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모든 길이 스페셜 스테이지가 된다. 랠리에서 태어난 양산차들
2020-03-16  |   6,826 읽음

달리는 모든 길이 스페셜 스테이지가 된다

랠리에서 태어난 양산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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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도로에서 펼쳐지는 랠리는 가장 원초적인 모터스포츠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포장과 비포장, 눈과 얼음 등다채로운 환경에서 벌이는 극한의 스피드 경쟁은 사람과 차의 한계를 시험하는 최적의 장소다. 우리가 거리에서 흔하게볼 수 있는 양산차를 사용한다는 점도 매력이다. 물론 일반 양산차는 아니다. 그룹4, 그룹B, 그룹A 등 시대에 따라 규정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를 일정 수량 이상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랠리카의 베이스가 될 특별 모델이 다양하게 탄생했다. 다른 말로 랠리카를 구입해 도로에서 타고 다닐 수 있었다는 말이다. 월드랠리카 규정이 도입되어 더 이상 도로형 랠리카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최근 토요타가 GR 야리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경쟁에 불을 당기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TOYOTA GR YARIS

이번 도쿄 오토살롱에서 화제를 모았던 GR 야리스. 현재 WRC에서는 전장 3.9m 이하로 양산 대수(동종 모델로 12개월에 2만5,000대 이상, 직접 베이스 모델 2,500대 이상)만 충족되면 일반 양산차를 큰 폭으로 개조할 수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특별 모델 없이도 랠리카 제작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대 i20에는 4WD 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많은 자동차 메이커를 워크스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도입한 월드랠리카라는 규정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GR 야리스가 랠리를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90년대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토요타는 차세대 랠리카 개발에 맞추어 GR 야리스를 준비했다. 2,500대 이상 생산한다면 이 차를 베이스로 신형 랠리카 제작이 가능해진다. 토요타에서 이런 종류의 모델이 등장한 것은 셀리카 GT-FOUR 이후 오랜만이다.

헤드램프는 분명 야리스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범퍼를 가득 채운 거대한 직사각형의 흡기구. 곡선이 많은 보디와 구별되는 직선 기조가 완전히 다른 인상으로 만들어준다. 야리스용 GR 파츠나 현행 야리스 WRC와도 다른 얼굴이다. 큰 타이어를 장착하기 위해 펜더와 휠하우스가 커졌을 뿐 아니라 측면 실루엣도 상당히 다르다. 보닛이 불룩하고, 루프라인 또한 기본형 대비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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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높이 제한이 있는 랠리카 규정을 염두에 둔 변화로 보인다. 소재 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어 보닛과 도어 패널, 해치 게이트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게다가 지붕은 카본으로 교체해 무게를 덜고 무게중심도 낮추었다.

3기통 1.6L 직분사 터보 엔진은 4기통 1.6L 터보의 현행 랠리카와는 다른 구성. 120마력의 야리스 엔진에 비해서는 배기량이 살짝 늘고(1618cc) 냉각용 스프레이가 달린 인터쿨러, 고회전화, 흡배기 개량과 경량 부품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덕분에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37.7kg·m로 3기통이면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G16E-GTS라는 새로운 코드네임도 얻었다. 변속기는 iMT라 불리는 수동 6단. 클러치 연결 상태에 따라 엔진 출력 제어는 물론 변속할 때마다 엔진 회전수를 매칭해 주기 때문에 매끄러운 변속이 가능하다. 스포츠 4WD 시스템 GR-FOUR는 전자제어식 다판클러치를 통해 뒷바퀴에 토크를 배분하며 앞뒤에는 토센 디퍼렌셜이 달렸다. 드라이브 모드는 노말/스포츠/트랙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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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션 지오메트리도 손봐 주행성능을 끌어올렸다. 이름 앞에 붙은 GR은 가주 레이싱의 이니셜로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활동에서 ‘가주’(Gazoo)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양산차 고성능 버전에도 GR 혹은 GRMN을 붙인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2007년 뉘르부르크링 24시간에 드라이버로 참전할 때 토요타팀으로 엔트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주 레이싱으로 엔트리했는데, 이후 가주는 토요타 레이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가주는 원래 토요타가 중고차 매매나 자동차 관련 컨텐츠를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 이름이다. 토요타는 GR 계열의 고성능 모델이 늘어나면서 전용 공장 GR 팩토리도 마련했다.

컨베이어벨트식의 일반적인 공장과 달리 숙련된 장인이 소량 다품종을 제작하는 곳이다. GR 야리스는 RZ 퍼스트 에디션이 396만엔, RZ 하이퍼포먼스 퍼스트 에디션 456만엔으로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예약 시작후 2주간 2천명 이상이 몰렸다.


ALPINE A110

르노의 스포츠카로 알려진 알핀은 프랑스 디에프에서장 리델이 연 작은 공방에서 출발했다. 1950년대 초 르노 4CV를 개조해 밀레밀리아나 알파인 랠리 등에서 명성을 얻은 리델은 1955년 알핀 브랜드 오리지널 모델인 A106을 완성했다. 4CV 기반으로 유선형 보디를 씌운 쿠페는 이후 A108을 거쳐 1961년 A110으로 발전했다.

1962년 파리 살롱에서 공개된 A110은 르노 8의 부품을 많이 활용한 리어 엔진 스포츠카였다. 백본 프레임으로 만든 뼈대 위에 작고 날렵한 글라스파이버 보디를 씌운이 차는 다양한 르노 엔진을 얹고 각종 경기, 그 중에서도 랠리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70년 WRC의 전신인 인터내셔널 랠리 챔피언십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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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핀 A110은 기본형 자체로 강력한 스포츠카였다. 백본 프레임과 콤포지트 보디는 극도로 가벼워 작은 엔진으로도잘 달렸다. 1.1L에서 시작한 엔진은 1.3L와 1.5L, 1.6L 등다양한 진화형이 나왔는데, 1.6L 버전도 차중이 850kg 남짓에 불과했다. 또한 RR 레이아웃이라 가속 상태에서는 엔진이 뒷바퀴를 눌러 트랙션을 높여주었다.

1971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1, 2, 4위를 차지했으며, WRC가 출범한 1973년에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하지만 석유 파동을 빗겨갈 수 없었던 알핀은 판매량이 곤두박질치다가 르노에 매각되었다.

미드십에 V6 엔진을 얹은 후속 모델 A310은 1971년 등장했지만 랠리에 그리 적합한 차는 아니었다. 르노는 A610을 끝으로 1995년 단종시켰던 알핀 혈통을 2017년 부활시켰다. 전설적인 이름 ‘A110’을 다시 붙인 신형은 알루미늄 보디의 미드십 스포츠카. WRC 복귀는 아니지만 FIA가 새롭게 마련한 랠리 클래스 R-GT용 차를 선보였다.

프랑스와 독일 등 타막 랠리에서만 열리는 R-GT컵은 규정이 그리 빡빡하지 않은 아마추어 대상의 시리즈로두 바퀴 굴림 양산 스포츠카라면 큰 개조 없이 참가가 가능하다.


FIAT 131 ABARTH

1970년대 중반 124 스포츠 스파이더의 뒤를 이어 피아트 랠리 활동을 계승한 차는 131이었다. 스포츠 컨버터블이던 124 스파이더와 달리 3박스 패밀리 세단인 131은 그다지 스포티해보이지 않지만 뛰어난 성능과 전투력으로 ‘불멸의 131’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개발 작업에는 피아트 외에 베르토네와 아바르트가 참여했다. 피아트 차 개조나 레이싱카 제작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바르트는 1971년부터 피아트에 인수되어 피아트 모터스포츠 활동을 담당하고 있었다.

131 아바르트는 오버 펜더와 보닛, 트렁크 리드를 FRP로 바꾸고 보디 패널 일부와 도어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무게를 덜었다. 엔진은 웨버 카뷰레터가 달린 2.0L DOHC가 도로형에서 140마력, 랠리 버전에서는 240마력을 냈다. 당시 그룹4 규정에서는 양산형과 동일한 변속기 구성을 유지해야 했기에 도로형에도 싱크로매시가 없었다. 리어 서스펜션은 독립식 맥퍼슨 스트럿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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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는 1976년 그룹4 인증을 위해 400대를 시작으로 모두 1천대가 넘는 131 아바르트를 판매했다. WRC에서의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1977년과 78년, 80년 3번의 매뉴팩처러즈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78년에는 마르쿠 알렌, 80년에는 발터 뢸이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다. 1976년부터 81년까지 6년간의 워크스 활동에서 거둔 승리는 무려 20회. 알렌과 뢸 외에도 티모 살로넨, 미쉘 무통과 베르나르 다니쉬, 플라비오 바켈리 등이 활약했다.


FORD ESCORT RS

포드는 1906년 영국, 1912년 독일에 자동차와 트랙터 수입을 위한 만들어진 작은 사무소를 시작으로 유럽에 진출해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독일에 나뉘어 있던 포드가 유럽 포드로 합병된 것이 1967년. 에스코트가 등장한 것 역시 이 즈음의 일이다.

코티나의 아래 급으로 등장한 에스코트는 기존 앙글리아와는 대비되는 현대적으로 외모를 지녔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포드에서 가장 작은 차였던 팰콘이 4.7m 남짓이었던데 비해 4m를 간신히 넘는 크기였다. 개뼈 모양 그릴과 콜라병을 연상시키는 잘록한 허리라인을 가진 에스코트는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출시 6년 만에 200만대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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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코트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걸쳐 가장 성공적인 랠리카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70년 런던 투 멕시코 월드컵 랠리에서의 승리가 유명하다. 2만5,700km에 달하는 대장정에서 1, 3, 5, 6, 8위로 상위권을 휩쓸었다.

우승을 기념해 1.6L 켄트 엔진을 얹고 고강도 패널로 섀시를 보강한 에스코트 멕시코가 1970년 등장했다.

멕시코 버전은 1974년 풀 모델 체인지된 2세대 에스코트 Mk2(에스코트 RS 멕시코)에도 있었다. 1.6L의 핀토 엔진이 95마력을 냈으며, RS 로고가 붙은 포드로서는 매우 저렴했다.

에스코트가 RS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포드는 아니지만 RS 순수혈통의 시작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에스코트 RS1600은 코스워스의 1.6L DOHC 117마력 엔진을 얹고 랠리에서 활약했다. 당시는 아직 WRC가 생기기 전이라 그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IMC(International Championship of Manufacturers)의 1972년 시즌 사파리와 영국에서 우승했다. WRC가 시작된 1973년에 2승, 이듬해도 2승으로 매뉴팩처러즈 3위를 유지했다.

75년부터는 2세대(Mk2) 기반의 RS1800을 투입했다.

그릴과 보디라인이 직선적으로 바뀐 2세대는 배기량이 1.8L로 늘어 최고출력 117마력로 늘었다. 250마력으로 출력을 높인 랠리형은 1979년 WRC에서 비요른 발데가르드가 드라이버즈 챔피언, 하누 미콜라가 2위에 오르며 챔피언 타이틀을 싹쓸이했다. 이후 다시 매뉴팩처러즈 3위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그룹B가 도입되지 직전까지 FR 시대의 최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코스워스 엔진을 얹은 에스코트 RS(Mk1 RS1600, Mk2 RS1800)는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2.0L SOHC 핀토 엔진을 얹은 염가형도 있었다. 출력은 다소 줄어드는 대신 가격도 낮아졌다.

80년대 그룹B 시대에 RS200을 투입했던 포드는 그룹B가 폐지되자 급한 대로 시에라를 투입했다. 하지만 란치아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보다 작은 크기의 에스코트를 바탕으로 RS 버전을 개발하기로 했다. 외모만 보면 5세대 에스코트의 고성능형 같지만 실제로는 시에라 코스워스 섀시를 축소해 에스코트 보디를 입힌 별개 모델이다. 가로배치되는 일반 에스코트와 달리 에스코트 RS 코스워스는 파란색 헤드의 코스워스제 4기통 2.0L 터보 엔진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다. 92년부터 96년까지 7천대 이상이 생산되었지만 기대와 달리 WRC에서 그리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97년부터는 엔트리명이 에스코트 RS 코스워스에서 에스코트 WRC가 되었는데, 월드랠리카 규정에 따른 신차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팀 운영은 말콤 윌슨이 운영하는 M스포트가 맡게 된다. 현재 WRC에서 포드 세미워크스로 출전중인 바로 그 M스포트다.


MINI COOPER

50년대 중반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제2차 중동전쟁으로 유럽에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다양한 버블카를 탄생시켰다. 자동차인지 덮개를 씌운 스쿠터일지 모를 초소형차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가운데, 영국에서는 작지만 4명이 탈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동차를 목표로 BMC가 신차 개발을 시작했다. 작은 바퀴를 네귀퉁이로 몰고, 공간효율 극한까지 추구한 설계는 천재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의 작품. 오스틴 세븐과 모리스 미니 마이너로 팔리다가 이후 로버 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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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는 자원과 공간을 극한까지 절약한 경제적인 소형차면서도 의외로 모터스포츠 전적이 화려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쿠퍼의 역할이 컸다. F1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쿠퍼는 영국의 전설적인 레이싱 팀으로 1959년과 60년 F1 챔피언의 주인공이었다.

이시고니스와 절친이던 존 쿠퍼는 미니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고 엔진과 브레이크에 세심한 개량을 더해 강력한 경주차로 탈바꿈시켰다. 외모는 여전히 작고 귀여웠지만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프로토타입의 뛰어난 성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경영진은 고성능 버전을 미니 쿠퍼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848cc였던 양산형 미니 배기량을 997cc로 키워 55마력을 냈고, 보어를 한계까지 키운 1,071cc 70마력의 쿠퍼S도 곧이어 만들어졌다. 미니 쿠퍼S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1964년, 65년에 우승하며 진가를 드러냈다.

최악의 날씨로 기록된 1965년 핀란드 랠리에서도 티모 마키넨이 유일하게 페널티 포인트 없이 우승자가 되었다.

237대의 엔트리 가운데 35대만이 살아남은 가혹한 경기였지만 미니가 3대나 살아남아 1-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67년에 다시 한번 몬테카를로를 제압하며 미니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현행 미니는 베이직 모델인 미니 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쿠퍼’로 불린다. 물론 모기업 BMW 덕분에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자랑하지만 당시에 비해 희소성이 옅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의식해 존 쿠퍼 워크스(JCW)라는 상위 트림을 만들어 쿠퍼 혈통의 명맥을 잇도록 했다.


LANCIA STRATOS

유능한 경주차 개발자라면 법적 규제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는 데 능숙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기 위해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술적 도전, 치열한 눈치싸움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1970년대 랠리계를 휩쓸었던 란치아 스트라토스가 대표적인 예.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은 스트라토스는 페라리 엔진을 미드십에 얹은 스포츠카로 랠리 참가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카로체리아 베르토네는 란치아의 모터스포츠 활동 계획을 눈치 채고 1970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스트라토스 HF 제로라는 컨셉트카를 선보였는데, 극단적인 쐐기형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으자 란치아도 관심을 보였다. 란치아는 랠리 현장을 다니며 다양한 정보를 조사했고, 실제 개발과 생산에는 베르토네가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베르토네 치프 디자이너는 카운타크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마르첼로 간디니였다.

란치아 팀 감독 체자레 피오리오는 파워트레인만 그룹3 차에서 가져오고, 12개월간 500대만 만들면 되는 그룹4 호몰로게이션을 통과하겠다는 편법을 생각해 냈다. 도박적인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492대가 생산되어 1974년 10월에 그룹4 공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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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토스는 애초부터 랠리카로 기획되었기에 강성이 높은 섀시와 콤포지트 보디, 극단적으로 휠베이스가 짧은 미드십 레이아웃 등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뼈대는 앞쪽에 모노코크, 뒤쪽은 강철 서브 프레임을 볼트로 연결해 수리를 쉽게 했다. 프로 드라이버와 랠리 활동을 위한 설계였다. V6 2.4L 디노 엔진은 엔초 페라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공급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12밸브의 기본형이 275마력, 24밸브형은 320마력을 냈다. 78년부터 규정 변경으로 DOHC 버전 투입이 불가능해졌지만 스트라토스의 전투력은 여전히 높았다.

70년대 후반 WRC에서 무적의 차 중 하나였던 스트라토스는 1974~76년에 3연속 매뉴팩처러즈 챔피언에 올랐다. 1977년 시즌을 마치고 랠리 활동의 중심이 피아트 브랜드로 옮겨짐에 따라 스트라토스의 워크스 활동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몇몇 프라이비트팀과 함께 활약을 이어갔다. 1979년에는 개막전 몬테카를로를 비롯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우승했으며, 1981년 프랑스 랠리에서도 승리했다. ‘성층권’을 뜻하는 이름에 어울리는,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걸작 랠리카다.


RENAULT 5 TURBO

70년대 말 란치아 스트라토스의 성공에 자극받은 르노는 새로운 랠리카 개발을 시작했다. 앞바퀴 굴림 소형 해치백 르노5를 미드십으로 뜯어고친다는 대담한 발상은 알핀 공장에서 일하던 장 테라모르시의 아이디어였다. 르노 5의 뒷좌석을 떼어낸 자리에 다양한 양산 엔진을 얹어 시험한 끝에 직렬 4기통 1.4L OHV 엔진이 선택되었다. 0.86바의 과급압에서 160마력, 22.6kg·m를 냈다. 이 과정에서 휠베이스가 11mm 늘어났으며, 과격한 오버펜더와 도어 뒤쪽에 대형 흡기구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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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이 없는 프로토타입 상태로 1978년 파리에서 공개된 르노5 터보는 2년 후에 양산을 위한 최종 버전이 나왔다.

1982년에는 성능을 최적화하면서 가격을 25% 낮춘 염가판 터보2가 등장했다. 알루미늄 도어와 루프를 강판으로 되돌려 12만5,000프랑이던 가격을 9만5,000프랑으로 낮추었다. 덕분에 구형과 합쳐 4,857대가 생산되었다.

WRC에 투입된 5 터보는 1981년 개막전 몬테카를로와 이듬해 프랑스 투르 드 코르스 등 주로 포장 노면에서 강력한 면모를 보였다. 85년에는 그룹B 규정에 맞춘 맥시 터보를 투입해 프랑스 랠리를 다시한번 잡았다. 엔진 배기량을 1.5L(1527cc)로 키워 최고출력이 360마력으로 높아졌으며 F1 기술을 활용해 터보차저의 반응지연을 개선했다. 날카로운 반응과 가벼운 무게로 타막 랠리에서 강력했지만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차였다. 


AUDI SPORT QUATTRO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였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1972년 아우디로 이적한 후 첫 프로젝트로 양산차를 위한 4WD를 개발했다. 이렇게 완성된 콰트로 시스템은 1980년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된 쿠페 콰트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델은 아우디의 첫 네바퀴 굴림이라는 의미에서 콰트로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이후 콰트로가 여러 모델에 쓰이는 바람에 구분을 위해 Ur-Quattro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에는 아직 군용차나 오프로더 등 특수용도의 자동차에 쓰이던 네바퀴 굴림을 양산차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아우디 80 플랫폼에서 태어난 쿠페 보디에 직렬 5기통 2.1L 터보 200마력 엔진을 얹고 시속 220km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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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는 콰트로 시스템의 뛰어난 성능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랠리에 주목했다. 두 바퀴를 굴리는 라이벌에 비해 무겁고 복잡했지만 1981년 WRC에서 3승을 차지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그 중 하나는 여성 드라이버 미쉘 무통이 거둔 성과였다. 그룹B 에볼루션 모델을 투입한 이듬해 매뉴팩처러즈 챔피언을 차지함에 따라 WRC에 4WD의 거센 열풍을 몰고 왔다.

그룹B 경쟁이 본격화된 1984년에는 스포트 콰트로 S1으로 진화했다. 직렬 5기통 터보 엔진과 콰트로 시스템은 그대로 계승했지만 보디를 카본-케블러 복합소재로 만들고, 핸들링을 개선하기 위해 휠베이스를 2.2m로 단축했다.

출력은 양산형에서 306마력, 랠리카에서는 450마력이 가능했다. 그룹B 규정에 따라 이 숏휠베이스 버전은 224대가 생산되었다. 당시 일반 콰트로가 5만마르크 정도였던데 비해 스포트 콰트로는 20만 마르크에 달했다.

당시 포르쉐 911 2배 값이다.

아우디는 스티그 블롬퀴스트의 드라이버즈 챔피언과 매뉴팩처러즈 챔피언으로 1984년을 완전 제압했다.

이후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추가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하지만 원래 목표로 했던 콰트로 시스템과 4WD 시스템의 우수성 홍보에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PORSCHE 959

80년대 말 벌어졌던 수퍼카 전쟁의 게임 체인저이자 수퍼카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959.

이전까지 골리앗에 대항하는, 작지만 강한 스포츠카였던 911과 달리 최신 기술과 4WD로 무장한 최강 포르쉐이자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이 차가 당시 WRC 그룹B 도입에 맞추어 개발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로젝트는 1981년 시작되어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그루페B(Gruppe B)라는 이름의 컨셉트카로 처음 공개되었다.

959는 911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지만 완전히 다른 차였다.

타원형 헤드램프와 뒤창 각도 등 911과 일부 닮은 부분도 있지만 불룩한 팬더와 대형 고정식 리어윙, 공력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은 외피가 인상적이었다. 차체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맥스와 케블러 등 복합소재와 알루미늄을 많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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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뒤쪽 바닥에 배치한 복서 엔진은 내구 레이싱카 962의 파생형으로 트윈터보 과급을 통해 최고출력 450마력을 냈다. 다만 터보 구성은 달랐는데, 작은 터빈을 먼저 작동시키고 배기압이 높아지면 나머지를 작동시키는 시퀸셜 방식을 통해 반응성을 끌어올렷다.

5단 수동 기어박스에는 특이하게 ‘G’라는 단수가 있는데, 오프로드를 뜻하는 ‘Gelande’의 이니셜이다. PSK라 불린 4WD 시스템은 전자식으로 토크를 배분하는,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로 뒷바퀴에 최대 80% 토크 배분이 가능했다.

959는 WRC를 겨냥했지만 당초 계획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그 사이 911 보디에 신개발 4WD 시스템을 얹은 프로토타입(953)을 제작해 1984년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우승했고 86년에는 보다 959에 가까운 버전으로 1-2 피니시했다. 같은 해 961이라는 서킷 버전이 르망 24시간에서 클래스 1위, 종합 7위에 오르기도 했다.

1986년 생산을 시작한 959는 랠리 출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WRC에서는 비극적인 사고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룹B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무대를 잃게 된 959는 원래 계획했던 WRC에 출전할 수 없었다.

대신 수퍼카 시장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켜 프로토타입과 경주차, 프리 프로덕션까지 합쳐 1988년까지

337대가 제작되었다. 포르쉐는 주펜하우젠에 남아있던 여분의 부품을 활용해 1992년에도 8대를 추가로 제작한다.

속도감응식 댐퍼 등 신기술이 달린 최종 버전은 초기형의 43만1,550마르크를 훌쩍 뛰어넘는, 74만7,500마르크의 가격표가 붙었다.


LANCIA DELTA HF INTEGRALE

1980년대 랠리판에 그룹B 규정이 도입되면서 몬스터 머신들이 난립했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성능은 재앙이었을 뿐이다. 끝없는 성능경쟁에 내몰린 끝에 대형사고들이 터져 나왔고, 드라이버와 관중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결국 1986년을 마지막으로 그룹B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도입된 것이 그룹A. 베이스 모델 생산량이 12개월에 5,000대로 늘어남에 따라(이후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다) 랠리카들은 보다 양산차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갑작스런 규정 변경은 큰 혼란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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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범위가 좁은 만큼 적절한 베이스 모델이 없는 메이커는 반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권을 잡은 것은 란치아였다. 소형차 델타는 애초에 랠리를 염두에 둔 모델은 아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한 랠리카는 1987년 WRC에서 13전 중 무려 9승을 차지했다.

란치아는 1987년부터 92년까지 무려 6년 연속 매뉴팩처러즈 챔피언 타이틀(드라이버즈는 4회)을 거머쥐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아우디, 르노, 포드, 토요타, 미쓰비시 등이 도전했지만 허사였다. 그룹B 시절의 델타 S4가 이름만 델타일 뿐 양산차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면 1986년 선보인 델타 HF 4WD는 양산형 델타의 네바퀴 굴림 버전. 1.6L 터보 165마력 엔진을 얹고 유성기어식 센터 디퍼렌셜을 통해 앞뒤 토크를 배분했다. 이 차는 곧 이름을 델타 HF 인테그랄레로 바꾸었고 2.0L SOHC 터보 185마력으로 성능을 높였다.

1989년에는 DOHC 헤드를 얹은 인테그랄레 16V가 등장해그 해 이탈리아 산레모 랠리에서 데뷔 우승을 거둔다.

양산형은 최고출력 200마력으로 0→시속 100km 가속 5.7초, 최고시속 220km의 성능을 냈다. 이후 인테그랄레 에볼루치오네와 에볼루치오네Ⅱ로 진화했다. 1993년 등장한 에볼루치오네Ⅱ는 터보를 신형 가레트제로 바꾸어 촉매컨버터를 달고도 최고출력 215마력, 최대토크 32.0kg·m를 발휘했다.

델타가 1993년에 2세대(타입 836)로 진화하고 랠리 활동도 중단됨에 따라 델타 인테그랄레의 임무는 종료되었다.

이후에도 컬렉터들을 위한 한정 모델을 포함해 1995년까지 소수가 생산되었다.


MITSUBISHI LANCER EVOLUTION

90년대 WRC에서는 일본의 스바루와 미쓰비씨가 용호상박의 박투를 벌였다. 그 중 미쓰비시가 랠리카 인증을 위해 출시한 모델이 랜서 에볼루션. 줄여서 ‘란에보’라고도 부른다. 코드네임 E-CD9A의 랜서 에볼루션Ⅰ이 등장한 것은 1992년으로 당시 4세대 랜서를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앞서 WRC에서 활약하던 갤랑 VR-4용 2.0L 터보 엔진과 구동계를 준중형 차체에 이식한 덕분에 마력 당 하중이 4.8kg/ps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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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완성도는 아직 높지 않아 앞이 무겁고 언더스티어가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 3일 만에 호몰로게이션 기준인 2,500대가 완판되어 2,500대 추가 판매가 결정되었다. 이후 랜서 에볼루션은 WRC 활동에 맞추어

거의 1~2년마다 진화를 거듭했다. 매 시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호몰로게이션 모델 역시 계속 진화해야만 했다.

에볼루션Ⅲ는 대구경 터보로 인해 생기는 터보 레그를 미스파이어링 시스템으로 해소했고, Ⅳ는 액티브요 컨트롤(AYC) 시스템을 도입했다. 차폭을 넓히고 대구경 타이어를 단 Ⅴ는 강력한 성능으로 호평을 받아 미쓰비시에게 첫 WRC 매뉴팩처러즈 챔피언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6세대에는 토미 마키넨의 4연속 드라이버즈 챔피언(1996~1999) 획득을 기념해 토미 마키넨 에디션(TME)이 발매되었다. 란에보 역사에서 호몰로게이션을 받지 않은 첫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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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는 200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룹A가 아닌 월드랠리카로 전환을 선언한다. 이에 따라 에볼루션Ⅶ부터는 속박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진화를 시작했다. Ⅶ부터 자동 변속기가 옵션으로 달렸고, Ⅸ에는 왜건형이 생겼다. 2007년 등장한 에볼루션Ⅹ는 10세대 랜서를 바탕으로 2.0L 터보 엔진과 차량 운동 통합제어 시스템 S-AWC를 얹었다.

미쓰비시는 2005년을 마지막으로 WRC 활동을 중단했다.

리콜 은폐 등 사건사고로 회사 경영이 악화되면서 랜서 에볼루션을 더 이상 유지시킬 여력이 없었다. 결국 2016년 에볼루션Ⅹ 파이널 에디션을 마지막으로 단종하고 말았다.


SUBARU IMPREZA WRX

스바루는 영국의 프로드라이브와 손잡고 1980년 WRC 도전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레오네, 이후 중형 세단인 레거시를 사용하다가 임프레자를 투입한 것이 1993년.

제9전 핀란드전에서 데뷔한 임프레자는 이듬해부터 풀시즌 출장을 시작했다. 당시 WRC에서 차명은 임프레자 555였는데, 랠리팀 메인 스폰서였던 스테이트 익스프레스 555(BAT의 담배 브랜드)가 담배광고가 금지되는 추세에 따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을 의식해 이렇게 등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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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처음 등장한 임프레자는 초대 레거시 섀시를 바탕으로 개발한 소형차였다. 여기에 레거시 RS에 쓰였던 수평대향 4기통 2.0L DOHC 터보(EJ20G) 240마력 엔진을 넣어 랠리카 베이스 모델인 임프레자 WRX STi를 완성했다.

스바루는 WRC 도전 6년만인 1995년에 8전 중 5승을 차지하며 매뉴팩처러즈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듬해에도 콜린 맥레이의 활약에 힘입어 챔피언 행진을 이어간다.

라이벌 미쓰비시가 그룹A를 고집한 것과 달리 스바루는

1997년부터 월드랠리카 규정을 따랐다. 신차는 2도어 쿠페 버전인 임프레자 리트너를 기반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양산형 랠리카 혈통의 순수성을 잃은 대신 3연속 챔피언이라는 실리를 챙겼다. 이후 2001년에 리차드 번즈, 2003년에 페터 솔베르그가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오르지만 점점 격해지는 경쟁에 밀리다 2008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퇴진을 선언했다. 임프레자는 무려 14년간 활동했는데, WRC에서 동일한 모델명으로 활동한 최장수 기록이다.

양산형 임프레자 WRX STi는 3세대 해치백 기반이 마지막 모델로 2007년에 등장했다. 오버펜더가 달린 전용 보디를 사용했기 때문에 별도의 코드네임(CBAGRB)이 부여되었다. 출력은 308마력까지 높였고, 4WD 시스템에는 전자제어 기술이 많이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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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등장한 WRX STi는 임프레자 플랫폼을 베이스로 삼고 디자인도 비슷하지만 모델명에는 임프레자가 없어졌다. WRC 활동을 오래전에 중단했기 때문에 랠리보다는 뉘르 24시간 같은 서킷 레이스를 부각시켰다.

아쉬워하는 마니아들이 기뻐할 소식도 있다. 최근 몇 년간 스바루의 WRC 복귀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 들리고 있다.

일단 2022년 도입 예정인 신차 규정이 커다란 변수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도입되며, 기본 차량 크기와 상관없이 랠리카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스바루의 복귀가 현실화되면 현대는 토요타, 스바루라는 두라이벌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여야한다 .


74e723ed3822b2083ccc2dbc82bc9fcb_1584331995_5924.jpg글 이수진 편집장
74e723ed3822b2083ccc2dbc82bc9fcb_1584331995_6689.jpg자동차생활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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