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P GRAND CHEROKEE 2.7 CRD LAREDO 냉철한 커먼레일 디젤 심장을 품고 뛰어라!
2004-03-11  |   42,523 읽음
포연이 자욱한 2차대전의 전장에서 피어 난 윌리스 MB의 무용담은 60여 년 동안 지프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지프가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진 데는 오히려 60년대 초 등장한 스테이션 왜건 모델의 힘이 컸다. CJ-2A를 바탕으로 한 왜건형을 시작으로 62년 등장한 왜거니어와 뒤를 이은 그랜드 왜거니어(1984년)는 온·오프로드를 모두 만족시키는 성능과 쓰임새 좋은 실내로 미국 중산층의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정서에 꼭 맞는 패밀리카로 자리잡은 지프의 4WD 왜건은 모기업이 AMC에서 크라이슬러로 바뀐 지난 87년 이후 고급 왜건형 SUV로 방향을 전환해간다. 물꼬를 튼 주인공은 92년 크라이슬러 엔지니어링으로 완성된 1세대 그랜드 체로키다.

세련된 스타일에 세심한 개선 거쳐

새 플래그십 지프는 특유의 험로주파력에 승용 감각을 더 키우고 여유 있는 공간에 충분한 편의장비를 채우면서 마케팅 노선을 ‘세련된 미드 사이즈 고급 SUV’로 못박았고, 99년에는 스타일과 성능을 일신한 2세대 모델로 풀 모델 체인지해 자국 심장을 잠식한 독일과 일본의 라이벌에 맞서갔다. 럭셔리 SUV를 지향했다지만 그랜드 체로키는 여전히 본능과 같은 오프로드 본색을 감추지 못한다. 2년 전 범퍼와 그릴, 램프류 디자인을 가다듬는 가벼운 성형수술로 경직된 인상을 덜었지만 라이벌의 탁월한 승용 감각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프’(Jeep) 엠블럼 속에 담긴 야성은 지울 수 없는 훈장이다.
기자가 그랜드 체로키를 만난 적이 있던가? 하지만 가물가물한 기억을 헤집지 않아도 단박에 지프임을 알 수 있다. 일곱 줄의 수직 바가 곧게 떨어지는 그릴, 타이어와 널찍이 거리를 둔 사다리꼴 휠하우스는 강인했던 선조 윌리스 MB가 물려준 자랑스런 유산. 가파른 윈드실드는 단단한 체구를 매끈하게 포장하고, 뒤로 갈수록 살포시 내려앉는 지붕선이 세련미를 더한다. 최저지상고는 210mm로 높은 편이지만 높이는 1천710mm에 불과하다. 길이 4천615mm로 작지 않은 크기지만 밑을 둥글린 뒷모습을 더해 전체적으로 날렵함이 살아 있다.
시승차는 2월 시판을 시작한 그랜드 체로키 2.7 CRD로 엔트리 트림인 라레도(Laredo)의 마크를 확인할 수 있다. 가운데를 불룩 키워 입체감을 준 범퍼와 원형 안개등이 2003년형 모델부터 새 마스크로 자리잡았고 라레도에는 블랙 베젤 헤드램프가 달린다.
운전석의 도어 테두리에서 이 차의 태생을 확인한다. ‘Made in Austria ’. 그랜드 체로키 유럽형은 마그나 슈타이어 공장에서 생산되고 벤츠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은 2.7 CRD 역시 유럽 기능인의 손끝에서 빚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자리한 마그나 슈타이어는 4WD 시스템으로도 유명할 뿐 아니라 벤츠 E클래스, BMW X3, 사브 9-3 컨버터블 등을 하청 생산하고 있다.
T자형 대시보드를 검은 톤으로 단장한 인테리어는 최근의 럭셔리 세그먼트치고는 꽤 소박하다. 엔트리급(라레도)답게 꼭 필요한 편의장치만 갖춰 화려함을 최대한 절제한 느낌이다. 직물 소재의 전동 시트는 미끄러짐이 적고 든든한 사이드 볼스터까지 갖추고 있어 홀딩 능력이 뛰어나다. 엉덩이가 ‘푹’하고 꺼질 만큼 푹신한 쿠션과 단단한 등받이는 고급 소파가 부럽지 않을 만큼 아늑하고 야무지게 몸을 감싸준다. 전자장비와 자동제어장치가 홍수를 이루는 수입차의 관행(?)에는 벗어나지만 다이얼로 바람 세기와 온도를 손수 조절하는 수동 에어컨으로도 쾌적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앞좌석이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준 탓인지 등받이가 꼿꼿이 선 뒤 시트는 썩 흡족하지 않다. 리클라이닝 기능이려니 하고 등받이 모서리의 레버를 아래로 당기면 헤드레스트와 함께 고개가 ‘휘떡’ 뒤로 젖혀져 머쓱하기 십상이다. 쿠션을 들추고 시트를 눕히는(예의 레버를 당기면 된다) 간단한 시트 폴딩으로 짐 공간을 키우자 트렁크 바닥과 시트 사이의 틈을 메운 덮개가 눈길을 끈다. 잔 짐이 빠지지 않도록 한 작은 배려. 그러고 보니 밋밋한 등받이 덕분에 앞시트 등받이까지 넓힌 짐칸이 제법 평평하게 펼쳐지고, 뒤로 집힌 3개의 헤드레스트는 야외 캠핑에서 아쉬우나마 베개로 쓰기에도 그만이겠다. 두어 가지 변화가 마음을 사로잡자 미국차 특유의 투박한 끝손질도 대범한 대륙 기질로 둔갑한다. 슬며시 이 차가 가슴에 들어차기 시작한다.

명쾌한 엔진 반응과 후련한 가속에 꽂히다

플래그십 지프에게서 배어나는 메르세데스의 향기를 추적해 가면 벤츠 ML270 CDI와 함께 한 직렬 5기통 2.7X DOHC 커먼레일 디젤 터보와 자동 5단 트랜스미션이 드러난다. 독일의(醫)가 집도한 심장이식수술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조급하게 이그니션 키를 돌려본다. 새 심장은 우렁차게 그렁대며 배기음을 삼키고 잠을 깰 때 전해진 묵직한 떨림은 이내 정돈된 울림으로 이어진다.
시프트기어를 D 레인지에 두고 액셀 페달을 밟자 2.5톤의 왜건이 힘차고 가볍게 치닫는다. 내친김에 액셀 페달을 꾹 내지르자 2천500rpm 무렵에서 토크가 끓어오르며 호쾌한 가속이 이어지고 3천500rpm 부근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차분하게 변속을 준비한다. 3단 이후 가속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시속 120km까지 손쉽게 도달한다. ML은 물론 C, E클래스가 함께 쓰는 WA580 5단 AT는 시프트 반응이 매끄럽고 가감속 등 주행 상황에 따른 제어능력도 뛰어나다.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과 가변 노즐 터빈 VGT(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를 조합한 2.7X 디젤 터보 엔진은 1천800부터 40.8kg·m의 최대토크를 내 저속부터 힘이 실려 있고 회전수를 올릴수록 깔끔하고 안정된 고음을 토해낸다. 디젤 특성상 한계 회전수가 낮지만 탄탄한 중저속 토크와 직접적인 응답성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뿐하고 경쾌한 순간가속을 이끌어낸다. 시속 120~150km에 이르는 고속에서도 그랜드 체로키의 화끈한 가속은 좀체 식을 줄을 모른다. 맘먹은 만큼 내달리는 주행성능을 만끽하는 동안 귓가에는 대시보드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내장재의 떨림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 유격은 넉넉하고 발놀림은 묵직한 편이지만 핸들링은 깔끔하다. 프레임 보디에 일체형 서스펜션을 조합한 신체 구조를 이해하면 한결 적극적이고 짜릿한 핸들링을 만끽할 수 있다. 코일 스프링을 쓴 일체형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은 스프링 아래쪽이 무겁고 승차감이 떨어지지만 항상 일정한 캠버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굴곡이 심한 도로에서는 한쪽 휠이 들리면 반대편에 무게가 쏠리는 시소 효과가 나지만 차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네 바퀴는 든든히 노면을 붙들고 달리는 기묘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평소에 리어 휠로 달리고 슬립이 일어나면 앞바퀴로 토크를 배분하는 풀타임 4WD는 코너링 때 안정적인 트랙션 변화를 보여주지만 차체가 무겁고 무게중심이 높아 조금만 세차게 다그치면 뒤쪽이 불안하게 흐르는 오버스티어 경향을 보이기 십상이다. 지프의 플래그십에는 EBD-ABS 외에는 이렇다할 주행보조장치가 없어(TCS도, ESP도 없다) 긴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바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하게 주행정보를 전달하고 운전자가 책임져야 할 몫도 늘어나 원초적인 드라이빙의 감성을 만끽하기에는 그만이다.

비탈·눈밭·진창을 헤집는 오프로드 본색

내리막주행 보조장치, 힐 어시스턴트 등 오프로딩의 하이테크도 부쩍 늘어난 요즘이지만 그랜드 체로키 2.7 CRD는 수준급의 접근각(36.0°)과 이탈각(28.9°), 콰드라 트랙Ⅱ 트랜스퍼 케이스의 기본구성만으로도 오프로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시승의 마지막 코스인 경기도 양평의 유명산은 초입부터 두터운 눈밭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상태. 하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성큼성큼 새 길을 닦아나간다. 따스한 햇살에 눈이 살짝 녹은 진창을 헤집고 수풀과 나뭇가지의 저지를 뚫고 까마득한 정상을 향해 올라선다. 네 발의 접지력을 수시로 점검하며 오직 하나의 휠에만 구동력을 100% 집중하는 배리록(Vari-lock) 프로그래시브 액슬은 시승차에서 찾아볼 수 없다. 때때로 눈꽃의 유혹에 넘어가 가파른 비탈길의 꺼진 땅을 디딜라치면 바퀴 하나를 허공에 띄우거나 대각선 스턱에 걸려 버둥대기도 하지만 차분히 앞뒤 어디든 두 발을 디디고 올라설 자리만 마련하면 함정 탈출은 문제도 아니다. 풋 브레이크 조작 없이 로 기어의 엔진 브레이크에 의지해 내려가면 그랜드 체로키와의 진창길 데이트는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되고 동시에 미래가 된다. 2.5톤의 아메리칸 럭셔리 SUV를 맘먹은 대로 요리하는 냉철한 심장에 독일의 낙인이 찍혀 있다 해도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 최신 직분사 디젤 엔진을 품에 안은 그랜드 체로키 2.7 CRD는 두서넛의 편견을 뒷전에 날려버리고 당당히 고개를 든다. 국산과 수입의 경계가 명확한 한반도의 SUV 마당. 오버헤드 콘솔의 멀티 디스플레이는 아직 이 차가 500km 이상 달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연료 게이지는 한 눈금도 채 닳지 않았다. 공인연비 9.3kmX와 4천980만 원의 차값, 지프의 탄탄한 이미지와 벤츠 커먼레일 디젤 엔진의 명성……. 그랜드 체로키가 호쾌하게 훑고 지난 자리에 대란(大亂)을 예고하는 거센 바람이 분다.
시승협조: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02)3466-2666

지프 그랜드 체로키 2.7 CRD의 장단점
장점 ·호쾌한 가속, 뛰어난 연비
·명쾌한 파워트레인
단점 ·한계가 분명한 코너링
·대각선 스턱에서는 속수무책!


지프 그랜드 체로키 2.7 CRD
Dimension
길이X너비X높이(mm) 4615×1860×1710
휠베이스(mm) 2690
트레드(mm)(앞/뒤) 1510/1510
무게(kg) 2040
승차정원(명) 5
Drive train
엔진형식 직렬 5기통 DOHC 디젤
최고출력(마력/rpm) 163/4000
최대토크(kg·m/rpm) 40.8/1800~2600
구동계 네바퀴굴림
배기량(cc) 2685
보어×스트로크(mm) 88.0×88.3
압축비 18.0
연료공급/과급장치 커먼레일 직분사/터보
연료탱크크기(L) 78
Chassis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리서큘레이팅 볼(파워)
서스펜션 앞/뒤 리지드(4링크)/리지드(3링크)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앞, 뒤) 모두 225/75 R16
Transmission
기어비 ①/②/③
④/⑤/?
3.590/2.190/1.410
1.000/0.830/3.160
최종감속비 3.550
변속기 자동5단
Performance
최고시속(km) 190
0→시속 100km 가속(초) 10.5
연비(km/L) 9.3
Price 4,98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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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세그먼트로는 꽤나 소박한 인테리어. 꼭 필요한 편의장비만 추려 담아 차값 부담을 줄였다뒷시트 폴딩으로 마련된 평평한 공간. 틈새를 감춘 등받이 덮개 등 미국차답지 않은(?) 개선이 눈길을 끈다콰드라트랙Ⅱ 트랜스퍼 기어(오른쪽)를 더한 자동 5단 트랜스미션뒷시트 폴딩 레버를 아래로 당기면 헤드레스트가 함께 젖혀진다
시속 120~150km를 넘나드는 화끈한 가속으로 몸을 달구고 마음의 고향 오프로드에서 안식을 찾은 그랜드 체로키 2.7 CRD눈밭에 빠진 225/75 R16 굿이어 랭글러 S4 타이어해치 도어와 별개로 열리는 팝업식 리프트게이트세련미는 떨어지나 시인성 좋은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저속부터 탄탄한 힘을 끌어내는 직렬 5기통 2.7X DOHC 커먼레일 디젤 터보 163마력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