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s Trip in Europe(8) | 산업혁명 이후 모든 기술이 집대성된 곳
2021-06-21  |   20,337 읽음


Roads Trip in Europe(8)

산업혁명 이후 모든 기술이 집대성된 곳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379_7896.jpg
 

독일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계공업 강국을 떠올린다. 자동차를 포함한 현대적인 기계 분야에서 독일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료도 워낙 방대하고 종류도 많아 한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독일 외에도 각 국가별로 산업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지만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 쉽게 정리한 곳은 단연 이번에 소개할 곳이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431_5551.jpg
한때 자국의 영공을 지키며 서로를 겨냥했던 대표 전투기들 


코블렌츠를 떠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곳은 독일의 대표 기술박물관이 있는 슈파이어였다. 이동은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했지만 호텔을 나와 고속도로까지는 코블렌츠의 시내를 관통하는 루트를 택했다. 전날 늦게 도착해 스쳐 지나는 것이 다였지만 생각보다 코블렌츠는 조용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도시였다. 물론 활동적인 관광보다 산책을 하면서 구석구석 숨어 있는 상점이나 깔끔하게 정돈된 도심을 여유 있게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어두웠던 거리에 햇살이 비추자 생기 있는 마을의 모습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이곳에서 하루밖에 지내지 못한 게 살짝 후회될 정도였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456_4204.jpg
아우토반 휴게소의 흔한 풍경. 비만 내리지 않으면 자연 풍광이 괜찮은 편이다 


유럽 자동차여행의 한 가지 팁을 소개하자면 신도심보다 구도심, 번잡한 관광지보다 한적하고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곳을 찾으면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자동차를 테마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행 코스와는 조금 달랐지만 매번 묵었던 호텔을 떠날 때마다 다시 와서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시국이 좋지 않아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477_6509.jpg
1910년 등장한 메르세데스 벤츠 나이트(Knight). 1923년까지 5,000대가 넘게 생산됐다 


자동차, 인간의 욕망 속으로

독일에는 두 곳의 유명한 기술박물관이 있다. 테크닉 뮤지엄 슈파이어(이하 슈파이어 기술박물관)와 진스하임 오토 앤 테크닉 뮤지엄이다. 이곳은 독일의 산업기술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산업혁명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부터, 선박, 항공기, 자동차, 우주왕복선까지 소장하고 있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두 박물관은 각기 독특한 상징물이 있다. 먼저 들른 슈파이어 기술박물관의 상징은 구소련의 우주왕복선인 부란과 보잉 747 점보제트기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517_8866.jpg
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삼엽기 포커 Dr.1. 독일 공군은 가장 많은 에이스를 보유했었다 


자동차를 보러 갔지만 기술 산업에서 자동차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래도 자동차 역시 기술 산업에서 다른 분야와 연결고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슈파이어 기술박물관은 커다란 격납고 형태의 건물 두 동을 중심으로 외부에 전투기를 비롯한 선박과 대형 전시물이 가득하다. 관람객을 맞는 입구의 커다란 프로펠러가 압도적이며, 전쟁 관련 기술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536_4371.jpg
비교적 역사가 짧았던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트로얀의 버블카 트로얀 200. 1960년대 하인켈 버블카의 라이선스 버전이다 


사실 독일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에 비해 산업혁명이 늦게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농업이 국가 산업의 중심이었으며 유럽에서 가난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다 통일을 했지만 권력은 오스트리아나 폴란드, 헝가리 쪽에 몰려있었고, 현재의 독일 영토는 생각보다 발전이 늦었다. 그러나 전쟁은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산업혁명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이 발달하고 그와 관련된 공업이 함께 성장했으나 패전국으로 전락하면서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갚기 위해 서민들은 가난에 허덕였다. 이런 상황은 2차 세계대전 때도 고스란히 이어져 지금 우리가 아는 독일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571_6356.jpg
미국의 대표 스포츠카 콜벳도 만날 수 있다 


독일의 기술 산업이 발달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다. 비록 다시 패전국으로 전락하지만 전쟁 기간 동안 독일의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전 국토에 고속도로(아우토반) 깔렸고, 이를 통한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우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때 활약한 대표적인 엔지니어가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빌헬름 마이바흐다. 이들은 내연기관 중심의 다양한 운송수단을 개발했으며 디젤 엔진을 개발한 루돌프 디젤의 뒤를 이어 독일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592_5159.jpg
1920년대 소방차. 소방차는 고압 펌프 등 유체 기술이 많이 사용된 분야다 


항공기와 악기, 재봉틀까지

독일하면 지금은 누구나 자동차를 떠올린다. 독일이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의 천국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사실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항공 산업 발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도 항공기 엔진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었다. 2차 대전 후 이들은 항공기술을 응용한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자동차 역사의 큰 줄기로 자리 잡게 된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13_0659.jpg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13_16.jpg
대형 오르간은 산업혁명 당시 기술력의 상징 중에 하나였다 


이곳에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산업 기술의 대표 주자라 불린 자동차와 선박, 항공기 외에 다양한 종류의 오르간(보통 오르간이라고 부르는 악기와 다르다)과 오케스트리온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자동으로 연주하는 오르간이 기술력의 상징으로 통했다. 대형 오르간을 응용해 개발된 오케스트리온은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자동 악기였다. 주로 놀이동산 회전목마에 사용했던 오케스트리온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부피가 커서 한 개를 제작하려면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다양한 소리를 조합해야 하며,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것도 당시에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32_6234.jpg
재봉틀의 발전은 생활의 질을 높이고 관련 산업이 태동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형 오르간과 오케스트리온이 인간의 유희를 위해 탄생했다면 재봉틀은 인간의 삶 그 자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지금이야 재봉틀이 크게 중요하거나 재산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산업혁명 당시에 재봉틀은 그야말로 인간의 삶을 바꿔 놓는 기계 중에 하나였다. 재봉틀의 등장으로 의류산업이 발달하면서 기성복도 많고 맞춤 의류도 많지만 당시 집안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들은 가족들의 옷을 책임져야 했다. 주로 바느질로 의복을 만들던 시절에 등장한 재봉틀은 경공업의 비중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여성들의 노동 강도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재봉틀은 미국의 엘리아스 하우가 개발했으나 이를 세상에 알리고 상품화에 성공한 사람은 지금도 재봉틀 브랜드로 유명한 싱어의 설립자, 아이작 싱어이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51_6378.jpg
항공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민간 항공기 등장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꿈은 우주로 향해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욕망은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효율적인 동력들이 보급되고 항공 산업 역시 급성장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점차 제트 엔진으로 대체되자 국가 간 이동에 시간이 줄어 무역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유럽이야 국경을 맞댄 크고 작은 나라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바다 건너 미국이나 아시아와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항공기의 발전 덕분이다. 제트엔진의 탄생 역시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72_4653.jpg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 입구에 있는 터빈 모형. 터빈은 인간이 가공할 수 있는 가장 정밀한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기록상 2차 세계대전 말 독일이 개발한 제트엔진은 전쟁 후 항공 산업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슈파이어 박물관의 상징인 보잉 747 점보제트기가 그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이야 더 크고 빠른 여객기가 등장했지만 대량으로 물자를 수송하고 여행객을 나르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747은 항공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695_0645.jpg
밀리터리 덕후들을 위한 기념품도 매우 다양하다 


항공기는 전쟁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전투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 각국은 전투기 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지금도 전투기 개발에 많은 국가들이 힘을 쏟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구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사이의 전투기 개발 경쟁은 극도로 치열했다.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전투기를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게다가 대부분 각국의 영공을 지키며 서로를 겨냥하던 기종들이다. 구소련의 미코얀이나 미그, 미국의 팬텀이 같은 공간에 늘어선 모습만 봐도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720_8317.jpg
드래그 레이싱은 속도에 대한 원초적인 본능의 집합체다 


실내 전시장 천정과 야외 전시장 대부분에 항공기가 가득해 시선을 두는 곳 어디나 볼거리가 풍성하다. 격납고 분위기의 건물 외에 다른 실내 전시 공간은 아주 특별한 소장품으로 채워진 곳이다. 이곳은 인간 욕망의 끝이라 불리는 우주항공에 관한 전시장이다. 슈파이어 박물관을 상징하는 우주왕복선 부란이 전시되어 있으며 우주항공산업 발전사를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곳이기도 하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736_7589.jpg
냉전시절 우주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구소련 우주왕복선 부란. 표절 의혹에 대해 다양한 설이 있지만 결국 이상적인 디자인은 미국이든 구소련이든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소련이 개발한 부란(러시아어로 눈보라) 역시 냉전의 산물이다. 미국이 우주왕복선 개발을 발표하자 구소련이 이에 맞서 개발한 것이 바로 부란. 미국산과 달리 자력 이착륙이 가능한 기체였다. 시제기를 포함해 11대 제작을 계획했지만 정상적인 비행을 마친 기체는 이곳에 전시 중인 기체번호 OK-GLI 한 대뿐이다.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제대로 비행조차 못했으며 구소련 해체 후 독립한 국가들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방치되거나 해체되고 말았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759_8336.jpg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객기들도 가까이 볼 수 있으며 일부는 실내 관람도 가능하다 


부란이 전시된 공간은 인간이 지구 밖으로 나가는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진화했으며, 수없이 많은 희생을 먹어치우며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지구 안에 머물던 인간이 지구 밖을 향해 호기심을 펼쳐 온 과정은 신비하기까지 하며 앞으로 도전해야 할 새로운 과제도 보여준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792_0703.jpg
기계공학을 응용한 옛 농기구. 지금과 비교하면 효율은 매우 낮았다 


고속도로 여행의 편리함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은 기계 덕후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오전 일찍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하다 보니 금세 폐장시간이 가까워 결국 직원에 의해 밖으로 안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809_2018.jpg
유럽 박물관에서 거의 유일하게 만난 일본차, 혼다 S800 쿠페 


작은 폴로에 몸을 싣고 숙소가 있는 슈베칭겐으로 향했다. 다음 일정은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는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부터가 오토 앤 테크(Auto & Technik)인 만큼 자동차 비중이 훨씬 더 크고 독일 최대 부가티 컬렉션까지 소장한 곳이라 독일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824_6683.jpg
지금은 추억의 메이커가 된 사브의 드라켄 J35. 자동차 부문은 사라졌지만 항공분문은 여전히 건재하다 


독일 여행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고속도로 통행료가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기름값은 조금 비싸지만 이동시간이 줄고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만 이용하면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탄력적인 제한 속도까지 생각하면 자동차 여행을 즐기기에 상당히 좋다. 독일이 자동차 왕국을 넘어 자동차 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다.


79f5ccaef8ce35491e52af52762bb62f_1624259842_3049.jpg
프로펠러 수송기 중에 가장 많은 적재량을(약 80t) 자랑했던 구소련의 안토노프 AN-22의 내부. 현역 시절에는 전차를 비롯한 다양한 군수물자를 세계 각지로 배달했다 


덩치는 작지만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묵묵히 잘 달리는 폴로는 매우 만족도가 높다. 초반에는 배기량과 차체가 작아 장거리 운전에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알 수 있었다. 빠릿빠릿하고 주차 걱정도 없다. 연비도 좋아 장거리 이동에 따르는 연료비 걱정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왜 유럽인들이 소형차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90db5a4fa33499762f81664f440fef00_1584493434_0444.jpg글·사진 황욱익 Wooc Ic HWANG(자동차 칼럼니스트)


d327d7f7ff285c9270630e522dc49191_1586429687_65.jpg 
유튜브 자동차생활TV 바로가기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