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자동차상식

대도모터스 - 오직 최고만을 고집한다 2013-09-09
모빌원 카 케어 광주점 대도모터스는 작은 규모의 경정비 업체이지만 최고의 브랜드만을 취급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공식 대리점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영 서비스센터에 버금가는 기술력과 서비스로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고객들에게 정평이 난 곳이다. 대도모터스를 찾는 벤츠 고객들은 모빌 브랜드의 최고급 제품인 모빌원 윤활유를 경험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도모터스는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오너에게 정평이 난 곳이다 대도모터스 김현석 대표는 메르세데스 벤츠 차와 모빌, 단일 브랜드만 취급한다. 그 이유는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동차 만들기 철학을 피력한 ‘Das Beste order nichts’(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에서 찾을 수 있다. 고객들에게 최상의 제품을 소개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김 대표의 굳은 신념이다. “일종의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브랜드보다는 하나의 브랜드를 전문으로 하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지요.” 소위 맛집이라고 부르는 음식점에 가보면 단일 메뉴로 고객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최근 단출했던 메뉴에 모빌원 윤활유를 추가한 것도 질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대도모터스를 이끄는 김현석 대표와 식구들 메르세데스 벤츠와 모빌의 만남김현석 대표와 모빌과의 인연은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 후반 국산차 경정비와 카 인테리어로 자동차사업에 첫발을 들인 후, 지인의 소개로 1990년 메르세데스 벤츠 공식 대리점을 열어 10여 년간 광주•전남 지역에 벤츠를 팔았다. 당시 벤츠는 전차종에 모빌원을 공식 윤활유로 채택했는데 모빌 브랜드를 직접 사용해보니 절로 신뢰가 쌓였다고 한다.  “70~80년대 제작된 부품 하나까지도 꼼꼼히 관리하는 벤츠가 모빌을 파트너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자동차에 최고의 윤활유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20년 넘게 사용해보니 모빌이 세계 톱 윤활유 브랜드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엔진오일 교환 작업 후 전용 진단장비를 이용해 꼼꼼히 세팅한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모빌원은 100% 합성유를 사용하는 까닭에 탁월한 엔진보호 성능은 물론 오일 소모가 타 브랜드보다 낮아 교환주기가 길고, 열에 대한 내구성이 높아 고성능 엔진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그의 모빌원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벤츠 대리점을 할 때 판매한 15년 된 고객 차의 엔진을 분해해 보니, 슬러지 하나 없이 깨끗해 모두가 감탄한 적이 있다고. 김 대표의 권유로 차 주인이 15년간 모빌원만 사용한 결과였다.  김 대표의 모빌원에 대한 신뢰는 벤츠에 버금간다. 20여 년을 함께한 벤츠와 모빌원 사랑은 광주•전남 지역 고객들에게 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입소문으로 무상 보증기간이 끝난 벤츠 고객들과 타 지역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기 위해 원정까지 오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사무실에는 모빌원 제품 라인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신뢰에서 싹튼 모빌원 사랑은 단순히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 아니다. 고객 입장에서 직접 사용해본 경험에서 기인한다.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오너라면 예약이 필요 없고 값도 저렴한 대도모터스에서 엔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어떨까.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광주점 대도모터스 (062)522-1155 광주 북구 중흥동 694-14
C 세그먼트 푸조의 발자취 2014-06-16
유럽 소형 해치백 하면 많은 사람들이 폭스바겐 골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물론 골프가 유럽 베스트셀러로서 오랜 세월 인기를 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푸조의 20X와 30X 시리즈 역시 이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온 걸작들이다. 패션 명품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자동차에 있어서만큼은 실용주의로 무장한 작은 차를 사랑해왔고, 이런 문화적 배경은 개성과 매력 넘치는 소형차들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4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된 푸조 308 역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주역 중 하나다.  1969년, 3으로 시작하는 모델명 첫 등장세 자리 숫자의 푸조 이름에 300 단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당시 푸조에는 204와 404, 504 세 가지 라인업이 있었는데, 304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형차 204와 중형 404 사이에 위치하는 또 하나의 소형차였다. 르노 12의 인기에 자극받아 등장한 1.3 클래스의 304는 사실 204의 트렁크를 연장하고 얼굴을 504 풍으로 다듬은 모델이었다. 기본형은 세단이었으며 쿠페와 카브리올레, 왜건형도 만들어졌다. 304 77년 304에 이어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후계차 305가 등장했고, 85년에는 오리지널 디자인의 309가 뒤를 이었다. 원래 탈보를 위해 개발 중이었던 이 모델은 탈보 브랜드가 사라지면서 푸조 엠블럼을 달았다. 세단 대신 해치백이 기본 형태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305 한국에도 낯익은 306은 1993년 선을 보였다. 306도 왜건과 카브리올레, 세단형이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해치백이 주력 모델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309306 2001년 데뷔한 307은 306 플랫폼에서 변화가 크지 않았지만 차체 사이즈를 키워 거주성과 안전성을 개선했고 디자인은 푸조가 직접 다듬었다. 국내에서도 판매된 이 차는 프랑스 이외에 아르헨티나와 중국에서도 생산되었는데, 2004~2005년에 연간 50만 대 이상 판매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당시 소형차 206의 판매량이 연간 70만~80만 대에 달해 폭스바겐 폴로/골프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307 308이 등장한 것은 2007년. 푸조 모델 중 맨 뒤에 8자를 붙인 첫 모델이었다. 벌려진 입처럼 디자인된 범퍼 흡기구와 경주차 느낌의 노즈 선단부 그리고 날카로운 삼각형 헤드램프를 갖추었다. 이 호전적인 모습은 2011년 페이스리프트 때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3도어와 5도어 해치백, 왜건(SW), 쿠페 카브리올레(CC)가 만들어졌으며 중국 시장에서만 판매한 308 세단 외에 약간 사이즈를 키운 408이 개발되어 중국과 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308 초대 308은 2012년까지 125만 대 판매된 후 지난해 신형 308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푸조는 1929년 201 이래 중간에 0을 넣은 세 자리 숫자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오랜 전통을 깨고 1단위 숫자까지 동일한 모델명을 유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이유는 309라는 이름을 이미 사용했기 때문. 게다가 1단위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아 푸조 작명법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푸조가 선택한 방법은 모델명의 유지였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워진 308의 후계차는 여전히 308로 불린다. 보디는 5도어 해치백과 왜건으로 간략화되었고 3도어 해치백과 쿠페/컨셉트에 대한 소문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우선은 힘을 분산시키기보다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착실하게 판매 증진에 힘쓰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308의 성공이야말로 PSA 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푸조는 그 첫 번째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듯하다. 308이 올 봄 제네바모터쇼 직전에 결정된 ‘유럽 카 오브 더 이어’에서 BMW i3, 테슬라 모델 S 등 쟁쟁한 경쟁자를 누르고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PSA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용한 차'를 지향한 대우 레간자 2013-12-12
 1997.08  1997년 3월 28일 데뷔한 레간자는 뒷바퀴굴림 방식의 프린스를 대체한 대우의 첫 FF(앞 엔진 앞바퀴굴림) 중형차였다. 프로젝트명 V100으로 개발되었으며 GM과의 결별을 고하면서 대우가 92년부터 추진한 5개 차종 동시개발계획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이태리어 ‘elegante’(우아한)와 ‘forza’(힘)의 합성어에서 가져온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중형차 왕국을 되찾고자 하는 대우의 야심이 담긴 모델이었다.   1998.08 좋은 소리만 남기고 소음을 줄였다는 뜻으로 만든 ‘청진기’편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만큼 대우가 레간자에 쏟는 정성은 상당했다. 국내 부평기술연구소 주도 아래 영국 워딩연구소와 독일 뮌헨연구소가 힘을 보탰다.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셈이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수출을 염두에 두고 폭스바겐 파사트, 푸조 405, 오펠 오메가,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포드 토러스 등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모델들을 벤치마킹했다.   1998.11 미국 수출전략형으로 개발한 2.2 가솔린 모델을 잠깐 국내에서도 판매했다. 개발기간은 31개월로 당시 동급 국산 라이벌들에 비해 짧은 편이었지만 영국 미라를 중심으로 미국 데스벨리, 호주 앨리스 스프링스 등 15개국 18개 지역에서 옹골차게 필드 테스트를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대우는 레간자의 생산을 위해 부평공장에 1,400억원을 들여 설비를 새단장하는 등 개발뿐만 아니라 양산단계에서도 정성을 쏟았다.클래식한 느낌의 디자인은 이탈리아 쥬지아로의 손길로 완성되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유럽형 에어로다이내믹 스타일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했다. 도어트림을 잇는 캐릭터 라인은 기와지붕과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고 대시보드의 디자인엔 태극무늬가 투영되었다. 덩치는 길이×너비×높이가 4,671×1,779×1,437mm로 현대 쏘나타Ⅲ와 기아 크레도스보다 작았다.   1999.07  가죽시트를 기본으로 단 레간자 럭셔리. 프로젝션 안개등,음이온 공기청정기, 리모컨키 등 고급 편의장비가 트림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됐다. 엔진은 1.8L 111마력, 1.8L DOHC 137마력, 2.0L 116마력, 2.0L DOHC 146마력의 4종류로 시작했다. 호주 홀덴에서 들여온 1.8과 2.0L D-TEC 엔진은 새로운 흡기관과 ECU를 적용해 중속 영역을 강화했고 2.0L DOHC 엔진은 고속 영역에 집중해 최고시속 206km로 동급 모델 중 가장 빠른 실력을 뽐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이 기본, ZF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마련했다. 개발 초기부터 ‘조용한 차’를 지향한 레간자는 엔진으로부터 나오는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기 위해 3개의 벨트를 하나로 연결하고 유체 봉입형 엔진 마운트, 가변식 냉각팬, 알루미늄 오일팬을 사용했다. 또 소음의 실내 침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9겹의 대시패널과 3중 고무 실을 붙인 도어를 채택하는 등 방음과 방진에 많은 공을 들였다.앞 맥퍼슨 스트럿, 뒤 듀얼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은 유럽 취향을 반영해 약간 단단하게 세팅했다. 때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중형차 오너들에겐 다소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코너링 솜씨는 좋아 조금 더 젊은층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1998년에는 북미형으로 개발한 2.2 142마력 모델에 리어 스포일러를 붙여 내놓았다. 2001.06 레간자는 데뷔 초 ‘변화된 대우’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지만 1998년 현대 EF 쏘나타와 르노삼성 SM5가 등장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9년 12월 내놓은 매그너스와의 판매 간섭을 피하기 위해 1.8L 엔진만을 얹어 시장에서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2000년 1월 범퍼몰딩과 로커몰딩을 달고 보디컬러와 같은 색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꾸민 블랙&화이트 버전을 출시하고, 그릴 디자인을 바꾼 2001년형 모델을 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2002년 후속모델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세계의 FF카 ’7’ 2013-12-04
현대의 포니 엑셀로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나 앞바퀴 굴림차를 몰아볼 수 있게 되었다.80년대 세계 소형차시장은 또 폴크스바겐 골프,르노 생크 등 바로 FF2박스카의 전성시대이다.또 폴크스바겐 골프,르노 생크 등 FF차의 주역들이 거의가 모델 체인지로 실내공간을 넓히고 달리기 성능을 개선하여‘2세대 FF’라는 말도 생기고 있다.외모와 성능이 점점 비슷해져간다는 여러나라의 FF2박스카들, 그중에서 포니 엑셀과 비슷한 크기의 FF차 ‘일곱’을 소개한다. 르노 쉬페르5 Renault Super 5 르노(프랑스) 푸조, 시트로앵과 함께 프랑스 자동차업계를 이끌어온 르노는 1898년에 출발한 명문으로 2차대전 후 소형차 시장에서 대중차 4CV로 이름을 날렸다. 72년에는 4CV의 후계차로 앞바퀴굴림인 르노5(생크)를 내놓으면서 프랑스의 FF2박스화에 앞장섰다. 4기통 845CC를 표준으로 가로 아닌 세로 놓은 1.1리터,1.4리터 엔진을 더해간 르노5는 10년동안 프랑스의 베스트셀러카가 되었다.12년이 지난 뒤 르노5는 풀 모델 체인지로 쉬페르 5로 변신, 84년 가을에 열린 파리 오토살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와 폭이 각각 61mm, 36mm 커지면서 전체적인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실내공간이 넓어지고 공기저항치가 0.38에서 0.35로 좋아졌다. 엔진은 가로 놓은 4기통 956cc,1108cc, 1397cc 3종, 최고시속은 167km이다. 쉬페르 생크는 프랑스 국내에서 푸조 205와 경쟁하게 된다. 피아트 리트모 Fiat Ritmo 피아트(이태리) 이태리 최대의 자동차회사 피아트는 소형차와 앞바퀴굴림차를 만드는 데서 모두 선구적인 구실을 해왔다. 피아트의 설계 실장으로 명엔지니어인 단테 지아코자는 69년 이태리 최초의 ff차인 아우토비앙키 A112, 이어서 프리람을 만들었다. 클러치와 트랜스미션을 일직선 위에 놓은 이른바 ‘지아코자식 배치’였고 골프를 비롯한 FF2박스차가 거의 모두 이 방식을 따랐다. 피아트는 피아트 128 후계차로 78년 토리노 모터쇼에 FF2박스인 리트모를 내놓았다. 리트모는 ‘리듬’이란 뜻이다. 피아트가 자랑하는 대중차의 핵심으로 82년 앞부분을 조금 고쳤다. 엔진은 직렬4기통 1116CC,1301CC, 1498CC 외에 디젤 1714CC가 있다. 최고시속은 160KM, 3도어와 5도어가 있고 폴크스바겐 골프처럼 차체 중앙에 기둥을 남기는 컨버터블도 있다. 골프 Golf 폴코스바겐(서독) 폴크스바겐 골프는 세계 소형차시장을 휩쓸고 있는 FF2박스차의 본보기이다. 엔진을 가로놓는 앞바퀴굴림차는 영국의 미니가 처음이지만 74년에 쥬지아로 설계로 나온 골프는 해치백 스타일로 대중소형차에 새길을 터놓았다. 1950만대의 최대판매를 기록한 비틀즈의 후계차인 골프(미국에서는 래비트)는 인기와 함께 컨버터블도 내놓고 해치백 부분을 트렁크로 개조한 3박스를 만들어 (차 이름은 제타) 다른 회사들이 뒤따르게 했다.성공작인 골프는 83년 모델 체인지로 길이와 폭을 각각 120mm,50mm 씩 크게 하여 실내공간을 넓혔다.또 짐싣는 부분 30%, 연료탱크도 40% 크게했다. 엔진도 커서 직렬 4기통 1.3리터, 1.6리터, 1.8리터 이밖에 1.6리터 디젤이 있다. 엔진을 강화하여 최고시속 191km를 내는 골프 GTI는 모터 트렌드지의 ‘85년 최우수차’로 뽑혔다. 카데트 Kadett 오펠(서독) GM의 독일 자회자(子會社)인 오펠은 1936년 카데트를 주력차종으로 내놓았었다. 그뒤 79년에 나온 5세대 카데트는 GM의 월드카 전략에 따라 오펠의 첫 바퀴굴림차로 등장했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2리터, 1.3리터, 1.6리터 에 최고시속은 187KM.차의 수명이 긴 시독에서 자란 카데트는 이례적으로 5년만인 84년 가을 모델 체인지로 새 모습으로 단장되었다.뉴 카데트는 외모는 큰 변화없이 차폭을 조금 늘이고 공기역학적인 개선에 주력하여 톱모델인 GSI에서는 공기저창치 0.30을 기록해다 크기는 3998X1686X1380mm. 엔진은 직렬 4기통 1196CC(55마력), 1297CC(60마력과 75마력), 1598CC(90마력), 1796CC(115마력) 과 디젤 1598CC(55마력)등이고 최고시속은 톱 모델인 GSI에서 203km로 빨라졌다. 카네트는 86년 하반기에 대우의 T카로 한국땅에 상륙할 예정이다. 에스코트 Escort 포드(미국) 포드는 영국과 독일에 자회사가 있어 70년대부터 미국,영국, 독일과 그밖의 나라에서 함께 생간하는 월드카를 설계, 제작해 왔다. 80년에 나온 에스코트는 피에스타(76년)에 이은 포드의 두번째 월드카로, 구형인 뒷바퀴굴림 3박스 노치백에서 앞바퀴굴림 해치백으로 변신했다. 유럽 포드를 중심으로 소형차 시장을 검토한 뒤 ff화된 신형 에스코트는 83년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 카로 뛰어올랐다.수냉식 직렬 4기통 CVH 신형 엔진에 배기량은 1.3리터, 1.6리터와 1.6리터 디젤이 있다. 최고 시속 158km.84년엔 라인업을 약간 바꾸어 3도어, 5도어 세단 쪼긍ㄴ 베이식L, 고성능의 GT, 그리고 GLX에 대신하는 LX 시리즈를 내어 놓으면서 1.6리터 엔진에 터보를 더한 터보GT와 2.0디젤을 추가했다. 패밀리아 Familia 마쯔다(일본) 2차대전 전에 삼륜차를 만들었던 마쯔다 (東洋工學)는 대전 뒤 소형차를 거쳐 64년 패밀리아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승용차 제작을 시작했다. 60년대에는 로터리 엔진을 세계 최초로 승용차에 쓰는등 개척적인 노력을 해왔다. 패밀리아는 모델 체인지를 거듭하여 80년에 5세대로 FF2박스로 변신, 도요다 카롤라, 닛산 서니와 겨루는 인기차가 되어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를 도왔다.85년 1월 초순에 5년만에 다시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기본설계는 지키면서 차체를 조금 크게 하여 전체적으로 센력도를 높이고 고품질화 하는 ‘2세대FF차’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냈다. 크기는 3990 X1646 X 1390mm,엔진은 1296cc(74마력), 1490cc(85마력과 95마력), 1490cc터보(115마력) 로 최고시속 160km, 기아산업이 마쯔다와 제휴하고 있어 87년 이후 한국에서 생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차종이다. 시빅 Civic 혼다(일본) 2차대전 뒤 오토바이 생산을 거쳐 63년부터 승용차를 만든 혼다는 일본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자동차회사이다.오토바이 레이스 참가에 이어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F-1 그랑프리에도 참가하여 84년에는 댈라스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72년 유럽의 소형차 제작 추세를 재빨리 받아들여 독특한 FF2박스인 시빅을 내놓아 호평을 받자 잇달아 모든차종을 FF화 하였다. 시티, 시빅, 발라드, 아코드, 프렐류드 등이 고성능, 고품질로 모두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83년 여름 시빅은 2세대로 모델 체인지 되었고 84년도 일분 최우수차로 뽑혔다. 엔진은 1.3리터 와 1.5리터, 3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 색다른 모양으로 샤틀이란 이름을 가진 5도어 등으로 모두 22차종이 있다.날렵한 모습과 기름소모가 적은 것 (시속 60km 주행 때 리터 당 28.5km, 시내주행 리터 당 18km) 으로도 유명하다.[게제 1985년 03월호]
기아 리오 '새천년의 희망' 2013-11-29
 1987년 프라이드를 출시하며 국내 소형차 시장을 휘어잡았던 기아였지만 그 기세를 잇지 못하고 90년대 현대 엑센트에 밀려 소형차 시장에서 조연에 머물렀다. 와신상담한 기아는 분위기를 역전시키기 위해 1996년 9월 개발 컨셉트를 잡고, 글로벌 소형차 프로젝트(B-III)를 가동했다. 그리고 97년 2월 확정된 모델을 기반으로 33개월 동안 2,800억원을 투입해 1999년 리오(Rio)를 완성했다. 리오는 1999년 11월 5일 소하리 공장에서 보도발표회를 가지며 다가오는 ‘기아 새천년의 희망’ 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스페인어로 ‘즐거운’, ‘힘이 넘치는’, ‘역동적’이라는 뜻을 지닌 리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취향의 글로벌 소형차를 컨셉트로 잡아 당시 큰 인기를 끌던 폭스바겐 골프, 피아트 브라보/브라바, 포드 피에스타, 토요타 터셀 등을 참고했다. 기아는 그 중에서도 적자 수렁의 피아트를 건져낸 영웅 브라보/브라바를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다.  1999.11 007 ‘어나더데이’에 출연한 릭윤을 주인공으로 쓴 기아 리오 티저 광고 리오의 길이×너비×높이는 4,215×1,675×1,440mm로 대우 라노스보다 길이는 25mm, 너비와 높이는 5~10mm 컸다.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도 주목받았는데 당시 보수적이던 기아 디자인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선과 선이 만나는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곡선의 끝에 에지를 줘 다이내믹함을 살렸다. 국내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지층을 지닌 4도어 세단 이외에 유럽에서 인기 높은 5도어 왜건도 함께 내놓다. 티타늄 성분이 들어간 녹황색을 메인 컬러로 내세우는 등 겉모습에선 개성을 물씬 풍겼지만 실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라노스보다 5~50mm 넓은 실내는 리오의 큰 장점이었는데 밝은 대시보드와 대비해 검은색 센터페시아를 적용했고 운전자의 손이 자주 닿아 세균이 자라기 쉬운 스티어링 휠, 변속레버, 주차브레이크레버는 음이온 항균 처리했다. 또 5도어 모델의 경우 5:5로 접을 수 있는 뒷좌석을 적용해 공간활용성을 높였다.  엔진은 1.3L 84마력과 1.5L 95마력, 1.5L DOHC 108마력 3종류를 얹었다. 그 중 ‘MI-TEC’이라 불린 DOHC 엔진은 전자 배전방식인 DLI 시스템을 적용하고 연소실과 흡배기 시스템을 개선해 1,500~4,500rpm의 넓은 토크밴드와 아벨라보다 최대 20% 향상된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1999.12 세단과 왜건(RX-V) 2종류로 데뷔했다 여기에 5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리버스 울림방지기구 및 2단 더블 싱크로나이저를 단 수동과 크레도스용 솔레노이드 밸브를 적용한 자동변속기 모두 부드러운 조작감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시장에서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서툰 것은 서스펜션도 마찬가지였다. 토요타 터셀을 벤치마킹해 기아 소형차로는 처음으로 뒤쪽에 토션 빔 타입을 썼지만 완성도가 뛰어나진 못했다. 2002.082002년 페이스리프트 개념의 리오SF가 등장했다 데뷔 당시 리오의 라인업은 1.3 DLX, 1.5 STD와 EL, 1.5 DOHC KL로 이뤄졌다. 이중 STD는 4도어 세단만 나오고 나머지는 세단과 5도어(RX-V)가 함께 나왔으며 차값은 기본형이 575만원, 최고급형은 710만원이었다. 엑센트와 라노스 등 쟁쟁한 라이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아는 고객의 요구를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글라스안테나, 알루미늄 휠 및 광폭타이어, 뒷좌석 파워원도, 틸트 스티어링 등을 적용하면서 NVH를 개선한 ‘밀레니엄 리오’를 2000년 6월에 선보였고 2001년 4월 6일 그릴 사이즈를 키우는 등 앞 얼굴을 손보고 실내 편의장비를 보강한 뉴 리오를 발 빠르게 출시했다.  2004.051.5 Si 기본형에 CDP와 발수글라스 등을 적용한 2005년형 리오SF 스페셜 그리고 2002년 8월, 창살 모양의 그릴을 가로로 눕히고, 뒤 범퍼의 번호판 자리를 옮기는 등 스타일을 손질하는 한편 센터페시아에 메탈 그레인을 쓰고 운전석 에어백과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를 전모델에 기본 장비로 갖춘 리오 SF를 출시하며 국내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06.06 편의성을 보강한 밀레니엄 리오 그러나 4도어 세단과 동시에 유럽 취향의 5도어 왜건을 선보이며 국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던 기아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전체 판매량에서 엑센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했을 뿐더러 왜건형인 RX-V의 판매량은 리오의 모든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적게 팔리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당시 국내 운전자들의 ‘세단 편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란에서 생산되는 등 해외에서는 인기를 누렸다. 이를 반영하듯 2005년 4월 신형 프라이드 데뷔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그 이름이 사라졌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프라이드가 ‘리오’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GM DAEWOO KALOS 2013-09-10
유럽형 해치백을 지향했던 지엠 대우 칼로스  2002년 5월 출시된 대우 칼로스(Kalos)의 시작은 1999년 1월이었다. 대우의 경영진은 유럽 시장에 어울리는 전략모델을 꿈꿨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B세그먼트보다 큰 차체의 라노스(Lanos)로는 수출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2002.05 2002년 5월 칼로스의 데뷔를 알린 티저 광고 이러한 이유로 본격적인 B세그먼트 모델(원래는 코드명 S100으로 출발했지만 회사 사정상 라노스 시장도 대체할 목적으로 코드명 T200으로 변경)을 고려했고 르노 클리오, 푸조 206 등을 벤치마킹해 이탈디자인에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겼다. 이탈디자인은 작은 차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통적인 해치백에 원박스 스타일을 접목했다.이미지 스케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선행 엔지니어들은 기술적인 검토에 나섰다. 수많은 타당성 검토 끝에 라노스 플랫폼을 줄여 쓰는 것보다 98년부터 진행된 마티즈 플랫폼을 늘리는 프로젝트 쪽에 힘이 실렸다.   2002.07 하이루프 스타일을 강조한 크루즈 해치백 렌더링을 거쳐 실제 모습에 근접한 확정 디자인이 나오면서 프로젝트의 진행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대우를 상징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좌우의 수평균형을 강조하는 헤드램프 등 유럽 취향을 반영한 흔적이 짙었다. 작은 차체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펜더를 살짝 부풀리고 옆쪽에 캐릭터 라인을 그려 넣었다. 앞뒤 오버행을 줄여 휠베이스를 극대화했고 C필러 뒤의 조그만 사각 창으로 디자인 포인트를 주었다.외부의 손을 빌린 겉모습과 달리 칼로스의 실내는 대우 디자인 포럼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송풍구와 계기판을 비롯해 곳곳에 동그란 원을 그려 깜찍함을 드러냈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폭스바겐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카울 포인트를 멀리 두어 실내를 넓어 보이도록 했고 보조 기능의 작은 모니터를 센터페시아 위쪽에 두는 등 운전자의 편의를 도모했다. 해치백(칼로스V)과 세단 형태로 개발되었는데 실내 활용성은 해치백이 나았다. 실내의 길이×너비×높이가 1,835×1,390×1220mm로 차체가 큰 라노스보다 25mm 길고 10mm 넓으며 20mm 높았다. 특히 뒷좌석을 더블 폴딩이 되도록 만들어 2인승 밴처럼 쓸 수 있는 것이 돋보였다. 국산 소형차 중엔 칼로스 해치백이 처음 적용한 것으로 큰 물건을 싣고 다닐 때 편리했다. 더블 폴딩뿐만 아니라 6:4로 접어 화물 크기와 승차 인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실내를 활용할 수 있었다.   2003.03 1.2L 엔진으로 18.2km/L(수동)의 뛰어난 연비를 자랑했다 유럽형 해치백을 지향했던 칼로스는 엔진도 그에 걸맞은 1.2L 신형 엔진을 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지고 회사 사정상 출시 시점엔 1.5L E-TEC Ⅱ 엔진을 먼저 얹게 되었다. 라노스 엔진의 개선품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32비트 제어칩을 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고출력 86마력에 최대토크 13.4kg?m로 라이벌인 현대 클릭의 1.5L DOHC(100마력, 13.6kg?m)보다 파워가 부족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을 기본으로 아이신제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설정했다. 대우가 1,200억원을 들여 야심차게 내놓은 1.2L T4 엔진의 투입은 예상(9월)보다 더 늦어져 2003년 1월에 이뤄졌다. 최고출력 71마력, 최대토크 10.6kg?m의 성능을 내 유럽의 동급 라이벌들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칼로스의 초기 컨셉트에 어울리는 최상의 파트너였다.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수동 모델의 연비가 18.2km/L에 달할 정도였고 최저가가 669만원부터 시작되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2003.11 2003년 11월 2004년형 모델이 데뷔했다 칼로스는 데뷔 7개월 동안 1만8,000여 대가 팔리는 등 나름 선전했지만 해치백에 비해 어중간한 포지션의 세단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T250(칼로스 페이스리프트)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2005년 9월 디자인을 크게 바꿔 아예 이름을 젠트라(Gentra)로 변경해 내놓으며 해치백과 다른 길을 걸었다.  2005.08 블랙메탈 대시보드와 투톤 인조 가죽시트를 더한 2006년형 젠트라의 데뷔로 ‘V’자의 꼬리표를 뗀 칼로스 해치백은 2005년 8월 2006년형으로 거듭나면서 내장재를 젊고 스포티한 차콜 컬러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겪다 2007년 젠트라X에 자리를 내어주며 단종되었다. 칼로스는 비록 2006년 한해 동안 판매량이 채 1,000대가 안 되는 등 국내에선 큰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연평균 18만 대 이상 수출되며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애초에 대우가 개발하면서 품었던 해외 수출 전략모델이라는 특명을 충실하게 수행한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기아 쏘렌토 - 중형 럭셔리 SUV 2013-10-01
 쏘렌토의 개발은 스포티지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중형 럭셔리 SUV를 겨냥해 1999년 4월 시작되었다. 당초 현대에 인수되기 전 SG-II 라는 개발명으로 진행되다가 99년 10월부터 BL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2000년 3월 최종 고정모델이 나와 설계, 시작차 제작, 테스트 등을 거쳐 2001년 말부터 양산, 이듬해 2월 정식 데뷔했다.   2002.12 네바퀴굴림만 나오던 쏘렌토는 2003년형부터 뒷바퀴굴림 보급형을 추가했다 개발에 들어간 3,000억원의 비용이 말해주듯 쏘렌토에 쏟은 기아의 정성은 상당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중형 SUV 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먼저 시작된 스포티지 후속 개발 프로젝트를 미뤄놓고 쏘렌토 프로젝트에 총력을 다해 매달릴 정도였다. 엔진과 섀시 등 기본 골격을 완전히 새로 짜고 SUV의 주무대인 미국과 유럽의 수출을 고려해 렉서스 RX300과 메르세데스 벤츠 M클래스 등을 벤치마킹했다.  2003.07 동승석 에어백을 추가하고 2열 시트의 등받이 기울기 조절각도를 확대한 2004년형  이를 토대로 국내외 디자인팀과 해외 유명 디자인업체에 디자인을 주문해 10개의 기본 안을 추려냈고 각 렌더링의 장점을 조합해 2개의 실차를 완성했다. 실차 제작에 앞서 스케일 모델 제작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쏘렌토는 이를 생략하고 실차 상태에서 수정과 보완작업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리고 이 두 실차의 디자인을 8:2로 섞어 2000년 3월 최종모델을 완성했다.  2003.12 2004년형에서 국산 SUV 최초로 5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전체적으로 미국 시장을 지향한 디자인은 부드러운 볼륨과 강한 선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앞뒤 오버행을 줄여 당당한 비례감을 강조한 것도 이전 국산 SUV와 다른 점이었다. 데뷔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D필러를 비롯해 RX300과 닮은 디자인을 지적했지만 기아는 유행의 한 부분이라며 카피 논란을 부정했다.실내 디자인의 감성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SUV의 실용성에 세단의 감성을 접목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이나 해외 전문업체에 의뢰해 수차례 수정을 거듭한 결과였다.  데뷔에 앞서 갤로퍼의 2.5L 엔진을 개량해 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쏘렌토의 심장은 예상보다 강력했다. 현대에서 개발 중이던 A2.5 엔진을 가져와 기아가 손본 유닛으로 초기형 커먼레일(1,300바)보다 연료분사 압력을 높인 개선된 커먼레일(1,650바) 시스템을 적용했다. 덕분에 배기량은 2.5L로 라이벌보다 작았지만 최고출력은 145마력으로 쌍용 렉스턴의 2.9L(129마력)를 가뿐하게 넘었다. 굴림방식은 스위치로 변환하는 파트타임 네바퀴굴림 외에 최상급인 리미티드 트림의 경우 노면 조건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자동 배분해주는 ATT 시스템의 풀타임 네바퀴굴림을 달았다.  2005.04 보쉬 2세대 커먼레일과 VGT 기술로 최고출력 174마력을 낸 2005년형 쏘렌토 글로벌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아웃소싱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앞 더블 위시본, 뒤 5링크 타입의 서스펜션 세팅은 포르쉐에 맡겨 유럽 취향으로 다듬었고, 5단 수동변속기 외에 아이신제 4단 자동변속기를 얹어 국내와 미국 시장을 노렸다. 연비는 수동과 자동이 각각 11.5km/L와 10.3km/L를 기록했다.하나의 엔진으로만 출발한 쏘렌토는 2002년 9월 18일 V6 3.5L 가솔린 엔진을 더했고 한 달 뒤 2003년형을 내놓으면서 기존 네바퀴굴림 외에 뒷바퀴굴림의 보급형을 추가해 모두 8가지로 라인업을 확대했다. 2003년 12월 데뷔한 2004년형에선 쌍용 뉴 렉스턴의 벤츠제 5단 자동변속기를 견제하기 위해 한 박자 빨리 기존 4단 자동변속기 대신 수동 겸용 5단 자동변속기를 디젤 모델에 추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적인 대응을 통해 데뷔 2년 만에 13만2,417대가 팔리며 성공시대를 열었지만 서둘러 투입한 5단 자동변속기의 품질 불량으로 리콜의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2009.07 모노코크 형태로 바뀐 2세대 쏘렌토. 쏘렌토 R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2월 22일부터 판매된 2005년형은 VGT(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 기술과 2세대 커먼레일 시스템을 써 엔진의 최고출력이 174마력으로 오르며 2.9L 배기량의 현대 테라칸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2007년형에선 유로4 기준으로 배출가스를 줄이고 5인승 모델을 더해 인기를 이어갔다.2002년 출시 이후 2008년 12월까지 내수와 수출을 합쳐 총 80만 대 이상 판매되며 국산 중형 SUV 시장을 이끌었던 쏘렌토는 2009년 서울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모노코크 보디의 쏘렌토 R에 바통을 넘기고 단종되었다.
HYUNDAI TUSCANI 2013-12-07
현대의 3세대 스포츠 쿠페 시대를 연 투스카니 스쿠프와 티뷰론에 이어 현대의 3세대 스포츠 쿠페 시대를 연 투스카니(Tuscani)는 프로젝트명 GK로 1997년 10월부터 개발에 들어가 2001년 9월 데뷔했다. 티뷰론이 국내외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인기를 누리며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등장한 투스카니는 안팎으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현대는 투스카니를 티뷰론보다는 한 단계 고급스러운 GT 쿠페로 개발 컨셉트를 잡았다.  ▲2001년 9월 데뷔한 초대 투스카니 투스카니(Tuscani)란 이름은 고대 로마문명의 기원지였던 이태리 투스카니(Tuscany) 지역에서 가져온 것. 아반떼 XD와 플랫폼을 공유했지만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티뷰론를 통해 한껏 곡선을 강조한 현대는 투스카니의 디자인을 심플하면서도 다이내믹하게 이끄는 한편 수출 시장을 겨냥해 토요타 셀리카, 미쓰비시 이클립스, 아우디 TT 등을 벤치마킹해 품질을 향상시켰다. 현대가 투스카니를 통해 해외에서 브랜드 파워를 향상시키려고 힘썼다는 것은 국내 데뷔에 앞서 200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출품한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투스카니의 초기 광고. ‘폭발’이란 단어로 스포츠카 이미지를 강조했다엔진은 138마력 2.0L 뉴 베타와 175마력 2.7L 델타 2종류. 2.0 모델에 5단 수동을 기본으로 그랜저 XG에서 가져온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마련했고, 고성능 버전인 2.7에는 아이신제 6단 수동변속기를 짝지었다. 겉모습만 스포티한 게 아니라 2.7L 모델의 경우 0→시속 100km 가속 7초대, 최고시속 222km의 고성능을 자랑했다.  ▲2.0L VVT 엔진을 달고 등장한 2003년형 투스카니  서스펜션은 앞 스트럿, 뒤 듀얼링크 타입으로 엔진과 기어 종류에 따라 서스펜션 세팅을 달리해 지상고가 346.3~359.6mm까지 차이 났다. 타이어는 205/55 R16을 기본으로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사이즈인 215/45 R17까지 달아 다른 모델과 차별화했다.  ▲2.7에만 달던 6단 수동변속기를 적용한 2004년형 2.0 GTS Ⅱ 주행성능이 좋아진 만큼 안전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 ABS를 기본으로 달고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와 BCM(보디 컨트롤 모듈), BAS(브레이크 어시스트 시스템) 등 당시로선 첨단 능동적 안전장비를 달고 운전석과 동반석에 사이드 에어백까지 달았다. 또 버킷 시트와 듀얼 머플러 등을 적용해 스포티한 감각을 자랑했다.  ▲날렵한 범퍼로 인기를 끈 2005년형 모델 문제는 티뷰론보다 무게가 100kg 정도 무거워졌는데 엔진출력은 같았다는 점. 때문에 2.0 모델의 가속감은 매니아들의 기대치를 밑돌았다. 이런 불만을 반영해 현대는 2002년 9월 가변밸브 타이밍(VVT) 기술을 써 최고출력을 143마력으로 끌어올린 2003년형 모델을 출시했다. 단순히 출력만 높인 것이 아니라 오렌지 보디컬러를 추가하고 스테인리스 머플러 전모델 적용 등의 변화를 주었다.   이듬해 등장한 2004년형에선 블랙베젤 헤드램프를 적용하고 2.7 엘리사에만 있던 6단 수동변속기와 하드 타입 서스펜션을 2.0(2.0 GTSⅡ)까지 확대 적용했다. 2005년형에선 제법 굵직한 변화가 있었는데 한층 날렵해진 범퍼와 HID 헤드램프, VDC(능동적 자세제어 장치) 적용 등이 대표적이다.   ▲2006년 데뷔한 투스카니 페이스리프트 모델 그리고 2006년 7월 중국 광저우모터쇼를 통해 페이스리프트 성격의 뉴 투스카니가 등장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투스카니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신형의 데뷔 무대를 중국에서 가진 것이다. 아쉽게도 파워트레인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헤드램프와 휠, 앞뒤 범퍼와 머플러 등의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신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투스카니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의 스포츠카 중 가장 오랜 기간 생산된 차종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선 티뷰론으로, 그 밖의 지역에선 현대 쿠페 등의 이름으로 총 2만6,343대가 판매되며 글로벌 무대에 현대의 이름을 새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SANGYONG NEW KORANDO 2013-09-11
국내 오프로드 팬들을 사로잡았던 뉴코란도          1996.07,  이름 빼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알린 뉴 코란도의 데뷔 시절 광고 1999. 07,  99년형에서 120마력 터보 인터쿨러 디젤 엔진을 달았다 쌍용 뉴 코란도는 22년 가까이 생산되며 국내 오프로드 팬들을 사로잡았던 코란도의 뒤를 이은 모델이다. 이름을 구형과 같은 코란도로 했지만 디자인과 성격은 달라 신구 모델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코란도 훼미리와 무쏘에 이어 세 번째 쌍용의 고유 모델이 된 뉴 코란도는 프로젝트명 ‘KJ’로 199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데뷔한 후 이듬해 7월 국내시장에 런칭되었다. 뉴 코란도의 큰 특징은 파격적인 디자인. 길이×너비×높이가 4,250×1,855×1,840mm의 숏보디 SUV 스타일을 고수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판매된 코란도에서 이어진 것이라곤 동그란 헤드램프와 수직형 그릴 정도에 불과했다. 돌출된 펜더에서 정통 4WD의 다부진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도심에서도 퍽 잘 어울리도록 진화했다. 높은 운전석으로 시야가 탁 트인 실내의 감성은 세단과 비슷했다. 좌우대칭의 대시보드는 우드그레인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고 길이 1,750mm, 너비 1,400mm로 어른 4명이 편안히 탈 수 있는 공간이었다. SUV답게 실용성도 뛰어나 앞뒤 시트를 모두 접어 간이침대로 쓰거나 뒷좌석만 접어 화물 운반용으로 쓸 수 있었다.파워트레인은 무쏘의 것을 활용했다. 2.9L 디젤 엔진을 메인으로 2.0L, 2.3L, 3.2L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가장 인기를 누렸던 2.9L 디젤은 4,000rpm에서 95마력의 최고출력과 2,400rpm에서 19.6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데뷔 3개월 후인 96년 10월 자동변속기를 더하고, 97년 5월 경제성을 강조한 밴형이 나오면서 숏보디 SUV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98년 8월 라디에이터 그릴을 세로 핀 타입에서 가로형으로 바꾸고 아웃사이드미러의 사이즈를 줄이면서 휠, 스페어 타이어 커버, 테일램프 등에 변화를 준 99년형이 등장했다. 바뀐 겉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더 큰 관심은 엔진 업그레이드에 쏠렸다.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2.3L 79마력 디젤 엔진을 없애면서 101마력 2.3L 디젤 터보를 올렸고 직렬 5기통 2.9L 디젤 터보 120마력, 직렬 4기통 2.3L 147마력 가솔린, 직렬 6기통 211마력 3.2L 가솔린 등으로 엔진을 가다듬으면서 출력에 다한 목마름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가솔린 6기통 최고급 모델의 경우 국내 최초로 TOD 방식의 풀타임 네바퀴굴림을 달았다. 2000. 07,  경제성을 강조한 뉴 코란도 CT. 일부 편의장비를 조정하고 네바퀴굴림을 빼 1,190만원에 팔렸다  2005. 02,  마지막을 장식한 2005년형 뉴 코란도의 광고 2001년 2월, 쌍용 로고를 그릴 안에 넣은 2001년형 모델이 등장했다. 스페어타이어 커버의 그래픽을 바꾸고 북미안전규정을 만족시키는 차폭등과 뒤 안개등, 보조제동등을 달아 후방 안전성을 높였다. 동시에 열선내장 사이드미러와 가죽 핸들을 밴 모델에까지 기본으로 확대했다.배출가스규제가 강화되자 뉴 코란도의 엔진도 달라졌다. 2004년형으로 거듭나면서 기존 엔진을 버리고 2.9L 터보 인터쿨러 엔진으로 단일화한 것이다. 양방향 시동 리모컨 키와 배터리 세이버, MP3 오디오 등의 편의장비를 더했고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글라스 밴 버전에 열선내장 가죽시트와 CDP, 전자동 에어컨, 16인치 알루미늄 휠 등을 기본장비로 단 프리미엄 모델 TX-7을 더했다.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쌍용을 이끌었던 뉴 코란도였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새로운 모습과 신세대 파워트레인으로 태어난 기아 스포티지와 현대 투싼에 밀려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2005년 10월 국내시장에서 사라졌다.
기아 옵티마 2013-09-01
유럽형의 단단한 디자인과 고급스런 실내  1998년 기아를 품은 현대는 기아 재건을 위해 대대적인 라인업 수정에 나섰다. 당시 양사의 플랫폼은 24개나 되었고 이를 7개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크레도스의 뒤를 이어 2000년 7월 데뷔한 기아 옵티마가 그 출발점이었다. 국민차로 불릴 만큼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쏘나타(EF)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된 옵티마. 총 개발비용이 2,200억원으로 4,500억원을 들인 쏘나타의 절반 정도였고 개발 기간도 20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2000.07 EF 쏘나타 플랫폼을 활용해 조금 더 고급스럽게 완성했다 플랫폼은 공유했지만 디자인에서 두 모델의 차이는 컸다. 사실 옵티마의 디자인은 내부적으로 EF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거론되던 디자인 중 하나였다. EF 쏘나타가 우아함을 강조한 곡선을 많이 사용한 데 반해 옵티마는 직선을 강조해 남성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대형 수평 그릴과 4등식 헤드램프 때문으로, 보닛의 캐릭터 라인으로 조금 더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했다. 쏘나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옆모습. 크롬으로 두른 도어 주변과 중앙의 센터 몰딩으로 당시 유행하던 중형차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다시 뒤에 와서 날카롭게 뻗은 직선을 강조했는데 앞모습과의 통일감이 좋았다. 가로×세로×높이가 4,745×1,815×1,400mm로 쏘나타보다 35mm 길고 5mm 낮았다. 휠베이스는 2,700mm로 같았다.   2000.09 미쓰비시로부터 공급받은 무단변속기를 단 ‘옵티마 SS-CVT’ 실내 분위기는 쏘나타보다 고급스러웠다. 캐빈룸 자체는 그대로였지만 내장재를 바꿔 수치상으로 실내가 다소 넓었다. 우드 그레인과 크롬 장식을 많이 썼고 센터페시아를 21° 경사로 눕혀 스위치 조작성을 높인 것이 특징. 편의장비도 충실해 빗방울 감지 와이퍼, 적외선과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솔라 컨트롤 글라스, 오토 라이트 컨트롤, 사이드 에어백, ECM 미러 등을 모델별로 기본 또는 옵션으로 마련했다.  2001.03 고급 편의장비를 기본화해 내놓은 위너 스페셜 엔진은 EF 쏘나타의 것을 가져와 배기계통을 다듬고 ECU 등을 새로 짜 넣었다. 배압을 줄이고 점화진각을 바꿔 점화시기를 조절해 튠업했다. 1.8L 및 2.0L 시리우스Ⅱ와 V6 2.5L 델타 엔진은 각각 134마력, 149마력, 176마력을 냈다. 여기에 수동 5단과 자동 4단을 메인으로 조합하고 2.0과 2.5L 모델에는 그랜저 XG의 ‘5단 H매틱’ 수동 모드 모듈을 4단 자동에 접목한 스텝트로닉스 변속기를 사용했다.  2001.09 2002년형 모델은 ABS를 모든 모델에 기본으로 하고 특수 페인트 도장을 사용했다 필러 프레임을 포함해 총 13군데를 보완한 덕에 차체 강성이 쏘나타보다 나아졌다. 서스펜션 세팅에도 힘써 2.0 VS 이상에 전자 컨트롤 서스펜션(ECS)을 달고 리어 서스펜션의 토인 각을 조절하는 DTC(다이내믹 토인 컨트롤) 시스템을 붙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섀시 튜닝이 승차감 위주로 이뤄져 크레도스의 날카로운 움직임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데뷔 당시 라인업은 가장 싼 1.8 DOHC(1,225만원)를 시작으로 총 11가지였다. 최고급형인 2.5 V6는 스텝트로닉 AT와 트립컴퓨터, 앞좌석 히팅시트, 솔라 컨트롤 글라스를 기본으로 달고 고급 AV, ECS, EPS, TCS, 사이드 에어백, 내비게이션 등을 옵션으로 두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미쓰비시로부터 공급받은 무단변속기(CVT)를 얹은 ‘옵티마 SS CVT’ 모델을 출시했고 2001년 3월 차속 감응형 파워핸들과 ECM 미러 등 고급옵션을 기본으로 달아 차별화한 ‘VS 위너’와 ‘MS 위너’를 추가해 40~50대까지 수요층을 확대했다.  2004.09 자외선 차단유리와 천연가죽시트 등의 편의장비를 추가한 2005년형 옵티마의 영역 넓히기는 2002년에도 이어져 옵티모 리갈(REGAL)을 투입하며 단종된 포텐샤를 대신했다. 크롬 도금의 수직형 그릴을 달고 앞뒤 램프 사이즈를 키운 리갈은 옵티마와 엔터프라이즈 사이의 틈새 모델로 현대 마르샤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2005년형에선 사이드 시그널 램프를 클리어 타입으로 바꾸고 트렁크 손잡이 윗부분을 크롬으로 처리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  옵티마는 데뷔 초기 유럽형의 단단한 디자인과 고급스런 실내로 인기를 누리며 일평균 800대 계약을 이루는 등 단숨에 중형차 시장의 강자에 등극했다. 그러나 이후 잦은 리콜과 엔진 수급 문제를 겪으면서 차츰 인기를 잃다 2005년 9월 로체에 바통을 넘겼다.
현대 에쿠스 2013-08-25
국산 대형차 시장을 단번에 휘어잡은 에쿠스의 행보 80년대 초만 해도 국내 메이커들의 기술 수준은 형편없었다. 때문에 선진 메이커들과의 기술 교류 내지는 기술 도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초창기 포드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현대차는 82년 일본 미쓰비시가 10%의 자본참여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친포드 전략에서 친미쓰비시로 돌아선 뒤에 내놓은 첫 번째 합작품이 그랜저 2.0(1986). 이후 뉴 그랜저와 갤로퍼, 싼타모 등으로 이어지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99년 4월 기함 에쿠스(프로젝트명 LZ)를 선보이면서 정점에 달했다.  미쓰비시 데보네어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던 그랜저와 달리 에쿠스는 개발초기부터 두 회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맞대었다. 94년 10월 프로젝트 팀을 가동해 현대 3회, 미쓰비시 4회 등 총 7번의 1:1 스케일 모델 평가를 거쳐 최종 디자인을 완성했다. 양쪽의 디자인을 절충하는 선에서 의견을 조율했지만 외부 디자인은 미쓰비시, 실내는 현대의 입김이 강했다. 97년 최종모델을 확정하고 금형설계와 시작차 테스트 등을 거쳐 약 4년 7개월 만에 완성차를 내놓았다.   1999.09 배기량을 줄이고 편의장비를 조정한 V6 3.0 모델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에쿠스(EQUUS)란 이름은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으로, 이름처럼 차체 크기와 편의장비 등에서 라이벌을 앞섰다. 길이×너비×높이가 5,065×1,870×1,465mm로 쌍용 체어맨(5,055×1,825×1,465mm)과 길이는 비슷했지만 너비에서 45mm의 차이를 보였다. 반면 휠베이스는 2,830mm에 그쳐 체어맨(2,900mm)보다 약간 짧았다. 당당한 덩치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 스타일은 대형 프론트 그릴(총 4가지 형태로 나왔다)과 커다란 헤드램프 및 테일램프의 영향이 컸다. 특히 초대형 테일램프는 ‘뒤따라오는 운전자 공격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밝고 위협적이었다. 실내는 현대가 만든 초기 디자인을 베이스로 미쓰비시의 아이디어(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센터페시아)를 살며시 얹은 형태였다. 뉴 그랜저나 다이너스티처럼 동반석 시트의 가운데 부분을 평평하게 펼칠 수 있도록 설계해 뒷좌석 승객의 편의성을 높였고 리무진의 경우 뒷좌석을 독립식으로 만들어 소퍼드리븐카의 성격이 짙었다.  2001.084.5L MPI 엔진과 커튼 에어백 등을 추가한 2002년형  보디 길이와 편의장비에 따라 세단과 리무진 두 종류로 나왔고 V6 3.5L와 V8 4.5L 엔진을 얹어 총 네 가지 모델로 초기 라인업을 꾸렸다. 다이너스티의 것을 개량한 V6 엔진은 최고출력 220마력을 냈고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V8에는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직분사 기술을 써 최고출력 260마력을 냈다. 여기에 5단 자동변속기를 물렸는데 기본형인 JS350에는 그랜저에 썼던 5단 H-매틱을 사용했고, 나머지에는 ‘스킵 시프트’ 기능을 갖춘 새 5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었다.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에 전자제어 기술을 접목해 뛰어난 승차감을 보인 것도 에쿠스만의 매력이었고 4.5 모델에 VDC(자세제어장치)와 TPMS(타이어 공기압 경고 시스템)를 기본으로 채택하는 등 안전장비도 충실했다.   2002.08 리피터를 겸비한 사이드미러와 액티브 헤드레스트 등을 추가한 2003년형 모델 수입차를 겨냥해 고급차 시장에 주력했던 에쿠스는 6개월 뒤 배기량을 줄인 V6 3.0L 203마력 엔진을 얹은 엔트리 모델 GS300과 JS300 모델을, 이듬해 4월에는 GS300과 JS350에 바탕을 둔 실속형 밸류를 더하면서 고객층을 30~40대 고소득 자가운전자로까지 넓혔다. 2005.02252마력 V6 3.8L 람다 엔진을 더한 2005년형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불만은 직분사 기술을 쓴 V8 엔진. 기대치를 밑도는 연비와 심약한 내구성이 골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형부턴 은근슬쩍 V8 MPI 엔진으로 대체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튼 에어백을 도입하고 리어램프와 수퍼비전 클러스터를 LED 타입으로 바꿨다.  2007.06 실내를 알칸타라로 꾸민 ‘에쿠스 알칸타라 셀렉션’이 2007년 나왔다  2009.03 확 바뀐 디자인으로 거듭난 2세대 에쿠스 국산 대형차 시장을 단번에 휘어잡은 에쿠스의 행보는 거칠 게 없었다. 액티브 헤드레스트와 방향지시등 내장형 사이드미러를 채택한 2003년형과 라디에이터 그릴과 알로이 휠, 램프와 트렁크 리드 디자인을 바꾼 2004년형을 차례로 내놓으면서 국산 라이벌과 수입차를 견제했다. 2005년 2월에 V6 3.8L 람다 엔진을 투입하고 3.0 모델을 단종시키는 등 라인업을 정비해 쌍용 뉴 체어맨에 잠깐 빼앗겼던 선두 자리를 되찾은 에쿠스는 2009년 2세대 모델이 나으며 지금까지 국산 기함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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