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랭식 포르쉐의 마지막을 장식한 993 카레라 4S
2021-06-28  |   7,076 읽음

공랭식 포르쉐의 마지막을 장식한

993 카레라 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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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지만 이것은 911 카레라 4S, 911 터보 룩이나 컨버전 모델이 아니다. 포르쉐가 993의 마지막에 극소량 한정 생산한 911 카레라 4S다. 기함인 터보 S에서 영감을 받은 마지막 자연흡기 911이자 뛰어난 디테일과 순수 드라이빙의 쾌감을 집대성해 ‘공랭식 포르쉐의 결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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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에 더 좋은 것을 더하다

지금도 많은 포르쉐 골수팬들은 망설임 없이 ‘코드네임 993, 4세대 911이야말로 포르쉐가 마지막으로 만든 진짜 911’이라고 말한다. 수랭식 엔진으로 세대교체 한 이후에도 생산되었던 이 마지막 공랭식 911은 지금까지도 최신 모델의 드라이빙 경험, 특히 감성 측면에서 벤치마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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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 스포일러와 브레이크 덕트 내장형 안개등이 차의 짜임새를 높여준다 


포르쉐는 993을 끝으로 34년의 공랭식 엔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중에서도 이 카레라 4S는 최후기형. 물론 RS나 GT2로 통하는 GT, 터보 S와 같은 특수 한정판을 제외했을 때 이야기다. 1997년에 신형 996이 등장했음에도 못내 993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마니아가 많았다. 포르쉐는 그들의 열렬한 커튼콜에 답하는 의미로 터보 S 보디에 수평대향 3.6L 자연흡기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 4WD 시스템을 조합한 카레라 4S 쿠페를 28대 만들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 공장에서 만들어진 후 일본으로 전량 팔려 간 탓에 세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국내에서 만난 시승차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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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터보 모델의 아이콘, 웨일테일 스포일러는 그야말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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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S 보디에 카레라 자연흡기 엔진은 파격적인 조합이다. 이 둘은 와이드 보디와 변속기, 4WD 시스템을 공유하는 까닭에 혹자는 시승차를 ‘터보차저 없는 터보 S’로 부르는데, 알고 보면 둘이 겹치는 부분은 거의 없다. 911 터보/터보 S가 A to B를 쾌적하고 빠르게 주파하는 그랜드 투어러(GT)의 성향이라면 카레라는 rpm을 쥐어짜면서 즐기는 드라이빙 머신에 가깝다. 요컨대 경주를 뜻하는 스페인어 ‘카레라’에 담긴 911의 정체성에 힘껏 악센트를 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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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좋은 것에 더 좋은 것을 더하는 원칙은 매 세대 파이널 에디션을 만들 때마다 포르쉐가 충실히 지켜온 전통이었다.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911에 스포티와 럭셔리를 동시에 부각시키기에는 터보 S 만큼 좋은 테마가 없다. 또한 911의 핵심가치를 담아내기에는 카레라의 엔진만큼 색깔 확실한 파워트레인도 없으니 이 둘의 조합, 어떤가,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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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보디에 담아낸 공랭 카레라

시승차의 겉모습은 완벽한 터보 S다. 덕분에 전기형 964에 비해 우아한 부드러움을 강조한 993 기본 디자인에 적당한 묵직함, 전투적인 분위기를 더해 느낌이 새롭다. 전면에 브레이크 덕트 내장형 안개등과 립 스포일러로 단단한 인상을 주고, 측면에 볼륨감을 살린 사이드 스커트로 일체감을 살렸다. 와이드 보디의 하이라이트인 후면은 엔진 흡기구로 역동적 실루엣을 강조한 펜더와 ‘고래 꼬리(Whale Tale)’라는 애칭이 붙은 대형 리어 스포일러까지 터보 S의 디자인 요소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순정이라는 점. 매의 눈으로 터보 사양인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와 엔진 데크리드에 붙은 ‘Carrera 4S’ 투 톤 레터링을 찾아내지 않는 한 웬만한 마니아라도 영락없이 터보 S로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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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미터를 중심으로 나란히 펼친 게이지. 레드 다이얼은 오너의 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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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안목과 개체 유지를 위한 노력이 귀한 차를 더 귀하게 만든다 


실내도 마찬가지. 대시보드를 비롯한 실내 레이아웃은 993 전 라인업에 걸쳐 비슷하다. 대신 곳곳에 적용된 특별한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시트. 백 패널을 레드 컬러 패널과 포르쉐 명판으로 마감한 전동 조절식 스포츠 시트와 붉은색 시트벨트. 그밖에 변속 레버와 주차 브레이크 핸들, 릴리즈 버튼의 매트 등에 쓴 알루미늄 포인트, 천연가죽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 가죽 래핑 후 한 땀 한 땀 스티치로 마감한 운전석 에어백 모듈까지 기본형에는 없는 특별한 아이템들이다. 오디오는 베커 CDR-21 헤드유닛과 외장앰프 그리고 앞쪽 풀 레인지 스피커와 우퍼, 트위터, 뒷 선반에 코액셜 스피커 한 조씩으로 구성된 사운드 패키지 옵션을 골랐다. 굳이 터보 S와 다른 점을 찾자면 카본 트림 키트가 빠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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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시트와 시트 벨트의 붉은색 포인트가 특별하다. 뒷자리 거주성은 기대이상이다 


포르쉐는 분명 양산차 메이커다. 그러면서도 레이싱과 성능에 대한 관심이 높은 고객 니즈를 짚어내는 감각이 탁월했기에 일찍이 개별화(Individualization)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통해 각각의 고객이 원하는 바를 기막히게 만들어 낸다. 특별한 소재부터 고성능 파워팩까지 상상하는 건 거의 다 가능하다. 단지 매우 비싸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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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모터스포츠 GTⅡ 18인치 3피스 단조 마그네슘 휠은 오너의 ‘드림 휠’이다 


데일리카로 운용 가능한 공랭 911

시승차의 현재 세팅은 빌슈타인 PSS 10 코일오버 댐퍼 키트, 뚜비 머플러와 휠 외에는 모두 출고 상태 그대로다. 이들 장비 역시 공랭식 포르쉐 오너 사이에서 기본 장착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아이템들이다. 오너는 13년간 차를 소유하면서 꼭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면 철저히 순정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런 그도 버킷리스트에 품은 드림 휠이 있었으니 바로 ‘BBS 모터스포츠 GT II’다. 독일 BBS 모터스포츠 사업부가 993 현역 시절에 와이드 보디 전용으로 만들었던 마그네슘 3피스 단조 휠이다. 원래 모터스포츠 전용이었던 것을 일반도로용으로 극소량 찍어낸 희귀품이라 값이 비싸고 설사 돈이 있어도 양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10여 년 전쯤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가 얼마 전에야 비로소 구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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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터보 S의 겉모습에 카레라 엔진은 한마디로 금상첨화 


최고출력 285마력/6,100rpm, 최대토크 34.6kg·m/5,250rpm을 발휘하는 3.6L 자연흡기 엔진은 코드네임 M64/21. 여기에 911 최초로 적용된 6단 수동변속기와 4WD를 조합했다. 이때부터 추가된 바리오램(VarioRam) 가변흡기시스템 덕분에 중저속 토크를 대폭 보강해 아이들 클러치 미트와 저회전 이동이 반복되는 정체 구간에서도 한결 다루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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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탈리아제 뚜비 머플러는 저회전부터 6,800rpm의 레드존까지 자연흡기 마니아라면 전율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관능미를 뿜어댄다. 엔진과 배기음, 진동이 적절히 섞인 시승차의 사운드는 이상적인 포르쉐 노트란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실질적인 동력성능을 가늠하는 마력 당 하중은 5.08kg.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은 5.3초다. 실제로 정확한 수치를 테스트해볼 수는 없었지만 가슴 뻥 뚫리는 추진력과 포르쉐 특유의 꽉 찬 가속감, 중속 이상 코너링에서 과감한 스로틀 전개에도 요동 없는 굳건한 트랙션을 충분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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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밑거름이 될 아름다운 유산

시승차는 24년이 지난 지금도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완벽하며 나아가 뛰어난 소장 가치를 자랑하는 공랭식 911이다. 매우 특별한 개체를 알아보는 오너의 안목과 이를 바르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993 시대 막바지에 포르쉐가 이 차를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는 단순명료했다. 공랭에서 수랭으로 세대교체를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911 카레라의 정체성을 재천명한 것이다. 포르쉐는 헤리티지를 그냥 소모하지 않으며, 이 차는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표본이다.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현재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준을 재창출하며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할 뿐이다. 앞으로 포르쉐를 움직일 동력이 하이브리드, 모터 혹은 다른 무엇이 되든지 이것만은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90db5a4fa33499762f81664f440fef00_1584493434_0444.jpg 심세종 칼럼니스트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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