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 쉬럼프 컬렉션 뮐루즈
2019-10-24  |   8,745 읽음

세계 최대 부가티 컬렉션이 있는 곳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 쉬럼프 컬렉션 뮐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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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가티 컬렉션을 보유한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은 전시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방직공장 터를 그대로 이용한 이곳은 20세기 초반 유럽 도시를 재현해 놓은 전시 테마가 인상적이다. 바퀴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출력 경쟁이 심했던 시절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들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둘러보면 자연스럽게 자동차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Cité de l’Automobile, Musée national de l’automobile, Collection Schlumpf라 불리는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은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인접 지역인 알자스 뮐루즈에 있다. 40대 이상이라면 익숙한 알퐁소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끊임없는 부침이 있었던 곳이다. 알자스 와인이야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철광석의 약 90%가 이 지역에서 채굴된다고 하니 예로부터 프랑스의 산업을 이끌어온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접국가인 독일과의 분쟁도 많았고 결국 보불전쟁 패배로 이 지역을 독일에게 넘겨주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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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의 역작 타입 41 실물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뿐이다 


프랑스가 다시 이 지역을 돌려받은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 알퐁소 도데의 소설과 달리 알자스 사람에게 프랑스든 독일이든 국가에 대한 개념은 그리 확고하지 않다. 지금도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쓰며 직장은 프랑스에서, 시장은 독일에서 보는 경우도 많다.


독일에서 뮐루즈로 들어가는 루트는 과거 랠리 코스로 유명했던 블랙 포레스트(Schwarzwald)를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구석구석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가 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가 끊이질 않았던 독일과 달리 프랑스어 표지판이 보이자 거짓말처럼 화창한 날씨가 나타났다. 햇빛조차 잘 보이지 않던 우중충한 하늘을 빠져 나오니 온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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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가 보디를 만들던 목업도 재현되어 있다


쉬럼프 형제가 남긴 복잡한 유산

1978년 공식 개장한 국립 프랑스 자동차 박물관은 규모나 소장품의 가치로 봤을 때 여러 가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98개 자동차 메이커의 약 500여대 전시차는 연간 200만 명의 방문객이 관람하고 있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국립 프랑스 자동차 박물관의 규모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반면 이 박물관이 개장되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공방과 쉬럼프 형제의 도주 등 유럽의 근현대사만큼이나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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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비했던 클래식 경주차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곳은 한스, 프리츠 쉬럼프 형제가 소유했던 컬력션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은데, 전 세계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중에 가장 복잡한 사연일 것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쉬럼프 형제는 어머니의 고향인 뮐루즈로 이주해 1935년 방적사업을 시작, 2차 세계대전 거치면서 사업을 키웠다. 현재 박물관이 있는 뮐루즈 외에도 말머스파흐에도 대규모 공장이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형제 중 프리츠는 부가티를 비롯한 스포츠카 애호가로 직접 레이스에 출전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다. 쉬럼프 형제는 재산을 모으면서 부가티와 페라리, 고르디니 등으로 컬렉션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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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코크가 등장하기 전의 자동차 제조방식


1960년 여름에는 한 번에 부가티 10대를 인수하기도 했으며, 프리츠는 부가티 클럽 주소록에 있는 모든 오너에게 편지를 보내 구매를 제안하기도 했다. 1962년에는 50여대에 육박하는 부가티를 구매했고 1963년 봄에는 부가티 르와이얄 쿠페 나폴레옹을 비롯해 에토레 부가티 개인 소유 모델까지 추가로 18대를 확보한다. 1967년 쉬럼프 형제의 부가티 컬렉션은 무려 105대로 늘어났으며, 40여명의 전문 인력이 컬렉션을 복원하거나 관리했다. 당시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컬렉션이었다. 그들의 컬렉션을 방문한 몇몇 부가티 클럽 회원과 자동차 수집가들도 그 규모에 놀랐다고 전해지는데, 당시까지는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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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자동차를 테마로한 거대하고 웅장한 조형물이 있다 


1970년대 중반 전 세계적으로 섬유 관련 사업이 아시아로 옮겨가면서 쉬럼프 형제의 사업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뮐루즈 공장과 함께 운영하던 말머스파흐 공장에서 노동자 해고가 시작되고 이 여파로 발생한 유혈사태는 경찰이 개입할만큼 심각했다. 1977년 섬유 연합 운동가들이 뮐루즈 공장을 장악했을 때 이들은 쉬럼프 형제의 컬렉션을 발견한다. 당시 이들이 발견한 컬렉션은 복원 중인 것을 포함해 600여대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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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 35는 초창기 그랑프리에서 활약했던 부가티의 대표적인 경주차다 


결국 형제는 스위스로 도주하고 여생을 바젤에서 보낸다. 그러나 임금 체불과 세금 회피 고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뮐루즈와 말머스파흐 공장은 섬유 연합과 노조가 점거하면서 이중 뮐루즈의 컬렉션을 일반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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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스포츠카는 항공기의 디자인을 차용했다 


쉬럼프 형제의 컬렉션이 세상이 알려지자 프랑스 정부와 노조를 포함한 여러 채권자들은 컬렉션을 인수해 손실을 복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컬렉션의 해체와 해외 수출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프랑스 국무원으로부터 승인되고 1979년에는 컬렉션 건물의 폐쇄 명령이 시행되었다. 약 2년에 걸친 조율 끝에 뮐루즈 공장의 쉬럼프 컬렉션은 국립 자동차 박물관 협회가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뮐루즈시, 알자스 지방 지역위원회, 파리 오토쇼, 프랑스 자동차 클럽이 나서 공장과 컬렉션을 복구했고, 1982년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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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볼 수 없는 투박한 직렬 8기통 엔진의 피스톤과 크랭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은 지금껏 방문했던 자동차 박물관 중에 최고의 시설과 큐레이팅을 갖춘 곳이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입구의 거대 조형물을 지나면 본격으로 자동차 역사에 대해 공간이 나타난다. 1890년 무렵에 유럽에는 약 250여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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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타입 41은 보디형태가 모두 다르다 


대부분 대장간이나 마차를 만들던 공방에서 시작한 자동차 회사는 이후 산업의 변화, 내연기관의 등장과 함께 재편되었다. 250개가 넘었던 회사 중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10%도 되지 않는 다는 점을 생각하며 이 업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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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의 경주차들 


다양한 엠블럼과 상징물, 주문 제작 방식에 의존하던 자동차는 증기기관과 전기차를 거치면서 내연기관에 그 자리를 내준다. 특허를 기준으로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인 메르세데스-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등장하기 전에도 상당히 많은 종류의 자동차들이 유럽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의 자동차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오히려 마차에 더 가깝다)에 딱히 이름도 없었다. 회사 마다 부르는 명칭도 제각각이었고 상표권이나 특허에 대한 개념도 희박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모델도 꽤 많았다. 자동차의 안전 기준이나 공업 표준화가 정립된 시기는 생각 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 대다수는 50년 이내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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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장은 전기차를 타고 둘러 볼 수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관람을 시작하고 초반 2시간 정도는 알고 있는 자동차 메이커가 거의 없었다. 르노의 이름을 보면서 반가워했던 건 한 50여대 쯤지나서였다. 1930년쯤 와야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나 둘나타나기 시작한다. 1950년대부터는 자동차 디자인의 황금기가 열린다. 디자인 하나로 승부했던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대표 모델을 한 자리에서 같이 볼 수있는 기회는 결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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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가 자리를 잡아가던 1950년대 그랑프리 경주차


이곳이 다른 자동차 박물관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전시 규모도 규모지만 전시 방법에 있다. 방적 공장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직접 조명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자연 채광을 활용하고 있다. 특별한 소품 없이 자동차만으로 그특징을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자동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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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차 공간을 지나면 스포츠카와 레이싱카를 모아 놓은 공간이 나온다. 르망에 참가했던 프로토타입 경주차부터 F1 머신, 랠리카 등 레이스라 불리는 모든 카테고리에 출전했던 차들이 가득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고르디니와 부가티 경주차만 모아 놓은 곳인데 금전적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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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전에 유럽에는 25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있었다 대부분 마차를 만들던 곳이나 대장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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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대부분이 통으로(어셈블리 형태) 설계된 부가티의 엔진은 정밀도가 상당히 높았다


야외에는 작은 테스트 트랙이 있다. 전시를 위해 리스토어를 마친 차들이 최종 테스트를 받는 공간이다. 주말에는 여기서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고 평일에는 클래식카 시험 주행을 볼 수도 있다. 아주 큰 공간은 아니지만 트랙과 관중석이 있고 오래된 차들이 달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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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르와이얄 타입 41 쿠페 드빌

부가티의 대표 모델인 타입 41은 총 6대가 만들어졌다. 타입 41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6대는 모두 디자인과 보디 형태가 다르다. 원래 25대를 만들려고 했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실제 제작은 6대로 끝났고 6대 모두 현재까지 남아있다. 직렬 8기통 12L 엔진을 탑재한 타입 41은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가 20살 때 디자인 했으며 전시차는 에토레 부가티의 자가용으로 사용된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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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 타입 8C 2.9A 코치(1936년)

알파 로메오의 아이콘 1750의 후속으로 등장한 8C 2.9A는 1936년 밀레밀리아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직렬 8기통 2.9L 엔진을 얹은 이 차의 최고 속력은 220km/h로 알파로메오의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유명했다. 성능 뿐 아니라 유려한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데 타이어를 보디 안쪽으로 넣어 공기저항을 최소화 한 공력 디자인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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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타입 57S 아탈란테 쿠페(1936년)

부가티 모델 중에 가장 유명한 타입 57은 비교적 다양한 버전이 존재했다. 이중 S가 붙은 모델은 공기역학을 고려해 차체를 낮춘 모델로 타입 57의 전체 생산량 710대 중 43대가 57S이다. 장 부가티가 디자인을 담당한 타입 57은 부가티 모델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클래식카 경매 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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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보 모노플레이스 GP 26C(1948년)

그랑프리에 나가기 위해 싱글 시터로 설계된 탈보 모노플레이스는 안타깝게도 레이스에 출전하지 못한 비운의 경주차이다. 6기통 4.5L 엔진을 사용한 모노플레이스의 최고 속력은 260km/h로 당시 경주차의 성능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탈보는 1980년대까지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다 푸조에 인수되면서 푸조 스포츠의 전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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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타입 101 코치(1951년)

부가티가 이런 차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희귀한 모델인 타입 101은 코치와 컨버터블 두 가지 보디 타입이 있다. 이중 코치는 6대만 제작되었는데 비교적 대중적인 승용차에 진입하려는 부가티의 첫 시도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부가티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장 부가티와 설립자 에토레 부가티가 디자인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최초의 부가티 모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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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B

광기의 시대라 불린 그룹B 경주차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포드 RS200과 푸조 205 T16, 르노 터보5는 그룹B를 대표하는 차종이다. 평균 출력이 500마력을 넘고 직선으로 똑바로 가장 멀리 가는 드라이버가 우승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무모한 출력 경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끊임없는 사고로 1986년 폐지될 때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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