하남시 산곡동로 312,644㎡오픈시간 11시~22시자동차를 좋아하는 여러분은 개러지 라이프(Garage Life)를 꿈꿔본 적이 있는가? 마이개러지 카페는 김윤식 대표가 자신만의 차고에서 수리와 함께 차를 공부하고 싶은 욕망에 태어났다. 제3의 차고이자 스스로 차를 만질 수 있도록 만든 공유 개러지 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인들과 자동차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 하는 카페가 콘셉트다. 모닝을 점검하러 오는 20대부터 60대 어르신이 포르쉐 911의 오일을 직접 교체하러 들르기도 한다. 서킷을 달리기 위해 사전에 브레이크를 점검하러 오는 토요타 86, BMW M 동호인들끼리 오일교환 즉석 만남을 하기도 한다. 레이싱게임을 위해 모이는 친구들도 있다. 마이개러지는 정기 적으로 트랙주행을 위해 방문객을 한 그룹으로 모으기도 한다. 새롭게 시작한 ‘클래식카 레스토레이션(복원)’도 있다.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 방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지난겨울 몸을 녹이고자 몰래 들어와 터를 잡은 길고양이 (이쁜이)를 보러 오는 손님도 있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아메리 카노와 허니브레드. 정비룸 자판기의 개러지 라면도 많이 찾는 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간단점검을 위한 리프트·스캐너· 공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러지 사용료는 1시간에 1만원, 데이 DIY(11시~17시)권은 3만원이다. 나이트 DIY(17시~22시)권을 이용해 퇴근 후에도 충분히 개러지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개러지에는 자유롭게 비치된 공구를 사용할 수있다. 가격 면에서 부담을 주지 않으 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오너를 가진 특별한 자동차와의 만남카페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190E 16v(1985)와 BMW M3(E30, 1986)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1980년대 DTM(Deutsche Tourenwagen Meisterschaft, 독일 투어링카 선수권) 라이벌이 었던 전설적인 두 차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 단순 전시만이 아니라 매년 트랙 데이에 참여할 정도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두 대의 차 모두 명성에 걸맞은 복원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M3는 마이개러지 대표의 차량으로, 복원의 많은 부분을 오너가 직접 했다. 이 밖에도 1층 개러지에서는 손님들의 차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페라리 캘리포니아 T(2017), 페라리 F430(2006), 페라리 360(2002), 포르쉐 911 40주년 기념 모델(2004, 996), 포르쉐 카이맨 R(2010), 포르쉐 911 4S(2008, 997), 아우디 R8(2008), 마쓰다 RX-7 LS1(1993), 포드 머스탱(1965), 메르세데스 벤츠 SE280(1972) 등을 구경할 수 있다.카페 세모Cafe Semo대전시 서구 원도안로179번길 16-15약 181㎡ / 차량 전시 공간 약 66㎡, 카페 공간 약 115㎡ 오픈시간 11시~22시20대 초반 군 생활을 갓 마친 고등 학교 동창들이 동네 카페에 매일 모여 여자 친구와 자동차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9월경 다시 모인 친구들 중 “우리 병행수입 자동차 사업이나 할까?”라는 한 친구의 말이 점점 구체화했고, 마침 한 친구가 자동차 병행 수입을 부업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에는 ‘World Wide Vehicle’(V5)이라는 가칭을 만들고 매일 연락하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수입과 인증과정을 공부 했고, 경력자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사업에 발을 들였다. 고인석 매니저와 친구들은 많은 고민 끝에 ‘수입차 매장 방문 때의 부담을 덜어줄 공간,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줄 우리만의 아지트로 만들자’라는 데 뜻을 모으고 카페 세모(CAFE SEMO)를 준비했다. ‘SEMO: 세모’라는 이름은 ‘세 명이 모여 만들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차’라는 의미다.차(Tea)를 마시며 차(Car)를 즐긴다처음에는 다른 직수입 업체처럼 자동차만 판매하는 공간, 세차나 차량 보관 등의 개러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대전을 터로 잡은 상황에서 수입자 매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차를 판매 하는 곳이 아닌, 차‘도’ 판매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 다. 이에 어릴 적 꿈꾸던 카페를 더해 단순한 자동차 매장이 아닌, 카페 손님들이 보기 드문 차를 보고 느끼고 소통하는 공간을 기획했다. 오픈과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메르세데스 벤츠 GLE와 포드 F-150 랩터가 판매됐으며, 현재는 아바르트 트림의 피아트 124 스파이더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자동차 직구 업체로 다양한 차를 수입해 판매하고, 미국과 독일 현지에 지사가 있어 고객이 원하는 차의 수입 대행도해 준다. 차를 산 고객에게는 독일 자동차 테마 여행을 제공하는데, 고객들의 관심이 크다고. 자동차 테마 여행만 별도로 예약할 수도 있다. 카페 메뉴는 이탈리아에서 로스팅해 수입한 원두로 만든 아메리카노가 인기다. 라임 에이드, 라임 그린민트 에이드와 함께 마들렌, 베이글, 마카롱, 케이크 등 디저트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새 차와의 만남은 첫사랑과의 재회“이 일을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차를 정말 원 없이 구경한다는 점이 가장 좋다. 수입 통관 시 새로운 차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렌다. 일례로 처음 수입했던 피아트 124 스파이더를 가져올 때는 마치 첫사랑을 재회하는 기분이랄까? 새벽 2시까지 기다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부리나케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이런 설렘은 정말 특별하다. 마쯔다, 알파로메오를 비롯해 많은 회사가 아직 국내에 정식 수입사가 없다. 국내에서 정식 출시되지 않는 차량도 보편화되면 좋겠다. 물론 저희 세모도 이를 위해 일조할 것이다. 카페 세모에서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든 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카페 엠블럭Cafe MBlock경기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2123,305㎡ / 카페 512㎡오픈시간 일~월 10시~22시토 9시 30분~22시2017년 가을에 자동차 갤러리 카페로 오픈한 카페 엠블럭은 1천 평의 대지에 155평 규모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비대칭 디자인의 카페 건물은 전체적으로 15° 뉘인 형태로 설계됐으 며,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고 외관은 갤러리 느낌이 든다.미니 로버, 비틀, 노랑 포르쉐 박스터카페에는 3대의 자동차가 전시됐는데, 카페를 오픈하기 전부터 타고 다니던 차를 전시해 두었다. 3대 중 2대는 클래식카인 데, 녹색의 순정 미니 로버와 폭스바겐 비틀이다. 비틀은 그래 피티 작가가 예쁘게 꾸몄다. 클래식카와 상반되는 노란색의 포르쉐 박스터도 카페 입구에 전시돼 있다. 박태실 대표는 “자동차를 좋아하다 보니 카페 엠블럭에 오신 손님들에게도 특별한 자동차를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동차와 함께 어우러진 카페 안팎의 멋진 분위기는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좋아 많은 손님들이 자동 차와 함께 인생샷을 찍는다. 노랑이 카페의 테마색인만큼 외벽과 소품 인테리어까지 노랑으로 디자인해서 멀리서도 예쁘게 보인다. 여기에 더해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자리해서 수목원을 찾는 다양한 손님도 저희 카페를 많이 찾는다.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오기도 하고, 특정한 단체, 자동차 동호회는 물론,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들도 단골손님이다”라고 설명한다.드립 커피, 풍부한 맛과 향카페의 메인 메뉴로는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드립 커피가 가장 인기다. 이와 함께 다양한 나라에서 생산된 커피의 풍부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디저트 또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맛보던 케이크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넓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좌석을 쾌적하게 배치했다. 이와 함께 야외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야외 테이블도 준비해 두었다.워시블랑WashBlanc인천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2721,652㎡오픈시간 세차장 24시간, 카페 8시~0시탄력적 운영‘하얗게 빛내다’라는 뜻으로 ‘블랑 (blanc)’이라는 단어가 있다. 워시블 랑은 ‘세차를 통해서 하얗게 빛내다’ 라는 의미로 탄생한 독특하고 감칠맛 나는 이름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곽현석 대표는 주말에 친구들과 세차하기가 유일한 취미였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세차장에 갈 때마다 동승자들이 할 게 없다는 사실을 실감 했다. 마침 커피 마니아라서 세차장과 카페를 묶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직접 워시블랑이라는 상표권을 만들고 특허 등록을 했다. 커피학원에 다니며 바리스타 과정을 정식으로 배운곽 대표는 원두도 직접 구매하고 로스팅도 하며 카페 개러지도 운영한다.기름기 확 뺀 문화 공간인하대학교 건너편에 자리한 워시블랑은 접근성과 시장성 등터를 잡기 위한 준비에만 6개월 정도 걸렸다.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도 다녔다. 워시블랑은 세차 베이가 7개, 드라잉존 18대를 갖췄다. 24시간 365일 온수 세차를 할 수 있어 차를 소중히 하는 마니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맞춤형 공간이다. 곽 대표는 워시블랑의 가장 큰 목적이 ‘차를 가진 누구나 세차를 즐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오픈 첫해에는 카페 개러지에서 케이 터링 서비스를 무료 제공했고, 지난해 초에는 유명 가수 콘서트도 열었다.이 콘서트는 반응이 좋아 앙코르도 이어졌다. 5월 초에는 메르세데스벤츠 딜러인 한성자동차와 디테일링 클래 스를 열었다. 5월 25~26일에는 용인의 한 카페에서 열린 마카롱 페스티벌(My Car My Long Life Festival)이라는 세차 콘셉트의 축제에서는 워시블랑이 메인으로 30여 개의 협력업체가 함께했다.세차, 패션처럼 하나의 문화곽 대표는 차도 옷처럼 하나의 패션이자 문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차량의 종류에 따라 올바른 세차법이 있고, 색상에 맞는 관리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다. 주유소에서 간단히 하던 게 지금까지의 세차였다면 지금은 세차 자체가 레저나 취미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이러한 새로운 세차 문화에 워시블랑이 앞장서고 있다.워시블랑은 동승자가 쉴 카페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곽 대표는 인천 또는 경기도 쪽에 신도시를 중심으로 2호점을 구상 중이 며, 애완용 강아지를 위한 공간도 함께 준비 중이다.워시스퀘어WASH Square경기 파주시 경의로 9742,809㎡오픈시간 세차장 24시간, 카페 동절기 9~21시/하절기 8~23시연중무휴워시스퀘어는 ‘세차장에서 세차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을 콘셉트로 기획되었다. 범상치 않은 카페 디자인에 가족이 편히 쉴 넓은 공간을 갖췄고, 2층에는 동호회원이나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바비큐 공간도 준비됐다. 훗날 개인 개러지 3~4 개를 추가하면서 손님들의 쉴 공간을 확장할 예정이다. 박두진 대표는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친형의 도움으로 이런 멋진 인테리어 디자인을 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마음 편하게 세차, 맛있게 커피 한잔기본이 잘되어 있다. 10여개의 세차 베이 가운데 2개는 5.5m, 나머지는 4.5m로 폭이 넓게 설계되었으며, 앞뒤 길이도 7m로 여유 공간을 충분히 둬 세차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넓고 큼지막한 공간 덕분인지 워시스퀘어를 찾는 25인승 버스도 많다고 한다. 파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세차장인데다 주변에 주택 가가 없어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세차할 수 있다. 특히 늦은 밤이면 멋진 조명이 주위의 적막함을 단번에 깨뜨린다.함께 운영하는 카페 또한 여느 커피전문점 못지않은 구색으로 맛과 향이 남다르다.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에 신선한 고급 원두를 엄선해 사용하는데, 이는 세차에 덤으로 붙는 커피가 아닌 카페만 독립적으로 운영이 가능 하도록 준비해서다. 워낙 넓은 공간에 주말에는 항상 많은 차가 몰리기 때문에 카페에는 2명이 주문과 서비 스를 하고, 나머지 3명 정도는 각각 무전기를 들고 입구에 줄줄이 늘어선 차를 정리한다. 동시에 물 세차 10 대가 가능하고, 33개의 드라잉존을 갖춰서 동시에 43대가 세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차장까지 더하면 50대 정도가 한 번에 들어올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파주 세차장의 메카로 거듭날 터곽 대표는 차도 옷처럼 하나의 패션이자 문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차량의 종류에 따라 올바른 세차법이 있고, 색상에 맞는 관리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주유소에서 간단히 하던 게 지금까지의 세차였다면 지금은 세차 자체가 레저나 취미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한 다. 이러한 새로운 세차 문화에 워시블랑이 앞장서고 있다.워시블랑은 동승자가 쉴 카페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곽 대표는 인천 또는 경기도 쪽에 신도시를 중심으로 2호점을 구상 중이며, 애완용 강아지를 위한 공간도 함께 준비 중이다.글 김영명 기자 사진 최진호
첨단 운전보조 시스템의 대중화 선언, 에이테크솔루션, .. 2019-05-02
첨단 운전보조 시스템의 대중화 선언에이테크솔루션, 아이뷰 4CH 카메라 출시 자동차 금형과 부품,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에이테크솔루션이 아이뷰라는 이름으로 첨단 운전보조 시스템을 선보였다. 앞 펜더에 장착하는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모니터에 띄움으로서 측후방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해 준다. 아울러 주차보조 시스템의 역할도 겸한다. 세계 최고의 대형 정밀금형 제작 전문 기업 에이테크솔루션(주)은 금형 전문 업체로 2001년 설립되었다. 자동차 분야의 금형과  고정밀의 디스플레이, 팬(FAN), 기어, LED, 2차 전지, 광학 기술 개발 등을 하는 기업이다. 2009년에는 코스닥에 입성하여 신규 상장했을 정도로 검증을 받은 에이테크솔루션이 아이뷰라는 이름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첨단 운전보조 시스템 시장에 진출했다. 아이뷰 4채널 안전시스템지난 3월 29일, 에이테크솔루션의 새로운 주차보조 시스템인 아이뷰 4CH의 런칭 행사가 열렸다. 아이뷰(EyeView)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운전자와 가족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자동차 시장에는 운전을 보조하는 각종 첨단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이뷰 역시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한 ADAS(Advanced Driver-Assistance Systems)의 일종으로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아이뷰는 주행과 주차를 아우르는 4채널 안전시스템이다. 에이테크솔루션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광학 기술과 ADAS 시스템의 결합으로 더욱 선명하고 똑똑한 주행보조 장치를 완성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자동차 앞 팬더에 부착되는 카메라에 있다. 운전자가 놓치기 쉬운 후측방을 카메라로 잡아 실내 모니터에 비춤으로서 안전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교통사고 중 측면 사고의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은 것은 바로 시야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BVM(Blind-Spot View Monitor)인 아이뷰는 운전자 시야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 차체 외부에 달리는 카메라 하우징은 경질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어 수려하면서 강한 내식성과 고급스러움까지 갖췄다. 또한 주차나 후진할 때에도 후방은 물론 좌우까지 3분할 화면을 모니터에 띄우기 때문에 주차보조 시스템의 역할도 겸한다. 카메라와 모듈, 소프트웨어가 모두 통합된 제품이며 순정 모니터 활용도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차에 적용이 가능하다. “간편한 장착은 물론 합리적인 가격으로 첨단 주행보조 시스템 대중화에 앞장 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애플과 현대자동차도 선택한 라이다에이테크솔루션이 최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제품은 차량용 라이다 관련 부품이다. 라이다(LiDar)는 레이저를 이용한 거리 측정  센서로 자율 주행 차의 ‘눈’으로 불린다. 최근 애플이 자율 주행 차 핵심 부품인 라이다 센서를 보유한 공급업체와 접촉했다는 주요 외신의 보도가 있었다. 아울러 현대자동차가 오는 2023년까지 5년간 자율 주행과 미래기술 분양에 45조 3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자동차 업계의 로드맵은 자율 주행으로 향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에이테크솔루션 측은 “자율  주행에 장착되는 라이더 센서를 개발 중에 있다”라며 미래 자율운전 시대에 대비하고 있음을 밝혔다. 에이테크솔루션이 주관하고 판매사인 신원통상이 초대해 열린 이번 행사에는 많은 관계사와 유통사, 총판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홈페이지 www.atechsolution.co.kr문의 T.031-350-8189, F.031-350-8190
한겨울 속 여름 맛보는 중국의 하와이, 하이난(海南) 2019-02-15
한겨울 속 여름 맛보는 중국의 하와이하이난(海南)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더운 여름이면 추운 겨울이 그립고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따듯한 봄이 기다려진다. 영하가 10℃가 넘는 동장군이 맹위를 떨칠 때 나는 한가로이 여름을 즐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광저우에서 일을 끝낸 후 하이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 년 내내 여름 한 계절만 존재한다는 하이난도(海南岛:해남도)는 특별한 섬이다. 중국 28개 성 중 최남단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존재인 동시에 풍부한 천연 자원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녔다. 이곳을 기점으로 중국이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는 난사군도가 있는 남중국해가 시작된다. 남중국해는 베트남과 필리핀을 지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코앞까지 이어진다. 한겨울에 즐기는 여름연중 300일 넘게 화창한 날씨를 자랑한다는 하이난이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하이커우(海口)를 방문했을 때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더울 것이라 생각해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잔뜩 싸가지고 왔는데 기온까지 뚝 떨어져 여름옷을 입을 기회가 없었다. 추위를 피해 따뜻한 하이난을 찾아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산야는 일년중 300일 이상 맑은 날이 지속될 정도로 좋은 기후를 지니고 있다 하이난은 아열대와 열대성 기후다. 여름에는 최고 38℃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도 25℃ 내외를 유지한다. 38℃라면 우리에게 더운 날씨이지만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가장 덥다는 충칭이나 우한, 난징은 최고 42~45℃까지 올라간다. 거의 찜통 수준이다. 게다가 중국 남부는 습도까지 높아서 사람의 진을 빼놓는다.    하이난의 전통모자, 강렬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구조다하이커우 공항에 내리니 여행사 깃발 든 안내원 뒤를 줄줄이 따라 가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모두들 두툼한 겨울 복장이다. 한겨울에 따뜻한 날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모두들 공항에서 겨울 외투를 벗어 버리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하이난이 섬이기는 하지만 면적이 33,920㎢로 제주도의 18배가 넘는 상당히 큰 규모다. 중국 근대사까지 광동성에 속했으나 1988년 하이난성으로 분리되면서 총 28개 성 중에서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하이난은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과도 교역을 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런 연유로 성도인 하이커우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치로우라오지에(骑楼老街)에는 말레이사아, 싱가포르, 태국인들이 살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중국의 전통 건물과 다른 근대 서양식 상가와 주택이 이색적이다. 중국 안에 있지만 중국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외국인들이 중국인과 함께 어울려 살던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그래서인지 하이난 사람들은 타 지역 사람들에 대해 그리 배타적이지 않다. 하이난의 인구는 867만 명으로 대부분이 한족이고 나머지는 묘족, 이족 등 소수 민족이다. 배로 연결되는 기찻길이곳의 택시는 모두 하이마(海马:해마)라는 회사에서 생산되었다. 하이마가 하이난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자동차이다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존재다. 공항에서 호텔을 가려 택시를 탔는데 승차감이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중국 자동차 품질이 몰라보게 좋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중국 자동차도 10년, 10만 km를 기본적으로 보증한다. 하이마는 전기차 생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환경을 중시하는 하이난이기에 친환경 전기차 보급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거리의 오토바이도 대부분 전기로 움직인다.하이커우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은 전기 오토바이다 중국의 자동차 번호판은 각 성을 상징하는 글자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베이징(北京)은 징(京)을 제일 앞에 표시한다. 하이난의 번호판을 보니 왕(王)자와 징(京:경)자가 합쳐진 칭(琼)이라는 글자가 맨 앞에 온다. 칭이란 해협이라는 뜻이다. 이곳 지형은 광동성의 끝자락이 밑으로 내려오다 하이난과 마주하는 지점에서 끊어져 있는 형상이다. 오래전에는 광동성과 한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난 사람들의 삶도 내륙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길거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  하이난은 섬이기 때문에 광동성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배이다. 그렇지만 열차가 광동성에서 하이난까지 연결되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광동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부두에서 배에 실려져 하이난까지 운반된다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거대한 기차를 배에 싣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택시기사의 말을 믿고 난강(南港)역을 찾았지만 밖에서는 역 안을 볼 수 없도록 벽으로 막아 놓았다. 그래서 배는 보았지만 아쉽게도 기차가 실리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사도 말만 들었지 실제로 기차가 어떻게 배에 실려지는지 보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기관차를 제외하고 객차만 실린다고 한다. 이런 운반 수단을 통해 내륙에서 하이난까지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또한 고속철의 나라답게 하이난에도 고속철도가 있다. 하이커우에서 최남단 산야까지 일주하는 코스다. 그렇지만 아직 내륙과 고속철이 연결되지는 않았다. 현재 건설 중인 하이난 대교가 완공되면 내륙에서 하이난까지 고속철로 단번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이커우에도 급격하게 차량이 늘어 교통체증이 심하다  어김없이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하이난에는 논과 밭 그리고 각종 농장이 많다. 날씨로 보아 아무거나 잘 자랄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벼농사는 2모작이 기본이고 3모작은 선택이라고 한다. 중국 어딜 가나 비슷한 건설 바람은 하이커우 역시 마찬가지다. 이용하는 택시 기사마다 이곳에 집을 사라고 권유한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부동산을 많이 사들였다. 특히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하이난이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은 겨울을 하이난에서 지내고 봄이 되면 북쪽으로 날아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던 ‘강남 가는 제비’에서 강남이 바로 하이난이다. 러시아인들의 꿈도 추운 겨울은 따뜻한 하이난에서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은 4계절 내내 꽃이 핀다. 겨울임을 잊고 지낼 수 있는 환상적인 섬이다. 다만 겨울에 피는 꽃들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한 색을 띠고 있다.하이커우에도 개발 붐이 불어 고층 건물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하이난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택시 기사가 부동산을 사라고 한 것이 결코 과장은 아닌 것이, 섬 어딜 가나 광고판이 걸려있다. 마치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예전 우리나라 제주도의 모습과 비슷하다. 중국도 부동산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경기를 부양한다고 4조위엔(660조원)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풀었다. 이런 유동성 자금이 산업 쪽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니고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만 잔뜩 올려놓았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 전쟁 때문에 내수를 진작시키려 또다시 자금을 푼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부동산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 중국에 비어있는 아파트가 5백만 채라는 보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아파트 구매자가 계약금 10%만 내고 잔액은 대출을 받아서 샀기 때문에 거품이 꺼지면 언제 파산을 할지 모르는 위험한 시한폭탄인 셈이다. 만약 경제가 위축되기라도 하면 부동산 폭락으로 깡통 아파트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아름다운 백사장과 야자수의 이국적인 풍경하이커우에 펼쳐진 기다란 백사장과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특히 야자수로 조성된 거리의 가로수는 이곳이 열대지방임을 인식하게 한다. 가로수에 달린 튼실한 야자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하다. 중국인이 먹는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 과일 대부분은 이곳 출신이다. 하이커우는 끝없이 펼쳐진 평탄한 구조라 골프장 만들기에도 유리한 조건이다. 한국의 골프광들이 겨울에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하이난이다. 특히 추운 날씨 때문에 골프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골프 패키지여행이 인기가 높다.  끝없이 펼쳐진 바나나 농장, 하이난은 열대과일 생산지다싼야의 열대성 기후는 한겨울에도 수영을 할 수 있다하이커우의 인구는 2백만 명. 그래서 지하철까지는 필요 없지만 최근 차가 엄청나게 늘어나 도심은 교통 체증이 심하다.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버스가 가장 편하다. 버스 요금은 1위엔이라 항상 잔돈을 넉넉히 준비해 놓아야 한다. 거리는 출, 퇴근 시간에 너무 많은 오토바이가 몰려 혼잡하기가 짝이 없다.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철렁한다. 인도에는 수많은 공용 자전거가 진을 치고 있다. 세계에서 공용 자전거가 제일 발달한 중국이다. 아무 곳에서나 탈 수 있고 아무 곳에나 세워둘 수 있어 선풍적인 인기다. 공용 자전거가 시작될 때는 3일에 한 업체가 생겨 날 정도로 수많은 기업이 경쟁을 벌였다. 현재는 모바이크, 헬로우 바이크, 오포 등 3개 업체가 전국적인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알리바바와 위쳇의 텐센트가 공유 자전거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서 모인 자료를 자율운전 자동차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공용 자전거에는 QR 코드와 함께 GPS가 내장되어 있다. 이런 정보를 통해 자전거 이용자들이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저렴하고 편리해서 나도 자주 이용하는데, 택시를 타기에도 걷기도 어정쩡한 경우에 좋은 대안이다. 하이커우에서도 자주 공용 자전거를 탔다. 내가 세우고 싶은 곳 아무 데나 정차해서 사진도 찍고 볼일도 볼 수 있어 아주 유용하다. 하이난 하이커우에서 운행되는 택시는 모두 하이마란 브랜드다휴대폰 날치기 때문에 맞은 위기오토바이가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아슬아슬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길에 서 있으면 자연스럽게 와서 "어디 가느냐?"며 묻는다. 일종의 공유 오토바이 서비스다. 심지어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다가도 이용할 손님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세운다. 참 재미있는 동네란 생각을 하던 중에 휴대폰을 날치당당했다. 포구가 바라보이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오토바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길거리 대부분이 전기 오토바이였는데 일반 오토바이 배기 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옆구리를 쳤다. “억”하는 소리가 절로 나며 중심을 잃는 순간에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없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해서 어떤 상황인지를 몰랐다. 휴대폰이 없어졌음을 알아 차렸을 때에는 오토바이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여행 중 휴대폰 분실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동안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후에야 나의 모든 정보가 사라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아무한테도 전화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필요한 번호를 기억해 두었지만 요즘에야 휴대폰이 알아서 저장해 주니 그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결제를 위챗으로 하기 때문에 일정 금액도 휴대폰에 들어있는 셈이다. 위쳇으로 결제를 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지만 상점 계산대에서 사용하는 기계는 QR코드를 스캔만 하면 비밀번호 없이 결제된다.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중국통신이다. 물어물어 중국통신을 찾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내 휴대폰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른 성에서 발급된 휴대폰 카드는 이곳에서 알 수 없다고 한다. IT 강국이라는 중국인데 좀 황당하다. 그러니까 하이난성에서는 분실신고도, 카드 재발급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우 사무실 직원의 전화번호를 겨우 기억해 내서 분실신고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은행을 돌아다니며 위챗과 연계된 통장의 잔액을 카드로 모두 찾았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새로 사야 했다. 하이난에 머물면서 임시로 사용할 휴대폰이다. 하이커우에서 산야(三亚:삼아)로 넘어가는 고속열차표와 호텔 예약, 하이난에서 항저우로 가는 비행기 표가 모두 휴대폰에 담겨 있었다. 휴대폰 없이는 꼼짝할 수가 없는 구조다. 잃어버린 휴대폰의 카드는 이우로 돌아가서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예정에서 축소된 여행 일정모든 수습을 끝내고 나니 밤 9시다. 그나마 중국 통신이 밤 10시에 문을 닫는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무척 속이 상했지만 다치지 않고 또 여권이나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여권이나 지갑을 분실하면 언제 해결이 될지 모를 일이다. 휴대폰은 아니지만 이런 유사한 경우를 예전에도 한 번 당했다. 동관(东莞)에서 광저우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소매치기가 뒷주머니에 든 지갑에서 돈을 빼 갔다. 지갑은 빼지 않은 상태에서 지갑 안에 든 돈을 빼갔으니 마술 같은 솜씨라 아니할 수 없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다 보니 뒷주머니가 덜렁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만져보니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지갑에 칼자국이 나 있었고 지갑 안에 돈이 대부분 빠져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바지 주머니를 칼로 도려낸 후 지갑에 있는 돈을 핀셋을 이용해서 빼 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아무튼 그 놀라운 솜씨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여행 일정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지만 예정대로 하이난의 남부 도시인 산야까지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만 원래 산야에서 2박을 하려 했던 일정을 하루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날씨 때문에 하이커우에 대한 인상이 좋았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리니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겨울에도 한여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하이난의 특징이다. 그래서 기대가 컸다. 하이난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던 나의 판단 착오였다. 오토바이가 많은 곳에서는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이커우에서 산야까지는 고속철도로 이동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중국의 고속철은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티에(고철:高铁) 그리고 200km 내외로 달리는 똥처(동차:动车)로 구분된다. 하이난을 일주하는 고속철은 후자다. 하이난의 고속철은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아 경제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중국은 사통팔달로 고속철을 건설하고 있다. 하이난의 고속철은 섬을 한 바퀴 도는 구조인데, 하이커우에서 산야까지 320Km로 고속철로 2시간 반이 걸린다.산야역은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역이다 하이난에도 고속철이 건설되어 있다. 하이난 섬을 한바퀴 도는 노선이다  하이커우가 봄이라면 산야는 여름 하이커우는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그렇지만 남부로 내려오면서 산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수없이 많은 터널이 이어진다. 기찻길 옆으로 보이는 농장에는 바나나와 야자수, 파인애플이 줄지어 서 있다. 한쪽에서는 석유 시추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이난 인근에는 석유를 캐내는 광구가 많다.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며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하이난은 중국에서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은 절대적으로 남중국해를 포기할 수 없다.  산야의 꽃들은 겨울에도 강렬한 빛을 띈다산야(三亚)에 도착하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산야는 하이커우에 이은 하이난 2번째 도시다. 인구는 60만. 같은 하이난에 속하면서도 하이커우는 아열대, 산야는 열대성 기후다. 산야의 온도가 하이커우보다 평균 8℃ 정도 더 높다. 하이커우가 봄이라면 산야는 한여름이다. 하이커우에서는 봄옷을 입고 있었지만 산야에 오니 모두 반소매 차림이다. 하이난섬 중간에 자리 잡은 산들로 인해 양쪽의 기후가 달라진다고 한다. 섬 중앙에 자리 잡은 제일 높은 산은 1,867m의 우지산(五指山) 산이다. 같은 섬이라고 하지만 하이커우와 산야는 300km가 떨어져 있다. 그래선지 산야의 분위기는 하이커우와 또 다르다. 산야역에 내리니 한여름의 무더위가 느껴진다. 햇볕이 무척 따가워  금방이라도 살이 탈 것 같은 느낌이다. 눈이 부셔 선글라스부터 찾았다. 산야역에는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가 서 있다. 여기서 베이징까지는 2,896km로 37시간이 걸린다. 산야에서 하이커우까지는 기찻길로, 바다를 건널 때에는 배로 운반이 된다. 그리고 보니 산야는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역이다. 하이커우의 꽃은 색이 바랜 것처럼 칙칙했지만 산야의 꽃은 강렬한 색이 화려했다.   한겨울 해변에서 해수욕 즐기는 별천지이곳은 하이커우보다 훨씬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다. 백사장에는 제철을 맞은 듯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한 겨울 추위에 시달리다 온 이방인의 눈에는 완전히 별천지다. 하이난을 중국의 하와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산야를 두고 한 말이다. 해변가에는 수많은 호텔과 고급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과연 중국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리조트 건물이 건설 중에 있다. 이곳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집을 사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외지인들이 땅을 구매하면서 땅값도 많이 올랐을 것이다. 이곳에서 많은 러시아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하이난이 러시아와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사람들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역시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몰려있다 산야에는 멋진 해변이 많다. 일 년 내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야롱베이, 산야만 등 길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또한 여행객을 위해 엄청나게 큰 면세점을 만들어 놓았다. 무척 친절한 여행 안내소에서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통역기를 들고나온다. 내가 중국말을 해도 막무가내다. 이곳에서 가볼 만 한 곳을 알려 주었다. 중국 최대 규모라는 산야의 면세점은 완전히 별천지다. 웅장한 건물에 세계의 명품을 모두 모아 놓았다. 그렇지만 면세점보다는 아름다운 해변을 제대로 즐기는데 묘미가 있다. 그것도 한겨울에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으니 참으로 매력적이다. 해변에 늘어선 야자수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국 북방이 영하 20℃가 넘는 혹한이 몰아치는 시기에 이곳에서는 해수욕을 즐기고 있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오는 곳이라 그런지 혼자 지내기에는 참으로 따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서 반주기에 맞춰 노래를 하는 모습이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산야는 중국에서 가장 청명하고 푸르름이 빛나는 곳이다편의 시설 늘어나는 만큼 매력도 잃어가산야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현지 태생이라고 한다. 그는 표준말, 하이난 말, 산야 말, 고향 말 등 4개 말을 한다. 보통 중국인들은 표준어 외에 출신 지역 말을 한다. 중국에선 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말이 달라진다. 광동 사람들의 경우 고향 말, 광동 말, 보통 말(표준어)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중국 사람들의 언어 구사 능력은 대단하다.택시 영업은 예전에 수입이 괜찮았지만 요즘엔 자가용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별로라고 한다. 또한 공유 자동차인 띠디추싱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중국에는 띠디추싱(滴滴出行)에 종사하는 개인 운전자가 500만 명이 넘는다. 띠디추싱 운전자에 의한 강간 및 살인사건이 몇 번 있어 잠시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 인기는 사그러지지 않았다. 하이난에는 11월부터 3월까지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멋진 리조트 앞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을 만났다. 리조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꽃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발음이 정확하다. 북방 사람이 틀림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베이징에서 왔다고 한다. 베이징은 공기가 안 좋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이곳에서 3개월 정도를 지내다 돌아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 노인이 옆에서 거드는데 그 역시 베이징에서 왔다며 반가워했다. 베이징의 돈 많은 부자라면 하이난에 별장 하나씩 사놓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하이난에도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늘어서 편리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숙박시설도 그리 많지 않아서 불편했었다고. 그렇지만 지속적인 개발로 자연환경이 훼손되면서 하이난이 지니고 있던 매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우리의 제주도와 똑같은 현상이 하이난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글 사진 양인환
산사의 가을은 익어간다 백양사, 만추에 물들다 2019-02-13
산사의 가을은 익어간다백양사, 만추에 물들다전라남도 장성에는 가을 절경 아름답기로 소문난 백양사가 있다. 붉고 노란 잎이 화려한 가을의 국립공원. 산사가 품은 호수 위에는 시리도록 푸른 가을의 하늘빛과 만추가 가득 담겨있다.흔히 가을을 두고 쓸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랗고 빨간 옷으로 갈아입은 내장산 국립공원은 가을에 가장 화려한 빛깔을 자랑한다. 백양사는 단풍의 절경과 산사의 아름다움이 함께 어우러진 대표적인 단풍놀이 관광명소. 백두대간이 남으로 치달려와 남원 일대를 거쳐 장성 지역으로 뻗어 내려온 노령산맥 백암산 자락에 자리한다. 백양사 입구의 호수. 그 뒤로 백암산 학봉이 손에 닿을 듯 보인다호남불교의 요람, 백양사백양사는 백제 무왕 32년(서기 632년)에 승려 여환이 창건한 고찰이다. 원래는 백암사로 불렸으나, 조선 선조 7년(서기 1574)에 환양선사(喚羊禪師)가 백양사(白羊寺)로 이름을 고쳤다. 전설에 따르면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법회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법회가 끝난 7일째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백양사라 절 이름을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예로부터 훌륭한 선지식인 큰스님이 끊이지 않았으며, 백양사 총림선원인 운문암은 으뜸가는 참선 도량이자 ‘남운문 북마하’라 불릴 정도로 남한에서는 최고의 선방(스님이 수량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백암산 학봉 아래 위치한 약사암은 도량을 이루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산 내 암자로 물외암, 금강대, 청량원,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 기도 도량이 영험한 영천굴, 계곡과 산수의 절경이 빼어난 청류암과 홍련암이 자리한다.장성군은 ‘곶감의 고장’이다. 백양사 주변에 위치한 북하면과 북이면에서는 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대봉 곶감이 많이 생산된다백양사는 1400년 동안이나 민중의 고난을 함께해 왔다. 임진란, 정유재란, 갑오개혁은 물론, 암울했던 일제시대에도 불교 법통을 이어온 고승 대덕 스님들이 상주 수행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수행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이밖에도 이곳의 정관스님은 맛깔난 사찰음식으로 유명하다. 그 유명세가 해외로까지 전해지며 미국 TV 프로그램과 넷플릭스 음식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였고 베를린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기도 하였다. 절의 생활양식과 참선의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참여하는 비용은 1박 2일 기준 15만원이다.천연염색에 물든 보작고 색이 고운 아기단풍백양사 단풍은 여느 지역의 단풍보다 잎이 작고 색이 고와 ‘아기단풍’으로 불린다. 붉고 노란 단풍이 산 전체를 물들인 가운데 푸른 가을 하늘과 백암산 정상, 백학봉이 만나 장관을 이룬다. 특히 맑은 연못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쌍계루는 고려 충절 정몽주가 단풍 아래에서 임금을 그리는 애틋한 시를 썼던 곳이다. 또한 많은 문인들도 이곳 정취에 취해 예술혼을 발휘했다. 현재는 그 빼어난 절경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진가들의 단골 피사체가 되었다. 노랗고 빨간 단풍이 백양사를 감싼다장성군은 매년 백암산과 백양사 일원에서 ‘장성 백양단풍 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로 22번째인 이 축제는 단풍 절정기에 맞춰 11월 2일부터 11일까지 총 10일간 열렸다. 올해 방문한 내방객은 아름다운 국립공원과 백양사의 단풍을 즐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공연도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백양사 입구부터 쌍계루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통기타 공연, 국악, 클래식, 팝페라, 버스킹, 포크 콘서트 등 장르가 다른 여러 공연이 함께 펼쳐졌다. 아울러 천연비누 만들기, 전통등 만들기, 천연염색, 곶감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단풍이 절경일 때에는 전국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 일찍부터 백양사로 향하는 자동차 행렬이 톨게이트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다. 따라서 최소 오전 8시 이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해야 길에서 고생하지 않는다. 만약 도로가 정체되어 있다면, 굳이 백양사까지 가려 하지 말고 내장호 근처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하자. 여기서 내장사 입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이곳은 주차비도 받지 않는다.쌍계루의 절경과 호수 위로 반사된 가을 풍경단풍 사진을 찍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전화 061-392-7502입장료 성인 3,000원, 30명이상 단체 3,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1,000원무료입장 대상 장성군민, 국가유공자와 배우자, 군인, 65세이상 노인주차요금 경차 2,000원, 승용차 5,000원, 대형버스 7,500원, 중형버스 5,500원, 화물차 4,000원단풍놀이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 그랜드 C4 피카소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시트로엥의 소형 미니밴, 그랜드 C4 피카소다. 기자가 이 차를 선택한 이유는 윈드실드와 파노라믹 루프가 결합한 시원한 개방감 때문이다. 그 어느 차와도 비교할 수 없는 넓은 유리를 통해 가을 햇살과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3열 7인승 실내는 서울에서 장성까지 성인 남자 여섯이 함께했건만,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고 쾌적했다. 또한 여러 명을 태우고도 1리터당 평균 연비 15km를 기록한 2.0L 디젤의 높은 효율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기자가 시승한 그랜드 C4 피카소 2.0L 모델은 차선이탈 경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추돌경보를 포함한 ADAS를 탑재했다. 가족의 안전을 살뜰히 챙기는 아빠의 필수품으로서 이번 여행에서도 운전에 따른 피로를 줄이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역시 그랜드 C4 피카소는 장거리 여행에도 빛나는 유러피언 미니밴이다.  윈드실드와 지붕을 통해 가을 햇살과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그랜드 C4 피카소글, 사진 이인주 기자
총 2,052km, 아이슬란드 횡단기 2019-02-11
총 2,052km, 아이슬란드 횡단기“나 아이슬란드 가려고.” “거긴 왜 또 가?” “…그냥.”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거니 했던 그곳은 어느덧 네 번째가 되었고, 가장 친숙한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여행을 마치며 언제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했지만, 언젠간 아이슬란드의 한 숙소에서 이 글을 꺼내 읽으며 회상하고 있을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대학 생활 대미를 장식하는 졸업전시회가 끝나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젠 길게 여행 갈 시간은 없을 거야. 내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최고의 장소가 필요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사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신이 지구를 만들 때 시험 삼아 만들었다는, 바로 그 아이슬란드다. 2015년 첫 여행 이후 두 번을 더 다녀왔음에도 어쨌든 아이슬란드여야만 했다. 좋은 기억만 가득한 곳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었으니까.내가 빌린 자동차는 어디에?렌터카 회사에 도착해 300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내자마자 들은 한 마디. “자동 변속 자동차가 한 대도 없어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오면 차를 드릴게요.” 아프리카에서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여행했었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려 아이슬란드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아이슬란드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억울한 마음에 계속 따지자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수동 변속 자동차를 제안한다.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수동을 받으면 보통 오토가 더 비싸니까, 차액을 날로 먹겠다는 거 아닌가. 이건 상도덕과 자존심 문제다. 완강히 거부하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압박하자 직원들끼리 몇 마디를 나누더니 이내 차를 주겠단다. 방금까지 차가 없다더니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그냥 있단다. 잠시 후 온갖 화산재와 흙탕물을 뒤집어쓴 회색 레니게이드가 등장했다. 타이어 공기압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등도 들어와 있었다. 아무래도 준비가 안 된 차를 준 것 같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두 시간이나 지체되었고, 비바람에 차 상태를 확인하느라 외관 사진만 후다닥 찍고 그 지옥 같은 장소를 떠났다. 그렇게 새벽 세 시, 첫 숙소에 체크인 했다.기록을 위한 액션캠레니게이드, 생각보다 별로잖아?여행을 떠나기 전 자동차 업계에 몸담은 선배에게 레니게이드는 어떤 차인지 물어봤다. 잠시 생각하던 선배는 ‘덜덜덜, 타보면 안다’고 말해주었고, 시동을 걸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설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수식어는 없었다. 차량용 햇빛 가리개는 너무 짧아 남은 틈 사이로 자외선을 선사하고, 좌우 색과 모양이 다른 테일램프는 날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운전하는 내내 자갈 밟는 소리와 엔진 소리, 떨리는 의자의 삼박자가 피로감을 더했다. 지프에 대한 로망은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지난해 1월에 탔던 포드 쿠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프를 타고 아이슬란드의 링로드(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크게 도는 1번 국도) 여정을 시작했다.   검은 모래 해변 레이니스피아라‛꽃보다 청춘’이 방문했던 굴포스편도 1차로로 이루어진 1번국도회색빛 나라수도인 레이캬비크를 지나 골든서클을 둘러보고, 남부의 스코가포스(포스란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라는 뜻)로 향하는 길이다. 하늘을 보니 여전히 먹구름이다. ‘나아지겠지’하는 순간 하늘에 구멍이 뚫리더니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비가 쏟아진다. 하지만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맑은 구름이 우리를 반긴다. 저 멀리 지평선을 보니 비가 내리는 구역이 명확하게 보인다. 이게 바로 아이슬란드다. 날씨가 맑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구름이 몰려오고, 폭우가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힌다. 이 모든 일이 단 10분 만에 일어난다. 온몸이 젖을 각오로 차로 달려가면 차 문을 여는 순간 비는 그친다. 스코가포스 공터에 차를 대고 뷰포인트까지 계단을 올랐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 가쁜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바로 포인트다. 끝없는 지평선과 평야는 하늘이 만든 회색 커튼과 때때로 보여주는 푸른빛에 둘러싸여 시시각각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하늘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폭포에 무지개가 생기는 바로 그 순간 여기는 다른 나라, 아니 다른 행성이다. 스코가포스에는 바이킹이 폭포 뒤에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어떤 게 숨겨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굳이 그 보물을 찾아 애쓸 필요는 없겠다. 먹구름이 이렇게 기대되는 여행이 또 있을까? 그러니 만약 아이슬란드 여행 날씨 예보가 회색빛일지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 하늘을 덮은 먹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 뒤섞여 지금껏 보지 못한 회색 풍경을 보여줄 테다.스코가포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스코가포스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ICE’LAND스코가포스를 지나 비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동쪽으로 140km를 더 달리다 보면 드디어 링로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스카프타펠이 나온다. 무언가 익숙한 분위기라고? 그렇다면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려보자. 바로 만박사가 홀로 억겁의 시간을 보냈던 그곳이다. 여기서는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내에 있는 바트나요쿨 빙하를 하이킹할 수 있는데, 곳곳에 위치한 크레바스와 안전상 문제로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한다. 빙하를 바라볼수 있는 스비나펠스요쿨인터스텔라의 촬영지인 스카프타펠 집결지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모여 설명을 듣고 장비를 지급받는다. 트래킹을 시작하면 검은 화산재와 함께 긴 시간 잠들어 있던 푸른 빙하가 펼쳐진다. 이 외에도 ‘아이슬’랜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곳이 또 있다. 호수에 빙하가 떠내려 오는 요쿨살론과 바다가 합쳐지는 다이아몬드 비치다. 요쿨살론에는 푸른 빙하가, 맞은편 다이아몬드 비치에는 바다에서 다시 육지로 떠내려 온 작은 빙하들이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누군가에게는 장노출 사진을 찍을 최고의 장소이자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장소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자연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경험을 주니, 참으로 ‘다이아몬드’ 비치라는 이름이 걸맞지 아니할 수 없다. 화합의 장동부 세이디스 피요르드를 지나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데티포스로 향한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외계인이 검은 액체를 마시고 분해됐던 바로 그 폭포다. 경치를 감상하며 산 넘고 물 건너다보니 어느덧 주행거리는 700km를 돌파했다. 도로 상황을 보여주는 앱을 켜보니 데티포스로 향하는 한쪽 길은 통제 되었고, 다른 길은 열려있지만 미끄럽다는 표시가 뜬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혹독하다. 겨울은 특히 그렇다. 강풍으로 하나밖에 없는 1번 국도가 통제되는가 하면, 내륙 지방은 눈이 오는 10월 초면 통행이 금지된다. 대부분 사람은 무사히 여행을 마치지만 어떤 사람은 사고를 겪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차로 눈길을 지나다 미끄러져 구석에 처박히는 것이다. 평지일지라도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견인차를 불러야 하는데, 한번 부르면 비용이 20~50만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비용을 내지 않고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다른 여행자의 도움을 받는 것. 1번 국도의 전경데티포스가 가까워졌을 무렵 여러 대의 차가 앞에 멈춰 서있었다. 추돌사고라고 생각했다. 비상등을 켜고 주위를 살폈는데 사람들이 한 군데에 모여 있었다. 사고가 났다. 그런데 추돌사고가 아니라, 한 차가 눈길에 빠져서 사람들은 그 차를 밀어주고 있었다. 심지어 운전석에 앉아 열심히 가속 페달을 밟던 여자는 차주가 아니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끌어준 덕에 차는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을 기꺼이 내준다. 언어가 통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니까. 이윽고 차가 나오면 다 같이 한바탕 웃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제 갈 길 간다. 유럽 최대의 폭포와 함께 지구 화합의 장을 보았다. 그 감동을 가슴에 안은 채 북부로 향했다.미끄러진 차를 도와주러 모인 여행자들. 이곳에서는 익숙한 광경이다무너진 동경그렇게 오늘의 목적지인 아퀴레이리를 향해 가다 풍광에 취해 차를 잠시 세우고 그 순간을 즐겼다. 그런데 차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 며칠 전 전조등 하나가 고장 났으나 나머지 하나로 달릴 수 있어 일단 여행을 계속했는데, 나머지 전조등까지 망가진 것이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생겼다. 일단 무엇을 해야 하지? 정비소에 가야 한다. 정비소에 가려면, 그래. 렌트 업체에 연락하자! 그렇게 네 번의 통화 시도 끝에 긴급 지원부서와 연락이 닿았고, 미바튼이란 곳에 있는 정비소를 찾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자로 주소를 받은 후 눈이 멀어버린 레니게이드와 함께 정비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커다란 창고형 정비소에 세 명의 아이슬란드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들어가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묻자 자기는 모르겠다고 그냥 기다리라고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재차 들어가 언제쯤 가능한지 물었더니, 이번엔 화를 내며 나가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동안 만난 아이슬란드인은 전부 친절했기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빨리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고, 언제쯤 가능한지 물어볼 수는 있지 않은가! 아이슬란드인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다. 아이슬란드는 모든 것이 완벽한 내 꿈의 장소였기에 그 실망감은 더 컸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려 정비공이 나오더니 보닛을 열고 전조등을 살핀다. 30초 정도 봤을까, 자기네 정비소에는 맞는 전구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란다. 아니! 해가 짧아 돌아다닐 시간도 부족한데, 이 렌트 업체는 자기네 차를 어디서 정비할 수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인가. 분노를 삭이며 상향등과 비상등을 이용해 주행을 시작했다. 속칭 긴급 지원부서는 다음 도시에서 갈수 있는 정비소를 알려주겠다며, 내일 다시 연락하라더니 퇴근해버렸다. 아이슬란드에 대한 동경이 또다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알고 먹어도 맛있고, 모르고 먹으면 더 맛있다그렇게 차를 달려 북부 제2의 도시 아퀴레이리에 도착했다. 삼면 이상이 바다인 나라에 가면 반드시 해산물을 먹어봐야 한다. 맛집으로 소개된 피시 앤 칩스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청난 튀김 냄새가 코를 강타한다. 마치 이 집은 맛집이 확실하다는 말을 코로 듣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시킬지 고르던 중 특이한 게 있어 설명을 보니, ‘크리스피 도리토스 코드’라는 게 아닌가. 도리토스가 내가 아는 그 도리토스일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일단 신기한 메뉴가 있으니 시켜보기로 한다. 십여 분 후, 아주 크고 두꺼운 피시 앤 칩스가 나왔다. 마치 그 두께가 스테이크만큼 두툼하고 살이 부드러워 한 입을 베어 무니 마치 고기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더라. 필자가 시킨 음식은 겉보기에는 마치 돈가스처럼 생겼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치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맛있었다. 한참을 먹다가 이 고소함과 바삭함의 근원이 궁금해 동행에게 물어봤는데, 겉면을 감싼 조각이 도리토스란다. 응? 도리토스? 내가 아는 그 과자 도리토스? 그렇다. 내가 도리토스 같은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일부로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과자랑 생선을 함께 튀기다니. 찰나의 침묵이 흐른다. 그제야 입안에 도리토스 냄새가 난다. 아,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회픈에서 맛본 랑구스틴고소하고 바삭한 피시 앤 칩스의 비결은 겉을 감싼 도리토스 과자였다역시 아이슬란드 다음 날 아침, 가득한 먹구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나를 맞이한다. 먼지 한 톨 없는 맑은 공기를 원 없이 들이켠 후 다시 정비소를 찾아 떠난다. 정비소는 10시에 연다고 했고 짧은 거리에 있어 마음 편히 출발했으나, 역시 우리의 렌트 업체는 또다시 내 여행에 흠집을 냈다. 10시에 연다는 업체는 11시가 되어도 열지 않았고, 커피를 마시며 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렸더니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직원이라기보단 손님 같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다가갔다. “혹시 여기서 일하세요?”, “아니요. 혹시 도움 필요한가요? 그럼 따라오세요.” 아, 이유는 없지만 한줄기 따스한 빛이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것 같다. 건물 뒤편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우리를 멀뚱히 바라본다. 둘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차를 가지고 들어오란다. 빙고! 들어가며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니 12시에 오픈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지금은 열한 시 반이다. 기쁘면서 화가 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이 바로 그때다. 문 앞까지 다가가자 그는 나를 차에서 내리게 하더니, 내 운전을 못 믿겠다며 직접 차를 가지고 정비소 안으로 들어간다. 내리면서 농담이라며 너스레를 떠는데 아마 그보다 더 편안한 농담은 세상에 없을 거다. 보닛을 열고 전구를 간다. 이 모든 작업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업은 금방 끝났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많은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키우는 개와 함께 뛰놀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이별의 악수와 함께 자리를 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아이슬란드에 대한 내 감정은 그새를 못 참고 다시 활짝 만개했다. ‘그래, 역시 아이슬란드야.’오로라, 제발 내게로 오라 산 넘고 물 건너 링로드 한 바퀴가 어느덧 끝나간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다시 도착할 때까지 불행히도, 오로라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구름 앱을 켠다. 보아하니, 일부 지역에 구름이 별로 없고 오로라 지수도 꽤 높았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오로라가 필요했다. 기대와 불안을 안고 그로타 등대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신의 커튼, 오로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씩만 일정을 미뤘어도 매일 오로라를 봤을 텐데. 떠나온 날 그 지역에 엄청난 오로라가 떴다는 이야기를 9일 동안 들었으니 마음속에 얼마나 맺혔겠는가. 그래서 더 간절하고 더 아름다웠다. 할그림스키르캬에서 내려다 본  레이캬비크오로라를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경악할만한 구름의 양 덕분에 난이도는 몇 배로 올라간다. 역대 최고의 오로라가 뜬 날에 동부에선 구름에 가려서 못 보고, 남부에선 인생에 남을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구름 없는 지역을 찾아 이동하는 게 중요하다. 한참을 달려 구름 없는 지역에 도달하고, 하늘에서 초록빛 커튼을 펄럭이는 순간 인생에 다시없을 황홀함을 맛보게 된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거나, 또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순간을 음미한다. 혹시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지 못했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아이슬란드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까. 글 사진 한상혁(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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