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라이프스타일

MC 정은아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③인터뷰 - .. 2004-04-21
오래 기다리셨어요?”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SBS 일산 탄현제작소 F스튜디오 앞 주차장. 녹화를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정은아(40) 씨가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말투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녀를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지만 바로 어제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거나 기자의 질문에 논리 정연하게 대답을 할 때도 일부러 자세를 가다듬지는 않는다. 국내 최고의 MC라는 평가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안에서 음악 감상·독서로 여유 찾기도 정은아 씨의 트레이드마크는 특유의 살가운 미소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아 온 그녀의 미소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은아 씨로부터 인터뷰 약속을 받아내기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가로막혀 한두 시간도 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화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에 있는 누군가와 급하게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방송되는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비롯해 ‘결정 맛대맛’, KBS2 ‘비타민’, MBC ‘휴먼다큐 희로애락’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CF, 서울시의 홍보대사까지 맡고 있다. 그런데도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도 없고, 운전까지 직접 한다. 정은아 씨는 진취적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99년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샀다. 현대 엘란트라, 쏘나타, 뉴 그랜저에 이은 네 번째 차다. “어느 영화에서 검정색 체로키를 본 순간 한눈에 반했어요. 첫 느낌이 참 좋았어요. 캐주얼한 감각에 힘도 넉넉하고, 등산과 스키, 여행을 즐기는 저에게는 꼭 맞는 차입니다. 지금도 트렁크에 항상 골프가방과 등산화를 싣고 다녀요.” 그랜드 체로키로 바꾸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SUV가 ‘점잖지 않은 차’로 인식될 때의 얘기다. 하지만 정은아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랜드 체로키를 통해 자연과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신념대로 그랜드 체로키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승용차보다 편의성이 떨어지지만 ‘투박한 멋이 매력인 SUV는 그 자체로 SUV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직업상 여기저기 다녀야 하므로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SUV는 실내가 넓고 안락해 차안에서 틈틈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기 좋아요.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릴 때는 그랜드 체로키 덕을 톡톡히 보지요.” 정은아 씨는 1990년 KBS 아나운서 17기로 입사한 뒤 운전을 시작했고, 지금은 스스로 베스트 드라이버라 자신한다. 그녀가 시아버지로부터 들은 첫 번째 칭찬도 “운전을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더라도 절대 운전대를 양보하는 법이 없다. 특히 아침방송을 위해 새벽녘 집을 나설 때는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운전을 통해 몸과 마음을 깨우고 있다. 정은아 씨는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아직도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냐”며 조금은 높은 톤으로 되물었다. “운전이 서툴던 초보시절에는 오히려 제가 다른 차에 위협을 주었지요. 물론 남성들의 험악한 운전에 당황했던 때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운전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못 느끼고 있어요. 성별이 아니라, 개인의 차이가 아닐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떠난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SUV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말씀드렸던가요? SUV는 가벼움이 아닌 묵직함, 날렵함이 아닌 투박함을 담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SUV가 좋아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안광훈·서범석 & BMW Z.. 2004-04-16
“이태리의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2015년 안에 자국에서 양산 가능한 자동차’라는 주제 아래 지난 2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04 세계 자동차 디자인 경연대회’(2004 World Automotive Design Competition). 캐나다 국제오토쇼가 주최하고 미국 알라이스사가 후원한 태평양 너머의 디자인 축제는 지난해 3번째 대회에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의 김성중 군이 대상을 받았던 낯익은 행사. 세계 13개국 20개 학교가 참가한 올해 최우수상은 영국 코벤트리 아트&디자인 스쿨에 돌아갔지만 한국 디자인의 저력은 여전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4학년 안광훈(27), 서범석(26) 씨의 작품이 신설된 ‘베스트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은 것. 이들의 출품작은 1960년대 기아자동차가 내놓았던 삼륜 화물차 T600을 소재로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한 수륙양용 RV 컨셉트 S&R(Swim & Run)이다. 피닌파리나 동경하는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 안광훈 씨와 서범석 씨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이부자리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온 자취 동기다. 지난해 디자인전 주최측의 시드 배정이 끝나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이근 교수의 지도 아래 이들을 포함한 9개 팀이 출품작 준비에 들어갔다. 스스로를 ‘환상의 팀’이라고 말할 만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두 친구는 자취방을 작업실 삼아 3주일여 동안 단 한번의 의견충돌 없이 착착 작품을 완성해갔다. 그리고 지난 2월의 어느 토요일. 여느 때처럼 오후 1시쯤 일어나 밥 먹을 궁리에 빠져 있던 두 동거인에게 학과 사무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들, 이번에 상 받았어!” 곧이어 주최측의 축하 메시지가 이메일로 전해졌고, 이들이 세계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들인 것은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무 좋아서 서로 껴안고 소리지르다가 밖으로 나왔어요. 발표 날이 때마침 발렌타인데이여서 거리에는 하나같이 초콜릿 바구니를 끌어안은 연인들로 넘쳐나더군요. 둘 다 여자친구가 없어 평소 같았으면 ‘저것들, 콱 때릴까?’ 라며 심통이라도 부렸을 텐데, 이 날만큼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어요. 곧장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 가서 ‘위닝 일레븐’(축구게임)으로 뒤풀이를 했습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종 언론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빗발치듯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벙벙한 기운에 휩싸인 채 학기초는 쏜살같이 흘러갔고 두 디자인학도의 머릿속에는 전과 다른 무게의 고민도 생겨났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어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기 최면이랄까……. 예전 같았으면 여건 맞는 곳에 적당히 취직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안광훈 씨의 목표가 BMW, 푸조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의 디자인 스튜디오 입성이라면 서범석 씨는 좀더 풍부한 디자인 경향을 맛보고 싶어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그의 마지막 꿈이다. “가능하면 북유럽 쪽으로 디자인 유학을 가고 싶습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푹 빠져 있거든요. 디자인 세계에 경계를 두고 싶진 않아요. 자동차 디자인이라……. 기왕이면 이태리 피닌파리나처럼 모든 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지요. 저뿐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꿈 아닐까요?” 캠퍼스에 나타난 BMW Z4를 마주하자 두 청년은 “와~!”하는 탄성과 함께 휘둥그레진 눈을 감추지 못한다. 파격적인 디자인에 대한 보통의 거부반응과 달리, 이들에게 크리스 뱅글의 BMW는 균형감과 입체감이 완벽한 예술작품에 다름 아니다. 뒤 펜더의 역동적인 라인을 손으로 쓰다듬고 소프트톱을 열어보는 등 구석구석을 들추던 두 청년은,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운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역시 기능성보다 기능미가 먼저인가?’ 기자의 예상은 그들의 수줍은 대답과 함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음이 밝혀졌다. “저희,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요…….”
중남미문화원 이복형 원장 “30년 사랑, 세심하게 .. 2004-04-12
54~55년 미국에서 살 때 150달러인지 주고 올즈모빌 중고차를 사서 운전을 처음 시작했어요. 67년 멕시코 영사 시절 폭스바겐 패스트백,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을 타봤고, 70년에서 72년까지는 중고 폭스바겐 비틀, 이후에는 벤츠, BMW, 볼보……. 79년 마이애미 총영사 시절에는 뷰익, 81년부터 83년까지 도미니카공화국 대사할 때는 캐딜락 드빌을 탔지요. ‘자동차의 핸들링’이라는 걸 30년 전에 이미 알게 해준 BMW, 85년 아르헨티나 대사 시절의 벤츠 500, 한국에 나왔을 때 타본 신진 퍼블리카, 부임지에서 탔던 현대 쏘나타, 89~93년 멕시코 대사로 있을 때 인연을 맺은 링컨 타운카도 생각나고…….” 첫 인사를 나눈 지 3분도 안 되어 줄줄이 들려오는 낯익은 단어들. 자동차잡지 기자를 만나는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암기해온 사람처럼, 중남미문화원 이복형(73) 원장이 그동안 만나본 자동차의 이름을 수북하게 쏟아낸다. 브랜드로만 남은 차도 있지만, 자동차를 연도별로 수납해 놓은 이 원장의 튼튼한 기억창고가 우선 경이롭다. 공유하려고 만든 공간… 작은 보람만으로 만족 중남미문화원이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들어선 지 올해로 10년이다. 나이 들면 아름다운 풍경처럼 살고 싶어서, 이복형 원장과 부인 홍갑표(71) 이사장은 34년 전 땅을 사고 나무를 심었다. 막연한 꿈 안에 중남미에서 보낸 세월이 구체화되고, 사랑스럽고 아쉬워 모으고 붙잡아둔 이역의 문화가 두터운 나이테로 쌓였다. 30여 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컨테이너에 실어 가져온 중남미의 풍물들은 94년 고양시 작은 동산에 근사한 만찬으로 차려졌다. 처음에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97년에는 미술관도 들어섰다. 2001년에는 중남미 12개국에서 감사의 뜻으로 보내준 현지 미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야외 조각공원을 꾸몄다. 중남미와, 그들을 세심하게 추억하는 한국의 노신사 사이에 오간 교감은 돈독하고 풍성했다. “좋은 외교관이 되려면 그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언어, 역사, 문화, 예술, 자연, 음악……. 많이 알면 알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니까요. 중남미문화는 인디오문명과 스페인문화, 현대문화가 뒤섞여 다른 어느 지역보다 콘트라스트가 강합니다. 열심히 공부해가다가 반해버렸지요.” 중남미에는 4억이 넘는 인구와 45개 나라가 산다. 인구 1억6천만의 브라질에서부터 5만의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버스까지 땅덩어리의 크기도 힘도 삶의 질도 다양하다. 좋은 외교관이고 싶었던 이복형 원장 부부는 부임하는 나라의 여러 모습들을 하나하나 관찰해나가다가 일요일마다 그 지역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매는 진짜 팬이 되었다. “내가 사랑한 나라들의 낯선 문화와 독특한 향취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중남미문화원의 계획이나 설계, 배치는 모두 안사람이 했어요. 아내는 ‘30년 동안 외교관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 내조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를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10년째 즐겁게 외조 중입니다(웃음).” 전정가위를 직접 들고 문화원의 나무들을 손질해온 이 원장의 손이 일꾼의 그것처럼 거칠다. 옆에서 홍이사장이 말을 잇는다. “이거 하느라 빚도 많이 졌지만 행복합니다. 일찌감치 법인화해 사회에 내놓았어요. 소유보다는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으니까요. 누군 죽을 때 물건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답디까. 문화원을 찾은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얘기해요. ‘집에 가서 문화원 만든 할머니 봤다고 얘기해줄래?’ 작은 보람, 그거면 된 거예요.” 편안하고 한갓진 노후는 아니다. 대사 시절보다 더 바쁠 때도 있다. 문화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이 원장은 중남미문화, 홍 이사장은 중남미 음식문화를 강의한다. 문화원에서 열 공연이나 전시회를 계획하고, 여건이 될 때마다 쿠바며 페루로 날아가 새로운 자료를 모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원장이 직접 파일로 만들어 챙겨둔 중남미 관련 자료가 책장 하나에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10년을 추억할 만한 일이 또 있다. 다시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원장은 귀국한 뒤 첫차로 현대 뉴 그랜저를 사서 지금까지 타왔다. 뉴 그랜저와 문화원은 동갑이다. 오랫동안 외국에 살면서 많은 차들을 접해왔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차를 만날 기회가 통 없었다. “문화원에 드는 비용만도 엄청나서 여력이 없다”며 이복형 원장이 껄껄 웃는다. Z
연기자 박정철 다임러 크라이슬러 홍보대사 된 2004-04-07
한동안 박정철을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다. 그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접한 것이 작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오! 해피데이’였으니 그로부터 벌써 7달이나 지난 셈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다임러 크라이슬러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씩 웃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악수를 건네는 손길에 따뜻함이 배어있다. 4월엔 망가진 저의 모습 기대하세요 박정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 좋은 연기자쯤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그의 등장은 갑작스러웠고 그의 인기는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박정철의 연기생활도 올해로 벌써 7년째. 회사로 치자면 대리를 넘어 과장으로 달려가고 있을 시기다. 그는 1997년 ‘KBS 수퍼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연기를 고집해 얻은 결과였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께는 신문방송학과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수퍼탤런트 대회 본선에 진출해서야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렸지요. 그때는 반대도 참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실 정도로 제 팬이 되셨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는 모양이 어린 아이처럼 귀엽다. ‘언제 이런 모습을 봤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잘 빠진 수트를 입은 강한 눈매의 박정철이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연기가 쭉 그랬다. 양복입고 무게 잡는 그런 연기.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도시적인, 냉철한, 반항적인, 터프한 등등. “처음엔 그런 모습들이 좋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안엔 참 많은 모습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한 모습의 박정철만을 기억하더라고요. 차가운 눈을 가진 박정철…….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이젠 가슴이 따뜻한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해요.” 박정철은 그에게 따라붙던 수식어들과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오! 해피데이’에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영화에서 박정철은 제대로 망가졌다. 그가 보여준 코믹연기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린단다. 이제는 양복을 벗고 털털한 모습으로 서고 싶다고.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이전의 모습을 털어버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긴 휴식을 마친 박정철은 요즘 다임러 크라이슬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크린’에서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차를 탄 것이 인연이 되었다. “차요? 물론 좋아하지요. 요즈음은 크라이슬러 300M을 탑니다. 전에는 그랜드 체로키를 탔고요. 둘 다 정말 마음에 드는 차예요. 특히 300M은 디자인이 예술이지요.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 ‘붕’ 하고 재빨리 달려나가는 느낌도 좋고요. 다음엔 어떤 차를 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요.” 천진한 소년의 모습이다. 그가 양복을 벗긴 벗었나보다. 4월에는 편안한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다시 설 것이라니 그의 ‘망가진 모습’이 자못 기대된다. 아무리 망가져도 귀엽기만 하겠지만. Z
패션 디자이너 이은우 & 푸조 206CC 색다른 .. 2004-03-12
“한결같이 정장만 찾는 우리 커리어우먼들의 경직된 옷차림에 적잖이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맘껏 자연스러우면서 독특한 느낌이 묻어나는 옷, 편안하고 자유로운 개성을 그려갈 거예요” 명품 브랜드의 쇼룸이나 디자이너 부티크를 본능적으로 ‘금남’(禁男)과 ‘금기’(禁忌)의 구역으로 여겨온 기자가, 지금 각광받는 신예 디자이너의 스튜디오 출입문을 열고 있다. 고풍스런 앤틱 가구와 아늑한 소파 사이로 카펫이 깔려 있고 채광 좋은 창의 커튼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향 좋은 차를 음미하며 고즈넉한 단잠에 빠져도 좋을 것 같이 포근한 이은우(36) 씨의 부티크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자연스럽고 이국적인 여성 웨어로 각광 “제 쇼룸이 조금 생소하지요? 예쁘장하게 꾸민 인테리어에 형형색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표정 없는 마네킹……. 완성된 그림만 보여주는 여느 부티크에 비한다면 분명 그렇겠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디자인과 재단, 전시를 한자리에서 해결하는 이 곳이 공장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이태리나 프랑스 등의 패션 본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그의 거실 같은 쇼룸에는 그 흔한 마네킹이나 은근한 조명, 크리스털 장식으로 풍성한 숱을 이룬 대형 샹들리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 구석에는 예스러운 분위기의 재봉틀이 놓여 있고 재단실로 향하는 문은 활짝 열려 거리낌없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패션 디자인을 하기 위해 서울예고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을 전공했어요. 92년 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한 뒤 바로 미국 유학에 나섰어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캘리포니아 FIDM에서 패션 디자인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면서 슬슬 제 길을 찾아갔지요.” 디자이너 지망생의 어렴풋한 꿈은 지난 2000년 FIDM의 어드밴스드 프로그램(대학원 석사과정에 해당)에 전액 장학생으로 꼽히면서부터 현실에 가까운 ‘비전’으로 여물어갔다. 동문 7명과 함께 베벌리힐즈의 힐튼호텔에서 ‘LA 패션 갤러 데뷔 패션쇼’라는 디자이너 입문 컬렉션 무대를 갖게 된 것. 이 행사에 오른 10벌의 이브닝 드레스는 단박에 란제리 메이커 CEO의 눈을 사로잡았고, 이 씨는 이듬해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고 뉴욕 NAP사에 둥지를 틀게 된다. 자유롭고 스타일리시한 뉴요커의 생활에 흠뻑 빠져 있던 이은우 씨는 지난해 말 일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네 커리어우먼들의 천편일률적인 패션과 경직된 사고방식에 적잖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검은 생머리에 짙은 화장, 한결같은 정장 차림……. 대량생산된 인형을 보는 듯했어요. 어떤 이는 제 옷을 보고 ‘이렇게 튀는 옷을 어떻게 입느냐?’며 정색을 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없는 옷은 정말 못 만들겠어요. 머리가 시키고 손끝이 가는 대로 작업하다보니 그 때부터 제 스타일이 드러났어요.” 자연스런 느낌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녀에게 패션의 메카 프랑스에서 태어난 푸조 206CC는 천생배필처럼 다가왔다. 스타일리시한 쿠페-카브리올레를 구입한 뒤부터 이 씨는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한불모터스는 이은우 씨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단번에 푸조와 함께 하는 패션쇼를 제의했고, 지난해 12월 23일 푸조 강남 전시장에서 열린 ‘스페셜 하모니 이은우 & 푸조 컬렉션’은 새내기 디자이너는 물론 그녀의 첫 패션 브랜드인 ‘E by eun woo Lee’까지 널리 알리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첫 무대를 준비하는 한 달 동안 42벌을 만들었어요. 팔 하나 더 달고, 목까지만 처리하고……. 이러면서 밤을 새고, 영감을 얻고 다시 새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테이블에 옷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더군요.” 책상 위에는 푸조 측에 보여주었다던 예의 포트폴리오가 놓여 있다. 포토그래퍼 없이 디지털 카메라로 손수 찍었다는 작품들. 숱한 사진 속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모델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기발랄한 10대 소녀가 되었다가 섹슈얼한 요부로 둔갑하기도 한다. 사람의 인상을 180° 바꿔놓는 그녀의 손재주에는 생에 대한 정열이 묻어 있다.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장 강병근 교수 세상의 장애.. 2004-03-08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장 강병근(52) 교수의 연구실은 작은 화원 같다. 언뜻 봐도 십수 개가 넘는 나무며 화초들이 초록빛을 내뿜고 있다. “이렇게 멋진 교수 연구실은 처음 봤다”고 하자 강병근 교수가 웃음 띤 얼굴로 한마디한다. “사람과 자연이 표 안 나게 어울려 사는 걸 좋아합니다.” 그가 남해의 아름다운 섬 외도해상농원의 근사한 전망대며 집, 대문들을 설계한 건축가라는 사실에 새삼 생각이 미친다. 외도 이야기에서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강병근 교수는 국내 제1의 장애인 건축·편의시설 전문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표 안 나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지난 18년간 발벗고 뛰어왔다. 건축물 설계와 개선은 물론 법 제정까지, 생활 전반의 장애를 없애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나선다. 강 교수는 스스로를 ‘장애의 정글에 고속도로를 놓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장애의 정글’은 바로 이 세상이다. 세상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살아가는 데 불편을 주는 장애들이 수없이 많다. 강병근 교수는 ‘세상의 장애’가 비장애인에게는 단순한 불편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97년 장애인 편의촉진법 제정 이끈 것이 큰 보람” “설계부터 100% 장애인이 이용할 것이라는 전제로 만든 시설이 쇼핑센터나 호텔, 공항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건물에는 쇼핑한 물건이나 가방을 든 사람도 문을 열 수 있도록 자동문과 엘리베이터가 있지요. 이같은 편의시설이 없다면 비장애인은 물건을 내려놓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거나 계단을 이용할 겁니다. 즉 불편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장벽이고 불가능일 뿐입니다.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이동의 권리, 접근의 권리, 이용의 권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이에요.” 강 교수는 그와 같은 건축가들이 수많은 장애물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은 계단이나 회전문을 이용할 수 없다. 회전문은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의 방향감각도 빼앗는다.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다고 계단 옆에 별도로 만들어둔 완만한 경사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편가르기’하는 역할도 한다. “장애인이 별도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보다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계단의 대안은 승강기지요. 경사로는 승강기를 놓을 수 없을 때의 보조수단일 뿐입니다. 누구나 같은 편의시설을 따라 움직이고 들어가고 이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 순간 휠체어를 타든 두 발로 걷든, 움직이는 모습의 차이는 장애와 비장애가 아닌 ‘개성’이 되는 겁니다.” 강 교수는 ‘장애인을 보지말고 장애물을 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이라는 말 자체가 일상생활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 환경 속에 극복 가능한 장애물만 있다면 신체적으로 어떠한 장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18년 노력은 거대한 장벽 같았던 우리 사회에도 숨쉴 틈을 만들었다. 강병근 교수가 건교부에서 연구용역을 받아 초안을 만든 노인·임산부·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촉진에 관한 법률은 97년 제정, 공포되어 98년 4월 1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철 곳곳에 환승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서울시내에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등 사회 곳곳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인식 개선이에요.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25년 전 학위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회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커다란 행복과 보람을 느낍니다.” 정신지체인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완벽한 시설로 유명한 경남 거제도의 ‘애광원’도 강병근 교수의 작품이다. 애광원은 1985년 세워졌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강 교수는 애광원을 오갈 때나 출퇴근 때 11년 된 쌍용 무쏘를 이용한다. 이전에는 현대 프레스토를 13년간 탔다. 독일 유학시절에 타던 BMW의 나이는 현재 30살. 앞으로 20년은 더 타기 위해 독일 지인의 집에 맡겨두었다. 그러고 보면 운전경력 35년 동안 그를 거쳐간 차 가운데 10년지기 아니었던 차가 드물 정도다. “지금 타는 무쏘는 20만km를 넘었어요, 30만km를 넘든지 20년을 넘기든지, 둘 중 하나가 될 때까지는 탈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강 교수다운 ‘카 라이프’다. Z
아나운서 신영일 씩씩한 목소리로 일요일 아침을 여는 2004-03-03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온 그는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경쾌한 옷차림에 선한 눈망울이 편안한 인상이다. 일요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오는 KBS 1TV ‘퀴즈! 대한민국’의 진행자 신영일 아나운서. 씩씩하고 밝은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기운나게 하는 힘을 지녔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노련한 진행 솜씨 뽐내 신영일은 1997년 아나운서 공채로 KBS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그가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한 권의 책에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이계진 씨가 쓴 ‘아나운서 되기’란 책을 읽었습니다.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때인데 그 책을 보고 나서 ‘나도 이렇게만 하면 아나운서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자신감이었지요.” 그 책을 읽고 난 후 그는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만에 책 제목처럼 정말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운이 아주 좋아서였단다. 뽑는 인원이 많아 자신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아나운서 시험이라는 것이 어디 운만 좋아서 될 일이던가. 겸손한 얘기다. 신영일은 지금 KBS 1TV에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퀴즈! 대한민국’ 등 퀴즈 프로그램을 두 개나 맡고 있다. 차분하고 편안해 보이는 인상에 재치 있는 말솜씨까지 갖추었으니 퀴즈 프로그램 진행자로 ‘딱’이라는 주위의 반응이다. 그 역시 퀴즈프로그램 진행 자리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다. 정해진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좋단다. 가끔 출연자들이 엉뚱한 대답을 해 진땀을 뺄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노하우가 쌓이면 MBC에서 하는 ‘브레인 서바이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그것말고도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다 하려면 100년쯤은 더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욕심이 많아서일까? 언제나 의욕이 넘쳐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신입 때 그대로다. 미리 대본을 보고 그 날 나올 출연자들이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물론 머리 속으로 자신이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까지 한단다. 그렇게 하면 녹화를 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두 개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일일이 체크하는 것이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단호하다. “프로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요. 몇 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아나운서로서 제몫을 하지 않으면 밀려나게 되는 것이 이 일이니까요.” 역시 프로다운 대답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긴 하지만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져 겪는 어려움도 크다. KBS 1TV ‘체험 삶의 현장’에서 FD 체험을 하기 위해 지난 1월 충북 영동에 간 그는 그를 보려고 모여든 아주머니들이 엉덩이를 두드리고 얼굴을 쓰다듬는 통에 녹화를 진행할 수 없었다. 평소 넉살좋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아주머니들의 갑작스런 행동에는 당황한 모양이다.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도 조금은 불만이란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늘 조심스럽다는 그다. 그에게 어떤 차를 타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대우 레간자. 그리고는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나운서 월급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는 차를 바꾸게 된다면 SUV를 사고 싶단다. 시야가 확 트여 운전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답이다. 요즘에는 쌍용 렉스턴이 탐이 난단다. 손으로 꼽아보니 방송을 한 지도 햇수로 8년이다. 이제 출연자의 실수도 능숙하게 대처할 만큼 노련해졌지만 그래도 그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송을 보고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신영일 아나운서. 방송 일은 그런 그에게 천직이 아닐 수 없다. Z
영화 프로듀서 이지승 & 폭스바겐 뉴 비틀 카브리올레.. 2004-02-12
“유학시절에 영화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는데 잔심부름하느라 일 배울 틈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 때 영화의 재미에 빠졌으니 희한한 일이지요” 호박차잖아요. 어릴 때 오리지널 모델 미니어처도 몇 대나 모으고 엄청 좋아했는데…….” 호박차? 딱정벌레로 불리며 일세를 풍미해온 폭스바겐 비틀의 후예는 2004년 1월 어느 날, ‘호박’이라는 또 다른 별칭을 얻었다. 짙은 주황색 뉴 비틀 카브리올레 옆에서 연신 카메라폰을 들이대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작명가(作名家)는 영화 프로듀서 이지승(34) 씨. 사전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 젊은 영화인에게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날아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이론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할 뻔했다. 풍부한 표정과 조리 있는 말솜씨, 상대방을 흐뭇하게 해주는 그의 친절한 태도는 놀라운 친화력으로 다가왔다. 왠지 얘기가 잘될 것 같다. 모든 스태프들의 땀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학부에서 연출을 공부하고도 유학 가서 굳이 영화이론 학위를 딴 이유는 학교에 남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팔자소관인지 자꾸만 학교보다 촬영장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뉴욕 올 로케로 만들어진 영화 ‘투 타이어드 투 다이’는 촬영장을 기웃거릴 수 있는 절호의 변명거리가 되어주었습니다.” 홍콩배우 금성무가 김혜수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그는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라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기 그지없는 역할을 맡는다. 어려서부터 영화에 둘러싸여 자라난 청년이 프로듀서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 장면. ‘쉽게 말해’ 한국측 프로듀서와 미국측 프로듀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일이라는데, 도무지 쉽게 들리질 않는다. ‘영화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워낙 생소한 탓일 게다. “프로듀서는 영화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돌보는 직업입니다. 시나리오 개발과 캐스팅에도 참여하지만, 예산 책정부터 많게는 80~90명에 이르는 배우 및 스태프들 개런티 관리 등 재정적인 일을 주로 해요.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악역을 담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촬영 현장을 이끌어 가는 감독이 아버지라면, 뒤에서 모든 일을 다독이는 프로듀서는 어머니에 비할 수 있다. 재미교포인 이재한 감독의 99년작 ‘컷 런스 딥’에서 프로듀서 경험을 쌓고 귀국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무사히 작업을 마치고 흥행성공까지 거두었을 때의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소위 대박이 터졌을 때 우쭐하기보다는 같이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그 다음 작품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고 보니까 알게 모르게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앞으로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작업의 보람에서 영화의 매력을 찾는 그는, 관객들이 영화 한 편 한 편에 담긴 제작부 신참들과 막내 스태프들의 꿈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뉴욕 유학시절 호러영화에 심취했던 그는, 언젠가 때가 되면 잘 만들어진 한국형 호러영화의 프로듀서를 해보고 싶어한다. 프로듀서가 되기 전 영화 연출과 이론 공부하기를 정말 잘했다며, 젊어서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 것 같다고 말한다.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영화 팬들은 어느 정도는 틀에 짜인 작품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흔히 말하는 엽기 영화나 컬트 무비를 인정하기 힘들어하지요. 좋아하진 않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봐주는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훨씬 풍부한 소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관객들은 더욱 풍성한 영화를 즐기게 될 테니까요.” 흔히 ‘감독의 영화’라고들 한다. 영화가 작품성이나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뒀을 때, 스포트라이트는 감독에게 집중된다. 쏟아지는 대중의 비난을 견뎌야 하는 사람 역시 감독. 하지만 프로듀서는 감독을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누구보다 아파한다. 언제나 은막(銀幕)의 뒤에서 땀을 닦고 눈물을 감추는 직업. 그래서 프로듀서 이지승의 ‘시네 드림’은 더 환해 보인다.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서홍관 소장 “금연운동, 의사.. 2004-02-09
점심시간 여의도 풍경. 건물 밖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손에 담배 한 개비씩 들고 겨울 찬바람 속으로 한숨 같은 연기를 날려보낸다. 추운 것도 서러운데 지나가던 동료들은 “그렇게까지 피우고 싶냐”고 한마디씩 한다. 담배 피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던 시대는 갔다. 이제 추레한 ‘의지박약의 초상’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담배끊는 독한 인간과는 상종을 말라’는 말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금연여부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회사가 늘고, 신입생을 선발할 때 흡연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고려하는 대학들도 있다. 어린 아들 딸들에게 물으면 “담배는 마약”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국립암센터 서홍관(46) 박사는 이러한 날을 기다려온 사람 중 하나다. 물론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금연클리닉을 운영해왔고, 더욱 활발하게 금연운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해 9월 국립암센터로 직장을 옮겨 금연클리닉 소장을 맡았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앞으로 50년쯤 지나면 담배 판매는 금지될 겁니다.” 얼굴에는 미소가 배어나지만 담배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흡연은 하나의 질병, 방법을 알면 치료 효과 높아” 서홍관 박사도 대학 때부터 10여 년쯤 담배를 핀 경험이 있다. 87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으로 양담배 반대운동을 하면서 ‘담배는 건강의 적, 양담배는 국가경제의 적’이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직접 작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가 담배가 얼마나 백해무익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담배연기에는 4천여 종의 독성 화학물질과 40여 종이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요. 폐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암에 관련이 있습니다. ‘의사로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금연운동이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그때까지 아무도 그 중요성을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그는 흡연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질병’이라고 단언한다. 질병인 만큼 치료과정도 필요하다. 금연치료에는 행동요법과 약물요법이 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금연이 쉽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흡연자가 있으면 무너지기 쉽다. 주위 사람들에게 금연하고 있음을 알리고 담배를 연상시키는 모든 환경을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 박사는 “핸들만 잡으면 담배를 무는 운전자라면 차 안에 냉수나 껌 등을 준비해 두고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껌을 씹어 습관적인 흡연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연 기간 동안 니코틴 패치, 니코틴 껌을 함께 쓰는 것도 효과적이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부프로피온이라는 치료약도 있다. 그래도 끊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연초만 되면 금연열풍이 불다가도 2~3월이면 시들해진다. 금단증상이 심한 1~2주를 못 넘기고 다시 담배에 손을 대는 탓이다. “폐암에 걸리면 다들 담배를 끊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담배를 끊어도 얼마 못 삽니다. 5년 내 90%가 사망합니다. 그렇다면? 안 걸렸을 때 끊어야지요. 담배 탓에 암에 걸렸을 때보다 지금 담배를 끊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해 보세요.” 서홍관 박사는 가정의학을 전공했다. 가정의학은 1차진료를 담당한다. 집안의 주치의처럼, 대부분의 건강문제를 상담해주는 의사다.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물을 폭넓게 보는 취향에 맞아 선택한 길이다. 그는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보람을 느낀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연운동은 의사로서 찾아낸,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금연 분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평생의 보람이 될 것 같다”는 그다. 서 박사는 90년 현대 엑셀로 운전을 시작하고 미국 연수시절인 96년 5월 현대 쏘나타를 사서 타다 귀국하면서 이삿짐으로 가져와 지금껏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도 관리만 잘 하면 2~3년은 더 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동차에 관심은 있지만 욕심은 별로 없어요. 꼭 좋은 차를 탈 필요가 있나, 별 문제가 없다면 10년쯤은 타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은 전혀 안 그럴 것 같다고 하지만 ‘밟는’ 걸 좋아해서 속도는 좀 내고 다닙니다.”(웃음)
GM 코리아 김근탁 지사장 `매장을 8개로 늘리고 AS.. 2004-02-24
`대우 인수문제는 GM 코리아와 관계없으므로 질문에서 제외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지난해 12월 본사 마케팅 부문으로 자리를 옮긴 데이빗 제롬 지사장의 뒤를 이어 GM 코리아 사령탑을 맡은 김근탁(41세) 신임 지사장의 첫마디다. 오해의 불씨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이 말 속에는 `앞으로 GM 코리아는 대우와 관계없이 본연의 임무인 캐딜락과 사브차 판매에 전념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GM이 지난해 8월부터 김근탁 지사장과 접촉했고, 이 시기에 현 딜러인 삼양물산과의 딜러권 협상도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발탁은 `본격적인 판매체제 구축`을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사실 GM 코리아는 판매를 위한 회사였음에도 대우차 인수와 관련된 GM 본사의 일을 돕느라고 판매에 전력을 쏟지 못해 캐딜락, 사브 등 경쟁력 있는 차를 구비하고도 판매순위가 꼴찌에 머무는 부진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가 대우와의 매각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지난해 GM은 GM 코리아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하고, 세일즈와 마케팅 업무능력에 정평이 난 김지사장에게 지휘권을 맡긴 것이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GM 코리아의 입장을 잘 아는지라 김지사장은 면밀한 업무파악에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GM이 새로 한국인 지사장을 선임한 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구조가 큰 회사가 특별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현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GM도 한국시장의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한국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지사장에게는 영업 및 마케팅이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특별히 구상해 놓은 계획이 있습니까 차를 많이 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판매망이 많아야겠지요. 그리고 서비스도 함께 팔아야 합니다. 그 기반을 닦기 위해 현재 4개인 매장을 올해 안에 8개로 늘리고 AS망도 보강할 계획입니다. 당분간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유지하면서 캐딜락 외의 GM 브랜드는 수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브가 GM에 통합된 후 판매가 많이 줄어든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수입차시장에서는 사브를 사는 고객이 진정한 수입차 고객이라 생각했어요. 차를 정말 좋아하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사브를 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불행히도 GM이 사브를 인수하던 시기는 국내 경제가 위기상황이었습니다. GM은 인수한 사브차를 판매하기보다는 다른 일에 정신이 없었구요. 앞으로는 지금 사브를 타고 있는 고객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들을 직접 만나 감사를 전하고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등 많은 의견도 듣고 싶어요. 국내에 캐딜락과 사브의 이미지를 심기 위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최근 캐딜락의 디자인이 세련되어지고 있는데도 많은 이들은 캐딜락을 `대통령이 타는 차`, `검은색에 큰 차`, `기름 많이 먹는 차` 정도로만 생각하지요. 하루 아침에 인식을 바꿀 수는 없지만 꾸준히 `북미 메이커 중 최고`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나갈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올 9월에 선보일 CTS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CTS는 GM이 추구하는 예술과 과학 철학을 그대로 적용한 최대의 야심작으로, 컨셉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기존의 캐딜락 이미지를 바꿔 놓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브는 고정 매니아층이 두텁지요. 시승을 시키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차를 타본 고객은 매니아가 될 정도로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큽니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은 배기량에 터보 엔진을 얹은 고성능차임을 부각시켜 `안전하고 성능 좋은 차`라는 점을 적극 홍보할 것입니다. 또한 GM 코리아는 기존 고객에 대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과 잠재고객 확보를 위해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의 공동 이벤트를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일반인들이 캐딜락과 사브의 성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승 기회도 늘려 나갈 생각이지요. GM 코리아의 올해 판매 목표를 밝혀 주십시오 우선은 2001년 수치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브 300대를 포함해 총 500여 대를 파는 것이목표인데, 매장이 8개로 늘어나면 판매에 도움을 줄 것이고, 2002년형 사브 9-5와 9-3 애니버서리, 캐딜락 CTS에 이어 12월쯤 뉴 9-3가 들어오면 목표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자동차업계에 들어온 계기는 무엇인지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와 국제무역을 복수전공한 후 83년에 졸업했어요. 호텔경영 을 배우기 위해 스위스의 셔(Chur)에 자리한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지요. 그 학교는 본래 4년 과정이지만 학창시절에 익혀둔 어학실력(불어, 이태리어, 독어, 영어에 능통) 덕분에 3년 6개월만에 수업을 마쳤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과 뉴질랜드 치즈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중 96년에 평소 근무해보고 싶었던 미국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가 한국에 직판체제를 갖춘다는 뉴스를 듣고 크라이슬러에 지원했지요. 그곳에서 전공인 영업과 마케팅 일을 맡으면서 자동차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타고 있는 차와 인상적인 차를 꼽는다면? 지금은 은색 캐딜락 STS를 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차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세가 굳어졌지만, 3∼4주 지나고 나니 성능이나 승차감에서 최고 브랜드의 품질이 느껴졌습니다. 운전을 즐기는 편이어서 첫차 브리사 K303을 시작으로 포니2, 르망, 에스페로, 뉴 프린스, 쏘나타Ⅲ 등 9대의 차를 타왔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르망입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에 르망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디에서 본 듯한 디자인이었는데, 알고보니 스위스 유학시절 타본 적이 있던 오펠 카데트가 원조였습니다. 카데트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르망도 좋아하게 되었지요. GM 코리아 지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요. 최하위인 판매실적 및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큰 꿈이고 목표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 만큼 기대가 크고, 앞으로 GM 코리아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크래프트랩 운영자 조윤호 그를 ‘장인’이라 부르고 .. 2004-01-19
요즘 몬스터 RC 매니아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웹사이트가 있다. 바로 크래프트랩(http://craftlab.net)이다. 크래프트랩에 들어가 보면 몬스터 RC의 모터와 바퀴, 변속기, 보디를 뺀 나머지 섀시 부분을 손으로 만드는 과정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적혀 있다. 금속용 실톱, 줄, 드릴링 머신, 절곡기 등 공구의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구상 단계부터 설계·제작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모두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이트다. 내 손으로 몬스터 RC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아들과 함께 즐기려고 몬스터 RC에 도전 크래프트랩의 주인장 조윤호(36) 씨가 보물 같은 몬스터 RC카 넉 대를 안고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그를 만나기 전 크래프트랩을 둘러보고 탁월한 솜씨에 숙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갖고 있던 터였다. 막연히 긴 머리를 대충 묶고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조윤호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런 그의 어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창의력과 손재주가 숨어 있는 것일까.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어요. 어떤 재료를 어디에 쓰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도구로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RC카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동차공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프레임과 서스펜션의 각도, 휠트래블 같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의 대답은 RC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혔다는 것이다. 몬스터 RC를 접하게 된 계기도 색다르다. 2002년 10월쯤 아들 재완(6)이와 공놀이보다 재미있는 놀잇감을 찾기 위해 문방구에서 EP카 두 대를 산 것이 시작이었다.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이 메이커에서 찍어낸 RC카와는 다른 차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이를 위해 대학 때부터 쓰던 작업실에서 팔을 걷어 붙였다. “어떤 성능을 가진 차를 만들지 구상하는 단계가 제일 어렵습니다. 길을 걷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궁리를 하지요. 구상이 끝나면 도면에 설계도를 그립니다. 실수가 없도록 꼼꼼하게 작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구상과 설계가 완벽하면 제작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직접 만든 RC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가 검은색 렉스턴 트렁크에 가지런히 놓인 넉 대의 몬스터 RC카를 조심조심 꺼내든다. 넉 대 중 직접 만든 RC카는 실버 고스트와 클로드 레이싱 등 두 대. 나머지 두 대는 완제품에 일부 부품만 만들어 끼웠다. 조윤호 씨가 가장 아끼는 실버 고스트는 크롤링 모델로 크래프트랩에 자세히 소개된 작품이다. 1906년 데뷔한 롤즈로이스 실버 고스트의 이름을 붙였고, 유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범퍼에 해골을 만들어 달았다. 실버 고스트에 주물용으로 들어간 은만 400돈이나 된다. 그밖에 티타늄과 카본 등 가벼운 소재를 써서 성능을 높였다. 레이싱 버전인 클로드 레이싱은 빠른 속도와 점프로 인한 충격에 견디도록 미국에서 주문한 카본으로 섀시를 완성하고 암은 듀랄루민 합금으로 만들었다. 범퍼 소재는 고강성 플라스틱인 MC나일론이다. 제품 디자이너인 조윤호 씨는 시간만 나면 RC에 묻혀 지낸다. 요즘에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크래프트랩을 본 사람들의 문의메일이 쏟아지는 등 주변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작품을 홈페이지에 올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를 ‘장인’이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록스타 동호회 R. P. M. 대관령 투어링에서 확.. 2004-01-19
서울에 첫눈이 온 날 ‘눈 쌓인 오프로드를 달려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문 끝에 록스타 오너가 주축인 ‘R. P. M.’(Rocsta Power Mania) 동호회에서 대관령으로 투어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일요일 새벽, 1차 집결지인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시간에 휴게소에 도착하니 8대의 차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2차로 문막 휴게소, 그리고 횡계IC에서 강원 지역 회원들이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합치면 15대 정도 될 것 같아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2차 집결지인 문막 휴게소로 출발했다. 휴일이지만 이른 시간이어서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대열을 맞춰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 문막 휴게소까지 개별적으로 달리기로 했다. R. P. M. 동호회는 1999년 생겼다. 록스타는 그보다 2년 전인 1997년 단종되었다. 생산이 중단되자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정비공장이나 카센터에서 꺼려하는 차가 되었다. 오너 입장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보를 나누기 위해 록스타 오너들이 뭉치게 되었다. 현재 R. P. M. 회원은 2천여 명. 인터넷 홈페이지(cafe.daum.net/rocsta)를 보면 열성적인 활동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일주일 전 취재요청을 했을 때, 강릉은 눈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 지역장은 눈 쌓인 곳을 찾아 며칠을 돌아다녔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지하자 다른 회원들까지 나서 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달리는 순간, 호법 부근에서 한 회원이 갓길에 차를 멈추었다. 시동이 꺼진 것이다. 배터리, 스타터 모터, 냉각수 등을 점검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정 때문에 찬바람 부는 고속도로에 고장난 차와 오너를 남겨 두고 다시 출발. 점점 늘어나는 참가차와 회원들 문막 휴게소에 도착하니 다른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록스타 모임에 현대 싼타페와 기아 레토나도 끼어 있었다. “록스타를 타던 회원들인데 차를 바꾼 뒤에도 꾸준히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취재가 있다고 했더니 새벽부터 달려 왔다는군요. 록스타가 아니더라도 끼워 주세요.” 9시를 넘어서자 휴게소는 겨울 산행을 떠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출발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휴게소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대열을 제대로 갖추기가 쉽지 않다. 강원 지역 회원들과 만나기로 한 횡계IC를 향해 출발. CB를 통해 앞뒤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하는 한편 다른 차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2, 3차선을 오가며 대열을 이룬다. 횡계IC에서 만난 강원 지역 회원들이 먼길 어렵게 왔다며 반갑게 맞아 준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요? 아무리 눈(目)을 씻고 찾아도 눈(雪)이 없습니다. 대신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어요. 설경은 볼 수 없지만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행사에 참가한 차는 모두 16대. 가족, 친구, 연인 등 참가자는 30명에 이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가 불어나 인원을 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적지에서 또 몇 사람이 합류하기로 했다. 오늘의 행선지는 대관령목장 주변의 오프로드. 경치 감상하며 천천히 투어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목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좋으면 강릉 앞바다까지 볼 수 있다. 오프로드 초입에서 무쏘 스포츠를 타고 온 회원 차에 올랐다. 회원들의 동호회 사랑은 대단했다. 일 때문에 경주에 내려가 있다가 모임 소식을 듣고 새벽 3시에 출발한 사람도 있었다. 오랜만에 회원들을 본다는 설렘에 피곤한 줄 모르겠단다. 고지대여서 그런지 바람이 장난 아니다. 옷깃을 꼭꼭 여미지만 얼굴을 스치는 칼바람이 온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이곳은 1년에 150일 정도는 강풍이 분다. 멀리 보이는 풍차들만이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이 반갑다는 듯 세차게 돌고 있다. 꽤나 구불거리지만 순정차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코스다. 대열을 이끄는 강원 지역장이 CB로 목장과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런데 갑자기 차 한 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다른 차들이 지나가며 CB로 연락을 하지만 대답이 없다. 맨 마지막 차가 지나간 뒤에야 한 회원이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대가 높아질수록 강풍이 심해진다. 그늘진 곳은 얼어 있고 눈도 보인다. 서로들 조심하라고 무전을 날린다. 어려움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어 정상에서 보는 전경은 ‘멋지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다. 하지만 주변의 빼어난 경치에 눈을 떼지 못한 것도 잠시. 오프로딩을 즐기는 매니아라면 투어링에 다소 지루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옆에 펼쳐진 비스듬한 초지를 공략하기로 했다. 한 대 한 대 출발을 하며 엔진음을 높인다. ‘상당히 미끄러워 보이는데 쉽게 오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차마다 주저 없이 한 번에 치고 오른다. 옆에서 준비하고 있던 사진기자는 힘들게 오르는 장면을 기대했는지 실망이 큰 표정이다.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가 싶더니 한 차의 바퀴가 따로 움직인다. “정지! 잠깐.” 회원들이 몰려든다. 최현창 회원이 차 밑으로 들어가더니 바퀴를 좌우로 움직이는 타이로드 끝부분이 빠졌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온 차였다. 큰일이다. 강릉 회원이라면 응급처치를 한 뒤 조심조심 가거나 견인차를 부르겠지만 서울까지 견인하려면 장난이 아니다. 하필 그날 따라 부품과 공구상자를 가져 오지 않았는지, 부속품과 케이블타이를 찾았으나 갖고 있는 회원이 없다. 전선을 이용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다. 고장난 록스타와 오너를 남겨 두고 마지막 남은 코스를 위해 전진한다. 코스를 되돌아가면 이번 행사가 마무리된다. 올 때와 반대로 취재차가 앞장을 서고 회원들이 뒤따르기로 했다. 문제는 타이로드 엔드가 빠진 록스타. 돌을 밟거나 구덩이에 들어가면 다시 빠질 것이 뻔하다. 문제의 차는 다른 회원의 호위를 받으며 마지막에 내려오기로 했다. 취재차와 20m 간격을 두고 뒤따르던 강원 지역장의 차가 사이드 미러에서 사라졌다. 그늘진 곳의 빙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헛바퀴를 돌릴 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할 수없이 회원들이 차를 밀수밖에 없다. 의외로 쉽게 빠져 나온다. 이때 다른 회원이 소리쳤다. “일부러 안 나온 것 아니에요? 아무리 얼음이 있다고 해도 평지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책에 실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지요(웃음).” 강원 지역장은 “창피하니 험로에 빠져 힘들게 나왔다고 적어 달라”고 농담한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린다. 입구까지 무사히 왔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마지막 차가 내려오지 않는다. 무전까지 먹통. 다른 회원이 올라가고, 1시간 정도 지나 하산에 성공했다. 타이로드에 문제가 생긴 록스타의 부품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의 회원은 부품을 구해 강릉까지 내려오겠다고 전화를 주기도 했다. 강릉 회원들은 자기 동네에서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자기 부품을 빼서 달아 주겠다고 나섰다. 옷을 버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언 손을 불어 가며 차 밑에 들어가 고생한 회원들.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격려를 보내는 R. P. M. 회원들의 뜨거운 우정에 박수를 보낸다.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가 싶더니 한 차의 바퀴가 따로 움직인다. 바퀴를 좌우로 움직이는 타이로드 끝부분이 빠진 것이다. 부속품과 케이블타이를 찾았지만 갖고 있는 회원이 없다. 옷을 버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언 손을 불어 가며 차 밑에 들어간 회원들. 그들의 뜨거운 우정이 추위를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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