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올 여름휴가는 텐트 안에서 보내는 거야! 안 가보면.. 2005-07-15
설악산 장수대 야영장 캠퍼들과 산악인들이 전국 으뜸으로 손꼽는 캠핑명소. 한계령 입구 산자락에 있는 장수대 휴게소 위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9년 당시 3군단장 오덕준 장군이 산장을 세우고 장수대(將帥臺)라 이름지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송림이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들고, 야영장 사이로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한계천이 물길을 열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장수대 북쪽으로는 설악 서북릉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가리봉과 주걱봉 그리고 삼형제봉이 나란히 자리했다. 장수대 야영장은 400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 송림 속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그곳에서 바로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다. 한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화장실과 취사장이 각 2동씩 마련되어 있다. 한적한 캠핑을 하려면 다리를 건너가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사무소에서 입장료 어른 1천600원, 어린이 300원을 받는다. 텐트는 하루에 소형(3인 이하) 3천 원, 중형(4∼9인) 4천500원, 대형(10인 이상) 6천 원. 설악산 관리사무소 (033)672-2883, 장수대 분소 (033)463-3476. 설악산 주변에는 장수대 외에 설악동 야영장과 오색 야영장이 있다. 설악동 야영장은 500동의 텐트를 칠 수 있고, 3동의 샤워장과 5동의 취사장을 갖췄다. 오색 야영장은 100여 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임시 야영장.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주차장도 100여m 떨어져 있어 오토캠핑은 어렵다. 장수대에서 대승령 등산길로 1.2km, 40분쯤 오르면 높이 88m의 대승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야영장 주변으로 한적한 트레킹 코스와 등산 코스가 수없이 널려 있다. 장수대 가는 길은 44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팔당대교를 건너 44번 국도에 올라 그대로 직진해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한계령 길로 들어가면 된다. 한계령 휴게소를 지나 1km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입구가 보인다. 말골 명사십리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자리한 유원지다. 말골은 모곡유원지에서 4km 정도 하류에 떨어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홍천 서쪽 끝의 오지라서 장을 보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춘천으로 나가는 길이 빠르다. 고운 모래알들이 강물 파도에 부딪히면서 울음소리를 낸다는 뜻의 ‘명사’(明沙)와 그 길이가 4km, 십 리에 이른다 해 ‘십리’(十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제에서 시작된 홍천강이 넓고 깊어지면서 모곡리와 마곡리 일대의 강가에 은색 모래밭이 만들어졌고, 말골까지 이어진다. 말골의 강에서는 체장 20∼30cm에 달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누치가 잡힌다. 이밖에 쏘가리, 모래무지, 잉어, 끄리 등을 낚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인근 상점에서 낚시도구(견지대 2∼3만 원)와 장작(1단 5천 원)을 살 수 있다. 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매년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어른 2천 원, 어린이 1천 원의 요금을 받는다. 그 외 기간에는 무료. 홍천군 서면사무소 (033)434-0031. 명사십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모곡 유원지도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강변에 나무가 있어 그늘을 찾을 수 있고, 주변 민가에서 식수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명사십리에서 강 위쪽으로 올라가면 낚시바위, 배바위 등 절경이 펼쳐지고, 온통 모래로 뒤덮인 남이섬이 나온다. 말골 인근에 임진왜란 때 왕실의 피난처로 쓰였다는 왕터산(해발 400m)이 자리했다. 높지는 않지만 트레킹 코스로 제격. 서울과 양평, 청평을 잇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신청평대교를 건넌다. 394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해 청평유원지를 지나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위곡리를 거쳐 홍천군 서면 모곡리까지 들어간다. 모곡리 한서중학교 앞에서 말골 이정표를 따라 6km쯤 달리면 명사십리다. 연포 오토캠핑장 태안반도 일대는 해수욕장의 천국. 그 중에서도 연포해수욕장은 가족 단위 피서지로 제격이다. 해수욕을 즐기면서 오토캠핑도 할 수 있기 때문. 충남 태안군 근흥면 도황리에 자리했다. 1985년 문을 연 연포 오토캠핑장은 숙박시설과 유흥가가 있는 중앙해변(로맨스 비치), 청소년 야영장 중심의 해변(고고 비치) 그리고 오토캠핑장(아리랑 비치) 등 해변이 세 개로 나뉘어 있다.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1만4천 평 부지를 갖췄고, 잔디밭 위에 인공그늘막동을 세우는 등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했다. 차 한 대당 13평씩 개인 캠프구역이 주어진다. 해변의 경사가 완만하고 정남향이어서 수온이 다른 해수욕장보다 높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썰물 때는 조개나 고동을 직접 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변 관광지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고운 모래와 소나무숲과 더불어 바닷가에 핀 해당화를 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도 볼거리. 입장료는 1천100원. 텐트는 4∼5인용 한 동을 기준으로 1만 원, 6인 이상 1만2천 원, 10인 이상은 1만5천 원이다. 다른 곳에 비해 요금이 비싼 편이지만 전문 오토캠핑장인 점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연포번영회 (041)674-0909. 연포 오토캠핑장의 단점은 주변에 역사 유적지나 관광명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안흥항에서 유람선(안흥성)을 타고 서해안을 관광할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에서 빠져나와 서산 방향으로 좌회전해 32번 국도를 타고 태안 쪽으로 직진한다. 태안에서 2.3km를 달려 왼쪽으로 603번 지방도를 만나면 좌회전. 9.1km를 더 가면 연포해수욕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함허동천(涵虛同天) 야영장 강화도의 최고봉 마니산(469.4m) 서쪽 기슭에 자리한 함허동천은 200m나 되는 암반이 넓게 펼쳐진 계곡에 폭포까지 간직한 아름다운 계곡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의 정수사를 짓고 그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호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1988년 국민관광단지로 문을 연 함허동천 야영장은 취사장과 놀이마당, 잔디광장 등이 마련되어 가족 단위 캠핑은 물론 단체 캠핑에도 적합하다. 가장 큰 매력은 산 너머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 새해 일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주차장 위쪽 매표소 근처에 좋은 자리가 많지만 사람들을 피하고 싶다면 상류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1천500원이고, 4인용 텐트는 2천 원, 5∼9인용은 3천 원을 받는다. 10인용 이상은 4천 원. 주차는 무료. 함허가 지은 정수사부터 들러 보자. 신라 선덕여왕 8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세종 8년에 함허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인근에 동막해수욕장이 자리해 갯벌체험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동막해수욕장의 끝에는 조선시대 요새로 사용했던 돈대가 자리했다. 강화도 해안도로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은 48번 국도가 지나는 신강화대교와 그 아래에 84번 지방도가 지나는 강화제2교(초지대교) 등 두 가지다. 어느 다리를 건넜든 84번 지방도를 타고 마니산이나 참성단 이정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함허동천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198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자연휴양림. 울창한 소나무숲과 맑은 계곡, 바위가 어울러진 대관령 기슭에 자리했다. 휴양림 안에 5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대관령 자연휴양림은 연평균 기온이 8℃밖에 안된다. 휴양림 고개 너머에 자리한 숲 속 수련장은 강의실과 숙박시설, 잔디광장, 체력단련실 등을 마련해 청소년 수련시설로 안성맞춤이다. 또 숲을 체험할 수 있는 길과 야생화 정원, 황토 초가집과 물레방아, 숯가마터 등도 색다른 볼거리. 산림문화휴양관 앞에 자리한 금바위폭포에서는 옛날에 사금을 채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20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다. 원목으로 만든 ‘숲 속의 집’과 산림문화휴양관, 15명이 들어갈 수 있는 단체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1천 원, 어린이 600원. 야영장은 4인 기준 하루 4천 원. 중·소형차는 3천 원, 대형차(25인승 이상)는 하루 5천 원의 주차요금을 내야 한다. 숲 속의 집은 7평형이 하루 4만4천 원, 10평형 5만5천 원. 휴양림 관리사무소 (033)644-8327. 휴양림에서 나와 동쪽으로 20여km만 달리면 경포대해수욕장이다. 25km 떨어진 참소리 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축음기 박물관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축음기에서 현재의 오디오에 이르기까지 4천500여 점의 전시물과 함께 축음기 발전사를 공부할 수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유명하고,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에도 들러 보자. 영동고속도로 강릉IC에서 나와 성산·대관령 방향으로 내려간다. 영동고속도로 옛길을 따라 대관령 방향으로 직진해 왼쪽으로 대관령 박물관을 지나 어흘리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회관 앞에서 오른쪽 비포장길을 따라 700m쯤 들어가면 휴양림에 닿는다. 미천골 자연휴양림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미천골에 자리했다. 7km에 달하는 미천골 계곡은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굽이쳐 흐른다. 응복산, 조봉, 만월봉 등 백두대간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심산유곡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휴양림 안에는 100평 규모의 오토캠핑장과 신라시대 고적인 선림원지와 불바라기약수터, 재래봉(토종꿀) 보호구역 등이 자리해 문화유적 탐방과 함께 자연교육을 겸할 수 있다. 피서철에는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예약하고 간다. 미천골 휴양림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인근 서림천과 공수전유원지, 용소골도 추천할 만하다. 미천골 아래의 서림천은 피서철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서림천과 이어지는 공수전 유원지와 용소골도 제3의 피서지. 매년 7월 10∼8월 20일에 개장한다. 넓고 평평한 솔밭이 있어 야영하기에 좋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입장료 어른 1천 원, 어린이 300원. 주차요금은 하루에 중·소형 3천 원. 2곳의 야영장 이용료는 하루 2천 원, 나무 평상(데크) 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은 4천 원이다. 오토캠핑장은 하루 1만 원. 휴양림 관리사무소 (033)673-1806. 휴양림에서 30km 달리면 설악산이다. 법수치마을과 어성전, 오색약수, 오색온천, 낙산해수욕장 등 유명 관광지가 가까운 것이 미천골 휴양림의 매력이다. 휴양림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물놀이를 위해 해수욕장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색다른 피서법이다. 주변에서 인진쑥, 장뇌삼, 송이, 산채 등 지역특산물도 살 수 있다. 구룡령 정상에서 휴양림 쪽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는 수려한 계곡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 없다.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구룡령을 넘어 32km쯤 달리면 ‘황이리’라는 마을에 들어선다. 왼쪽에 ‘미천골 공예사’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이 보인다. 불정동 자연휴양림 경북 북동쪽, 문경새재 남쪽에 자리했다. 행정구역은 문경시 불정동 시유림. 약수산이라 불리는 수정봉(487m) 산자락에 안겨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수정봉은 숲이 울창하고 맑은 계곡이 흘러 문경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 50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야영장과 14개의 야영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불정동 자연휴양림의 특징은 놀거리가 많다는 점. 매표소 위에 자리한 청소년수련관에는 게이트볼 광장이 있고, 잔디광장과 체육시설도 갖췄다. 계곡물을 막아 물놀이터도 만들었다. 또 휴양림에서 차를 타고 8km, 10분 정도 나가면 클레이 사격장이 있다. 어른 5천 원, 청소년 3천 원을 내면 MTB도 하루종일 빌릴 수 있다. 계곡 인근 벚나무 아래 긴 나무의자가 놓여 햇빛을 피해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좋을 듯. 14개의 야영데크도 소나무 아래 마련되어 시원하다. 입장료는 어른 1천 원, 어린이 500원. 주차요금은 하루 3천 원(중·소형). 야영 데크는 하루 7천 원, 원두막은 1만 원이다. 휴양림의 통나무집은 하루 기준 6평이 5만 원, 10평 7만 원, 20평은 15만 원이다. 청수년수련관 (054)552-9443, 550-6456. 휴양림에서 20km, 30분쯤 벗어나면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지방의 문턱 역할을 하던 문경새재다. 차로 20분쯤 거리에는 문경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문경온천은 지하 774m에서 솟아오르는 칼슘 중탄산 온천수로, 연한 황토빛이 나고 끈끈한 특성이 있어 혈액순환과 피부에 좋다. 수려한 경관과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자랑인 쌍용계곡도 볼거리. 휴양림 건너편에는 약수로 유명한 운암사가 터를 잡고 있다. 문경시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새재 방향(북쪽)으로 8km쯤 달리다가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오면 운암사 이정표에 따라 좌회전한다. 여기서 1.8km 직진하면 불정동 자연휴양림 간판이 보인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 자리잡은 유명산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해발 862m의 유명산 입구 계곡 안쪽에 자리해 산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참나무가 많은 천연림 지대와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어 놓은 인공림 지대가 어울려 풍경이 뛰어나다. 기암괴석과 계곡을 따라 완경사·급경사가 조화를 이루는 등산로 주변에는 갈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정상에는 고사리와 억새밭이 있고, 지역특산물인 취나물, 고사리, 더덕, 머루와 표고버섯 등이 자생한다. 휴양림에는 야영 데크 21개와 한꺼번에 1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야영장, 50여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마련되었다. 휴가철에는 찾는 이들이 많아 피하는 것이 좋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평소 주말 나들이 코스로 유명산 휴양림만큼 좋은 곳도 없다. 입장료는 다른 휴양림과 마찬가지로 어른 1천 원, 어린이 300원이다. 야영장은 텐트 1동에 2천 원, 야영 데크 4천 원. 오토캠핑장은 8천 원을 받는다. 주차장은 하루 3천 원. 숲 속의 집은 5평형이 4만 원, 9평형이 5만5천 원이다. 휴양림 관리사무소 (031)589-5487. 가평은 청평유원지, 산장유원지, 명지계곡, 운악산, 현등사, 용추계곡 등 군 일대가 전부 관광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명산 옆에 우뚝 솟은 어비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어비계곡. 유명산과 아주 가까워 잘 알려진 곳이다. 유명산 동쪽으로는 해발 1천157m 용문산이 이웃해 있다. 약 2km쯤 걸어올라 만나게 되는 용문사와 1천100년을 살았다는 은행나무가 명물이다. 6번 국도를 타고 양수리, 국수리를 지나 양평 시내 초입에 있는 양평군민회관 사거리까지 직진한다. 회관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37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 양평 한화콘도 입구와 중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유명산 입구에 닿는다. 글│장한형 기자
외로운 바다 짜릿한 낚시 무녀도 갯바위에서 낚시에 .. 2005-07-15
prologue 하나. 날씨가 더워지면서 물이 그리워졌다. 시원하기로 따지면 그늘진 숲의 계곡을 따라갈 곳이 없겠으나, 아직은 햇볕이 따갑지 않아 보는 것으로도 만족할 것 같았다. 대신 관광객 넘쳐나는 바닷가는 곳곳의 쓰레기와 어지러운 소음 때문에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섬을 찾기로 했다. 둘. 그동안 낚시라고는 생수통에 낚싯줄 감아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낚싯대 드리우고 물고기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도 벌여야 낚시를 해봤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도 망망대해에 배를 세우고 하는 낚시나 파도가 날름대는 외로운 갯바위에서 해야 제대로 된 낚시일 것 같았다. 셋. 한때 회를 질리도록 먹는 것이 꿈이었다. 어렸을 적 자장면처럼. 하지만 양이 풍부해지면 질을 가리는 법. 이제는 어종을 가리고 양식/자연산을 따지게 되었다. ‘완전자연산’ 물고기의 쫄깃한 느낌은 거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고 하니 …. 6월14일 5:00 - 배에 몸을 싣다 전날 서울에서 내려가면서 군산낚시프라자 정재열 사장과 통화를 했다. “언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3시에 오세요.” “네? 지금 4시가 넘었는데.” “내일 새벽 3시요.” 그래서 저녁을 서둘러 먹었다. 이른 잠자리가 어색할까 싶어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 일찍 잠을 청했지만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금세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 서둘러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가게 앞이 밑밥을 만드는 낚시꾼으로 붐빈다. 밑밥을 챙겨 배를 타러 떠난 시간은 3시 반 무렵. 재미있다. 기자가 끌고 간 차만 빼고 죄다 SUV다. 정 사장의 코란도 패밀리를 비롯해 갤로퍼, 테라칸, 쏘렌토…. 낚시가 아니라 오프로드 동호회 그룹 주행인 듯한 착각. 군산항에서 일부 배를 태워 보내고 우리는 야미도로 향했다. 고군산군도로 향하는 배가 이곳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야미도 역시 고군산군도에 속하는 섬이었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어 버렸다. 새만금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아무나 드나들 수 없지만 낚싯배를 타러 가는 것은 괜찮다. 오프로드 랠리 코스 같은 비포장길을 10km 넘게 달려 도착한 야미도. 군산낚시프라자의 지점이 있는 이곳에서 낚시 채비를 꾸린다. 다시 차를 타고 2∼3분 가면 배를 타는 곳이 있다. 시침은 어느새 5시를 가리키고 있다. 해가 뜨진 않았으나 이미 동이 터서 하늘이 파랗다. 6월 14일 5:17 - 서해의 모든 ‘감생이’여 나에게 오라 배에 올랐다. 잠시 후 도시락이 오자마자 배는 출발한다. 잔잔한 물살을 타는 배의 흔들림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배가 향한 곳은 고군산군도. 예전에는 고군산열도라 불렀다.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10개여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지금은 63개의 섬 중 유인도가 16개란다. 옛날 고려시대에 이곳에 군산진이라는 수군진영이 있었지만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육지로 가면서 군산이라는 이름도 가져갔다. 대신 이곳에는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장 유명한 섬은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도.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다리가 놓여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 배는 대장도보다 더 멀리 떨어진 관리도를 향한다. 감성돔이 잘 잡힌다는 포인트에 낚시꾼들을 하나둘씩 떨어뜨린다. 장소에 따라 물살과 바닷속 지형이 달라 감성돔이 잡히는 수심도 다르다. 그래서 선장 김태선 씨는 포인트마다 수심을 일러준다. “거기는 4m로 하세요. 그리고 너무 멀면 안돼요. 좀더 가깝게 …. 그렇지, 그렇지.” 야미도가 고향인 김태선 씨는 선장생활 30년 가까운 베테랑이다. 낚시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뱃길을 다닌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물고기의 움직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바다낚시에서 중요한 것은 포인트만이 아니다. 같은 어종, 같은 포인트라도 물이 들고 날 때 다르고 사리(조석의 차가 가장 클 때)와 조금(사리의 반대)이 다르다. 그리고 날씨에 따라서도 물색과 온도가 달라지기 마련. 바다는 평화스러웠다. 가끔씩 오가는 낚싯배의 소리와 수면 위를 오가는 갈매기 소리를 빼면 고요 그 자체였고, 곳곳에 보이는 양식장 역시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미 자리를 잡은 낚싯꾼들 역시 조용히 물 위의 찌만 바라볼 뿐이다. 여러 섬을 들러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무녀도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파랗던 하늘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있다. 해는 떴지만 구름이 많이 낀 탓이다. 갯바위에 내려 낚시 준비를 한다. 낚싯대를 꺼내 바늘을 끼우고 자리를 잡는다. 갯지렁이를 끼우기도 하고 크릴 새우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지렁이 한 마리 혹은 크릴 새우 한 마리로 물고기를 유혹하기엔 약하다. 그래서 크릴 새우와 집어제(물고기가 좋아하는 향을 넣어 물고기를 유인한다)를 섞은 밑밥을 뿌린다. “감생이(감성돔)나 한번 잡아볼까?” 낚시 가이드를 하는 최진규 씨는 기자의 낚싯대를 조립해 주고 나서 감성돔 낚을 채비를 한다. ‘일단 회를 먹고 주변에 인심도 쓰려면 못해도 예닐곱 마리는 잡아야 될텐데, 한 시간에 한 마리씩만 잡아도 충분하겠다’ 싶은 마음에 기자도 덩달아 자신만만. 하지만 조금 전 배에서 들었던 김태선 선장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감성돔은 힘이 좋아서 기술이 없으면 먹이만 먹고 가 버려요.” 그리고 기자는 돌아오는 배에 올라탈 때까지 이 말을 계속 되뇌어야 했다. 6월 14일 7:30 - 잔챙이는 가라, 월척만 오라 가이드를 맡은 최진규 씨 외에도 요즘 낚시의 맛에 빠진 허 원 씨와 부산에서 온 차정석 씨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준비를 마치고 낚싯대를 물에 드리우자 사방은 조용해진다. 이제 남은 것은 물고기를 낚는 것. 릴 낚시를 처음 해보는 까닭에 아직 손에 익지 않다. 릴 고정 장치도 익숙하지 않고 미끼를 끼우기 위해 낚시 바늘을 잡는 것도 여의치 않다. 어렵진 않다.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20∼30분 해보면 금방 손에 익는다. “줄을 더 줘요. 더. 더. 더.” ‘이제나 무나, 저제나 무나’ 기다리고 있는데 최진규 씨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잡고 있어 봐야 절대 못잡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미끼도 가장 토실토실한 새우로 끼우고 미동도 않고 있는데…. 최진규 씨의 말은 낚싯줄을 팽팽하게 하지 말고 느슨하게 드리우라는 뜻이었다.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 먹이가 따라 내려가야 물기 때문이다. 줄을 팽팽하게 잡고 있는 기자는 함정만 파고 위장을 하지 않은 꼴인 셈이다. 경치도 좋고 바람도 좋지만 낚시 자체의 스릴은 입질과 손맛이다. 물고기 입장에서야 먹느냐 마느냐가 목숨을 건 결정이다. 그래서 건드려도 보고 입도 대봤다가 ‘괜찮겠다’ 싶으면 덥썩 무는 것이다. 손끝에 전해 오는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낚싯대를 당기면 물고기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낚아채고픈 유혹을 참고 찌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정석 씨의 찌가 물 속으로 숨나 싶더니 이내 낚싯대가 휜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손바닥만한 노래미. 어류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횟대목 쥐노래미과에 속하는 어류이고, 낚싯꾼의 눈에는 게와 새우를 좋아하고 미끼를 깊게 드리워야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이다. 하지만 술 한 잔 꺾기 좋아하는 일반인의 생각에는 육질이 단단하여 횟감으로 그만인데다 작은 것은 뼈째로 써는 ‘세꼬시’감으로 으뜸이다. 노래미를 시작으로 이런 저런 물고기들이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온다. 유독 기자의 찌만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수면을 떠돈다. 그래도 욕심은 난다. ‘요런 잔챙이 말고 좀 커다란 놈 안 무나. 잡지에 나오는 50∼60cm짜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른 팔뚝만한 놈은 좀 물어 줘야 되는데.’ 그때, 바로 앞에 어른 팔뚝만한 숭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기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가장 작은 녀석도 묵직해 뵌다. 최진규 씨가 숭어 낚기에 나섰다. 낚싯대를 거둬 줄을 바싹 당긴다. 감성돔은 깊은 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수심을 깊게 주지만 숭어는 수면 바로 밑에 있어 미끼가 보일 정도로 수심을 얕게 줘야 한다. 숭어를 낚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에는 숭어를 치어라 하면서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한 성질을 갖고 있다 했다. 아울러 ‘맛이 좋아 물고기 중 제일’이며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에 잘 어울린다’고도 썼다. 이로써 숭어를 낚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 녀석이 미끼를 무나 싶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밑밥을 계속 뿌려 숭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고 계속 기다린다. 20분쯤 지났을까. 숭어 하나가 미끼 주변을 맴돌더니 미끼를 툭툭 치다가 덥썩 문다. 숭어는 크고 힘이 좋아 자칫하면 낚싯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너무 세게 낚아채면 주둥이가 터지기도 한다. 일단 줄을 감고 다시 풀었다가 또 감는다. 그러다가 숭어의 힘이 좀 빠졌다 싶으면 물 밖으로 끌어낸다. 숭어가 공기를 마시면 힘이 더 빠진다고 한다. 최진규 씨와 숭어의 기싸움은 2∼3분의 실랑이 끝에 최진규 씨의 승리로 끝났다. 뜰채로 건진 숭어는 40∼50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6월 14일 9:00 - 내게 손맛을 보여다오 벌을 치는 이들은 동이 트기 전에 벌꿀을 채집한다. 아직 벌들이 잠에서 덜 깨 정신이 없을 때 그들의 먹이를 빼앗는 것이다. 이때는 벌이 잘 물지도 않을 뿐더러 물려도 그닥 아프지 않다. 하지만 해가 뜬 다음은 상황이 달라진다. 웽웽거리는 소리도 클 뿐 아니라 물리면 얼굴 형태가 달라질 정도로 아프다. 같은 이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낚시꾼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새벽부터 해가 제대로 내리쬐기 전인 9시나 10시 정도까지 그날 잡을 고기의 80∼90%가 잡힌다. 대개 오후 2∼3시에 철수하는데 그때까지는 어렵게 나온 길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란다. 물고기들의 입질이 한가해지면서 낚시꾼도 덩달아 할 일이 없어졌다. 가끔 낚싯대를 들어 미끼가 아직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새로 꿸 뿐. 한가해지니 배가 고프다. 눈뜬 지 7시간이 지났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한 일. 잠시 낚싯대를 놓고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단체로 주문한 도시락인지라 푸짐하진 않지만 배고픔을 생각하면 진수성찬. 이런 뱃속 사정을 알았는지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밥을 얼른 먹고 쓰레기를 정리해 놓고 다시 낚시 대형으로 흩어진다. “방해하지 말고 저쪽으로 가요. 아줌마가 있으면 고기들이 오겠어요?” “낚시나마나 고기가 하나도 없구만, 뭘. 나는 봤잖아요. 고기 없어요.” 우리 쪽에 가까이 온 해녀와의 대화다. 10시 넘은 시간이라 이제 고기가 그다지 많지 않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기자는 이제껏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이리저리 낚싯대를 조금씩 옮기다가 뭔가 걸린 느낌이 들어 잡아당기는데 이 녀석 힘이 보통이 아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이드는 몇 번 잡아당겨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수초에 걸렸네요” 하며 툭툭 잡아 당긴다. 릴을 감으니 낚싯바늘에 물고기 대신 수초가 매달려 있다. 물고기가 외면하는 낚싯대 앞에서 기자는 작아진다. ‘잡히지 않아도 좋다. 손맛이라도 보게 해다오.’ 빈 낚싯바늘에 크릴 새우만 축내기를 십수 회. 팔이 아파 겨드랑이에 낚싯대를 끼고 삐딱하게 서 있는데 겨드랑이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진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뭔가 물긴 문 것 같다. 낚싯대를 손으로 잡으니 저 안에서 어떤 녀석인지 입질을 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내 찌가 물 속으로 사라진다. ‘걸려라!’ 주문을 외며 휙 잡아 당겼다. 올커니, 걸렸다. 저항이 꽤 센 걸 보니 큰 녀석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든다. 조심조심 릴을 감자 물고기 한 마리가 펄떡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노래미다. 크기는 겨우 한 손에 감쌀 정도. 바늘을 빼려 물고기를 잡자 손을 튕겨낸다. 넓은 바다에서 활개치고 다녔으니 얼마나 힘이 좋으랴. 바늘을 깊이 삼켰는지 여간해서 빠지지 않는다. 겨우 잡아 빼서 그물에 넣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더 작은 치어가 잡혀 다시 놓아준 것을 빼면 손맛만 서너 번 맛보았을 뿐 실적은 형편없다. 허 원 씨도 별 재미를 못 보았다. 최진규 씨와 경력이 오랜 차정석 씨만 이따금씩 물고기를 잡아올릴 뿐이었다. 11시가 넘고 12시가 지나자 햇빛이 뜨거워진다. 그늘 한 점 없는 갯바위에 찌만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를 태워 갈 배는 3시에 오기로 되어 있고, 물통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장마철에 귀한 것이 물이듯, 천지가 물인 갯바위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마실 수 있는 물이다. 6월 14일 13:30 - 기나긴 하루가 지나다 수면을 스치는 길다란 은빛의 물고기들. 학꽁치다. 단정하게 생긴 은빛 몸매와 더불어 주둥이가 학의 부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학꽁치로 불린다. 성질머리가 급해서 낚싯바늘에서 빼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는 학꽁치이자 일본사람들이 ‘사요리’라 부르며 사족을 못쓴다는 학꽁치이다. 그만큼 맛이 기가 막힌 물고기다. 한가하던 갯바위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된다. 학꽁치가 은빛 꼬리를 흔들며 낚싯줄에 매달려 올라오자 탄성이 나온다. 저것이 씹다 보면 저절로 녹아 목구멍으로 사라진다는 학꽁치 아닌가. 아직도 학꽁치들은 우리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최진규 씨가 밑밥을 아낌 없이 뿌리면서 미끼를 던져 보았지만 학꽁치들은 밑밥만 맛나게 먹을 뿐 입질할 생각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가해진 입질과 따가울 정도로 강한 햇빛, 침이 마르는 갈증은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지겨운 현실을 이기는 방법은 즐거운 상상. 주인공은 우럭이다. 차정석 씨 : “우럭 새끼를 맛나게 먹을라카믄(먹으려면), 살짝 얼려가(얼려서) 올리브유를 살살 발라가(발라) 후라이팬에 놀짱놀짱(노릇노릇하게) 구버가(구워) 소금 살짝 찍으면 마 맛이 끝내준데이.” 허 원 씨 : “우럭요? 우럭은 번개탄 피워 갖고 목장갑 끼고 딱 들고 뜯어야 제맛이요.” 최진규 씨 : “숭어도 맛있어요∼. 여그 숭어는요 비린내도 없어요. 아주 맛나요. 있다가 함 먹어 봐요. 내가 장담한다니까.” 3시가 다 된 시간. 아침 9시에 먹은 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 칼과 초장도 준비하지 않았으니 방법은 하나, 배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시간은 기다림이 절실할수록 더디 가는 법이어서 30분이 3시간처럼 느껴진다. 멀리 뿌연 섬의 실루엣 옆으로 배의 모습이 나타난다. 엔진 소리가 우리가 탈 배라고 한다. epilogue - 회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다 사실 고군산군도에 왔다면 선유도에 들러 한번쯤 신선이 되어 보는 것이 섬에 대한 예의겠지만, 함께 낚싯배를 타고 가야 하니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하지만 신선이 되지 못한 아쉬움보다 더 컸던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야미도에 내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들이키니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겼다. 하루를 돌이켜보면 바다를 보며 학꽁치의 부드러운 육질이든 우럭의 쫄깃한 육질이든 소주에 곁들이는 것이 맞지만, 취재 일정을 생각하면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최진규 씨는 다른 손님들의 물고기를 다듬어 얼음에 재고는 우리가 잡은 고기들을 손질한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진짜 아쉬운데요, 일정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는 한 젓가락 뜨고 가셔야죠. 같이 고생했는데 ….” 바다낚시는 어렵다. 물고기에 따라 낚싯대나 미끼도 달리 해야 되고, 낚는 방법도 달리 해야 한다. 물때도 따져 봐야 되고, 하루 종일 땡볕에 서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외롭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낚시의 참맛을 알 수도 있다.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은 오로지 바닷속에서 전해오는 손맛의 유혹뿐이기 때문이다. 취재 협조 : 군산낚시프라자 (063)442-4046 gunsannaksi.com 글|서승범 기자 사진|정진호 기자 초보자 바다낚시 가이드 즐기려면 잘 챙겨라! 낚싯꾼의 세계는 ‘오로지 낚시’다. 그래서 먹을 것도 사람 먹을 밥보다 물고기 밑밥과 미끼를 더 챙긴다. 하지만 바다낚시를 경험하고 싶은 이라면 든든한 먹을 거리와 시원한 마실 거리, 긴 소매 옷을 준비해야 한다. 먹을 거리는 제대로 된 한 끼 밥과 여러 가지 간식거리가 필요하고 마실 거리는 얼려가는 것이 좋다. 긴 소매 옷은 새벽에는 추위를 막고 낮에는 피부가 타는 것을 막는다. 낚시점이나 등산장비점에서 1인용 방석(2천 원) 하나 있으면 엉덩이가 편하다. 갯바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 3가지. 옆 팀 방해 안하기, 조용히 하기 그리고 자기 쓰레기 치우기다. 다른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운 곳에 낚시를 던지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낚시 예절. 시끄럽게 하면 고기들이 오질 않는다. 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는 숨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꾼의 세계’이다. 재미로 읽는 코너 물고기도 물을 마실까? 갯바위에 대여섯 시간 머물다 보면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을 만치 목이 마르다.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부러울 뿐. 하지만 물고기도 갈증을 느낀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경우 몸 속의 염도보다 바닷물의 염도가 높기 때문에 삼투 현상에 의해 몸 안의 물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물고기는 입을 뻐끔거리며 바닷물을 마신다. 물론 바닷물의 염분은 아가미로 내뱉고 수분만 흡수한다. 민물고기는 반대. 몸 안의 염도가 물의 염도보다 높아 수분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 그래서 민물고기는 먹이를 통해 염분을 보충한다. TIP 고군산군도 낚싯배가 아닌 일반 여객선을 타고 간다면 군산 여객선 터미널을 이용한다. 하루 4차례 오가며 값은 성인 기준 편도 1만1천 원 안팎. 유람선은 군산항에서 떠나 다시 군산항으로 돌아오는 유람 코스로 코스에 따라 1만5천 원에서 3만 원 사이. 낚싯배를 이용할 경우 비응항이나 내항에서 출발하면 3만∼4만 원 정도, 야미도에서 출발하면 거리에 따라 1만∼3만 원 정도 한다. 이밖에 흑도는 4만 원선, 어청도는 6만 원 정도 한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낚시 뿐만 아니라 선유도를 둘러봐야 한다.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된 장자도의 해지는 풍경은 놓치기 아까운 장관이다. 선유해수욕장은 주변에 자잘한 섬들이 많아 높은 파도가 없고 망주봉을 안고 있어 경치가 좋다. 금강하구둑 금강하구둑은 400여 km를 달려온 금강물이 서해로 접어드는 곳. 지난 1990년에 만들었으며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공급은 물론 흙과 모래가 바다로 흘러드는 것을 막아 군산항을 보호하고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농경지를 보호한다. 금강하구둑 덕분에 군산과 장항은 이웃이 되었고, 바로 옆에는 철새도래지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휴게소 꼭대기에 간이전망대가 있다. 동백정은 동백꽃으로 유명하지만 꼭 철이 아니라도 동백정은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너른 바다를 배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가 일품이며 그 사이로 부는 바람 또한 상쾌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의 서해안화력발전소 때문에 운치는 덜하지만 소나무숲 산책길은 갔던 길을 다시 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동백정 옆에는 홍원항과 서천해수욕장이 있어 포구의 정취와 해수욕장의 관광도 겸할 수 있다. 희리산 자연휴양림 군산에서 금강하구둑을 건너 서천에 오면 희리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희리산은 높이 329m의 낮은 산이지만 늘씬한 해송들이 있어 찾은 이를 반긴다.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여느 휴양림처럼 산막과 야영장이 있다. 휴양림 안에 물놀이장이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7평형 4만4천 원, 21평형 12만 원. 인터넷 www.huyang.go.kr에서 오른쪽 지도의 충청도-희리산자연휴양림 선택. 군산에는 군산버스터미널 근처에 여관이 많다.
휴가철 안전한 자동차여행을 위한 체크포인트 미리 점.. 2005-07-12
무더위가 본격화되는 7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고 마음은 이미 바다나 강으로 떠난 지 오래다.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바캉스를 갈 생각에 들뜬 기분은 7월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들뜬 기분에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올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자동차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다음의 체크포인트를 꼭 기억하도록 하자. 할인점에서 용품 구입과 정비를 한번에 해결 바캉스를 떠나기 앞서 먼저 할 일은 자동차 점검이다. 먼저 엔진 오일과 브레이크 오일, 변속기 오일 등의 상태와 양을 체크해본다. 오일이 부족하다고 바로 차가 서지는 않지만 그대로 놔두고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엔진에 고장을 일으켜 수리비가 만만찮게 들 수 있다. 또한 황사로 인한 먼지나 비가 내리는 길을 달릴 때 더러워지기 쉬운 앞 유리를 닦아주는 워셔액도 확인해보고 부족하면 채워 넣자. 워셔액이나 엔진 오일은 자동차 용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밖에 여름용 시트커버, 발수 코팅제, 그리고 햇빛 가리개 등과 같이 바캉스 길에 필요한 자동차 용품들을 미리 정리해두는 것도 안전운전에 도움이 된다. 타이어 상태도 출발 전에 확인하자. 타이어 공기압은 너무 낮거나 높지 않게 규정치(30∼34psi)에 맞춰 채운다. 공기압이 맞지 않은 상태로 장거리를 달리면 심한 편마모가 일어나 타이어를 교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타이어가 많이 닳았거나 편마모된 상태라면 미리 교환하는 것이 안전하다. 타이어 교환 때는 휠 얼라인먼트도 꼭 확인하도록 한다. 떠나기 준비도 바쁜데 자동차와 관련된 워셔액이나 타이어 점검을 위해 용품점과 정비소를 두 번이나 다닐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있으면 대형 할인점의 자동차 코너를 방문하자.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할인점에서는 바캉스 시즌을 맞아 자동차 용품 할인 행사와 더불어 간단한 자가정비를 도와준다. 대부분 용품과 정비코너를 한 곳에 같이 두는 곳이 많아 용품 구입과 안전점검을 한번에 끝낼 수 있다. 다음은 효율적인 짐 챙기기 요령이다. 요즘 7∼9인승 SUV가 부쩍 늘었다지만 여전히 세단형 승용차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들은 SUV나 미니밴에 비해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많은 짐들을 싣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보통 트렁크에 넣고도 모자라 차 안 여기저기에 쑤셔 넣으면 짐 때문에 정작 사람이 비좁게 앉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선 트렁크의 잡다한 자동차 용품을 정리한다. 꼭 필요한 공구 등만 남겨두고 여행에 쓸모가 없는 것은 깨끗이 치운다. 다음으로 도착한 후 꺼내는 순서를 생각해 짐을 싣는다. 캐리어를 사용하면 승용차도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보통 루프 캐리어는 선반형과 파이프형이 있는데, 선반형은 디자인이 투박하고 무겁긴 하지만 짐이 많이 들어가 실용적이다. 파이프형은 루프라인을 따라 달린 두 개의 봉에 짐을 얹는 제품이다. 이러한 루프 캐리어는 루프랙에 쉽게 달 수 있고, 루프랙이 없는 차라면 별도의 키트를 붙여 고정한다. 이밖에 지붕에 얹는 루프 박스는 다양한 짐을 수납하기에 좋은 제품이다. 지붕에 갖가지 물건을 얹는 게 불안하다면 트렁크에 붙이고 끈으로 고정시키는 트렁크 캐리어도 꽤 유용하다. 루프 캐리어만큼 많은 짐은 실을 수 없지만 웬만한 여행용 가방 같은 것을 올려두기에 좋다. 용품점 등에서 살 수 있는 캐리어는 보통 스웨덴과 일본, 프랑스에서 수입한 제품을 비롯하여 국산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0만∼40만 원 정도 들이면 구입에서 설치까지 끝낼 수 있다. 2가지 코너링 원칙으로 가족이나 친구 등을 태우고 떠나는 길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보통 운전을 하다 보면 난코스를 만나게 되는데 운전중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미리 익혀보자. 강원도처럼 유난히 급커브가 많은 국도에서는 몇 가지 주의할 운전 요령이 있다. 특히 초보 오너에게는 눈앞의 굽은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먼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안전하게 커브를 돌아나가려면 양손이 엇갈리지 않는 요령이 중요하다. 먼저 한 손은 스티어링 휠을 아래로 당기고 다른 한 손은 위로 올려주는 ‘논 크로싱’ 조작법을 익혀두자. 이 방법은 주로 스티어링 휠을 수직으로 나누었을 때 왼쪽은 왼손이, 오른쪽은 오른손이 잡는다는 기분으로 다루면 무난하다. 스티어링 조작법을 익혔다면 이제 코너링의 두 가지 원칙인 아웃-인-아웃과 슬로 인-패스트 아웃을 살펴보자. 아웃-인-아웃은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 내가 빠져나갈 라인을 먼저 찾는 것이다. 차가 코너를 따라 돌 때에 밖으로 나가려는 특성을 원심력이라 하는데 회전반경을 크게 하면 원심력을 줄여 안전하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다. 방법은 코너에 들어서면 먼저 길 바깥으로 차를 튼 다음 코너 중간에서는 안쪽으로 붙이고 코너를 빠져 나올 때 다시 바깥쪽으로 달리는 것이다. 구불구불 코너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곳은 첫 번째 코너를 빠져 나올 때 너무 바깥으로 붙으면 다음 코너에서 차를 제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는 도로의 중앙에서 곧바로 다음 코너의 바깥쪽을 찾아야 안전하게 코너를 빠져 나올 수 있다. 이는 최대한 직선에 가까운 라인을 타기 위한 방법으로 원심력을 줄여 스티어링 휠을 최대한 작게 틀면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은 집중호우 및 소나기가 내리는 일이 많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길에서는 절대 서행해야 한다. 도로 위에 묻어 있는 기름기가 비와 섞이지 못해 표면에 뜨게 되므로 타이어의 접지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급한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는 충분히 속도를 줄이고 코너 중간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액셀 페달도 완전히 직선로에 들어선 다음 한 박자 느리게 밟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중심을 잃고 도로 중간에서 돌아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상태에서 빗물 등이 고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면 브레이크나 액셀 페달의 조작 없이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안전운전이다. 급한 내리막길에서는 꼭 엔진 브레이크를 쓴다. 긴 내리막길에서 풋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면 제동력이 약해져 자칫 브레이크가 한순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내리막 정도에 따라 2∼3단으로 바꾸면서 엔진 브레이크와 함께 브레이크 페달도 조금씩 나눠 밟아 속도를 줄인다.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 D레인지에서 오버드라이브 스위치를 끄거나 기어를 3단에 놓는다. 만약 경사가 심할 경우 2와 L레인지로 바꾸어 넣으면 안전하게 내리막길을 빠져 나올 수 있다. 도로 폭이 좁거나 왕복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인 국도는 때에 따라서 앞지르기를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는 중앙선이 점선으로 그어진 구간만 추월이 허용되므로 상대방 차와의 거리와 속도에 맞춰 재빨리 추월을 끝내야 한다. 앞차의 속도를 미리 생각하고 마주 오는 차의 거리를 계산해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왼쪽 방향 지시등을 켜 앞차에게 앞지르겠다는 뜻을 전하고 기어단수는 달리던 속도보다 한 단 낮춰 순간가속으로 앞질러 나간다. 보험회사별 긴급번호를 미리 알아둬야 운전중 차가 고장 나거나 도로 중간에 멈춰 섰다면 비상등을 켜고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운다. 운전자 공구에서 삼각 표지판을 꺼낸 후 충분한 거리를 두고 차 뒤쪽에 세워 고장 차가 서 있음을 알려야 한다. 삼각 표지판을 세울 때는 뒤따르는 차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고 안전사고에 주의한다. 차를 세운 후 자동차 메이커나 보험회사(표1) 등이 운영하고 있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하고 운전자나 승객이 갑자기 몸에 응급상황이 일어나면 119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사고가 났을 때는 즉시 차를 세우고 사상자부터 확인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사고가 경미하다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한다. 부상이 크거나 목 허리 등을 다친 때에는 움직여서는 안 되고 그대로 119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구호조치를 끝낸 뒤에는 사고를 목격한 증인을 확보하고 사고차들의 최종 위치 등의 증거를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노면에 표시해둔다. 사상자가 없는 단순한 물적 피해만 일어난 사고는 보험회사에 사고처리를 위임하거나 운전자끼리 합의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고는 반드시 경찰서에 신고해야 뒤탈이 없다. 운전을 오래하다 보면 졸음이 쏟아지기도 한다. 특히 휴게소 등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바로 출발했다면 식곤증으로 졸음운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보통 운전자들은 껌이나 사탕 등을 먹거나, 오디오 볼륨을 높여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졸음운전은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간을 충분하게 잡아 출발하도록 하고, 목적지에 가는 도중 졸리면 휴게소에 들러 잠깐 동안 차 안에서 눈을 붙인 뒤에 다시 출발하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기본이다. 이때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필요한 용품을 사고, 자가정비도 모두 마쳤다. 여기에 운전의 요령까지 익히고 보니 어느새 들뜬 마음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제 즐겁게 바캉스를 떠나는 일만 남았다. 모처럼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길,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좀더 주의를 기울이자. Z Tip 달리는중 차에 이상이 생겼다 - 손쉽게 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법 운전중 타이어 점검 운전중 타이어 점검은 음악을 끄고 틈틈이 창문을 열어 타이어의 소음을 점검해본다. “틱틱” 거리는 소리가 타이어 쪽에서 난다면 타이어에 이물질이 박혀 있다는 증거다. 이때는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소리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못이나 파편 등이 있다고 바로 빼버리면 바람이 급하게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한다. 만일 펑크가 나서 움직일 수 없다면 스페어 타이어로 바꿔준다. 먼저 차를 세워둔 상태에서 렌치를 이용해 휠 볼트를 한번 풀어준 후 잭을 꺼내 차체를 들어올리고 휠 볼트를 완전히 풀어낸 후 스페어 타이어를 끼운다. 한편 용품점에서 파는 타이어 펑크용 접착액도 급할 때에 요긴하게 쓰인다. 타이어의 펑크난 부분에 접착액을 넣어 메꾸는 방식인데 임시 방편임을 명심해야 한다. 와이퍼 고장 주룩주룩 비가 오는데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는 와이퍼를 돌리는 모터가 이상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먼저 퓨즈박스를 열어 퓨즈가 끊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해보고 끊어졌다면 예비퓨즈로 갈아준다. 모터는 도는데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와이퍼 끝의 나사가 풀려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렌치로 조여준다. 응급조치로 비눗물 등을 앞유리창에 바르면 어느 정도 발수 효과를 볼 수 있어 빗물이 유리창에서 잘 흘러내린다. 배터리 방전 야영지에서 차를 세워둔 채 랜턴이나 전기 제품을 시거잭에 꽂아 쓴다면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다. 다행히 다른 차가 있다면 점퍼 케이블을 이용해 충전한다.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두 차의 배터리에 +극은 +극끼리 연결하고, 상대방 차의 -극에 연결한 선은 방전된 차의 엔진 블록에 연결하면 된다. 시동이 걸리면 가속페달을 조금씩 밟아주면서 10분 이상 공회전을 시켜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도움 받을 차가 없다면 수동기어 차의 경우엔 밀어서 시동을 걸 수 있다. 시동키를 ‘ON’ 위치에 두고 기어를 1단이나 2단에 넣은 후 클러치를 밟고 있다가 차가 움직여 탄력이 붙었을 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클러치를 떼면 된다. 다만 내리막 길 등에서는 위험하므로 평지에서 하는 것이 좋다. 오버히트 내리쬐는 햇볕에 장시간 달리다 보면 수온계가 올라가고 보닛에서 김이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엔진이 오버히트(과열) 했을 때는 되도록 그늘 밑에 차를 세우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식혀야 한다. 냉각팬이 돌면 시동을 켜 놓고, 돌지 않으면 꺼서 식히는 것이 좋다. 엔진이 식은 후 냉각수의 양이 부족하면 수돗물로 보충해준다.
“풀처럼만 농사되었으면 벌써 부자되고도 남았지” .. 2005-06-22
단양시내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도담삼봉을 향하는 길.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뜬 덕인지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사이에서 흙을 매만지는 사람들. 차머리를 돌려 강변으로 내려섰다. 저 만치에 꽤 오래됨직한 자전거가 서 있고 손잡이에는 하얀 잠바가 걸려 있다. 바로 옆, 열 평이나 될까말까 하는 밭에는 노부부가 밭일에 한창이다. 이순에 농사를 시작하다 “옥수수란 놈이 비료를 많이 먹어요.” 밭두둑을 덮은 검은 비닐 사이로 키 작은 순들이 나란히 나왔다. 옥수수다. 이성복(69세) 씨는 순과 순 사이에 구멍을 내고 요소 비료를 넣고 있다. 바로 옆 더 작은 밭에는 손가락 두어 마디만 한 것들이 자라고 있다. 얼마 전 뿌린 양대콩이다. 아내 김옥분(69세) 씨는 양대 주변에 파릇한 잡초들을 뽑고 있다. 비료를 넣고 김을 매는 이들의 손길이 마치 손주 녀석에게 밥을 떠 먹이고 잠자리를 봐주는 듯 하다. 이성복 씨가 나고 자란 곳은 구 단양, 지금의 단성면이다. 1985년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살던 마을이 수몰되어 지금의 단양으로 옮겨왔다. 비료를 주던 손을 잠시 쉬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집 하나하나와 골목골목까지 또렷하게 생각나는 마을이 그립다. 스스로 떠나온 것이 아닌 까닭에 더욱 그렇다. 고향이 멀면 날을 잡아 찾고 이북이라면 통일을 기다리겠건만, 물 속에 갇혀 버린 고향 마을은 찾아 갈래야 방법이 없다. 김옥분 씨가 이곳으로 시집온 것은 1957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여섯 살 때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징용 가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울었고 전쟁 때는 경북 상주로 피난 가서 아버지와 함께 곶감 장사를 하기도 했다. 매운 시집살이와 4남매를 키우면서 보낸 세월이 벌써 반 백 년이 되었다. 칠십 평생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이 많아 속은 까맣게 타버렸단다. 이 말을 하면서도 호미를 쥔 손은 여전히 바쁘고 얼굴은 무심하여 남의 얘기를 하는 듯하다. 이 부부가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20년 넘게 식당을 하다가 자식들 뒷바라지가 거의 끝나 손을 털었다. 하지만 늘 뒤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탓인지, 놀리던 몸을 쉬자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시작했다. 땅은 남한강변의 수자원공사 땅을 빌렸고, 돈 벌 욕심 없이 그저 먹고 자식들한테 인심 쓸 만큼만 짓기로 했다. 마늘이 유명한 단양인지라 마늘도 좀 심었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조금씩 심었다. 남는 것은 단양장(1, 6일장)에 나가 팔아 용돈에 보태기도 한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지 않은지 물었더니 손주들은 군대 갔고, 자식들은 지난 어버이날에 왔다 갔다고 한다. 올해 오십이 된 큰 아들과 중학교 교사인 딸, 또 그 밑으로 아들 둘을 두었지만 모두 객지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자주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자식자랑은 아니하듯 계속된다. 다만 한 가지 남은 걱정은 내년에 마흔이 되는 막내 아들. 아직 미혼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계집애들이 서로 전화질이더니, 나이 많으니까 주변에 여자가 없습디다.” “성질이 지랄 같아서 가만있으면 병 납디다” 날마다 밭일을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힘이 들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하루 거르기도 하지만, 오래 쉬지는 않는다. 아니 쉬지 못한다. 몸이란 일을 하다가 쉬면 병이 나고 농사일이란 끝없는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날도 피곤해서 쉬다가 점심 들고 낮잠이 오질 않아 밭에 나와 풀을 뽑았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김옥분 씨는 가벼운 타령조로 흥얼거린다. ‘풀 농사∼ 지었으면∼ 나는 진즉에 부자가 되었지∼.’ 곧 칠순을 바라보는 이 부부의 손이 닿으면 흙은 고운 갈색 속살을 드러낸다. 도시에서처럼 시간을 정해 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손놀림과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팔아 이문을 남겨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 계산이나 조급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부부는 말이 없다. 늘 함께 일을 하기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따금씩 부는 상쾌한 강바람을 타고 대화가 독백처럼 이어질 뿐이다. 헌데 이 어색한 대화가 편안하기 그지없다. 옆으로 맑은 물과 푸른 산을 둘러 두고 접하니 사람도 닮는 모양이다. “이 씨네는 그 아들래미 어떻게…, 결혼 시키기로 했대?”“… …” “… …” “몇 시여? 밥 때 안되었어?” “… …” “… …” “아이고, 배고파서 일 못하겠다. 밥 먹으러 갑시다.” “… …” “… …” “어, 그려….” 글│서승범 기자 사진│최진호(프리랜서 사진작가)
해변가에서 즐기는 쫄깃한 맛 제철 맞은 계화도 백.. 2005-06-22
전북 변산 일대에서는 계절마다 주꾸미, 대하, 도다리, 숭어, 바지락, 오징어, 갑오징어, 낙지 등 미식가를 유혹하는 특급 자연산 물고기가 지천으로 널린다. 조개만 해도 바지락, 노랑조개, 피고막, 동죽, 백합 등 조개 전시장 같다. 그 중에서도 요즘 변산의 특산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 계화도 앞바다 갯벌에서 잡히는 백합조개다. 바닷가에 사철 널린 것이 엄지손가락만 한 바지락이라면, 봄부터 가을까지 잡히는 백합조개는 요즘이 제철이다. 씹히는 맛 일품, 회로도 먹을 수 있어 계화도 앞바다를 비롯한 새만금 갯벌에서만 전국에서 팔리는 백합의 약 80%가 나온다. 백합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계화리 어민수도 400여 명에 이른다. 백합은 여느 조개와 달리 물때를 가려 잡는다.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같은 갯벌이라도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수심이 깊은 곳에 서식한다. 바지락 같은 대부분의 어패류가 얕은 갯벌에 사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백합은 물이 많이 들고 나는 사리 물때의 일주일 전후에 집중적으로 잡는다. 물때가 안 맞으면 마을 주민들은 3∼4톤짜리 자그마한 선외기(엔진이 배의 본체 밖에 매달려 있다고 해 선외기로 불린다)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갯벌로 나간다. 수심이 낮은 갯벌은 물이 많이 들어오는 조금 때도 일부 바닥을 드러내고, 마을 주민들은 바로 그 갯벌가에 배를 정착해 놓고 백합을 채취한다. 백합을 잡기 위해선 도구도 필요하다. 물이 쓰면 섬마을 아낙들마다 쟁기처럼 생긴 ‘그레’를 들고 나가 갯벌을 긁는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껍질의 백합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기에 따라 대합, 중합 ,소합 등으로 나뉜다. 백합은 한겨울에는 깊은 곳에 꼭꼭 숨어 버려 봄부터 늦가을까지 잡는다. 서울에서는 대합조개로 불리지만 계화도 현지에서는 백합 혹은 생합이라고 한다. 백합은 구이, 탕, 죽에 이르기까지 어떤 음식으로 조리해도 깊고도 진한 맛이 일품이다. 씹히는 맛도 바지락과는 비교가 안된다. 지글지글 석쇠에 구워낸 백합구이 맛은 도시에 흔한 조개구이와 차원이 다르다. 흔히 패류는 여름철에 회를 삼가지만 깊은 바다 깨끗한 물에 사는 백합은 예외다. 부안에서 백합조개 맛은 계화회관(063-584-3075)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백합조개에 계화도 간척지의 무공해 쌀을 넣어서 끓인 백합죽이 값도 싸고 맛있다. 6천 원. 백합탕, 백합회, 백합구이도 판다. 2∼3인분 기준 2만 원이다. 한편 계화도 포구를 찾으면 산지가격으로 백합을 살 수 있다. 값은 1kg에 소합 3천 원, 중합 5천 원, 대합 1만 원 정도. 그러나 생산량에 따라 가격은 유동적이다. 글·사진│이경택 기자. 10여 년간 여행레저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땅의 맛이 그리워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저서로 , , , , 등이 있다.
‘진하게’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숲.. 2005-06-22
독도│ 동해의 먼 동쪽 수평선에 외로이 떠있는 섬, 국토의 막내 독도는 한국인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찾아가 봐야 할 여행지다. 2005년 3월 말 독도 입도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오전 7시 30분에 출항하는 (주)독도관광해운의 삼봉호는 거센 파도를 헤치며 동으로, 동으로 내달리다 2시간 30분 만인 오전 10시 무렵 동도 선착장에 닿는다. 동도 선착장에는 울릉군청으로부터 입도 허가를 받은 70명만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 지켜지질 않는다. 선장의 안내방송에도 아랑곳 않고 일부 여행객들은 독도땅을 두 발로 밟아 보려 애를 쓰고 ‘입도’ 허가를 확인해야만 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미처 입도 허가를 받지 못하고 울릉도에서 출발한 나머지 140명은 갑판으로 올라가 눈으로나마 우리 국토의 동쪽 지킴이 독도에게 안부를 물었다. 독도 방문객들은 선착장에 내려 심호흡을 한 다음 동도와 서도의 풍경을 부지런히 두 눈에, 카메라에, 뜨거운 가슴에 담는다. ‘홀로아리랑’이나 ‘독도아리랑’ 같은 노랫말이 계속 입가에 맴돈다. 독도를 찾은 여행객들은 먼저 괭이갈매기들로부터 대대적 환영인사를 물었다. 여행자들은 삼형제굴바위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탕건봉, 서도, 서도의 어민숙소, 동도, 동도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는 글자가 각인된 표지석 등을 하나하나 찍어 간다. 삼삼오오 흩어져서 독도의 자갈밭도 거닐어 보고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두 손을 적셔 보기도 한다. 숱한 아쉬움을 남긴 채 삼봉호는 약 20분만에 선착장을 떠나 동도의 남쪽 해안을 돌아서 서도의 북쪽 해안을 순회한 뒤 울릉도로 향한다. 독도 선착장에 남겨진 경비대원들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한 배는 동도의 명물인 독립문바위를 돌아간다. 울릉도의 코끼리바위(공암)처럼 큰 구멍이 뚫린 바위다. 갈매기들은 거센 맞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연신 유람선 뒤를 따라온다. 동도와 서도가 모두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로 들어서자 갈매기들도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독도와 조금이라도 더 길게 만남의 인연을 간직하기 위해 삼봉호 갑판을 지켰던 여행객들은 독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쯤 갑판을 내려가 선실 의자에 기대어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한다. DATA 지역번호 : 경북 054. 강원 033 홈페이지 : 울릉군청 www.ulleung.go.kr 문의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790-6393. 독도 유람선 삼봉호를 운영하는 회사는 독도관광해운(791-8111 www.dokdotour.com)이다. 가는 길 : 경북 포항∼울릉도, 강원 묵호∼울릉도 선편문의는 대아고속해운(포항 054-242-5111, 묵호 033-531-5891)으로 한다. 서울의 대아여행사(02-514-6766)에서도 선편예약을 받는다. 독도박물관 : 독도 방문을 전후로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러볼 곳은 도동의 독도박물관이다. 이곳은 1997년 8월 8일 개관한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이다. ‘독도 및 조선해를 둘러싼 관련자료를 발굴·수집·연구하며 그 결과를 전시·교육·홍보함으로써 일본의 독도 영유권 및 일본해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동시에 국민의 영토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건립목적을 두고 있다’고 안내자료는 밝힌다. 제1전시실에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의 전시주제는 일본의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과 ‘일본해’ 주장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두고 있다. 제3전시실에는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사수하는 활약상,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모임의 활동상, 일본의 집요한 침략근성과 우리의 대응과정 등을 보여준다. 박물관 옆에는 해돋이 관광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다. 이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면 도동항과 도동읍 일대, 성인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등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도동항에서 87.4km 떨어진 독도도 보인다. 독도박물관(www.dokdomuseum.go.kr) 관람 문의 (054)790-6432∼3. 신정, 설날 및 추석연휴에는 휴관한다. 우성횟집(물회, 791-0092), 향우촌(울릉약소, 791-8383), 99식당(약초해장국, 791-2287), 두꺼비식당(오징어내장탕, 791-1312), 산마을식당민박(산채전, 791-4643), 동은식당(따개비칼국수, 791-6200) 등. 대아리조트(054-791-8800), 울릉마리나관광호텔(791-0020), 울릉호텔(791-6611), 울릉비치호텔(791-2335), 칸모텔(791-8600), 바다거북모텔(791-0303), 울릉황토방모텔(791-0098), 수궁장(791-3662) 등. 승봉도│ 해당화가 곱게 피는 섬, 승봉도. 인적 드문 해변은 검은머리물떼새와 도요새 차지다. 옹진군 자월면 소속의 섬으로 안산시 대부도의 방아머리선착장에서 뱃길로 1시간 20분 거리에 있다. 그리 길지 않은 바닷길 유람 끝에 만나는 승봉도는 이일레해수욕장이라는 넓디넓은 해변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섬을 사랑하는 이생진 시인의 시집 한 권 배낭에 담고 도시를 탈출해 보는 것도 좋겠다. 승봉도 해안 곳곳에는 해당화가 만발, 매일매일 갈매기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섬 북쪽의 부채바위 해안에서부터 동쪽 끝의 부두치 해안에 이르기까지 진분홍색 해당화가 무리 지어 피어나 승봉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를 색채로 증명하고 있다. 가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에도 나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해당화. 그러나 몸에 좋다는 엉뚱한 말이 퍼지고 나서 해당화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해안 지방 여행 중에 좀처럼 만나 보기 힘든 꽃이었으나 봄의 승봉도 바닷가에서는 지천으로 피어나 여행객에게 놀라움을 안겨 준다. 승봉도 해당화를 보려면 먼저 선착장에서 이일레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섬의 동쪽 끝에 있는 ‘부두치’라는 곳까지 가본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포장 숲길을 조금 더 달려 오른쪽으로 열린 길을 따라가면 부두치. 안내판 같은 것은 세워져 있지 않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과 해변의 경계를 이루는 길다란 둔덕에 해당화가 줄지어 피어 있다. 그 사이사이로 갯완두, 모래지치 같은 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두치 북쪽의 삼형제바위 해변가도 해당화 밀집지대. 고운 연두빛 잎사귀 틈바구니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분홍빛 해당화, 누룽지 비슷한 누런빛을 띤 모래해변, 멋진 형상의 바위, 그리고 파란 바닷물과 인천으로 향하는 외항선들. 승봉도가 아니고서는 만나 보기 어려운 평화의 메시지들이다. 섬 북쪽 해변 중앙 부근의 부채바위 해변 역시 해당화가 집단으로 자라는 언덕이 논밭과의 경계를 대신해 준다. 그 바닷가에서 주말여행에 나선 가족들은 동요 한 곡을 부른다. 장수철이 노랫말을 쓰고 이계석이 곡을 붙인 ‘바닷가에서’라는 동요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저녁놀 물드는 바닷가에서/조개를 잡노라면 수평선 멀리/파란 바닷물은 꽃무늬 지네/모래마저 금같은 바닷가에서.’ DATA 지역번호 : 032 홈페이지 : 옹진군청 gun.ongjin.incheon.kr 마이승봉도 www.myseungbongdo.co.kr 문의 : 자월면사무소 880-2606 가는 길 : 승봉도행 배편으로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우리고속훼리(887-2891∼3)의 여객선을 이용한다. 차를 갖고 승봉도에 들어가려면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 가서 대부해운(886-7813∼4)의 카페리를 타는 것이 편하다. 섬 안에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 수단은 없다. 배가 승봉도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민박집들은 승합차나 경운기를 몰고 선창까지 마중 나온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①영동고속도로 월곶나들목→77번 국도→오이도 입구→시화방조제→대부도→방아머리 선착장 ②서해안고속도로 비봉나들목→306번 지방도→화성시 남양동→서신면-대부도→방아머리선착장. 이일레해수욕장 : 고구마처럼 생긴 승봉도의 남쪽 해변에 자리했다. 대이작도, 사승봉도, 상공경도 같은 섬들이 파도를 막아 물결이 잔잔하다. 백사장 길이는 800m 정도,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낮아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에 안전하다. 해변에 지하수를 끌어올려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어져 있다. 해수욕장 양끝은 갯바위지대. 주민들은 여기서 반찬거리용 조개를 캔다. 자월도 : 승봉도와 대이작도 북쪽에 있는 자월도는 자월면사무소가 들어앉은 섬. 이 섬에서는 메밀을 많이 재배해 9월∼10월 초에 방문하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며 마을 뒷산에 하얗게 메밀꽃이 만발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자월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은 선착장에서 서쪽으로 한 굽이 돌아가면 만나는 장골해수욕장. 자월초등학교 앞에는 장골보다 작지만 역시 모래가 곱고 물이 깨끗한 큰말해수욕장이 있다. 국사봉(166m)에 오르면 자월도, 승봉도, 이작도, 덕적군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선창휴게소(활어회, 831-3983), 파라다이스식당(닭볶음, 832-1034), 도깨비식당(솥뚜껑삼겹살, 매운탕 831-3572) 등. 승봉도동양콘도(832-1818), 바다풍경민박(831-0305), 바다사랑민박(834-3737), 언덕위하얀집(831-6753), 사계절민박(832-3558), 해오름민박(831-3857) 등. 대관령 옛길│ 숲이 아름다운 계절,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횡계나들목을 빠져나가면 도암면 소재지로 들어서기 직전, ‘대관령 옛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이 표지판의 옛길이란 지금의 영동고속도로가 닦이기 이전의 옛날 영동고속도로 횡계-강릉 구간을 뜻한다. 그러나 진짜 ‘대관령 옛길’이란 대관령 고개 너머 반정이라는 곳에서 시작되어 대관령박물관 옆으로 이어지는 5.9km의 숲길이다. 대관령 휴게소 권역을 빠져나가 내리막 꼬불꼬불한 길을 얼마 가면 신사임당 사친시비를 만난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바로 그 한시이다. 시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반정이라는 곳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대관령 옛길 트레킹이 시작된다. 안내판에는 지도와 함께 ‘반정∼김시습 시비(1.3km)∼주막터(1.6km)∼원울이재(2.1km)∼대관령박물관(0.9km)’이라고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넉넉잡아 1시간 30분 걸리는 길이다. 그러나 일행 중 한 사람이 차를 갖고 반대편으로 마중을 가면 ‘옛길만나가든’(033-641-9979)이라는 식당 주차장까지 차를 끌고 갈 수 있으니 거리는 4.4km로 줄어든다. 옛길 옆으로는 강릉 남대천으로 흘러 드는 계곡이 이어진다.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신갈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등에서 뿜어내는 신록의 훈향이 여행자들의 어깨와 머리 위에 소복이 내려앉는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식당에서 나가 옛길의 종점이라 할 대관령박물관으로 내려가기 전 왼편의 작은 길로 접어들면 대관령휴양림(033-641-9990)에 닿는다. 여기서 다시 한번 삼림욕의 재미에 푹 젖어볼 수 있다. 산림문화휴양관 앞으로는 금바위폭포가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낸다. 폭포의 길이는 17m. 옛날 대관령 중턱에서 캐낸 금덩어리를 이곳 금바위에서 찧고 갈아 순금으로 제조했으며 그때 금가루가 폭포에 떨어지면서 찬란한 빛을 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얀 바위들만 보일 뿐이다. 대관령 옛길의 종착역 자리에는 대관령박물관(033-640-4482)이 들어서 있다. 실내 전시실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네 방위를 수호하는 사신의 이름이 달려 있고 선사유물, 민속유물 등 1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전시장에도 물레방아, 석물, 솟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DATA 지역번호 : 033 홈페이지 : 강릉시청 www.gangneung.go.kr 문의 : 강릉시청 (640)5125∼7, 강릉시 종합관광안내소 1330, 강릉역 안내소 640-4534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456번 지방도→옛 대관령휴게소→반정→대관령박물관 대관령양떼목장 : 삼양대관령목장과 더불어 2000년대 들어 유명해진 곳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서쪽 사면에 들어선 대관령양떼목장은 영화나 드라마, CF 촬영장소 등으로 애용된다. 몇 년 전 양의 해를 앞두고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몰려와 이곳에서 양떼와 일출사진을 찍어 갔다. 가수 윤도현이 등장하는 감기약 광고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목장의 능선과 풀밭, 여기저기 만발한 민들레와 철쭉,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양떼. 하나같이 평화롭고 꽉 막힌 도시인의 가슴을 활짝 열게 만든다. 양들에게 건초 주기 체험도 이채롭다. 문의 335-1966 오죽헌 : 대관령 옛길 여행은 강릉시 죽헌동의 오죽헌(640-4457) 방문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 이 이가 태어난 집이다. 강릉 지방으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빠짐없이 찾는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바로 옆에 시립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주문진항 : 바다와 포구, 어시장과 횟집들이 생각난다면 경포호와 경포대해수욕장, 그 위쪽의 연곡해수욕장이나 주문진항으로 가본다. 경포대에서 주문진항까지는 해안도로가 이어져 굳이 7번 국도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항구의 고깃배와 갈매기, 좌판에서 어물을 파는 상인들의 외침. 어느 것 하나 신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문진항 약간 위쪽의 소돌항으로 가면 아들바위를 볼 수 있다. 이 바위에서 기도를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 신혼부부들의 발걸음이 잦다. 강릉시내 임당동 사거리 근처의 전원일기(646-3733)는 곤드래나물밥을 비롯해,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가 전문. 대관령옛길 하산 종착지에는 옛길만나가든(641-9979)이 있다. 산채비빔밥과 한방토종닭 요리가 주무기. 주문진항 아래 연곡해수욕장의 영진횟집(662-7979)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횟집이다. 회를 시키면 나오는 곁음식과 밑반찬이 푸짐하다. 호텔현대경포대(651-2233), 주문진가족호텔(661-7400), 관광펜션휴심(642-5075), 래미안관광펜션(642-5955), 썬캐슬관광호텔(661-1950) 등. 글·사진│유연태 국어교사, 신문기자 등을 거쳐 현재 전업 여행작가로 활동 중. 지도만 봐도 즐거운 남자다. 캐논 필카와 디카, 현대 투싼과 함께 매주 이 땅을 누비고 다닌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KBS 2TV ‘색다른 오후’(금)에 고정출연 중.
완벽한 야외 나들이 요령 프로가 가르쳐 주는 2005-06-22
베테랑 캠퍼 홍의빈 씨의 기고로 6월호부터 연재하는 ‘엔조이! 아웃도어’에서는 오토캠핑이나 가족 나들이 요령을 생생하게 전하기로 한다. 주5일 근무제 확대로 레저인구가 부쩍 늘어난 요즘, 이 연재가 주말 나들이를 계획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필자 홍의빈(사진) 씨는 1964년 서울 출생으로 일본문부과학대신인증 최고캠프디렉터 자격을 갖고 있다. 현재 김옥길의 고사리어린이캠프 총감독을 맡고 있으며, 동호인들을 모아 한국캠핑협회를 발족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사는 정열의 남자다. 언제, 누구와 함께, 어디로 떠날까? 나들이 가서 노는 것보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고 했던가.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명승지를 둘러보는 여행이라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본격적인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려면 꼼꼼한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 기억에 남는 나들이는 철저한 준비의 결과. 맛있는 음식 레시피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몇 가지, 깨끗한 시트 몇 장을 챙겨 가면 먹을 것,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맨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갈 것인가? 가족 나들이 : 어린이를 생각해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숙박할 수 있는 곳을 고른다. 화장실과 욕실이 갖추어진 펜션이나 콘도가 알맞다. 커플끼리, 친구끼리 : 친구끼리 자유로운 여행을 생각한다면 휴양림이나 바닷가의 오토캠핑장을 권하고 싶다. 5∼10명 이상이면 펜션을 빌려서 바비큐로 흥겨운 기분을 낼 수도 있다. 커플 여행은 휴양림의 한적한 분위기도 아주 좋다. 파트너가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면 펜션이나 콘도처럼 설비가 갖추어진 곳을 이용한다. 낚시, 등산 등 취미파 : 취미활동이 주인 만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낚시인 경우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캠핑장비에 각별히 힘쓰고, 등산은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에서 지정한 캠핑장을 이용한다. 음식의 조리형태에 따라 준비물이 달라진다. 직화로 구이를 해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바비큐 그릴을 준비하고, 콘도나 펜션에 머물 때는 준비물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침구가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주변의 맛난 음식점과 볼거리를 인터넷을 뒤져 확인해 둔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편리한 여행을 돕는 용품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Enjoy Outdoor Planning 일정표 짜기 목적은 하나, 즐겁게 다녀오는 것이다. 휴가기간 줄곧 야외에서 생활하면 여독을 풀지 못한 채로 일상생활을 해야 하므로 좋지 않다. 장소와 일정을 정한 다음 숙소예약,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물품 확인, 주변의 관광정보, 도로사정, 지역의 별미 등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인터넷 검색은 필수이고 가이드북과 지도를 챙겨 간다. 경험자가 있으면 어드바이스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달 목적지는 수안보온천을 지나 문경새재 조령관문(제3관문) 입구에 자리한 이화여대의 수안보 금란정. 서울 기점으로 1박 2일 코스다. 첫날은 관광을 중심으로 하고, 오후 3시 정도에 숙박장소에 도착해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출발과 도착 짐칸에는 무겁고 부피가 큰 박스류를 먼저 싣고 그 위에 나머지 짐을 올려 놓는다.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도록 차안에서 먹을 간식거리와 음료수는 따로 준비해 간다. 여행지는 수안보에 있는 금란정이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김옥길 선생이 공직에서 은퇴한 후 10년간 살았던 곳으로, 문경새재의 조령관 입구에 있다. 가는 길에 월악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미륵사지에 들러 불상을 보기로 했다. 불상의 얼굴부분만 희게 빛난다는 소문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경 금란정에 도착한다. Enjoy Outdoor Cooking 프렌치 토스트 바게트로 만드는 간단한 아침식사 - 재료 바게트빵 , 계란 3개, 소금, 후추, 마가린, 설탕 - 만드는 법 1. 빵을 먹기 좋게 자른다. 2. 계란을 풀어서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3. 빵에 푼 계란에 적셔 프라이팬에 구워낸다. 4. 설탕이나 시럽을 뿌려 먹는다. 프루츠 초코 초코 모자가 귀여운 후식 - 재료(4인분) 초콜릿 100g, 딸기 12개, 바나나 2개, 스트로 12개 - 만드는 법 1. 큰 냄비에 물을 붓고, 초콜릿을 담은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넣어 중탕해서 녹인다. 2. 과일은 먹기 좋게 잘라 스트로를 꽂는다. 3. 과일을 녹인 초콜릿에 찍어서 굳힌 다음 내놓거나 초콜릿에 찍어 먹는다. 초콜릿에 밥 짓기 :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야외생활의 기본 - 재료(4인분) 쌀 4컵(작은 것) - 만드는 법 1. 냄비에 쌀을 넣고 3회 정도 씻는다. 2. 깨끗한 물에 30분 정도 담가 둔다. 3. 물의 양은 손가락의 1마디보다 조금 많은 정도가 좋다. 청주를 조금 부어 두면 맛이 더 좋다. 쌀과 물은 양으로 하면 된다. 쌀을 물에 불리지 못했을 경우는 쌀과 물의 비율을 1 : 1.2로 맞춘다. 4. 김이 나면 불을 조금 줄이고 내부압력이 내려가지 않도록 뚜껑에 무거운 돌을 올려 놓는다. 5. 김이 멈추면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 5분 후에 불을 끈다. 이때 타지 않도록 주의한다. 밥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물과 불의 조화. 물은 쌀보다 조금 많게, 불리지 않고 지을 때는 20% 정도 물을 더 잡는다. 밥짓기가 싫을 때는 즉석밥을 준비해 간다. 집에서 밥을 가져가도 좋다. 햇반 등을 현지에서 살 수도 있다. 흰밥뿐만 아니라 현미밥, 부피가 큰 햇반이 다양하게 팔린다. 비프스튜 야외에서의 최고 영양식 - 재료(4인분) 쇠고기 양지살 400g, 적포도주 80cc 감자 3개, 양파 3개, 당근 1개 양송이 5개, 양배추 1/4통 샐러리 1단(없어도 괜찮다) 토마토퓨레 2컵(케첩을 사용해도 된다) 월계수잎 3장, 버터, 올리브오일 스테이크소스 40ml, 소금, 후추, 밀가루 약간 - 만드는 법 1. 고기를 4cm 정도 사각으로 썬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밀가루 옷을 입힌다. 2. 버터와 올리브오일을 큰 냄비에 두른 뒤 고기를 구워 노릇노릇해지면 적포도주를 붓고 저어 준다. 여기에 물 5컵, 토마토퓨레 2컵, 월계수잎 2장을 넣고 중간불로 40분 정도 끊인다. 3, 4. 야채는 크게 썰어 준비하고 프라이팬에 한 번 볶은 다음 끓인 소스에 넣어 1시간 정도 더 끓이고 스테이크소스를 넣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해서 먹는다. 스튜는 조금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데워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친구와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출할 때 먹을 수 있는,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여기에 곁들여 바게트라도 준비하면 맛있는 밤참이 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스튜가 있으면 식사준비가 필요없다. 비프스튜는 최고의 영양식이면서 간편식인 셈. 어린이에게 가르쳐 주세요 식칼은 위험한 도구가 아니랍니다 야외요리의 즐거움은 여럿이 협력하는 데 있다. 어린이라고 빠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요리는 식칼의 사용법에서 출발! 식칼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 잘 들지 않는 식칼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식칼은 싼 것보다는 묵직한 것을 고르도록 한다. 손잡이가 잘 쥐어지고, 손가락의 힘이 잘 전달되는 것이 좋다. 어린이에게는 조금 작은 것을 준다. 어린이가 식칼을 사용할 때는 딱딱한 것을 썰게 해서는 안된다. 당근, 호박 등을 자르게 한다. 요리방법에 맞춰 자르는 법도 가르쳐 준다. 가르친 다음에는 위험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완전히 어린이에게 맡긴다. 자신감과 경험을 가진 아이가 다음에는 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감자나 당근 껍질을 벗기는 도구의 사용법도 가르쳐 주는 등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준다. 아이들에게 식칼 사용법을 가르쳐 위험을 막는다. 1. 식칼 밑에 손을 두지 않는다. 재료를 누르는 손은 고양이 손. 2. 다 쓴 다음에는 칼날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놓는다. 3. 식칼을 갖고 걷지 말고, 칼날이 사람을 향하게 하지 않는다. Enjoy Outdoor Goods 무엇을 사고 어떤 것을 준비할까? 나들이 용품을 살 때는 ‘비일상적’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야외 나들이에 필요한 물건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소품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어떨까. 사서 가져갈 것, 집에서 챙겨 갈 것, 현지에서 조달할 것으로 구분해 체크 시트를 만들어 본다. 1. 사야 할 것 : 랜턴, 버너, 텐트, 매트, 침낭, 배낭, 코펠, 탁자, 의자, 아이스박스 등. 2. 집에서 가져갈 것 : 식기, 그릇, 물통, 의류, 시계, 전등, 의약품, 세면도구 등. 3. 현지에서 조달할 것 : 숯, 땔감, 휴대용 가스 등. 꼭 구입해야 할 물건 중 하나는 랜턴과 버너다. 랜턴과 버너 고르기 랜턴과 버너는 야외생활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탈일상적인 도구다. 랜턴은 조명용이다. 휴양림의 밤은 어둡기 때문에 이동할 때나 실내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무드에도 한몫 한다. 버너는 조리용이다. 장작이나 숯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별도로 버너를 준비해 가면 커피나 아침식사, 라면을 조리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가스용과 휘발유용이 주류를 이룬다. 가스용 버너나 랜턴은 그림과 같은 2가지의 가스 카트리지를 사용한다. 조작이 간단하지만 바람과 저온에 약한 단점이 있다. 휘발유식보다 화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최근에는 이런 약점을 보완한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휘발유용은 백색 휘발유를 쓴다. 화력이 좋고 바람과 저온에 강하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불편한 것이 흠. 무연 휘발유를 이용할 수 있는 제품도 나온다 버너는 화구가 2개인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대가족이나 그룹이 사용하면 좋다. 캠프장에서는 버너 외에 바비큐 그릴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화구가 1개인 제품도 괜찮다. 1구짜리는 휴대성이 좋다. 같은 연료를 사용하는 제품으로! 베테랑 캠퍼는 랜턴을 2개 갖고 다니는데 1개는 탁자에 놓고, 훨씬 밝은 다른 한 개는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 벌레를 유인한다. 하지만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텐트나 실내에 모기장이 있기 때문에 80∼100룩스면 충분하다. 랜턴은 유리섬유로 된 망을 심지로 사용하는데, 이곳에서 밝은 빛을 낸다. 처음에 라이터불로 완전히 태워 흰색으로 변한 다음에 쓴다. 충격에 약하므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또한 버너와 랜턴은 뜨겁기 때문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한다. 버너와 랜턴은 같은 연료를 사용하는 제품을 사야 번거롭지 않고 연료낭비를 줄일 수 있다. Enjoy Outdoor Play, Skills 아이들과 함께 야외 나들이를 떠났다면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놀이를 함께 해본다. 엄마, 아빠 혹은 친구들과 짝을 맞춰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본다. 아래에 소개하는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 두 가지는 자연도감을 준비해서 나뭇잎과 나무를 확인하는 것이 포인트다. 놀이1 내가 사랑한 나무는? 준비물 : 안대나 손수건, 2인 1조 눈에 안대를 하고 3바퀴 정도 제자리에서 돈 다음 술래를 지정한 나무로 인도하고, 1분간 만져 보도록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뒤 3바퀴 정도 돈 다음 안대를 벗고 자신이 만진 나무를 찾는다. 나무를 찾으면 그것을 자신의 나무로 이름 짓고, 물을 조금 부어 주며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고 사진을 찍는다. 놀이2 나뭇잎 카드 맞추기 준비물 : 손수건, 검정 봉투 여러 가지 나뭇잎을 2개씩 10가지를 모은다 20개의 나뭇잎 중 10개는 검정봉투에 넣고 10개는 바닥에 손수건 위에 올려 놓는다. 손수건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2m 거리에 마주서게 한 다음 사회자가 검정 봉투에서 꺼내는 나뭇잎과 같은 것을 먼저 집는 사람이 이긴다. 이때 손수건과 나뭇잎을 흩뜨리면 실격. 10가지 잎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수를 줄여도 상관없지만 6개 이상은 되어야 재미가 있다. 잠자리와 시트, 이렇게 준비하면 좋아요 야외 나들이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취침용 이불, 요, 베개가 아닐까? 깨끗한 잠자리에서 자고 싶지만 이러한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개인용 취침 시트를 준비하는 것이다. 일류호텔 침대에 있는 면 원단의 흰색 시트는 부피도 얼마 안되고, 다목적으로 쓸 수 있어 안성맞춤. 원단을 파는 곳에서 흰색 면을 사서 싱글일 경우 가로×세로 120×210cm로 1인당 2장을 만든다. 베개 시트의 경우 80×50cm로 좀 넉넉하게 만들면 큰 베개도 들어간다. 사용방법은 한 장을 요 위에 깔아 네 귀퉁이를 아래로 넣어 고정시킨다. 그 위에 또 한 장을 깐 다음 이불을 올린다. 시트 사이로 몸을 뉘면 쾌적하게 잠들 수 있다. 수옥정과 조령관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소조령(작은 새재)과 이화령(큰 새재) 사이에 있는 수옥정은 200여 년 전, 충청감사 조정철이 이름 붙였다는 8각 정자다. 이에 따라 이 일대의 계곡을 수옥정 계곡이라고 한다. 수옥정 계곡은 길이가 짧은 것이 흠이지만 수옥폭포의 멋진 자태가 아쉬움을 달래 준다. 높이 20m의 암벽을 타고 시원스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에는 연못이 넓게 파여 있다. 수옥정 계곡 일대는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숨어 있었던 곳이다. 수옥폭포 인근의 조령관문(영남 제3관)은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쌓았다. 그 후 불에 타고 홍예문만 남았던 것을 1976년 복원했다. 조령관문은 충북과 경북의 도계에 자리해 있으며, 이 관문을 지나 옛 새재 길을 따라가면(자동차 통행금지) 경북 땅의 영남 제2관인 조곡관과 영남 제1관인 주흘관으로 이어진다(6.5km, 걸어서 1시간 30분). 월악산 미륵사지 석불 수안보에서 연풍으로 가다 언덕 하나를 지나면 월악산국립공원 입구간판을 볼 수 있다. 이 길로 5분 정도 들어가면 미륵사지 주차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약 5분 걸어가면 오래 전에 소실되어 석조물만 남아 있는 미륵사지 석불을 만난다. 미륵사지에는 보물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 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쪽을 바라보는 불상으로 얼굴이 유독 희게 빛난다 해서 하나의 불가사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사찰은 고려 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후기인 고종 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금란서원(금란정) 이대총장과 문교부장관을 지냈던 김옥길 여사가 80년 퇴직 후 서울에서 내려와 살던 집이다. 유독 이 지역의 산세가 선생의 고향인 맹산과 비슷하다고 여겨 자리 잡았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10여 년간 지낸 한옥이다. 수안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조령관문 입구에 자리해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자주 들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이화여대 수련관도 있어서 단체로 오는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렇게 찾아가세요 영동고속도로 여주에서 시작되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괴산IC에서 수안보 방향으로 가다가 조령관문 이정표를 따라간다(2시간 소요). 부산이나 전라도에서는 중부고속도로 증평IC에서 괴산-연풍-수안보 방향으로 가다가 수옥정 이정표를 보고 가면 금란정과 조령관문, 수옥정을 만날 수 있다. 글│홍의빈 사진│임근재 기자
야생화와 함께 보낸 소백산 1박 2일 거친 자연에서.. 2005-06-22
Prologue : 소백산을 향하다 이번 여행에서 함께 하고 싶었던 3개의 키워드가 있다. 야생화, 산 그리고 텐트. 야생화를 볼 수 있고 야영장이 있는 산을 찾다가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의 권유로 소백산으로 정했다. 단양 쪽에서 오르는 천동계곡 코스에는 관리사무소와 비로봉 중간쯤에 야영장이 있고, 오르는 길에 갖가지 야생화들이 있어 이번 여행의 대상지로 더 없이 좋았다. 지난 5월 11일 소백산으로 향했다. 꽃을 보러…. 5월 12일 오전 : 가슴 졸인 대가로 선물받은 촉촉한 산공기 계획은 이것이 아니었다. 어제 출발했을 때 생각은 일찍 도착해 야영장에서 1박을 하고 새벽같이 산을 올라 하루 종일 꽃을 찾고, 보고,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양 접어들어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굵어졌다. 게다가 바로 옆 남한강의 도담삼봉과 석문에서 써버린 시간이 제법 되었다. 하여 다음날 산행을 먼저하고 내려와 야영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뉴스에서는 비가 오후부터 갤 것이라고 했다. 밤새 가슴 졸였으나 아침부터 이슬비는 여전히 추적거리고 있다. 고수교를 지나 천동계곡에 들어서자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제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미덥지 않다. 차를 대고 텐트와 먹거리 등을 챙겨 산행에 나선 것은 10시가 조금 못된 시간. 야영장까지 1시간 반 거리라 했다. 야영장에서 정상인 비로봉까지 역시 1시간 반 거리이니 그리 빠듯한 시간은 아니다. 배낭 끈을 몸에 맞게 조이고 걷기 시작한다. 칸트는 산책과 사색을 즐겼고, 아인슈타인은 걸으면서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냈다지만 기자는 기사 쓸 생각을 한다. 다리가 아파 오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부터 ‘야생화는 식물원에도 많은데…’까지 온갖 잡생각을 한다. 그러나 길가에 보일 듯 말 듯 피어 있는 야생화를 보는 순간 ‘그래, 이거야!’하는 느낌이 올 것을 알기에 발걸음을 계속 옮긴다. 오르는 길의 공기는 차갑고 촉촉하다. 널찍하게 닦인 등산로는 구불구불 S자로 이어지지만 길 양쪽으로 늘어선 침엽수들은 하늘을 향해 곧추 서있다. 그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은 물안개. 간밤에 내린 비의 여운과 천동계곡의 물이 만든 작품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간밤에 가슴을 졸인 것이 아깝진 않다. 얼마나 올랐을까. 길 왼편에 노란 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야생화를 보고 싶어 왔을 뿐, 아는 것이 없으니 이름은 모른다. 휴대용 야생화 도감을 꺼내 ‘봄에 피는 노란색 꽃’을 뒤져보니 ‘염주괴불주머니’와 닮은꼴이다. 길쭉한 꽃 모양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 홀로 피지 않고 떼로 핀 모습까지 영락없다. 헌데 바닷가에 피는 꽃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산괴불주머니’일 것이다. ‘산괴불주머니.’ 이름은 또 뭐람. 야생화 이름은 대개 생김새나 쓰임새에 따라 붙여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며느리밥풀꽃’은 붉은 꽃에 박힌 두 개의 하얀 점이 쌀 두 톨을 물고 있는 혀 같아 붙은 이름으로, 며느리의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꽃이다. 산괴불주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옛날 오색의 비단 헝겊 조각들을 모아 수를 놓은 노리개를 괴불주머니라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열매가 염주와 같으니 염주괴불주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산에 피는 것을 산괴불주머니라 불렀을 것이다. 꽃이름 하나 제대로 알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는 쏠쏠하다. 5월 12일 오후 : 찾으라, 보일 것이니 야영장에 도착한 것은 일정(2시간)보다 20분 늦은 12시 20분. 자리를 골라 텐트를 후다닥 치고 점심을 해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가볍게 배낭을 꾸려 나선 것은 2시 반. 아침에는 예술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통 시야가 뿌옇게 흐렸지만 이제는 햇살이 간혹 비치기도 한다. 그림자가 지는 것이 이리 반가운 때도 드물다. 등을 짓누르던 짐이 없어지니 몸은 가뿐하다.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지다가 능선을 만나 산책로 같은 평탄한 흙길로 이어진다. 정상부에는 나무계단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지친 다리를 더 지치게 한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정상이 아니라 야생화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돌길. 힘들다고 숨만 ‘꺽꺽’ 내쉬며 가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생길이지만 길 밖 점점이 피어 있는 꽃을 보고 가면 그리 힘들지 않다. 저만치 꽃이 보이면 돌계단 서너 개쯤은 가볍게 뛰어 올라도 문제없다. 야생화는 화려하지 않다. ‘나 여기 피었네’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지 않는다. 그저 바람결에 흐르다가 꽃씨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온힘을 모아 꽃을 피워내면 그 뿐이다. 다만 먼길 마다 않고 찾아온 손님을 맑은 얼굴로 맞이해 찾은 이를 기쁘게 한다. 돌계단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정상 오르는 길에 꽃이 있느냐 물었다. 어떤 이들은 없다 하고 어떤 이들은 형형색색의 꽃을 보았다 말한다. 돌계단길 중간중간에는 길 양옆으로 하얗고 노란 꽃들이 점박이처럼 박혀 있다. 하얀 꽃 중 눈에 띄는 것은 덩굴개별꽃. 5개의 하얀 잎이 별모양으로 펼쳐진 모양새가 영락없는 별이다. ‘개’는 꽃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통 크기가 작을 때 붙이는 접두어다(박스기사 참조). 줄기가 바닥으로 기는 습성이 있어 이 꽃은 덩굴개별꽃이 되었다. 또 하나의 흰꽃은 모데미풀. 꽃잎을 대신한 하얀 꽃받침들이 줄기 아닌 잎 바로 위에 활짝 펴있고 그 위에 노란 수술들이 또 하나의 꽃처럼 올라앉은 모습이 예쁘다. 하얗고 노란 꽃들이 익숙해질 무렵 저만치 보이는 보랏빛의 함초롬한 꽃을 보고야 말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꽃을 감상할 때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감상할 만큼 감상하면 ‘그런데 얘는 무슨 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수순이다. 다시 책을 펼쳐 보니 모양새로 미루어 현호색인 듯하다. 생김새는 아까 보았던 산괴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파란 꽃색 탓인지 창백해 보인다. 돌계단이 끝나면 얕은 둔덕 넘어 능선길이 시작된다. 산책하듯 거닐며 꽃을 감상해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취재도 취재거니와 어렵게 만난 야생화가 반가워 사진을 찍으려니 꽃 핀 곳이 거의 그늘이다. 이 꽃들이 모두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그저 서쪽으로 넘어가려는 해가 잠시나마 꽃에 비춰지길 바랄 뿐이다.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야생화 천지’라고 하긴 뭐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야생화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은 소백산이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철이 돌아오면 이 꽃들도 다시금 꽃을 피울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다’ 생각하며 비로봉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5월 12일 늦은 오후 - 13일 오전 : 야생화를 신록에 맡기고 돌아서다 다시 돌아온 야영장. 해가 완전히 넘어가진 않아 그저 어둑어둑할 뿐이지만 인적 없는 야영장은 정적 속에 계곡의 물소리만 울리고 있다. 하늘의 구름은 달을 삼킨 지 오래, 등 하나 달리지 않은 야영장이기에 해가 떨어지면 칠흑 같은 어둠에 덮일 것이다. 가스등을 밝히고 소박한 주안상을 차려 고된 몸을 달래 본다. 이튿날 아침. 텐트 색이 화사하게 보이는 것을 보니 바깥에는 해가 뜬 모양이다. 문을 열어 보니 땅에 난 풀마다 짙은 그림자가 져 있다. 간만의 햇살이 반가워 밖에 나와 밤새 굳은 몸은 이리저리 놀려 본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짐을 꾸려 출발하기로 한다. 다시 짐을 꾸려 보니 간밤에 먹은 음식물 만큼 텐트가 이슬을 머금어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다. 내려오는 길, 뭐가 아쉬웠는지 뒤를 돌아보게 된다. 농담(濃淡, 짙고 옅음)진 신록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듯하여 속으로 웃고 내려왔다. Epilogue : 꽃을 친구 삼아 떠나는 여행길 얼음을 뚫고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워내는 복수초부터 시작된 꽃의 향연은 갖가지 색의 꽃을 선보이며 6월로 넘어가고 있다. 전국의 산들이 철쭉제로 몸살을 앓는 동안, 자연은 어디선가 또 다른 생김과 색을 가진 꽃들을 피울 것이다. 저리 예쁜 꽃을 보면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을 실감난다. 언젠가 길 떠날 마음이 있다면 조그만 야생화 도감 하나 챙겨 작고 예쁜 꽃을 여행길의 친구로 삼기 바란다. 꽃을 모르고 사는 것은 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꽃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화 이름, 어렵지 않아요 꽃이름에 붙어 있는 몇 가지 말의 뜻만 알아도 그 꽃의 특성을 반 정도는 알 수 있다. 한 번만 들으면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으니 알아두었다가 써먹어 보자. 사는 곳을 뜻하는 말이 있다. ‘갯’은 갯벌이나 계곡에서, ‘골’은 습한 골짜기에서 자란다는 뜻이다(갯개미취, 골사초). ‘구름,’ ‘두메’가 붙으면 높은 산지에서 산다는 의미(구름패랭이, 두메투구꽃). 이밖에 ‘벌(벌판),’ ‘물,’ ‘돌,’ ‘바위,’ ‘산,’ ‘섬’ 등은 말뜻 그대로이다(물봉선, 돌단풍, 바위구절초, 섬백리향). ‘참’은 진짜를 뜻하는데 참나리, 참바위취처럼 보통 크고 눈에 잘 띄는 꽃에 붙는다. 반면 ‘나도,’ ‘너도’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긴 꽃에 붙고(나도바람꽃, 너도골무꽃), ‘개,’ ‘뱀,’ ‘새’ 등은 품질이 낮거나 작고 모양이 다른 것에 붙는다(개쑥부장이, 뱀딸기). 갈퀴나물이나 끈끈이주걱처럼 식물기관의 모양을 따기도 하고 가는잎구절초나 가시오갈피처럼 특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키가 큰 식물에는 ‘큰,’ ‘왕,’ ‘말,’ ‘수리’ 등이 붙고(말나리, 수리취) 작은 것에는 ‘각시,’ ‘땅,’ ‘애기,’ ‘왜,’ ‘좀,’ ‘병아리’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애기현호색, 왜솜다리, 좀꿩의다리, 병아리난초). 이밖에 ‘선’은 선가래나 선괭이밥처럼 반듯이 서있는 식물을 뜻하고 ‘눈’은 눈양지꽃, 눈범꼬리처럼 누워 있는 식물을 가리킨다. ‘광대’는 광대의 옷처럼 울긋불긋한 꽃이름에 붙는다. 참고서적 : 허북구, 박석근, 나문심, 박재옥 저 야생화 보러 가자 꽃은 날짜가 아니라 날씨를 보고 핀다. 날씨는 중부와 남부 지방이 다르고 평지와 산지가 다르다. 높이라면 보통 해발 100m마다 1℃씩 낮아지기 때문에 산지가 평지보다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보면 맞다. 또한 늦봄에 피는 야생화들은 대개 5, 6월에 걸쳐 핀다. 야생화를 보러 굳이 목적지를 정할 필요는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꽃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가볼 만한 곳을 꼽으면 소백산과 축령산, 금대산, 선자령 등이다. 축령산은 휴양림안 산책로변에 야생화가 많고 선자령 역시 야생화로 유명한 곳이다. 이 즈음 금대산은 야생화 천지다. 야생화는 자연생태에서 펴야 제맛이지만 식물원을 찾는다면 강원도 평창의 자생식물원을 꼽을 만하다. 1천2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보고인 셈이다(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종류는 모두 4천300여 가지라고 알려져 있다). 주의할 것. 식물자원 보호를 위해 삼각대를 이용할 수 없다. 참고사이트 : www.kbotanic.co.kr 야생화 찍기·알기·기르기 찍기 사진의 기본은 빛이다. 빛은 오전이 좋다. 맑은 날 오후의 빛은 너무 강하고 저녁 무렵에는 붉은 빛이 감돈다. 또 밝은 색의 꽃을 찍는다면 노출보정 기능을 통해 +EV 쪽으로 설정한다. 배경이 어둡다면 -EV. 만약에 꽃이 환하고 배경이 어둡다면 측광모드를 ‘spot 측광’으로로 정한다. 뷰파인더의 가운데 지점을 기준으로 노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꽃부분은 정상노출, 주변배경은 어둡게 나와 꽃이 살아난다. 이밖에 꽃을 한가운데 놓고 45도 각도에서 찍으면 너무 단조롭다. 가운데를 피하고 각도도 높은 곳 낮은 곳에서 여러 가지로 찍어 본다. 접사모드와 발광금지모드, 아웃포커싱은 기본. 마지막, 접사사진이 예쁘긴 하지만 꽃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의 모양도 있어야 한다. 알기 야생화 도감을 준비하자. 포켓용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커다란 것은 정보가 많아 좋다. 도감만으로 이름을 알기는 쉽지 않다. 모양이 비슷한 꽃들이 있기 때문. 이럴 때는 인터넷을 이용한다. ‘야생화’로 검색되는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면 야생화 이름을 묻는 코너가 있다. 꽃이름을 알고난 후 게시물의 제목을 꽃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예의다. 기르기 야생화는 말 그대로 자연에서 자라는 꽃이지만 곁에 두고 보고 싶다면 잘 골라서 심는 것도 방법이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어서 예쁘고 쉽게 기를 수 있는 꽃을 골라야 한다. 원추리, 옥잠화, 인동, 비비추, 금낭화 등은 음양건습을 특별히 가리지 않아 기르기 편하다. 처음 심은 후 7일은 뿌리가 자리를 잡는 기간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물을 준다. 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주면 되며 거름은 1년에 한 번, 봄에 주면 된다. 특별히 습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물빠짐이 좋은 산모래와 부엽토를 섞는 것이 좋다. 양재동 꽃시장이나 강원도 오대산 근처의 자생식물원 등에서 야생화를 살 수 있다. TIP 소백산 산행 소백산(비로봉 1,439m)은 강원, 충청, 경상도에 걸쳐 있고 온화한 산세와 능선부의 툭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야생화를 보러 소백산을 찾는다면 기본적인 산행준비를 잘 해야 한다. 한낮에 무덥다 해도 산 속의 밤은 춥다. 야영을 한다면 매트리스와 침낭이 필요하다. 천동계곡 코스 중턱에 있는 천동야영장에는 조명시설이 전혀 없으므로 랜턴이나 가스등을 챙기고 배터리나 연료도 넉넉하게 준비한다. 천동야영장은 조만간 휴식터로 바뀔 예정이라고 하니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소백산 북부사무소 (043)423-0708 돌계단 길은 쉽게 지치기 때문에 보폭을 좁히고 내려오는 길에는 무릎과 발목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앞꿈치부터 딛는다. 간식거리를 넉넉하게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npa.or.kr) 오른쪽 지도에서 ‘소백산’ 선택. 주변 볼거리 남한강물이 땅을 휘돌아 감는 곳, 그 물줄기 한가운데 뾰족한 바위 봉우리 3개가 사이 좋게 솟아 있다. 도담삼봉. 삼봉 정도전이 누각을 짓고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그 누각은 1972년 수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시 지은 것 역시 1990년 수해로 훼손되어 마루와 기왓장을 새로 보수했다. 예전엔 물이 얕아 바짓가랑이를 걷고 물길을 건넜지만 충주댐을 만들면서 물이 깊어졌다. 건너편 마을은 도담리, 현재 열 서너 가구가 살고 있다. 도담삼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팔각정에 오르면 전망이 좋다. 예서 조금 더 가면 석문이 나온다. 거대한 바위에 갖가지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가을이면 가히 ‘바위무지개’라 할 만 하겠다. 잘 곳와 먹을 곳 단양읍내에 대명콘도(www.daemyungcondo.com )가 있다. 800개가 훨씬 넘는 객실에 물놀이 테마파크 아쿠아월드를 갖추고 있어 아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기타 다른 숙박업소는 단양군청 홈페이지 상단의 ‘문화관광-숙박안내’ 참조. 호텔, 펜션, 민박 등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다. 맛난 먹을거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단양은 육쪽마늘이 유명하다. 석회암 토질인 까닭에 아리한 맛이 덜하고 저장성이 좋다. 단양읍내에는 마늘솥밥으로 인정받는 집이 있다. 장다리식당. 마늘솥밥 정식은 1만 원, 특정식은 1만5천 원이다. 보쌈이나 육회 등 맛난 먹거리와 20여 개에 달하는 밑반찬이 상에 오른다. (043)423-6660 글l서승범 기자 사진l최진호(프리랜서 사진작가)
울진 죽변 등대 이상으로의 도피와 현실로 회귀하는 .. 2005-06-20
등대(燈臺)를 굳이 풀이하면 ‘등을 올려 놓는 받침’일 것이다. 영어로도 ‘lighthouse’이니 어설프게 해석해 보자면 ‘불빛을 내는 집’ 정도. 하지만 기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단어는 ‘guiding light’다. 영어 공부한답시고 AFKN를 보던 시절에 시청한 드라마 ‘guiding light’. 드라마 내용과 등대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번쩍이는 등대였다. 왠지 ‘인도하는 불빛’을 등대의 제대로 된 정의라고 여기고 싶다. 운치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기대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방황하는 시절은 있게 마련이다. 방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종교나 친구일 수도 있다. 이러한 등대 같은 존재가 하나라도 있다면 복 받은 일. 마음속의 등대를 그리며 망망대해에 던져진 한 조각 배가 되어 현실 속의 등대를 찾아 나섰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대나무, 하얀 등대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나가 영주에서 36번으로 갈아타고 울진에 도착.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가 죽변 이정표를 따라 나가면 죽변면에 도착한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방파제 도달하기 전 좌회전,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죽변 등대가 나온다. 죽변 등대는 높이 약 16m의 팔각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1910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석유등을 켜다가 나중에 전등으로 바뀌었다. 20초마다 조명이 돌면서 35km 거리까지 빛을 보내고 있다. 지금의 자리는 신라 진흥왕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고 봉수대 역할을 한 곳. 1904년 러·일전쟁 때는 해상 감시용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지리적 특성은 고스란히 등대로 이어져 동해바다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나 어울릴 법한 새하얀 구조물은 도화지 같은 새파란 하늘에 선명한 라인을 그리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등대가 있는 언덕은 빽빽한 대나무로 가득하다. 마을이름에 대나무 ‘竹’(죽)자가 들어간 것이 괜한 것이 아닐 정도로 촘촘하게 우거져 있다. 대나무에 요새처럼 둘러싸여 있는 등대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당당하게, 때로는 수줍어하듯 고개를 빠끔히 내민 채 뱃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돕고 있다. 등대 아래쪽으로 펼쳐진 대가실 해변은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와 파란 하늘, 양옆을 감싸고 있는 언덕배기와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은 얼마 전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교회와 집으로 이루어진 세트장이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로 떴다 하면 시끌벅적하기 일쑤지만 이곳은 조용하기 그지없고,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등대 저편으로 보이는 또 다른 언덕에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어 놓은 가짜 등대가 서 있다. 세상사를 초월한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수평선만을 바라보는 가짜 등대.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가짜 등대를 보는 진짜 등대의 마음도 복잡하리라. 쉴 새 없이 밤새 불을 밝히는 자신의 운명과 비교해 시샘을 느낄까. 자신보다 못한 존재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껏 콧대를 세우고 있을까. 아니면 외로움을 달래 주는 벗과 같은 사랑스런 존재로 여기고 있을까. 등대가 있기에 우리는 바다로 나간다 대게를 주로 잡는다는 죽변항은 왠지 모를 한가함이 감돈다. 아직은 대게 철이 끝나지 않았지만 정화 작업기간이라 대게 잡기를 중단한 상태. 항구의 활기참이 잠시 잦아졌어도 기다란 방파제 끝에는 위치를 알리는 붉은색과 흰색 등대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는 이미 지고, 흐린 노을마저 어스름에 묻혀 버리는 저녁 한때. 들어오는 배는 거의 없건만 등대는 연신 불빛을 번쩍거리고 있다. 수호신처럼 파도를 잔잔하게 만드는 마력이 등대에 숨어 있는 것일까. 방파제 너머로는 철썩거리며 파도가 넘실대지만 안쪽으로는 고요만이 흐르고 있다. 한 귀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다른 귀로 느껴지는 고요한 정적은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마냥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 갈림길에서 등대의 불빛마저 없었다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밤하늘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920번 해안도로 옆의 푸른 바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끓어오른다. 이러한 동경 또한 이상의 세계에서 문득 현실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혀 주는 등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글 | 임유신 사진 | 박창완
통영 바다에 부딪친 햇살, 해저터널에 스미다 2005-06-15
통영에서는하늘이 바다를 물들이지 않고 바다가 하늘을 물들인다. 바다가 푸른 날은 하늘도 푸르고, 바다가 흐린 날은 하늘도 흐리다. 통영에서는 바다가 하루의 일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바다는 나서는 법이 없다. 너무 고요하고 잔잔해 호수이거나 강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이다. 시인 정지용은 바다를 표현하는 우리말은 경탄음 ‘아아’가 겹쳐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크고 넓은 것을 가리키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우미(うみ )니 씨(sea) 따위의 말은 바다 전체보다 바다에 뜬 섬이나 배 하나를 가리키는 말쯤밖에 안 들린다는 것이다. 오래 전 한때 이 바다가 피로 물들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혈염산하(血染山河). 적의 피로 이 바다를 물들이겠다는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그 글귀의 뜻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 차디차고 단호한 결의, 그리고 심연처럼 깊은 고독을 생각한다. 이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다시금 그를 떠올리게 됨은 아직 그 ‘역사’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청마거리 지나 세병관 가는 길, 그리고 충렬사 앞 명정 몇 해 전인가 서울에서 통영을 갔을 때는 정말 아득히 멀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일곱 시간은 넘게 걸렸던 기억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2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5시간도 채 걸리지 않게 되었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것은 서울강남터미널을 떠난 지 4시간 30분 만이었다. 통영은 지난 1955년 9월 1일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통영군과 분리되었고, 다시 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을 합쳐 통영시가 되었다. 충무라는 이름은 시호 충무공에서 따왔고, 통영은 통제영의 줄임말이니 어떻든 시의 이름에서부터 이순신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셈이다. 통영 앞바다가 바로 한산대첩의 현장이며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잠긴’ 그 한산섬이 바로 이웃해 있음이다. 또한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해,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그리고 토지의 작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골목을 걷다가 문득 만나게 되는 윤이상거리며 청마거리 등이 반갑다. 한 지역에서 이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난 것은 역시 바다 때문인가. 통영에서의 첫 발걸음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강구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저편으로 언덕 위 하얀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그야말로 이국적인 정취에 빠져들게 된다.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홍, 파랑 지붕에 하얀색 담장이 있는 집들 사이 골목으로 올라가 본다. 마당에 야자수가 있는 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가운데쯤 집들이 텅 비어 있다. 이유인즉 소방도로를 내기 위해 모두 철거할 집들이란다. 속은 비어 이미 폐가가 되었는데 예산부족 탓인지 공사가 빨리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동네사람이 말한다. 글쎄, 소방도로는 필요하고 또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지만 왠지 특유의 풍경이 사라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강구안에는 또 유명한 충무김밥집들이 늘어서 있고, 남망산조각공원에 올라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도 좋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자리한 공원 휴게소 테이블에 앉아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앙시장 뒤편에서 세병관 가는 길에 만나는 청마거리에서 시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바로‘통영중앙우체국’이다. ‘행복’이란 시에 나오는 그 우체국이다. 여느 우체국과 다를 바 없는 외형이지만 그런 사연을 알고 보면 왠지 남달라 보인다. 시에 나오는 연정의 대상은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영도. 그녀는 청마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청마는 20여 년간 5천 통의 연서를 써 보냈으니, 그 사랑, 참 애틋하다. 세병관은 1604년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제1대 통제사가 이순신)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모두 스러지고 유일하게 남은 객사 건물이다. 주변 일대는 통제영 복원공사가 진행중이고, 이를 위해 세병관 뒤편에 있는 통영초등학교도 이전키로 했다. 교정에 서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보인다. 매표소에서 만난 이에 따르면 세병관이 일제 때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초등학교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보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세병관 입구 은목서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산호수(아왜나무)는 그때 일본인들이 자기들 표식으로 심었다고 한다. 세병관을 나와 오르막 차도를 따라 조금 걸으면 이순신의 사당이 있는 충렬사가 나온다. 충렬사가 자리한 사거리 길 건너편에는 충렬사 제향에 쓸 목적으로 판 우물 명정샘이 있다. 명정샘 앞에 동판으로 만든 원고지 한 장이 눈에 띄는데,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1962년)에서 이곳 명정샘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 어떤 문학비보다 문학적인 비석이다. 그 풍경이 밟힐 듯 눈에 선해 여기 옮긴다. ‘충렬사에 이르는 길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아지랑이가 감도는 봄날 핏빛같은 꽃을 피운다.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 국내 하나뿐인 해저터널, 소매물도 등대섬을 보다 통영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해저터널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큰 관심거리가 아니지만 1927년 개통 당시에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서 매우 경이로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차들의 통행이 금지되고, 사람들만 왕래하는 모습인데 그래도 바다 속을 걸어간다 생각하면 신기한 느낌이다. 소문만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실망을 하든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1967년 충무교가 완공되기 전까지 주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해저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다시 돌아올 때 충무교 위를 걸어서오면 해저터널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충무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바로 ‘판데목’이라 불린 곳으로 한산대첩 때 쫓기던 왜선들이 물길인줄 알고 잘못 들어왔다가 무수히 주검으로 사라진 곳이다. 일제가 이곳에 해저터널을 뚫은 이유도 왜군들이 많이 죽은 지점 위로 걸어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충무교 건너편으로 보이는 신식다리가 바로 통영대교이고, 이쪽 물길 일대가 통영운하이다. 길이 1천420m, 너비 55m, 수심 3m에 이르는 통영운하는 부산에서 여수간 남해 내항로(內航路)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영대교는 특히 밤에 보는 야경이 운하의 정취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통영이나 남해 부근에 와서 한려수도를 가까이 볼 수 있다면 커다란 덤일 것이다. 사실 섬에 간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편도 15분 거리의 한산섬에 가 볼 요량으로 도남동 유람선터미널로 향했다. 사람이 모여야만 가는 부정기선이라 한산섬 가는 배는 영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데 매물도 가는 배편은 사람이 제법 많다. 매물도를 돌아 한산섬에 1시간 머무르는 코스로 도합 3시간 10분 코스다. 일정이 조금 지체되지만 그 배를 타기로 한다. 일기예보에서 흔히 말하는 앞바다를 넘어 먼바다로 나간다. 비진도를 비롯해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지나는 동안에도 먼바다는 평온했다. 배의 선장은 이런 날씨도 드물다고 말하고 운이 좋은 승객들이라고 했다. 간간이 돌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50분 남짓 걸려 매물도에 도착했다. 배는 익숙한 솜씨로 기암절벽이 잘 보이도록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등대섬 소매물도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송림 우거진 아늑한 섬 한산도는 ‘수루’가 있는 제승당을 돌아보는 것이 전부다. 누군가 ‘세 번쯤은 올 만한 곳’이라 했는데 맞는 말 같다. 겨울보다는 신록 우거진 이맘때가 좋겠다. 그래도 에메랄드빛보다 더 짙은 바다는 실컷 눈에 담았다. 통영의 바다는 평온하면서도 깊고 넓다. 바다를 덮은 하늘까지 그 잔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Z
정선선 간이역, 쓸쓸한 이별의 노래 별어곡에서 구절.. 2005-05-16
이역 하면 왠지 정겨운 느낌이 밀려온다. 간이역은 역장이 없는 역을 말한다. 역무원이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역무원이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이라 부른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철도가 다니는 경부선에도 곳곳에 간이역은 있다. 대부분이 간이역으로 이루어진 가은선, 북평선, 옥구선, 정선선 등은 가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낯설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가 다녔다는 정선선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태백선 증산역에서 갈라지는 정선선은 이제 흔적만 남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역할이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광산이 붐을 이루던 1960년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생긴 정선선. 별어곡역에서 구절리역에 이르는 6개의 역은 언제 그런 일이 있어냐는 듯 황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철길도 폐광과 함께 스러져 가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부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강변 따라 길 따라 나란히 놓여 있는 철길과 마주치게 된다. 그 철길이 바로 정선선이다. 강원도 정선. 한 때 탄광촌으로 활기 가득했던 이 일대는 폐광이 되어 한풀 꺾이다 못해 축 가라앉아 보인다. 손에 쥐어든 정선 관광지도를 보면 구경할 곳이 많은데 제철이 아닌 탓인지 가는 곳마다 한가롭다. 증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처음으로 들르는 곳은 이름도 독특한 별어곡(鱉魚谷)역. 한자표기는 분명 아닌데 이별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역무원 아저씨라도 만나 볼 요량으로 역을 찾았지만 이미 폐쇄되어 사람의 온기를 찾을 수 없다. 3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바뀌었다는 안내문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정선선은 하루 세 차례 객차 1량짜리 꼬마열차(정식명칭은 정선아리랑 유람열차라고 써 있다)가 다니고 있다. 차표 회수함에 차표 한두 장이 뒹군 것으로 봐서 사람들이 타기는 하나 보다. 텅 빈 역사는 붙잡는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역무원이 없어도 관리는 하는지 방치되어 있지는 않다. 베이지색의 건물과 기와지붕이 부조화스럽지만 정겨움이 배어 있다. 뒤에는 높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해질녘 막차를 기다리는 듯 플랫폼에 서 있다. 기차가 도착하니 기관사 에게 물건을 맡기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린다. 선평역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선평역 또한 별어곡역과 함께 무배치역으로 바뀌었다. 선평(仙坪)은 맑은 샘물이 마을 가운데서 솟아나고 경치가 좋아 신선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 멀리 높은 산과 그 밑으로 말려 들어가듯 휘어지는 철길을 넘어가면 신선이 사는 곳이 나올 것만 같다. 텅 빈 역사에는 여객 운임표와 배차 시간표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일하게 역무원이 있는 정선역을 지나면 역시 아무도 없는 나전역이 나온다. 어느 여자대학 미술과 학생들이 그렸다는 도깨비 그림은 화암동굴의 캐릭터란다. 역사 입구 양옆에 달려 있는 자율방범대와 청년회 현판은 기차역으로의 역할을 다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알록달록한 도깨비 그림과 나무 현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유람열차의 종점인 아우라지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우라지는 오대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성천과 임계 중봉산에서 발원하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아우라지역부터 정선선의 종점인 구절리역까지는 관광지화 작업을 거쳐 기차 대신 레일바이크가 다닐 예정이다. 역 공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젠 들을 수 없는 구절리역의 기적 소리 아우라지에서 415번 도로로 갈아타고 쪽 올라가면 정선선의 마지막 역인 구절리역이 나온다. 유람열차도 아우라지역이 종점이어서 아우라지-구절리 구간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교차로의 차단기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다시금 차단기가 내려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임무에서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부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구절리역은 폐역이 된 지 오래다. 구절리역도 아우라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광지화 공사가 한창이다. 무궁화 열차 두 칸은 카페로 만들려는 듯 개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역에 다다르면 철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외롭게 서 있는 선로 변경기는 세 갈래 인생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역사를 지나면 철길은 다시금 합쳐진다. 마치 인생을 어떻게 살든 막판에는 한 길밖에 없다는 인생무상의 외침 같다. 합쳐진 후 종착점까지 쓸쓸한 풍경이 계속된다. 누군가 종착점에 올려놓은 돌탑만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아직도 저 멀리 갈 곳은 남아 있는 것만 같은데……. 글 | 임유신 사진 | 이명재
상주(尙州) 바람 앞의 자전거 도시 2005-05-16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 보인다…….(중략) 길가에 서 있는 자전거를 보면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황동규의 시가 떠오른다. 이 시구에는 어떤 중독성이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4개의 바퀴를 발진시키는 자동차보다 두 발로 저어 2개의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가 좀더 땀 냄새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때로 자동차를 두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지는 이유다. 두 발로 바퀴를 굴리는 일은 짐짓 노동의 행위가 연상되기도 한다. 본질은 그럴지 몰라도 자전거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낭만일 것이다. 학창시절,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하이킹’이란 용어가 그렇듯 또는 최인호의 소설 ‘겨울나그네’에서 자전거에 부딪치는 것으로 시작되는 치명적인 사랑처럼……. 그러고 보면 얼마나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인가. 시원스레 뚫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 고속버스에 앉아 떠오르는 자전거에 대한 단상이 자연스럽다. 바로 자전거의 도시, 상주에 가는 길이므로. 박물관에서 자전거를 타고 남장사에 오르다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전라도가 되었듯이 경상도 또한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만큼 상주라는 지역이 유서 깊고 비중 있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예로부터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세 가지 흰 것이란 바로 쌀, 목화, 누에고치를 일컬었는데 해방 후부터는 목화 자리를 곶감이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상주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데다 서쪽과 북쪽이 높고 동쪽과 남쪽이 낮은 지형 덕분에 농사철에 볕이 잘 들어 곡식이 풍성했다. 기름진 땅에서 나는 쌀은 진상품이었고 아직도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이런 지형적인 조건에다 옛날에는 금과 무쇠도 난 모양이어서 삼국이 자주 싸움을 벌였다. 속리산 가까이 있는 견훤산성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누에치기의 전통 또한 무척 오래 되었다고 전해온다. 고령가야 터였다는 함창읍 증촌리는 신라 시대부터 명주 산지로 이름난 곳이라 한다. 그러나 값싼 화학섬유가 쏟아져 나옴에 따라 힘들게 무명실을 뽑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누에를 치기는 하지만 대부분 번데기 단계에서 팔려나간다. 요즘은 동충하초나 누에가루로 생산되어 많이 팔린다. 최근에는 이 삼백에 하나를 더해 사백의 고장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하나 더 흰 것이란 자전거의 하얀 바큇살을 이름이다. 조금 억지스런 느낌도 있으나 그만큼 자전거는 최근의 상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박물관을 세운 것도 그렇거니와 온 동네에 곶감이 내 걸리는 10월쯤 열리는 자전거축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전국에 자전거도시라는 이름을 알린 것이다. 자전거축제가 열릴 시기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나와 진풍경을 이룬다하니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상주 땅에 들어서 먼저 자전거박물관을 찾았다. 두 개의 바퀴를 형상화한 박물관 건물은 왜소해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자전거 역사 초창기를 수놓았던 진귀한 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최초의 페달식 자전거라는 K. 맥밀런 자전거나 드라이지네 등은 마치 나무 조각 같은 느낌으로 자전거시대의 향수를 맛보게 해준다. 그밖에 진기한 자전거를 많이 갖춘 수고로움은 알겠으나 좀더 규모 있는 시설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까이 있는 남장사에 가기로 한다. 박물관에서는 보통 1시간을 기준으로 무상으로 빌려주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에는 조금 더 오래 타도 괜찮다. 보이는 길은 평지에 가깝지만 은근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가는 도중 음료수를 사먹으러 들어간 구멍가게의 주인이 “남장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걸어서 가는 것보다 두 배는 힘들 것”이라고 귀띔한다. 대수롭게 본 것이 화근인 셈이었는데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은 밀면서 또 타면서 간다. 힘은 들지만 모처럼 하이킹하는 기분을 즐긴다. 무엇보다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좋다. 가는 길에 남장동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맛 좋은 ‘상주 곶감’의 주요 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윽고 나타난 남장사는 아담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절이었다. 작지만 무게감이 있고 별로 꾸밈이 없는 경내가 마음에 든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로 남장동을 사하촌으로 두었을 만큼 예전에는 절 경역이 넓었다고 한다. 입구에 새로 지은 건물도 단청을 칠하지 않고 나뭇결 그대로 두어 오래된 건물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 뒤에 한 그루 서 있는 목련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왜 목련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드는 걸까. 목련은 여러 그루가 함께 있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여기 저기 외따로 혼자 서 있는 까닭에 외로워 보이는 것일까. 화사한 꽃잎이 동백꽃보다 더 처연하게 빨리 지고 만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 페달을 거의 밟지 않아도 될 만큼 쉽고 상쾌했다. 오를 때 멀게만 느껴졌던 길은 너무 아쉬울 정도로 짧았다. 자전거 붐은 자동차에 밀려 사라지는 것일까 상주 함창 공갈못에 /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 연밥 따기 늦어가오…….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져 오는 구전가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상주 함창 공갈못 노래’일 것이다. 어떤 노래는 입에 한번 흥얼거리면 하루 온종일 따라붙는 마법에 걸리는데 이 노래 또한 상주 땅을 다니는 내내 달라붙었다. 그 노래를 기억하는 까닭에 시외버스를 타고 공갈못에 가보기로 한다. 양정리에 내려보니 절경이었다는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갈못 옛터’ 비와 조그맣게 남은 저수지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연대만 무성하다. 한쪽에는 공갈못 복원계획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곳 마을사람의 말에 따르면 예산부족을 핑계로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시골과 함께 있는 도시의 동선은 대개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행선지를 바꿀 때는 다시 터미널로 나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동 용포 선산 방면이라 쓰인 버스를 타고 오래된 가옥 양진당이며 오작당이 있는 낙동면 방면으로 나가본다. 너른 들판을 지나는 길 철길 앞에서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멈춰 서고 부산행 무궁화열차가 지나간다. 양진당은 복원공사 중인 모습인데 거의 끝났다고 대문 앞에 선 작업자가 말했다. 임진왜란 때 상주 땅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던 조정(1555~1636년) 선생의 살림집 안채이다. 좁은 툇마루가 복도처럼 이어진 안채에 들어서자 마치 요새 같은 방들의 구조가 독특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오작당은 원래 양진당에 속했던 건물이나 이쪽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11대손이 살고 있는 여염집이다. 인적 드문 조용한 마을에 트럭이 하나 나타나더니 두 사람이 내려 거대한 전봇대를 하나 쓱 뽑아 싣고는 이내 사라진다. 평화로움을 깨는 조용한 사건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하늘은 건조하다. 먼지는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지상을 떠돈다. 다시 시내로 나와 시민공원이 있는 제방으로 나간다. 북천을 따라 자전거전용도로가 이어진 길이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꽃나무 사이로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상주는 확실히 다른 어느 지역보다 자전거가 많으며 생활 깊숙이 자리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분명 과도기로 보인다. 자칫하면 자전거 도시라는 명성이 퇴색하지 않을까 싶다. 등하교길에 장관을 이룬다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지나갈 뿐이었다. 택시기사는 이처럼 자전거가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가 외곽순환도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많아지면서부터라고 말했다. 실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들이 시내로 진입할 때는 위태로워 보였다. 시내 한복판의 어떤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노점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자동차에 밀려 자전거가 줄어드는가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이다. 자전거 도시로 상징되는 건강한 생명력의 도시 이미지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도시에 다가서지 못하고 언저리를 돌며 도시미학을 찾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