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내셔널 오토모빌 뮤지엄 하라 컬렉션
2019-03-18  |   22,399 읽음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내셔널 오토모빌 뮤지엄 하라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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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내셔널 오토모빌 뮤지엄(이하 하라 컬럭션)은 네바다 북부 리노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중의 하나로 알려진 리노는 한때 카지노를 비롯한 각종 유락시절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라 컬렉션의 자동차는 무려 200여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미국 대륙을 누볐던 다양한 자동차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하라 컬렉션은 네바주의 북부인 리노의 트러키강 근처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의 많은 선배들이 말하기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일단 내셔널 내지는 지역이름이 붙은 박물관은 반드시 가야 한다고 했다. 당당하게 내셔널의 이름을 가진 하라 컬렉션은 척박한 환경을 지닌 리노의 흥망성쇠를 모두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89년 11월 5일에 개장한 하라 컬렉션은 리노를 가장 번성한 도시로 만든 빌 하라의 컬렉션 중에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자동차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전체 전시 규모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엘비스 프리슬리, 존 웨인 등이 소유했던 스타의 자동차가 14대, 영화에 출연했던 자동차 5대, 레이스 챔피언 머신 8대를 포함해 총 209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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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는 라스베이거스 이전에 카지노 산업이 번성했던 지역으로 지금도 유명 카지노들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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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동차는 마차와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리노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빌 하라의 유산 

하라 컬렉션은 빌 하라가 수집했던 자동차를 전시한 곳이다. 네바다의 척박한 지역이던 리노에 터를 잡은 빌 하라는 카지노와 호텔 사업으로 큰 부를 얻었다. 도박의 천국이라 불리던 라스베이거스가 생기기 전까지 리노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박과 환락의 도시였다. 그 중심에는 빌 하라가 설립한 하라 호텔&카지노가 있었으며 지금도 리노 시내에는 대규모 카지노들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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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자동차들은 모두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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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이 자동차 회사를 상징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원래는 소유주가 원하는 장식에서 유례했다


1978년 빌 하라가 사망 때까지 수집한 자동차는 무려 1,450대로 네바다 스파크에 있는 창고에서 보관 중이었다. 이후 호텔 체인인 홀리데이 인이 빌 하라의 컬렉션을 모두 인수한 후 일부는 1980년대 공개 경매를 통해 판매했으며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차들 175대를 선정해 비영리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는 미국 역사 상 가장 큰 규모의 기증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당시 네바다 주지사였던 로버트 리스트는 하라 컬럭션을 보존하기 위한 법률 제정까지 계획하면서 홀리데이 인이 진행하려는 일반 경매를 늦추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설립을 위한 비영리 박물관 재단이 설립되었고 그때 기증된 자동차들이 현재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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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카지노 같은 곳은 리노의 밤거리를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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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컬렉션의 입구는 각종 표지판을 형상화 했다


박물관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이 구역을 갤러리라 부르는데 각 갤러리는 연도 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갤러리1은 189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미국 도로를 누볐던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고 갤러리2는 1910년대~1930년대, 갤러리3은 1930년대~1950년대, 갤러리4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다. 갤러리4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경주차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각 구획을 연결하는 통로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국 거리를 테마로 꾸몄다.

현재 미국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중에 미국의 자동차 역사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첫 갤러리부터 처음 보는 차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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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뿐 아니라 시대별로 자동차와 관련된 소품도 다양하게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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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경쟁했던 페라리 625A


내연기관이 보편화되기 전인 192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는 전기차와 증기차의 비율이 약 70% 가까이 되었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는 스탠리, 드 디옹, 캐피탈과 필리온을 비롯한 다양한 증기차가 가득했다. 증기기관은 효율도 낮고 부피도 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차들이 미국의 도로를 달렸다는 사실 자체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투박한 디자인에 효율(실제로는 상당히 낮았던)을 내세운 증기차는 마차 시대가 끝나감에 따라 마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도로가 빠르게 정비되었고 사람들의 생활도 바뀌기 시작했다. 마차 시대에 비해 도시의 개념이 다양해졌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감에 따라 생활반경도 점점 넓어졌다. 

1900년 무렵에는 패커드 같은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패커드의 가격은 약 1,200달러로 드 디옹이나 카멜론, 올드모빌 같은 회사들도 속속 자동차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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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차는 머큐리 1949년식 9CM으로 제임스 딘이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탔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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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와 갤러리는 거리를 테마로 꾸며진 공간으로 이어진다


증기차와 내연기관이 서로 경쟁하던 시절이다. 증기기관의 낮은 효율성에 비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내연기관 차가 속속 등장했지만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은 증기차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전기차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1912년 베이커가 내놓은 V 스페셜은 당시 판매 가격이 2,700 달러로 패커드의 두 배가 넘었다. 미국 내 전기 공급이 원활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지금 만큼이나 높았다. 당시 내연기관 엔진은 대부분 1기통이었으며 공랭식이었다. 머지않아 2기통을 넘어 4기통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공랭식이었으며 수랭식은 한참 후에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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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컬렉션은 시대 별로 전시차들을 분류해 놓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1908년 등장한 포드 모델 T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직렬 4기통에 2단 변속기를 갖춘 모델 T는 그야말로 미국인들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혁신적인 대량생산방식 덕분에 판매 가격은 650달러로 떨어졌다. 헨리 포드가 내세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동차’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0년대부터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보다 다양해진다. 단순한 운송기구의 개념을 넘어 화려한 디자인과 높은 출력,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개의 둥그런 헤드라이트는 이 시대의 상징과도 같다. 크라이슬러와 패커드, 듀센버그, 캐딜락, 올드모빌, 쉐보레, 폰티악, 맥스웰, 오버랜드, 스튜드베이커 같은 회사들의 황금기가 막 시작되던 시기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가 더 많지만 전형적인 미국차의 모습이 이 때 갖춰졌다. 유럽차에 비해 큰 차체, 섬세함 보다 덩어리에서 오는 넉넉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엔진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형 회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자체 엔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직렬 4기통부터 직렬 8기통까지 비교적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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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갤러리1로 이어지는 복도는 미국의 시대 상을 보여주는 그림이 양쪽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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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7번이나 했던 사업가 빌 하라의 일대기도 자동차 만큼이나 흥미롭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차의 아름다움은 유럽에 뒤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유선형 디자인이 각광을 받으면서 아메리칸 머슬카와 럭셔리 세단이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차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때의 미국차는 저마다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여기에 다양한 보디 스타일도 속속 등장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세단과 컨버터블, 스포츠카의 개념이 상당히 모호했을 뿐 아니라 보디 형태도 비슷했다. 이런 차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보디 스타일도 다양해졌고 다양한 편의장비와 강력한 출력을 내세웠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미국차의 스타일이 정립된 시절도 이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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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식 토마스 플라이어는 1908년에 열린 뉴욕 파리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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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차들의 인기도 높았지만 규모의 경쟁에서는 늘 밀렸다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차들은 화려한 내장제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미국인들의 생활에 속속 파고들었다. 쉐보레 콜베어와 포드 머스탱, 선더버드 같은 차들이 데뷔 시기가 이 무렵이다. 각 메이커 사이에 치열한 출력 경쟁과 팽팽한 라이벌 구도가 유지되던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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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주차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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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츠사의 1913년식 시리즈 B


반면 경제논리에 밀려 그동안 명맥을 유지했던 소규모 메이커들은 점점 모습을 감추었다. 어찌 보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불리는 미국 시장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하라 컬렉션의 흐름은 여기서 마무리 된다. 오일 쇼크와 경기 불황, 경제성을 강조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속속 미국에 상륙하면서 전통적인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입지가 위협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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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수단 디자인의 전설이라 불리는 1913년식 푸조 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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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에 504마력의 출력을 가진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뒤센버그. 레플리카라는 표기가 있었다


하라 컬렉션에는 미국 자동차 역사를 구석구석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안에는 개인의 추억도 있으며 풍요롭던 시절의 향수도 있고 미국 자동차 역사의 흥망성쇠가 서려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 자동시 시장에는 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가 존재했다. 이들 중에는 단 몇 년 만에 파산한 회사도 있고 100년 넘게 버티면서 현재에 이르는 회사도 있다. 다양한 모습, 다양한 시도, 다양한 차종이 활약했던 미국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가장 잘 설명해 놓은 곳이 바로 하라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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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와 엔진 일부를 구리로 제작한 1921년식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당시 판매가는 16,000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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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리에 스리 휠러 페이튼(1903년)

1895년 설립되어 미국 최초로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만든 회사다. 사진의 모델은 스리 휠러 페이튼으로 3기통 엔진으로 12마력을 냈다. 듀리에의 첫 자동차인 듀리에 모터 왜건은 1893년 매사추세스 스프링필드의 테일러 거리에서 선보였다. 모터 왜건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가솔린 엔진차로 알려져 있다. 이후 회사 규모를 키워 발표한 스리 휠러 페이튼은 이름처럼 삼륜차였는데, 당시에는 혁신적인 구조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파트너간의 싸움이 시작되고 듀리에는 1917년 파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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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라이트 로드스터(1903년)

1906년 뉴욕에서 설립된 프랭클린은 미국 최초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고급차들과도 경쟁했던 프랭클린이 1903년 내놓은 라이트 로드스터는 공차 중량 450kg의 스포츠 모델이다. 엔진은 공랭식 4기통을 사용했으며 최고 출력은 10마력 정도였다. 라이트 로드스터는 기본형 외에도 뒷좌석이 있는 GT도 함께 선보였으며 본격적인 스포츠카 시대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제공황의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1934년 파산했다. 프랭클린은 라이트 로스터를 포함해 총 15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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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 튜더 투어링(1904년) 

1900년에서 설립되어 1924년에 파산한 녹스는 초기 삼륜차로 자동차 시장에 등장했다. 녹스 역시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던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차종은 뒷자리에서 조향할 수 있는 차도 있었다. 튜더 투어링은 4인용 승용차의 모습이다. 엔진은 공랭식 2기통을 사용했으며 최고 출력은 10마력 정도를 냈다. 단순한 보디 스타일을 가진 튜더 투어링은 지붕이 있는 구조였는데 도어가 없는 대신 지붕에서 내려오는 차양을 장착했다. 출시 당시 판매 가격은 2,400달러로 비싼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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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12 마운틴 왜건(1913년)

증기차가 인기를 끌던 시절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회사가 스탠리이다. 결국 내연기관과 경쟁에서 패하긴 했지만 스탠리 엔진은 지금도 많은 공학도들이 연구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 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12 마운틴 왜건은 스탠리 증기 엔진을 올린 12인승 승합차이다. 나들이용으로 설계된 이 차는 앞쪽에 커다란 보일러를 장착했으며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생산되었다. 승합차 형식의 12 마운틴 왜건은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형태였으며 덩치 역시 당시에 등장했던 자동차들에 비해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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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서 시리즈 J 타입35(1913년)

‘젊은이들의 드림카’ 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타입35는 2인승 로드스터이다. 타입35의 가장 큰 특징은 모터스포츠에서 활약과 시속 140km 이상을 낼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꼽을 수 있다. 1910년부터 생산된 타입35은 최고 출력 55마력을 냈으며 4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파격적인 디자인과 모터스포츠에서 우승으로 탄탄한 입지를 다진 타입35는 1914년까지 생산되었다. 당시 판매 가격은 2,600 달러로 일반 고급차보다 비쌌다. 젊은이들의 드림카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이 차를 살 수 있는 젊은이들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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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모빌(1937년)

프랭클린 출신 엔지니어인 칼 도만과 에드워드 마크의 실험작인 에어로모빌은 단 1대만 제작된 모델이다. 1934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이 차는 차체의 형상이 연비에 미치는 영향과 새로운 공랭식 엔진 개발에 초점을 둔 실험적인 차였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유선형 보디에 루프와 사이드 패널까지 공기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뒷모습이다. 물고기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는 고래의 꼬리를 형상화한 듯 길게 뻗어 나와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에어로모빌과 비슷한 디자인이 선보인 기시는 1940년대 이후인데 이후 개발되는 차의 디자인과 공기역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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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코르세어(1938년) 

6인승 2도어 쿠페인 팬텀 코르세어 역시 단 한 대만 제작된 모델이다. 하인즈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 패밀리의 러스트 하인즈가 디자인하고 캘리포니아의 코치 빌더 보먼&슈워츠가 제작한 팬텀 코르세어는 150마력을 내는 라이커밍제 V8 4.7L 엔진을 탑재했다. 컨셉트 모델로 제작되어 디자인과 기능 모두 독특했는데 최근에 나오는 첨단 자동차와(기계적인 스위치가 없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러스트 하인즈는 팬텀 코르세어의 가격을 1만2,500달러(2010년 가치로 약 37만 달러)로 책정하고 양산 계획을 세웠으나 1939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계획은 백지화된다. 2002년 발매한 비디오 게임 마피아에서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면 잠금 해제 되는 희귀 아이템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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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페어레인 500 스카이라이너 리트렉터블 하드톱 (1957년)

하이드 어웨이 하드톱 방식의 페어레인 스카이라이너는 지붕 전체가 트렁크에 수납되는 구조이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4만8,393대가 생산되어 미국차 중에 비교적 생산량이 적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하이드 어웨이 하드톱 방식은 페어레인 스카이라이너가 생산 되는 동안 포드의 다른 브랜드에는 전혀 공급하지 않았다. 두 부분으로 구성된 트렁크 리드는 구조가 복잡하고 작동 메커니즘 역시 매우 복잡했다. 천정 역시 두 부분으로 접혀지며 유압이 아닌 전기 모터로 구동된다. 복잡하지만 신뢰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트렁크의 길이 역시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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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리(1977년)

지프 왜고니어의 보디에 페라리 365GT의 V12 4.4L 엔진을 이식한 제라리는 빌 하라가 제작한 사륜구동 자동차이다. 원래 빌 하라는 엔초 페라리에게 사륜구동 모델 제작을 제안했는데 거절되면서 직접 제작에 나선 것. 페라리 356GT의 엔진과 구동계를 왜고니어의 차체에 결합해 직접 시운전을 하기도 했다. 1969년 제라리가 처음 나왔을 때 페라리와 왜고니어를 뒤섞은 디자인이 큰 비판을 받아 1977년 두 번째 모델을 제작할 때는 왜고니어의 외관 디자인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실내는 페라리 365GT의 부품을 대거 사용했다. 1969년에 제작된 첫 모델은 2008년 이베이를 통해 판매되었고 1977년에 제작된 두 번째 모델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제라리이다. 제라리라는 이름은 페라리에서 앞머리 글자만 지프의 J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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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k 금장 드로리언(1981년)

하라 컬렉션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금장 드로리언은 총 두 대가 제작되었다. 한 대는 LA에 있는 피터슨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고 나머지 한 대가 하라 컬렉션에 있다. 1980년에 제작된 금장 드로리언은 차체 전체를 24k 금으로 도금한 특별 모델이다. 원래 모델은 스테인레스 스틸 보디다. 하라 컬렉션의 드로리언은 사업가인 셔우드 마샬이 구입 후 하라 컬렉션에 기증한 모델로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로 차대번호는 4300이다. 피터슨의 금장 드로리언은 4301이며 자동변속기 모델이다. 드로리언은 1975년 존 드로리언이 설립한 회사로 한 개의 모델(드로리언)만 생산하고 1982년 파산했다.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등장하는 차가 바로 드로리언이다.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류장헌 

현지 코디네이터  Johan Lee(DRIVE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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