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무대감독 유석용 오페라 무대를 삶의 무대로 2005-04-25
유한 집에서 귀하게 자란 자제에게서 소위 말하는 ‘귀티’가 흐르고, 대중 속에 서 있는 연예인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신분이나 직업에 귀천이 있겠냐마는 이처럼 주변환경이 인상을 좌우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무대감독인 유석용(37) 씨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은 자신감과 카리스마라는 단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미친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자신감과 리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무대감독이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는 기자에게도 무대를 지휘하는 무대감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마저 일게 했다. 오페라 영화 제작을 꿈꾸다 무대감독으로 무대감독은 연출작품을 무대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직업이다. 연출자가 희곡과 연기를 중심으로 예술적인 면을 담당한다면, 무대감독은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진행하고 유지·관리하며 스태프 관리, 조명, 장치전환 등 무대나 극장 전체의 감독 및 지도를 한다. 30대 후반의, 어찌 보면 젊은 나이이지만 유 감독이 이 일을 시작한 지도 15년이 넘었다. 지금이야 공연문화가 활성화되었고 수준도 높아졌지만 15년 전만 해도 무대라는 곳은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곳. 무엇이 그를 무대로 이끌었을까. “전공은 성악이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오페라 영화를 보고 내 손으로 오페라 영화를 만들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죠. 졸업 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오페라 무대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무대감독의 매력에 푹 빠져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유 감독은 주로 오페라 쪽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작품은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녀와 야수’, ‘황진이’ 등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전공이 성악이다 보니 무대에 대한 이해가 빨라 나이에 비해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고 한다. “국내 첫 장편 뮤지컬인 ‘명성황후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작품 자체로도 스케일이 크고 성공했지만, 무엇보다 브로드웨이에서 첫 큐사인의 영광이 저에게 주어진 작품입니다. 외국 작품으로는 ‘오페라의 유령’을 꼽겠어요. 외국 라이선스 작품으로 현지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려졌죠. 이전까지의 국내 뮤지컬과 달리 외국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은 그에게서 빼놓을 없는 성품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공연을 할 때 맹장염에 걸린 적이 있다. 무대감독이 한 명이었기 때문에 작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수술 받은 날 오후에 퇴원해서 공연을 감독했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5주 동안 입원해 있어야 했다. 이처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 외에도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극 바닥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힘들죠. 저도 처음에는 연봉 100만 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천성에 맞지 않고 좋아서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일이에요. 스케줄 때문에 몇 달씩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을 하죠. 같이 일하는 스태프 외에는 다른 사람을 만날 여유가 없어서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답니다. 방송처럼 맘에 안 드는 부분을 편집할 수도 없어 공연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도 힘든 부분이에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작들만 그의 이력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15년 무대감독 생활을 해오면서 100편이 넘는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갔지만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고생해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는데 관객이 없어서 일찍 막을 내릴 때가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좋아서 했기에 회의감은 들지 않아요.” 유 감독은 93년형 현대 스쿠프를 타고 다닌다. 나름대로 스포츠카의 장르를 개척한 차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다. 글 | 임유신 사진 | 임근재
떴다! 57분 교통정보의 미녀 4인방 2005-04-19
잔뜩 구름이 낀 날씨. 약속 장소인 서울지방경찰청으로 가는 길도 구름 낀 하늘처럼 짜증스럽게 밀리기만 했다. 때마침 57분 교통정보가 흘러나온다. 교통전문 리포터의 교통정보를 듣고 급하게 차를 돌렸다. 차가 갑자기 시원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리포터들과 약속한 시각은 오후 1시. 12시 50분에 극적으로 경찰청 정문을 통과했다. 기자라면 당연히 취재원과의 약속시간에 늦어서는 안 되지만 유난히 신경을 썼던 것은 네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시간마다 방송을 해야하는 교통전문 리포터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날 만난 리포터들은 각 방송사에서 파견되어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57분 교통정보’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정신이 강한 여성들이다. 목소리로만 우리에게 알려진 교통전문 리포터들의 실제 모습과 생활은 어떠할까? 많은 청취자들이 그렇듯 기자도 매우 궁금했다. ●● 김희조 리포터는 교통전문 리포터로서는 사람들에게 가장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학교 졸업 후 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MBC 라디오 공채로 들어간 후, 처음으로 활동하게 된 분야가 바로 교통전문 리포터다. 2000년도에는 MBC 방송대상 리포터 부문 특별상을 받기도 했고, 현재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 주가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될 때는 사람들에게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왔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때마다 ‘아,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곤 해요.” 교통전문 리포터들에겐 그들만의 직업병이 있다. ‘57분 교통정보’ 방송에서 오는 강박관념으로 방송을 하지 않는 날에도 50분대만 되면 괜히 가슴이 뛴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57분대가 가까워지자 얼굴들이 굳어지기 시작하고 긴장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교통전문 리포터들은 1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돼요. 아시다시피 교통전문 리포터에게는 녹화라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폭설이나 재난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연장방송을 해야 하므로 프로의식이 없으면 힘든 직업이에요. 예전에 한번은 눈 속에 갇혀 방송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의 기분이란……. 하지만 뭐 제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저한테는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이에요.” 김희조 리포터는 일에 열정이 많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교통과 관련된 깊이 있는 공부를 좀더 하고 싶어한다. “다른 방송 분야도 경험해보고, 많은 경험을 쌓아 교통 전문가로서 단단한 ‘내공’을 쌓고 싶어요. 교통관련 대학원에 들어가 좀더 깊이 공부해 이 분야를 확실한 전문가 집단으로 만드는 데도 한몫하고 싶구요.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교통방송 전문가로 평생 먹고살고 싶어요.(웃음)” 사람은 누구나 일에 빠져 있을 때 아름다워 보인다. 방송 일에 관해 하나하나 열심히 설명해주는 그녀의 모습도 그랬다. ●● 이번에 모인 리포터 가운데 방송경력이 가장 오래된 사람이 바로 박영지 리포터로, 단정한 외모에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교통전문 리포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그저 방송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때마침 기회가 와서 발을 담그게 되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평소에 길눈이 밝고 새로운 길이나 지역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일이 제 천직이라서 그랬던가봐요.” 그는 “주변에도 교통전문 리포터가 되려고 준비중인 사람들이 많다”면서 선배로서 신중하게 한마디 건넸다. “우선 방송을 할 수 있는 ‘기본기’는 당연히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기를 닦아주는 가장 좋은 데가 방송아카데미 같은 곳일 테지요.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 아카데미 출신이에요. 또한 운전을 하거나 차를 타고 다닐 때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고, 특징을 잘 잡아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교통상황에 영향을 줄 만한 사회현상이나 기상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도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 공사 같은 것도 평소에 체크해 두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아요.” 교통방송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고 현장을 만나게 된다. 박영지 리포터는 나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통문화를 차분하게 조언했다. “잘못된 길의 특성 때문에 사고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정부 교통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주위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차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건강에도 좋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잖아요. ●● 두수미 리포터는 파견 근무경력이 가장 오래된 베테랑이다.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연스러움 속에 배어나는 솔직함’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게끔 해주었고, 질문마다 진솔하게 답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른 일보다 개인시간이 많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폭우나 폭설처럼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아침 근무가 걸리면 참 힘들지요. 특히 눈길 위를 운전할 때는 목숨 걸고 출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저희는 늦으면 바로 방송사고가 나니 큰일이잖아요.” 방송사고를 너무 많이 내어 만약에 리포터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짓궂은 질문을 해보았다. “저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도 후회합니다.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은데, 외국어를 세 가지쯤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에요. 그러고 난 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싶어요.(웃음)” 두수미 리포터는 밝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취업 관문을 두드릴 때였어요. 방송이 너무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시험도 많이 봤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했지요. 너무 괴로웠지만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어요. 항상 잘 될 것이라고 끝없이 스스로에게 말했고, 모든 시험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그토록 바라던 방송 일을 하게 되더군요.” ●● 크고 깊은 눈이 인상적인 김유정 리포터는 4명 중 막내다. 목소리 톤이 낮고 차분한 것이 심야 라디오 DJ의 음색을 떠올리게 한다. 교통방송말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기는 해요. 하지만 아직 이 일도 부족한 게 많아서 더 열심히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사람들이 교통정보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고, 그만큼 교통이라는 분야도 세분화, 전문화 되어가고 있잖아요. 따라서 제가 하고있는 이 일의 미래도 밝다고 봅니다.” 선배들에 견주면 아직 교통전문 리포터 경험이 많지 않지만 막내답지 않은 여유와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의지가 보였다. “출근길 교통정보를 전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인데, 상습 정체지역에는 밀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예를 들어 신호체계가 잘못되어 있다든지, 교통량에 비해 도로가 좁다든지, 우회도로가 적기 때문이라든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을 테지만 교통을 책임지는 기관에서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고쳐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한 시간 간격으로 방송을 해야 하는 교통전문 리포터의 특성 때문에 남자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는 탓일까, 교통전문 리포터들은 거의 모두 남자친구가 없다. 그러나 김유정 리포터는 현재 남자친구가 있다. 예전에 영화에서 본 내용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교통전문 리포터가 남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특정 지역 이름을 대면서 방송하는 로맨틱한 스토리가 떠올랐다. 혹시 그런 경험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아직 그 방법을 써 본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웃음)” 미녀 4인방과 즐거운 수다 한판 좀더 진솔하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교통전문 리포터들은 외부와 접촉이 많지 않고 그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방송대기를 하는 동안에는 삼삼오오 모여 수다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고. 서른 살 노처녀 김희조·두수미 리포터, 유부녀 박영지 리포터, 그리고 ‘아직 20대’라며 결코 노처녀가 아님을 강변하는 김유정 리포터. 이들과 청일점인 기자의 수다 한판이 벌어졌다. 기자 박영지 씨 빼면 다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는데, 좋아하는 남성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박영지 씨는 남편 자랑을 하셔도 됩니다. 김희조 저는 좀더 성숙할 비전이 보이는 남자, 저랑 말이 통하고 마음이 넓은 남자, 놀 줄은 알지만 놀지 않는 반장 스타일의 남자,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묘사된 중후한 몸가짐과 수수한 멋을 알고 은은한 성품을 가진,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기자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김희조 (민망한 듯 기자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하긴, 그래서 아직 노처녀인가 봐요.(웃음) 기자 농담이었습니다.(웃음) 김희조 씨는 사랑을 어떤 색으로 표현하고 싶나요? 김희조 핑크 색이요. 환하고 예쁘잖아요.(자리에 모인 리포터들은 대개 핑크 색에 동의하는 듯 했으나 그때 두수미 리포터가 손사래를 치며 나선다) 두수미 저는 무지개 색이요. 사랑은 그때그때 달라요. 기자 두수미 씨는 어떤 남자가 좋은가요? 두수미 운전 잘하는 사람이 좋아요.(웃음) 농담이었어요. 사실, 남자다운 스타일이 좋아요. 박력 있고, 리더십 좋고, 거기에 유머감각까지 있으면 ‘딱’이지요. 박영지 저는 남편 자랑을 할게요. 제 남편은 늘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줍니다. 집안 일도 같이 하고, 제가 주말에 일 할 때는 도시락도 싸다 주는 걸요.(자리에 모인 리포터 모두 부러움의 탄성을 지른다) 기자 이상형들이 비슷한 모양이군요. 모두 부러워하시네요. 자, 이상형은 들어봤고, 교통전문 리포터들도 교통법규를 어겨본 적 있나요? 지나간 일인데 터놓고 말씀해 보세요. 김유정 방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몇 번 해본 적 있어요. 뭐, 그래도 신호위반쯤이었어요. 아! 아니다, 과속도 몇 번 했구나.(웃음) 김희조 저는 몰라서 위반한 적 있어요. 장소가 남대문 교차로였는데 진행경로가 헷갈리게 되어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위반을 했지요. 그런 뒤 바로 관계기관에 건의했어요. 두수미 전 위반 절대 안 했어요. 운전 경력 7년 동안 한번도 딱지를 떼어본 적이 없거든요. 기자 딱지는 안 떼어 봤어도 들키지 않게 위반한 적은 있지요? 두수미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런 적이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게요.(웃음) 기자 다들 운전 스타일은 어떤가요? 두수미 씨는 딱지를 안 떼어봤다니 운전도 요령 있게 잘하실 것 같은데. 두수미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운전은 좀 과격하게 하는 편이에요.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아차!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천천히 운전하라고 말하면서 제가 운전 험하게 하는 걸 아시면 안 되는데……. 방금 제가 한 말 ‘오프 더 레코드’로 해 주세요.(웃음) 기자 글쎄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군요.(웃음) 김유정 제 친구들은 제가 운전을 너무 거칠게 해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고들 하대요. 하지만 저도 수미 언니처럼 사람들에게 항상 안전운전을 강조하지요.(웃음) 기자 겉모습과 달리 운전을 거칠게 하시는군요. 물론 늘 방송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생긴 운전습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박영지 자동차 전문 기자들은 운전을 어떻게 하세요? 기자 저희야 뭐, 안전운전을 생활신조로 하지요.(물론,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믿거나, 말거나.) 기자 가장 기억이 남는 팬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김희조 제 생일이거나 특별한 날이 있으면 어김없이 챙겨주는 카페 주인장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 힘들 때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김유정 저는 팬이 많지 않은 편인데, 수원에서 공군장교로 근무하는 팬이 기억나요. 아침마다 이메일로 좋은 노래와 글귀를 보내주곤 했어요. 아침에 그런 메일을 받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져요. 두수미 예전에 서울톨게이트에서 고속버스를 얻어 탄 적이 있는데 기사 아저씨에게 SBS 리포터라고 했더니, 두수미 아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팬이라고 하면서. 그때 얼마나 흐뭇했던지……. 기자 그렇군요. 항상 지켜보는 팬들이 있으니 힘이 나시겠군요. 화제를 조금 돌리지요. 술은 자주 마시나요? 주량은 얼마쯤 되나요? 박영지 맥주 한 병, 소주 두 잔이 딱 좋아요. 술 취하면 그냥 잠들어요. 기자 저도 그래요. 술 마시고 자는 습관은 불치병인 것 같아요. 김유정 저는 한창 잘 마실 때는 소주 두 병, 지금은 나이가 들은지라 많이 약해졌어요. 때로는 맥주 500㏄에 취할 때도 있어요. 취하면 말이 많아져요. 그리고 귀여운 척을 한다고 하더군요.(웃음) 두수미 소주 반 병쯤인 것 같아요. 평소에도 잘 웃는 편이지만 술 마시면 더 많이 웃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끔 오해받기도 해요. 김희조 제 주량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한계에 도전하면서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다음 날 해야 할 방송 생각하면 걱정돼서 못 마셔요. 그냥 맥주 500㏄, 소주 세 잔, ‘50세주’ 다섯 잔, 폭탄주 세 잔, 와인 두 잔이면 적당해요. 기자 농담도 심하셔라! 그걸 어떻게 다 드세요? 김희조 아뇨, 아뇨! 한번에 다 마시는 게 아니라 따로 마실 때 그렇다는 거지요.(웃음) 술 취하면 저도 말이 많아져요.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시면 괜히 슬퍼져요.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신다는 점이 흐뭇하고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이날 수다는 한 시간쯤 이어졌다. 리포터들은 목을 많이 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평소 목소리 관리를 위해 모과·허브차 등을 자주 마시고,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목을 감싸고 잘 때도 많고, 무엇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김없이 57분 교통방송을 들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진지하게 교통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바른 길라잡이들과 나눈 인터뷰, 그 유쾌한 기억이 카오디오 스피커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었다.
개그맨 차승환 천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 2005-04-15
한때는 ‘신문지’로, 그 다음에는 ‘허리수’로 불렸던 남자, 개그맨 차승환. 그는 말 안 듣는 개구쟁이처럼 생겼다.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꼬불꼬불 말아 올린 짧은 머리는 올해 막 6살이 된 조카를 연상시킨다. “뉴키즈 온더 블록 아시지요? 20년쯤 전인가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아이돌 그룹 있잖아요. 그 그룹의 막내가 조 메킨타이어라고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었는데, 이 머리가 바로 그 친구의 머리 스타일이에요. 어때요? 비슷하지 않나요?” 이렇게 말하면서 춤동작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생각해보니 그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무용을 했다면 무용수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그는 어떻게 개그맨이 되었을까? “군대를 갔는데 그곳에서 개그맨 선배를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개그맨 시험을 보게 되었고 97년 여름에 시험에 합격하면서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했지요.” 4WD 즐길 줄 아는 자동차 매니아 차승환은 MBC TV ‘오늘은 좋은날’에서 축구해설가 신문선을 흉내내는 ‘신문지’라는 캐릭터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한창 주가가 올랐을 때 영화를 하겠다며 돌연 개그계를 떠났다. 그가 다시 브라운관에 돌아온 것은 SBS에서 ‘웃찾사’를 시작한 2003년 3월이다. 그는 그 프로그램에서 가수 하리수를 흉내내는 ‘허리수’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그의 주특기인 성대모사는 여기서도 제몫을 했다. 눈을 감으면 하리수인지 허리수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목소리가 똑같았다. “그것 때문에 ‘남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 그런 말을 안 듣게 되더군요.(웃음)” 차승환은 몇 달째 방송을 쉬고 있다. 몸이 안 좋아진 탓이다. 지난 가을 그는 요로결석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프로그램 녹화가 있던 날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는데 방송을 쉬어야할 만큼 상태가 나빠져 있었단다.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지요. 이제 몸도 좋아지고 했으니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아마 웃찾사로 복귀할 것 같습니다.” 차승환은 요즈음 자동차에 푹 빠져있다. 지난해 코리아 모터스포츠 협회(KMSA)의 드라이빙 스쿨을 수료하고 라이선스를 받은 그는 가끔 서킷에 나가 카레이싱을 즐긴다. 작년 7월에는 자주색 닷지 다코타를 새 식구로 맞았다. 인터뷰가 있던 날, 그는 다코타와 함께 나타났다. 경쾌한 배기음을 울리며 골목 안으로 들어선 다코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전에는 쌍용 무쏘를 탔는데 4WD였거든요. 그 차를 타고 4WD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요. 4년쯤 전인가 눈이 굉장히 많이 왔던 겨울날 친구들이랑 설악산에 갔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더군요. 그날 저녁에 방송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국도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4WD라 역시 눈길에 강하더군요. 다른 차들은 미끄러지고 난리가 났는데 제 차는 체인 없이도 무사히 올라왔어요. 그때부터 전 4WD만 고집하고 있지요. 이 차도 4WD예요.” 그는 타고난 재담꾼이다. 1시간째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처음의 장난꾸러기 같던 모습도 어느덧 진지해졌다. 거의 모든 연예인이 그렇겠지만 특히 개그맨의 인기는 한순간이다. 온 국민이 따라하던 유행어는 어느 순간 식상해져 버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기도 몇 달 안 가 시들해지곤 한다. 그래서 차승환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두 번의 굴곡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물론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자주 보지 않으면 잊혀지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그의 얼굴이 잊혀지기 전에 어서 빨리 그가 전하는 웃음을 만나고 싶다.
목판화가 김상구 나무처럼 담백하고, 칼날처럼 예리한 2005-04-15
누군가 나무는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무에 다가서면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무를 매개체로 그려내는 목판화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때마침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 목판화전(4월 3일까지)이 열리는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인 목판화가 김상구 씨의 회갑기념전이 인사아트센터(∼3월 15일)에서 열려 목판화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과 팔만대장경이라는 크나큰 문화유산 등 유구한 목판의 전통이 쉽게 잊혀지고 있는 요즘 새로 목판화를 돌아보고 생각케 하는 전시라 의미가 적지 않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인사아트센터에서 김상구 씨를 만났다. 자동차여행 통해 좋은 경험 얻어 “판화는 간접표현입니다. 중간에 매개체를 이용해 완성시키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판화는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출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중간 매개체인 판도 여러 가지로 발달되어 동판, 실크스크린, 심지어 컴퓨터로 판화작업을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목판의 가치를 알아주고 옛날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으면 위안을 받아요. 목판은 오래보아도 싫증나지 않거든요. 다른 것보다 목판의 생명이 더 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상구 씨는 홍대 서양학과를 나왔지만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외곬으로 목판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로서의 단호함은 목판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지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동북아 3개국 목판화전을 계기로 침체된 판화계가 활력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한국, 중국, 일본의 목판화 차이는 무엇일까.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목판화는 색채가 별로 없고 흑백이 많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투박한 기와집에서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쓸 수 있는 대담함이 여기에 있어요. 중국, 일본은 화려합니다. 중국은 붉은색이 강조되면서 기교가 많고, 일본은 그라데이션, 즉 점점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효과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솔직하고 담백한 것이 우리나라 목판화의 특징인데 이것이 바로 목판화 고유의 성격이며 김상구 씨가 목판화를 그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자로 잰 것보다는 약간 휘어진 대들보의 선과 같은 것, 화려한 것보다는 투박한 것, 치장으로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가운데 스며드는 토담과 같은 것, 가득 차 있는 것보다는 여백이 있는 것 등의 소재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재정적인 분야에서는 빵점”이라며 예술가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그는 “우리나라의 문화의식이 가난하게 생활하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동차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작업실에서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은 자동차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난 98년 판화작가 30여 명과 함께 경주를 여행하며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고 경주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안동 하회마을을 소재로 작업하고 안동 탈 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되었지요. 기꺼이 스폰서가 되어 준 김동표 박물관장님의 도움이 컸어요. 아무튼 그런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외국 못지 않게 아름답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요즘 다들 외국으로만 나가려고 하잖아요. 물론 외국 나가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연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투처럼, 생활도 담백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지금 그가 타는 차는 2000년형 현대 EF 쏘나타다. 보디컬러는 은색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단다. “잘 닦지 않아도 흉하게 보이지 않는 색이 은색입니다. 오늘 아침 나올 때도 쓱 보니 며칠 전 눈비 맞은 것을 아직 세차하지 못했는데도 괜찮더라고요. 어두운 색일수록 더 때가 잘 탑니다. 짙은 회색이라면 매일 닦아야 하지요.” 새차를 고를 때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다. 차에 대한 얘기조차 예술가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뭔가 다른 것이다. “거리의 차를 볼 때 차가 모두 대칭인데 획기적으로 변화를 준 차가 있다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차의 모양은 처음에는 예쁘게 나온 듯한데 나중에 보면 외제차에서 본 모양이라 실망스러워요. 폭스바겐 비틀처럼 오랫동안 좋은 디자인의 차를 왜 만들지 않을까요. 왜 우리만의 딱정벌레를 찾지 않으냐는 말이지요.” 이미 목판화로써 대가의 경지에 오른 그이지만 편안하게 묻어나는 소탈함은 나무와 함께 생활했기 때문일까. 미술평론가이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던 오광수 씨가 김상구 씨를 일러 ‘나무를 닮아 가는 사람’이라고 평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성품은 나무처럼 담백하고, 현상에 대한 관찰력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삶이 그대로 목판화인 그는 천상 목판화가인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오광수 씨의 다음 평론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의 작품에서 칼은 예리하면서도 투박한 정감을 감추지 않는다. 칼은 이미지를 앞질러나가고 부단하게 각인되는 풍경의 뒷면에 가까스로 그 흔적을 남긴다. 어느덧 각인된 이미지는 나무자체의 속성으로 환원된다…….’
모델 이화선 싱그러운 봄 햇살 같은 여자 2005-03-17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이화선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른다. 하늘색 재킷에 하늘하늘 팔랑거리는 꽃무늬 스커트를 입은 모습, 아직 바람이 찬데 벌써 봄을 만난 듯 화사한 차림이다. 그날 그녀는 봄날의 새싹처럼 싱그러웠다. 이화선에게 어떤 타이틀을 붙여야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연기자라고 하자니 출연했던 작품수가 적고 모델이라고 하기엔 무대 경험이 부족하다. “모델로 시작을 하긴 했지만 제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에요. 아직 연기경력이 부족해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모자라겠지만…….” 그녀는 2000년 SBS 수퍼모델 선발대회에 나가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니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모델인 것은 맞다. 숙명여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그녀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캐스팅되어 연기학원을 다니다가 아는 친구의 권유로 수퍼모델 선발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에서 ‘덜컥’ 붙어버렸단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저도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을 해요. 대학 1학년 때만 해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제가 연예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지만 연기에 점점 욕심이 생겨요. 올해엔 좋은 역을 맡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지난해 MBC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에 출연하며 연기라는 걸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트콤은 일찍 막을 내렸다. 시청률이 너무 낮았던 탓이다. 내레이터 모델이란 작은 배역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모처럼 열심히 해야겠다고 의욕을 앞세웠는데 프로그램이 일찍 막을 내리게 돼서 많이 아쉬워요. 하지만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잖아요. 올해엔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모델로 시작했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시트콤을 접고 잠시 쉬던 그녀는 요즈음 다시 오락 프로그램 등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도 어느 방송 카메라가 인터뷰하는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SBS의 오락 프로그램 ‘컬투의 스타코치’에서 그녀는 ‘아침형 인간 되기’라는 특명을 받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 덕에 모처럼 운동을 하고 영어학원에 가고 인터뷰를 하기까지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그래도 아직 오후 5시가 안 됐다”며 하루가 무척 길어진 느낌이란다. “이렇게 살면 정말 성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이제부터는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이려고 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모델, 연기자란 타이틀말고 최근에는 새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바로 카레이서다. 물론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그녀는 지난해 9월 강원도 태백의 서킷에서 열린 클릭 스피드 페스티발에 참가해 RD 클래스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자신조차 이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경기에 나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라이선스를 땄는데 주위에서 3주 후에 경기가 있으니 나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재미 삼아 연습을 시작했는데 경기가 있기 3일 전에 큰 사고를 냈어요. 보네트는 다 찌그러지고 차는 트랙 위에 걸쳐지고……. 사고를 겪고 나니 겁도 나고 해서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음날 정비하시는 분들이 차를 말끔하게 고쳐놓은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경기에 나가게 되었어요. 제가 출전한 부문은 남녀혼성경기라 파트너와 호흡이 중요한데 제 파트너가 잘해준 덕이지요.” 그녀는 현재 연예인 레이싱팀 R스타즈에 소속되어 있다. 이곳에는 이세창, 류시원, 안재모, 박용하 같은 동료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은 스케줄이 비는 틈을 타 서킷에 나와 레이싱 실력을 겨룬다. 카레이싱을 한다면 다들 도로에서 과격하게 차를 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편견일 뿐, 도로에서 시속 100km를 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서킷에서 마음껏 차를 몰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도로에서는 다들 순한 양이 되지요. 레이싱팀 소속이니까 과속을 할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세요.”(웃음) 이화선은 지금 바쁘게 달려온 신인 시절을 넘기고 가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 알리기에 주력해왔지만 앞으로는 연기자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생각이다. 이름 앞에 붙은 모델이란 수식어도 이제는 작별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모델이 왜?”라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가수도 연기자가 되고 운동선수도 코미디언이 되는 바야흐로 크로스오버 시대다. 그녀가 연기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다만,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다. 거친 레이싱 서킷을 질주하듯 그녀가 연기 서킷에서도 탈 없이 질주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현기영 원장 “지금은 기초(순수).. 2005-03-17
이재수의 난과 4·3사건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순이 삼촌’ 등 제주와 관련된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현기영(64) 씨. 진보적 재야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후신)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그가 관변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만 2년이 되었다. 이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는 잠잠해지고 원래 놓여 있어야 할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일상이 되었다. 소외 받았던 가치의 복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짓눌러 온 권위주의의 해체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흐름. 대학로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있던 자리, 그 본부건물을 쓰고 있는 문예진흥원에서 현기영 원장을 만났다. 오는 7월 ‘문화예술위원회’로 거듭날 것 “문학하던 사람이 말하자면 CEO 입장으로 변신했는데,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동안 문예진흥원은 사회변화에 비해 미미한 변화에 그쳤고, 관료화되어 있었지요. 그러한 경직성을 극복하고 민주적인 독립적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고, 그것을 수용하러 여기에 왔어요. 내 역할이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인데요, 체질 개선은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은둔자에서 적극적인 서비스를 펼치는, 심부름꾼으로서 예술 현장을 찾아가는 변화지요. 예술계와 밀착하고 예술수요를 반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위원회 체제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는데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되어 오는 7월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게 됩니다.” 문화예술의 창작, 공연, 문화시설, 국제교류 등을 지원하는 문예진흥원 본래의 목적이 더욱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현장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셈이다. 지난 2년 동안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온 현기영 원장은 현실참여에 목소리를 높여온 작가 출신인 만큼 처음부터 편한 자리는 될 수 없었다. “70, 80년대의 권위적 시대에서 예술도 발언을 해야 한다는 그런 행동과 글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 민주화 싸움은 끝났다고 봅니다. 예전에 보수로 분류됐던 인사 중에 훌륭한 분들이 있고 진보로 불린 인사 중에는 또 안 좋은 분들도 있습니다. 좋은 예술이 중요할 따름이지요.” 이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없고 좋은 예술만이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다소 의외로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이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을 되짚게 한다. 역설적이지만 어떤 쟁점이 사라진 90년대 이후 문학의 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처럼.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중심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일상이라는 게 지리멸렬한 것이지요. 쟁점이 사라지고 문학이 일상생활로 돌아가면서 그 속에서 금강석을 발견해야 하는데 지리멸렬함에 함몰되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젊은이들의 풍속, 책을 읽지 않는 습관은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가령 칼이라는 도구의 기능만 알고 그 사용에 따른 판단이 없는 것처럼 정신의 피폐화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영화 등 영상물의 홍수 속에서 휴머니티의 부재와 자본주의의 자기모순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현기영 원장의 걱정이다. 이것은 그의 신작소설 ‘누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누란은 AD 600년경 타클라마칸 사막 근처에 있던 소왕국의 이름으로 사막황폐화로 한 도시가 사라진 것을 다루고 있어요. 서울도 자본주의 대도시 중의 하나인데 자본주의의 나쁜 풍속이 가장 많이 받아들여진 도시입니다. 영화를 누리던 도시가 황사에 파묻혀 사라지듯 서울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의 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미지는 감각적인 것에 부합할 뿐이지만 독서는 자기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하는 아이는 인터넷 중독에 빠질 위험이 없다는 것. “문예위원회(문예진흥원)의 근본 목표는 기초예술 즉 순수예술 살리기가 될 것입니다. 문학, 연극, 미술 등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는데 이것을 회생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민들로 하여금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저희가 할 일이지요.” 조용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현기영 원장과 이야기를 나눈 오래된 방의 큰 창에는 따스한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문화예술의 봄도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네이미스트 김희수 화룡에 점정하듯 단어 하나로 생명.. 2005-02-23
어릴 적부터 자동차나 과자, 옷 등의 이름 짓기 공모에 종종 응모한 적이 있다. 내가 지은 이름이 곳곳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반, 상금이나 상품에 대한 욕심 반이었다. 사전을 뒤적거리며 좋은 이름을 찾아 후보를 뽑아 놓고 고심하기를 며칠. 가장 맘에 드는 이름을 보내 놓고도 맘이 놓이지 않아 후보작을 모두 보낸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당첨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수백수천 대 1의 선택을 위한 고행 “전공을 살릴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멋 모르고 발을 들여놓았죠. 하지만 지금은 광고보다는 네이밍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네이밍 전문업체인 메타브랜딩의 실장으로 일하는 김희수 씨의 대답이 무척이나 시원스럽다. 프랑스까지 가서 공부한 광고이기에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지만 주저없이 네이밍에 손을 들어준다. “이름을 짓는 것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에요.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듯 시작하는 작업이죠. 게다가 단순히 맘에 드는 단어를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마케팅 분석은 물론이고 법률검토와 영업력까지 모두 갖추어야 해요. 브랜드에 관해 A부터 Z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5~6명이 팀을 이뤄 하나의 이름을 짓는 데는 보통 한 달이 걸린다. 한 프로젝트에 올라오는 후보작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이를 감당해 내려면 해당분야에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붙잡아 두는 작업은 필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족족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된다. 매일매일 수십 수백 개의 이름을 생각해 내야 하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이 때문에 메타브랜딩에서는 직원에게 1년에 한달간 해외에 나가 재충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하는 일이므로 이름을 붙일 상품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만 한다. 대개는 상품개발단계부터 긴 시간을 보고 경험하기 때문에 저절로 애착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해요. 철저하게 미쳐서 마지막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식품에 대한 이름을 짓는다고 하면 마트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시장조사를 하고 경쟁사 제품까지 다 먹어 볼 정도로 철저하게 파고든다. 이렇게 공들여 이름을 짓지만 한번에 만족스런 이름을 얻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작업을 했는데 클라이언트가 만족하지 못할 때나 가장 적합한 이름이라고 제안했지만 계속 다른 이름을 요구할 때 가장 난감해요. 끝이 안 보이는 작업을 시킬 때는 한 번 이상 크게 울곤 하죠. 플래너라면 누구나 다 그럴거예요” 그녀의 손을 거쳐간 주요 작품은 ‘로디우스’(쌍용자동차), ‘에쿠스’(현대자동차), ‘엔요’(매일유업), ‘하우젠’(삼성전자), ‘클라우드9’(KT&G), ‘엔프라니’(엔프라니), 하이페리온(현대건설) 등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너무나도 쟁쟁한 이름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애착심을 갖고 있는 작품은 뜻밖에도 담배 브랜드인 ‘클라우드9’. 구름의 단계 중 신의 자리인 10단계를 빼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 속뜻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 더욱 애정이 간다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네이미스트란 직업에 대해 조금씩 빠져드는 기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해달라는 주문에 그녀가 한마디 했다. “남들은 재미있고 멋있는 일 한다고 부러워들 해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커서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해도 TV나 길거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직업이 그리 흔한가. 네이미스트가 멋진 직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가수 겸 배우 황치훈 추억 속의 가수, 자동차 세일.. 2005-02-18
우리에게 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황치훈, 그가 어느새 자동차 딜러로 변신해 자동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소 재규어의 팬이었던 그는 브리티시 모터스의 신익수 사장과의 친분을 계기로 수입차업계에 공식 입문하게 되었고 지난달 영업 교육을 마치고 2005년 1월부터 과장 직급으로 재규어 및 랜드로버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연예인 시절 재규어를 좋아해서 매장에 자주 들렀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동차를 팔게 됐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습 사원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사실 직급은 과장이지만 낙하산 인사나 다름없지요.(웃음) 열심히 일을 배워 과장이라는 직급에 어울리는 세일즈맨이 되고 싶어요.” 황치훈 씨의 입사와 관련해 브리티시 모터스 신익수 대표는 “재규어&랜드로버가 가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 오랜 연예활동을 통해 얻은 황치훈 씨의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가 영업에 좋은 성과로 반영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힌다. 황 과장의 이유 있는 변신 4살 때부터 아역배우로서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일찍이 아역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호기심으로 기타를 배우러 갔다가 재미를 붙여 계속해서 음악을 공부, 89년 히트곡인 ‘추억 속의 그대’를 불러 그해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 제2의 히트곡을 내놓지 않고 돌연 방송활동을 중단해 버렸다. 그가 연예활동을 중단하고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게 된 것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제가 연예인이 되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었지요. 어머니는 제게 가장 소중한 분이셨고, 제작자이며 매니저이기도 하셨어요. 89년 가요 시상식에 제가 신인상을 받던 바로 그해 어머니가 저혈압으로 돌아가셨어요. 당시 제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어머니의 빈자리는 감당할 수 없이 컸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반년 이상 술만 마셨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안 좋은 일만 생기더군요.” 그 후, 그는 마음을 잡고 방송활동과 음반작업을 다시 시작했고 새 앨범을 내놓았다. 그러나 때마침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앨범 홍보 부족으로 예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제대 후 다시 가수활동을 준비했으나 인지도 하락과 음반 제작사와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재기가 쉽지 않았다. “가수활동을 중단하고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노동판에서 막노동도 해봤고, 광고회사에 입사해 잡일부터 배운 후 독립하여 광고기획사도 차려봤고, 인터넷 유통사업에 손을 대보기도 했지요. 성인방송국 관리자 일도 해본 걸요.(웃음)” 아역배우와 가수로서 잘 나가던 그에게 닥친 시련은 그를 강한 생활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보통 연예인이라면 하기 꺼려할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소신껏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망설이는 일이 한가지 있다. 바로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리 큰 경제적 압박이 와도 한번도 이른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밤무대에서 노래한다고 나쁜 건 아니지요. 그냥 제 나름대로의 소신을 지킬 뿐이에요.” 오래간만에 만나본 그에게는 예전의 미소년 이미지와 일반 사회인의 분위기가 섞여 있었고, 인터뷰를 하면서 받은 인상은 가식 없는 솔직함이었다. 보통 영업이라는 분야는 속성상 포장을 잘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영업 노하우가 있다. “없는 사실을 부풀려서 말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재규어가 가진 성능을 있는 그대로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이 제일 좋은 영업 방법 아닌가요? 일단 자동차 세일즈맨이 됐으니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 최고의 자동차 세일즈맨이 되려면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다시 돌아온 추억 속의 황치훈, 앞으로 펼쳐질 그의 활약상과 새로운 분야에서 이룰 ‘화려한 재기’에 기대를 걸어본다.
가수 진주 싱글 앨범, 새 분위기로 우리 곁을 찾아.. 2005-02-18
당차 보이던 열 여섯 살 여고생은 어느덧 숙녀가 되어 있었다. 사내아이 같던 얼굴에서도 이젠 제법 숙녀 티가 묻어난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치마도 어색하지 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가보다. 우렁차게 내지르던 그녀의 목소리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진주가 가수로 데뷔한 지도 벌써 10년. 10년 전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음반사며 기획사를 직접 찾아다녔다. 가수가 되기 위해. 그러다 가수 박진영의 눈에 띄었고 ‘난 괜찮아’란 노래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앨범을 내기까지 힘든 일이 참 많았어요. 한번은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직접 음반회사에 갔는데 저를 보더니 ‘사장님이 지금 안 계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발길을 돌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그 회사 사장이더라고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서럽던지…….” 그녀가 외모 때문에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핑클, SES 등 예쁘고 깜찍한 여자가수들 틈에서 ‘노래만 잘 하는 가수’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상했던 적이 많았다. 지난해 8월 출연했던 뮤지컬 ‘탐풀즈’에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담겨있다. ‘탐풀즈’는 노래는 잘 하지만 얼굴이 못 생긴 네 명의 여성 그룹이 얼굴만 예쁜 여성 4인조 그룹 ‘사파이어 걸스’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다가 마침내 외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내용의 뮤지컬이다. 감독은 대본을 보자마자 진주를 떠올렸다. 그만큼 그녀의 삶은 ‘탐풀즈’ 주인공들과 닮았다. “대본을 읽는데 ‘울컥’ 하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서러웠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가는데 장면 하나 하나가 다 제 얘기 같았지요.” 새 앨범에서 피아노 실력 유감없이 뽐내 진주는 2집 활동을 마치고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버클리음대에서 4년 동안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잘 나가던 그녀가 미국행을 택했을 때 많은 팬들은 아쉬워했지만 그녀를 격려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1, 2집이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것에 비해 3, 4집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다. 여기에 소속사와의 갈등이 커지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어렵게 결정한 유학이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앨범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는 것도 그렇고요. 둘 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 가지 일에만 충실하자는 생각에 유학생활을 잠시 접고 한국에 들어왔지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얽혀 있더군요. 소속사에서 그동안 저에게 거짓말을 했던 부분도 있고. 그때 처음 사람에 대해 실망을 했어요. 그래서 두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말도 안하고 집에만 있었어요.”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그녀가 다시 일어선 데는 지금 소속사의 대표인 김성현 씨의 노력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진주와 가깝게 지내왔던 그는 그녀를 다독이며 앨범작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난 12월 발매를 시작한 싱글 앨범 ‘진주&웨딩’. 그녀의 새 앨범은 지금까지 그녀가 불렀던 노래들과는 사뭇 다르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번안해 부른 타이틀곡 ‘Run to You’를 비롯해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 모두 사랑하거나 사랑 받는 내용의 곡들이다. “지금까지 이별 노래만 줄곧 불렀는데 덜컥 겁이 났어요. 이러다 정말 노래처럼 되는 게 아닌가 하고요. 가수는 자신의 노랫말처럼 산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즐겁고 기쁜 내용의 노래를 부르려고 해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피아노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전곡의 피아노 연주를 혼자서 소화한 것.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흡입력 있는 목소리가 더해져 앨범은 한층 깊이가 있어졌다. 18살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고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는 학교에 트럭을 몰고 가기도 했던 그녀는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스피드 매니아. 생방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만에 도착한 적도 있다니 그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길을 잘 모르는 매니저 탓에 운전대는 주로 그녀 차지다. 물론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안전벨트부터 찾는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차가 좋아요. 빠르게 달리다보면 우울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들을 잊을 수 있거든요. 지금은 르노삼성 SM525를 타는데 좀더 작고 스피드한 차를 몰고 싶어요. 작지만 힘있는 로버 미니 같은 차요. 제 이미지와 비슷하지 않나요?” 작고 귀여운 미니가 그녀와 닮은 것도 같다. 어쩌면 올 가을쯤에는 빨간색 로버 미니를 운전하는 그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무배 무서운 의지로 열도를 뒤흔든 대한의 격투사 2005-01-19
서른 무렵인 기자와 연배가 비슷한 남자라면 누구나 레슬링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을 듯하다. 코찔찔이 시절에는 박치기로 일본을 점령한 김일이나 화끈한 파이터 이왕표를 따라 아무하고나 머리를 부닥치고 땅바닥에 뒹굴기 일쑤. 그때 흘린 눈물과 코피는 양동이 하나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은 미국의 프로레슬링 WWF의 차지였다. 토요일 오후 혹은 일요일 새벽녘이면 부모님 몰래 안방으로 기어 들어가 TV 볼륨을 줄여놓고 터질 듯 팽팽한 근육에 개성 강한 필살기, 화려한 쇼맨십으로 무장한 ‘마초’들의 세상을 숨죽이고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레슬링 국가대표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진짜 남자란 저런 것’이라는 환상까지 심어준 프로레슬링의 세계는, 그러나 WWF가 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소문을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하며 설파하는 대다수 친구들의 말에 슬며시 시시한 작당으로 전락해버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설 즈음에 이르러 프로레슬링은 급기야 어린것들이나 보는, 아니 완전히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기자가 종합격투기 선수를 인터뷰한다는 사실은 넌센스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 뒤로는 프로레슬링은커녕 최근 2~3년 부쩍 인기를 끌고 있는 K-1이니 이종격투기니 하는 쪽으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최무배(36) 씨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도 ‘레슬링(혹은 종합격투기)은 각본 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마음 속 벽은 높이 둘러쳐 있기만 했다. “상대선수를 어떻게든 링 바닥에 눕혀놓고 주먹으로 연신 쥐어박는 경기가 뭐 재미있을까 싶었어요.” 케이블 방송에서 간혹 지나치듯 보았던 종합격투기의 경기장면을 떠올리며 그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실수였다. “사람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문화적인 존재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본능이 남아있습니다. 예쁜 여자를 보고 노골적인 시선을 던지는 남자들 있죠? 격투기에 대한 생각도 신체적인 사인에 반응하는 개개인 나름이라고 봅니다. 종합격투기에는 현대전투에서 찾을 수 없는, 전투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스스로는 인상 좋다고 해도 그의 눈은 똑바로 마주볼 수 없을 만큼 형형한 빛을 뿜어낸다. 더구나 190cm의 키에 몸무게만 100kg이 넘는 거구. 당장 잘못했다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최 씨는 아마 레슬링 그레코로망형의 국가대표였다. 98년 사고로 현역에서 물러난 뒤 레슬링 도장을 열고 후학 양성과 레슬링 보급에 골몰하던 그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선뜻 나선 것은 겨우 지난해의 일. “2003년 말 있었던 일본 프라이드 GP 파이널 라운드를 보러갔었어요. 티켓을 추첨해 유명선수의 기술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행사를 했는데 마침 제가 올라가게 됐지요. 그때 나왔던 선수가 프라이드 대회의 헤비급 챔피언인 효도르 선수였어요. 뒤에서 절 감싸안고 넘기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이 친구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대놓고 겨뤄보자는 기세로 나오더라구요. 상대가 진지하게 나온다면 저 또한 물러서지 않고 맞서야하는 게 정상인데, 이벤트에서 그럴 수는 없잖아요. 더 버티다가는 ‘진짜 경기’가 될 것 같아 마지못해 넘어가는 척 했어요.” 최무배 씨는 당장 프라이드 대회 운영자의 눈에 띄었고 지난해 2월 프라이드 FC의 하위리그격인 부시도(武社道) 대회에서 공식 데뷔전을 갖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이마무라 유우스케 선수와 가진 첫 경기에서 목조르기 기술로 4분8초만에 승리를 거둔 최 씨는 이후 5월의 부시도3에서도 일본 헤비급의 강자로 꼽히는 야마모토 요시히사를 상대로 심판판정승을 거뒀다. 최 씨의 무서운 기세는 본선인 프라이드 무대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31일 있었던 소아 펄럴레이와의 경기. 그가 갑자기 컴퓨터 모니터에 당시 경기 녹화 화면을 띄운다. “좀 길텐데, 그래도 한 번 보세요. 1라운드 10분, 2라운드 4분여 경기인데 저 되게 맞거든요.” 아닌게 아니라 최무배 선수는 정말 엄청 두드려 맞고 있었다. 1라운드 중 그의 얼굴에 쉴새 없이 쏟아진 상대방의 펀치가 얼추 20여 대 남짓. 이것 말고도 위기는 많았고 경기 내내 뭇매를 맞으며 일방적으로 밀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흠씬 두드려 맞고도 그는 서 있는 자리에서 물러날 기색이 없다. 한 대 맞고 앞으로, 두세 대 더 맞고 또 앞으로……. 2라운드가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로는 상대편 선수도 기가 질린 모습이었다. 순간, 최무배 선수가 기습적으로 파고들어 상대선수를 쓰러뜨리고 강한 목조르기에 들어가자 경기는 허망하게도 끝이 났다. 최무배 선수의 기권승. “비장의 무기 하나로 적을 단숨에 쓸어버리는 울트라맨처럼 단 한방의 공격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장내가 난리가 났어요. 그럴 만도 했겠죠. 경기를 본 제자가 제가 맞은 펀치를 세어봤는데, 대충 200 몇 십대 정도나 되더래요. 나중에 만난 복싱 선배들도 그러더군요. ‘그 정도로 몰렸으면 쓰러지고 싶었을 텐데 왜 안 쓰러졌냐’고요. 간단해요. 쓰러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더 싸울 힘도 남아있었고.” 예의 살아있는 눈빛으로 그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기자의 가슴은 꿈틀대고 있었다. 야성? 남자의 본능? 그것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설 수 없다” “비껴나지 않는다”는 인간 최무배의 자세가 이끌어낸 삶에 대한 의지일 것이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힘닿을 때까지 선수로 뛰고, 자신이 몸담은 레슬링을 배드민턴처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정착시키는 것. 프라이드FC용 글러브를 끼고 불끈 움켜쥔 남자의 주먹이 그제야 아름답게 빛나 보인다.
인라인 스케이트 국가대표 궉채이 차보다 날쌔게 달리.. 2005-01-13
최근 기아 쎄라토의 신문광고와 TV CF를 보면 차보다도 더 눈길을 끌며 시원스럽게 달리는 여자가 등장한다. 멋진 포즈로 달린 후 앳된 얼굴로 환하게 웃는 그녀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인라인 스케이트 국가대표 궉채이 선수다. 일찍부터 국내의 각종 인라인 스케이트 경기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는 지난 2001년 프랑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여러 해외 경기에서도 늘 우승을 하거나 아깝게 준우승을 하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궉 선수는 지난해 이태리에서 열린 인라인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궉채이 선수는 지난해부터 기아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국제인라인롤러경기연맹(FIRS)의 공식대회인 WIC(World Inline Cup)를 후원하는 기아가 세계여자인라인마라톤팀인 베르두치인터내셔널팀(Verducci International Team)과 손잡고 기아-베르두치팀(KIA-Verducci International Team)을 창단하면서 국내 인라인 스케이트 최고의 간판스타인 궉채이 선수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면허 따면 스포츠카 타겠다는 당찬 여고생 올해 안양 동안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궉채이 선수는 경기 때와 달리 운동복과 헬멧을 벗으면 아직 앳된 얼굴과 표정을 지닌 영락없는 18세 여고생이다. 예쁘장한 외모와 훤칠한 키(168cm), 52kg의 호리호리한 몸매 덕분에 일찍부터 온라인 카페에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인기 높은 ‘얼짱’ 스포츠 스타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그녀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다부지게 만들기 위한 연습에 한창이다. 이제까지 출전했던 주니어 클래스를 지난해로 마감하고 올해부터는 시니어 클래스로 출전하기 때문이다. 시니어는 주니어와 달리 선수들의 테크닉이 뛰어나고 체격도 훨씬 크기 때문에 몸싸움이나 자리다툼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경기가 없는 요즘 궉 선수는 힘겹기로 유명한 산악훈련과 타이어 끌기에 주력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고 지었던 궉채이 선수의 해맑은 미소 뒤에는 성공한 스포츠 스타들이 그렇듯이 피나는 훈련과 자기와의 싸움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없는 겨울에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요가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점심식사 후에는 산악훈련과 타이어 끌기로 몸을 만들고, 오후 4시가 되면 스케이트 자세훈련을 시작하지요. 하루 6시간 이상 고된 훈련을 하지만 그래도 경기가 없는 비시즌이라 마음이 편한 편이에요.”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박미경과 마야 등의 음악을 옆에 끼고 살고, 치즈라면이나 치즈돈까스 등 치즈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궉채이. “편식이 안 좋은 것은 알지만 콩나물과 회는 죽어도 못 먹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느 10대 소녀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훈련이 고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세상에 어디 힘들지 않은 게 있나요”라고 응수하는 모습에서는 제법 어른스러움도 엿보인다. “운동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힘들 때가 참 많아요. 높은 산을 한달음에 뛰어 올라가거나 무거운 타이어를 끌 때는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요. 고된 훈련도 힘들지만 해외 경기에 참가한 후 1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다음날 또 다른 경기를 위해 출국할 때는 정말 지쳐서 몸이 말을 듣지 않지요. 그러나 지난번에 경험해보니 쉬울 것 같던 스튜디오 촬영도 무척 힘들더군요. 역시 세상에서 힘들지 않은 일은 없나봐요.” 운동을 워낙 좋아해 훗날 결혼을 한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는 궉채이 선수. 궉 선수의 올해 목표는 지난해와 조금 다르다. 지난해 초에 가진 목표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자’는 것이었는데, 2004년 세계 주니어 클래스를 석권하면서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 궉채이 선수의 올해 목표는 이제 시니어 클래스에서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성적을 얻는 것이다. “자동차요? 무척 좋아하지요. 앞으로 면허를 따면 가장 먼저 멋진 스포츠카를 사서 타고 다닐 거예요.” 인라인 스케이트뿐만 아니라 어릴 때 배웠던 무용도 하고 수영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당찬 10대 소녀 궉채이가 꿈꾸는 또 하나의 멋진 자신의 미래상이다.
연기자 김규리 ‘불멸의 이순신’ 통해 사극 연기에 .. 2005-01-13
김규리가 데뷔를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모 화장품 CF였다. 앳돼 보이는 여자 모델이 코에 하얀 시트 같은 것을 붙이고 나와서는 거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쩍’ 하고 뜯어냈다. 시트에는 거뭇거뭇한 작은 알갱이들이 붙어 있었다. 광고를 본 여자들은 ‘내 코에도 저런 지저분한 것들이 있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너도나도 화장품 가게로 달려가 제품을 샀다. 당시 코팩의 인기는 대단했다. 다른 화장품 회사에서는 앞다투어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고 여자들은 저녁나절 20분을 하얀 시트를 코에 붙이는 일에 투자했다. 처음 코팩을 시중에 내놓은 화장품 회사는 매출이 급격히 올랐고 어린 여자모델도 단숨에 스타로 올라섰다. 그 모델이 바로 김규리다. TV와 스크린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 CF로 얼굴을 알린 그녀는 영화 ‘여고괴담‘, ‘산전수전’, ‘가위’, ‘리베라메’, 그리고 SBS 드라마 ‘팝콘’ 등을 찍으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MBC 드라마 ‘선희, 진희’를 찍을 때까지……. “드라마 ‘선희, 진희’를 찍고 나서 솔직히 많이 지쳐 있었어요.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배역이 올 때까지 푹 쉬자고 제 자신에게 약속을 했어요.” 김규리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녀는 2004년 개봉한 영화 ‘분신사바’에서 은주와 춘희 두 인물을 번갈아 연기하며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고괴담‘, ‘가위’에 이어 세 번째 공포영화 출연이다. ‘가위’를 찍고 이제는 공포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녀가 또다시 공포영화를 찍게 된 배경에는 안병기 감독의 끈질긴 구애가 있었다. 그녀는 ‘분신사바’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며 안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1인 2역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 핏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찍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요. 저는 누워있고 위에서 계속 피를 들이붓는데 눈이며 코에 피가 들어가 며칠 동안 고생을 했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예요.” 김규리는 지금 KBS 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연인인 미진과 미진의 딸 초희를 연기한다. 사극은 처음이라 대사를 외우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겹겹이 입어야 하는 한복때문에 여름에는 등이며 팔에 땀띠가 돋기 일쑤였다. “처음 접하는 장르라 많이 생소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많은 네티즌들이 제 얼굴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럴 땐 정말 속상하지요.” 발랄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일까? 그녀의 변신에 시청자들은 낯설어하고 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고, 그만큼 더 노력하려고 한다. 그 사이 그녀는 영화도 하나 찍었다. 1970년대 ‘무등산 타잔’으로 불리며 광주 빈민들의 우상이 되었던 박흥숙의 삶을 그린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에서 그녀는 광주 모 여고의 칠공주파 짱인 장영신 역을 맡아 열연했다.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권투, 태권도, 합기도 등을 6개월 동안 배웠다는 후문이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요. 영화는 최고의 장면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촬영을 거듭하죠. 반면 드라마는 진행이 굉장히 빨라요. 스릴이 있다고 할까요?” 그녀는 2003년 3월 메르세데스 벤츠 E320을 손에 넣었다. 스물 여섯이라는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E 클래스의 둥근 헤드램프는 그녀의 커다란 눈과도 닮았다. 우아하면서 날렵한 보디라인 역시 그녀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차 값이 비싸 선뜻 사지 못했어요. 주로 소속사 차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차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2년 전인가, 갑자기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제 차가 있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나만의 공간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보디 컬러는 은색이다. 깔끔하면서 냉철해 보이는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그녀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바빠진 스케줄 속에서 그녀를 생기 있게 만드는 것은 음악이다. 시트를 완전히 뒤로 젖히고 볼륨을 크게 올린 후 음악을 듣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가신다고. 물론 시트도 시트 나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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